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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과학의 철학.

11월에 출간된 책 중에서 단연코 눈에 띄는 책은 바로 이 책이다.  

 

 

 

 

 

 

 

 

 

 

 

 

 

 

 

과학의 새로운..

 

 

 

 

 

 

 

 

 

 

 

 

 

 

지구의 정복자.

 

 

 

 

 

 

 

 

 

 

 

 

 

 

 

인문학 지도.

 

 

 

 

 

 

 

 

 

 

 

 

 

 

 

 

강신주의 감정수업.

시몬 베유의 책과 이 책 사이에서 좀 고민을 했는데, 에티카가 있는 김에 한 번 같이 읽어볼까, 해서 이 목록에 넣어둔다..

 

 

 

 

 

 

 

 

 

 

 

 

 

 

 

 

추천하지는 않았지만 눈에 띄는.. 아쉬운 책들을 조금 언급하자면, 서울대철학사상연구소에서 마음과 철학 시리즈... 는 추천할만하고, 시몬 베유의 뿌리내림, 도 눈여겨볼만한 책이다. 

어헝헝.. 죄송합니다. 요즘은 다른 것에 신경쓰고 있는 중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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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12-04 14:14   좋아요 0 | URL
다른 거 뭐에 신경쓰고 있는데요?

가연 2013-12-04 23:44   좋아요 0 | URL
ㅎㅎㅎ... 일단 확실해지면...

맥거핀 2013-12-05 00:25   좋아요 0 | URL
저도 <신경 과학의 철학>에 한 표 보탰습니다. 근데 추천해놓고 보니 살짝 겁이 나기는 하네요. 쪽수를 지금 봤어요. 944페이지..

가연 2013-12-05 08:34   좋아요 0 | URL
ㅎㅎㅎ 되면 좋겠는데.. 왠지 느낌상 이번에도 과학분야는 우수수 썰려나갈 것 같은 기분이...

희선 2013-12-05 00:26   좋아요 0 | URL
지구의 정복자 -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사람이 지구를 정복했다는 걸까요 아주 틀린 말은 아니군요 우리 사람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겠군요 이 책 제목 본 적 있군요 얼마전에 보고 저런 제목이라니 했던 듯... 가연 님 눈에 띈 책은 <신경과학의 철학>이라니, 이것이 되기를...^^ 제가 바란다고 될지 모르겠지만요

십이월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어느새 5일입니다 그냥 그렇다구요
어떤 책을 보면 좋을까 생각하고 보고 싶기도 한데 그게 쉽지 않군요

저한테도 가르쳐주세요^^


희선

가연 2013-12-05 08:38   좋아요 0 | URL
ㅎㅎ 에드워드 윌슨의 책이니 아마 통섭관련이야기가 아닐까.. 책을 읽어보아야 확실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이제 확실히 통섭의 방향을 잡아가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아이디어도 너무 좋고...

신경과학의 철학은 계속 눈여겨보고 있고.. 아는 게 별로 없어서 좀... 익혀나갈까 생각중이에요, 허허허...

벌써ㅠㅠㅠ 정말 빠른 것 같아서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아

2013-12-05 0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2-05 08: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3-12-05 13:13   좋아요 0 | URL
문과 이과의 경계를 넘나드는 독서취향! 멋집니다. 혹시 자연 과학자들의 전기에도 관심이 있나요?

가연 2013-12-05 18:33   좋아요 0 | URL
당연히 관심이 많지요.. ㅎㅎ 파인만을 다룬 퀀텀맨 정도가 최근에 들여다본 전기 같은데...

아하하.. 멋지게 봐주시면 저야 감사합니다만... 한편으로는 난잡스러운(?) 독서취향이 아닐까 스스로 걱정됩니다.

yamoo 2013-12-09 21:34   좋아요 0 | URL
저도..궁금...다른 뭐에 신경쓰고 있으신지...ㅎㅎ^^

가연 2014-01-03 22:24   좋아요 0 | URL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이제 신경이 덜쓰이네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

2013-12-12 0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1-03 2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알라딘을 평정한 뒤 이를 쑤시고 있던 마태우스 씨는

빨려들어갈 만한 글을 하루에 몇편씩 쓰던 한 알라디너를 넋을 놓고 바라본다.

그러면서 마태우스는 지도학생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중얼거린다.

"앞으로는 저 친구가 알라딘을 평정할 거야."

알라딘이 뭔지도 몰랐던 지도학생들은 뭔 소리냐고 두런거렸지만,

그의 말은 맞았다.

 

마태우스님이 알라딘의 헤게모니를 틀어쥐고 이를 쑤시고 있을 때 음지에서 은밀히 활동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알라딘에 둥지를 틀게 된 '가연'. 

 

인터넷상의 별별 커뮤니티에서 눈팅족으로 살면서 정말 가끔가다가 뻘글을 올리며 지내던 가연은 어느 날, 알라딘이라는 곳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마치 집어삼킬 외계를 발견한 갤럭투스 - 마블 코믹스의 - 를 닮았다고 주장하고 있는 가연(이때는 가연이라는 이름이 아니라 다른 이름이었겠지만)은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제 여기를 집어삼키는거야'

 

목표를 세운 이 존재는 닉을 지금의 가연, 이라는 들어도 위화감없고 '해치지 않아요, 아하하' 같은 느낌을 주는 선량해보이는 닉으로 세탁하고 알라딘에 숨어들어왔다. 하지만 알라딘은 앞서 본대로 마태우스, 라는 사람이 헤게모니를 쥐고 있었고, 그 세력에 눌려 도저히 기를 펼 수 없었다. 별 수 없이 가연은 방법을 달리 할 수 밖에 없었다.

 

'쳇, 신간평가단을 하는 척하면서 어둠의 다크한 그림자를 뻗어야겠어.'   

 

하지만 신간평가단 활동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알라딘을 정복하려면 페이지뷰라던가, 이웃수라던가, 서재지수를 갱신하여야하는데, 굳건한 마태우스님의 헤게모니는 무너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마태우스님 뿐만 아니라 다른 수많은 사람들이 맹렬한 기세로 글을 올리고 있는게 아닌가! 기껏해야 두세번 글을 올리는 정도로는 그 사람들을 물리칠 수 없었고, 역시 알라딘을 정복하려면 이런 낡은 수법으로는 안되는 것인가, 절망하던 가연은 마지막으로 한번 더 방법을 바꿔보기로 결심한다. 그래, 헤게모니를 뺏어올 수 없다면, 헤게모니를 쥔 사람들과 연합을 하는거야!

 

기회는 정말 어렵게 찾아왔다. 저 마태우스님이 주목한 다락방, 통칭 다락님이라는 알라디너가 내 신간평가단 추천글에 댓글을 달아온 것이다. 그것도 '와, 정말 멋진 글이에요.' 라는 말까지 적으면서 말이다. 가연은 그 댓글을 보고 음흉한 미소를 모니터 너머로 띄웠다. 역시, 내 계획은 완벽해, 라고 중얼거리면서.

 

하지만 왠걸, 그 뒤에 더이상 다락방님은 댓글을 달지 않는게 아닌가! 이대로는 내 계획에 무리가 생긴다. 거대 세력과의 연합은 내 계획에서 천하삼분지계에 맞먹는 계책이거늘!! 조급해진 가연은 다른 서재에 거의 댓글을 남기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깨고 다락방님의 서재를 찾아가서 댓글을 남겼다. 아마 바이런에 관련된 글로 기억한다. 기회다, 가연은 그가 아는 바이런에 관한 토막 상식을 끄적거렸고, 자신의 지식에 다락방님이 감동받아 서재로 다시 찾아주기를 바랬다.

 

그, 바이런은 정말 유명한 일화가 있습죠, 무슨 시험때 바이런이 포도주에 관한 시를 쓸때 말입죠, 그 주인을 만나니 얼굴이 붉어져버렸다네 하고 한 게 아닙죠, 아하하하핳하하핳핳

 

하지만 그 글에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댓글을 달았고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며칠이 지나도 가연의 댓글에는 답글이 달리지 않았다. 가연은 그 사실에 슬슬 절망하고, 이 계획도 포기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던 그때!

 

다락방님이 다시 댓글을 달아온 것이 아닌가! 후후후훟훗 그래, 이대로 직행하면 내 이름도 겸사겸사 알릴겸 알라딘을 집어삼킬수 있겠어, 음흉하게 웃으며 착한 척 가연은 답글을 달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떤 계획을 실행하고자 하는 사람은 너무 그 계획을 오래 끌어서는 안된다. 너무 오랫동안 알라딘 서재 정복 계획을 끌어온 탓일까, 이렇게 친분을 만드는 것은 성공했는데, 이 다음 단계를 어떻게 해나가야 할 것인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게다가 스스로의 독기도 점차 빠져나가는 것이 아닌가. 그것도 다락방님의 글들을 읽어나가면서 말이다. 권력을 쟁취하는게 목표였었던 가연은 이런 감성도 있는 것인가! 절규하면서 글들을 읽어났다. 그에게는 사실 신세계나 다름없었다. 그가 거쳐온 것은 상상도 못할 말들이 난무하는 수많은 수라장. 친해도 비난하고 친하지 않아도 비난하는 그런 곳들을 뚫고 진성 악플러로서의 자신을 갈고 닦아왔던, 그러다보니 주기적으로 과거를 지우려 닉세탁마저 했어야만 했던, 가연은 점차 스스로가 착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자 당황하기 시작했다. 아니, 난 사실 음흉하고 캡쳐질 열심히 하는 사람인데? 머리를 흔들며 착해져가는 스스로를 바로잡고는 다시 알라딘 정복 계획을 시행하려고 했지만, 시간은 흐르고, 때를 놓치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에 이르러서는 알라딘 정복은 물거품이 되고, 듣보잡 서재로 전락하고 말았지만

 

하지만 뭐, 그래도 나쁘지 않다, 고 여겼다.

 

 

 

 

 

 

 

 

 

 

 

 

 

 

 

 

 

 

그리고 시간이 오래 지난 지금, 한 악플러를 갱생시킨 그 다락방님이 책을 출간했다. 모두가 하는 말들, 다락방님의 글솜씨를 생각하면 너무 늦게 나왔다 등등, 은 모두 빼겠다. 아직 나는 저 책을 읽지 못했다. 오늘 주문했는데 내일 올 것이다. 그리고 리뷰도 아마 쓸 것이다. 나는 이 서재를 운영하면서 내가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는 쓰지 않기로 마음먹었었다. 그리고 이 서재에 올려져 있는 책들은 거의 대개 내가 읽은 책들이다. 물론 내가 읽지 않은 책들도 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여간하면 읽고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고 그렇게 노력하고 있다. 서재에 올려놓고는 읽지 않은 책이라면 어떻게든 그 이후에 구해서 읽는다.

