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 키터리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지음, 권상미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린 누구나 가끔 우울할 때가 있잖아요.” 하는 말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몰이해라는 벽을 칠뿐이다. 타인의 고통을 경청할 때 쉽게 하는 실수다. 고통을 일반화시킴으로 그들을 의지가 약하고, 참을성 없고, 별일 아닌 것에 징징거리는 존재로 만들 수 있다. 일반화의 오류이고 또 다른 가해다.

 

올리브가 아버지에게 보였던 반응은 옳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의 자살로. 그녀는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바닷가에 세워져있는 케빈의 차에 올라타고, 우연히 만난 니나를 무릎에 누이고, 산책길에 쓰러져있는 잭을 발견하고 그들과 대화를 시작한다. 그녀의 이야기는 안부를 묻는 것에서, 눈에 보이는 경치로, 자신의 기억으로 옮겨간다. 그 이야기는 케빈으로 하여금 자신을 탐색하고 들여다보도록 한다. 그녀의 존재가 크게 느껴져서, “잠깐 동안 거대한 코끼리가 곁에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을”(82p) 받았다. “인간 왕국의 일원이 되고 싶은 순진하고 순한 코끼리, 앞다리를 무릎에 포개고 기다란 코를 살며시 움직이는 코끼리”(82p) 케빈의 환각으로만 볼 수 없는 올리브의 위력이다. 무감하고 무정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녀 안의 상처가 같은 상처를 가진 타인에게 긍정적인 힘을 발휘하고 있다. 그녀가 어서 떠나주길 바라던 케빈은 마음속으로 가지마세요, 키터리지 선생님. 가지 마세요.”(83p)하고 말한다. 그의 극단적인 선택 뒤에는 두려움이 있었고, 올리브가 그의 공간 안으로 밀고 들어가 함께 함으로 그것을 막을 수 있었다.

 

해안가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로 이루어진 이 단편들에 올리브 키터리지는 아픔을 찾아내는 탐조등처럼 등장한다. 한마디 지나가는 말로도 자신 가르쳤던 아이들의 삶에도 영향을 준다. 그녀는 자신과 남편을 묶고 인질극을 벌였던 여드름투성이 소년의 얼굴을 떠올리며 소년원에 보낼 작업복을 만든다. 죽음을 떠올린 그들의 얼굴에서 지난날에 놓쳤던 아버지의 얼굴을 보는 것이다.

 

자신의 상처로 다른 사람의 상처를 알아보는 그녀는 가장 가까운 남편과 아들에게는 상처를 남긴다. “그이는 힘든 시간을 겪었어.”(127p) 아들의 결혼식 날 수잔이 한 말을 듣게 된 그녀는 크리스토퍼가 뭐라고 말을 했을까? 크리스토퍼가 무엇을 기억했던 걸까?”라고 생각하며 수치심을 느낀다. 아들 크리스토퍼는 우울증의 원인이 유전이라고 말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엄마로부터 받은 감정적 폭력이 원인이라고 말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돌이켜 기억하면서 언뜻언뜻 기억나는 장면들. 그녀의 마음에 박혀있는 이 장면들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올리브는 뉴욕에 살고 있는 아들을 방문했다가 이 사실을 직접 듣고 다시 확인한다

 

하지만 아들 뒤에 서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면서 올리브는 때로 이 모든 일 속에서도 깊은 외로움을 느끼던 때가 있었던 걸 기억했다. 그리 오래되니 않은 몇 해 전, 충치를 때우면서 치과 의사가 부드러운 손가락으로 턱을 살며시 돌리는데, 외로움이 너무 깊어서인지 그것이 마치 죽도록 깊은 친절인 것처럼 느껴져 올리브는 샘솟는 눈물을 숨죽이며 삼킨 적이 있었다.”(403p)

아들 뒤에 서있는 모습, 치과의사의 손가락 때문에 흘린 눈물에서 외로움의 깊이가 느껴진다.

 

남편 헨리와 올리브는 인질 사건 때 서로에 대한 생각의 밑바닥을 다 내보이고 상처를 받았다. 헨리는 시간이 지나면 아물 것이라 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어떤 생각이나 감정은 내보이면 아물지 않는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만약에 아이들이나 남편이 상처를 이야기 하며 내가 아이들에게 쏟았던 시간들을 부정한다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했다. 오래 전 시간들을 기억하며 문뜩문뜩 가슴에 와 박히고 고개를 젓게 하는 어떤 순간들이 그들에게 상처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절로 생긴다.

