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플래너리 오코너]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플래너리 오코너 - 오르는 것은 모두 한데 모인다 외 30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12
플래너리 오코너 지음, 고정아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러니까 그건 아주 어릴때 일이었다. 초등학교 갓 1학년에 입학한 나는 미생물을 볼 수 있는 재주를 타고났고, 육안으로 말이다, 그래서 그 재주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하느라 바빴다. 야, 난 미생물을 볼 수 있어. 뭐라고? 미생물? 그래. 난 눈으로 미생물 볼 수 있다구. 어떻게 보는데? 그건 쉬워. 이리 가까이 와봐, 그리고 저쪽 형광등 쳐다보고는 눈을 찡그려봐 -

 

그리고 그, 혹은 그녀들은 내가 찡그리고 있는 곳으로 다가와서 옆에서 찡그리면서 빛을 보았다. 사람이 어떻게 육안으로 미생물을 보겠는가,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믿음이 부족한 사람들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형광등을 향해서 눈을 찡그려보라. 그러면 분명 무언가가 부유하고 있는 모습이 보일 것이다. 무정형의 생물처럼 보이는 그녀석은 갑자기 공기 중에 톡톡하고 뛰어다니면서 멀리서 허공을 기어다닐 것이다. 굳이 티오마가리타 나미비엔시스가 아니더라도 (이 세균은 1mm크기다. 육안으로 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모든 세균이 다 눈에 안보이는 것은 아닌 것이지) 당신 눈에 무엇인가가 보일 것이다.

 

그런데 사실 아니다. 초등학교때의 나는 거짓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올바른 말을 한 것도 아니었다. 결국 내가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은 미생물이 아닌 그 무엇인가가 보인다, 정도였다. 미생물이라니. 허공에 실제로 그렇게 미생물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쉽게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훗날 알게 된 사실로는 그것은 눈의 부유물이었고 - 눈의 유리체라던가, 동공에 떠다니는 그런 것들 말이다 - 외부의 물질이 아니었다.

 

이는 마치 칸트의 철학과 같아서, 정말 거칠게 거칠게 이야기하면 우리는 일종의 안경을 쓰고 세상을 바라본다, 라고 여겨지게 되는 꼴이다. 내 눈의 부유물이 미생물인줄 알았다니. 그야말로 웃긴일이 아닌가. 하지만 또 그게 그렇게 그럴듯하였다니.

 

플래너리 오코너의 이 단편집도 마찬가지인데, 이 단편집의 소설은 플래너리 오코너가 쓴 안경을 통하여 바라본 세계를 그대로 투영한다. 남부, 루푸스, 가톨릭. 책 날개에 플래너리 오코너에 대하여 설명해놓은 - 난 사실 이 책을 읽기전에는 작가를 전혀 몰랐다 - 부분을 보면 결국 그녀를 규정지었던 것은 위의 세 부분임에 틀림없었으리라. 여성주의적인 부분도 별로 없고, 경제적 계급에 대하여 이야기한 부분도 별로 없다. 그녀의 소설에 나오는 계급은 흑인과 백인, 이라는 인종적 차별에 기반한 것이고, 그 계급을 두고 옳음과 옳지않음조차 없이 뒤섞여 (단편 이발사) 남부 사람들의 편집증적인 흑인에 대한 혐오와 함께 (대부분의 단편) 가톨릭적인 신앙을 변주로 죽음이라는 결과를 맞이한다. (대부분의 단편)

 

남부는 인종에 대한 모티프를 제공하고, 가톨릭은 그대로 쓰인다. 그녀가 가톨릭적인 신앙에 대하여 맹목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는 것이 잘 드러난 단편 중 깊은 오한, 을 읽어보면 주인공은 허위에 가득찬 인물인데 가톨릭 신부를 보고 처음에는 감화받았지만, 나중에 찾아온 가톨릭 신부를 보고는 이 사람은 내가 찾던 사람이 아니야, 라고 부정하게 된다. 결국 주인공은 자신 멋대로 상대를 규정하고 - 플래너리 오코너가 저 세개의 돌로 이뤄진 안경을 썼듯 - 그 또한 자신만의 안경을 낀 셈이다.

 

그렇다면 루푸스는? 죽음의 모티프를 제공한다. 죽음은 모든 것을 마무리 짓는 파괴적인 힘이다. 여기 주인공들은 거의 대부분이 허위에 사로잡힌 사람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허위를 박살내주는 사람들이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러니까 헤겔식의 변증법은 여기에 통용되지 않는다. 이들은 첨예한 대립을 이룰 수 밖에 없고, 결국에는 죽음으로 해결될 수 밖에 없는 문제인 것이다. 예를 들어 글들 중 절름발이가 먼저 올 것이다, 에서의 셰퍼드는  흑인 소년 루퍼스 존슨의 아이큐가 140이라는 점때문에 그를 돌보기로 마음먹는다. 마치 자신이 그를 올바른 길로 이끈다고 생각하면서. 그런데 저 루퍼스가 제대로 된 사람으로 그려지지는 않는다. 마치 Lupus처럼 Lupus는 셰퍼드의 온몸에 퍼지고 결국 그의 아들을 앗아가버린다.

 

대부분의 단편의 끝이 죽음이라는 점은 한편으로는 소설 전반적으로 활력을 앗아가고, 평론가들이 말하는 '남부 고딕' 이라는 그로테스크한 장르로 형성시키는데 일조한다. 하지만 저렇게 포장하는 것은 평론가들이나 하는 일이고 독자들 입장에서는 아, 이 사람 곧 죽겠네, 다치겠네, 와 같이 결말이 뻔히 예측가능해진다는 문제점을 낳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반정도는 흥미롭지만 그 흥미로움이 지속된다면 결국 지루함으로 바뀌게 된다. 이 단편소설집이 단편이었다면 정말 강렬했겠지만, 혹은 하루에 한편씩 읽었다면 정말 당황스러웠겠지만, 하루에 다 읽기에는 좋지 않는듯 하다. 그야말로 기승전죽음, 기승전다침, 이니까.

 

하지만 저런 단조로움이 장점을 지울 수는 없다. 저 세 개의 돌이 섞인 안경만으로도 플래너리 오코너는 모든 세계를 펼쳐내었다. 여기서 다시 칸트 이야기를 적지 않을 수가 없는데, 칸트는 계속 자유의지와  정언명령, 실천 이성 등을 두고 고민했었다. 그런 그가 내린 결론은 결과적으로 또 거칠게 말해서 나한테 적용되는 규칙은 내가 만든다, 였다. 당신이 황금률에 기반한 - 거칠게 말한거다 - 어떤 준칙을 세우고 따른다면 당신은 자유로운거라고 말이다. 더 쉽게 말하자면 내 눈에 안경을 낄 수 밖에 없다면 내 안경은 내가 고른다는 거다. 내가 고른만큼 나는 내 세계를 볼 수 있다.