 

그래서 말인데, 이 책도 아직 읽지 않았지만 내일이면 읽을 것이다. 그러면 내일 글을 쓰면 되잖아, 싶겠지만 나는 사실 다른 말이 하고 싶다. 옛날에 다락방님이 책을 한 번 나눈 적 있었다. 그때 내가 받은 책은 가스라기였다. 그날 밤 나는 책을 받자마자, 술약속 시간이 되기전까지 거침없이 읽어나갔다. 빠른 속도로 1권을 읽어내려가고, 다음 권 말미에 이르던 내 눈동자는 책의 어느 여백 한 가운데 멈췄다. 그 여백에는 다락방님이 볼펜으로 휘갈겨 써놓은 짧은 문장이 있었고, 나는 그 문장을 보고 뭐라고 형언할 수 없는 이상한 감정을 느꼈다. 답답하다, 대략 그런 내용의 문장이었다. 그 문장을 보는 나도 이유는 모르지만 답답했다. 무슨 말을 해야할까, 흰 건 종이이고 검은 건 글자인데, 그 글자 너머로 떠오르는 이 둥근 액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밤은 어둡고, 거리의 전봇대는 깜빡거리고, 차소리마저 안들리는 정적사이로 나는 순간 울것만 같았다. 나는 그때 헤어지던 날 밤을 무심코 떠올렸다. 문을 등지고 돌아서던 그 순간, 그녀가 보는 내 마지막 얼굴이 웃는 얼굴이었으면, 내가 보는 그녀의 얼굴이 웃는 얼굴이었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며 괜찮다고 중얼거리며 돌아서던 그 순간, 그리고 문 너머로 느껴지던 그녀가 무너지던 기척까지도. 울면서 집으로 돌아오던 그 때를. 그 다음부터는 겨우겨우 가스라기를 다 읽었지만, 가스라기보다도 내가 가장 마음이 아팠던 것은 그 문장이었다. 그래서 몇 번이고 이 책을, 마음을 후벼파는 이 문장을 포함해서 돌려줘야겠다, 고 마음먹었지만 결국에는 내가 여전히 가지고 있게 되었다. 

 

책을 출간했다는 말을 소식을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바로 저런 이야기이다. 그녀의 서재의 글들은 저렇게 때로는 볼펜으로 여백에, 때로는 포스트잇에 끄적거리던 그런 그녀의 감성이 정리되어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답답하다, 라는 말 한마디로 사람을 울릴 수 있을 정도라면, 그런 감성이 책으로 정제된다면 얼마나 웃고 울리게 만들까? 그런 생각에 나는 저 책을 내일 배송받기가 두렵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궁금하다.

 

물론 지금은 저렇게 간단히 울지는 않을 것이다. 감정도 많이 무뎌졌으니 말이다. 하지만 고전이 왜 고전인가? 시대를 지나도 여전히 보편적으로 통하는 감성을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고전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닌가? 주요한 것은 보편적으로 통한다는 말이다. 다락방님의 글들에게는 그런 것이 있고, 그 감성은 싸운 커플을 화해시키기도 하며 - 다락방님의 어느 글에 달린 비로그인 댓글로 미루어 짐작해볼때 - 직장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보듬어주기도 한다. 혹은 어떤 글은 - 최근에 읽은 모던 하트에 관한 포스팅은 - 이렇게 무뎌진 나의 감정을 다시금 움직이기조차 한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감성을 전달하면서도 전혀 젠체하지 않고 변함없이 활동을 하고 있는 다락방님의 글들이 묶인 위 책이 부디.. 고전처럼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웃음과 울음의 전달자가 되어주기를 바란다.  

 

 

 

 

 

 

 

추신 : 사실 전혀 친분이 없는 마태우스님...을 함부로 글에 등장시켜서 죄송합니다만.. 용서해주세요ㅠㅠㅠ 혹시나 불쾌하셨다면 말씀해주세요. 마태우스님의 추천사를 보자마자 이렇게 한 번 써봐야겠다, 라는 생각이 바로 들어서 그만...

 

추추신신 : 이 글은 사실에 아주 약간 기반한 꽁트입니... 저 저렇게 나쁜 사람 아니에요, 닉세탁은 했지만요, 아흐한함느히ㅏㅁ흐ㅏ흐........

 

추추추신신신 : 아 손발이 오그라드네요, 하하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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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13-11-25 21:01   좋아요 0 | URL
이 시점에서 '마지막'을 눌러 가연님의 첫글을 보러가고 싶어진 호기심 천국 웬디씨...하지만 결과는....

신간평가단 이전의 과거도 깨끗히 세탁하셨네요 ㅠ_ㅠ

저도 한때 알라딘 서재에서 껌좀 씹었는데... ㅠㅠ
이제 미존웬디양... (미미한 존재감 ㅠㅠㅠ)

가연 2013-11-25 23:26   좋아요 0 | URL
훗, 이전글 세탁하는 것은 기본중의 기본이지요. 당연한 것 아닌가요? 랄까, 애초에 이 서재는 신간평가단때문에 시작한거라..ㅎㅎ 신간평가단 추천글이 첫글입니다. 본문은 그냥 재미로 끄적거린거구.. 저도 다 잊어버렸으니깐요ㅋㅋㅋㅋㅋㅋ 과거는 물흐르듯 흘려보내고.. ㅋㅋㅋㅋㅋㅋㅋ

지금은 어쨌든 알라딘의 가연입니당, 풋.

마태우스 2013-11-25 22:13   좋아요 0 | URL
호호 재밌으면서도 마지막엔 심금을 울리는 멋진 글이네요. 친분이 전혀없진 않은 거 아닌가요...가연님 존함을 제가 알고 있는 거 같은데.... 암튼 마지막이 아주 멋졌어요. 책의 메모를 바탕으로 책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키셨네요. 지금 전 원고마감을 5시간 가량 지나친 상태라 매우 초조한데요, 일하기 싫어 죽겠답니다. 이를 어째야 할까... 괜히 청탁을 수락했다는 후회는 너무 늦겠지요 ㅠㅠ 암튼 잘 읽었어요.

가연 2013-11-25 23:34   좋아요 0 | URL
뭐랄까, 댓글 딱 한번 주고받은것으로, 게다가 저도 물론 마태우스의 존함과 심지어 실명까지도 알고 있지만 그걸로 친분이 있다고는...ㅋㅋㅋ 부끄러워서 차마 적을 수가 없더군요, 하하하.

감사합니다. 무사히 멋진 원고를 작성하시길ㅎㅎ 저도 할 일이 있는데 이렇게 빈둥거리며...ㅠㅠㅠ

감은빛 2013-11-26 14:05   좋아요 0 | URL
와! 기발한데요!
마태우스님의 글을 보고 이런 재밌는 글을 떠올리시다니!

때를 놓쳐 알라딘 정복을 이루지 못한 가연님,
지금이라도 마태우스님과 손 잡으심이?
혹은 떠오르는 신진세력 감은빛은 어떤가요? ^^
(죄송합니다! 감히 마태우스님과 다락방님에 견줘 신진세력 운운하다니!)

가연 2013-11-27 12:40   좋아요 0 | URL
ㅎㅎ 생각해보면 마태우스님의 글이 올라오자마자 바로 끄적거렸으면 훨씬 재미있었을 것 같은데.. 주말에 멀리 갔다오니깐 시간이 없더군요. 타이밍이 생명일텐데. 지금이라도 손을 내밀어볼까 생각해봤지만.. 이렇게 듣보잡 서재로 전락한터라 제가 감히 손을 뻗기조차 두렵습니다, 풋.

오.. 신진세력(?) 감은빛님, 연합할 마음은 있으나 제가 누를 끼치는 것은 아닐지 걱정되는데요, 하하하. 그러고보니 이 서재에서는 처음 뵙는 것 같은데, 안녕하세요ㅎㅎㅎ

yamoo 2013-11-26 17:58   좋아요 0 | URL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와~ 가연님도 책 한 권 쓰셔야 겠는걸요!
마태우스 님의 글도 재밌었지만 가연님의 글도 정말 재밌습니다.

알라딘 정복은 제가 보기에...글빨이 좌우합니다. 많이 않써도 이런 정도의 글을 꾸준히 올리신다면 알라딘 서재 정보는 그리 어렵지 않을 수도...뭐, 마태우스님과 다락방님의 친분을 활용한다면 훨씬더 빠르게 이루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ㅎ


가연 2013-11-27 12:47   좋아요 0 | URL
ㅋㅋㅋ 책이라뇨, 이렇게 서재에 끄적거리는 정도의 부끄러운 글들로는 책을 내면 안될 것 같아요, 풋.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미 알라딘 정복의 마음은 버렸...ㅠㅠㅠ 글빨만큼이나 중요한게 꾸준히 쓰는 것인것 같아요, 풋. 누구더라, 거대 블로그 운영하시던 분이 있는데, 그 분이 파워 블로거에 대한 이야기를 할때, 아무리 시간이 없어도 반드시 글을 쓴다, 는 이야기를 하던데.. 저는 도저히 꾸준하게는 못쓰겠더군요. 이 알라딘만 해도 정말 좋은 리뷰같아서 닉네임을 클릭해서 서재에 들어가보면 2009년이 마지막으로 글 올린 때..라던가 하는 경우가 있더라구요, 에휴.

드림모노로그 2013-11-27 18:16   좋아요 0 | URL
하하하 ! 가연님의 센스 있는 글 잘 읽고 갑니다.~
가연님은 그 자체로 존재감 ~ 최고 !! (전 가연님밖에 몰라서 ^^;; ㅎㅎㅎ )
좋은 하루 되십시요 !

가연 2013-12-01 22:51   좋아요 0 | URL
ㅎㅎㅎ 그러고보니 드림님께서는 다락방님과는 잘 모르시겠다. 다락방님도 글잘쓰시는데ㅎㅎㅎ 드림님이랑 좋은 서재이웃이 될 것 같은뎅..

2013-11-27 23:38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가연님은 이렇게 재밌는 글을 쓸 줄 아는 사람이었죠. ㅎㅎㅎ

가연 2013-12-01 22:52   좋아요 0 | URL
ㅋㅋㅋ 좀 더 센스폭발하는 글을 쓰고 싶었지만.. 재미있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2013-11-28 09: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2-01 22: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선 2013-11-29 00:39   좋아요 0 | URL
좋아요, 좋아
ㅂㄹㄱㄷ...^^

시작과 뒤가 다른...
그럴 수도 있죠 처음에 시작했을 때 감정이 나중에는 바뀔 수도 있는 거죠 저는 그런 때 있었는지 없었는지... (가연 님 감정에 빠졌군요^^)
사람을 웃고 울리는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입니다

이제 다 읽으셨나요


희선

가연 2013-12-01 22:53   좋아요 0 | URL
ㅂㄹㄱㄷ 는 어떤 뜻인가욤??ㅎㅎ 다 읽긴 했는데 리뷰를 어떻게 써야 할 지..ㅎㅎㅎ

희선 2013-11-29 01:57   좋아요 0 | URL
사람들을 웃기고 울리는 글, 이라고 써야 했는데, 아까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알맞는 말이 떠오르지 않더군요^^

‘고전처럼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웃음과 울음의 전달자가 되어주기를 바란다.’는 말 좋군요 언제나 사람들이 찾을 수 있는 책이 되기를 바란다는 말이잖아요


희선

가연 2013-12-01 22:54   좋아요 0 | URL
ㅋㅋㅋ 맞아요. 희선님께서 제 의도를 정확히 알아보셨네요

저 책이 그렇게 잘 되었으면 좋겠다, 싶네요, 풋.

