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탐매기蟾津探梅記
"수일 못 뵈었습니다. 가람 선생께서 난초를 뵈어 주시겠다고 22일(수) 오후 5시에 그 댁으로 형을 오시게 좀 알려 드리라 하십니다. 그날 그시에 모든 일 제쳐 놓고 오시오. 청향복욱靑香馥郁한 망년회가 될 듯하니 즐겁지 않으리까."

*정지용이 이태준에게 보낸 편지다. 이 편지를 받고 모임에 참석한 이는 좌장 이병기 선생을 비롯하여 이태준ㆍ정지용ㆍ노천명이 참석 했다.

"1936년 1월 22일. 우리는 옷깃 여미고 가까이 나아가서 잎의 푸르름을 보고 뒤로 물러나 횡일폭의 목화와 같이 백천획으로 벽에 어리인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가람께 양란법을 들으며 이 방에서 눌러 일탁의 성찬을 받았으니 술이면 난주요 고기면 난육인 듯 입마다 향기였었다."

*이태준은 그 모임의 후기를 남겼는데 '설중방란기雪中訪蘭記'가 그것이다. 위 글은 설중방란기의 일부다. 난을 두고 모여 이야기꽃을 피웠을 모습을 상상하니 난향이 은근하게 베어난다. 지극히 부러운 만남이다.

하나, 이 만남이 마냥 부러운것 만은 아니다. 이태준의 '설중방란雪中訪蘭'이 난향을 두고 만났다면 매향을 두고 벗들이 만났으니 이 또한 지극한 아름다움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2020년 1월 12일 오전 10시 소학정. 멀리 제주도를 필두로 울진, 서울, 대구, 옥천, 진주, 곡성에 사는 이들이 섬진강가에서 만났다.이름하여 섬진탐매蟾津探梅다. 

반백의 벗들이 만나 매향梅香을 가슴에 품고 서로 나눈 눈길이 한없이 곱기만 하다. 마주잡은 손길에 온기가 가득하고 주고 받는 안부에 매향이 오간다. 무엇을 더하고 무엇을 뺄 것이 따로 있을까. 환한 미소가 머무는 벗들의 얼굴에 모든 것이 다 담겼다.

"가지 말라는데 가고 싶은 길이 있다
만나지 말자면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하지 말라면 더욱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

그것이 인생이고 그리움
바로 너다"

*나태주의 시 '그리움'이다. 시인의 마음과 무엇이 다르랴. 벗들과의 하루가 한편의 시다.

섬진탐매蟾津探梅
꽃을 보듯 너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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