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가 진채에서 당한 것보다 곤경이 심하나 도를 실천하느라 그런 것은 아닐세. 

안회의 가난에 망령되이 비교하려들면 무엇을 즐기냐고 묻겠지.
무릎을 굽히지 않은 지 오래인 나처럼 청렴한 인간 없음을 어찌겠나.
꾸벅꾸벅 절하노니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네.
여기 술병까지 보내니 가득 채워 보냄이 어떠한가?"

*연암 박지원이 박제가에게 돈을 꾸어 달라고 보낸 편지다. 미안함도 부끄러움도 보이지 않는다. 더 주목되는 것은 이 편지에 대한 박제가 답장이다.

"열흘 간의 장맛비에 밥 싸둘고 찾아가는 벗이 못 되어 부끄럽습니다. 

200닢의 공방은 편지 들고 온 하인 편에 보냅니다.
술병은 일없습니다. 세상에 양주의 학은 없는 법이지요."

*박제가의 답장이다. 고생하는 연암의 처지를 먼저 알아 찾아갔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 부끄럽다고 한다. 종에게 돈은 보내지만 술까지 보내지는 못하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소망하는 것이 모두 이뤄지는 건 인생의 순리가 아니기 때문이란다. 꿔달라는 사람이나 꿔주는 사람이나 피차 구김살이 없다.


*초여름 꽃을 보고자 세석평전을 오르며 보았던 구상나무의 열매다. 무심한듯 서 있는 열매 둘이 어쩌면 벗의 모습은 아닐까 싶어 문득 찾아보게 된다. 

이런 관계도 있다. 굳이 멀리서 찾지 않아도 내가 그에게 그런 벗이 되면 되는 일이다. 꽃보러 다니는 중심에 사람 사귐의 이치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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