희선 2013-11-30 01:53   좋아요 0 | URL
책 읽는데 갑자기 생각났습니다 이 글 앞과 뒤 분위기가 다른 까닭, 사람이 달라졌으니 그럴 수밖에 없는 거죠(이 글 속에서, 여기에는 가짜와 진짜가 섞여 있다 해도) 하지만 역시 뒤에서 감정이... 옛 일을 생각하고 그랬을 것 같습니다 그때는 더했을 테지만, 지금은 덜하면 좋겠군요 이거 쓰면서 잠깐 생각했을 것 같군요

쓸데없는 말이었습니다^^
주말 잘 보내세요


희선

가연 2013-12-01 22:55   좋아요 0 | URL
에이, 예전의 키워도 저랍니다아.. 지금의 저도 저구...ㅋㅋㅋㅋㅋ 달라진 것은 마땅히.. 음...ㅋㅋㅋ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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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의 추락 - 프로이트, 비판적 평전
미셸 옹프레 지음, 전혜영 옮김 / 글항아리 / 2013년 9월
평점 :
절판


 

 

 

노파심에서 쓰는 말.

원래 글을 쓰면서 각주를 잘 달지 않는 편인데, 이번에는 각주를 조금 달아야 될 것 같다. 익숙하지 않은 일을 하려니 실수가 많을 것 같지만 너그러히 이해해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 글은 대상이 되는 책이 아닌 다른 책들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경우가 자주 있을 듯 하니 읽기 전에 먼저 이 글 http://blog.aladin.co.kr/760670127/6695179 을 참조하라.

 

 

 

  SF의 3대 거장을 손꼽아보라고 한다면 우리는 최근에 출간된 파운데이션의 저자인 아이작 아시모프를 필두로 로버트 A 하인라인, 아서 클라크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이 중 아서 클라크는 SF작가의 명성 뿐만 아니라, 과학에 대한 그의 예견, 다시 말해서 과학 3법칙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 과학 3법칙은 다음과 같다. (의역을 거쳤다.)

 

1. 평생을 연구하는데 바친 노과학자가 무엇인가가 가능하다고 말한 경우, 그의 말은 거의 분명히 옳다. 하지만 불가능하다고 말하였다면, 그 말은 높은 확률로 그른 말이다.

 

2. 가능성의 한계를 알아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가능성의 영역을 넘어, 불가능의 영역으로 조금 더 뛰어드는 것이다.

 

3. 고도로 발달한 과학은 마법과 구별할 수 없다.

 

이 중에서 가장 잘 알려진 법칙은 아마 3번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현대인이 배터리가 가득 충전된 휴대폰을 들고 과거로 이동하였다고 하자. 그렇다면 과거인들의 눈에는 휴대폰이 마치 신의 물건처럼 보일 것이고 - 멀리 있는 사람의 목소리를 듣게 만든다거나, 소리가 들려온다거나 - 그 신의 물건을 조종하는 우리는 일종의 신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혹은 마법사로 몰려 당장 처형당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느쪽이든, 그만큼 고도로 발달한 과학의 힘은 중간과정을 생략한다면 그 지식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마법과 비슷한 모습으로 보여질 것이다. 이는 우리보다 과거의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다. 우리보다 더 고도로 발달한 문명에서 양자전송장치라도 들고 온다면, 우리 또한 마법의 상자로 볼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데 우습게도, 이 3번 법칙은 과학기술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인문학에서도 적용시킬 수 있다. 약간만 고친다면 말이다.

 

3. 고도로 조직된 몽상은 뛰어난 이론과 구별할 수 없다.

 

물론 이 말에 대하여 수많은 반론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애초에 과학과 마법의 근연관계에 비하여, 몽상과 이론의 근연관계가 훨씬 더 멀지 않는가, 라는 반론에서부터 몽상을 어떻게 이론과 비교하느냐, 그동안 쌓여온 수많은 철학 이론들을 몽상으로 치부해버리는 것인가, 등으로 말이다. 여기에 대하여 조금 설명하자면, 먼저 나는 모든 인문학적 이론을 몽상으로 치부할 생각은 없다. 정말 뛰어난 인문학적인 이론도 분명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레비 스트로스의 근친상간 금기는 매우 뛰어난 인문학적인 이론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뛰어난 인문학적인 이론 뿐만이 아니라, 몽상에서 그 연원을 두고 있는 이론도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당장 뛰어난 철학자 루소의 경우를 보자. 그의 저서 중 하나는 '고독한 몽상자의 산책' 이라는 말을 달고 있다. 그에게는 몽상이 - 본인이 책에서 밝히듯 - 창조의 원천이었다. 망상에 가까운 몽상으로 치부된 이론도 있다. 하루하루 힘들게 벌어먹고 사는 사람이 보기에는 (물론 굳이 힘들게 벌어먹고 사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헤겔의 이론은 무슨 말도 안되는 망상이냐고 되물을 것이다.

 

이 몽상 중 하나로 들 수 있는 것이 감히 말하건데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다. 정신분석학에 대하여 적절한 근거가 존재하는가? 아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이 정신분석학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 아니다. 적절한 근거도 존재하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보편성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정신분석학의 기틀을 세운 네 가지 기본 명제(주1)를 검토해보자. 첫 번째 명제는 무의식이 존재한다, 이다. 무의식에 대한 정의는 프로이트 본인도 확실히 정립하지를 못하였지만, 어느 정도의 경계는 설정해두었다. 바로 무의식은 쾌락 원칙을 따르며, 의식될 수 없는 가장 심층에 숨어있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근거로 프로이트는 꿈을 가져온다. 프로이트의 임상적 근거에 의하면 꿈은 압축과 전치, 상징화를 통하여 무의식을 표출시키며, 결국 정신적으로 안정화를 찾는다, 라고 말한다.

 

그런데 무의식이 정말로 존재하는가? 단순히 나한테는 무의식이라는 게 있어, 너도 스스로 알잖아? 라는 질문으로 넘어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에 대하여 어떠한 근거가 존재하는가? 그리고 이를 다른 사람에게 우리가 어떻게 알릴 수 있을까? 프로이트는 자신에 대한 심오하고 '결코 되풀이 된 적은 없는' 통찰(주2)을 통하여 무의식의 존재를 발견하였고,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이론을 세웠다고 하지만, 그것은 사실 개인적인 것이다. 다른 사람이 같은 절차를 밟아서 재현되어져야만 우리는 그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는데 - 당장 이번의 CERN의 광속을 넘는 속도로 측정되었다던 중성미자, 연구를 보라 : 결국 재현되지 않아서 부정되었다 - 그런 재현성을 부정한다면 그가 무의식이라고 지칭하는 것이 우리가 무의식이라고 지칭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는 보장이 어디있겠는가. 특히 임상경험으로 정립되었다는 말에 대하여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

 

두 번째 명제를 보자. 두 번째 명제는 정신현상에는 우연이 없다는 이야기이다. 인간이 취하는 어떤 정신적 과정에서는 반드시 무의식적인 동기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이런 사례를 우리는 들 수 있을 것이다. 프로이트가 가장 즐겨 사용하였던 사례인데, 당시에 정족수가 충족되었으므로 폐회를 선언한다, 라고 오스트리아 하원 의장이 말한 적이 있었다. 이를 두고 프로이트는 이렇게 해석한다. 의장은 당시 안건을 보고, 어차피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오지도 않을텐데 빨리 끝이 났으면 좋겠다, 라는 무의식적인 동기를 가지고 있었다고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런 말실수를 하게 되었다고 말이다. 어떤 현상이든지, 심지어 단순한 말실수처럼 보이는 것일지라도 반드시 그 동기가 존재한다, 라는 것이 바로 정신분석학의 기본 명제 중 하나다.

 

이 경우를 살펴보자.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간단히 반론할 수 있다. 위의 사례를 살펴보면, 의장의 동기를 프로이트는 '추측하고 있다.' 정말 의장이 저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까? 만약에 의장이 '아니, 나는 그런 생각이 조금도 없다' 라고 부정한다면 저 명제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그리고 의장이 정말 아무런 의도가 없이 말실수를 하는 경우를 생각할 수는 없는 것일까? 물론 그런 경우에서도 프로이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본인은 깨닫지 못할 것이다.' , 혹은 '깨닫고 있어도 사회적 체면때문에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말을 꺼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식으로 이야기한다면 프로이트의 해석은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작용하게 된다. 결국 미셸 옹프레가 우상의 추락, 에서 말한대로, '동전의 앞면이 나오면 내가 이기고 동전의 뒷면이 나오면 당신이 지는 것이다.'

 

세 번째 명제는 현재는 과거의 결과이다, 라는 것이다. 이를 풀어서 설명하자면, 현재 가지고 있는 병증은 어려서 겪은 경험때문에 생긴 것이다. 프로이트의 사례 중 하나를 들면 카타리나의 사례, 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카타리나는 종종 가슴이 답답하다고 이야기하는데, 프로이트는 거기에 대하여 이렇게 해석한다. 카타리나가 어렸을 때 그녀의 아버지가 몸 위로 올라갔었다. 당시에는 그게 어떠한 의미였는지 몰랐었지만, 나중에 그 의미를 알게 되고는 재생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외상적 경험이 인식되지도, 표현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세상에 드러나는 통로는 육체이다.'(주3) 그 어릴 적 상처가 현재의 답답함의 원인이라는 이야기이다.

 

이 명제도 반론의 여지가 있다. 환자의 병이 정말 심인성일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에 심인성이 아니라면 저런 진단은 위험할 수 있다. 답답하다Dyspnea는 여러가지 기질적 원인으로 생길 수 있다. 단순한 소화불량에서부터 협심증에 이르기까지 답답하다, 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는 수많은 병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만약에 카타리나가 협심증이라도 앓고 있었다면, 저런 치료로 병이 나을 수는 없을 것이다. 여기서 프로이트학을 따르는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치료되었으니 저 사례가 옳은 것이 아니냐고. 하지만 정말로 치료되었는지, 그 후에 카타리나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어디에서도 알 수 없다. 이 뿐만이 아니다. 프로이트 사례 중 유명한 이르마의 꿈, 이라는 사례가 있다. 그 사례의 주인공으로 여겨지는 에마 에크슈타인은 과다출혈로 처음 프로이트를 찾았는데, 프로이트는 이 과다출혈이 정신적 요인때문에 생겼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 과다출혈은 자궁근종때문에 발생한 것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주4) 또한 이후에 정신적 요인을 바로잡기 위하여 받은 수술 이후에 썩은 냄새를 맡게 되었는데, 프로이트는 그것마저도 정신적 요인에 기인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실제로는 수술 이후에 거즈가 그대로 수술부위에 남아서 썩었기 때문에 냄새가 난 것이었다.

 

네 번째 명제는 인간은 쾌락을 추구하고 고통을 피하고자 모든 노력을 한다, 는 것이다. 두 가지 길이 있다. 한쪽은 먹을 것이 넘치고, 온갖 오감을 충족시키는 그런 곳인데 비하여 다른 한 쪽은 도리어 수많은 방해요인들이 있다면, 어느 쪽을 택하겠는가? 그런데 이 문장은 단순히 이런 식으로만 해석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인간의 정신은 자신의 정신에 걸리는 부담을 최대한 줄이는 쪽으로 그 행동원리가 정해진다, 라고 말이다. 이렇게 해석하고 보니 앞서의 의미보다 좀 더 심화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생리학에서는 Fight or Flight라고 한다.(주5) 어떤 장애물을 만난 경우 우리 몸에서는 교감신경이 작동할 것인지를 빠르게 결정하여야만 한다. 그리고 교감신경이 작동한 경우 싸울 것인지, 자리를 뜰 것인지를 결정하여야만 한다. 이 모든게 사실상 정신에 걸리는 부담이다. 부담이라는 말을 정신의학적으로 해석하기보다는 생물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교감신경이 작동한 경우에는 저장된 에너지들이 소모되는 방향으로 우리 몸이 작동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애초에 그런 부담이 없는 쪽이라면 우리 정신은 한결 편안해질 것이다.

