죄와 벌 홍신 세계문학 3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채수동 옮김 / 홍신문화사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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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선과 악의 경계를 서성인다
한 사회가 격동의 변화를 보이는 시기에 사람들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는 사람은 혼자서는 살지 못하며 다양한 사회적 관계 속에서 울고 웃으며 일상을 펼쳐나갈 수밖에 없다. 그런 사회가 급변하는 시기에는 그 사회에 살아가는 사람 역시 혼란스러운 가치관의 혼란을 겪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이는 전통적인 관습과 새로운 가치관 사이에서 오는 혼란일 것이며 미래의 불투명성에 의해 더욱 혼란스러움은 가중될 것이다. 이 시기를 온몸으로 살아간 사람들의 마음 한구석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계기 되지 않을까 싶다.

19세기 러시아는 농노제가 폐지, 경제 공황, 자본주의 정착 등으로 인해 전통적인 가치관이 상실되며 사회적 부의 불균등으로 인한 일상생활의 피폐 등 사회적 혼란기에 해당된다. ‘죄와 벌’의 작가 도스토예프스키(Dostoevskii, 1821. 11. 11 - 1881. 2. 9)는 이런 사회적 변혁기를 살았던 사람으로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당시 러시아의 상황을 작품으로 그려낸 대표적인 작가이다. 시베리아 감옥에서 4년간의 수형생활, 가난의 고통, 지식인의 가치관 혼란 등 당시 시대상황과 자신의 직접적인 경험이 바탕이 된 작가의 글쓰기는 러시아의 상황을 넘어선 사람에 대한 깊은 성찰을 보여주고 있다.

‘죄와 벌’은 사회적 혼란기를 살아가는 지식인 한 대학생의 가치관의 갈등을 그려내고 있다. 전 대학생이었던 청년 라스콜리니코프는 자신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에 싸여 일상생활에서 꾸려갈 수 없을 정도로 피폐한 삶을 살아간다. ‘어디에도 갈 곳이 없는’ 사람들로 넘쳐나는 페테르스부르크의 뒷골목에서 병적인 사색에 골몰하는 라스콜리니코프는 나폴레옹 같은 선택된 강자는 인류의 행복을 위해 사회의 도덕을 무시할 권리를 가진다는 생각 속에서 사회적으로 쓸모없는 존재인 전당포 노파를 살해하게 된다. 이는 자신의 현실적인 개인의 이익과는 무관한 행동이다. 

자신의 신념에 의해 살인을 저질렀지만 양심의 가책으로 인한 번민과 갈등은 계속된다. 청년 라스콜리니코프는 범죄 직후부터 양심의 가책,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의심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심한 고통을 겪는다. 이런 번민과 갈등의 일상은 자신도 모르게 예심판사 포르피리의 의심을 사고, 주위 사람들을 불신하게 되는 등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내면이 무너져 간다. 그러던 중 우연히 술주정뱅이 아버지와 계모, 그리고 배다른 동생들을 위해 몸을 파는 소냐를 만나게 된다. 소냐는 살기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몸을 파는 처지지만, 누구보다 영혼이 맑다. 그런 소냐에게 마음을 의지하는 동안 자신의 범죄사실을 털어놓는다. 그러자 소냐는 라스콜리니코프에게 자수를 권한다. 자신이 범인임을 확신하고 있는 포르피리의 권유, 본인이 생각처럼 비범한 인간은 아니었다는 자괴감, 소냐의 사랑을 계기로 자수를 결심한다. 그는 8년형을 언도받고 시베리아에서 유형생활을 시작한다. 소냐의 진심어린 사랑으로 라스콜리니코프는 그녀 앞에 무릎을 꿇는다. 

청년 라스콜리니코프는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지만 인간에 대한 사랑을 저버린 사람은 아니다. 노파의 돈과 귀금속을 훔치지만 그것을 사용하지 않았고, 먹을 것이 없을 정도로 가난했지만 자신의 주머니를 털어 이웃사람의 불행을 돌봤다. 하지만, 그것보다 근본적인 갈등이 크기에 살인을 저지른 청년과 자신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내몰려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창녀 소냐의 만남은 인간들의 삶이 주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사회의 가장 밑바닥 삶을 살아가는 여성이라는 존재를 혼란스러운 사회 속에 살아가는 인간의 희망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죄와 벌’은 한 청년의 살인이라는 행위를 통해 그 청년이 겪게 되는 이성과 감성, 선과 악, 신과 인간, 사회 환경과 개인적 도덕의 상관성, 혁명적 사상의 실제적 문제 등을 제시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소냐는 등장하는 모든 인물 중 가장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이지만 맑은 영혼, 희망의 빛으로 그려내고 있으며 이후 라스콜리니코프와의 사랑을 통해 ‘인간 영혼의 아름다움’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선한가 악한가’라는 근본문제에 대한 성찰에 대한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이다. 이러한 번민은 인간이 살아가는 동안 지속될 문제가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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