 

걸음마를 하던 아이가 창턱의 제라늄을 만지려고 손을 뻗자 올리브는 아이의 손을 탁 때렸다. 하지만 올리브는 아이를 사랑했다! 맹세코 아들을 사랑했다” (262p)

 

산책길에 쓰러져 있던 잭은 몸도 마음도 지치고 약해져 있는 외로운 사람이다. 그는 올리브가 싫어하는 종류의 남자다. 공화당 지지자고, 편견투성이고, 과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딸이 댁을 미워해요?”라고 메일을 먼저 보내는 그녀는 조금 변해있다.

 

후우, 난 무서워요.” 하는 잭에게 , 그만해요. 난 겁먹은 사람은 싫어요.” 이렇게 말했을 그녀였지만 그저 그 옆에 가서 앉을 뿐이다. 그의 가슴에 손을 얹으며 헨리가 죽기 전 몇 년 동안 자신이 이렇게 헨리를 사랑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너무 슬퍼서 눈을 감았다.”

, 젊은 사람들은 정말로 모른다. 그들은 이 커다랗고 늙고 주름진 몸뚱이들이 젊고 탱탱한 그들의 몸만큼이나 사랑을 갈구한다는 것을”(483p) 하고 생각한다.

 

짐 오케이시에게 사랑을 느끼던 때, 헨리가 데니즈에게 사랑을 느꼈던 것을 알면서도 묵인하던 때, 헨리를 보낸 때로부터 지금 잭과 함께 있는 올리브는 변했다. 노년에서야 알게 된 것에 대해 아쉬움은 없다. 그저 헨리를 마음껏 사랑하지 못한 후회가 있을 뿐이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보면 자동적으로 마음이가고 손을 뻗게 되는 그녀이기에 잭의 옆 자리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한다. 그것이 그녀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이기에.

 

20년 전과 현재의 나는 다르다. 지금 돌이켜보면 참 미숙하고 옹졸하고 생각이 거칠었다. 나의 기분에 갇혀서 타인의 말에 상처만 받았고, 다른 사람을 나의 처지에서 판단하고 분류하기 바빴던 생각의 흐름들. 나에게 관대할 수 없어서 가까운 사람들에게 관대할 수 없었던 시간들에 대해 생각한다. 1020년 후의 나는 더 성장해 있기를.


댓글(24) 먼댓글(0) 좋아요(5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막시무스 2021-10-13 00:5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 책 정말 괜찮죠?ㅎ 저에겐 작년 연말에 이 책 읽고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서 던킨도너츠에 맥주 마셨던 아주 좋은 추억이 간직된 책입니다ㅎ 이 리뷰 덕분에 다시 올리브에 도전하고 싶어지네요!ㅎ 굿밤되십시요!ㅎ

그레이스 2021-10-13 00:59   좋아요 4 | URL
던킨도너츠 ^^
예 좋았어요~!
오늘 토론한 동아리분들도 다 좋았다고 하시네요^^
막시무스님도 굿밤요~✨

scott 2021-10-13 01:0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전 [겨울 음악회 ] 단편이 가장 좋았습니다
인간의 감정을 이토록 섬세하게 표현하다니
작가의 작품 중에서 가장 빛나는 작품 ^ㅅ^

그레이스 2021-10-13 01:03   좋아요 4 | URL
아 예 저도 좋았어요
사람들의 스치듯 하는 말에서 온 흔들리는 감정들.
우리의 신뢰는 무엇으로부터 온 것일까 라는 생각!

바람돌이 2021-10-13 01:28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올리버는 진짜 주변에 있을듯한 사람이었어요. 이 책의 단편들은 문득문득 생각나는 그런 글들이랄까? 아마 올리버의 현실감이 그런 느낌을 주는건 아닐까 싶기도 해요.

그레이스 2021-10-13 20:37   좋아요 3 | URL
이 작품 보면서 상처와 아픔이 없는 사람은 없다는 생각, 그 깊이는 함부로 헤아릴수 없다는 생각을 다시 했습니다

새파랑 2021-10-13 08:3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단편집인가 보네요. 전 올리브 시리즈(?)는 안읽어봤는데 ㅎㅎ 타인에게는 관대하면서도 가까운 사람에게는 잘 안된되는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래도 그걸 조금씩 고쳐 나가는게 성장하는 거겠죠? 😅

그레이스 2021-10-13 08:38   좋아요 4 | URL
단편집처럼 구성되어 있구요
올리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끝까지 다 읽어야 해요.

각 장마다 제목이 있고 주인공들이 달라요. 올리브 마을 사람들이예요
장편으로 읽혀져요
어른의 성장소설!

