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알라딘 서재를 시작하면서 이렇게 생각한 적이 있다. 자신에 대하여 쓰기 시작할 때가 바로 떠나야 할 때이다, 라고. 이제 떠날 날이 다가온 것 같지만, 당장은 떠날 생각은 없다. 아니, 떠난다는 말도 우습다. 이번에 떠나게 되면 다시는 블로그를 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현실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어쨌든 요즘은 무엇인가를 쓸 때 항상 아예 그만 둘 생각을 한 번은 해보고 쓰게 된다. 그렇게 쓰면 조금씩 더 과감한 행동을 취할 수 있어서 좀 웃긴다. 여하튼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다. 가늘게나마 길게 서재의 생명을 이어나갈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떠나게 된다면, 떠날땐 웃으며 안녕. 정작 정말로 떠날때에는 이런 인사말따위를 쓸 리가 없을테니까.

 

예전에 어디에 식사를 하러 갔는데, 강아지가 있었다. 조용히 엎드려 있다가 내가 다가가니까 꼬리를 흔들고 두 발로 일어서 마구 나를 껴안으려고 들었다. 물론 나한테만 그러는 것은 아니구.. 다가가는 모든 이들에게 혀로 핥으며 반가움들을 표시를 하는데 설령 그렇다고 하여도 너무 좋았다. 나는 그 강아지를 한참동안 끌어안고 가만히 있었다. 강아지는 앞발로 내 옷을 할퀴고 더럽혀놓았지만, 그래도 그게 반가움의 표시이기에 가만히 안고만 있었다.

 

위대한 캣츠비, 를 그린 (개츠비가 아니다!) 강도하의 최근 신작인 아름다운 선, 을 보면 연애란 고양이를 개냥이로 길들이는 것이라 한다. 처음 그 웹툰의 그 대사를 보았을때는 오, 멋진 말인데? 였지만, 저렇게 강아지를 한참 동안 끌어안고 있으니 갑자기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조용히 숨을 들이마셨다. 아, 나는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을 좋아하게 되겠구나. 그 말은 너무 씁쓸했고, 한편으로는 달콤한 바람처럼 내 폐 깊숙히 들어왔다. 그래, 내가 딱히 좋아하는 사람이 없다면, 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지만 그렇게 좋아해버리고 난 뒤, 뒤에 누군가 더 좋아하게 될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하지만 오지 않은 가능성에 거는 것 보다는 나를 바라봐주는 사람을 보는게 옳지 않을까?

 

가끔 누군가가 나에게 책을 너무 많이 읽어서 돌아버린거 아니냐, 고 우스개소리로 말하기도 한다. 가끔은 나도 그 말에 긍정을 표한다. 언제부터인가 책을 아무리 읽어도 허망함이 채워지지를 않는다. 뭐, 사실 책 따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저런 연애감정이 더 중요한 것 같다, 풋. 책을 읽는다고 내 성향이나 고집, 그리고 주장이 쉽게 바뀌지도 않고 도리어 합리화할 정교한 도구만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다. 그냥 사람은 자기 성향대로 살아가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면 절망감들이 나를 덮친다.

 

정말 많은 것들이 허망하다.

 

유럽사 산책.

이 책 정말 좋은 책이다. 내가 이 책 때문에 겨우 서재에 들어와 글을 남긴다. 역사서와 에세이 사이에 교묘한 줄타기를 한 책이다. 역사서만큼 엄밀하지는 않지만 역사서보다 더 기억에 오래 남는다. 원래 좋은 책일수록 더 쓸말이 없다. 한 번 읽어보시라.

 

 

 

 

 

 

 

 

 

에쎄.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 책은 절반정도를 읽었는데, 원래 몽테뉴가 좀 횡설수설하는걸까? 한 단락 안에 말하려 하는 것이 너무 많기도 하고, 인용문들도 너무 많다. 그래서 잘 읽히지 않더라. 물론 번역의 문제가 있다고 말들을 하던데..  그래서 영어판을 구해서 읽어봤는데 영어판은 더욱더 읽히지 않았다. 인용문을 라틴어로 영어 주석이 없이 그대로 적어주는 센스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몇 단어밖에는 모르겠더라. 그냥 새로 누군가 번역을 해주길 기다려야 될지도.

 

 

 

 

 

 

 

 

총균쇠.

한참 인기있을때에는 읽지 않았었지만 이제 와서 읽어보았다. 책 내용과 평가는 잘 알려져 있으니 생략.. 같은 이름의 다큐멘터리가 있는데, 그거랑 같이 읽어보시라. 눈 앞에 신세계가 펼쳐질 것이다.

 

 

 

 

 

 

 

 

 

 

 

 

 

이제 글을 끄적거리고 책에 관하여 이야기하는게 점점 힘들다.. 책을 혼자 읽는 것도 좀 힘들다. 이제 슬슬 독서 카페나 독서 모임에 한 번 참여를 해볼까, 혹은 아예 만들어볼까 고민중인데..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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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3-05-29 22:31   좋아요 0 | URL
가연님 저도 그래요. 이번 페이퍼 제가 그대로 옮기고 싶을 만큼 공감되는 걸요.

가연 2013-05-30 17:40   좋아요 0 | URL
ㅎㅎ 벌써 이런 기분을 느끼시다니.. 저는 수많은 방황을 한 뒤에 이제 조금 더듬거리며 걸어가는건데ㅎ 성숙이 빠르시네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 한번 독서 모임을 만들어볼까요? 풋.

2013-05-30 00: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5-30 17: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3-05-30 18:34   좋아요 0 | URL
가연님이 만드는 독서 모임이라면, 흐음, 좀 어려운 책을 읽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흐음.

가연 2013-06-04 01:03   좋아요 0 | URL
아니 이렇게 말씀해버리시면 다른 분들이 글을 읽고는 분명 오해하실거에요ㅠㅠㅠ 제가 만드는 독서 모임의 첫 주제는 명탐정 코난입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자면.

서울에 있다면 다락방님을 어떻게든 유혹(?)해서 독서 모임을 만들었을텐데. 그러면 우리는 창립 맴버가 되는겁니다, 풋. 독서 모임은 좀 알아보다가 다시 또 내팽개쳤어요. 신경써야 될 것이 너무 많네요, 만들긴 만들고 싶은데..

다락방 2013-06-04 07:52   좋아요 0 | URL
으흐흐흐흐흐흐흐흐흐 유혹이래 으흐흐흐흐흐흐흐흐흐 좋다 으흐흐흐흐흐흐흐흐흐

가연 2013-06-05 15:55   좋아요 0 | URL
으흐흐흐흐흐흐흐... 그런데 곧 안좋은 모습을 이 알라딘 서재상에서 보여드려야 할 거 같아요..

희선 2013-05-31 02:52   좋아요 0 | URL
알라딘은 서재라는 이름이라서 책 이야기를 꼭 써야 할 것 같기도 하군요 하지만 그것에 꼭 맞출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런 생각을 하지만 저도 제 얘기는 거의 안 씁니다, 제 얘기는 아주 재미없기 때문에... 그래도 책을 읽고 쓰면서 조금 쓰기도 하죠 그것도 재미없지만...

언젠가 라디오 방송에서 요즘은 고양이가 개냥이가 되었다고 해서 좀 웃었습니다
글을 쓰는 것도 그렇지만 책도 혼자 읽는 거죠 같은 책을 읽고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말인지도 모르겠군요 그런 거 재미있겠죠 저는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한번도 해본 적 없기도 하군요 별로 좋아하지 않는 까닭은 제가 생각한 게 틀리면 어쩌나 하는 것 때문이겠죠


희선

가연 2013-06-04 01:05   좋아요 0 | URL
저도 한 번도 독서모임을 안해봤어요. 예전엔 안해봤어도 그냥..ㅋ 신포도겠지, 하고 여겼었는데ㅎㅎㅎ 저는 강아지는 기르고 싶긴 하네요, 개냥이..도 좋지만

왜요, 희선님 이야기 궁금한데요, 풋. 저도 서재, 라 붙어서 꼭 책 이야기들을 붙였던 것 같아요, 풋.

2013-05-31 0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04 0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13-05-31 08:28   좋아요 0 | URL
가연님, 바쁘시지요? 오월의 마지막날이네요. 유럽사산책 담아갑니다. 이렇게 가끔이라도 부담 없이 책이야기 간단히 올려주시면 좋겠는대요.^^

가연 2013-06-04 01:07   좋아요 0 | URL
ㅎㅎ 그냥 멋대로 하려구..ㅋㅋㅋ 서재에 애착이 많이 사라져버렸어요ㅠ 재밌는 책 있으면 또 올려볼께요, 푸하하.


오랜만이에요.

2013-06-01 23: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04 0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05 16: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05 16: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05 16: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6-05 16: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Ashes Of Time (동사서독) O.S.T
록레코드 (Rock Records) / 1999년 7월
평점 :
품절


 

 

 

동사서독 - 장국영이 주연한 영화 - 에 대한 줄거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 동사東邪 황약사.

 

동사東邪는 동쪽의 사악한 사람이다. 동사 황약사는 사악하고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이다. 자신의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는 마음껏 친절을 베풀지만 설령 그런 사람들일지라도 조금만 자신의 마음 밖으로 걸어나가면 주저없이 살수殺手를 쓴다. 동사 황약사의 제자였었던 매초풍과 진현풍이 서로 사사로이 정을 통하고 구음진경을 훔쳐 달아날 때 황약사는 자신의 딸 황용때문에 그들을 놓아줄 수 밖에 없었다. 좌절감에 사로잡힌 황약사는 애꿎은 자신의 다른 제자들의 다리를 모두 부수고 자신의 도화도에서 쫓아내버린다. 말하자면 엉뚱한 곳에 화풀이를 한 셈이다. 그에게는 인간의 윤리나 도덕, 허례는 헛된 것이었고, 그리하여 그런 것들에 대하여 강한 반감을 가지고 있는 그는 의도적으로 그런 것들을 모조리 무시한다. 하지만 단순히 사악하고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라면 사람들이 절대 따르지 않을 것이고, 일파의 대종사, 라고 불리지도 않을 것이다. 황약사는 그 이상한 성격에 비례하여 거의 대부분의 잡다한 지식을 그 몸에 지니고 있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스럽게도 황약사는 자신의 섬, 도화도에서 은거할 뿐 나올 생각을 거의 하지 않았다. 만약에 그의 제자가 구음진경을 가지고 달아나지를 않았었다면, 그리고 그의 딸이 섬을 나오지 않았었다면 분명 사조영웅전이나 신조협려때까지 밖으로 나올 생각을 조금도 가지지 않을 것이다. 그의 섬에는 모든 곳에서 복숭아꽃, 그러니까 복사꽃을 볼 수 있었다. 왜 섬에 그렇게 복사꽃을 많이 심었었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동사서독에서 친구로 등장하는 구양봉은 말한다.

 

그는 매번 이상하게도 동쪽에서 왔다. 몇 년 동안 계속 그랬다.

 

영화가 시작하면 황약사는 술을 한 동이 들고 친구 구양봉에게 찾아온다. 그리고 구양봉에게 자신이 어떤 여자에게 술을 한 동이 받았는데, 이 술의 이름은 취생몽사醉生夢死이니, 이 술을 같이 마시며 취하자, 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구양봉은 거절한다. 마지면 지난 일을 모두 잊을 수 있는 술, 취생몽사, 는 결국 황약사 혼자 마시게 되었다.

 

인간이 번뇌가 많은 까닭은 기억력 때문이라고 한다.

 

구양봉은 술에 가득 취해 벽에 기대 앉아 있는 황약사에게 묻는다. 나를 기억하는가? 황약사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리고 구양봉에게 묻는다. 우리가 무슨 관계였지? 그런 황약사에게 구양봉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한 때 정말 친한 친구였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2. 서독西毒 구양봉. 

 

서독西毒은 서쪽의 독랄한 인물이라는 단어다. 서독 구양봉은 백타산에 기거하며 수많은 독초와 독물을 다룬다. 독을 다루는 솜씨는 그 누구도 따라가지 못했다. 기기묘묘한 독들 앞에서 수많은 고수들이 목숨을 잃었다. 독물만 무서운 것이 아니었다. 전진파의 천하오절의 중신통, 왕중양은 자신의 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남제 단지흥에게 찾아가 말한다. 내가 죽고 나면 분명 구양봉이 발호할 것이니 당신의 일양지와 나의 선천공을 합쳐 대항하는 것이 어떻겠소이까. 단지흥은 흔쾌히 받아들이고 선천공을 전수받는다. 한 명의 오절을 상대하기 위하여 두 명의 오절이 그들의 절기를 합쳐야 할 정도였으니 구양봉의 무공이 어느 정도일지 충분히 상상이 간다. 구양봉의 합마공의 일부를 배웠던 신조협려의 양과는 소용녀에게 무공을 배우기 전에는 그 합마공 만으로 정식제자로 무공을 배웠던 전진교 도사를 상대하였다.

 

하지만 구양봉이 정말로 무서운 점은 무공이라던가 독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의 가장 큰 무기는 그의 독랄한 심성이었다. 아무리 강력한 무공을 가지더라도 그 무공을 다루는 사람이 심성이 연약하다면 그 심성을 노려 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구양봉, 서독은 그 무공과 그 무공을 다루는 심성에 있어서 다른 사람과 매우 달랐다. 대종사의 체면 같은 것은 그에게 없었다. 앞서 본 동사 황약사의 경우에는 그나마 대종사로서의 품격이 있었었지만 동사는 자신에게 불리할 것 같은 상황에서는 언제든 그런 품격따위를 버릴 수 있었다. 상황이 불리해지면 말을 바꾸고, 이전의 말을 사과하지만 다시 상황이 좋아진다면 언제든 상대의 등에 칼을 꽂을 수 있었다. 동사가 세상의 법도를 무시한다면 서독은 세상의 법도를 깨부수려고 돌아다니던 사람이었다.