 

이 명제는 가장 그럴 듯 하다. 그런데 이런 예화를 하나 가져와보자. 칸트가 만든 것인데, 정말 아름다운 여성이 침대에서 기다리고 있다. 당신이 남자인데, 그 여성과 밤을 같이 보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런데 그 기회를 소모하고 나면 당신은 바로 교수형에 처해진다. 과연 당신은 그 여성과 잠자리를 같이 할 것인가? 칸트는 절대 그럴리 없다고 한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목숨을 버리고 쾌락을 선택한다니. 삶과 죽음 중 어떤 것이 쾌락인가? 어떤 것이 고통인가? 삶이 쾌락이고 죽음이 고통이다. 그렇다면 삶이라는 쾌락과 여성과 하룻밤을 보내는 쾌락 중 어떤 쾌락이 더 클 것인가? 삶이라는 쾌락이 더 클 것이다. 그런데 누가 저 여성과 하룻밤을 보내겠는가?

 

여기서 프로이트로의 회귀를 주장했던 라캉의 이야기를 가져와보자. 라캉은 이야기한다. 여성과 보내는 쾌락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사람이 충분히 존재할 수 있다고 말이다. 이 말은 성적인 쾌락이 삶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작용할 수가 있다는 말이다. 이 경우 쾌락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네 번째 명제가 부정될 수도 있고, 유지될 수가 있다. 삶이라는 것이 훨씬 성적인 쾌락에 비하여 더 중요하다면 네 번째 명제는 부정될 수 있다. 쾌락을 추구하지도 않았고 고통을 피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성적인 에너지, 좁은 리비도 개념만 본다면 이 명제는 그대로 유지될 수 있다.

 

프로이트의 통찰 중 가장 핵심적이자 뛰어난 통찰이라는 것으로 여기는 것이 바로 이 무의식, 개념의 발견이다. 물론 프로이트만 이런 무의식 개념을 발견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프로이트의 기본 전제들 전부가 모두 그 이전세대에서부터 예견되어진 것이다. 니체와 같은 사람은 그것Est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무의식의 준비를 예견하였다. 니체 뿐만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자신 안의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어떤 힘을 지칭하였다. 하지만 프로이트가 직접적으로 지칭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오늘날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볼 때 '무언가 제어가 되지 않는 힘' 이라는 길고 긴 명칭을 읊어야만 했을런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는 그 힘에 대하여 두려움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이름을 준 결과 우리는 이를 다룰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분명 프로이트의 공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의식의 개념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있다. 위의 명제들을 모두 충족하는 무의식은 일종의 완전기억에 가깝다. 무의식은 절대로 잊지 않는다. 정말 짧은 시간 경험한 것이라도 모조리 우리 머릿속에 저장되어있고, 우리는 다만 그것을 꺼낼 방법을 모를 뿐이다, 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적어도 의식의 세계를 살아가는 우리의 눈으로 볼때는 우리의 기억은 조작되기도 쉽고 잊기도 쉽고, 잘못된 사실을 재구성하기도 쉽다. 무엇보다도 기억이 물질의 형태, 현대 의학에서는 기억을 측두엽과 해마와 연관이 있다고 본다(주6), 로 보존되는 한, 기질적으로 문제가 생겼을 경우 반드시 기억에도 혼란이 온다. 작화증confabulation, 이라는 병이 왜 존재하겠는가? 그리고 어떻게 환자가 자유연상으로 떠올린 기억들이 사실이라고 여기는 걸까?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절대적인 방법이 없는 한, 그 기억들을 그대로 받아들일수 있다고 믿는 것은 사실 위험한 일이다. 이런 질문을 던질 수도 있다. 왜 트라우마로 기억되는 것들은 모두 성, 폭력 등에 연관된 것일까? 사랑, 과 같은 감정이 트라우마로 기억되는 일은 없을까? 누가 나에게 너무 사랑을 보였었는데, 예를 들어 할머니가 나에게 사랑을 무조건적으로 주었는데, 그 경험이 나에게 신경증을 가져와주었다거나 하는 일은 없을까?

 

큰 틀에서 볼때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대한 반론은 위와 같이 프로이트 본인의 주장과는 달리 충분히 과학적이지 않다, 라는 점과 창시자인 프로이트 본인에 대한 비판으로 나뉜다. 그리고 이 두 가지 반론을 집대성한 것이 바로 이 평전, 미셸 옹프레의 우상의 추락, 인 것이다. 미셸 옹프레는 책의 서문에서 자신을 구해준 세 책을 언급하면서, 그 중 하나를 이 프로이트의 '성욕에 관한 3가지 에세이' 로 들었다. 그 책이 자신을 미망에서부터 빠져나오게 만들어주었다면서 말이다. 그러나 호의적인 이야기도 잠시, 이제는 프로이트의 이론에서 그 실체를 명확히 알아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비판을 시작한다. 이런 태도는 얼핏보면 미셸 옹프레가 자신이 우상화하던 존재가 알고보니 그다지 존중받을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그때부터 입장을 선회하여 잘못을 논하는 모습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리고 우상의 추락, 이라는 제목에서 미루어볼때, 분명 미셸 옹프레의 심정 중 일부는 그런 부분도 있었으리라. 어느 누구든 자신이 우상화하던 존재가 알고보면 그다지 존중받을만한 사람이 아닌, 수많은 잘못으로 뒤덮힌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두 가지 입장을 취하게 된다. 첫 번째로는 부정이다. 아니야, 저 사람이 그렇게 행동할 리가 없어, 라고 자신이 본 것을 부정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의 입장은 비판 혹은 비난이다. 자신이 그때동안 옹호해온 것을 모조리 부정해버리고 우상화하던 존재에게 강하게 비난과 비판을 퍼붓는 것이다. 미셸 옹프레의 이 우상의 추락, 에서 드러나는 것은 바로 이 두 번째 입장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단편적으로만 해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비록 문체가 거칠고 자료를 지나치게 프로이트를 비판하는 쪽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미셸 옹프레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정신분석학 전체에 대한 부정이라기보다는 정신분석학은 과학이 아닌 프로이트 개인의 철학이다, 라는 것이다. 그것은 서문의 다음과 같은 문장에서 확인할 수 있다. '프로이트의 이론은 스피노자, 니체, 플라톤, 데카르트, 아우구스티누스, 칸트의 이론등과 같이 개인적인 시각에서 전체를 바라보려고 하는 하나의 관점에 불과하다.' 미셸 옹프레의 목적이 결코 정신분석학이라는 학문 자체를 없애는 것에 있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말이다. 그리고 이 책의 모든 내용은 정신분석학의 지나친 확대 및 프로이트의 우상화, 그리고 과학적으로 보이려는 수많은 시도를 논박하는데 집중된다.

 

먼저 과학적으로 보이려는 수많은 시도를 저자가 어떻게 해석하는지 알아보자. 정신분석학을 통하여 자신의 병이 나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적어도 분석을 받고 나서는 마음이 편해졌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분명 존재한다. 그렇다면 이들은 미셸 옹프레의 관점에서 볼때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미셸 옹프레는 프로이트의 사례를 분석하면서, 실제로 프로이트가 그들을 치료한 것이 아니다, 라고 주장한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안나 O의 경우에는 다른 자료에 의하면(주7) 치료가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아서 상태가 악화되었다고 발표되었으며 도라는 치료를 받은 후 평생을 불우하게 살았다고 이야기한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이들이 제대로 치료를 받고 심지어 치료가 실패한 도라마저도 자신의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라고 해석하지만, 그들의 실제 삶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미셸 옹프레는 말한다. 프로이트는 이상화된 자신의 이론에 억지로 환자들을 끼워맞추는 사람이었고, 그가 일시적으로라도 사람들을 낫게 한 것은 플라시보 효과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현대의학에서는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을까? 최근의 논문에 따르면(주8) 1998년에서부터 2007년에 이르기까지 정신요법Pschotherapy을 단독으로 시행하는 경우는 15.9%에서 10.5%로 줄어들었고, 약물만 단독으로 사용하는 경우는 44.1%에서 57.4%로 늘었다고 말한다. 현대의 정신요법이 정신분석 뿐만이 아니라 정신분석적 정신치료, 단기 역동정신치료 등을 모두 포함한다는 것을 감안할 경우,(주9) 정신분석 자체는 거의 줄어들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리라.

 

