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느린 달팽이의 속도로
김인선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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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송이 들꽃처럼 살다가 사람

나는 그를 모른다다만그를 기억하고 기리고자 하는 이들의 밝고 따뜻한 마음을 알기에 기꺼이 나눴고 나도 이제 손에 들었다누군가를 기억하고 시시때때로 그리워 한다는 것이 주는 고요한 울림은 크다기억하고자 하는 이들과 공감되는 순간순간을 만날 때마다 기억된 그 사람의 모습을 그려보게 되는 것은 먼저 간 이와 남은 이가 엮어내는 이야기의 따스함에 매료된 까닭이라 여긴다. 2018년 급환으로 홀연 세상을 떠김인선(1958-2018), 그를 이제야 만난다.

 

이 책 세상에서 가장 느린 달팽이의 속도로는 그의 사후 저자의 컴퓨터 하드디스크에서 발견된 산문과 그가 온라인에 남겼던 글출판을 계획하고 집필하던 괴담 형식의 글을 선별해 한 권으로 엮어 세상에 선보인,그의 첫 책이자 마지막 책이다.

 

그의 글은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자연 속에서 동식물과 어울려 살아가는 즐거움농촌의 인간군상에 대한 생동감 넘치는 묘사와 함께 곤궁한 생활을 버티게 하는 허풍삶과 죽음에 대한 독특한 철학현실과 꿈의 경계를 뛰어넘는 기이한 이야기들이다특히자연 속에서 만나는 하나하나를 무심코 지나치지 않아야만 알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계절별로 엮어져있지만 딱히 계절이 주는 의미는 없어 보인다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반영되어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자연이 순한 하는 것처럼 떠난 그의 삶을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로 여기는 것으로 추측해 본다.

 

김인선글로 만나 첫인상은 천상의 이야기꾼이라는 점이다일상에서 만나는 사소한 일들을 자신만의 톤으로 무심한 듯 이야기를 펼쳐간다제법 심각하게 펼쳐지는 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미소를 짓게 되거나 때론 한바탕 웃음을 터트리게 된다글 속에서 공유하는 싫지 않은 순간순간이 지나가면 마음 한구석 묵직하게 따스함이 머물게 된다다음 글을 서둘러 읽게 되는 이유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모두 달아 난다.”는 그는 억지를 부리지 않으면서도 하고 싶은 말을 다하고 있다그렇다고 주장이 넘치지도 않는다비꼬는 듯 하지만 속내는 따스함이 넘친다내가 글을 쓴다면 이런 글맛을 전하는 글쓰기가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느긴 달팽이의 삶에서 건저올린 글이 독특한 맛으로 남았다그 따스함에 그를 기억하고자 하는 이들의 마음이 머물러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그를 모르지만 그가 서둘러 떠난 그를 기억하는 이들의 마음자리에 무엇이 있을지 짐작하는 바가 있다한철 찬란하게 피었다가 이내 쓰러지는 들꽃처럼 먼저 간 그곳에서는 한결 가벼운 마음이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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