 

거절당하기 싫으면 먼저 거절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런데 구양봉과 황약사, 그리고 홍칠공의 젊은 시절을 다룬 동사서독, 에서는 저만큼 독랄한 모습으로 그려지지는 않는다. 한 여자를 사랑했지만 무공에 미쳐 밖으로 떠돌던 구양봉. 결국 그 여자는 기다림에 지쳐 그의 형과 결혼한다. 그의 형과 그녀가 결혼하던 날, 구양봉은 그녀를 억지로 범하고 자신과 같이 떠나자고 말한다. 하지만 그녀가 거부하자 쓸쓸히 홀로 백타산을 떠난다. 물론 그녀도 구양봉을 좋아했었다. 하지만 끝끝내 그녀와 맺어진 사람은 그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 왜 그녀는 그를 떠나버렸을까?

 

날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았어요.

 

우리는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어떤 감정과 기분을 전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실제로 언어로 표현하지 않더라도 알 수 있는 것들도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그건 언제나 시간이 지난 뒤에 깨닫게 되는 것이다. 아, 그때 그녀가 이런 말을 하려고 했었구나, 그리고 나는 그때 이 말을 삼키고 있었구나. 사랑에 빠진 연인은 사랑한다, 라는 말을 듣고 싶은 법이다, 적어도 서로가 영원히 지속되리라고 믿는 그 시간동안은.

 

하지만 그는 자존심때문에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어요, 그 말이 듣고 싶었는데도.

 

결국 구양봉은 그녀를 등지고, 하지만 여전히 그녀를 잊지 못한채 사막에 가서 청부업자로 활동하게 된다. 아마 그때부터가 아니었을까? 거절당하느니 거절하는 것이 더 낫다고 여기게 된 시점은. 동사서독에서 나타난 그는 냉정하고 잔혹한 살수인 척 하지만, 끝내 입꼬리가 떨리는 것만은 감추지 못한다.

 

 

 

3. 독고구패獨孤求敗.

 

독고구패獨孤求敗는 홀로 패배를 구한다, 라는 의미다. 이름부터가 매우 광오한 느낌을 준다. 독고구패는 끝끝내 한 번도 패배를 당해본 적 없는 무사다. 결국 상대를 찾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는데, 바로 이 점 때문에 김용이 쓴 작품중에서 가장 강한 무사가 누구인가, 라는 질문의 대답에 단골로 나온다. 물론 천룡팔부의 무명승 편을 드는 사람도 많다. 여하튼 독고구패와 무명승이 김용의 전 작품들 중에서 가장 강력한 무사다, 라고 말을 한다고 하여도 절대 잘못된 말은 아닐 것이다. 독고구패가 펼치는 검술은 독고구검이다. 총 9가지의 초식으로 등장하며, 김용 작품 중 소오강호에서 그 위력을 선보인다. 신조협려에서도 독고구패의 심득이 나타나는데, 양과는 독고구패의 심득 중 중검을 익히고 무림에 나가 서역의 무사를 모조리 무찌를 수 있었다. 독고구패에 대한 언급은 그 후에는 거의 등장하지가 않는다.

 

동사서독에서는 독고구패에 대해서 창의적인 해석을 내렸다. 황약사에게 버림받은 비련의 여인이 수련하여서 경지에 이르렀는데, 그녀가 바로 독고구패다, 라고. 영화에서는 황약사와 얽히는 두 명의 사람이 등장하는데, 모용언과 모용연이 바로 그들이다. 우연히 황약사를 만난 모용언은 황약사에게 약속을 하게 만든다. 너에게 누이동생이 있다면, 약속하지, 내 그녀와 결혼할테니. 하지만 황약사는 이미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고 그 말은 먼지처럼 흩어져 메아리처럼 멀리서 간간히 울릴 뿐이었으니. 이에 모용언은 자신의 누이동생을 황약사가 버린 것이라고 느끼고 구양봉에게 의뢰를 하게 된다.

 

황약사를 죽여주시오

 

왜 그를 죽이려고 하시오?

 

다른 여자때문에 내 여동생을 버렸으니까.

 

하지만 모용연의 생각은 달랐다. 모용연은 자신의 오빠인 모용언이 자신과 황약사의 사이를 가로막는다고 여겼다. 그리하여 구양봉에게 별개의 의뢰를 하게 된다. 자신의 오빠를 죽여달라고. 그러나 이상함을 느낀 구양봉에게 모용언과 모용연은 자신들의 정체를 드러내게 된다. 결국 모용언과 모용연은 동일한 인물이었던 것이다. 한 사람의 몸에 두 명의 인격이 깃들고, 각각의 인격은 남과 여로 나뉜다. 모용언은 남자의 인격이고 모용연은 그 누이동생으로서의 인격이다. 이를 알게 된 상태에서 다시 그들의 대사를 돌이켜보면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모용연은 남자로서의 자신, 모용언이 죽기를 바랐다. 그렇게 된다면 황약사를 자신과 더 가깝게 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기 때문에. 모용언은 사랑의 대상인 황약사 본인이 죽기를 바랐다. 그를 사랑한 만큼 증오하였기에. 사랑에 빠졌었지만 이윽고 사랑을 이루지 못하면 둘 중 하나때문이라고 인간은 믿는다. 그들의 사랑에 장애물들이 있거나, 혹은 사랑의 대상 자체가 잘못되었거나.

 

모용언과 모용연, 이들의 의뢰 내용은 저런 사랑이 깨진 후, 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어준다. 장애물로서의 오빠, 혹은 잘못된 대상으로서의 황약사. 어떻게 보면 이 두가지 이유를 만들기 위하여 모용언은 모용연과 분리된 것이다. 하지만 누구든 알 수 있듯이 사랑의 실패에 명확한 이유는 없다. 어쩌면 가장 비난받아야 할 대상은 자기 자신일런지도 모른다. 황약사가 사랑한다는 여인을 만나 죽이려고 했었지만, 끝끝내 검을 거둔 까닭은 죽이게 되면 황약사의 말을 자신이 긍정한다는 맥락이 되어버리게 때문이었다. 그녀를 정말로 황약사가 사랑하니까 자신이 죽이게 된 것이다, 가 되어버릴테니까. 그녀를 황약사가 사랑한다는 것을 인정하기가 싫기에. 

 

세상사람들에게 묻노니, 정이란 무엇이기에 생사를 가늠케 하는가?

 

신조협려의 이막수는 원호문을 외워 자신의 실패한 사랑에 대하여 노래한다. 구양봉에게 자신의 속마음들을 토로한 모용언은 그날로 강호를 떠나 그 정을 가지고 무공만 연마를 계속 하면서 생활을 보낸다. 언젠가 자신이 그에게 자신을 사랑하느냐고 물으면, 그가 부디 거짓말이라도 하기를 바란다, 라고 호소하면서. 그녀의 무공은 은거 전에도 황약사에게 상처를 입힐 정도였으니, 은거 후 그녀의 무공수위가 어느정도나 강력해졌을지는 가늠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그녀를 진실로 강하게 만든 것은, 바로 저 이막수의 말 처럼 정情때문이리라.

 

 

 

4. 북개北丐 홍칠공.

 

개방의 방주 홍칠공은 인의와 협을 중시하면서 약자를 돕는 대종사이다. 그의 이명으로는 구지신개가 있는데, 9개의 손가락이라는 말 그대로 그의 손가락은 식지가 하나 없다. 북개의 유일한 단점이 먹는 것에 대한 탐욕이 크다, 라는 것인데, 바로 그 탐욕 때문에 의인을 죽게 한 적이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손가락 하나를 잘라 그것을 단죄하였다. 하지만 식지를 자른 뒤에도 여전히 식탐은 강하여, 그 약점을 노려 황용이 자신의 정인情人인 곽정에 그의 무공을 전수하게 만든 적이 있었다. 물론 아래에 소개할 동사서독에서는 다르게 전개되지만 말이다. 하지만 힘이 없는 정의는 공허하다는 말이 있듯, 인의와 협을 중시하려면 그에 상응할 정도의 힘은 갖춰야 한다. 홍칠공에게는 두 가지 무서운 무공이 있는데 하나는 타구봉법이고 다른 하나는 항룡십팔장이다. 타구봉법은 말 그대로 미친 개를 때려잡는데 쓰는 봉법이라고 할 수 있는데, 개방방주의 진산절기이다. 그리고 아마도 개방방주로 취임할때에 반드시 익혀야 할 무공일 것이다. (황용이 후에 개방방주에 취임하는데, 그녀는 항룡십팔장은 제대로 펼치지 못한다.) 하지만 타구봉법보다 더 위상이 높은 절기가 바로 항룡십팔장이다.

 

신조협려와 사조영웅전의 시대 보다 몇 백년 전, 송대에 소봉이라는 개방 방주가 있었다. 그는 그의 전 생애를 걸쳐 한 번의 패배도 당하지 않았고, 오직 이 항룡십팔장 하나만으로 전 무림을 제패하였다. 당시 소봉이 무림을 종횡할때에는 항룡십팔장은 18개의 초식이 아닌 28개의 초식이었고, 따라서 항룡이십팔장이라고 불렸다. 소봉은 자신의 의제인 허죽과 함께 이를 정리하고는 18개로 간추려 이후 개방에 전해내려지게 하였다. 이것이 천룡팔부 개정판에서의 이야기이다. 그런데 소봉이 작품 내에서 쓴 초식은 저 28개의 초식 중 일부 뿐인데, 특히 항룡유회, 라는 초식을 즐겨 사용하였다. 이는 주역의 건괘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소봉이 주역에 통달하였다는 묘사는 전혀 나오지 않지만 - 통달하였다면 의제인 단예가 그랬을 것이다 - 굳이 초식의 힘을 발휘하는데에는 주역의 도움이 필요없었는지 그의 초식을 받아낼 수 있었던 인물은 없었다.

 

이런 항룡십팔장을 익혔었으니 홍칠공의 무공의 수위 또한 앞서 말한 동사서독에 가히 비견할 만하리라. 동사서독, 에서의 홍칠공의 무공은 젊을 때부터 서독과 비견할 만한 정도로 나타나 보인다. 앞으로 어차피 앞으로 거지가 될 것이 분명하지만, 젊은 시절엔 거지가 아니었었던 북개는 천하제일의 검수가 되기 위하여 무림천하를 종횡하면서 다닌다. 그러다가 우연히 구양봉이 있는 사막에 도착하고는 함께 일을 시작하면서 세월을 보낸다. 구양봉은 홍칠공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었지만 그의 무공이 탐나 함께 일하기 시작하였다. 그도 그럴게 홍칠공은 앞서 의뢰를 받았던 사람이 해결못하였었던 사막의 도적들을 한 칼에 모조리 제압하였으니 인정안할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홍칠공에게 아내가 찾아오면서 그의 생활은 바뀌기 시작한다.

 

벌써 며칠째 기다리는군.

 

쫓아도 안가는데 어쩌겠소?

 

누가 안된다고 했었나? 다 하기 나름이라네. 나도 예전엔 자네 같았지.

 

천하를 얻기 위해선 여자를 버려야 되는줄 알았던 구양봉은 자신의 모습과 홍칠공을 겹쳐보면서 후회를 내뱉는다. 하지만 여전히 홍칠공에게는 그의 아내가 버겁기만 하였다. 하지만 쫓아보내도 떠나지 않는 그녀를 보면서 홍칠공은 점차 조급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여기서 홍칠공과 구양봉의 차이가 드러난다. 구양봉이었다면 자신을 기다리는 아내를 죽임으로써 거기서 벗어나려고 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후에 몇 번이고 후회를 하며 회한을 곱씹을 것이다.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하고. 하지만 물론 돌아간 뒤에는 구양봉이라면 몇 번이고 똑같이 그녀를 죽일 것이다. 하지만 홍칠은 그와는 달랐다.

 

난 당신처럼 되기 싫소.

 

벌써 몇 번이고 구양봉에게 퇴짜를 맡은 여자가 있었다. 그녀는 돈이 없다는 이유로 구양봉에게 자신의 남편을 죽인 원수들을 죽여달라는 의뢰를 거절당하고 있었다. 구양봉은 몇 번이고 그녀에게 돈이 없으면 몸이라도 팔아서 돈을 마련하라고 권유했지만 그녀는 '그렇게 하기는 싫다', 고 말했다. 남편의 원수를 갚는데 몸을 팔다니, 말도 안되는 일이니 그녀의 거절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런 그녀가 홍칠공에게 의뢰를 하였다. 제발, 제발 남편을 죽인 저 무사들을 죽여주세요. 제가 드릴 수 있는 대가는 이 달걀 하나 뿐입니다. 하지만 제발 제 의뢰를 받아주세요. 몇날을 고민하던 홍칠공은 검을 집어들고 뛰쳐나간다. 끝내 그는 자신의 아내 - 로 상징되는 그 무엇 - 를 죽이지 못한 것이었다. 격렬한 싸움끝에 무사들을 모조리 죽이고 돌아온 홍칠공의 손가락은 아홉 개였다.

 

난 당신처럼 되기 싫소.