 

이는 오코너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물론 루푸스도, 남부도, 가톨릭도 - 어쩌면 가족의 영향을 받았으리라 - 사실 그녀 스스로 고를 수 있었던 것은 아니겠지만, 그녀가 그것을 받아들인다면 다시금 그것은 그녀에게 자유를 안겨주게 된다. (아까도 말했지만 내 준칙을 내가 만든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 준칙을 따르는데 부담이 없다.) 아마 이렇게 받아들이는 것이, 그녀가 나름의 규제와 병에 맞서싸우는 하나의 방식이었으리라. 그리고 이 소설집은 그녀의 싸움의 결과물이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선인 2015-02-02 10:24   좋아요 0 | URL
전 그 부유물들을 인어공주의 거품, 공기의 요정이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지금도 하늘을 보며 공기의 요정들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요.

yamoo 2015-02-02 16:01   좋아요 0 | URL
너무 오랜만이십니다~^^

희선 2015-02-03 02:16   좋아요 0 | URL
제 눈에 안경이라는 말이 떠오르는군요 사람은 다 그렇게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다고 거기에만 빠져 잘못하면 안 되겠죠 이렇게 말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럴 때가 없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이런 것과 상관없을지도...

세상에는 밝은 곳도 있지만 어두운 곳도 있죠 어두운 곳은 거의 피하려고 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야기도 어두운 게 있어야겠죠 그런데 그런 것을 잘 안 볼 때가 많군요


희선
 
[지평]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지평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권수연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이가 어느 정도 들어서 - 그렇다고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많지는 않지만 - 지나온 삶을 생각해보면 어딘가 터닝포인트처럼 느껴지는 때가 몇 군데 있다. 예를 들어서 그 어릴 때, 내가 훨씬 당당하게 대처했다면 지금의 나는 아마 전혀 다른 삶으로 방향이 틀어졌을테고, 좀 더 지나서 만난 첫 번째 여자친구와 좀 더 관계가 지속되었다면, 그래서 그녀와 결혼을 할 수 있었다면 - 물론 그녀는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되었다 - 아마도 또 다른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며, 이건 가장 최근의 일인데, 몬티 홀 문제 (다들 알겠지만 이 문제는 이런 것이다 : 무대 앞에 진행자가 서 있고, 당신은 그 진행자를 마주하고 있다. 진행자는 앞에 세 개의 문을 보여주며, 세 개의 문 중 하나는 다이아몬드에게, 다른 문들은 닭이라던가 기타 등등 당신을 허무하게 만들 수 있는 그 어떤 것이라도 좋은 물건들에게 다다르게 해주리라는 것을 알린다. 그러고는 당신에게 선택을 하게 만든다. 당신이 하나를 선택한 순간 그는 남은 두 개의 문 중 하나를 열어 다이아몬드가 그 문에는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진행자는 당신에게 묻는다 : 당신은 이제 남은 두 문 앞에서 당신이 고른 문을 믿을 것인지, 아니면 바꿀 것인지를 선택하라고.) 앞에 마주치게 된 나는 결국 문을 바꾸는 선택을 했고, 논리적으로는 문을 바꾸는게 옳은 선택임에도 불구하고 후회와 상처가 깊이 남아 버렸다.

 

뭐, 여담이지만 저 문제를 마주치게 된 사람은 문을 바꾸는게 맞다. 확률적으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률이라는 것은 참 묘해서 당신이 뒤통수를 잡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당신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버린다. 그녀는 - 그래, 저 문제도 연애때문에 마주친 문제였었다 - 상처를 줄만큼 준 뒤에 나에게 기다리라고 말했고, 나는 그녀가 정말로 내가 싫다면 헤어지자고 이야기하라고 말했다. 도저히 나는 내 입으로는 헤어지자는 말을 할 수가 없었으니까. 그날 저녁의 전화를 기억한다. 몇 번의 한숨, 그리고 몇 분의 침묵. 한숨은 하얗게 방을 물들였고 침묵은 까맣게 내 맘을 물들였다. 무슨 말을 들어도 나는 참으리라. 우리가 정말 여기까지라면 웃으며 안녕, 더이상 그녀에게 매달리지 않으리라. 그리고 그녀는 입을 떼었다.

 

"오빠랑, 헤어진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 없어요."

 

난 순간 울컥했고 - 나만큼이나 그녀도 우리 관계가 헤어지지 않을 그 무엇이라는 것을 인지한다는 점에 너무 행복했었고, 못내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그 무엇인가는 입에서 울음으로 터져나왔다. 울음이 계속되는 순간, 그녀는 바로 말을 이었다. 오빠, 울지말아요. 오빠가 울면 나,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할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나도 오빠를.. 음, 좋아하니까, 오빠가 울면 오빠를 달랠 수 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울음을 멈추고 내 이야기를 들어줘요.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상황이 너무나 안좋아서 그저 나보고 기다려달라고 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정말 오래 기다리게 할 수 밖에 없으니, 그 사이에 내가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되어도 뭐라고 하지는 않을 거라고. 나는 반쯤 우는 얼굴과 반쯤 웃는 얼굴로 그녀에게 다른 사람을 만나는 일은 없을거라고, 너를 기다리겠다고 약속했다.

 

이렇게 약속해놓고 기다리지 않았다면 나는 나쁜 놈이 되었겠지만, 나는 끝끝내 그 기간을 채워서 기다렸고, 근근히 그녀를 다시 볼 수 있을거라는 기대만으로 하루하루를 살았다. 정말 그 소망만이 내 마음을 가득 채웠던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거의 막바지에 이르러서 생겼다. 원래 나는 한달에 한 번씩 기약없는 - 답장도 거의 없는 - 연락을 마치 유리병을 멀리 띄우듯 보냈었는데, 그 유리병이 닿은듯 그녀가 갑자기 나에게 연락을 취해오더니 너무 힘들다고, 자기가 생각했던것 보다 더 일이 안풀린다고 이야기해왔다. 나는 그것을 보고 순간적으로 감정이 너무 격해지고 말았다. 그리고 정신을 차린 순간 나는, 무작정 차를 몰고 그녀가 있는 곳으로 밤길을 뚫고 있었다. 그때서야 그녀는 항상 이렇게 무작정 찾아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는 것을 떠올리고, 이런, 지금 가봤자 그녀가 나를 환대하지도 않을텐데, 그냥 모른척 돌아가는게 좋을까, 생각했었다.

 

바로 이 부분이 터닝 포인트인데, 만약에 이때 내가 돌아갔다면, 나는 어쩌면 결국에는 그녀와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때의 나는 마치 하데스의 영역을 탈출하는 오르페우스같았고, 기어코 그녀를 향해 뒤를 돌아보고야 말았다. 오르페우스이야기에서는 오르페우스의 아내가 명계로 다시 끌려갔으나, 이번에는 내가 깊은 심연으로 굴러 떨어지고야 말았다. 그녀를 만나고, 그녀와 다투고 결국 다시는 만날 일 없을 거라고, 서로 감정이 상한채 끝나고야 말았다. 헤어지게 된 뒤 나는 문을 바꾸기를 잘했노라고, 더 빨리했다면 시간도 날리지 않고 감정도 서로 상하지 않았을텐데, 라고 몇 번이고 입 밖에 내어 혼잣말을 중얼거렸지만 - 그녀는 나를 정말로 싫어하는 것 처럼 흘겨보고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편으로는 차라리 내가 더 져줄걸, 더 기다릴 걸,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녀는 나에게 정말 깊은 상처를 남겼고, 그녀의 말대로 그녀를 기다리는 동안 상처는 전혀 아물지 않고 더 넓어지기만 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녀만이 내 상처를 치료해줄 존재였고, 아직도 상처는 뼈에 붙은 살점처럼 덜렁거리며 핏방울을 주변에 뿌리고 있기에 이렇게 그녀를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말이다, 여기서부터가 재미있는 부분인데, 만약에 백번 양보해서 그녀와 다시 사귀게 되었다고 하자. 그럼 그녀는 과연 내 상처를 치료할 수 있었을까? 아마 이 부분때문에 수많은 커플들이 다시 사귀고 다시 이별하게 되리라. 그래서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 지평, 에서는 끝끝내 주인공이 여주인공에게 회귀하는 부분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기대가 반, 걱정이 반이다.

