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유꽃'

어찌 도리화와 봄을 다툴까

茱萸花 수유화

勁節高孤似伯夷 경절고고사백이

爭春桃李肯同時 쟁춘도리긍동시

山園寂寞無人到 산원적막무인도

藹藹淸香只自知 애애청향지자지

수유화

굳은 절개 고고함이 백이와 같거늘

어찌 도리화와 같은 시기에 봄을 다투겠는가?

고즈넉한 산속 동산 이르는 사람 없어도

가득한 맑은 향기에 그저 절로 알겠거니.

*알고 보면 반할 꽃시(성범중ㆍ안순태ㆍ노경희, 태학사)에 다섯번째로 등장하는 곽진(郭瑨, 1568~1633)의 시 '茱萸花 수유화'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이른 봄 꽃을 피우는 산수유는 매화와 더불어 봄꽃의 대표주자 중 하나다. 옛사람들도 이 점에 주목하여 가까이 두었나 보다.

이 시에서는 가을에 꽃봉우리를 맺어 추운 겨울이라도 뜻을 굽히지 않고, 봄에 이르러 다른 꽃들보다 먼저 꽃을 피우는 모습에서 백이 숙제의 절개를 이야기하고 있다. 도리화가 피는 봄에는 꽃향기가 어지럽지만 그 전에 피는 산수유꽃은 향기도 맑아 정신을 맑게 한다고 의미를 부여한다.

"어찌 도리화와 봄을 다툴까"라는 수식어는 여기에서 온듯 싶다.

섬진강을 따라 오르던 봄기운이 광양 매화마을에서 머물며 숨고르기를 한 후 다시 올라와 지리산 자락에서 노랑꽂을 피운다. 넓다란 골짜기를 노랗게 물들이며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 봄기운을 불어넣는 곳이 산수유로 유명한 산동이다.

그곳에 현천 마을이 있다. 골목마다 돌담과 샛노란 산수유가 어우러진 마을에 선배 한분이 산다. 대학 4학년 말 갑자기 사라져 소식을 몰라 모두가 궁금해 했는데 어느날 불쑥 들려오는 소리가 그곳에 터를 잡고 살림을 차렸다는 것이다.

그 집터에 커다란 산수유 나무가 있었고 가을이 무르익어가는 어느날 붉은 열매를 딴다기에 몇명이 방문했다. 그렇게 만난 것이 산수유와 첫만남이었다. 그후로도 몇번 나들이겸 방문하였는데 잘 살아가는 모습이 더없이 정겨운 모습으로 꼭 산수유 나무 같았다.

나 역시 시골에 자리를 잡고 뜰을 가꾸면서 산수유 한그루를 심었다. 이제는 제법 커서 꽃피는 봄날이면 노랗게 봄기운을 전해준다. 하지만 꽃은 만발한데 열매를 맺지 못한다. 분명 이유가 있을텐데 미적대며 대책을 세우지도 못하고 있다.

*'알고 보면 반할 꽃시', 이 책에 등장하는 꽃시를 따라가며 매주 한가지 꽃으로 내가 찍은 꽃 사진과 함께 꽃에 대한 내 나름의 이야기를 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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