당신은 달걀 하나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지는 않을테니

 

몇 번이고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을 죽이고 후회할 수 있는 구양봉과는 달리 홍칠공은 후회를 만들지 않기로 결심했다. 가난한 여자의 의뢰를 받아들였던 것은 그 첫걸음이었다. 구양봉은 앞으로도 미래를 걷더라도 과거를 후회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홍칠공은 미래에는 미래의 일만을 바라볼 것이다. 그것을 알기에 구양봉은 홍칠공에게 질투를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여기, 이 자는 자신이 걷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리라. 자신과 정 반대의 길을 걷게 되리라. 가난한 여자는 자신의 의뢰때문에 피투성이가 된 홍칠공을 보고는 구양봉에게 제발 치료해달라고 매달리지만 구양봉은 매정하게 거절하고는 다시금 가난한 여자에게 윽박지른다. 네가 뭔가를 의뢰하고 싶다면 몸이라도 팔아라, 라고. 구양봉은 홍칠공에게 질투를 느꼈지만, 이 질투는 단순한 질투가 아니었으니, 자신은 도저히 가지 못하는 길을 걷는 사람에 대한 질투였다. 애초부터 같은 길을 걸을 수 있고, 그 길에서 차이가 나는 것이라면 이렇게까지 질투를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구양봉은 도저히 걸을 수 없는 길을 걷고 있었기에, 그리고 구양봉 스스로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자신의 좌절감을 감출 수 없었다. 결국 그런 질투와 화를 마주한 가난한 여자는 죄책감에 자신의 몸이라도 팔아서 구양봉에게 치료를 부탁하려고 하지만 그런 그녀를 홍칠공은 꼭 붙든다.

 

기억하시오, 항상 당신을 바라보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을.

 

 

 

5. 그리고 다시, 동사東邪 황약사.

 

난 그녀에게 내가 그녀를 사랑한다는 것을 절대 말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맛보지 않은 과일이야말로 가장 달콤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매년 황약사는 구양봉의 형수를 찾아간다. 구양봉의 형수는 황약사에게 자신의 아들이야기와 함께 구양봉의 이야기를 매번 꺼낸다. 구양봉의 친구로 남아있는한 황약사는 계속 그녀에게 찾아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아들을 바라보면서 항상 구양봉을 떠올리고, 그런 구양봉은 사막의 한 가운데에서 그녀를 그린다. 구양봉때문에 구양봉의 형수를 찾아갈 수 있었지만, 그런 그녀는 그에게 도저히 도달할 수 없을 만큼 너무나 멀다. 그녀들 사이에 황약사는 마치 전령처럼 오간다. 그래서 황약사는 항상 동쪽에서 구양봉을 찾아간다. 사실은 황약사는 그녀를 사랑했었다. 그녀를 잊기 위하여 다른 친구의 아내와 불륜도 저지르고, 술김에 모용연에게 추파를 던지기까지 했었지만, 그녀의 그림자는 그의 마음 속에서 절대로 지워지지 않는다. 황약사는 조용히 읊조린다. 구양봉의 형수가, 그녀가 사랑이라는 경연에서 우승하지는 못하였으리라. 차마 그녀를 사랑의 승리자라고 할 수는 없으리라, 라고. 그녀는 사랑하는 구양봉을 버리고 그의 형과 결혼하였으며, 그 결혼은 행복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그녀를 자신에게 비교하면서 나지막히 탄식한다.

 

하지만 난 처음부터 졌다.

 

자신에게 복사꽃을 좋아하는 법을 가르쳐 준 그녀. 황약사에게는 누구보다도 소중한 사람이었지만, 항상 구양봉을 매개로 다가갈 수 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다면 황약사는 그녀한테는 주변인이었을 뿐이니. 죽음이 다가왔다는 것을 느낀 그녀는 구양봉에 대하여 피를 토하듯 오열하면서 속내를 털어놓는다. 말로 사랑한다는 말을 해야만 영원한 줄 알았다면서, 만약에 다시 되돌릴 수 있다면.. 되돌릴 수 있다면 반드시 돌아가겠노라고. 왜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로 이루어지지 못할까? 정말 많은 사람들이 정말 많은 사랑을 하고, 정말 많은 눈물을 흘리며 이별로 끝을 맺는다. 왜 그럴까? 사랑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게 아닐까? 그게 아니다. 아니, 그게 아니었다. 두 사람의 사랑만 있더라도 그 사랑 자체가 걸림돌이 되는 줄 누가 알았겠는가.

 

왜 그와 결혼하지 않았소?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았어요.

 

때로는 말이 필요없는 경우도 있는 법이오.

 

결혼 전야에 그녀는 구양봉을 만났다. 구양봉은 그녀보고 함께 도망가자고 말했지만 그 말로는 움직이기에 충분하지가 않았다. 그런 그녀를 구양봉은 억지로 범하고 사막으로 떠나고 만다. 구양봉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작정으로 그런 일을 저질렀으며, 그것을 알기에 그녀는 평생 구양봉을 보지 못하리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게 되었다. 황약사는 죽음을 앞둔 그녀에게 때로는 말이 필요없는 경우도 있다고, 그 사실을 그녀가 모를 거라고 여기고 낮게 읊조렸지만, 그녀는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다만, 알지만 받아들일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가 나를 그대로 떠나갈 것이리라고.  그가 나를 붙잡으려고 내미는 손을 뿌리친다면 그는 다시는 손을 내밀지 않을 거라는 것을. 그게 거절당하기 전에 먼저 거절하는 구양봉이라는 것을. 끝없는 확인은 사랑의 속성이다. 여기서 그 둘의 사랑은 서로의 성격과 엇갈려 이윽고 파국을 맞게 되니, 이것이 바로 사랑 자체가 걸림돌이 되는 인 것이다.

 

내가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없었죠.

 

다시 시작하기를 바라지만, 동시에 그것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 그녀는 잘 알고 있다. 다시 시작한다고 해서 구양봉이 새로운 선택을 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녀에게 구양봉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거절당하기 싫어서 먼저 거절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를 위하여 그녀는 마지막으로 취생몽사를 남긴다. 그녀는 이제 죽음으로 사랑을 완전히 떠나겠지만 홀로 살아갈 구양봉이 걱정된 것이다. 그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받아들이지 못하기에 미래에 무엇도 기대하지 않으며, 거절당하기 싫어서 먼저 거절하기에 어떠한 관계도 맺지 못하고 과거만 그릴 사람이기에. 하지만 정작 구양봉은 마시지 않고 마지막, 아니 가장 처음에 황약사가 구양봉에게 권한 취생몽사를 마시고 모든 기억을 잊어버린다. 더이상 구양봉의 친구가 아닌 것이다. 그렇기에 더이상 자신이 사랑한 여자한테로 다가갈 수 없으며, 다가갈 수 없을 바에야 영영 잊어버리는 것이 나을지어니 - 동시에 그는 자신이 사랑하였던 여자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린다.

 

인간이 번뇌가 많은 까닭은 기억력때문이라 한다.

그해 부터 난 많은 걸 잊고 오직 복사꽃 좋아한 것만 기억했다.

 

그리고 황약사는 도화도, 복사꽃 핀 섬의 주인이 된다.

 

 

 

6. 마지막, 서독西毒 구양봉.

 

구양봉의 곁에는 이제 아무도 없다. 그는 황약사가 남기고 간 취생몽사를 살짝 들이켜보지만 다시 내던져버린다. 그는 모든 것을 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여전히 과거에 얽매인 그는 사막을 내려다보면서 독백한다.

 

잊으려 할수록 더 기억에 또렷히 남는다.

 

그녀는 그 술을 마시고 구양봉이 자신에 대하여 완전히 잊어버리기를 바랐었지만, 동시에 자신을 영영 잊지 않기를 바랐다. 취생몽사는 술 이름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녀와 구양봉이 서로를 마주볼 때 그녀가 말한 농담이기도 하였다. 농담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무엇인가를 잃어버리고 싶다면 그걸 간직한다면 언젠가 잃어버리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반대로 무엇인가를 간직하려고 한다면 그걸 잃어버리려고 한다면 어떨까?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으로 슬퍼할바에야, 차라리 완전히 잊는 게 어떻겠는가? 하지만 잊지 못한다면 영원히 그 사랑을 그리며 살아가달라.

 

그리고 구양봉은 후에 설산에서 홍칠공과 겨룬 후 함께 목숨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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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3-05-31 02:39   좋아요 0 | URL
읽다보니 <채운국 이야기>가 조금 떠오르기도 하는군요
글 속에 나온 사람들 사랑이 엇갈리다니... 여기에는 없다 해도 잘된 사람도 있나요
홍칠공을 질투한 구양봉은 홍칠공과 싸우다 죽는군요
무엇인가를 이루려면 사랑도 하면 안 된다고 하는데, 마지막에 잘되는 사람은 사랑도 한 사람이에요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좋은 것이다는 거겠죠^^


희선

가연 2013-06-04 01:00   좋아요 1 | URL
와, 채운국 이야기 아세요? ㅎㅎ 왠지 반갑습니다, 풋.

잘된 사람은 음.. 없네요, 천하오절중에는... 그나마 동사가 현상유지를ㅎ
ㅋㅋㅋ 동감합니다. 마지막에 잘되는 사람은 사랑도 한 사람이더군요.
 

 

 

 

Q : 안녕하세요, 가연님

 

가연 : 네, 안녕하세요

 

Q : 이렇게 뵙는건 처음이네요, 요즘 책 잘 읽고 계신가요?

 

가연 : 아하하.. 사실 요즘 생각보다 책을 거의 못읽고 있어요. 그런데 요즘 잘 지내고 계세요? 라는 인사대신에 책을 잘 읽고 있냐니..

 

Q : 아니 뭐, 어차피 책 이야기를 할텐데, 불만이세요?

 

가연 : 아니 뭐...

 

Q : 하하, 요즘 잘 지내고 계세요? 라고 물으면 너무 뻔한 질문 같아서.. 그런데 이건 여담이지만 왜 가연이라는 닉을 쓰게 되셨나요?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보면 여자라고 착각하시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요. 혹시 그걸 노렸다던가?

 

가연 : 그건 비밀이구요, 별로 그건 노린 거 아닌데요. 아, 이건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이지만 게임할때는 이상하게도 여성 플레이어들이 우대를 받는 것 같긴 해요. 예전에 모 게임을 했는데 상대편 유저가 닉이나 말 등으로 판단시 여자같으면 왠지 경험치를 더 몰아서 줘야될 것 같다고 그러더라구요. 그러다가 '데헷, 사실은 나 남자임, 헤헤헤' 이러면 이제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고 그 게임을 끊고 다른 게임을... 아 물론 저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Q : 절대 믿을 수가 없네요. 너무 구체적이신데요? 그러고보니 옆에 백금의 마법사는 뭔가요? 게임을 너무 많이 하신거 아니세요?

 

가연 : 뭐, 그 말도 틀리지는 않는게 제가 늘 마법사를 고르거든요, 무슨 게임을 할때든. 리니지를 하면 법사, 와우를 해도 법사,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도 법사 무조건 법사를 골라서  할거고 또 하는 편이죠. 왠지 멋있잖아요.

 

Q : 백금은요?

 

가연 : 뭐 그건 그냥.. 반지의 제왕보면 흰색의 마법사 사루만, 회색의 마법사 갠달프 등등 이런거 나오잖아요. 그거 보고는 좀 괜찮아 보여서 이명이랍시고 가져다 붙인겁니다.

 

Q : 와, 가연님 아주 게임중독이신가봐요? 판타지랑 현실은 제대로 구분하고 계시죠?

 

가연 : 흥, 제가 판타지에만 중독된 거라고 생각하시면 곤란...... 그냥 책 이야기나 하죠.

 

Q : 네, 그래요... 평전 잡상, 라는 타이틀을 달고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정확히 뭘 의도한 건가요?

 

가연 : 그냥 뭔가 멋있어 보여서 제목을 저렇게..

 

Q : 아아, 자꾸 이러시면 대화가 하나도 안되잖아요

 

가연 : 제가 책 정리를 조금 하다보니까 유난히 많이 보이는 책 종류가 있더라구요.

 

Q : 그러고보니 가연님은 1000페이지에 가까운 책만 보시는 걸로 유명하시죠?

 

가연 : 이젠 1000페이지 정도가 되지 않으면 괜히 제가 불안해요. 언제 이 책을 다 읽어버릴까, 하고. 책을 다 읽어버리면 막 또 신경쓰이고. 1000페이지짜리 책을 하나 들고 있으면 그냥 속이 다 편하더라구요. 왠지 내가 1mg쯤 지적으로 변한 것 같은 기분도 들고.

 

 

Q : 가연님은 늘 뒷말에 진심을 담으시네요. 사실은 지적으로 보이고 싶으셔서?

 

가연 : 아니 딱히 그건 또 아닌게, 책은 그냥 틀혀박혀서 보는데 남 눈 신경쓸 겨를도 없죠. 어쨌든 그렇게 두꺼운 책들 중 특히 평전이 큰 부분을 차지하더라구요. 제가 평전류를 많이 본 것 같아서 이번엔 평전을 한 번 다뤄보려고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중이랍니다.

 

 

Q : 급하게 말을 돌리셨다는 기분이 들지만 일단은 그냥 넘어갈께요. 그동안 평전 본 평전은 누구를 다뤄왔었나 궁금하네요.

 

가연 : ..흠 크흠 큼 어쨌든, 좀 그럭저럭은 읽기는 하였던 것 같아요. 루소, 비트겐슈타인, 다윈, 히틀러, 스탈린, 게바라, 데리다, 조조, 진시황, 워런 버핏.. 당장 생각나는 인물들은 이정도인데, 사실 뒤의 진시황이랑 워런 버핏의 경우엔 덜 읽었답니다. 생각해보니까 '교양인' 에서 나온 문제적 인간 시리즈를 재밌게 봤던 것 같아요.

 

Q : 와, 꽤 많이 읽긴 하셨나봐요. 그 평전들 중에서 어떤 평전이 가장 좋았었나요?