 

지평, 의 주인공 보스망스는 나중에야 소설가로서 이름을 알리게 되지만, 스무살에는 뭐하나 확실한 것 없는 삶을 사는 사람이었다. 그가 소설가가 될지도 모른다, 라는 그런 맹아는 물론 그의 삶속에 있었지만, 누구나 그렇듯 맹아만 보고는 그 식물이 자라서 무엇이 될지는 모른다. 어쩌면 그도 수많은 갈림길 중에서 한 군데만 길을 다르게 들었다면, 그가 원했던 삶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여주인공인 마르가레트라고 해서 다를 바 없었는데, 그녀는 부아야발, 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를 무작정 피하며 달아나고만 있었고, 결국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흘러흘러 파리로 떠밀려 오게 되었다. 

 

그들이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도시에서 서로에게 갑자기 끌렸다고 해서, 그 만남을 운명이라는 이름을 써서 포장하고 싶지는 않지만 - 누구나 외로울때는 옆에 사람을 찾게 되니까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만남은 마치 도망자처럼 흘러들어온 두 사람에게는 빛과 같았을 것이다. 그들이 서로를 만나지 않았다고 해서 도시에서 버텨서 살지 못했으리라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또다른 인간관계를 찾았을 것이고 - 만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 결국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도시의 이면에 숨어서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만남이 그들에게 가져다 준 것은 지평이다. 삶에 대한 지평. 남자는 여자를 만나서 이 도시의 삶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여자의 두려움을 해소시킨다. 그러니까, 서로의 만남이 그들에게는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하지만 그 만남은 오래 가지 못했다. 나의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이런 지점을 만나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들이 택한 선택은 결국 나와 다를 바 없게 끝났고, 이야기는 원점으로 돌아간다. 마르게르트가 보모로 들어간 집에서 소동이 벌어졌고, 그 소동에 휘말리게 된 두 사람은 결국 헤어지는 편을 선택한다. 여기서 그녀는 마치 보스망스가 자신을 뒤돌아보았던 것 처럼 그의 눈 앞에서 사라지고 만다. 그녀는 다시 심연속으로 사라져버린 것이다.

 

소설가가 된 그는 떠밀려 만나는 게 아닌, 자신의 의지로 그녀를 만나기로 결심한다. 그 옛날 마르가레트를 두고 오르페우스가 된 심정으로 뒤돌아섰던 그는 다시 오르페우스가 되어 마르가레트를 만나러 심연 속으로 뛰어든다. 도시를 깊고 깊은 어둠으로 본다면, 성공한 소설가가 되어 도시에 적응한 보스망스는 그 어둠을 휘감게 된 인물이리라. 그가 심연 속으로 뛰어드는 것은 이제 그에게 자연스럽다. 그래서 이제 내 머릿속의 주인공과 여주인공은 다시 만나서 결혼하게 되고, 남은 인생이나마 둘이서 함께 살아가게 된다. 어쩌면 그랬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오르페우스의 이야기는 이렇게 끝난다. 결국 죽음을 맞이한 오르페우스는 낙원으로 향하게 되는데, 이 낙원에서 자신의 아내인 에우리디케를 다시 만나게 된다. 이때의 일을 오비디우스는 이렇게 적고 있다. 어설프지만 잠깐 번역해보겠다.

 

그들은 낙원에서 함께 걷는다, 이제 에우리디케가 앞서서 걸어가고 그가 따라걷는다. 이번엔 오르페우스가 앞서서 걸어가면서 그녀를 향하여 몇 번이고 뒤돌아본다. 이제는 뒤돌아보더라도 사라지지 않고 그의 곁에 있으니까.

 

Ovid, The metamorphoses XI, The death of Orpheus

 

 

 

 

 


댓글(2)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15-02-02 16:39   좋아요 0 | URL
지평, 을 다시 읽고 싶어지네요, 가연님.
지평 만큼 좋은 리뷰에요. 몰입해서 읽었어요.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려가면서 읽었습니다.

희선 2015-02-03 01:58   좋아요 0 | URL
누군가를 만나는 일은 다른 세계를 만나는 것과 같기도 할 테죠 그건 이성이 아닐지라도 그렇겠죠 헤어졌다 해도 그 만남이 안 좋았던 것은 아닐 거예요 이런 교과서 같은 말을... 자신이 그런 일을 겪는다면 그렇게 생각할 수 없겠지만, 소설을 보고는 그렇게 생각하기도 하죠


희선
 
소설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이번 신간평가단에서는 소설분야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지난번에는 쉬었고.. 사실 이번에도 지원 댓글을 남기기 전까지 계속 이걸 지원해야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했었는데 결국 어찌하다보니 뽑히게 되서 이렇게 추천 페이퍼를 남기게 되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뽑히고 나서도 아, 제대로 활동할 수 있을까, 고민 중이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는 너무 많이 써먹은 것 같지만.. 그럼에도 무언가 집중해서 오랫동안 글을 쓰기에는 시간이 없긴 하다.

 

어찌되었든 신간평가단이니까 책 추천을 해야 되는데.. 음.. 사실 과학, 인문 분야도 잘 모르는 것이 많아서 더듬다시피 추천을 했었지만, 그래, 솔직하게 고백하겠다. 난 소설은 진짜 하나도 모르겠다. 무슨 소설이 좋은 소설이지? 어떤 작가가 핫한 작가인가? 도무지 짐작가는게 하나도 없다. 한숨만 쉬다가 다른 분들의 추천을 살펴보았는데..

 

 

 

 

 

 

 

 

 

 

 

 

 

 

 

 

 

 

 

 

 

 

 

 

 

 

 

 

 

 

 

 

어떤 책을 받아도 객관적인 리뷰를 쓸 수 있을 것 같다.

딱히 무슨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드는 책이 없다.

그럼 여러분, 다음엔 리뷰에서.

 

 

p.s. 댓글을 많이들 남겨주셨고 친구신청도 많이들 해주셨는데, 바로바로 답을 못드리고, 바로 맞친구못하고 있는 점 진심으로 사과드려요ㅠ

 

 

 


댓글(4)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희선 2015-01-06 02:27   좋아요 0 | URL
하기로 하고 되었으니 마음 편하게 하세요 마음 편하게 하는 게 어렵지만... 신간, 그러니까 새로 나온 책이니 다 처음 보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작가는 알고 있었을지 몰라도(예전에 나온 게 다시 나올 때도 있지만)... 그렇다 해도 책을 고르려면 어렵겠습니다 한번 보고 싶은 것을 골라도 괜찮을 것 같네요 이건 아는 거겠군요

벌써 했는데 이런 말을 했네요


희선

아무개 2015-01-06 08:05   좋아요 0 | URL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 합본이네요.
저는 이전에 나왔던 1권만 읽고 포기했어요.
제가 감당하기엔 너무 무서운 소설이였거든요.

