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놀이는 여기서
술과 시와 노래를 즐기는 이들은 필운대의 살구꽃, 북둔의 복사꽃, 홍인문 밖의 버들, 천연정의 연꽃, 삼청동 탕춘대의 물과 돌을 즐겨 찾는다.

한양도성의 둘레는 40리인데, 하루 동안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성밖의 꽃과 버들을 두루 감상하는 것을 최고로 친다. 꼭두새벽에 오르기 시작해서 저녁 종을 칠 때쯤이 되어야 마칠 수 있다. 산길이 대단히 험해서 지쳐 떨어지는 이들은 되돌아간다.

*유득공(柳得恭, 1749~1807)의 경도잡지에 언급된 한양 양반들이 철 따라 피는 꽃을 감상하면서 시를 짓고 노래하며 술 마시는 풍류의 모습을 담은 장면이다. 그림은 정선(鄭敾, 1676~1759)의 '필운대상춘弼雲臺賞春'이다.

꽃놀이가 조선시대 한양 양반들의 전유물이었을까? 스스로를 '꽃쟁이'이라고 부르는 현대의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한양 도성이 주 무대가 아니라 남쪽 제주도에서 북쪽 강원도, 동쪽 동해시에서 서쪽 안면도 등 전국을 무대로 꽃을 찾아 다닌다. 눈 내리는 한겨울부터 시작된 꽃놀이는 단풍지고 다음 눈이 내릴 때까지 이어진다.

이들이 발로 쓰는 꽃지도는 어느 공공기관에서 작성하는 식생지도 보다 광범위하며 꽃 피는 철 따라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되기에 무엇보다 정확하다.

꽃을 매개로 공감하고 공유하는 사람들의 교류는 꽃을 닮아 아름다고 향기롭다. 아름다운 꽃을 보고 즐거워하는 것과 더불어 서로간의 교류를 통해 꽃마음을 나눈다. 서로가 서로를 독려하며 꽃을 보호하고 꽃이 필요한 곳에는 몸과 마음을 보테어 꽃마음을 전한다.

지역의 경계가 없고 남녀와 연령의 구분을 두지 않으며 프로와 아마추어의 벽이 없다. 시가 있고 음악이 있으니 조선시대 양반들의 풍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시대를 뛰어 넘어 꽃이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니 꽃만큼 좋은 것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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