 

가연 : 개인적으로는 비트겐슈타인 평전과 루소 평전이 좋았던 것 같아요.

 

 

 

 

 

 

 

 

 

 

 

 

 

 

 

Q : 그러니까 저 두 권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장 권해주고 싶다는 말씀이신가봐요?

 

가연 : 아니요, 그런 건 아니구요.

 

Q : 단답형이라서 생각을 짐작하기가 어렵네요. 좀 더 길게 이야기해주시지 않으실래요?

 

가연 : 사실 내가 좋아하는 평전과 좋은 평전과 차이가 좀 있을 것 같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비트겐슈타인을 좋아하고, 루소를 맘에 들어하니까 저 평전을 좋아하는거죠. 사실 평전이라는게 그렇잖아요. 우리가 어떤 평전을 읽을때 아무 평전이나 집어들고 읽지는 않을 거 아닌가요? 당신도 좋아하는 인물이라던가, 마음에 드는 과학자, 사상가 등이 있으면 그 사람에 대하여 더 알고 싶어서 찾게 되는 일도 있을테니까

 

Q : 하하, 그럼 위에 읽으신 저 분들은 다 더 알고 싶어서 찾아보신거에요? 그건 또 아닌거 같은데.

 

가연 : 예리하시네요. 맞아요, 반드시 읽어야 될 것 같다고 느낌 받은 책들은 또 별로 없어요. 좋아하는 평전과 좋은 평전은 달라요. 좋아하는 평전은 처음부터 대상에 대하여 호감이 있는 상태이지만 좋은 평전은 그런 호감과 상관이 없으니.

 

Q : 가연님께서 좋아하시는 책들이 저 두 권이라는 거죠? 그럼 좋은 평전은요? 어떤 평전이 좋은 평전인가요? 저만큼 읽어보셨으면 나름의 기준이 생길 것 같네요

 

가연 : 개인적으로 좋은 평전에 대하여 몇 가지 기준이 있는데, 평전이라는 말을 한 번 살펴봅시다. 평 + 전이잖아요, 좋은 평전은 첫째로 옳은 (인물에게 호의적이어야 된다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평을 내려야 되요. 결국 저자가 인물에 대하여 어떤식으로든 결론을 내리고 있어야 됩니다. 평가를 내리는 인물을 싫어하든지, 좋아하든지, 아니면 이 인물은 시대상이 이렇게 만들었다든지, 혹은 시대가 그렇더라도 그는 이렇게 하면 안되었었다, 라든지, 이 인물은 정말 특이한 인물이었다.. 등 그런 결론말이에요. 하나의 사실을 두고 평전의 저자가 해석을 하는 거죠. 둘째로 전이란 이름처럼 객관적 사실을 기입을 해야된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객관적 사실을 기입하려면 정말로 많은 사료를 수집을 하는게 옳겠죠?  수집할 수 있는 모든 사료를 수집하지 않는다면 그 평전은 우리의 머릿속에서 구체화되기가 쉽지 않아요. 웃기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평전에 있어선 지엽적이면 지엽적일수록 좋아요. 그런 지엽적이고 사소한 이야기들이 우리의 흥미를 더 자극하거든요. 셋째로 읽기가 좋아야 되요. 아무리 훌륭한 내용이라도 제대로 읽히지 않는 내용은 의미가 없어요. 넷째로 왠만하면 평전의 저자는 평전의 대상이 되는 인물을 깊게 연구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평전의 대상이 되는 인물의 철학을 조금은 덧붙여야만 합니다. 같은 언어권의 사람이라면 더 좋겠지요. 너무 당연한 말같겠지만, 깊게 연구된 평전을 읽으면 그 사람이 하는 이야기에 대하여 더 깊이 고민할 수 있기 때문에 관련된 학자가 쓰는게 옳아요. 같은 언어권이어야 하는 이유는 같은 언어권이어야 평전의 대상이 되는 인물의 미묘한 뉘앙스들을 다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섯째로 주석이 많아야 합니다. 의외로 주석이 몇 장 없는 평전도 있는데, 평전이라면 주석으로 100페이지정도는.. 아 물론 수치는 예시입니디만 참고문헌등을 포함하여서 정말 길게 있어야 합니다. 그런 주석을 통하여 배우는 것이 의외로 많아요.

 

Q : 말씀을 들으니 왠지 꼭 관음증같은 기분이 드네요. 구체적인 예를 들어주세요.

 

가연 : 관음증이라니! 실례네, 정말. 하지만 부정은 하지 않겠습니다. 아마 은근히 그런 부분이 있을런지도 모르겠어요. 아, 물론 제가 그렇다 라는 이야긴 절대 아닙니.. 큼, 어쨌든 다윈 평전, 히틀러 1, 2권, 등이 좋은 평전이에요. 위의 조건들을 다 만족합니다. 물론 비트겐슈타인 평전도 좋은 평전입니다..만 루소 평전은 루소 자신의 '고백'의 비중이 높아서 사료가 좀 더 필요할 것 같아요.

 

 

 

 

 

 

 

 

 

 

 

 

 

 

 

 

Q : 다른 평전들은 좋은 평전이 아닌가요?

 

가연 : 좋은 평전이 아니다, 라고 말할 수는 없겠습니다. 다른 평전들도 좋은 평전들이긴 합니다. 하지만 요건이 한 두개씩 모자란 부분이 있는 평전도 있지요. 예를 들어 스탈린, 강철권력의 경우에는 읽는데 좀 힘들어요. 이게 번역의 문제인지 원래 문체의 문제인지는 모르겠는데, 저자 로버트 서비스의 최근작 '코뮤니스트' 도 은근히 읽기 힘든 것으로 보아 원래 문체가 읽기에 힘든 것 같아요. 거의 비슷한 시대 사람인데도 히틀러 1, 2는 정말 술술 읽히는 문체거든요, 그런데 스탈린은 이상하게도 읽기가 힘들어지더군요. 스탈린이 히틀러에 비하여 흥미롭지 않은 인물은 아닌데.. 아, 히틀러와 스탈린의 이야기가 나왔는데 독재자들, 이라는 책을 한 번 읽어보시면 그것도 좋을 것 같아요.

 

 

 

 

 

 

 

 

 

 

 

 

 

 

 

 

Q : 다윈 평전의 경우엔 여러 판본이 있습니다. 어떤 판본이 보시기에 가장 좋으셨나요?

 

가연 : 음.. 이는 함부로 답하기 어렵네요. 사실 저는 재닛 브라운 판의 다윈 평전은 끝까지 읽지를 못했답니다. 하지만 어설픈 지식으로나마 이야기를 하자면.. 저는 저 한 권 짜리 에이드리언 데스몬드의 평전을 더 선호합니다. 일단은 한 권 이라는 단순한 이유도 있지만, 재닛 브라운의 평전은 다윈이 상대적으로 계획적으로 그려지거든요. 상대방에게 덫을 바닥에 놓고 '이리와, 이리와' 하면서 편지를 보내서 유인을 하는 듯한 느낌이랄까? 하지만 위의 에이드리언의 평전은 완벽주의적인 모습이 보여진달까, 그러면서도 소심한(?) 다윈의 모습이 보여진달까, 그래서 더 호감이 가요. 정말 신기하지 않나요? 같은 사람인데 어떻게 이렇게 다르게 그려지다니. 사료의 양을 보자면 물론 재닛의 책들이 더 많으리라고 여겨집니다. 분량이 분량이다보니깐.

 

 

 

 

 

 

 

 

 

 

 

 

 

 

 

 

Q :  앞서 말한 좋은 평전의 요건을 만족시키지 않아도 인물을 잘 드러낼 수 있나요?

 

가연 : 음.. 예리한 질문을 해주셨는데, 좋은 평전의 요건을 만족시키지 않아도 대상이 되는 인물을 잘 드러낼 수 있답니다. 예를 들어 데리다 평전을 봅시다. 이 평전은 정말 신기한 평전입니다. 잘 읽히지도 않고, 끝까지 읽어도 데리다의 철학이 이해가 가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꼭 데리다를 만난 기분을 주는 평전입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이런 평전은 드물겠지요. 아, 특이한 평전이라고 하니 이 평전도 빼놓을 수가 없네요. 국내 학자가 지은 평전인데 카프카 평전이에요. 카프카에 대한 세밀한 분석과 더불어.. 저자의 대상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맛볼 수 있습니다. 보통 평전은 호불호를 적극적으로는 나타내지는 않거든요. 저 히틀러 1,2의 이언 커쇼만 해도 머리말에서 '사실 히틀러가 싫지만 싫다고 던져둘 수는 없다' 라는 식으로 언급만 하고 본문에서는 거의 티를 내지 않는데.. 이 카프카 평전은 애정이 글에서 묻어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애정이 뭔가 내용을 저해하지를 않지요. 읽기도 쉬우며 - 우리나라의 학자가 써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 뛰어난 평전입니다. 물론 저로선 여간하면 대상과 비슷한 언어권 학자가 썼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지만요.

 

 

 

 

 

 

 

 

 

 

 

 

 

 

 

Q : 그런데 지금껏 이야기하시는 것을 들어보니깐 국내 학자가 쓴 우리 나라 인물에 대한 평전은 소개가 안되고 있네요. 혹시 의도적으로 우리 나라 인물의 평전은 읽지 않으시는건가요?

 

가연 : 의도적으로 피하는 것은 아니구.. 그냥 기회가 없었습니다. 다만 내심 꺼리는 부분이 있기는 한 거 같아요. 그 이유는 별로 대단한 것은 아니나.. 예를 들어서 우리 나라에서 김구 선생을 비난할 수 있을까요? 개인적으로야 자신의 호불호에 따라서 비난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걸 공식적으로 책을 내기는 어렵겠지요. 아, 물론 저는 김구 선생을 비난하지 않습니다, 풋. (비판이 아니라 비난입니다.) 물론 건전한 비판을 지향해야 하고 무분별한 비난은 지양되어야 하는게 당연합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별다른 근거 없는 단순한 비난조차도 못하는데 어떻게 제대로 된 비판을 할 수 있겠나, 하는 생각을 조금씩 해보기도 합니다. 결국 사람의 주장은 가장 먼저 자신의 감정에 의하여 생성되니깐 그들이 결과적으로 이성적으로 내린 판단을 따를 수 있다면 - 자신의 주장을 이성적으로 반추할 수 있다면 - 저는 비난이 선행하더라도 나쁘지 않을지는 모르겠다, 는 생각입니다. 마치 변증법적인 논리랄까요. 정- 건전한 비판, 반 - 비난을 거쳐 합 - 새로운 깊이의 생각.. 이렇게 도식화되겠지요. 우스꽝스러운 이야기겠지만 비난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유연한 사회분위기라면 훨씬 더 나은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외국을 본다면, 자국인인 셰익스피어에 대하여 영국인들은 비난을 퍼붓기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미국인이라면 좀 더 쉽게 비난을 할 수 있을겁니다. 미국인인데 셰익스피어를 깊이 연구한 학자라면 영국인보다는 유연한 생각을 가지고 상대적으로 믿을만한 셰익스피어 평전을 쓸 가능성이 클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뭐.. 하지만 이런 생각에는 크나큰 허점이 있습니다. 그 비난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의 경우 자신들의 생각이 논리적으로 격퇴당하더라도 태도나 의견이 바뀌지 않더군요. 기억에 남는 평전을 들자면 리영희 선생과 함석헌 선생의 평전을 들 수 있겠네요. 특히 함석헌 평전은 추천합니다.

 

 

 

 

 

 

 

 

 

 

 

 

 

 

 

 

Q : 꼭 번역되었으면 하고 바라는 평전이 혹시 있나요?

 

가연 : 정말 많지요. 아브라함 파이스가 쓴 평전류들이 일단 번역되었으면 좋겠구.. 누가 번역 안해주나요? 아니면 벌써 번역되었는데 모르는 걸까나...

 

 

 

 

 

 

 

 

 

 

 

 

 

 

 

 

Q : 곧 읽고 싶은 평전은 어떤 평전들인가요?

 

가연 : 프로이트 시리즈랑 융을 읽고 싶네요. 다만 너무 비싼데.. 다른 책을 사느라 돈을 다 써버려서 구입할 수가 없네요...

 

 

 

 

 

 

 

 

 

 

 

 

 

 

그리고 슈테판 츠바이크가 쓴 평전 시리즈를 보고 싶어요. 특히나 마리 앙투아네트 평전을 꼭 읽어보고는 싶은데.. 이 인터뷰 하면 아래 한 권 좀 안 주나요?

 

 

 

 

 

 

 

 

 

 

 

 

 

 

 

Q : 그럴 돈은 저희도 없.. 마지막까지 고생많으셨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가연 : 안녕히 계세요, 가 아니라 달라고 하니까 바로 도망가버리네요, 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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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19 07: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5-28 0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5-28 11: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5-29 18: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선 2013-05-23 01:51   좋아요 0 | URL
어쩐지 현자의 돌에도 관심이 많을 것 같습니다
<강철의 연금술사> 보셨나요, 저는 애니메이션으로만 봤습니다
마법하고 연금술은 좀 다를지도 모르겠군요

1000쪽이나 되는 책 읽으면 다 생각나나요
얼마전에 도서관에서 <비트겐슈타인 평전> 봤는데, 책이 크더군요
사람에 대한 글은 한번만 읽어봐서는 모를 것 같습니다


희선

가연 2013-05-28 01:47   좋아요 0 | URL
ㅎㅎ 강철의 연금술사는 꽤 오래전.. 연금술에도 신기한 느낌을 많이 받긴 하지만 뭐랄까... 과학적이지는 않지요, 하하하.