좋은 리뷰 기대할께요^^

다락방 2015-01-06 08:33   좋아요 0 | URL
우앙- 기대 만빵입니다, 가연님. 가연님의 소설 리뷰라뇨.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테레사 2015-01-21 15:55   좋아요 0 | URL
저도 기대할게요^^. 전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 잘 읽었습니다. 오래전이었지요....참..희안한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나네요. 뭐랄까...그게 이건진 모르겠지만...원시적인 어떤 생명력 같은 걸 느꼈던 것 같아요.그게 뭔지 모르겠는데...그 책은 그런 느낌을 던져주었어요...그리고....좀 슬펐던 기억도....당시 너무 감당하기 어려운 이야기였는지 모르겠는데...그때 그 세가지 거짓말이 무었인지 이해하지 못했어요...그리고 곰팡이가 슬 때 즈음...새책으로 나왔다는 소식을 듣게 되네요....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을 보면 정말 많은 영감을 받게 된다. 인간의 미래, 인간 집단의 미래를 수학적으로 예측하는 것이 가능할까, 라는 생각에서부터 - 현재 주류를 이루고 있는 신고전주의 경제학에서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선택을 하는 개인을 중심에 둠에 따라 몇 가지 모델들이 만들어지고 있기는 하다 - 그가 말한 이상적인 세계, 갤럭시아가 과연 가능할 것인가, 여기에 더하여 이런 생각으로 마무리 된다 : 우리 인간이 살 수 있는 행성이 우리가 지금 발을 딛고 있는 이 지구, 외에도 또 존재할까? 라는, 인류의 숙원과도 같은 그런 생각말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부터 먼저 가지기에는 우리의 과학 기술 수준이 너무 낮은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인간이 살 수 있는 행성'을 찾기 보다는 '어떤 생물이든 일단 살고 있는 행성' 을 찾는 작업부터 시작하게 된다. 그렇지 않다면 '혹시나 외계에 지성체가 살고 있는가' 라는 질문에서 시작하거나 말이다. 전자는 요즘 많이 뜨고 있는 우주생물학에서 담당하고 있고, 후자는 세티SETI계획을 포함한다. 
 

먼저 전자의 경우를 보자. 사실 우주생물학자들은 직접적으로 우주에 나가서 실험을 하기 어렵기 때문에, 보통 우주와 다름없는 극한 환경에서 조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심해라던가, 혹은 펄펄끓는 용암지대같은 곳 말이다. 그렇게 생물이 어디까지 살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살 수 있는지를 조사하고, 천문학의 영역과 합쳐 이런 환경적 요인을 고려하여 생물이 생존할 수 있는 별들을 조사한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질 수도 있을 것이다. 지구는 이미 '생명이 존재하는 행성이다.' 부연하자면, 현재 지구에서 존재하는 생명체들은 이미 '생명이 존재할 수 있는' 환경을 밟아온 것이다. 그러나 외계의 행성은 다르다. 그 행성들은 '생명이 존재할 수 없는 환경일 가능성이 높'은 곳들이다. 벌써 생명이 존재하고 있는 환경에 적응한 생물체들의 예를 조사한다고 해서 우리가 우주공간에 대하여 무엇을 알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런 회의적인 태도에는 예를 하나 들면 좋을 것이다. 이 지구에는 곰벌레Water bear라는 벌레가 존재하는데, 완보동물문에 속한다. 완보, 그러니까 천천히 걷는 이 동물들은 지구상 어디에나 존재한다고 보아도 무방한데, 과학자들은 그들의 강인한 생명력에 주목한다. 섭씨 -272도에서 생존을 했다던가, 진공상태에서 살아남았다던가. 바퀴벌레는 명함도 못내미는 강력한 생존력이다. 심지어 우주공간에서도 태양광선을 그대로 흡수하여 DNA구조가 파괴되었지만 그걸 수복한 개체도 있다고 하니, 대기의 보호를 받는 이 지구상에도 이런 동물이 있는데 설마 우주공간에 이보다 더한 녀석이 없겠는가, 라고 상상의 날개를 펼쳐봄직하다. 

 

저렇게 버티는 것이 장기인 생물이 있다면, 작은보호탑해파리와 같은 극단적인 생명력을 가진 개체도 있다. 작은보호탑해파리에 대하여 처음 들어보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이 해파리는 소위 '불멸의 생' 을 가진다고 알려져있는데, 다음과 같은 생의 순환을 겪는다. 먹이가 없거나, 수명을 다하게 되면 자신의 몸을 뒤집어 세포 덩어리로 돌아가며, 그렇게 생성된 세포는 폴립을 형성하고 이윽고 어린 개체로 돌아간다. 그러면 그 어린 개체는 다시 자라서 성체가 되고, 이 성체는 다시 어린 개체로 돌아가며, 이런 생을 무한히 반복한다(고 여겨진다). 따라서 영생을 하는 것이다. 분명 후비안(닥터 후, 를 즐겨보는 팬층)들이라면 닥터의 재생성을 떠올릴 것이다. 젠장, 개인적으로는 10대 닥터가 가장 좋았다. 아니,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새었다. 하나만 더, 닥터의 재생성은 닥터 본인이 무슨 상태라도 가능하지만 저 해파리는 외적인 요소에 의한 죽음을 저런 식으로 회피하지는 못한다. 그래도 외부적인 요인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저렇게 계속 살아가리라.

 

저렇게 극단적인 생명력을 가진 생물을 본다면 우주공간에도 어쩌면 살아가는 존재가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적인 느낌이 든다. 칼 세이건은 일찍이 목성에서 살아가는 마치 해파리같은 부유하는 생명체를 상상한 적이 있다. 거기에 대한 내용이 왼쪽의 코스모스에 한 장을 차지하는데, 은근히 그럴듯하다. 물론 목성은 상식적으로 생물체가 살아가기에는 매우 힘든 환경이다. 하지만 상상력은 끝이 없는 법, 칼 세이건은 목성의 폭풍을 헤치고, 마땅히 내려앉을 땅도 없는 그 대기를 타며 포식자와 피식자가 아웅다웅 살아가는 모습을 잘 그려놓았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칼 세이건은 적어도 2005년까지는 거의 관심을 못받았던 엔셀라두스 - 토성의 위성 - 에 관심을 기울였던 사람이기도 하다. 오른쪽의 도서 창백한 푸른 점, 은 그의 역작 중 하나인데, 이 책에서 그는 엔셀라두스에 대하여 '최근의 얼음이 녹은 것에 주목' 하라고 이야기한다. 보통 지구를 제외한 행성이나 위성은 자신을 보호해주는 대기가 약하거나 없어서 크레이터가 많이 생긴다. 하지만 엔셀라두스에서는 그런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얼음이 녹아서 그 흔적을 지운 것이리라. 그런데 얼음이 왜 녹았을까? 안에서 무엇이 분출되어서 얼음을 녹인것은 아닐까? 그리고 2005년 카시니호가 접근하면서 엔셀라두스의 남극에서 수증기가 분출되는 것을 확인하였고 최근 연구로 바다가 존재하리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아무래도 우리 태양계에서 가장 생명이 존재할만한 가능성이 높은 위성은 브라이언 콕스, 에 따르면 목성의 에우로파이다. 그의 2010년 TED강연을 링크하겠다. 자막은 영어밖에 없다..

