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민은 그의 윤리적 어젠다 맨 앞줄을 차지한다.”고 석영중 교수는 말한다. (『매핑도스토예프스키』) 이 책에 수록된 단편들은 연민(compassion)이란 주제로 통합된다. 1846년 벨린스키와 결별 후 페테르부르크의 급진적인 젊은 지식인들의 모임에 참석하고 있던 시기, 1848년에 발표된 작품들이다. 젊은 시절에 쓰여진 이 작품들에서 연민은 노골적이고 불안정한 방식과 흥분된 감정으로 전달되고 있다. 시베리아 유형(流刑) 시절을 지난 후, 그 주제(主題)는 가라앉아서 작품 저변을 묵직하게 흐른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모스크바에서 자라고 청소년기 이후 줄곧 페테르부르크에 살았던 도시의 작가이다. 하지만 그에게서는 투르게네프와 톨스토이, 막심 고리키와 같은 체취를 느낄 수 없다고 E.H.카는 말한다. 그의 ‘공간감(空間感)’은 그들과 다르다.
“「닫혀진 방 안에서는 생각조차 닫혀진 것이 된다」고 그의 작품 속의 한 인물이 말하고 있지만 이 말은 그의 많은 소설의 모토로 쓰여 진다. 톨스토이 소설이 독자에게 주는 지배적인 인상은 공간감(空間感)이라고 최근의 한 비평가는 말한 바 있다.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의 효과는 거의 참을 수 없을 정도의 닫혀진 느낌을 주는 데 있다. 자연의 넓은 시야에 결코 눈을 두지 않는 그의 관찰력은 무한한 인간의 기상에로 더욱 응축되어 간다. 대부분의 위대한 작가에게는 일종의 사색적 거리감이라는 것이 있다. 그러나 생활에서도 작품에서도 대도시의 협소한 구속적인 긴장의 희생자였던 도스토예프스키에게는 이러한 거리감이 전혀 없다.”
(14p, 『도스토예프스키 평전』 E.H.카)
한편, 석영중 교수는 그의 작품에서 보여지는 “흐르지 않는 시간과 막힌 공간은 정체된 인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돈, 죽음 같은 삶에 대한 환유”라고 말한다. 유년기 아버지가 의사로 재직한 모스크바 빈민병원 인근에 거주하며 목격했던 가난한 사람들의 비참한 삶과 17세에 페테르부르크에서 홀로 살게 된 경험들이 미친 영향으로 본다. 그의 작품 『죄와 벌』에서 수없이 배회하는 페테르부르크의 거리가 주는 숨 막히는 폐쇄성을 떠올리게 된다.
「약한 마음」에서 사랑에 빠진 바샤 슘코프와 그의 절친 아르까지 이바노비치, 이 젊은이들의 불안은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지극한 행복감을 느낄수록 극도의 불안감에 시달리는 바샤와 그가 떠난 후 삶의 허무를 느끼는 아르까지가 살고 있는 페테르부르크는 철권 황제 표트르가 조국 러시아를 선진 문명 수준으로 격상시키기 위해 건설한 도시다.
“다른 도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기묘한 매력이과 몽환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대리석과 화강암으로 지어진 거대한 바로크·로코코·신고전주의 양식의 건물들, 유유히 흐르는 운하에 반사되는 다리와 가로들, 거기에 발트해에서 몰려오는 짙은 안개와 눈보라, 여름이면 며칠씩 계속되는 백야까지 더해지면 환상적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53p 『매핑 도스토예프키』 석영중)
그러나 석영중 교수가 말하듯, 환상적이라는 것이 실체가 없다는 것을 의미할 때에는 곧 최대의 약점이 된다.