다 생각이 난다기보다 읽고 기억하고 잊어버리고 다시 읽고 기억하고 잊어버리는 과정의 연속이랄까.

억지로 다 외우는 게 뭐 중요한 일은 아니지 않겠습니까아, 다 재미있으니 읽는 것에 지나지 않지요


비로그인 2013-06-07 00:26   좋아요 0 | URL
후훗~귀여우신 가연님~ 인터뷰 후에 아래의 책들 중 받으신 게 있으신지 궁금한데요~ㅎ

가연 2013-06-07 12:43   좋아요 0 | URL
ㅎㅎㅎ 인터뷰값을 안치뤄주더군요ㅠㅠㅠㅠㅠ 받은게 하나도 없어요. 공짜 인터뷰에요, 하하하.
 

 

 

 

 

 

 

 

 

 

 

 

 

 

 

 

 

나는 열등감이 상당히 강한 사람이다.


처음부터 이렇게 열등감이 강했던 것은 아니었고, 어렸을 때의 나는 열등감이라고는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는, 자신감이 지나쳐 오만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오만하다는 말이 자만한다는 이야기도 아니고, 거만하다는 이야기도 아니다. 그러니까 이런 식의 오만함, 말이다. 나는 뛰어나니까 당연히 더 많은 일을 해야 되고, 더 뛰어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그런 오만함. 노블리스 오블리제일까?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고, 힘든 문제가 있어도 그 문제가 나의 문제가 된다면, 나는 스스로를 믿었다. 당연히 이정도는 해낼 수 있다고. 혹자는 그랬던 나에 대하여, 그것이 바로 거만하다는 것이다, 라고 할 지 모르겠지만, 그런 거만함과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나는 언제든 다른 사람에게 머리를 숙일 수 있었다. 오만하였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고개를 숙이며 가르침을 청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저런 일을 겪고 오만하리만큼 넘쳤던 자신감은 하나도 남지 않았고,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모든 면에서 열등감을 가지게 되었다. 심지어 누가 접시를 잘닦는다고 해도, 그것에 대해서 '왜 난 설거지조차 제대로 못하지' 라는 열등감을 가질 정도였으니까. 오만하지 않고 열등감에 가득차있던 나는, 자꾸만 스스로가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들었다. 훨씬 더 어렸을 때 같으면 상상조차도 못할 일이었다. 그때는 내가 무슨 행동을 하든, 나는 다 할 수 있어, 라는 마음이 기본적으로 있었기 때문에 언제든 고개를 숙일 수 있었지만, 자신감을 잃어버린 내가 고개를 숙여버리면 그건 정말로 '나는 모자라고 열등하다' 는 것을 인정해버리는 것이 될테니까. 마치 상실의 시대, 에서 미도리가 이야기하는 것 처럼 '부자학생들은 돈이 없다고 빌려달라고 이야기하여도 괜찮았지만 자신이 그런 말을 했다간 정말로 돈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처럼.  

 

저럴 정도였으니 학업에 대하여 내가 품었을 열등감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사실은 당연히 서울대 의대를 갈거라고 생각했다. 그야 모의고사를 치면 항상 점수가 좋았고, 배치표나 추천대학을 보면 늘 고려대나 한양대 의대, 좀 잘나오면 연세대나 가톨릭대 의대 정도는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이정도면 조금만 더 점수를 올리면 쉽게 서울대 의대는 갈거라고 생각했다. 내신도 나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무슨 의대에 꼭 가야지, 의사가 꼭 되어야겠다, 그런 것은 아니었다. 만약에 배치표 정점이 서울대 의대가 아니라 서울대 물리학과, 였다면 주저없이 나는 물리학과에 진학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을 것이다. 결국 무슨 과라도 좋았다. 딱히 무슨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니고 강박적으로 나는 제일 높이 있는 저걸 해야지, 라는 생각을 가졌던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모든 것은 산산조각이 났고, 나는 수능을 두 번이나 쳐야했고, 서울대 의대는 커녕 서울에 있는 의대도 진학하지는 못했다.

 

학교에 들어와서는 늘 열등감에 시달렸었다. 원래는 여기 속하는 사람이 아닌데, 라는 생각도 많이 품었다. 자연스레 학교와 거리를 두게 되고, 밖으로 나돌기 시작하였다. 공강시간에는 도서관에 틀어박혔거나 잔디밭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꽃 사진을 한참 찍다가 포기했다. 병원에 실습 나가게 되었을때는 실습이 끝나면 바로 집이든 어디든 학교와 멀어진 장소에 가서 책을 읽든지 멍하니 있었다. 사실은 의대에 들어와서 좋았던 적 따위 한 번도 없었다. 잠깐 누군가 사귀었을때는 행복했지만 그 이후에 한번도 좋았던 적이 없었다. 내가 정말 의대에 잘들어왔네, 라고 느꼈던 때가 군대를 공중보건의로 가게되었을 때니깐 말다한거다. 그때 말고는 의대든 의사든, 항상 나는 밖에서 떠돌았었다. 항상 나는 의사라기 보다는 과학자를 자처했다.

 

한강을 거닐고 있던 때였다. 학교는 서울에 없지만 병원은 서울에 있었다. 매일 실습이 끝나면 아까 말한대로 나는 집에 가거나, 될수있는대로 병원과 학교서 멀리 떨어진 곳을 거닐고 있었다. 한강도 내가 자주 가는 곳 중 하나였는데, 저녁 무렵에 한강을 걷고 있으면 정말 다양한 사람이 보인다. 조깅을 하는 사람, 자전거를 타는 사람, 개를 데리고 산책을 하는 사람 등. 나 또한 그런 사람들의 일부가 되어 배경으로 녹아들었다. 그때도 마찬가지로 멍하니 강변을 따라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한데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매번 사람이 모인 곳들은 피하며 걸어다녔지만 이상하게도 그때는, 마치 누군가가 나를 잡아당기는 것 처럼, 그곳으로 내 발걸음이 향했다.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옆에 자전가는 아무렇게나 넘어져있고 그 사람은 누워서 입에 거품을 물고 있었다. 그 모습을 뒤에서나마 얼핏 보자 - 그렇게나 의대를 좋아하지 않았던 나지만 - 왠지 나서야 될 것 같았다. 그래,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난 의대생이니까, 곧 의사가 될 사람이니까. 사람이 쓰러진 경우의 응급처치는 우리 모두 배운다. 여간한 공공기간이면 다 배울 것이다, 비단 의사들 뿐만 아니라. 하지만 우리들만큼 그게 강제되어있는 곳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맨날 교수에게 핀잔듣고 환자에게 핀잔듣고 그렇게 실습을 다니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상황에서는 반드시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것을 익히게 된다. 왜? 우리는 이러니 저러니 해도 의사니까. 그런 느낌이 들자 갑자기 불덩이가 내 몸안에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배에 힘을 주고는 주변 사람들에게 외치려고 했다. 여기 의대생있으니까, 내가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실제로 내가 거기에 나섰다하더라도 인공호흡과 가슴을 압박하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때에 비하여 조금더 많은 지식을 알고 있는 지금도 그런 걸 보게 된다면 가슴을 압박할 것이다. 하지만 그때에 비하면 조금 더 노련하게 진행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덜 노련하였던 그때에는 내가 나설 차례가 없었다. 이미 다른 외과 의사가 뛰어들어서 응급 처치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말이지. 공교롭게도 '진짜' 의사가 - 나같은 의대생따위가 아닌 - 그 주변을 조깅하고 있었거든. 다만, 풋, 왜 굳이 인공호흡하면서 자신의 전공과목을 밝혔는지는 아직도 미스테리지만, 풋. 전공을 밝히면 사람들이 더 자신의 지시에 잘 따를 거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의사의 말석에 자리한 뒤 두 번을 아팠다. 한 번은 감기를 정말 심하게 앓아서 일주일동안 앓아누워있었는데, 병원에 갈까 말까, 하다가 결국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았다. 의사가 병원에 가서 진료받는다는게 좀 웃기게 느껴졌었던 것 같다. 엄청나게 인기좋아보였던 그 병원의 원장님은 내가 들어와도 얼굴 한 번 들지 않고 컴퓨터 화면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아픈 곳을 이야기하여도 그냥 고개만 끄덕거리고 날 한 번도 보지 않았다. 3분 진료라던가, 나 자신이 그런 3분 진료를 받자 조금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과학자로서의 나는 그 진료를 비난할 수 없다. 아직 기다리고 있는 사람도 많았으니까. 친절하게 진료를 보다가 오늘 진료를 받고 싶은 사람이 내일로 미뤄지는 그런 일이 생긴다면 그것 또한 불만이 될테니.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습게도 그 3분 진료를 받고 주사를 맞고 약을 먹었는데 낫고 말았다. 그게 나을 때가 되어서 나았던 것인지, 아니면 정말 주사가 독해서 나았던 것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간적 선후관계로서는 분명 병원에 갔었고 낫고 말았다. 나았으니 뭐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두 번째에는 어깨가 너무 아팠다. 자고 일어나 땅을 짚으며 일어나려고 했는데 갑자기 뭔가 우득 하는 소리가 들리고 그 뒤 왼팔이 움직이지를 않았다. 정말 문자 그대로 '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지금에야 생각해보면 그렇게 호들갑 떨일은 아니었던 것 같지만 - 팔의 신경이 눌려서 일시적으로 생긴 현상이었겠지만 - 그당시에는, 그러니까 자신의 일이 되면 겁이 덜컥 나는 것은 사실이리라. 3일이 지난 뒤에도 조금도 호전을 보이지 않아서 바로 병원에 갔다. 이 통증은 심상치 않은 통증인 것 같다고, 분명 뭔가 파열되거나 한 거 아닌가, 싶다고. 병원에서는 몇 가지 물리적 검사를 하더니 전방위가 다 아픈 이런 경우는 짐작이 가지 않는다고 MRI를 찍자고 말했다. 나는 MRI가격을 물었다. 가격은 40만원이었다.

 

우습게도, 만약에 내가 진료실에 그 원장님 자리에 앉아있었다면 나 또한 똑같이 MRI를 권하였을 것이다. 팔 자체가 안움직이는데 무슨 방법으로 진단을 내리겠는가? 현대의학은 근거중심의학이다. 근거가 있지않으면 약을 쓰지 않는다. 그리고 많은 임상적 결과에서 MRI의 연부조직손상에서의 진단적 가치에 대하여 높은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으니. 그런데 막상 나또한 MRI를 아마 찍어야 하지 않을까? 에서 MRI를 찍자, 를 들으니 기분이 확 달랐다. 40만원? 40만원이라고? 헐, 미친거 아냐? 돈이 어딨어, 40만원이. 내가 시원찮은 표정으로 앉아있으니 일단 주사와 물리치료와 약을 먹어보아라, 고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물리치료실로 내려가면서 내내 나는 자본주의와 의료에 대하여 생각하였다. 사실은 우리나라의 의료비는 매우 저렴한 편이다. 외국에서는 지역 병원에서 MRI를 권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상대적으로 의료비가 매우 저렴하기 때문에 MRI를 이렇게 권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외국에서 MRI가 100만원을 넘는 고가의 진단법이라고 하여도 그건 외국의 이야기이다. 외국이야 어떻든, 우리나라에서는 40만원이라고 하면 비싼 느낌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결국 나는 약과 물리치료만 받고 나았다.

 

의사 입장에서는 MRI를 찍는게 합리적이다. 의사들은 항상 불만에 차있다. 환자들은 의료비가 너무 비싼 것 같다, 의사들이 무슨 자기들이 특권계층인줄 안다, 3분 진료다, 쓸데없는 검사를 요청한다 등등의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의사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할 말이 많다. 과학적 근거와 연구를 통하여 연부조직의 손상시 MRI가 나은 것 같다고 나오니 하자고 요청을 하는것이다. 3분 진료라고 이야기하지만 우리나라의 의료 환경은 3분 진료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어있는 환경이다. 믿지 못하겠지만 우리나라는 의료보험료가 다른 나라에 비하여 저렴한 나라다. 여러가지 사정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의사의 진료 시간을 줄여버리게 되는 것이다. 의사들이 특권계층처럼 으시대는 것 처럼 보이는가? 쓸데없는 검사를 시행하려고 하는 것 같은가? 제약회사랑 담합해서 환자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 같은가? 아니다, 이 또한 잘못된 생각이다. 현대 의학의 중심은 근거중심의학이다. 폐렴 증상이 있으면 폐렴 약을 쓰는게 맞다. 너무 간단해보이는 명제이지만 바꿔말하자면 증상이 없으면 우리는 약을 쓰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니 저러니 하여도 환자 입장에서는 MRI는 너무 비싸다. 그래서 환자들도 항상 불만에 차있다.


저렇게 환자의 입장에 있다가 진료를 시작한지 시간이 좀 흘렀다. 최소한 환자에게 해는 끼치지 말자, 라는 다짐을 매번 아침에 눈뜨면 꼭한다. 최소한 해는 끼치지 말자, 최소한 해는 끼치지 말자. 조금이라도 의심스럽고 위험한 증세로 변할 가능성이 있으면 큰 병원으로 꼭 보내자. 학생 때는 몰랐지만 직접 진료를 하면서부터, 내가 내 손에 쥐고 있는 권한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환자의 증세가 꼭 교과서적으로 들어맞지는 않는다. 우리는, 그러니까 의사는, 의사로서의 나는 최대한 모든 가능성을 생각해야만 한다. 그래서 큰 병원에 가보시라는 권유를 종종 하는 편인데, 환자분이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실때면, 어떻게 해야 할 지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더 강하게 병원에 가셔서 정밀 검사를 받으시라고 권해야 하는 걸까, 아니면 그냥 이정도 권하면 된걸까, 라고. 환자들로서는 이 병원가도 시원찮고 저 병원가도 시원찮고, 환자 뺑뺑이 돌리는 거 아니냐 생각하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결국 결정을 내리는 것은 나다. 내가 무엇인가를 놓쳐서, 혹은 대수롭지 않게 여겨 무슨 문제가 생긴다면 그건 결국 죄이다. 여기서 할 수 있는 처치라면 여기서 할 것이다. 하지만 할 수 있는 처치의 범위를 벗어나는데도 붙잡고 있다면, 그것은 죄이다. 선은 베풀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죄는 짓지 말아야 할 것이 아닌가?