피터 게이는 자신의 프로이트 평전에서 왜 프로이트의 학문만이 그의 개인적 일들로 비판을 받아야 하는지 묻는다.(주10) 그가 역설한대로, 어느 누구도 뉴턴이나 다윈, 베토벤 등이 신경증을 앓고 있다고 해서 그들의 작업을 비난하지는 않을 것이다. 뉴턴은 사실 연금술사에 더 가까운 사람이었다. -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뉴턴의 물품을 구입한 뒤 검토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미적분과 물리학이 마술이라고 주장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 이야기이다. 왜 프로이트의 학문은 프로이트 개인적 일화를 바탕으로 비난과 비판을 받는가? 학문이라는 의미에서는 차이가 없지 않은가? 피터 게이의 그런 말은 분명 일리가 있는 말이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볼 수도 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뉴턴이나 다윈처럼 과학도 아니고, 베토벤처럼 예술도 아니었기 때문에 이렇게 비판을 받는 것이라고 말이다. 프로이트는 그 자신의 정신분석학적인 용어들을 생리학에서 가져왔다는 연구 결과(주11)처럼 평생 자신의 학문이 과학에서 출발하였고 과학으로 인정받기를 바랬었으며, 자신의 저서에서는 마치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남긴 말처럼 언젠가 새로운 화학물질 등이 발견되면 자신의 이론이 완전히 변혁을 거칠 거라는 이야기도 남겼다. 하지만 2013년인 오늘이 될때까지도 아직 정신분석학은 과학이라고 보기에는 단단한 반석위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논문을 검색해보면 예술 비평분야에나 쓰이고 있고, 임상적 치료를 알리는 논문은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무엇보다도 과학적으로 문제가 되는 부분이 종교의 기원, 부분에서 토템과 터부, 로 알려진 소논문인데, 여기서 프로이트는 폐기된 학설인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을 가져온다. 이는 다윈의 진화론과는 사실 상충되는 면이 있다. 용불용설은 획득형질의 유전을 옹호하는 이론인데, 실제로 획득형질은 유전되지 않는다. 즉, 수만년 전에 치른 선사시대의 의식이 그대로 유전을 통하여 우리의 무의식에 남아있을수는 없다는 이야기이다. 또한 프로이트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 같은 성을 미워하고 다른 성을 따르는 - 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컴플렉스를 실제로 실현하지는 않는다고 말했었는데, 그 선사시대에서 토템을 설명할때에는 아들들이 같은 성인 아버지를 실제로 '죽인다.' 프로이트의 주장대로라면 아들들이 죽이려는 마음을 품더라도 실제로 '죽여서는 안된다.' 이는 프로이트 스스로의 말과도 어긋나는 부분이며, 비단 미셸 옹프레 뿐만이 아니라 그의 평전을 쓴 피터 게이도 비판하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인문학적인 요소를 가진 과학적 연구방법을 따르는 학문으로 볼 수 있을 것인가? 이 부분에 대해서도 사실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자기 자신을 언급하는 것들은 모순에 빠지기 마련이다. 인간이 인간을 언급하는 학문인 정신분석학에서 스스로 모순에 빠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나 순진한 생각이다. 버트런드 러셀의 이발사의 역설(주12)의 핵심은 자기 자신에 대한 언급이다. 이는 적어도 논리학이라는 틀에서는 매우 강력한 도구다. 그리고 논리적으로 쌓아올려져야만 다른 사람을 납득시킬 수 있는 학문에서는 자기 언급은 치명적이다. 논리적인 부분을 모두 빼고 생각해보더라도 이 문제는 표현을 달리하여 그대로 남는다. 자기 언급을 하는 학문이라면 자기 자신의 일화를 그 전거로 삼을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자기 자신의 일화가 엉망이라면, (인간의 신경증을 다루는 학문인 정신분석학이 그 근거를 인간의 신경증에 두고 있다면 학문으로 성립할 수 있겠는가?) 그 일화들을 전거로 삼을 수 있겠는가? 이는 피터 게이의 질문과 상충한다. 그렇기 때문에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다른 학문과 달리 프로이트의 개인적 일화가 중요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정신분석학을 예술이나 철학으로 볼 수 있을 것인가? 좀 더 넓은 의미에서 예술에 대한 비평에서 정신분석학이 활동할 수는 없을까? 이는 제법 적절한 것 같다. 김서영 교수는 자신의 연구에서 모세상에 대한 프로이트의 비평을 언급하면서 비록 브레머의 비판 - 프로이트가 조각이 나타내려고 하는 성경에서의 서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였다 등 - 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신분석이 의의가 있다고 주장한다. 브레머 본인부터가 프로이트의 방법을 차용하였다는 것이다.(주13) 그의 비판을 통하여 도리어 정답이 해체되고, 다시 한계를 넘어갈 수 있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런 점에서 미루어볼때, 예술 작품의 비평에 있어서 그 예술 작품에서 미처 드러나지 못한 깊은 무엇인가를 끄집어 낼 때 - 김서영 교수의 말을 빌리자면 '기존의 틀을 전복시키는 해체적 비평' - 정신분석학이라는 도구가 분명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대해서는 미셸 옹프레 본인도 자신의 저서에서는 브레머의 프로이트 모세상 해석에 대한 비판, 만 소개할 뿐 깊이 다루고 있지 않다. 결국 굳이 정신분석학이 어떤 정체성을 가질 수 있다면 예술 비평이나, 더 넓게 보아서 철학으로서의 정체성만 가질 수 있으리라고 본다. 이를 조금 뒤틀면 결국 칸트나 쇼펜하우어의 이론처럼 개인이 어떻게 세계를 해석하는가, 에 대한 의의만 가질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애초에 미셸 옹프레에 따르면 이런 관점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그가 볼때에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니체와 쇼펜하우어의 계보를 잇는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렇게 따져보면 미셸 옹프레의 프로이트에 대한 비판은 대부분 근거가 있어보인다. 프로이트의 이론은 과학적이지도 않고, 그저 개인이 세계를 해석하려는 몸부림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게다가 독창적이라는 말도 사실 옳지는 않다. 미셸 옹프레는 이 부분에도 칼날을 들이댄다. 프로이트의 무의식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으면, 무의식은 마치 앞서 말했듯 완전 기억을 가진 것 같다. 모든 것을 다 기억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런 완전 기억이라면 본인이 읽은 수많은 책들은 모두 무의식 속에 다 저장되어져 있을 것이다. 그리고 프로이트는 수많은 책들을 읽었다.(주14) 여기서 도출할 수 있는 결론은 하나다. 그 수많은 책들이 무의식에서 저장되어있다가 프로이트가 이론을 세울때 도움을 준 것이다. 그렇다면 프로이트의 이론은 독창적이라고 부르기는 어려울 것이다. 실제로 앞서 무의식에 대한 명제를 설명할 때, 니체 등이 이미 무의식이라는 이름만 붙이지 않았을 뿐, 그런 비슷한 개념을 설명한 적이 있었다고 언급하였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미셸 옹프레의 승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미셸 옹프레의 말이 다 맞다고 치더라도 우리는 저 책을 마지막까지 읽어나가면 이런 말을 내뱉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 네 말이 다 맞는 것 같아. 그런데 왜 이렇게 재수없는 것 같지?"

 

왜 이런 말을 내뱉게 만들까? 추측이지만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을 것 같다. 첫 번째로는 미셸 옹프레가 이 책 전반적으로 현상학적인 접근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 될 것이다. 무의식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무의식의 역할을 최대한 축소하려고 하는 모습이 보인다. 애초에 접근 방식이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눈으로 쳐다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미셸 옹프레가 스스로 주장하듯이 실체, 를 확인하려할때는 가장 적절한 연구방법이 현상학적인 연구방법일수도 있다. 의식의 작용을 긍정하고, 의식의 지향성을 중요시한다. 그리고 현상학적인 판단중지를 취한다. 이런 현상학적인 방법은 무의식을 굳이 필요로 하지 않는다. 진정한 인식을 목표로 하는 현상학, 이보다 더 실체를 꿰뚫어보기 좋은 방법이 어디있겠는가? 하지만 평전으로 쓰기에는 좋은 방법이 아니다. 이 책은 평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전에는 소홀해졌으며, 평도 비판에 집중한 나머지 성과에는 눈을 돌렸다. 결국 이런 형식은 현상학적인 방법을 빌려 미셸 옹프레의 프로이트에 대한 복수 - 자신을 실망시켰다는 것에 대한 - 를 정당화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 처럼 보인다.

 

두 번째는 좀 더 직접적인 이유인데, 미셸 옹프레의 태도는 이런 태도와 비슷하다. 거칠게 예를 들자면 A가 맞춤식 양복을 입고 있다. 그런데 B가 그 사람이 입은 옷이 그 사람 본인에게 딱 맞는다고 비판을 하고 있다. 헛웃음이 나오는 상황이다. 맞춤식 양복을 입었으니 당연히 양복이 A의 몸에 딱맞을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그걸 가지고 비판을 하다니, 말도 안되는 이야기이다. A를 프로이트라고 두고 B를 미셸 옹프레라고 두자. 미셸 옹프레는 서문에서부터 책의 끝에 이르기까지 정신분석학은 프로이트학이며, 개인의 철학이라고 주장한다. 심지어 니체의 말을 변용하면서 이런 문장을 적어둔다. 진정한 정신분석학자 - 프로이트주의자 - 는 한 명이었고, 지금은 없다고 말이다. (니체의 원문은 진정한 기독교인은 한 명 - 예수 - 이었고, 지금은 없다, 로 알고 있다.) 그런데 그런 개인의 철학이라면, 그 개인에게는 들어맞는게 당연하다. 그런데도 그 철학을 가지고 개인에게 들어맞으면 들어맞는다고 비판하는 것이 과연 옳은 비판의 자세일까? 아무리 몽상에 가깝더라도 창시자 본인에게는 타당할 수 밖에 없지 않은가. 게다가 그 창시자 본인이 미셀 옹프레가 말한대로 유일하고 진정한 존재라면 말이다. 이런 태도를 보면서 우리는 그래, 맞는 말이긴 한데 뭔가 부족하고 재수없다, 라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다시 앞서 과학 제 3법칙으로 돌아가자. 조금 수정한 3법칙은 고도로 조직된 몽상은 뛰어난 이론과 구별할 수 없다, 이다. 지금까지 살펴보건데, 미셸 옹프레의 비판이 설령 '재수없더라도' 근거가 존재하기에, 프로이트의 이론이 몽상으로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몽상이면 안될까? 우리는 몽상을 망상과 비슷한 부류로 취급하며,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처럼 여길 때가 있다. 대문호였던 빅토르 위고는 레 미제라블에서 사색은 정신의 노동이요, 몽상은 정신의 쾌락이다, 라고 이야기하면서 몽상에 빠지는 것을 경계해왔다. 하지만 정말 몽상은 무가치한 것일까? 여기서 바슐라르의 이론을 가져올 수 있다. 가스통 바슐라르는 몽상의 철학자, 라는 이름으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그가 이런 이름이 붙게 된 이유가 있다. 원래 그는 과학철학에 관심이 많았다. 그런데 그가 과학사에서 살펴본 것은 과학의 진화가 아니라 과학의 오류였었다. 왜 사람들은 오류를 저지르고 거짓된 이론에 현혹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상상, 몽상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는 완전한 과학을 위하여 그런 몽상과 상상을 제거하려는 작업을 시도하였다. 하지만 그런 작업은 실패로 돌아가고, 자신의 실패를 돌아보면서 바슐라르는 자신의 생각을 바꾸게 된다. 도리어 이런 몽상이 중요한 것은 아닐까, 라고.

 

바슐라르에게 있어서 몽상은 퇴행을 의미하지 않는다. 도리어 상상력의 원천이자 주관성의 객관성에 대한 승리선언이다.(주15) 상상력은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우리의 활동의 근원에 존재한다. 무의식도 의식도 아닌 몽상의 의식, 이라는 개념을 가져옴으로서 무의식과 의식의 긴장은 해소되고 무의식의 작용이었던 꿈과 몽상의 의식에 바탕을 둔 몽상의 차이점이 확연히 드러난다. 바슐라르에 의하면 이런 몽상이 우리 삶을 이끌어나가는 것이다. 이를 받아들인다면 프로이트의 이론이 몽상이 아니어야 할 이유가 굳이 존재할까? 도리어 이런 몽상을 통하여 더 깊은 차원의 해석이 이루어질 수는 있지 않을까? 물론 무의식의 작용인 꿈을 해석하는 프로이트의 이론 전체를 하나의 몽상으로 취급하는 것은 마치 우로보로스의 뱀과 같을 것이다. 꿈과 몽상이 계속 맞물릴테니 말이다. 하지만 도리어 이런 해석이 정답이 없는 - 주관성의 세계에서는 정답이 있을 수 없다 - 전복적 비평에 더 가까울 것이라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설령 고도로 조직된 몽상이더라도, 결코 뛰어난 이론에 뒤지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비록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프로이트 본인이 원했던 것 처럼 과학으로 알려지기에는 아직도 요원해보이고, 어쩌면 영영 과학이 될 수 없을지라도, 과학이 아니라 창조성을 가질 수 있는 그런 철학으로서는 분명 의의를 가질 수 있으리라고 본다. 애초에 저 수정된 3법칙을 보라. 고도로 조직된 몽상과 뛰어난 이론을 구별할 수 없다는 이야기는 단순히 몽상으로 치부하여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론 자체가 몽상과 등가의 관계를 가질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구별할 수 없는 것을 억지로 구별할 필요가 있겠는가? 사실 프로이트 본인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대한 비판은 정말 많이 제기되었다. 그런 비판들에 비하여 미셸 옹프레의 이 책은 본인의 우상을 비판한다는 점에서 훨씬 개인적이고, 대부분의 비판들을 집대성한다는 점에서 훨씬 종합적이다. 그러나 그 모든 비판은 다른 학문들에 대한 비판과 마찬가지로 프로이트학 또한 다른 철학들처럼 어떤 새로운 인식과 창조성의 바탕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중심에 두었을때 그 존재가치를 가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이 정신분석학이 창조성을 발휘하는데 밑거름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1. 기백석 외, 신경정신의학, 2nd ed., 중앙문화사, 2009, pp. 70-71. 