“강 양쪽 기슭의 모든 지붕들로부터 연기의 기둥이 교차하기도 흩어지기도 하면서, 마치 거인들처럼 차가운 하늘을 따라 위로 올라갔는데, 이 모습은 옛 건물 위로 새로운 건물이 세워지는 것처럼, 허공 위에 새로운 도시가 세워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마침내 강한 자든 약한 자든 그곳에 사는 모든 사람들과 함께, 가난한 사람들의 움막이든 이 세계 강자들의 기쁨인 금으로 장식한 궁전이든 그들의 모든 집들과 함께, 이 황혼녘 이 세계 전체가 환상적인 마법의 세계, 꿈의 세계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환상적인 마법의 세계, 꿈의 세계는 곧 사라지고 연기가 되어 어두운 푸른 하늘로 사라져 버렸다. 이런 기괴한 생각이 가엾은 바샤의 혼자 된 친구에게 찾아 들었다. 그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의 심장은 마치 이 순간 그가 이제껏 알지 못했던 어떤 강력한 느낌으로 인해 갑자기 끓어오른 뜨거운 피로 가득 찬 것 같았다. 그는 이제야 이 모든 불안감을 이해하고, 자신의 행복을 견뎌 내지 못한 가엾은 바샤가 왜 정신이 나갔는지 알 것 같았다.”
(144~145p 「약한 마음」)
오늘날 마천루가 세워지는 거대도시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불안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영혼까지도 끌어들여서’ 부동산 투자를 하고 전전긍긍하는 세태 속에서 이상주의자들은 길을 잃게 마련이다. 결이 다르지만 양쪽 모두 불면의 밤을 지나고 있다.
도스토옙스키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지구상에서 가장 추상적인 도시’에서 젊은 몽상가들은 불안과 분열된 감정을 안고 길을 잃는다. 백야가 찾아오고 사람들이 동시에 여행을 떠난 후, 텅 빈 도시에서 몽상가의 불안은 더욱 극대화된다.
“불안감이 꼬박 사흘 동안 나를 괴롭혔고 나는 그동안 줄곧 그 불안감의 원인을 알아내려고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 보았다. 집밖에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고 (이 사람도 없고, 저 사람도 없고, 또 그 사람은 어디로 가버렸나?) 집 안에서도 도무지 좌불안석이었다. 이틀 밤을 나는 고민했다. 대체 나의 작은 공간에 무엇이 부족하단 말인가? 어째서 이 공간에 남아 있는 것이 이다지도 거북한가?…… 바로 그거다! 사람들이 나를 떠나 별장으로 도망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나를 잊어버린 것 같았다. 그들에게 나는 이방인인 것 같았고 실제로 나는 이방인이었다!”
(228~230p 「백야」)
이런 주인공이 거리에서 나스젠까와 같은 슬픈 여인을 만난다면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낭만주의가 그렇듯, 네 번째 백야의 밤 그의 사랑은 보상받지 못하고 아프게 끝이 난다. “나의 밤들은 끝나고 아침이 되었다”는 주인공의 독백은 환상이 끝나고 차가운 현실 속으로 돌아와 있는 젊은이에 대한 연민을 일으킨다. 그리고 “아, 천만에, 천만에!”로 시작되는 절규는 이상주의자의 운명과 같은 아픔을 전한다. 다른 사람의 품에 안기는 여인의 행복을 빌어야 하는 것은 몽상가가 짊어져야할 불행이다.
“아, 천만에, 천만에! 너의 하늘이 청명하기를, 너의 사랑스러운 미소가 밝고 평화롭기를, 행복과 기쁨의 순간에 축복이 너와 함께 하기를! 너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가득 찬 어느 외로운 가슴에 행복과 기쁨을 주었으니까.
오, 하느님! 한순간 동안이나마 지속되었던 지극한 행복이여! 인간의 일생이 그것이면 족하지 않겠는가……?”
(310p「백야」)
지극히 낭만주의적이지만 이런 마음이 흔하지 않은 요즈음 마음 한편을 흔드는 아픔을 느꼈다.
「꼬마영웅」에서 보여주는 11세 소년의 감수성과 유년시절 사랑의 감정은 도스토예프스키 자신의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의 유년 시대는 막을 내렸다”고 말하는 그 소년의 눈물, 「크리스마스트리와 결혼식」에서 원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을 하는 16세의 신부, 「정직한 도둑」에서 아스따피 이바니치의 품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에멜랴의 이미지에서 우리는 도스토예프스키가 거칠지만 솔직하게 전달하는 ‘연민’을 읽는다.
“연민은 가장 중요한, 어쩌면 유일한 인간 실존의 법칙이다”
“연민 이것이 그리스도교의 전부다”
-도스토예프스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