 

그냥 자연인으로서의 나는, 가운을 벗어둔 상태의 나는, 더러운 부분은 잘 만지지 않고 힘든 상황은 피하려고 한다. 하지만 가운을 입었을 때의 나는, 그리고 설령 입지 않았더라도 의사로서의 내가 필요한 상황이라면 '의사이기에' 아무리 더러운 환부라도 가까이 가서 살펴보고, 좀 힘들더라도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모르겠다, 이런걸 무슨 사명감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이것은 소방복을 입은 소방관이, 평소였다면 뛰쳐나왔을 불길속으로 뛰어들어가는 것과 같다. 하지만 그런 것으로 칭찬을 받아야 할까? 솔직히 말하면 당연한 거다. 내가 쓰러진 사람에게 응급처치를 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내가 쓰러진 사람에게 응급처치를 해야 하니까 하는 일이다. 이런 당연한 일에 대하여 무슨 답례나 칭찬은 사실은 필요가 없는 것이다. 소방관이나 경찰관들 또한 내심으로는 당연히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이니까, 라는 생각을 품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렇게 생각은 하지만, 그래도 가끔씩 칭찬을 들으면 좋을 때가 있다. 진료를 하는데 어느 분이 '좀 다르시네요.' 라는 말을 했었다. 난 순간 놀라서, 내가 뭔가를 잘못한건가, 하고 얼굴을 굳히고 쳐다보았는데 그 사람은 씩 웃고 있었다. 그리고는 말을 이었다. '참 꼼꼼하게 봐주시네요, 환자 많이 보시면 이것도 힘드실텐데' 그때 여전히 얼굴은 굳어있었지만, 그리고 뭐라고 답해야 할 지 몰라서 그냥 의사니깐요, 라고 말하고 얼버무렸지만, 왠지 기분이 좋았다. 난 그동안 실습을 돌때 교수들이 환자들이 감사의 인사를 표할때 가장 행복하였다, 라고 말하면 위선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냥 우리 앞이니까, 저런 말을 하는 거겠지, 라고. 하지만 막상 내가 이런 일을 하다 보니 솔직히 기분이 정말 좋았다. 의사를, 의대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나인데도. 특별히 의사가 되고 싶어서 의대에 온 것도 아니고 그냥 방황하다가 들어왔으면서도. 난 여전히 내가 앞으로 계속 의사를 할지 조차도 잘 모르고, 왠지 내가 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지 않을까, 끝없이 방황할 것 같지만, 항상 열등감에 시달리고 있지만 - 비록 예전보다는 열등감이 많이 줄었다 - 그리고 여전히 고집스럽게 과학자라고 스스로 지칭하지만, 이런 칭찬을 들으며 산다면, 의사로 사는 것도 조금은 생각보다 괜찮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를 칭찬할 필요도 없고, 좋아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너무 감정적으로 미워하지는 말아줬으면 좋겠다. 감정적으로 미워하면서 '아, 쟤들 하는 거 다 제약회사의 음모야', '맨날 검사하라고 돈쓰게 만들지', '병 제대로 낫게도 못하잖아' 등으로 말하다가 병을 치료할 적절한 시기를 놓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예방접종? 꼭 해야 된다. 몇 십년 동안의 연구 결과를 근거로 이전에 비하여 발병률이 유의하게 줄어든 것이 사실이니까. 암치료? 사실 가장 권장할만한 방법은 수술이다. 그러니까 수술을 할 수 있으면 수술을 하도록 권한다. 수술을 할 수 없을때 항암요법이나 방사선 요법을 사용한다. 또는 수술과 함께 항암요법을 시행하기도 한다. 이 또한 논문에 몇 년씩 개정되어온 근거들이다. CT, MRI의 방사선? CT는 방사선이 나오겠지만 MRI는 자기공명촬영이다. 방사선이 나오는 게 아니다. 돈독 오른 의사를 어떻게 믿냐고? 위의 책 제목이 '의사를 믿지 말아야 할 72가지 이유' 이다. 과학적으로 따지면 하나부터 열까지 다 태클을 걸어야겠지만, 그런 것을 하더라도 의사를 믿지 않는 사람은 끝까지 믿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믿어달라. 우리는 당신이 낫기를 바란다. 이건 진심인 것 같다. 위선같지만, 진심인 것 같다.

 

 

 

 

 

 

 

 

 

 

 

덧. 사실 에반게리온에 대하여 아주 아주 아주 긴 글을 쓰고 있었는데 자동저장이 잘못되었는지 날려먹었다. 엄밀히 말하면 반 정도 날려먹었는데, 도저히 다시 쓸 엄두가 나지 않아서 그냥 지워버렸다. 정말 심혈을 기울여 내 에반게리온 팬질의 모든 능력과 지식과 분석을 담은 대작을 썼는데 이렇게 날려먹어서 참으로 아쉽다.

 

덧덧. 알라딘에서 책 배송시 샘플북을 넣는 경우가 있다. 가끔은 그 샘플북들을 보면서 오, 이 책은 괜찮아보이는데, 하는 생각을 가질 때도 있지만, 이번엔 잘못 넣은 것 같다. 딱 봐도 배송지가 의료기관인데 그 택배에다가 저런 도발적인 제목을 가진 '의사를 믿지 말아야 할 이유' 를 넣어주는 패기란, 풋. 아마 그 샘플북을 보지 않았다면 이런 글따위, 안썼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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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3-05-14 21:00   좋아요 0 | URL
가연님, 고생하고있네요. 나야말로 가연님의 안부를 가끔 물어냐겠는데요? 이러니저러니해도 가연님 특유의 긴 글, 반갑게 잘 읽었어요. :)

가연 2013-05-15 12:29   좋아요 0 | URL
ㅎㅎ 서재에 들러서 글을 읽고는 하는데 덧글을 못남기겠어요. 다락방님 서재 요즘 너무 19금삘 나는 거 같아요, 하하. 처음에 적응할때는 고생했는데 지금은 일할땐 신경쓰이고 일안하면 쉬고 그러죠.

2013-05-14 22:26   좋아요 0 | URL
저도 잘 읽었어요. 의료를 하는 과학자셨군요. 에반게룐 글 꼭 써주십사 부탁하려고 로긴했습니다! 왕년의 에바팬으로서 가연님 글 꼭 읽고 싶다는...^^

가연 2013-05-15 12:31   좋아요 0 | URL
섬님 오랜만이세요. 엄밀히 말하면 지금은 공무원이죠, 풋.

에반게리온 글은 언제 쓸지는 모르겠어요.. 너무 충격이 커서...ㅎㅎㅎ 에바 팬이신 건 제가 예전에 알아봤지요, 푸하하.

희선 2013-05-15 01:12   좋아요 0 | URL
저는 의료드라마 아주 좋아해요 드라마와 현실이 같지는 않겠지만, 그런 드라마 보면서 예전에는 나도 공부 좀 잘해서 의사가 되는 것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답니다, 사실 그런 생각은 아주 잠깐입니다 어린이가 할 법한 그런 생각을 오래 했던 것 같네요^^

하지만 저는 병원에 거의 안 갑니다 아픈 데가 없기도 하지만 본래 병원에 가는 거 좋아하지 않아요 감기도 걸리면 그냥 나을 때까지 있어요 이것은 그렇게 자랑할 만한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네요 그냥 놔두면 더 안 좋아지는 것도 있으니 말입니다 아직은 괜찮은 것을 보니 아주 나쁘지는 않았던가봐요

제가 바라는 것은 크게 아프지 않고 살다 죽는 겁니다

거의 모든 사람은 의사를 그렇게 편하게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아니 무섭게 여기지 않을까요 잘못된 생각인지도 모르겠지만... 가연 님은 언제나 친절한 의사 선생님이시기를 바랍니다^^

에반게리온에 대한 글 아깝네요 그러니까 긴 글을 쓸 때는 다른 곳에 먼저 쓰는 게 좋습니다 이런 곳에서는 잘못하면 아주 없어지니까요 저는 글을 날린 적이 몇 번 없습니다(자랑^^)
언젠가 다시 쓰고 싶어지면 좋겠네요
에반게리온은 다른 무엇보다 사랑받고 싶어하는 아이들(사람) 이야기 같습니다


희선

가연 2013-05-15 12:33   좋아요 0 | URL
ㅎㅎ 아픈데 없으면 병원에 안가는게 낫죠. 건강검진만 꼬박꼬박받으면.. ㅎㅎㅎ 저도 잘 병원에 안가는 편인데, 저때 감기걸렸을때는 진짜 너무 아파서.. 정말 아프면 병원에 가는게 맞는거 같아요, 풋

마립간 2013-05-15 10:39   좋아요 0 | URL
제가 생각한 의료계의 모순은 환자가 잘 치료되었을 때, 의사는 명성과 돈을 얻고, 환자는 약간의 생명 연장이나 편안을 얻지만, 그 얻게 된 생명 연장이나 편안이 기대에 못 미치고, 그에 비해 기대보다 과도한 경제적 비용을 지불하는 것입니다. 또한 비용 대비 효과에서 기준점을 의학적(과학적)인 것에 근거하기 보다 사회경제적인 것에 근거하는 경우가 맍죠. 그 결과로 자연스럽게 빈민층은 고민을 하게 되고요.

가연 2013-05-15 13:00   좋아요 0 | URL
음.. 의사는 명성과 돈을 얻고.. 라는 부분이 자꾸 눈에 밟히네요...ㅎㅎ 의사에 대한 인식이 참 안좋긴 하나봅니다, 풋.. 말씀하신 요지가 약간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는데, 의사가 명성과 돈을 얻는 것에 비하여 환자가 느끼는 만족감, 생명연장이 훨씬 덜하다, 그게 모순인 것 같다, 라는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 의사가 돈을 버는 만큼 생명연장이 되어야 한다, 는 말씀이시라면.. 조금 잘못된 부분이 있는 것 같은데.. 각 직업들 모두 애환이 있는데 의사 또한 애환이 없을리가 없겠지요.. 돈을 버는 사람은 또 잘 벌고 못버는 사람은 그다지 잘 못버는 경우도 많고.. 단적으로 말하면 환자가 내는 돈이 그대로 의사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것은 또 아니죠. 저야 풋내기라서 의료계 모순에 대하여 뭐라 운운하기엔 모자라지만, 그리고 제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객관적으로는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 같지만.. 구조적인 문제도 분명 있는 것 같아요, 의료 수가, 현재 의료의 체계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단순히 두 집단의 정보비대칭성이라고 보기엔 조금 더 복잡한 게 사실이지요. 그래서 글에다 모두가 불만에 차있다, 라고 끄적여놓기도 하였답니다.

사회경제적인 것에 근거하는 경우가 많다는 말씀에 대해서 동감합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사회경제적인 비용을 줄이기 위하여 저런 책들에 빠지는 것은 더 위험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지울 수가 없네요. 가장 좋은 건 환자를 보면 바로 '어? 여기가 이상이 있네? 이것을 주면 바로 낫겠군' 이라고 판단을 내리는 거겠죠. 그러면 모두가 행복하겠지만.. 아무래도 사람의 상태는 워낙 복잡하다보니..ㅎㅎ 그렇게 들어맞기가 쉽지가 않으니... 다만 뭐랄까, 저같은 밖에서 떠도는, 의사에 대해서 자부심같은게 그다지 없었던 사람조차도 환자를 보다보니까 아, 이 사람을 낫게 해야지, 라고 생각이 들던데.. 오랫동안 진료를 하거나, 대학에 있거나 하신 분들이야 저보다 훨씬 환자에 대하여 신경을 많이 쓰지 않을까, 정도이려나요

마립간 2013-05-18 15:43   좋아요 0 | URL
의사가 명성과 돈을 얻는 것에 비하여 환자가 느끼는 만족감, 생명연장이 훨씬 덜하다, ; 의사 명성과 돈을 얻는 사실과 환자가 지불한 것에 비례하여 만족감이 덜 하다는 뜻으로 쓴 글입니다. 가치 판단에 앞선 제가 한 사실 판단입니다.

2013-05-18 15: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연 2013-05-18 20:31   좋아요 0 | URL
ㅎㅎ 음, 사실 판단이라고 말씀하시면 저로서는 할 말이 없긴 하네요. 하지만 저로서는, 설령 그렇더라도 저런 책에 빠지는 건 위험하지 않는가? 라는 말을 되풀이 할 수 밖에 없네요.

