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_읽는_하루

차를 끓이며

내 가슴에서 말라 가는 한 봉지의
밍밍한 하루를 끓인다
슬픔이나 쓰라린 일은 녹즙으로 풀리고
부질없이 나부끼던 영혼의 푸른 잎사귀도
마알갛게 우러난다
그래, 죽음이란 것도 목숨을 잘 말렸다가
어느 날 순리의 불을 피우고
말갛게 말갛게 우려낸 한잔의
찻물이나 아닌지
이 뜨거운 깨우침을 후후 불어 마시며
찻잔 같은 풍경 위에
내 맑은 눈빛을 올려 놓는다
향기로워라, 가끔씩 생활을 끓이는 시간
한 모금의 명상으로 가슴을 적시며
헛된 욕망을 걸어 잠근 후
그냥 숨이라도 끊어진 듯 슬그머니
일상의 문 밖으로 나갈 수는 없을까
끓이면 끓일수록 우러나는
한 잔 푸른 빛깔을 건져낼 때마다
혀 끝에 쓰게 얹히는 인생의 떫떨함
차를 끓이다가 자꾸자꾸 쏟아 버리고 싶은
아직도 덜 마른 내 삶의 잎사귀들

*임찬일의 시 '차를 끓이며'다. 제법 차가운 기온으로 옷깃을 여미게 된다. 이제 계절의 바뀜이 실감나는 때이다. 차가움이 주는 명징함의 다른 의미는 스스로를 냉정하게 돌아볼 기회가 아닌가 싶다. 차 한잔 놓고 일상을 마주보는 시간, 내 안의 향기를 찾아 본다.

'시 읽는 하루'는 전남 곡성의 작은 마을 안에 있는 찻집 #또가원 에 놓인 칠판에 매주 수요일 올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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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곡성군 오산면 연화리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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