 

http://youtu.be/HdwOlk6HIVc

 

한국어 자막이 있는 영상이 분명 있으니 찾아서 보아도 좋다. 영어가 되시는 분은 그대로 보시면 된다. 여하튼 브라이언 콕스의 요지는 과학 탐험에 드는 예산을 아끼지 말자,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지만, 중간에 에우로파와 엔셀라두스에 대하여 잠깐 설명을 한다. 엔셀라두스에 대해서는 위 문단에서 잠깐 이야기했고, 에우로파에 대해서 콕스가 하는 말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봐라, 목성의 자기장과 에우로파가 분명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을텐데, 그것을 감안하여 에우로파의 얼음의 움직임을 살펴본다면, 분명 그 얼음은 밑에 유동하는 액체 위에 떠있을 수 밖에 없다, 라는 것이다. 좀 더 직관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에우로파 행성 자체가 물로 이뤄진 행성이라는 말이다. 물, 모든 생명의 근원인 물로 이루어져있다면 당연히 생명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어디까지나 추측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 태양계 밖에는 생명이 없을까. 앞서 전자와 후자를 이야기했었는데 이번엔 후자다. 그러니까 외계에는 지성체가 없을까? 최근 연구결과에 하나의 항성이 물망에 올랐다. 그 항성의 이름은 글리제 581이다. 적색왜성이며 지구로부터 20광년가까이 떨어진 - 광년은 모두가 알다시피 빛이 1년동안 간 거리다 - 이 항성이 도대체 왜 물망에 오른 것일까? 그것은 이 항성의 주위를 공전하는 행성들 중 생물이 있으리라고 여겨지는 영역, 생물권에 속해있는 행성이 있기 때문이다. 천문학에서 생물권, 이라고 하는 용어 생명체 거주가능 영역이며, '지구상의 생명체가 거주 가능한' 곳이다. 아마 천문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골디락스 존, 이라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 골디락스 존이 바로 생물권이다. 이는 골디락스와 세 마리 곰에 관련된 우화에서 가져온 용어인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골디락스라는 소녀가 어느 집에 들어갔는데 의자가 셋 있었다. 첫 번째 의자는 너무 컷고 두 번째 의자는 너무 작았다. 세 번째 의자가 자신의 몸에 꼭 맞아서 앉아서 푹 쉴수 있었다. 그리고 식탁 위에는 죽이 있었는데, 첫 번째 죽은 너무 뜨거웠고 두 번째 죽은 너무 차가웠다. 마지막 죽의 온도가 그나마 적당하였다. 의자에 앉아 쉬고, 죽까지 먹은 골디락스는 졸리기 시작한다. 그래서 방을 돌아봤는데 침대가 셋 있었다. 첫번째 침대는... 두번째는... 그렇다. 똑같이 반복하여 가장 적당한 침대를 찾아 쉬었다. 사실 저 집, 그러니까 소녀가 쉬던 집은 곰 세마리의 집이었다. 너무 큰 의자는 아빠곰, 너무 작은 것은 새끼곰, 중간 정도는 어미곰의 것이었는데, 곰 세마리가 집에 돌아와보니 너무 어이가 없었으리라. 이상한 녀석이 자신들 죽도 다먹고 침대서 자고 있으니. 그래서 아기곰이 깨우니 골디락스는 그야말로 당황하여 후다닥 도망쳐버린다.

 

남의 집에서 민폐를 끼친 소녀의 개념을 탓하기 전에, 우리는 저 '적당' 이라는 말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 지구가 만약에 지금 위치에서 조금만 더 태양과 가까웠다면? 아니면 조금만 더 태양과 멀었다면? 과연 우리가 지금 이렇게 키보드, 혹은 휴대전화기로 이 글을 보고 있을 수 있었을까? 이런 적당한, 부연하자면 지구와 비슷한 환경을 가진 소위 말하는 골디락스 행성계, 를 찾기 위하여 수많은 관측과 계산이 이루어졌고, 그 결실이 바로 위에 말하는 글리제 581이다. 물론 글리제 581 항성계에 속하는 행성만 후보에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살아남은 항성계는 글리제 581이다. 이 항성계에는 e,b,c,g,d,f로 명명된 행성이 있는데, 이중 581d가 우리 지구와 비슷하리라고 여겨지고 있다. 연구결과로는 c까지 포함시키고 있으나, 여기는 너무 온실효과가 강하지 않을까, 추측되고 있다.

 

하지만 말이다. 여기서 다시 골디락스 우화로 돌아가보자. 내가 괜히 저렇게 우화를 길게 이야기한 것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골디락스가 들른 집은 곰의 집이었고, 곰의 집에서 운좋게 후다닥 도망쳐나오기는 했지만, 어쨌든 골디락스가 본인이 살 수가 있던 집은 아니었다. 이게 무엇을 의미하냐고? 최근의 (올해 7월이다) 연구결과를 추가하자면, 골디락스 행성이라고 여겨진 d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행성이라고 한다. d뿐만이 아니다. g도, f도 모두 존재하지 않는 광학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았다. 결국 글리제 항성계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c에 모든 것을 걸 수 밖에 없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골디락스가 자신의 집이 아닌 곰의 집에서 후다닥 도망쳐버린 것 처럼.

 

어찌되었든, c는 가짜 행성이 아니니 다행이다. 그러나 이 행성이 실제로 생명을 품고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저기까지 갈 수가 없다. 도대체 무슨 방법으로 갈 수 있겠는가? 광속으로 여행할 수 있는 우주선이 있다고 하더라도 20년이나 걸릴텐데. 젠장, 20년이라니. 이를 단축시킬 수 있는 방법은 영영 없는 것일까? 특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어떠한 것도 빛보다 빨리 운동할 수 없다고 한다. 물론 냉동인간처럼 생명을 보존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수단을 쓰게 된다면 우리는 지구에 남겨둔 가족과는 단절되고 말리라.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수단을 쓸 수 있을까? 여기서 편법이 있다. 빨리 달리는 것에 한계가 있다면 달리는 거리를 줄여버리면 되지 않겠는가? 아인슈타인의 이론은 정말 훌륭한 이론인데, 특히나 훌륭한 점들 중 하나가 바로 시간과 공간을 하나로 합쳐, 시공간으로 생각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시간이 조건에 안맞아? 공간을 조건에 맞추면 되리라. 이런 생각에서 나온 것이 바로 아인슈타인-로젠 다리, 웜홀이다.