왠지 톱니바퀴가 맞물리지 않는 느낌이 드는데, 글이 의료계 모순을 집중적으로 다룬 글이라면 저 또한 모순에 초점을 맞추어서 답변을 드리겠지만.. 제가 모순에 대하여 깊은 글을 쓸 만큼 경험이 일천하기도 하고.. (지난번 댓글에서 풋내기라고 스스로 지칭하였던 것 같네요) 이 글의 내용은.. 저런 책들의 정보는 좀 위험하다, 라고 말을 하고 싶었던 겁니다. 바로 전 댓글에서도 그렇게 답을 단 것 같은데.. 그러면 왜 이런 형식을 취하였는가? 사실 과학적으로 이 책이 이렇다, 저렇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그다지 효과가 없다고 판단했었기 때문이지요. 많은 분들도 자세히 읽어본다면 분명 뭐가 잘못된 부분인지를 깨달으리라고 여겼었습니다. 하지만 왜 이 책이 책 정보를 보면 호평일색일까요? 결국 과학적인 문제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었던 겁니다.. 그래서 차라리 진정성이란게 의사란 직업을 가지는 사람들에게 있기는 있다, 라는 것을 이야기하는게 낫겠다, 라고 여긴겁니다. (제 글에 대하여 이렇게 해설하니까 솔직히 정말 부끄럽네요... 그만큼 글을 제대로 못썼다..라는 말이 될테니) 글을 불분명하게 쓴 것 같네요. 경험을 썼더니 이야기하고자 하는 말이 좀 흐리게 되어버렸네요

2013-05-19 0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5-20 08: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05-28 0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많은 사람들을 영웅에 대한 동경심으로 이끌었던 작품이 있다면 바로 삼국지이리라. 이 삼국지에는 재미있는 말들이 전해져 오는데, 각각 삼국지를 세 번 읽은 사람과는 상종하지 말라, 혹은 세 번 읽은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라, 등의 어구들이다. 그러니까 세 번 넘게 읽으면 너무 꾀가 많아져서 괜히 속아넘어 갈 수 있을터이니 상종하지 말라, 라는 말이 있는가 하면, 세 번 정도는 읽어야 세상을 보는 눈을 기를 수 있을터이니 세 번은 넘게 읽어라, 라고도 한다. 둘 중 어떤 말이 원본일런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세 번 넘게 읽은 사람과 상종하지 말라, 라는 말은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 같다. 그도 그럴게 요즘 삼국지를 세 번 넘게 읽은 사람은 정말 많을 것 같으니. 어렸을때부터 삼국지 만화를 읽고, 나관중의 삼국지 연의를 읽고.. 이 판본 저 판본 읽다보면 삼국지를 세 번 넘게 읽은 사람들은 정말 많을 것이다. 특히나 근처 도서관에 가서 삼국지 책을 한 번 빌려보라. 표지가 닳고 닳아 너덜너덜한 상태인 책이 대부분이리라. 하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세 번 넘게 읽었을텐데도 세상에는 꾀가 없이 당하는 사람들이 속출한다. 아니, 꾀가 있더라도 정말 억세게 강한 운이 따라주지 않는 한 여간해서는 큰 그림을 뒤집을 수 있을 정도는 아니다. 개천에서 용나는 그런 세상은 멀리 지나가버린 것이다. 그런 사회라면 꾀가 없는 것과 있는 것의 차이는 없지 않을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간해서는' 이라는 말을 붙이지 않을 수가 없다. 여러 번의 가능성 중 하나, 어느 한 번은 꾀로 세상을 뒤집을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어렸을 때 삼국지를 접한다면 주로 만화로 삼국지를 많이 접했을 것이다. 그런데 삼국지가 워낙 유명한 작품이다보니 만화도 여러가지 판본이 있다. 가장 많이 알려진 판본이 아마 요코야마 미츠테루가 그린 아래의 60권 삼국지이리라. 어릴 때 많은 신문 광고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덤으로 신문의 한 면을 차지하고 있었던 채치중의 만화 중국 고전도 흥미로웠지만 말이다. 이 판본 외에는 일지매 등등을 그렸던 고우영의 삼국지도 잘 알려져 있을 것이다. 각각 장단점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요코야마 미츠테루의 작품의 손을 더 들어주고 싶다. 물론 이는 요코야마 미츠테루의 작품을 먼저 접했기 때문에 추억이 덧붙여져 더 높은 평가를 내리는 것일 수도 있겠다. 몇 가지 기억나는 부분을 들자면, 미츠테루의 작품은 대사나 배경 설명이 만화치고는 제법 긴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만화로 그렸으니 내용이 부실할거야, 라는 염려는 대부분의 경우 하지 않아도 좋다. 물론 나로선 그런 부분을 좋아하지만 가볍게 읽기는 적절하지는 않다, 라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작가가 그다지 관심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정 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정말 큰 사건인데도 단지 몇 장 언급하고 지나간다거나, 하는 모습도 있기에 이 책만 읽고 난 삼국지를 다 읽었다, 라고 여기기는 힘드리라. 고우영 삼국지의 경우에는 상당히 익살이 섞여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익살 뿐만이 아니라 작가 본인의 재해석이 상당히 자주 들어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런 재해석이 지나친 재해석처럼 여겨지지 않고대체로 뛰어난 독자적 시각을 보여주던 것이 바로 이 고우영 삼국지의 장점이다. 다만 작가가 지나치게 개입하는 부분은 있는 것 같다. 고증에 대해서는 나로서는 확실히 어떤 부분이 더 고증을 잘 따랐나 판단한 여력이 없지만, 고증이 잘못된 부분이 있더라도 그 부분은 당시 시대상 적어도 인터넷이 지금만큼이나 활성화 되지는 않았을터이니 전문적 지식을 파악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을테니 어느 정도는 넘어갈 수 있을 것이다.  

 

보통 이렇게 만화로 삼국지를 접하고 나면 그 다음 순서는 삼국지연의, 나관중 저, 를 읽게 될 것이다. 그런데 이 삼국지연의는 그 번역과 평역이 많아서 무엇을 읽어야 할 지 분별하기가 쉽지 않으며, 대개 다른 사람이 자주 보는 책을 보게 된다. 자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책은 이문열 평역이리라. 이문열 평역에 대한 비판은 제법 잘 알려져 있으니 여기서 굳이 많이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세 부분만 언급하자면 먼저 이문열 판은 내용에 오류가 있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문체가 상당히 현대적이다. 문체가 현대적이라는 부분은 도리어 장점이 되기도 하는데, 그 현대적인 부분때문에 많은 독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삼국지연의 자체가 고전소설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문체 자체가 좀 옛스러워도 좋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는 없다. 개인적으로는 가독성을 더 높게 평가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문열 작가 본인의 개입이 좀 지나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야기를 잘 읽어나가는데 갑자기 작가가 끼어들어서 흐름을 끊어버린다면 좀 이야기의 맥이 끊기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주관적 상황 설명을 할 것이라면 처음부터 그렇게 계속 서술해나가는 편이 일관성 측면에서 나을 것 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런 부분에도 불구하고 이문열 평역의 삼국지는 가장 무난한 삼국지에 속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문열 평역 보다 더 쉽게 읽었던 책은 왼쪽의 삼국지, 그러니까 김홍신이 평역한 삼국지였다. 이전에 1997년에 나왔던 판본을 읽었고, 그렇기 때문에 그 판본으로 이야기하자면 이 삼국지는 이문열의 판본에 비하여 작가의 개입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내용에 몰입하기가 훨씬 쉬웠던 것 같다. 물론 이 삼국지 판본도 마찬가지로 고증의 문제나 문체의 문제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왼쪽의 책은 개정판인 것 같은데 기존 10권을 5권으로 줄였다. 위의 이문열 책이나 김홍신 책 중 어떤 책을 고르냐, 와 같은 문제는 사실 취향 문제이리라. 하지만 기본적으로 두 책은 삼국지연의, 라는 큰 틀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완전히 궤를 달리하는 삼국지연의 번역이 있다. 그것은 장정일 삼국지이다. 장정일 삼국지는 끝까지 읽지 못하고 주요 부분만 잘라서 읽어보았었다. 도원 결의를 하는 부분, 황건적의 난과 동탁의 전횡, 공명이 오나라에 가서 설전을 벌이는 부분 등 그런 부분을 읽었을 때 느낀 솔직한 심정은 뭔가 너무 다르다, 라는 것이었다. 기존에 내가 알던 삼국지와는 너무 다르달까, 그래서 적응하기가 쉽지 않은 그런 내용이랄까. 아예 삼국지라는 이름만 가져오고 완전히 본인이 새롭게 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 상당히 주관적인 경향이 강하다. 이 부분은 매우 호불호가 갈릴 것이다. 그리고 나로서는 '불호' 다. 개인적으로는 추천하지 않는 책이다. 중화사상을 극복하겠다, 라고 야심차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도리어 그 관념에 지나치게 사로잡힌게 아닐까? 아직 확실하지 않은 설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경향도 있다. 하지만 물론 이 주관적이고 주체적인 부분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존재할 것이다. 오나라에서의 설전 부분은 상당한 명장면이었다. 다른 삼국지 평역에서도 멋있게 나오지만 이 책에서는 더욱 제갈량의 모습이 생생하게 나타나 있다. 

 

 

이쯤 되면 다른 누군가의 생각이 섞이지 않고 온전한 삼국지연의를 즐기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위하여 번역에만 몰두한 책들도 있다. 범우사의 원본 삼국지, 그리고 김구용 삼국지이다. 범우사의 책은 그다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제법 읽을만한 책이다. 김구용 판본이나 범우사 황병국 판본이나 둘 다 사실 문체 자체는 위에 소개하였던 책들에 비하면 좀 딱딱한 편이다. 아무래도 한학자에 더 가까운 인물들이다 보니 소설적 기법이나 윤색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이 책들은 그야말로 꼼꼼한 번역들이다. 번역의 옆에 작가 자신의 생각을 끼워넣거나 (평역), 완전히 재창조하는 것을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겠지만, 그런 것들은 원본을 기초로 하는 것이다. 원본 없이 그런 평역이나 재창조가 있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앞서 말했던 평역들에는 자신의 생각을 덧붙일 수 없겠지만, (이미 작가에 의하여 판단이 내려진 책들이기에) 이런 꼼꼼한 번역을 기반으로 하는 삼국지에는 도리어 자신의 생각을 덧붙일 수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나관중의 삼국지연의 자체도 사실은 소설이다. 제갈량은 실제로 무슨 기문둔갑을 펼쳤던 인물은 아닐 것이다. (그런 비슷한 제의를 했었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과연 실제 역사와 얼마나 차이가 있는 것인지 궁금하지 않은가? 사실은 정사가 있다. 정사 삼국지, 라는 이름인데 진수가 쓴 역사서이다. 먼저 저자에 대하여 이야기하자면 제갈량에게 목이 베인 진식의 아들이라는 설이 많은데, 사실 그 설이 옳은지는 알 수 없다. 뒷받침하는 근거가 좀 부족하기 때문이다. 촉서, 위서, 오서, 이렇게 나누어져서 번역되어 있는데, 삼국지연의가 역사와 어떤 관계일까, 하는 궁금증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한 번 들춰볼만도 할 것이다. 다만 문제점이 있는데, 이 책은 소설책이 아니다. 역사책이다. 그리고 그 점 만큼 큰 문제점이 없다. 읽기가 좀 힘들다. 나 또한 위서 부분만 조금 들춰보다가 접었다. 하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읽는다면 삼국지연의서 그려진 인물들에게서 베일을 한 꺼풀 벗겨낸 모습에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 덧붙인다면 넷에서 정보를 모아보았을때 대부분의 번역서가 그렇듯 이 책도 번역에 대한 논란에서는 비껴나가지 못한다고 한다. 한문 독해를 하지 못하는 나로서는 그 논란에 끼어들수도 없고 옳고 그름을 이야기할 수도 없으며, 다만 여러 한학 권위자들의 정사 삼국지에 대한 번역이 활발히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질 뿐이다.  

 

우리 나라에서 삼국지 인물 중 가장 좋아하는 인물이 누군가? 라는 질문을 한다면 유비가 가장 많은 비유를 차지한다고 한다. 중국에서 같은 질문을 하면 관우 또는 조조를 꼽는 경우가 많고, 일본의 경우 제갈량을 꼽는다고 한다. 물론 꽤 옛날 이야기일테고 지금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니저러니해도 저런 질문이 있다는 것 자체가 삼국지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강한 캐릭터성을 보여 주는 부분이리라. 조조나 유비, 제갈량은 매우 흥미로운 인물들이고, 이들 인물에 대하여 많은 책들이 나와있다. 왼쪽의 책들은 조조에 대한 책들인데, 오른쪽의 조조 평전이 더 잘 알려진 책으로 보인다. 내가 언급하고자 하는 책은 제일 왼쪽의 용인술의 대왕, 조조다. 이는 상당히 저자가 공을 들였다고 할 수 있을 만한 책인데, 몇 부분만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가장 먼저 이 책을 넘길 때 느낄 수 있는 감정은 아마 당혹감이리라. 한자가 너무 많이 페이지를 차지하고 있으니 눈에 잘 들어오지를 않아 계속 읽어나가기 힘들다, 하지만 어린시절에서부터 점차 나이가 들 때까지 구성되어있기에 꾸준히 읽다보면 또 읽혀질 것이다. 책의 뒷부분에는 별도의 평전 부분을 마련하여 조조에 대한 평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다만 조금 조조의 변명에 가까운 느낌을 준다는 것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없는 것이, 조조가 저지른 비판 받아 마땅할 행위를 역사적 맥락을 잘 고려를 해야 한다, 등의 말을 하기 때문에 그렇다. 이건 책 내용과는 관계가 없는 여담인데 종이질이 너무 좋다.

