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한파라고 아침은 올 입동 이후 가장 추웠다. 바람결에 실려온 냉기는 옷깃을 여미게 한다. 그것도 잠시 한낮의 볕은 따스하기 그지없다. 바람을 피해 볕이 오롯이 들어오는 양달에 앉아 볕바라기 하기에 딱 좋은 볕이다.
무엇에 쫒기는 것처럼 바쁜 것도 아니었는데 단풍이 다 지도록 단풍놀이 한번 못하고 지나가는 것은 아닌가 싶어 괜히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페이스북은 여기저기서 울긋불긋 다양한 모습으로 여는 창마다 요란하다. 하늘 아래 모든 것이 불타듯 노랗고 빨갛게 물들어가는 동안 하늘 한번 올려다보지 못한 사람들의 마음의 흔적 일 것이다. 어쩌면 지나가버린 시간을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막바지 겨울로 가는 단풍보다 더 분주한 발걸음으로 마음만 더 부산스럽다.
나도, 볕이 잘드는 인적 드문 숲으로 가 이미 떨어진 낙엽으로 포근한 자리에 앉아 미쳐 땅과 만나지 못한 낙엽을 한동안 바라다 보고 싶다. 그것이 여의치않다면 시골 마을 한 모퉁이에 자리잡고 넉넉한 품으로 오가는 사람들의 벗이 되었을 나무 그늘에 들어 한나절 그 나무의 벗이 되고 싶기도 하다. 그것도 아니라면 온통 머리털이 세어서도 속내를 드러내는 것이 여전히 부끄러운 억새와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며 들길을 서너시간 쯤 걷다 지칠만할 때 돌아오면 좋겠다. 그것도 과분하다면 오후 볕을 깊숙히 끌여들여 오랫동안 품고자 서쪽을 온통 창으로 만든 모월당慕月堂 긴 책장에 기대어 산을 넘는 햇볕의 끝자락을 잡고서 잠시 조는 것으로 대신해도 좋겠다.
느긋한 기다림이라 애써 다독이던 마음에 아직은 늦지 않았다는듯 담쟁이덩굴에 한줌 볕이 들었다. 이 볕 한줌 덜어내어 품속 깊숙히 넣어두어야겠다. 내 마음에 볕이 필요한 그때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