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에서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10
압둘라자크 구르나 지음, 황유원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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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의 발을 씻어주던 에우리클레이아는 오딧세우스의 흉터를 알아본다. 이 인지는 서사에 새로운 활기와 긴장감을 주는 사건이다. 서동욱 교수는 타자철학서론에서, 변장한 오딧세우스를 대접한 돼지치기 에우마이오스와 부지중에 세 천사를 대접한 아브라함을 예로 들며 환대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환대는 오랜 역사를 지닌, 타자에 대한 긍정적 반응이다.

 

동독으로 유학을 간 라티프 마흐무드가 얀의 집을 방문했을 때, 얇고 낡은 신발을 신고 있던 그는 발에 상처를 입고 피를 흘린다. 그 발을 씻겨주고 좋은 신발을 내주면서, 오딧세우스의 흉터와 에리히 아우어바흐의 미메시스를 떠올리는 얀의 모친 엘레케의 환대와 지성은 인상적이다. 그러나 환대는 공동체 안에 들어온 타자를 대등한 관계로 사유하고 있지 못할 때가 많다. 엘레케는 라티프의 상처난 발에서 『오딧세이아』의 미메시스를 찾고 있다. 얀은 라티프와 함께 유럽여행을 하는 도중 망명을 한다. 그제서야 알게 된 라티프는 유럽을 떠돌다가 영국으로 망명한다. 얀의 행동은 라티프를 한 주체로서 보고 있지 않음을 알려준다. 라티프는 그들의 삶에 새로운 국면을 만드는 미메시스적 존재였을까?

 

출입문이자 국경인 공항은 한 국가의 울타리를 상징한다. 이 경계는 공동체의 영역을 확실히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밖의 것은 타자의 영역임을 드러낸다. 어느 공항에서든 입국심사는 이루어지고, 우리는 추방에 대한 불안을 안고 그 앞에 선다. 망명을 신청하고 있는 살레 오마르는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서있다. 그 국가의 언어를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동류로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에 의한 것이다. 객체이고 대상으로서 이민자를 대할 수밖에 없는 국가 공동체의 배타적 성격과 동일자적 시선을 발견하게 된다.

 

공항 직원의 친절한 웃음 뒤에 차가운 합리성이 벽을 치고 있는 표리부동함을 알기에 죄수의 기분이 든다. “난민”, “망명이라는 단어만 반복하고 있는 노년의 이방인은 그들을 불편하게 하는 타자다. 동일자의 시선에서 그들은 공동체를 침범하는 낯선 타인이고 거절할 이유를 찾아야 할 대상이다. 살레 오마르는 말이 통하지 않는 자로서 받아들여진다. 그는 자신의 소유물 우드알카마리를 가볍게 절취(窃取)당할 수 있는 대상으로 전락한다.

 

난민기구 법률고문 레이철의 방문계획과 전화해달라는 메시지가 적힌 카드를 읽으며 살레 오마르(샤아반)는 양가감정을 느낀다. 그녀의 엽서는 제스처에 지나지 않는 친절일 수도 있음을 알면서도 그는 위안을 받는다. 그럼에도 그녀의 방문이 그의 공간에 충만한 침묵을 산산조각내지 않기를 바란다. 환대는 그 대상을 자아를 가진 존재로 인정하지 못할 가능성을 갖고 있다.

 

서로 친숙하고 애착이 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오고가는 환대라면 특별히 철학적 성찰의 대상이 되어야 할 필요가 없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 어쩌면 준비조차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문 앞에 와 있는 낯선 사람의 요청에 응해야 할 때 환대는 윤리적 정치적 철학의 의제로 떠오른다.”(이주여성인권포럼 우리 모두 조금 낯선 사람들81p)

 

살레 오마르 역시 레이철에게서 신발을 선물 받는다. 이 지점에서 신발은 이 소설에서 상징어가 된다. 문명을 의미하고 있지 않을까? 익숙한 문명에서 낯선 문명으로 이행할 때 그가 신은 신발이 그 기후에 맞지 않는 경우처럼, 이주민은 신체의 고통과 같은 아주 구체적인 소외를 경험하게 된다. 단순한 고독이 아닌 몸으로 느끼는 고통을 동반한 고독이다. 타자는 신체를 갖고 있다는 잊기 쉬운 사실을 주지시킨다때로는 홀로 머무를 공간이 필요하고, 다르게 생긴 얼굴들 사이에서 위축되는 몸을 지닌 존재다.

