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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편의점 (벚꽃 에디션) ㅣ 불편한 편의점 1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1년 4월
평점 :
골목 입구 비어있던 상가에 편의점이 들어오고 밤길이 환해졌다. 맞은편 약국도 정육점도 일찍 문을 닫아서 딸들 귀가가 늦어지면 어두운 골목어귀가 항상 신경 쓰였었다. 편의점 이용할 일이 없던 나는 24시간 골목 입구가 환해진 것과 택배 서비스 말고는 반가울 일이 없었다. 택배 부치려고 들렀다가, 그냥 나오기 멋쩍어서 2+1 제품을 몇 번 산 후로 가끔 이용한다. 필요한 물건을 집어서 계산대로 가져가고, 할인받고 적립하고 카드로 계산하는 동안, 직원의 몇 마디 말과 바코드 찍는 소리만 울린다. 그것도 요즘은 매장 내 설치된 단말기에서 바코드 찍고 계산까지 혼자 하고 나올 수 있어서, 작업하고 있는 직원을 기다리거나 부르지 않아도 된다. 어느새 나도 이런 시스템이 편하다.
편의점과 관련된 책으로 첫 번째 읽었던 소설은 김애란의 단편 「나는 편의점에 간다」였다. 자본주의 도시에서 독거 여성이 느끼는 편의점에 대한 감상이 인상적이었다. 무엇을 구매함으로 소비도시의 일원이 되었음을 경험하고 존재감을 느낀다. 그런 목적으로는 편의점이 가난한 자취생에게 적합할 것이다. 그곳에서도 타자는 존재하고,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사건들은 일어난다.
“내가 편의점에 갈 때마다 어떤 안심이 드는 건, 편의점에 감으로써 물건이 아니라 일상을 구매하게 된다는 생각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비닐봉지를 흔들며 귀가할 때 나는 궁핍한 자취생도, 적적한 독거녀도 무엇도 아닌 평범한 소비자이자 서울시민이 된다. 그곳에서 나는 깨끗한 나라 화장지를 이오요구르트를, 동대문구청에서 발매한 10리터용 쓰레기봉투를, 좋은 느낌 생리대를, 도브 비누를 산다.
……
한 번도 휴일이 없었던 그곳에서 나는-나의 필요를 아는 척해주는 그곳에서 나는-그러므로 누구도 만나지 않았고, 누구도 껴안지 않았다. 내가 편의점에 갔던 그사이, 나는 이별을 했고, 찾아갔고, 내가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 거대한 관대가 하도 낯설어 나는 어디를 봐야 할지 몰라 서성이고 있다.”
(41p,57p, 「나는 편의점에 간다」 『달려라 아비』 김애란)
또 다른 소설은 『편의점 인간』이다. 2017년 당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이 소설의 작가 무라타 사카야(당시, 38세)는 19년째 일주일에 사흘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글을 썼다고 했다. 주인공 게이코는 정확한 시간과 매뉴얼대로 일할 수 있는 편의점에서 가장 편안함을 느낀다. 사회적 관계에 있어 장애를 갖고 있는 듯한 그녀에게 이 편의점과 같은 곳이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사회에서 그 모호한 경계에 위치하고 자칫 타자로서 내몰리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했던 작품이다.
“지문이 묻어 있지 않도록 깨끗이 닦은 유리창 밖으로 바쁘게 걷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하루의 시작. 세계가 눈을 뜨고 세상의 모든 톱니바퀴가 회전하기 시작하는 시간. 그 톱니바퀴의 하나가 되어 돌고 있는 나. 나는 세계의 부품이 되어 이 ‘아침’이라는 시간 속에서 계속 회전하고 있다.” (9p, 『편의점인간』)
누군가는 편안함을 느끼고, 누군가는 점원과 자신 둘만 있는 공간이 불편하다. 김애란은 ‘거대한 관대’라 했고, 무라타 사카야는 ‘편안함’이라 했던 익명성과 무관심으로 대표되는 편의점을 김호연 작가는 불편한 공간으로 만들고 있다. 『불편한 편의점』은 개인주의를 즐기는 도시의 상징인 편의점과 어울리지 않는 친절, 배려, 관심, 격려, 개입 등에 관한 이야기다.