 

웜홀에 대하여 알아보기 전에, 블랙홀에 대하여 몇 마디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 듯 하다. 사실 자세한 설명은 레너드 서스킨드, 가 쓴 블랙홀 전쟁을 읽어보면 나와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기다가 '저 책 읽어봐' 라고만 덩그러니 써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특히 홀로그래피 이론이 나오는 부분부터 점차 머리가 아파올 것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블랙홀의 종류와 구조에 대해서만 간단히 이야기해볼 생각이다. 사실 블랙홀을 생각할때 우리는 시공간의 구멍, 을 주로 이미지한다. 그런데 블랙홀은 이름이 저렇게 붙어있기는 하지만 분명 천체이기는 하다. 극단적인 예로, 저 책에 나오는 일화이기는 하지만, 우리 지구가 갑자기 블랙홀이 되어버린다고 해도, 껍데기만 잘 씌워놓으면, 그러니까 지각만 지금 지구 형태로 잘 보존되어있다면 우리는 살아가는데 큰 지장이 없을 것이다. 응? 블랙홀은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그런 것 아닌가? 분명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 하지만 빨아들이려면 블랙홀의 근처에 있어야 한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다. 만약 블랙홀이 진공청소기같이 빨아들인다면, 우리 지구는 이미 블랙홀에 빨려들어가고 있으리라. 하지만 그렇지는 않다. 블랙홀의 구조는 블랙홀 본체인 특이점, 그리고 특이점 주변의 사건의 지평선, '자전'하는 블랙홀의 힘이 미치는 영역인 작용권, 그리고 특이점에 접해있는 강착원반, 그러니까 빨려들어가는 물질들로 구성된 둥근 소용돌이형태로 구성된다. 다음 영상을 보라.


http://youtu.be/Y6Iv07NZ4QI

 

그렇다, 인터스텔라에서 나오는 블랙홀이다. 고백하자면 이 글의 반은 인터스텔라때문에 쓰여진 글이긴 하다. 그러나 내가 아직 인터스텔라를 안봤다는 사실... 큼큼, 여튼 다시 블랙홀로 돌아가서, 아마 가장 최근 연구결과로 시각화된 모습이니 가장 실제와 비슷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그런데 블랙홀이라고 해서 다 같은 블랙홀은 아니다. 아까 말했던 구조 중 작용권의 경우에는 블랙홀이 회전하고 있는 경우에 생긴다. 회전하는 블랙홀이 있다면 회전하지 않는 블랙홀도 있을 것이다. 이를 구분할때 블랙홀의 무모정리 - 무모, 대머리라는 뜻이다 - 라고 불리는 것을 이용하는데, 저렇게 적어두니까 뭔가 있어보이지만 말 그대로 블랙홀은 다른 블랙홀과 구분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마치 대머리를 다른 대머리로 구분하지 못하는 것 처럼. 단, 몇 가지 조건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그 조건 중 첫 번째는 회전 유무이다. 회전하는 블랙홀도 있을테고, 회전하지 않는 블랙홀도 있을 것이다. 이를 각운동량으로 파악한다. 두 번째 조건은 전하다. 전하를 띄는가? 세 번째 조건은 질량이다. 얼마나 무거운가? 이 세 가지 조건을 제외하면 블랙홀의 무모정리에 의하여 한 블랙홀은 다른 블랙홀과 구분될만한 특징이 없고, 저 조건들은 한 블랙홀에 여러 개가 같이 있어도 괜찮다. 자주 나오는 블랙홀이 커 블랙홀인데, 위의 인터스텔라의 블랙홀도 시각화된 영상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데 커 블랙홀로 판단된다. 커 블랙홀은 질량을 가지고 돌고 있는 블랙홀이다. 이 정도만 이름을 기억해두면 좋을 것 같다.

 

그런데 왜 웜홀에 대하여 이야기하기 전에 블랙홀에 대하여 이야기를 꺼냈을까?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블랙홀을 웜홀의 입구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기 때문이다. 분명 한때는 블랙홀이 웜홀의 입구였었던 때도 있지만, 사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아직까지도 블랙홀과 이에 대비되는 화이트홀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퍼져있는데, 현재 블랙홀의 반대쌍으로서의 화이트홀은 부정된 상태다. 당초에 화이트홀의 존재의의가 블랙홀이 물질을 빨아들였을테니, 이 물질이 어딘가에 분명 나오기는 하여야 하지 않나, 라는 생각에서 생긴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의 스티븐 호킹에 따르면 블랙홀은 물질을 스스로 뱉어낼수가 있다고 한다. 바로 호킹 복사에 의해서 말이다. 그렇다면 블랙홀만 있다면 굳이 화이트홀을 끌고 올 필요가 없게 되리라. 그런데 이게 무슨 말인지 의아할 것이다. 갑자기 왜 뜬금없이 호킹 복사가 나오지? 라고. 호킹 복사는 블랙홀이 증발해가는 과정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죽음을 맞이한다. 블랙홀이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다. 사실 생각같아서는 블랙홀은 안죽을 것 같다. 배고프면 주변 물질을 먹으면 될 것 아닌가? 하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아서, 블랙홀에서도 열역학적 법칙들이 적용되고 (심지어 블랙홀의 엔트로피가 그 자신의 사건의 지평선에 비례한다는 것까지 알려져있다 - 여기에 대해서는 또 긴 이야기가 필요할테니 위의 블랙홀 전쟁, 을 읽어보라고 권하는 게 나을 듯 하다.) 상대성 이론과 양자 역학 이론을 모두 적용시키면 이윽고 증발할 수도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증발하는 메커니즘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진공을 아무것도 없는 무의 세계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진공은 매우 들끓는 에너지를 가진 곳이다. 이 진공 상에서 입자와 그에 반대되는 반입자 쌍이 생긴다. 순간적으로 생긴 반입자는 블랙홀의 강한 중력에 이끌려 블랙홀에 빠지게 되는데, 생각해보라. 블랙홀은 입자로 이루어져있지 않겠는가? 그런 입자와 반입자가 부딪힌다면 당연히 쌍소멸이 일어날 것이고, 입자 하나만큼 블랙홀의 질량은 줄어들 것이다. 이게 바로 호킹 복사다. 이 사건이 운좋게 사건의 지평선 근처에서 생겨났다면 저런 일이 분명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사건의 지평선 너머를 살펴보자.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입자는 빠져나가는 것 처럼 보인다. 따라서 우리가 밖에서 볼때는 입자 하나가 블랙홀의 중력에서 탈출해서 나오는 것 처럼 보일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그렇게 보이겠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과정을 밟았는데도 말이다. 다만 여기서 블랙홀 정보 역설이 생긴다. 블랙홀에게서 나오는 (것 처럼 보이는) 저 입자는 블랙홀에서 실제 나온것이 아니기 때문에 블랙홀 내부에 대하여 아무런 정보를 주지 않는다. 블랙홀안에 빨려들어간 물질의 정보는? 모른다. 그럼 그 정보는 그대로 소실될까? 여기에 대해서 논란이 분분하다. 현재 경향으로는 아마 정보가 그대로 보존되리라고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여하튼 결과적으로 블랙홀의 반대로써의 화이트홀은 존재하지 않으리라고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그런데 블랙홀의 반대가 아니라면 존재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물리학적인 상상력을 발휘한다면 태초의 빅뱅도 화이트홀의 한 형태라고 할 수도 있고, 또 다중우주도 화이트홀과 관계가 있다. 블랙홀 너머는 사실 누구도 모르기 때문에 (사건의 지평선 자체가 이미 '탈출할 수 없는 사상들, 어려운 말로 사상이지만 그냥 사건들이라고 생각해두라, 의 집합으로 정의될 수 있다) 그 너머로는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다. 자, 블랙홀로 당신에 빨려들어갔다. 그런데 왠걸, 이 블랙홀 너머에 새로운 세상이 있는거다. 당신은 당신의 우주, 모우주, 에서 자식우주로 넘어갔으며 자식 우주의 입장에서는 이 블랙홀이 화이트홀로 보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우리가 원하는 목적 - 웜홀을 통한 현재 우주에서의 거리 단축 - 과 거리가 있다.

