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초앓이
김동명의 시 "파초"에서 시작되었을까. 파초앓이는 내 뜰을 마련하면서 부터 표면화 되었다.

내가 졸업한 국민학교 화단의 파초로부터 시작된 파초 구경은 강희안의 양화소록 속 파초, 김홍도ㆍ장승업ㆍ정조의 그림에서 조익이나 송시열 등의 시에 등장하는 옛사람들의 파초 사랑을 부러워하다가 결국 현실의 파초 실견으로 이어진다.

나주 가운리 파초, 담양 삼인산 아랫마을 파초, 쌍계사 파초, 송광사 불일암 파초. 섬진강가 파초ᆢ. 크던 작듼 상관없이 파초가 보이면 무조건 그 앞에 서서 요모조모 살피기를 반복하며 파초앓이를 키워왔다.

백방으로 구하려고 하다 겨우 얻은 것이 삼인산 아랫마을에 파초를 심은 사람에게서다. 두 뿌리를 얻어 하나는 다른 사람 집에 심어주고 하나는 내 뜰에 심었다. 두해동안 그 커다란 잎을 보이고는 사라졌다. 내가 심어준 다른 집에서는 그후로도 계속 자라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괜히 심술을 부리기도 했다. 그 파초가 사라지고 난 후에 다시 시작된 파초앓이가 몇년 지나 어린 뿌리를 얻고서 날이면 날마다 아침 저녁으로 눈만춤 하고 있다.

늦가을 마다 얼어죽지 않게 하려고 무진 애를 쓴다. 또 봄이 되면 싹이 나오기를 얼마나 기다리는지 화단이 발자국으로 다져진다. 그 파초가 허리만큼 키를 키웠다. 그 옆에 작은 녀석을 동반했으니 보는 재미는 두배가 되었다.

이런 파초앓이에 불을 지핀 작품이 이태준의 산문 "파초"다. 글 속에 등장하는 파초를 아끼는 마음에 백만배 공감하며 여름이면 잊어버리지 않고 찾아서 읽는다.

"파초는 언제 보아도 좋은 화초다. 폭염 아래서도 그의 푸르고 싱그러운 그늘은, 눈을 씻어 줌이 물보다 더 서늘한 것이며 비 오는 날 다른 화초들은 입을 다문 듯 우울할 때 파초만은 은은히 빗방울을 퉁기어 주렴 안에 누웠으되 듣는 이의 마음 위에까지 비는 뿌리고도 남는다. 가슴에 비가 뿌리되 옷은 저ㅈ지 않는 그 서늘함, 파초를 가꾸는 이 비를 기다림이 여기 있을 것이다."

섬진강 어느집의 파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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