2. 피터 게이, 프로이트 I, 교양인, 2012, p. 206.

3. 김서영, 프로이트의 환자들, 프로네시스, 2012, p. 335.

4. http://www.answers.com/topic/eckstein-emma , 2013년 11월 17일 검색. 읽어보면 myoma적출술과 동시에 자궁적출술을 받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여기서 피터 게이의 평전과 미셸 옹프레의 말이 약간 다르다. 미셸 옹프레는 월경과다증과 위장장애를 보였다고 기술하지만, 피터 게이의 평전은 월경과다, 혹은 하혈이 심하다, 라는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김서영의 프로이트의 환자들 에서는 더욱 간략하게, 그녀가 코피가 심했다, 라는 내용만 적혀져 있다.) 만약에 전자라면 자궁근종이 애초에 그녀의 병인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으나, 후자의 경우에는 다른 원인일수가 있다. 설령 다른 원인이라고 할지라도 코피 등에 대한 기질적 원인을 먼저 찾아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5. Bruce M. Koeppen et al., 조양혁 외 역, Berne&Levi 생리학, 6th ed., 이퍼블릭, 2009, p. 214.

6. Bruce M. Keoppen et al., 위의 책, p. 210.

7. http://en.wikipedia.org/wiki/Anna_O. , http://www.answers.com/topic/anna-o , http://en.wikipedia.org/wiki/Henri_Ellenberger , 2013년 11월 17일 검색. 미셸 옹프레의 주장이 실제로 옳은 말인지 확인하기 위하여 검색해본 결과, 적어도 미셸 옹프레가 말한대로 앙리 엘랑베르제가 새롭게 연구결과를 발표한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안나 O가 회복되지 못한 것도 사실으로 여겨진다. 현대적 해석으로는 위의 안나 O링크에서 이야기하듯 정신과적인 문제보다는 encephalitis 또는 temporal lobe epilepsy가 더 적합하다고 한다.

8. Brandon A. Gaudiano, Ivan W. Miller, The evidence-based practice of psychotherapy: Facing the challenges that lie ahead, Clinical Psychology Review, 2013, p. 814.

9. 기백석 외, 앞의 책, pp. 597-613.

10. 피터 게이, 앞의 책, p. 23.

11. Bettina Bock von Wulfingen, Freud’s “Core of our Being” Between Cytology and Psychoanalysis, Ber.Wissenschaftsgesch., 2013, pp. 226-244.

12. 스스로 면도하는 사람은 면도해주지 않고 스스로 면도하지 못하는 사람을 면도해주는 이발사는 누구에게 면도를 받아야 하는가?

13. 김서영, 정신분석학 연구방법론 일반의 학문적 의의, 해석학 연구 제23집, p.71.

14. 피터 게이, 앞의 책, p. 110.

15. 홍명희, 상상력과 가스통 바슐라르, 살림, pp. 48-51.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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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3-11-18 02:20   좋아요 0 | URL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니 저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무엇이라고 받아들였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말을 할 처지는 아니군요 이름만 알고 책은 읽어본 적이 없으니(다른 책에 아주 조금 나온 것밖에는)... 프로이트는 자신이 하는 것이 과학으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랐지만, 다른 사람은 그러지 않았군요 그리고 '프로이트에 따르면'과 같은 말은 예술 비평에 더 많이 쓰인 듯합니다 과학으로 증명할 수 없다 해도 그게 뜻이 없지는 않다고 봅니다

몽상은 사람한테 필요한 거죠

비판을 했다 해도 아주 싫어서 한 것은 아닌 것 같은 마음도 듭니다 비판하는 마음을 조금만 뒤집으면 다른 마음도 있을 테니까요 이런 생각을 하고 마는군요^^

바람이 아주 세게 불고 있습니다


희선

가연 2013-11-22 00:42   좋아요 0 | URL
여기도 바람이 아주 셉니다. 어허허.. 사실 이 책을 보면 저자는 정말 프로이트가 싫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긴 하네요, 풋.
 

 

 

 

 

 

 

 

 

 

 

 

 

 

 

 

사실 이 미셸 옹프레의 '비판적' 평전은 반쪽자리이다. 이 책만으로는 평전이라고 말할 수 없고, 평, 이라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왜 그런가? 이 책에서는 매 쪽마다 프로이트의 이름이 빠지지 않지만, 동시에 매 쪽마다 프로이트를 비판하는데 공간을 할애하고 있다. 프로이트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어떤 편지들을 주고받았는지는 전혀 나와있지 않다. 물론 미셸 옹프레는 이야기한다. '내가 이 사람이 쓴 편지를 읽어보았는데, 이런 내용이더라구' 하지만 그런 편지들에 대하여 제대로 미주를 쓰지 않는다. 그러면 미셸 옹프레는 그저 자신의 비판을 위하여 자료를 가공해내고, 심지어 지어내는 것인가? 그런데 또 그건 아니다. 그가 언급한 편지는 다른 책들에서도 동일한 내용으로 언급되는 것이다.같은 자료를 두고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바로 이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이 책만이 아니라 다른 책들과 겹쳐 읽어야만 그 진수를 맛볼 수 있다. 리뷰를 쓰기에 앞서서 이 책과 같이 읽었던 책들, 그리고 같이 읽으면 좋을만한 책들을 소개한다. 그러니 이 글은 일종의 서지정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다른 책은 못읽어도 좋은데 피터 게이, 의 이 프로이트 평전은 반드시 읽어야 한다. 미셸 옹프레가 위의 우상의 추락, 본문에서 프로이트를 미화한 전기작가의 예로 가장 많이 드는 사람이 바로 피터 게이와 프로이트의 제자인 어니스트 존스, 다. 어니스트 존스, 의 책은 번역된 것이 없다. 하지만 피터 게이의 책은 위와 같이 번역되어 있다. 이 책을 읽고 우상의 추락, 을 읽으면 어떻게 같은 증거를 가지고 다르게 해석을 하고 있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우상의 추락, 에서 부족한 프로이트의 전기적 요소를 채워주기에 그 중요성이 아래에 소개할 다른 책들에 비하여 (심지어 프로이트 전집보다도) 매우 높다.

 

 

 

 

 

 

 

 

 

 

 

 

 

 

 

미셸 옹프레는 이야기한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일종의 종교와 마찬가지라고. 종교라면 경전이 있어야 한다. 프로이트학에서의 경전은 그가 쓴 전집들이다. 물론 전집을 다 읽으면 우리가 저 책을 읽어나가는데 도움이 될테지만, 그런 작업을 하기란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몇 개의 저작을 골라서 읽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 저작을 골라야 할까? 유대교 카발리스트들은 이런 이야기를 한다. 물론 카발라에서의 조하르, 등의 위상도 높지만, 그래도 카발라 연구중 가장 읽어야 할 책은 토라, 모세 5경이라고 말이다. 위에 꼽은 세 가지 책, 은 그에 상응할만한 책이다. 프로이트학의 토라, 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꿈의 해석, 성욕에 관한 세 편의 에세이, 정신분석학의 근본 개념 (정확히 말하자면 이 중에서도 자아와 이드, 이리라.) 그리고 굳이 다섯 권을 채우자면 여기에 토템과 터부, 예술 문학 정신분석, 을 넣을 수 있을 것 같다.

 

 

 

 

 

 

 

 

 

 

 

 

 

 

 

 

전집을 읽을 시간이 없는 사람들은 이 책을 읽어도 괜찮다. 이 책과 피터 게이, 의 프로이트 평전을 겹쳐 읽는다면 프로이트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는 사람이라도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익힐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이 프로이트의 환자들, 은 프로이트 전집의 목차를 제공한다. 연대순으로도 정리해놓기도 하였으니 부록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은 사실 읽어도 좋고, 읽지 않아도 좋다. 의외로 피터 게이의 평전에서는 이 책에 대한 이야기가 그렇게 많이 다루어지지는 않지만 도라, 안나 O, 늑대인간, 쥐인간 등과 같은 사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저 책은 프로이트에게 신경병자의 생각 구조를 통찰할 수 있는 기회였었다. 미셸 옹프레는 우상의 추락, 에서 프로이트가 환자를 제대로 보지도 않고 자신의 이론을 짜맞춘다는 근거로 프로이트가 이 사례를 다룬 것을 이야기한다. 한편으로는 프로이트에게 귀중한 재료가 되어주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볼때에는 미셸 옹프레의 이야기도 충분히 일리가 있는 이야기이다.

 

 

 

 

 

 

 

 

 

 

 

 

 

 

 

 

왜 갑자기 가스통 바슐라르, 를 참고 저서에 넣어두었을까? 첫번째 이유는 우상의 추락, 의 서문에서 미셸 옹프레가 가스통 바슐라르의 저서도 읽어보았다, 라고 적어두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그런 이유라면 그가 읽은 모든 철학자들의 저서를 이 글에 담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두번째 이유가 필요하다. 위의 우상의 추락, 을 읽어나가다보면 미셸 옹프레는 은연중에 의식에 대한 현상학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어려운 이야기를 제외하면, 그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 대한 기본 전제들에 반론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의 기본 전제 중 하나가 인간의 모든 현상들에는 무의식적인 동기가 작용한다, 라는 것이다. 그런데 미셸 옹프레는 바로 이 전제에 맹렬한 비판을 가한다. 바로 그 부분에서 가스통 바슐라르의 몽상의 의식, 이라 명명된 그 개념을 행간에 넣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개념 자체는 가스통 바슐라르, 본인이 고백하듯이 현상학적인 접근의 도움을 받아서 나온 것이다. 바로 이 부분때문에 정신분석학적 무의식과 현상학적인 의식의 관계에 있어서 완충작용을 할 수 있다. 프로이트학의 기본 전제를 맹렬히 비난하면서 무의식의 부인은 끝끝내 하지 않는 미셸 옹프레의 태도로 미루어 볼 때 떠올릴수있다. 왼쪽의 살림 출판사에서 나온 책만 읽어도 충분하지만, 좀 더 깊게 읽고 싶은 사람이라면 오른쪽의 책들을 구입하면서 읽어나가면 도움이 될 것이다.

 

여담이지만 가스통 바슐라르만큼 현대 철학에 큰 족적을 남긴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고 본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이 바슐라르를 많이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라캉이나 라캉이나.. 라캉이나... 이런 사람들보다도 더 많이 알려지기를 바란다.

 

 

 

 

 

 

 

 

 

 

 

 

 

 

 

이 책은 아주 뛰어난 책이다. 더 뭐라고 할 말이 없다. 물론 개인적인 경험을 일반화시켰다, 라는 미셸 옹프레의 프로이트에 대한 비판을 그대로 적용할 수도 있으나, 그런 비판은 놓아두고서라도 이 책은 한번 읽어볼 가치가 있다. 적어도 프로이트와 종교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가, 에 대하여 이만큼 뛰어난 통찰을 가지고 있는 책은 찾아보기 드물것이다.