 

그런데 이런 블랙홀이 실제로 있기는 있는 걸까? 사실 의문을 많이들 가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실제적으로 관측을 통하여 백조자리 X-1이라던가, 은하 내부의 초거대질량블랙홀과 같은 천체를 높은 신뢰도 수준으로 확인하였다. 은하 내부의 별의 움직임은 중심에 이와 같은 천체가 없으면 도저히 설명이 안된다. 물론 끝까지 눈에 보이지 않잖아, 어디있어? 거짓말 하지마, 라고 한다면 뭐라고 할 말이 없기는 없다. 사실 과학에서의 이론, 은 늘 이런 부분이 있을 수 밖에 없으나, 그렇다고 해서 이론이 신뢰성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과학은 우리 인간이 이 자연을 자연에 있는 것들만으로 충분히 설명하고 구성할 수 있다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이를 방법론적 자연주의, 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블랙홀은 충분히 그동안 수많은 검증을 거쳐 탄탄한 기반을 가진 일반상대성이론으로부터 귀결될 수 있는 내용이다. 따라서 있다고 믿어도 좋을 것이다.

 

일반상대성이론은 블랙홀의 존재를 예견한다. 보통 일반상대성이론에서의 가장 중요한 원리는 등가원리이다. 중력의 영향과 가속도의 영향은 구분할 수 없다는 원리인데 (사실 더 기초적인 것은 관성질량과 중력질량은 구분할 수 없다, 라는 명제이지만) 직관적인 예를 들어보자. 우리가 우주선을 타고 날아가고 있다. 창밖에는 길다란 줄이 (그래, 우주공간에 빳빳한 줄이 떠있다) 있다. 그렇다면 날아가는 우주선 안에 탄 우리의 눈에 저 줄은 어떻게 보일까? 우주선은 수직으로 움직이고 줄은 수평이다. 그렇다면 우리 눈에는 줄은 휘어보이지 않을까? 이번에는 정지한 우주선에서 저 줄을 본다고 가정해보자. 그런데 여전히 우리 눈에 줄이 휘어보인다. 응? 하고 아래를 쳐다봤더니 아래에 커다란 행성이 있어 줄을 중력으로 끌어당긴다. (물론 우리가 탄 것은 최첨단이라 중력의 영향을 안받는다) 결과적으로 어느 쪽이든 줄은 우리 눈에 휘어보이고, 이렇게 휘어보인다면 굳이 우주선이 움직이는 것이나, 거대한 질량을 가진 물체의 인력때문에 움직이는 것이나 구분할 필요가 있겠는가? 아니, 구분할 수가 있겠는가?  

 

저 줄을 빛이라고 생각해보자. 빛은 항상 직진, 최단거리로 향한다. 그런데 이 빛이 휘어보인다. 그렇다면 우리는 빛이 다니는 길이 휘었다는 생각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강한 질량을 가진 물체가 주위 시공간을 모두 휘어지게 만들었다. 따라서 빛이 그 휘어진 공간을 따라서 가느라 휘어보인다. 얼마나 깔끔한 이야기인가. 그렇다면 이 생각을 계속 발전시킨다면 이윽고 그 빛조차 빠져나가지 못하는 우그러진 공간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블랙홀이다.

 

블랙홀에 대한 이야기는 이정도로 하고, 다시 웜홀로 돌아가는 이 지점에 킵 손이 나선다. 왼쪽의 블랙홀과 시간 굴절은 그의 책인데 매우 흥미롭다. (아마 많은 사람이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 에서 프라이빗 아이와 펜트하우스를 건 내기를 한 사람으로 기억하리라.) 저 책을 읽은지 3년이 넘은지라 사실 세세한 내용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저 책에는 이런 내용이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킵 손이 연구원일때 원자의 가속에 대하여 연구를 진행하다가 새로운 사실을 발견해내고는 그것을 검증받기 위해서 러시아의 (구 소련) 어느 과학자를 찾아가고, 또 미국의 어느 과학자를 찾아갔는데, 둘 다 한결같이 그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만 답할 뿐이었다. 나중에야 킵 손은 이미 원자폭탄을 개발하는 당시에 그런 연구들이 모두 이루어졌었겠구나, 라고 납득하게 된다. 결국 냉전 시기에 핵물리학의 발전이 상당히 많이 일어난 셈이다. 물론 전쟁은 당연히 좋지 않은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비경쟁만큼이나 과학 기술의 발전을 가져오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은 것이 냉혹한 현실이기도 하다. 어쨌든 이 킵 손은 중력 이론에 대하여 연구를 진행하는데, 결과적으로 그는 음의 질량을 가지는 엑조틱 물질이 존재한다면 블랙홀이 입구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공간과 공간 사이를 연결하는 웜홀을 만들 수 있다는 이론을 제시한다. 그리고 저 책을 쓸 당시까지는 웜홀에 대하여 연구를 계속하고 있었다.

 

그러고보면 현대 중력이론에 영향을 미친 몇 몇 대가들을 비교하면서 이야기한 부분을 빼놓을 수가 없다. 존 휠러와 시아마, 오펜하이머를 비교했는데, 킵 손의 말에 따르면 각각의 스타일이 모두 다르다고 한다. 내 기억으로는 시아마 - 스티븐 호킹의 스승 - 가 상당히 따뜻한 스타일로 가르쳤다고 말했던 것 같은데 자세히 떠오르지는 않는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아마 저 책의 마지막이리라. 마지막에 이런 부분이 나온다. 우리 우주는 웜홀과 같은 것이 생성하도록 쉽게 허용하지 않노라고. 좀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웜홀은 너무 불안정하고, 그 불안정한 와중에도 겨우 웜홀을 생성하는데 성공하더라도 파동의 붕괴가 일어나 과거로든, 미래로든 어느 쪽으로든 물질의 이동을 막는다, 라는 내용이었던 것 같다. 사실 이렇게 웜홀 연구에 커리어를 바쳐온 사람도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 과연 웜홀이라는 것이 실제로 상용화될수는 있을까?

 

어쩌면 입자 하나 정도 만큼 작은 세계에서는 웜홀이 허용될지도 모른다. 왼쪽의 책에 따르면 양자 세계로 들어가게 되면 끊임없이 거품처럼 부글부글 끓는다고 한다. 겉으로는 평평하게 보이는 곳이라도 실제로는 매우 역동적인 모습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괜히 우주적 거품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다. 이 공간에서는 순간적으로 이곳과 저곳을 잇는 다리가 존재할 수 있고, 그 다리는 한 입자와 다른 입자를 이어줄 수 있다. 이를 두고 양자에서의 얽힘, 으로도 해석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라는 이론도 나와있기는 하다. (아마 얽힘에 대해서는 많이들 알려져 있겠지만, 여기서 조금 설명하자면, 두 입자가 얽힘 상태에 놓여있는 경우 이들 입자를 아무리 멀리 떨어뜨려놓아도 마치 정보를 주고 받는 것 처럼 보이는 모습을 나타낼 수 있다. 내가 여기서 관측한 입자가 왼쪽으로 돈다면, 멀리 떨어져 있는 저 입자는 오른쪽으로 돌 것이다, 라는 것을 알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얼핏 들어서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면 명확하게 이 문장을 이해한 것이다. 이렇게 종종 양자 역학은 거시세계와는 다른 모습의 행동양식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주의해야 할 점은 이런 얽힘 상태에 있다고 실제로 정보를 빛보다 빠르게 교환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를 두고 아인슈타인은 그 유명한 EPR논문을 썼고, 이 논쟁을 통하여 양자역학과 국소성, 실재에 관한 이해가 깊어졌다.) 그렇다면 웜홀연구는 국소성과 비국소성 실재론과도 연결되어 있는 셈이 되고, 더 진척되어 가시적인 결과를 낸다면 기존의 양자 역학의 패러다임을 뒤흔들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 된다.

