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보고자 먼 길 나선 벗들이 소나무 아래로 몸을 숙인다. 처음의 눈맞춤 이기에 엎어지고 눕기를 반복하며 요란스런 모습으로 신고식을 치루고 있다. 그늘에 빛이 드는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느긋한 기다림도 잊지 않는다.

그 마음 익히 알기에 슬그머니 자리를 비켜주고 물러선다. 나 역시 일년 전에도 한주 전에도 같은 곳에서 같은 꽃몸살을 치뤘다는 다소 느긋함으로 부리는 여유다.

모퉁이를 돌아 서니 늘씬한 미인송의 자태가 예사롭디 않다. 소나무가 몸으로 만들어 놓은 특유의 리듬을 쫒는 눈이 순간 머뭇거린다. 제 몸에 등불을 켸고 환하게 따오르는 가을이 그곳에 있다.

소나무를 의지하며 몸을 키워온 담쟁이는 이 순간을 위해 부지런히 달려왔리라. 빛을 사이에 두고 소나무와 담쟁이덩굴의 어우러짐이 만들어준 선물이다. 이런 순간을 만나는 행운을 누리기 위해 유유자적 숲길을 걷는지도 모른다.

꽃과의 신고식을 마친 벗들의 소근거리는 말소리에 고개를 돌려 눈으로 그들을 맞이한다. 서로를 향해 은근히 건네는 미소속에 까실한 가을볕이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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