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에세이 -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
부희령 지음 / 사월의책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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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아침 안개 속을 걷는 듯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계절의 변화를 아침 안개의 상태를 신호로 삼는다밤을 건너온 자욱한 안개 속으로 힘없는 햇살이 스며들며 천천히 깨어나는 아침은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는 다양한 감정을 품고 있다.보일 듯 말 듯 열린 농로를 따라 안개 너머의 세상으로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기는 마음으로 하루를 맞이한다.

 

안개 세상은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대상과 나를 가르는 벽인 듯 싶지만 결코 단절은 아니다대상을 멀리 두는 거리감을 가졌지만 또한 서로를 이어주는 넓은 품을 가졌다차갑게 다가오는 듯 싶지만 때론 온전히 감싸주는 아늑함이 있다안개의 매력 속으로 빠져드는 계절을 건너는 중이다.

 

이 가을아침 안개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글을 만났다작가 부희령의 책 무정에세이가 담고 있는 문장에서 얻는 느낌이 그렇다작가 부희령과는 이 책으로 첫 만남이다아니 페이스북 친구이니 글을 만나는 것은 처음은 아닐지도 모른다저자와 책에 관한 정보 없이 손에 든 책을 펼친다여기저기서 올라오는 책 소개 덕분이다.

 

여섯 가지 테마로 엮은 글을 조심스럽게 펼친다별로 꾸미지 않은 문장에 이런저런 일상을 건너오는 생각을 잔잔하게 드러내고 있다속내를 드러내기에 망설여질 법도 한 내용 있고지극히 사소한 작가의 가정사를 비롯한 개인이야 뿐만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아픈 마음을 나누는 이야기도 있다.

 

무심한 듯 펼쳐놓은 이야기들을 따라 가다보면 안개 속을 걷는 것처럼 서늘함과 아늑함이 공존한다내 발밑을 보지 못하고 순간순간 걸려 주춤거리듯 읽던 문장에서 넘어지는 순간을 마주한다문장이 품은 온도는 따뜻하나 곁은 내주지 않은 무심함이 앞서는 것일까아니며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될 속내를 드러내서 읽는 이의 부끄러운 마음을 까발리는 솔직함에서 오는 불편함은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이유가 무엇이든 문장에 감정들이 걸려 넘어지는 순간마다 안도의 숨을 내쉬게 한다묘한 끌림의 이유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쉽게 가시지 않은 감정의 무게를 남겼으니 작가와의 첫 만남은 성공적이다여물어가는 가을에 묵직한 문장을 만났으니 계절을 건너가는 발판으로 삼아도 좋을 것이다짙은 안개 속을 걷다보면 안과 밖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을 만나게 된다.

 

결국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은 내 안에서 하나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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