 

 

이정도 읽어보았다면 이제 미셸 옹프레, 의 우상의 추락, 을 읽어볼 준비가 된 것 같다. 우상의 추락, 이 이렇게 많은 책들을 읽어야만 접할 수 있는 책인가? 그렇지는 않다. 내가 이렇게 참고도서들을 목록화한 것은 저 책은 앞서도 말하였지만 반쪽자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쪽자리라고 해서 그 안에 담긴 정보가 무가치하다는 뜻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왕이면 제대로 확인해보자는 의미에서 이런 책들로 배경지식을 쌓는게 좋으리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프로이트를 옹호하는 입장과, 프로이트를 반대하는 입장의 한가운데에 서서 스스로의 거취를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추가 : 나는 솔직히 저 미셸 옹프레, 의 우상의 추락, 의 번역에 대하여 의문점이 있다. 가장 눈에 띄는 하나만 지적하겠다. 책의 688페이지를 보면 이런 문장이 있다.

 

여기서 짧게 돌직구로 다시 질문을 해보겠다.

 

이 부분의 프랑스어 원문이 궁금하다. 이 부분은 직설적으로, 와 같은 말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번역자가 돌직구, 라는 단어가 어울린다고 판단한 것인가? 돌직구, 는 인터넷 은어다. 돌직구녀, 돌직구 질문을 하다, 등으로 많이 퍼지긴 하였었지만, 그 근본을 따지자면 야구에서 제대로 치지 못할 정도로 강하게 던지는 직구, 에서 파생되어서 인터넷에서 인기를 끌어 나온 단어로 기억을 하고 있다. 인터넷 은어를 번역물에 쓰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 이 부분은 나의 편견에 가깝긴 하다. 그러나 나로서는 사실 당황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아니면 정말 프랑스어 원문도 DOL ZIK KU라고 적혀있었던 것일까? 한류의 영향을 받아 미셸 옹프레가 우리나라의 인터넷 은어를 알게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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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3-11-17 00:54   좋아요 0 | URL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언제 저런 책을 다 봤을까 입니다 이렇게 다른 책을 봤기에 <우상의 추락>이 어떻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어떤 책을 보기 전에 그에 대한 배경지식이 있으면 그 책을 좀 더 잘 볼 수 있겠습니다 가스통 바슐라르 관심 가져보고 싶군요

DOL ZIK KU라고 쓰여 있지 않았을 거예요^^


희선

가연 2013-11-17 19:59   좋아요 0 | URL
애인이 없기 때문에... (응?) 혹시 무한도전 보시나요, 풋, 무한도전에서 노홍철씨가 한강에 뛰어들면서 자신은 처도 자식도 없다고 부르짖던 장면이 계속 떠오르네요ㅋㅋㅋㅋㅋ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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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범들의 도시 - 한국적 범죄의 탄생에서 집단 진실 은폐까지 가려진 공모자들
표창원.지승호 지음 / 김영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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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에 이 책을 받았을때 한국형 범죄에 관한 이야기인줄 알았다. 그 브라이언 이니스의 프로파일링, 과 같은 책 있지 않은가. 게다가 표창원씨의 전작 중 하나는 한국의 연쇄살인, 이다. 그래서 사실 개인적으로는 이 책도 그런 범죄에 관한 이야기를 다루어주었으면, 하였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첫 장을 넘기자마자 물거품처럼 터져버렸다. 프롤로그에서부터 이 책이 쓰여진 동기를 잘 설명해주고 있었다. 다음과 같은 문장 '결론부터 말하자면 범죄와 사회의 관계에 대한 확고한 견해를 가지고 있고, 나름의 해법을 제시하고, 제안하고 있다' 을 보면 말이다. 그러니 이 책은 범죄를 사회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혹은 사회와 범죄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에 대한 표창원 박사 나름의 답변이 될 것이다. 표창원 박사가 우리나라 최초의 프로파일러라는 것을 생각할 때, 이 책은 어쩌면 사회 자체에 대한 일종의 프로파일링이 아닐까.

 

프로파일링은 범죄사건의 정황이나 단서들을 분석하여 범죄자의 행동패턴이라던가, 경향을 특정짓고는, 그걸 바탕으로 범죄자를 그려내는 것이다. 셜록 홈즈가 늘 하는 일이 바로 프로파일링이다. 정말 미세한 부분만 가지고도 범죄자는 어떠한 사람일테고, 어떠한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리라, 라고 파악하지 않는가. 물론 대상은 범죄자로 국한된다. 그러니 사회 자체를 프로파일링한다, 라는 말은 애초에 대상이 틀렸을 수도 있다. 사회를 범죄자의 위치에 끌어내리기는 힘든 일이니 말이다. 다시 질문하겠다. 사회를 범죄자처럼 취급할 수 있는가?

 

그런데 막상 저렇게 사회를 범죄자로 취급가능한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보니 의구심이 드는게 사실이다. 정말 사회를 범죄자로 취급할 수 없는가? 예를 들어 우리는 이런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잘 알려진 사례일테지만, 굳이 우리나라의 사례뿐만 아니라 외국의 사례들까지 생각해보면, 어느 여자가 거리에서 찔려 죽어가면서 살려달라고 부르짖는데도, 근처 사람들이 모두 외면하였다는 일화라던가, 충분히 잡을 수 있는 범인인데도 절차를 밟다가 놓쳐버리는 경우라던가, 은폐가능한 조그만 조직에서 일어난 불화로 인한 살인사건이라던가, 하는 것들을 보면, 어쩌면 사회 자체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을런지도 모르겠다.

 

프로파일링의 기초는 라포rapport형성이라고 한다. 이제 사회를 범죄자의 위치에 끌어내려서 표창원 박사가 이끄는 대로 프로파일링을 해보자. 라포는 친밀감, 유대감이다. 범죄자에게 윽박지른다고 해서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을 털어놓지도 않는다. 어느 정도 상대에 대한 신뢰가 있어야 자신의 내용을 털어놓는다. 그렇다면 사회는 어떻게 하면 유대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사회에 대한 엄밀한 정의는 잠시 제쳐두고 표창원 박사를 살펴보자. 표창원 박사는 원래 경찰대 교수다. 우리나라에서 경찰대라고 한다면 명문대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명문대의 교수로 활동하다가 어느 순간 박차고 나왔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국정원 여론 조작 의혹, 에 대하여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 위해서였다. 자신의 정치적 발언이 자신이 속한 조직에 영향을 미칠까, 저어되었던 것 같다.

 

사실 그 전까지는 표창원 박사를 떠올리면 사회에 속한 사람들은 그의 연쇄살인범들에 대한 언급만 생각하였으리라. 나 또한 예외가 아니었기에 그의 이름을 사건에서나 보았던 것 같다.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미루어볼때 경찰대에 남아있었다면 그에게는 프로파일러, 그리고 연쇄살인범추적, 이라는 단어들이 꼬리표처럼 붙어다녔겠지. 그러나 그가 과감히 경찰대 교수직을 박차고 나오면서 사회에 대한 라포가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전까지는 연쇄살인범에 대한 프로파일링을 하던 사람이, 갑자기 사회에 대하여 이야기한다니, 어느 사람은 과연 정의의 사나이 - 이 책에 쓰이는 표현대로라면 - 라고 볼 것이고, 어느 사람은 범죄학이나 연구할 것이지, 처럼 비관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부정적 반응이든, 긍정적 반응이든 반응이라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이다. 라포를 위해서라면 긍정적 반응이 훨씬 좋겠지만, 도리어 그런 긍정적 반응이 일종의 방어기제처럼 여겨질 수도 있기에 부정적 반응도 충분히 도움이 될 것이다. 결국 자극이 가해져야만 반응이 온다. 이는 라포에서도 마찬가지라서 만약에 자신의 자리에 그대로 기다렸다면 사회 자체와 라포의 형성은 영영 불가능하였으리라. 그런 점으로 미루어보았을때, 표창원 박사는 사회에 대한 프로파일링의 첫 단추 자체를 잘 끼운 것 같다.

 

프로파일링의 절차는 보통 여섯 단계를 거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제 라포도 형성했겠다, 본격적으로 단계를 밟아보면, 가장 첫 단계는 현장의 증거 수집 단계이다. 시체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 시체는 어떠한 흉기로 찔렸는가? 그런데 우리가, 그리고 표창원 박사가 이 책에서 프로파일링 하고자 하는 사회, 는 단순히 저런 질문으로는 답변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사회로 인하여 발생한 범죄자들부터 먼저 확인하여야 할 것이다. 사회를 범죄자로 둔다면, 그 사회로 인하여 발생한 범죄자들은 사회- 범죄자 - 의 범죄에 희생된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을터이니 말이다. 이 책에서는 한국형 범죄라는 이름을 들며 존속살해범들을 사회의 범죄에 희생된 사람들로 두고 있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그에 따르면 탈주범으로 유명한 신창원도 그런 부류에 들어간다. 500만원을 훔쳤던 지강헌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어떤 것인가? 저자는 말한다. 이들은 어떻게보면 가장 경미한 악을 저지르고 무거운 형벌을 살고 있다고 말이다. 이를 바꾸어 이야기하자면 사회라는 범죄자는 경미한 악은 처벌을 무겁게하고, 정말로 큰 악들은 그대로 활개치게 내버려둔다는 이야기이다. 사회가 사용하는 흉기는? 이 책에 따르면 너무나 다양하다. 관료제 하에서의 보신주의라던가, 자본주의의 폐단이라던가, 부모의 자식에 대한 너무 깊은 의존이라던가.

 

그 다음 단계는 증거의 조직 및 배열 단계이다. 1단계에서 우리는 증거를 발견하였다. 그런데 이런 증거는 그 단독으로는 활동하기 어렵고, 그 증거가 발생한 시간적, 공간적 상태 자체와 가능한 요인을 모두 살펴보아야 한다. 사회라는 범죄자는 어떻게 범죄를 저질렀는가? 그것은 사회를 분석함으로서 파악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를 보자. 우리 사회는 좌와 우가 첨예하게 대립되어있다. 그리고 경찰이 과감한 행동을 취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마련되어있지도 않다. 당사자주의, 기소 이후에 적용이 되는, 채택하고 있다. 공소시효가 정해져있고 발견된 증거물들을 따로 보관해놓는 그런 곳도 없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일제강점기를 겪었다는 것이다. 만약에 일제강점기를 겪지 않았다면 국민들끼리 합의를 통하여 발전을 할 수 있었을텐데 해방이후의 정국에서는 그저 무분별하게 받아들이기만 하였다. 이런 사례가 바로 사회가 범죄를 저지르게 만드는 요인들이었던 것 이리라. 이 책의 저자는 역설한다.

 

그것도 일본 것을 베낀 거예요. 식민 형법입니다.