 

라티프도 살레 오마르도 모두 자신이 자아를 가진 존재임을 바틀비의 대사로 말한다. “그렇게 안 하는 편을 택하고 싶습니다라고. 또한 주체로서 망명지인 영국의 소도시 사람들의 삶을 관찰한다. “어딘가에 정신이 팔려 있거나 산만해보이고, 자신은 이해할 수 없는 소란에 맞서 분투하느라 분주한(14p)”그들의 삶을 포착한다. 라티프와 살레 오마르는 노골적인 조롱과 혐오를 표시하는 사람들의 타자성을 생각한다.

 

그는 오십 년대 영국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의를 바지에 집어넣은 전형적인 영국인, 해결할 수 없는 도덕적 갈등으로 괴로워하는, 근엄하고 아래턱이 축 처진, 그 영화 시대의 은행원이나 공무원처럼 보였고, 이제는 우리가 서로를 지나쳤으므로, 그는 불운한 영웅처럼 일부러 타가닥타가닥 소리를 내며 한가로이 걸어가고 있었다. 히이죽거리는 gwinnin 블랙어무어 놈. 하지만 조롱하려는 건 아닌데, 그는 위기의 한복판에서 자멸을 생각하고 있는지도 몰랐고, 그가 혐오감을 보이며 낸 쉿 소리는 딱딱한 학대로 위장했을 뿐, 실은 도와달라는 외침인지도 몰랐다.”(123p)

 

영국 한 소도시에서 만난 라티프와 살레 오마르는 과거 공통된 시간과 공간 속에 있었음에도 동일한 기억을 갖고 있지 못하다. 오해했거나 지워버린 기억 속에서 그들의 시간이 어긋났음을 알게 된다. 같은 시공간에 존재하더라도 타인을 나의 기억 속에서 인식하기 때문에 서로를 타자로 밀어낸다. 그들이 만난 사람들 역시 타자였다. 고향에서 이웃과 친척들은 전체주의 아래 동일성에 포획되거나 그렇지 못한 타자였다. 독일의 엘레케와 얀은 체코에서 이주한 이방인이었다. 공항 직원과 레이철 역시 유럽 공산국가에서 이주해온 이민 2세들이고, 살레 오마르가 잠시 머물렀던 숙소에서 그를 노골적으로 조롱했던 두 사람은 코소보 난민과 체코 집시 망명자다. 영국의 원주민 역시 누군가는 그들의 공동체 안에서 타자경험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소설은 라티프 마흐무드와 살레 오마르 두 사람의 만남에 여러 사람의 서사를 담고 타자로 환원되고 있다.

 

무심을 따라 상인의 배가 드나들던 바닷가는 국경과 출입문이다. 경계인 바닷가에 머물던 이주민의 후손은 역사의 격랑에 의해 그 밖으로 내몰렸다. 그들은 망명지에서도 바닷가에서 거주한다. 새로운 공동체의 타자로서.

 

도래하는 타자, 타자와의 마주침은 침범의 위협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때론 지나친 환대와 공동체의 문화를 강요함으로 충돌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들은 더 이상 계절풍을 타고 오지 않으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친 복잡한 문제들을 동반한다. 그들을 마주침은 필연적 사건이다. 그러므로 더불어 행복할 수 있는가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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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2-10-09 01: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 님 축하합니다 바닷가 좋을 것 같은데, 이건 바깥으로 밀려난 걸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군요


희선

그레이스 2022-10-09 08:40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

강나루 2022-10-10 07: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레이스님, 이달의 당선작으로 선정된 것 축하새요^^

그레이스 2022-10-10 07:45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

억울한홍합 2022-12-31 05:5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존경스럽습니다

그레이스 2022-12-31 07:29   좋아요 2 | URL
황송합니다.
감사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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