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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 때 펴보라던 편지 - 영혼을 깨우는 선승들의 일화 301
최성현 지음 / 불광출판사 / 2019년 2월
평점 :
봄볕 같은 이야기들
같은 이야기도 나누는 대상에 따라 그 방식은 달라진다. 듣는 이와의 친밀도나 그가 처한 환경, 이야기하는 이의 기분 등이 같은 전달하고자 하는 본질을 애둘러 가는 일은 다반사로 일어나기 마련이다. 보통 사람도 이럴 것인데 평생 자신을 돌아보면 살아온 수행자들이야 말로해서 무엇할까.
일상의 변화가 보통의 사람들보다 느리게 살아가는 이들에게 별일 없이 지나가는 날이 어저면 최고의 날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주목해 본다. 꼭 무슨 일이 일어나고 변화가 있어야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난 후의 세상을 보는 기준이 달라진 탓이다.
이런 시각으로 옛 수행자들의 비슷비슷한 이야기를 읽어가는 것이 더디기만 했다. 지극히 평범하게 일상을 꾸려가는 이들이 겪는 다양한 문제를 대하는 수행자들의 모습 역시 크고 특별한 무엇이 있어 보이지 않은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힘들 때 펴보라던 편지’의 대부분의 이야기는 살아오며 직접 경험했거나 내 친구나 이웃들이 겪었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은 이야기들이다. 늘 그렇듯 ‘머리와 심장이 따로 노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가 될 것이다. 아는 것을 실천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지만 여기에 하나를 더하자면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에 주목한다.
‘힘들 때 펴보라던 편지’에 등장하는 301 가지의 이야기는 자신과 자신의 일상에 진솔했던 수행자들의 이야기다. 머리로 아는 것과 오늘을 살아가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 서로 다르지 않길 소망한 수행자들의 삶의 본질을 만난다.
스님은 편지 한 통을 내어주며 말했다.
"곤란한 일이 있을 때 이것을 열어봐라.
조금 어렵다고 열어봐서는 안 된다.
정말 힘들 때 그때 열어봐라"
문제에 직면한 이들의 절박함은 수행자들이 스스로를 백척간두 서게 하고 난 후 그것에서 뛰어내릴 마음과 같을 것이다. 그래야만 문제를 극복하고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자리에 스스로를 올려놓지 못한다. 그러니 수행자들의 평범한 일상이 주는 큰 울림을 가슴으로 담지 못하는 것이리라.
숲에 관심을 갖던 초창기에 '바보 이반의 산 이야기'로 만났던 저자를 오랜만에 다시 본다. 20여 년 간 일본 선승들의 이야기를 모으고 번역한 일화집에는 평범한 이야기들을이 대부분이다. 쉽고 그래서 특별한 이야기가 없지만 잔잔하게 파고드는 선승들의 삶에 주목하며 내 일상을 돌아본다.
마알간 봄 햇살에 영혼이 씻기는 개운함으로 마주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