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사란 무엇인가 - 역사와 언어의 새로운 만남
나인호 지음 / 역사비평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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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해석하는 또 다른 방법, 개념사
언어가 없다면? 이라는 상상이 가능할까? 사람들이 누리는 온갖 물질문명과 문화적 혜택은 어떻게 보면 언어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빈번하게 사용하는 모든 말들의 그 본래적 뜻을 정확하게 알고 사용하는 것일까? 분명 그렇지는 못하다. 누구나 한번쯤은 의사전달 과정에서 내가 의도한 뜻과 전달된 뜻이 달라 일을 그르치거나 역으로 다른 결과를 가져온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이런 일이 일어난다고는 하지만 학문하는 사람이 아인 일반인이 굳이 사용하는 모든 말의 본질적 뜻을 다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언어는 한 가지 뜻만 가진 것이 아니고 사용하는 조건에 따라 문맥을 살펴야 하는 일이 더 많다. 또한 말이라는 것이 어떤 목적으로 쓰는가에 따라 본래적 의미를 상실하고 엉뚱한 뜻을 전달하기도 한다. 이는 사회적 공론이 필요한 부분 등 공식적으로 사용되는 말이라면 분명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다분하다. 텔레비전 토론 프로그램을 시청하다보면 분명 같은 단어를 사용하지만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의미가 달라 공허한 메아리로 그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필요한 것이 사용하는 언어의 본질적 내용에 대한 공감이 아닐까 싶다.

‘개념사란 무엇인가’ 이 책은 어떻게 보면 이렇게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다른 내용을 말하는 상황에 대한 문제제기일수도 있을 것이다. 다소 낯선 ‘개념사’라는 단어가 주는 선입감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저자가 밝히는 ‘개념사’는 보다 심층적이고 심오한 학문적 뜻을 함축하고 있다. ‘개념사는 언어와 역사가 어떻게 얽혀 있는지 탐구하는 역사의미론의 한 분야이다. 전통적 역사학에서 언어는 단지 과거가 실제로 어떠했는지 파악하는 수단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역사의미론에 의하면 오히려 언어가 역사적 실재를 구성한다.’ 라는 설명이 솔직히 알 듯 말듯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은 다분히 개념사에 대한 지평을 넓히기 위해 이를 소개하고 그간의 성과를 보여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구성도 그런 순서를 보여주고 있다. 먼저 1부에서는 개념사의 이론적 형성과정을, 2부에서는 근대를 시작으로 문명과 문화, 미국과 아메리카니즘, 여자, 역사, 자본주의 정신 등의 단어가 가지는 의미를 개념사 입장에 서서 설명하고 있다. 

‘역사의미론으로서의 개념사는 언어와 텍스트에 의해 역사적 실재가 어떻게 구성되었는가를 연구하면서, 언어 현상 중 특히 개념에 초점을 맞춘다. 개념사는 역사 행위자들이 개념을 사용하면서 표현하고자 했던 여러 의미의 성층을 파헤쳐, 그들의 경험과 기대, 경험을 해석하는 방식, 세계관과 가치관, 사고방식이나 심성, 그리고 희망과 공포 등을 읽어낸다.’

일례로 저자가 밝히는 개념사로 보는 여자에 대한 설명은 여성사의 한 측면을 보는 듯하다. ‘여자라는 존재, 동반자에서 적으로 변화하다 → 근대적 남자의 동반자 현모양처 → 팜므 파탈의 등장, 남성의위기 → 남성동맹의 적으로서의 여자’로 변화되어오는 과정이 바로 여성사의 한 장면이라고 보이는 것이다.

어떤 단어가 생성되고 그 뜻이 함유하는 내용이 변화와 정립의 과정을 거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렇기에 특정 단어를 통해 그 단어의 변천사를 알아간다는 것은 역사를 보는 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점이 바로 개념사가 가지는 매력이며 존재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렇게 본다면 아직은 생소한 개념사에 대한 학문적 접근은 무척이나 큰 의의를 가질 것이다. 저자가 ‘근대’라는 단어가 가지는 의의를 개념사적 시각으로 설명하며 보여준 중층적 의미는 분명 역사를 새롭게 규정하는 일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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