자신의 지갑을 찾아준 노숙자 독고씨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급기야는 야간직원으로 채용하는, 염 여사는, 아량과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 등, 편의점 사장으로서는 잃어버리기 쉬운, 아니 버려야 할 것들을 갖고 있다. 직원들에 대한 복지도 좋다. 당연히 편의점 경영 상태는 그저 그렇다. 그래도 이 편의점을 운영하는 이유는 직원들의 생계를 위한 일자리를 유지시켜 주기 위해서다. 편의점에 채용된 독고씨는 첫날부터 다른 직원들과 손님들에게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다. 그는 알코올 중독으로 기억을 잃어버렸다. 머리가 텅 비었다고 표현한다. 과거를 잊고 텅비어버린 머리이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거르지 않고 이야기한다. 사회적 지위나 학습된 관념 같은 것이 없어서 오히려 관찰과 조언이 정곡을 찌른다. 매일 들러 술을 마시는 경만에게 옥수수수염차를 권하고, 술을 끊으라고 충고하는 독고씨가 있는 편의점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는 편의점이다. 그의 존재와 조언들, 말없는 친절함에 불편함을 느끼던 사람들은 어느새 그에게서 영향을 받고 삶의 변화를 경험한다. 독고씨가 기억을 찾고 자신이 누구였고 왜 노숙자가 되었으며, 풀어야할 숙제가 있음을 깨닫는 부분은 사실 이 소설의 부록처럼 느껴진다.
현대 사회, 삶의 문제를 편의점이란 공간을 배경으로 풀어가는, 빌런도 없고, 풀 수 없는 갈등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이 소설은 빨려 들 듯 읽힌다. 가독성도 좋다. 신난다. 왜 사람들이 좋아하는지 알 것 같다. 시원하다. 읽고 난 후 감상을 쓰기가 어렵다는 게 이상했다. 너무 가까이 있어서 그럴까? 이런 소설이 많이 팔리고 있다는 것은 사람들의 목마름이 향하고 있는 지점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다. 사실 이 소설에서 보여주는 삶의 문제들은 그렇게 쉽게 풀어질 수 없는 것들이다. 노숙자들의 마음도, 편의점에 들어와서 행패를 부리는 십대들의 마음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편의점 알바생의 고단한 마음도, 매일 무력감을 느끼며 편의점에서 술을 마시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집을 향하는 직장인의 마음도, 골방에 들어앉아 게임만 하고 있는 패배감에 휩싸인 젊은 아들의 마음도…, 알기 힘들고, 쉽게 해결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아니 귀 기울이는 것조차 힘들기 때문이다. 독고씨와 같은 누군가를 기대하는 걸까?
나도 파고들며 꼬치꼬치 캐묻는 사람과의 대화는 피하고 싶다. 아마도 대부분은 그들의 관심이 사랑보다는 호기심과 판단 근거의 필요에 의함이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질문이 없다. 무심한 질문으로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하고, 인지상정으로 알아지는 것들이기도 하고, 나에게 그만큼의 여유가 없어서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렇게 익숙해져 있는 내가 부끄럽기도 하다. 무심함과 무정함을 지나치면 무자비함으로 향할 수밖에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 아닐까? 사람에게 관심을 갖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당신이 만약 편의점에 간다면 주위를 잘 살펴라. 당신 옆의 한 여자가 편의점에서 물을 살 때, 그것은 약을 먹기 위함이며, 당신 뒤의 남자가 편의점에서 면도날을 살 때, 그것은 손을 긋기 위함이며, 당신 앞의 소년이 휴지를 살 때 그것은 병든 노모의 밑을 닦기 위함인지도 모른다는 것을.” (57p,「나는 편의점에 간다」 김애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