늦었지만 강추예요^^

다락방 2021-10-13 09:0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좋은 글입니다, 그레이스 님. 덕분에 올리브 키터리지를 다시 읽고 싶어졌어요. 올리브 키터리지 역시 제가 여러번 읽은 책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다시 올리브]도 진짜 명작이에요. 제 경우에는 [다시, 올리브]가 더 좋더라고요. 올리브가 더 나이들고 그리고 좀 더 변했거든요. 저 역시 제가 늙어가고 있기 때문인지 몰입해서 읽게 되었어요. 올리브 키터리지는 읽을 때마다 감상이 변하고 또 당연하지만 읽는 사람마다 다른 감상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너무 좋은 책입니다. 여기에서 만나서 반갑고요. 올리브 키터리지, 다시 올리브가 있는 세상은 그 책들이 없는 세상보다 훨씬 나아요!

그레이스 2021-10-13 09:55   좋아요 4 | URL
퓰리쳐 상 너무 미국적이라고 생각했는데...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이 많았어요. <다시, 올리브>도 읽어볼 계획입니다. 감사해요~

레삭매냐 2021-10-13 11: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첫 번째 인스톨은 참 좋아서
두 번인가 읽고, HBO 드라마
인가도 구해서 보고 그랬었
는데...

후속작은 좀 그렇더라구요.
또 세 번째 인스톨도 나온
다고 하네요 -

그레이스 2021-10-13 11:31   좋아요 3 | URL
세번째 나오기전에 두번째 빨리 읽어야겠어요^^

mini74 2021-10-13 16: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진짜 다시 읽고싶어지는 올리브. 올리브는 중년여인들의 빨간머리 앤같은 느낌 ㅎㅎ 좀 무뜩뚝하지만 친구하고 싶은 츤데레에 반듯하고 따뜻한. 그레이스님 글 읽고나니 아! 이런 감정이 담겨있었구나 그래서 내가 감동받았나봐 하며 되돌아보게 됩니다 *^^*

그레이스 2021-10-13 18:50   좋아요 2 | URL
중년 빨간머리앤 ㅎㅎ
미니님은 정말 반짝반짝 하시네요^^

프레이야 2021-10-13 18: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올리브 키터리지를 사랑하지 않기란 어렵지요. 제게도 넘나 소중한 인물이랍니다. 드라마 속 프란시스 맥도맨드는 정말이지 올리브가 살아나온 거 같잖아요. 약국을 시작으로 4화인데 넘 좋았어요. 특히 다른 길, 에서 헨리와 그 병원 장면. 오금이 다 저려요. 누구나 사람의 바닥이 불쌍하구요.

그레이스 2021-10-13 18:56   좋아요 2 | URL
드라마 얘기들 말씀하셔서 왓차에서 챙겨봤어요^^
저는
공항 검색대에서 찢어진 팬티스타킹 때문에 신발 벗는것 거부하던 올리브의 표정이 너무 생생해서 가슴이 저렸어요 ^^
감사합니다 ~

프레이야 2021-10-13 18:59   좋아요 3 | URL
그죠 그 장면에서 넘 애처로워서 안아주고 싶었어요. 눈을 때굴때굴 굴리며.

그레이스 2021-10-13 19:00   좋아요 2 | URL
🫂

서니데이 2021-10-13 21: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좋아하는 분들이 많으신 것 같았어요. 서로 다른 사람들이지만 소설 안에서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많은가봐요.
그레이스님 잘 읽었습니다. 좋은밤되세요.^^

그레이스 2021-10-13 21:14   좋아요 2 | URL
저도 여러분들과 공감해서 좋았습니다.
굿밤 ✨ 🌙 요~♡

붕붕툐툐 2021-10-13 23: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막 그렇게 좋지는 않았는데, 다들 너무 좋다고 하셔서 끝까지 꾸역꾸역 읽은 기분이네요~ 제가 섬세하지 못해서 그런가 싶기도 해요~ 그레이스님 리뷰와 다른분들 댓글을 읽어보니 3년쯤 후에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습니다!😊

그레이스 2021-10-13 23:25   좋아요 2 | URL
^^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
이유도 알 것 같은..!😁

희선 2021-10-14 03: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람이 뭔가를 처음부터 잘 알면 좋을 텐데, 그게 그렇지 않지요 책을 본다 해도 그렇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어떤 건 나중에 봐야 그렇구나 하는 것도 있잖아요 그런 게 있었나 싶기는 하지만... 저는 책을 보다 별로면 다음엔 그 작가 책을 안 보기도 하는군요 다른 건 괜찮을지도 모르는데... 책과 사람 비슷한 면이 있기도 하네요


희선

그레이스 2021-10-14 07:16   좋아요 2 | URL
책은 읽다가 중단해도 되지만, 삶에서 시간은 계속 앞으로만 가니, 모든 것이 처음이고 불완전하지만 성장이라는 희망을 안고 살아가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