 

세 번째 단계는 범죄 발생 동기를 파악하는 것이다. 사회 전반적으로 교육이 부족하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지적은 실패학, 실패를 한 뒤 그 사례서 배우는 일이 없다. 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불이익과 위험을 피하려 하는 그런 세력들이 존재하며,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잘해도 신뢰자체가 생기지 않는다고 표창원 박사는 강하게 말한다. 무엇보다도 전반적 체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데, 여기서 김연아의 예를 가져온다. 김연아 자신은 매우 뛰어난 피겨 스케이터이지만, 우리나라의 수준이 매우 뛰어난 수준에 이르렀냐면 그런 것은 또 아니다, 라고. 그리고 실질적 예방을 어떻게 하여야 할 지 사회적 합의도 이루어져있지 않다. 그리고 어떤 범죄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고 하여 이 책에서 나오는 것 처럼 '연구비를 주는 것도 아니고, 연구 용역을 주는 것도 아니다.' 이런 것들이 사회 자체를 범죄자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런 실패학만 동기가 아니다. 전반적 교육의 문제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교육과 사회적 합의를 통하여, 예를 들어 공소시효의 경우 몇 년으로 하자, 라는 식으로 우리가 직접 나서서 정하여야 할텐데, 그런 것들이 없다보니 시민들에게는 계속 불안정감만을 주고, 그런 불안정감들은 결국엔 사회적 범죄로 향한다, 라는 말이다. 연쇄살인만 범죄는 아니다. 귀찮게 이런 걸 왜하냐, 라는 조그만 마음가짐들이 사회 전체 시점에서는 범죄가 될 수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여야만 하리라. 

 

범죄에 대하여 두 가지 견해가 대립을 하고 있다고 한다. 첫 번째로 보수적 입장은 범인이 실질적으로 나쁜 사람이었다고 하는 것이고 반대로 진보적 입장은 사회가 범인을 만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두 입장보다는 두 입장을 절충할 때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그런데 사회가 범죄자의 입장에 있다면? 그렇다면 국제 사회,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의 사회들끼리의 입장, 가 범죄자를 만드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나라 사회 자체가 나쁜 것일까? 여기에 대한 답은 사실 쉽게 도출될 수 있다. 우리 나라의 사회에서 발생하는 문제점들을 미국 탓으로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중국 탓도 아니다. 현대 일본 사회가 - 강점기가 아닌 - 우리 나라의 문제를 야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외국인 범죄도 있을 수 있지만, 그 수를 따지면 사회 내에서 일어난 문제들보다는 적을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사회 자체에 문제가 있다, 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표창원 박사는 그가 말하는대로 보수주의자다, 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네 번째 단계는 유형을 분류하고 범죄자의 사회 인구학적 배경 정보와 범죄 전후의 행동을 파악하는 것이다. 과연 사회에 대한 프로파일링에서는 어떤 식의 유형을 분석할 수 있을까? 가장 먼저 은폐범죄다. 사회의 구성이 복잡해지면서 개인이 모든 것들을 파악하기가 어려워졌다. 인터넷의 발달로 우리는 많은 것을 알 수 있게 되었지만, 동시에 많은 것을 모르게 되었다. 학술적인 지식의 공유는 더 발달하였을지도 모르지만, 역정보에도 그만큼 취약해졌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역정보에만 취약해졌는가? 그렇지 않다. 이전의 사회는 각 구성원들에게 직접 발로 뛰어 자료를 찾게 만드는 그런 동기를 부여해주었지만, 지금의 사회는 앉아서 천리를 보지만,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정말로 옳은 것인지는 쉽게 확인하기가 어렵다. 또한 사회 자체가 고도로 발달하면서, 행정 체계는 갈수록 정치에서보다는 경영으로 기울어지고 있다. 이는 필연적으로 효율의 증가를 요구하고, 효율의 증가는 고도의 전문화를 요구한다. 결과적으로 같은 조직에 속하더라도 서로를 모르는 경우가 생긴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잘 모르는 경우가 생길 수 있는데, 하물며 일반 시민이라면 그런 경향은 더욱 심할 것이다.

 

은폐범죄뿐만이 아니다. 체제범죄도 있다. 경직된 사회 체제가 범죄를 만드는 것이다. 앞서 일본의 체계를 그대로 가져왔다고 책에서 주장한다고 하였다. 잠시 해방정국으로 돌아가보자. 급하게 우리는 체계를 세워야만 하였다. 그런데 일본제국주의가 남기고 간 것들이 보인다. 급한대로 이것을 쓴 뒤에, 나중에 고쳐나가도록 하자, 라고 생각하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수정은 일어나지 않았고, 같은 체제에서 자리는 그대로 있을 뿐, 그저 사람만 바뀌게 되었다. 그런데 사람만 바뀌게 되다보니, 자리에 있던 사람으로서는 이런 생각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이 자리를 어떻게해서든 지켜야겠다.' 라고 말이다. 그러다보니 집단 전체는 보수적인 경향을 가지게 된다. 사람과 자리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된다면 함부로 인사를 발령하는 것이 어렵겠지만, 사람과 자리가 분리되어있는 이상, 사람의 목숨은 파리목숨에 가깝다. 효율을 위해서, 그리고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하여 아래의 사람은 언제든 내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다. 인사관계의 유연성을 확보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이 유연성은 합의를 통하여 발전되어져야 한다. 오늘날처럼 일제강점기에서부터 그대로 유지된 유연성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인사관계의 유연성은 조직의 유연성을 담보하지는 않는다. 아니, 반비례관계에 있다. 갈수록 행정체계는 딱딱해져가는 것이다. 이런 체계에서 연쇄살인범과 같은 범죄를 검거하기는 쉽지 않게 된다. 바로 이런 쉽지 않음, 은 사회의 시민들에게 불안감을 안겨준다. 그 뒤의 결말은 뻔하다. 불안감 조성 자체가 이 사회의 범죄가 되는 것이다.

 

다섯 번째 단계는 이를 범죄 수사에 이용하는 것이다. 범죄의 증거와 유형을 바탕으로 이 책에서는 날카롭게 사회의 모순을 지적한다. 수사 구조의 개혁, 파업 진압에 있어서 경찰과 검찰의 정치적 판단의 문제점 등을 말이다. 이 부분은 저자 표창원에게 있어서 현재진행형이다.

 

여섯 번째 단계는 프로파일의 타당성 검토인데, 이 책을 프로파일의 결과로 볼 때 아쉬운 점이 눈에 종종 보인다. 예를 들어 앞서 언급한 지강헌 사건인데, 지강헌 사건이 어떤 사건인지는 이 책에서 그다지 설명을 하고 있지 않다. 이 뿐만이 아니다. 잘 알려진 범죄들이야 워낙 신문에 많이 나왔었지만, 김광석, 김성재 변사 사건이 어떤 것인지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사건들을 언급하는 것은 좋은데,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주석을 달아서 어떤 사건들인지는 알려주는게 옳을 것 같다. 이 책에서 언급하는 정도로는 파악하기가 어렵다. 책에서 예시로 쓰인 사례를 제대로 설명하여야 이 프로파일이 직접적으로 효과를 발휘하리라고 본다. 이 뿐만이 아니다. 표창원 박사는 보수주의자, 라고 스스로 자처하고 있는데 분명 위에서 언급한 논리대로라면 분명 그는 보수주의자이다. 그러나 사회가 아닌, 사회 내부의 개개인으로 볼때 그가 어떤 보수주의자의 입장에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면, 사실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이는 위의 프로파일링의 가장 처음 단계, 라포rapport형성에 언젠가는 부메랑처럼 영향을 다시 줄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몇 번이고 사회계약론을 강조하는데, 사회계약론으로 사회를 설명할 수 있지만 이게 전부는 아니다. 사회계약론이 아니더라도 사회를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은 많다. 당장 데이비드 흄만 하여도 사회를 경향성으로 보고 있지 않은가. 이런 이론적 근거 자체도 언젠가는 프로파일링에 영향을 주리라 본다. 그러나 이런 프로파일링을 통하여, 우리가 사회를 어떻게든 바꿔나갈 수 있다면, 적어도 우리의 눈에 들어오지가 않았던 부분 '우리 스스로도 공범이 될 수 있다' 와 같은 것들이 나타날 경우, 성공한 프로파일링이 아닐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여담인데 어제는 빼빼로 데이다. 그래서 빼빼로를 사먹었다..

솔직히 기분나쁘다. 왜 이런 날이 있는거지?

물론 반 농담인데.. 반은 진담이다ㅠㅠㅠㅠㅠㅠㅠ

 

매일이 멘탈붕괴중이다.

 

그래도 오늘은 좀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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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13-11-12 22:44   좋아요 0 | URL
쉽고 머리에 잘 들어오는 리뷰입니다. '사회'를 범죄자 또는 범죄혐의자로 놓고, 그에 대한 프로파일링을 해나간다..맞는 말씀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런데 프로파일링을 했으니 이제 그 범죄자를 잡아야하는데, 결국 그 프로파일링이 가리키고 있는 무엇인가가 각각의 우리 자신이라는데 어찌해야할지...(갑자기 아주 쓸데없지만, 자신을 범죄자로 예견하게 되는 프로파일러(미래범죄분석가)의 이야기 <마이너리티 리포트> 같은 게 생각나는군요.)

가연 2013-11-13 08:42   좋아요 0 | URL
맥거핀님의 댓글을 보니, 제가 그 생각을 못했네요. 확실히 마이너리티 리포트, 같은 기분인데요. 그러고보면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결말은...

쉬운 리뷰라고 말씀하시니 괜스레 기분이 좋은데요. 쉬운 글, 이라는 말만큼 최고의 칭찬은 없는 것 같습니다, 풋. 감사합니다.

드림모노로그 2013-11-13 15:20   좋아요 0 | URL
캬~ 가연님은 역쉬 ~~~ 서평 참으로 멋져부립니다 ~ ㅎㅎ
너무 오랜만에 들렸죠 ^^ 간만에 가연님 서평 읽으면서 안구정화도 하고요 ㅎㅎ
저도 이 책 참 잼나게 읽었네요 ㅎㅎ 저도 가연님처럼 책을 프로파일링 하고 싶습니다. (전 수준이 아니되서 ㅋㅋ)
근데요, 빼빼로 사주는 여친을 만드셔야죠, 사먹으면 어떻해요 ㅎ
그러니 기분이 나쁘죠 ㅎㅎ
갑작스럽게 추워진 날씨에 감기 조심하시고, 행복하게 ~ ^^

가연 2013-11-15 17:37   좋아요 0 | URL
어허허.. 저도 거의 서재에 잘 안와서 이제 댓글을 보네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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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맞습니다, 드림모노로그님ㅠㅠㅠ 여친이 생겼으면 좋겠어유.......... 빼빼로데이날 기분이 참... 그렇더군요ㅋㅋㅋㅋㅋㅋㅋ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희선 2013-11-15 02:27   좋아요 0 | URL
사회 자체에 대한 프로파일링, 사회를 만들고 있는 것은 개인이니 모든 사람이 다 들어가기도 하겠군요 아직도 남아 있는 일제의 찌꺼기, 말은 많이 하지만 쉽게 사라지지 않는 듯합니다 진짜 없애야 하는 것은 없애지 않고 다른 것을 없애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잠깐 드는군요

사회는 우리가 만들어가는 것이니 어떻게 하면 좋을지 잘 생각해야겠군요 이렇게 말해도 제가 하는 것은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다시 생각하니 아무것도 안 하면 공범이 될 수도 있겠군요 우연이라도 공범은 되고 싶지 않아요^^


희선

가연 2013-11-15 17:38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날카로운 말씀을 해주셨네요ㅎㅎ

마지막 문장은 참 시적이다, 풋. 그렇게 생각안하시나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