 

사실 이 글은 우리가 사는 이 지구 외에 다른 곳에 생물체가 존재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생물체에 도달할 수 있을까, 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어느 순간 양자역학으로 넘어와버렸다. 뭐, 사실 이게 당연하다면 당연할 수 밖에 없다. 요즘이야 과학이 극도로 전문화되었지만 실제로 현실을 기술하는 과학이라는 것은 이 분야 저 분야가 모두 연결되어있어야만 한다고 나는 믿는다. 그렇기에 학제적 교류가 많이 일어나야만 하리라. 당장 이 부끄러운 글만 하더라도 생물학, 천문학, 물리학으로 연결되지 않는가. 그래서 이왕 여기 저기서 잡다한 지식을 끌어왔으니 이 글의 마무리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생물학으로 끝내보도록 하겠다. (사실 내 전공이 생물과 관련있기도 하다.)

 

루돌프 쇤하이머, 라는 학자가 있다. 아마 생물과 무생물 사이, 라는 왼쪽의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이름을 들어봤을텐데, 이 학자는 생물에 대하여 새로운 시각을 만드는데 일조했고, 저 책을 쓴 후쿠오카 신이치는 그 시각을 통하여 동적 평형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동적 평형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후쿠오카 신이치는 하나의 이미지를 제시한다. 모래사장에 모래들을 떠올려보라. 파도에 의하여 수많은 모래들이 씻겨가지만 동시에 쌓이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모래사장은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유지가 된다. 인간의 몸도 마찬가지라서, 쇤하이머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가 먹은 음식은 모조리 분해되서 우리 몸 모든 곳에 머물렀다가 빠져나간다. 그 빠져나가는 것과 우리 몸을 이루는 것 사이의 균형을 동적 평형이라고 부른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저렇게 빠져나가버리면 우리 몸이 금방이라도 무너지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그게 그렇지가 않다. 여기서 직소 퍼즐 이야기를 하는데, 직소 퍼즐은 한 조각을 잃어버려도 주변만 유지되면 다시 복구할 수 있다. 생명도 마찬가지이다. 교환이 일어나는 순간 그 주변은 보존되며, 그런 일들이 순차적으로 일어나 생명은 그 모습을 유지한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생명의 특이한 점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실제로 연구를 하다보면 생명이라는 것은 정말 특이한 경우가 많다. 분명 이론적으로는 그럴듯한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런데 말이다. 이런 복잡성이야말로 생명의 강점이다. 만약에 우리 생물이 단순하게 무언가를 넣으면 똑같은 결과가 나오는 그런 패턴이라면 진즉에 멸망했었을런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는 우주공간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리라. 나는 여기서 더 나아가서, 우주에 있는 다른 생명체들이 있다면 그들도 분명 이런 평형을 따르리라고 본다. 아니, 이런 평형이 있어야만 그 거친 우주공간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분명 그들도 나름의 진화를 거쳐 자신들만의 생체 복잡성을 형성하고, 그렇게 삶을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때때로 의식이 있는 생명체는 밤하늘을 쳐다보면서 이런 말도 하리라.

 

"우리 말고 다른 생명체들이 있다면, 그들은 모두 어디 있지?"

 

엔리코 페르미

 

 

 

 

 

 

 

 

 

 

 

 

 

 

p.s. 과학 독서 모임을 만들겠다고 해놓고 과학에 대한 포스팅이 별로 없기에..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른 2014-11-27 21:26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인터스텔라 보고 무슨 책을 읽을까 골라보던 중이었어요~
근데 갑자기 제가 과학모임에 나가면 민폐만 끼칠 것 같단 두려움이 엄습!흑

가연 2014-12-01 22:17   좋아요 0 | URL
에이, 아녜요ㅠ 저얼대 아닙니다ㅠㅠ 저도 보러가야되는데ㅠㅠㅠ 영화관에 갈 시간도 같이 갈 사람도 없...

드림모노로그 2014-11-27 21:46   좋아요 0 | URL
역쉬 울 가연님의 리뷰는 끝내주네요 ~~^^
북플 덕분에 초고속으로 읽었어요.
파운데이션이 미래의 영감을 촉발시키는 소설이군요~~과학분야는 잘 몰라서 패스했던 책인데 말입니다. 급호감 상승합니당 ~~몇 문단은 내일 읽고 다시 댓글 달게요~~^^

가연 2014-12-01 22:16   좋아요 0 | URL
ㅋㅋㅋ 파운데이션 재밌어요. 드림님께서 정말 좋아하실거같은데!

cyrus 2014-11-27 23:54   좋아요 0 | URL
과학 독서 모임이라니! 정말 의미 있는 시도인 것 같습니다. 제가 서울이 아닌 지방에 살고 있어서 이런 유익한 모임에 동조하지 못한 것이 아쉬워요. 인터스텔라 영화를 보기 전에 킵 손의 책을 먼저 읽어보려고 생각했는데 망설이다가 시작도 하지 못했어요. 사실 킵 손의 책이 처음 나왔을 때 제가 고등학생이었는데 겁 없이 도전했다가 도서관 반납일 연체 횟수만 얻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런데 킵 손의 책이 품절이라니... ㅠㅠ

가연 2014-12-01 22:15   좋아요 0 | URL
킵 손의 책이 품절인것은 둘째치고서라도!! 킵 손의 책이 중고상품으로 9만원대라니...!!! 예전에 비트겐슈타인 평전이 8만원대를 찍은 것을 봤는데, 왠지 좀 슬프달까ㅠㅠㅠ

희선 2014-11-29 02:11   좋아요 0 | URL
이 글을 보니 공부하는 책읽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늘 책읽기는 공부야, 하지만... 다른 것보다 다른 사람 삶을 보고 거기에서 배우려고 했네요 배우기는 하는데 실천하는 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그렇게 책을 읽어서 되겠나 싶기도 하네요 제가 생각하는 건 큰 잘못 저지르지 않고 살기뿐입니다

블랙홀, 웜홀 하니까 <시간의 퍼즐 조각>이라는 책이 생각납니다 비슷한 말은 하나도 안 나오는데 책 앞면에 뱅글뱅글 돌아가는 그림(소용돌이무늬)이 나와서... 이것은 시간을 되돌리는 기계가 나오는 이야기예요 시간을 되돌리지만 큰 일은 다시 일어나고 조금 빗나가기만 합니다 그런 기계를 만든 건...

다음해(이달 가면 올해도 한달 남는군요)에는 공부하는 책읽기를 하고 싶네요 지금만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될 텐데...

생각한 것보다 한두 사람 적더라도 과학책 읽기 모임 시작하면 좋겠군요 어떻게 하고 있는지도 알려주면 좋겠습니다 이건 좀 어려울까요 어떤 책을 읽는지 알려주는 건 어렵지 않겠죠


희선

가연 2014-12-01 22:14   좋아요 0 | URL
ㅎㅎ 에이, 예전에 희선님 글 중에 문학을 거꾸로 하면 학문이 된다, 는 말이 있었던 것 같은데. 책읽기라면 무엇이든 학문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벌써.. 12월이고.. 이번 해는 다갔어요ㅠㅠ 우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