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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트위스트 1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51
찰스 디킨스 지음, 이인규 옮김 / 민음사 / 2018년 4월
평점 :
디킨스를 초등생에게 읽히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든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과 『올리버 트위스트』는 어린이를 위한 문학전집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다. 이 책들은 아이들에 맞춰 편집되어, 원작을 훼손하는 경우가 많다. 디킨스의 신랄하고 풍자적인 어투를 경험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그가 비판하고 있는 사회현상에 대해서도 의문을 갖기 어렵다. 실제로 어린 시절 내가 읽었던 『올리버 트위스트』는 그저 불행한 소년의 유랑과 불운한 사건들 그리고 마침내 얻는 행복이란 이야기로만 남아 있었다. 단지 디킨스가 제공한 에피소드만 얻는 독서에 그쳤던 것이다. 몇 페이지를 넘기면서 확신하게 됐다-이 소설은 아이들 용으로는 출판되지 않아야 하고, 이해할 수 없는 나이에는 읽히지 말아야 한다.^^
올리버가 태어난 구빈원은 1834년 개정된 신구빈법에 의해 운영되는 시설이다. 디킨스는 이곳에서 그와 같은 사회적 약자들에게 행해지는 비인간적인 악행들과 부조리를 고발하고 있다.
“15세기부터 시작된 인클로저로 인해 쫓겨난 사람들은 걸인이나 유랑민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이들을 구제하고 통제하기 위해서 구빈법(the Elizabeth Poor Law, 1601)과 유랑법이 제정되었다. 신체가 정상적인 걸인들은 구걸하기 위해서 허가증을 얻어야 하였고, 유랑법을 어기면 태형에 처해지거나 감옥에 보내졌다. (박지향 『영국사』 303p)
엘리자베스 여왕 때 만들어진 이 구빈법은 1834년 개정되었다. 18세기에 들어와 영국은 다수의 전쟁을 치르며 증가한 전쟁비용을 부담하게 된다. 그리고 빈민들은 계속해서 증가함에 따라 빈민구제에 드는 비용도 100년 사이에 6배로 증가하였다. 이와 같은 재정적 압박을 받으며 구빈법을 개정하게 된다. 디킨스는 이 신구빈법을 비판한다.
그는 이 구빈법과 함께 당시 영국의 법과 제도를 이끌어갔던 공리주의를 비판한다.
“이후 여덟 달 내지 열 달 동안 올리버는 제도적으로 시행된 배반과 기만의 희생자였다.(『올리버 트위스트 1』 24p)” 구빈원에서 태어난 올리버에게 행해진 일들을 한 문장으로 평가한다. 올리버에게 할당된 비용보다 더 적은 금액을 지출하는 구빈법 위반자에 대하여 “이로써 가장 깊은 바닥에서조차 한층 더 깊은 바닥을 찾아내는 솜씨를 통해 자신이 아주 위대한 경험주의 철학자임을 증명해 보였다(『올리버 트위스트 1』 25p)” 고 비아냥댄다.
전체 이야기는 계몽적이다. 만삭의 몸으로 여행 중이던 정체모를 여인에게서 태어난 올리버, 해산과 함께 그의 모친은 죽고, 올리버는 태어난 구빈원에서 돌봄을 받고, 보육원에서 양육되다가, 다시 구빈원으로 보내진 후, 처벌의 형태로 장의사에 보내진다. 태생이 불운한 아이를 향한 편견과 비인간적인 처우, 굶주림, 착취, 학대로 인해 올리버는 도망한다. 런던에 도착한 아이는 범죄 집단의 마수에 걸려들지만, 우연한 사건과 만남이 반복되면서 출생의 비밀과 그를 향한 음모가 밝혀진다. 그리고 이야기는 권선징악으로 마무리 된다.
당시 영국사회는 돈이 최고의 가치인 사회이고, 디킨스가 서문에서 예로 든 존 게이의 「거지 오페라」에서처럼 폭동과 절도와 무질서가 끊임없이 발생하는 사회였다. “경찰력이 존재하지 않았고 법을 집행할 기관이라는 것이 고작 치안관과 치안판사, 소수의 상비군밖에 없는 사회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다.(박지향 『영국사』344p)”
자유와 번영이 존재했지만 동시에 부패와 빈곤 등 모순적인 양상들이 가득한 당시 영국사회의 모습을, 디킨스는 구빈원과 런던의 빈민가를 그림으로 비판하고 있다. 또한, 그는 어린 올리버를 통해 선의 원리가 온갖 역경과 악의 유혹을 이기고 살아남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으며, 범죄 집단의 실상을 그대로 묘사하려 했다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 사회에 기여하길 원했다. 신문기자라는 직업이 이런 글을 쓰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로 각 장마다 제목을 마치 기사 헤드라인처럼 달고 있다.
이 소설에서 한 가지 거슬리는 점은 도둑집단의 우두머리를 유태인으로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 유태인 페이긴은 어린 아이들을 데려다가 도둑질을 가르치고 착취한다.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하는 인물이다. 그를 페이긴이라고 부르기보다는 자주 유태인으로 지칭한다. 읽는 내내 불편했다. 셰익스피어 역시 『베니스의 상인』에서 돈만 아는 인정머리 없는 냉혈한으로 유태인을 소환하고 있다. 디킨스나 셰익스피어의 이런 작품이 읽혀지면서 사람들에게 각인되는 편견의 효과를 생각한다면 피했어야 할 일이다. 그 시대와 환경 안에 갇혀 있기 때문이었겠지만, 이런 글들이 사람들의 증오심을 쌓는 작용을 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두려운 일이다.
올리버의 출생의 비밀이 밝혀질 때까지, 아이를 타락시키려는 인물과 아이에게 선을 베푸는 사람들, 범죄자와 그 주변인물들의 관계를 차츰차츰 벗겨가는 소설의 플롯은 탁월하다. 권선징앙적 메시지만 있었다면 조금 식상할 뻔한 스토리지만 당시 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담고 있어 가벼이 읽을 수가 없다. 15세기부터 19세기까지의 영국사를 들여다보게 한다. 여기에 디킨스의 탁월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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