 

사실 정말 내가 많이 찾아 읽었던 책들은 제갈량에 관련된 책들인데, 생각보다 제갈량에 관한 책들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다. 몇 몇 기억에 남는 책들은 다음과 같다. 왼쪽에 보이는 책들은 사실 같은 책들이다. 먼저 공명의 선택, 이라는 책이 먼저 출간되었었고, 그 이후 제갈공명, 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어져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문체가 소설에 더 가까워 읽기가 쉽다. 역사적 사실과 소설이 제법 잘 결합되어 있다. 다만 제갈공명의 일대기를 그대로 따라가다보니 다른 주위의 이야기는 좀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것은 다른 삼국지연의 등을 읽음으로써 보충될 것이다. 제갈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 쯤 들고 읽어볼 만 하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일지도 모르겠지만 제갈량도 병법책이 있다. 제갈량의 병법은 병법 24편,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데 내가 아는 바로는 대략적인 목차정도만 남기고 지금은 소실되었다. 만약에 지금까지도 전해져 내려온다면 매우 뛰어난 책일테지만, 정말 아쉬운 일이다. 그런데 저 병법 24편은 사실 제갈량이 썼되 제갈량이 펴내지는 않았다. 그럼 누가 펴냈는가? 그것은 위의 정사 삼국지의 저자 진수가 펴낸 것이다. 전하던 제갈량의 글들을 한데 묶어 병법으로 펴낸 것이다. 만약 그 책이 지금껏 내려왔다면 손자병법과 쌍벽을 이루고 있지 않을까? 하지만 진수의 생각은 좀 달랐던 모양이다. 진수는 제갈량의 병법 24편을 두고 번잡하다고 일렀다. 사실 어쩌면 번잡할 수 밖에 없었을런지도 모른다. 진수가 묶은 것은 단순히 병사를 다루는 일 뿐만 아니라 장수 등 거의 전반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이 병법 24편을 두고 제갈량집, 이라고 일컫기도 한다. 어? 그런데 방금 난 병법 24편은 소실되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병법 24편의 다른 이름이 제갈량집, 이라고도 하였다. 그런데 바로 위의 책의 제목이 제갈량집이다. 어떻게 된 것일까? 그것은 저 홍익출판사에서 나온 책은 편의십육책, 이랑 장원, 를 엮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편의십육책, 장원, 은 제갈량집, 목차에 나오지 않는다. 그리하여 위서 논란이 상당히 컸던 책들이다. 다만 아직까지 전해져 내려온 문헌 중 제갈량이 썼다고 여겨진 책들이 이 정도 책들 밖에 없기에 울며 겨자먹기로 저렇게 제갈량집, 이라고 묶은 것이 아닌가, 한다.  

 

삼국지는 모두가 알다시피 대중문화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가장 대표적으로 예를 들 수 있는 것이 삼국지 시리즈, 라고 불리는 게임시리즈인데, 코에이에서 만든 이 게임은 아직도 많은 이의 향수를 자극하는 게임이다. 나는 삼국지 5까지 해봤는데 개인적으로 게임성은 삼국지 3이 가장 뛰어난 것 같다. 랜덤으로 장수를 생성시켜서 자신의 나라를 만들고 이윽고 천하통일을 한다. 삼국지연의를 읽으며 한 번쯤 저 시대에서 활동하여서 이름을 날리고 싶다, 라는 생각을 가져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게임에 빠져들었으리라. 그리고 삼국지 5에 이르면 다양한 특기가 생겨서 훨씬 게임을 즐겁게 즐길 수 있다. 수행을 시켜서 장수의 능력치를 향상시킬수 있고 좌자, 남화노선, 사마휘 등의 신선을 등용시켜서 전투를 할 수 있다. 이들 신선은 환술과 도술을 잘 쓰기에 전장에 큰 역할을 할 수도 있고, 가지고 있는 보물로 능력치를 매우 높일 수 있다.

 

이 뿐만 아니라 삼국지 영걸전 시리즈도 매우 잘 알려져 있는 게임 중 하나다. 영걸전, 공명전, 조조전 이렇게 영걸전 시리즈는 삼국지 시리즈와 나란히 뛰어난 작품들이라고 인정을 받고 있다. 공명전과 조조전도 재미있지만 영걸전 시리즈의 그 극악같은 난이도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적과 아군의 전력차가 이렇게 큰 게임은 정말 처음이었고, 그 이후에도 이정도로 차이가 큰 게임은 찾지 못했던 것 같다. 결국 유비의 레벨을 99만드는 비법을 이용하여서 게임을 하였던 경우가 매우 많았다. (심지어 레벨 99를 만들어놓았는데도 게임이 쉽게 풀리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능력치와 레벨을 조정하여 여러명의 레벨을 올려둔다면 게임이 훨씬 쉬워지지만 말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성 안에서 백성들에게 말을 걸면서 마치 본인이 그 시대에 잠깐 머무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영걸전 게임의 가장 큰 매력은 유비 중심의 역사를 다시 만들 수 있다는 점이었다. 유비가 실제 역사에서는 이릉 전투에서 패배하고는 백제성으로 물러나 끝내 숨을 거두고 말지만, 이 게임에서는 잘만 한다면 유비와 관우 모두를 살려서 대체 역사를 쓸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시나리오를 다 따라가 조비를 궁지로 몰았을 때 나타나는 반전은 아직도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대중문화에는 게임만 있는게 아니다. 만화도 빠질 수 없다. 용랑전과 같은 삼국지의 배경을 빌려온 만화도 있겠지만, 삼국지 세계관에서 나름 창작해서 그려낸 만화들도 있다. 가장 먼저 언급한 고우영이나 미츠테루 삼국지가 삼국지연의 얼개를 그대로 따라간다면, 여기서 언급하는 만화들은 그야말로 극화체로 작가의 세계를 아낌없이 나타내는 만화들이다. 그 만화들이라면 바로 왼쪽의 만화들, 화봉요원과 창천항로이다. 창천항로는 조조 중심 만화인데, 보통 삼국지에서 인물간 관계를 조조와 유비를 대척점에 놓는 경우가 많아서, 조조를 띄운 만큼 유비도 높게 평가를 받게 된다. 창천항로의 조조가 거의 신에 가까운 존재로 묘사된다면, 유비 또한 그 조조에게 끝까지 맞서는 유일한 맞수로 그려진다. 선이 강한 그림체와 멋진 대사들은 남자라면 한 번쯤 보면서 고개를 끄덕거리게 만들 것이다. 다만 제갈량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창천항로를 보면서 그다지 기분이 좋지는 않을 것이다. 창천항로에서 그는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물론 작가가 이렇게 그린 이유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나는 개인적으로 화봉요원을 더 재미있게 보았던 것 같다. 화봉요원은 조운과 사마의의 이야기인데, 여기서 나오는 제갈량은 신기묘묘한 존재로 저 만화 세계관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로 나타난다. 그러고보니 화봉요원과 창천항로 모두 유비와 조조 둘을 대척점에 놓고 전체적 세계관을 꾸려나간다. 서로가 서로의 유일한 맞수로 말이다.

 

이런 라이벌 형상은 드라마에서도 그대로 이어지는데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드라마, 84부작 삼국지도 그렇지만, 2, 3년 전에 새로 방영된 삼국, 에서 그 빛을 발한다. 비록 이 알라딘에서는 아직 상품으로 올라와 있지 않지만 말이다. 조조와 유비만 두드러지지는 않는다 삼국, 에서는 제갈량은 매우 젊고 미청년으로 등장하는데, 연의에서처럼 책략을 펼치기는 하지만 쉽게 다른 장수들, 관우나 장비를 휘어잡지는 못한다. 특히나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유비가 오나라와 결혼동맹을 맺었을 때 관우와 장비가 매일 제갈량에게 찾아와서 언제 구할거냐고 난동을 피운다. 그러던 어느날 관우와 장비는 제갈량의 책상을 뒤집어 엎어 버리며 화를 벌컥 내고, 제갈량은 망연자실하며 한 구석에 서 있다가 뒤집힌 책상을 바로 놓으려는 사람에게 짜증을 낸다. '다시 바로 해봤자 소용이 없다, 내일 또 어차피 저 놈들이 와서 다시 뒤집을테니 뭐하러 바로 하냐' 라고. 그렇게 고생하는 모습을 보면 84부작 삼국지에서의 제갈량과는 정말 비교가 많이 된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저 DVD세트는 84부작 삼국지인데, 이 삼국지에서의 제갈량은 그야말로 능구렁이처럼 나타난다는 것을 한 번 이라도 보았던 사람은 잘 알리라. 또 84부작 삼국지에 비하여 새로 방영된 삼국, 에서의 유비는 그야말로 '간지폭풍에 카리스마 작살' 의 인물로 그려지며, 조조는 '여유넘치고 자신감이 강한' 인물로 그려진다. 앞서 만화에서 언급하였던 것 처럼 이 둘 만이 서로를 진정한 맞수로 나타내지는 것이다.

 

삼국지를 영화로, 라는 생각도 이쯤되면 나왔을 법하다. 하지만 원작이 매우 길다보니 전체를 영화화 할 수는 없고, 군데 군데를 잘라서 영화를 만들었다. 적벽대전 부분을 영상화한 왼쪽의 영화, 바로 아래의 오관참장을 그려낸 눈이 즐거운 영화인 명장 관우. 적벽대전에 대해서는 사실 길게 할 말이 없다. 주유역의 양조위가 상당히 인상깊었던 것 같다. 제갈량역을 금성무가 맡은 것으로 아는데, 둘 다 잘 어울렸던 것 같다. 캐릭터는 잘 어울렸지만 스토리는 좀 따라가기가 힘들지 않았나, 하는 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 명장 관우 또한 스토리보다도 캐릭터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니, 어차피 스토리는 삼국지를 읽은 독자라면 누구나 다 뻔히 알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나로서는 관우와 유비의 부인과의 로맨스(가 영화에 나온다)는 정말 전혀 넣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것은 다 집어치우더라도 명장 관우의 관우 역할을 맡은 사람은 견자단이다. 알다시피 엽문, 에서 엽문 역할을 맡아 멋진 무술 실력을 보여준 사람말이다. 그리고 그는 이 영화에서 그 무술 실력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리고 이 명장 관우, 에서는 무술실력만이 캐릭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끊임없이 회유하는 조조의 모습에서 우리는 덕장의 모습마저도 발견해낼 수 있다. 덕장 뿐이라고? 덕장 뿐이라면 새롭게 발굴되는 조조의 평이한 캐릭터 하나로 남을 뿐 새로울 것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의, 를 들먹이면서 양과 늑대이야기를 하다가 '나는 스스로를 양이라고 한 적 없다' 라고 말하는 조조를 보며 전율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어찌되었든 결과적으로 유비는 패한다. 앞서 언급한 게임에서나 유비를 살려서 한 황실을 잇게 할 수 있을 뿐, 실제 역사에서는 촉나라는 멸망해버린다. 물론 뒤따라 위나라, 오나라 모두 망하고 결국 사마씨가 세운 나라로 통일되지만, 이러니 저러니해도 유비에게 감정이입을 많이 해왔던, 특히나 삼국지연의 때문에, 사람들로서는 늘상 이 결말이 아쉬울 것이다. 나 또한 이 결말을 항상 아쉬워 했던 것 같다. 결말이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 문인들은 펜을 든다. 후대에 망상가득에 역사왜곡이라는 비판을 받을지라도. 왼쪽의 반삼국지는 그야말로 정사에 반하는 삼국지이다. 이는 서서가 조조의 계책을 사마휘의 도움을 받아 벗어난 뒤 유비 밑에 그대로 남는 이야기에서부터 진행이 된다. 그야말로 모든 촉나라 팬들의 염원을 담은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유비 밑에는 제갈량, 방통, 서서 등 이렇게 수많은 인재가 모이고, 제갈량의 힘에 사마의는 호로곡에서 그대로 폭샇고 만다. 연의에서 모사재천 성사재인을 보면서 눈물흘렸던 사람들로서는 속이 다 후련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환상은 환상일 뿐, 잠시 이 반삼국지를 보면서 낄낄대더라도 그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꼭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러고보면 나는 정말 어렸을 때 이 책을 접했고, 어린 마음에 내가 알던 삼국지가 잘못된건가, 하는 생각마저 가졌었다. 하지만 이 책 대로라면 촉이 몽땅 통일해놓고 사마염에게 그대로 줘야 되는데 그런 말도 안되는 일이 어찌 있었겠는가.

 

 

여기까지가 삼국지에 관련된 책들과 이야기들이다. 사실 아직 언급하지 않은 부분이 더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삼국지연의에서는 황석영 삼국지가 생각외로 인기가 좋다고 알고 있지만, 조금도 읽어보지 못했기에 본문에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또 유비나 관우에 관련된 인물론들도 접해보지 못했다. 많은 사람들이 삼국지를 접해왔고, 나 또한 많이 접해왔지만 여전히 남은 부분이 많다. 앞서도 언급했었지만 정사 삼국지 번역은 저 번역본 하나 뿐이다. 학계에서의 연구 또한 여전히 개운치 않은 부분이 많다. 누구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역사와 비교하면서 읽어나가기 쉽지 않은 시대가 바로 이 시대들이다. 그런데 이는 단점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장점이기도 하다. 완전히 다 알게 된 것 보다는 앞으로 계속 알아갈 것에 더 흥미를 느끼는 것이 당연하고, 좀 더 나아간다면 아직 완전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의 상상력이 개입할 여지를 준다. 그렇기 때문에 이 삼국지와 그 인물들은 여전히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몇 번이고 영화, 드라마, 소설, 만화, 게임 등으로 재창작되면서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p. s. 아마 근 시일 내에 에반게리온을 보러 갈 것 같습니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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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3-04-30 02:09   좋아요 0 | URL
저, 삼국지 세번은 읽은 것 같아요 여러 사람 것으로... 그런데 거의 잊어버렸습니다 첫번째 세 사람이 만나는 것은 아주 재미있게 봤는데...

장정일 삼국지는 작가가 새로 쓴 게 맞을 겁니다, 황석영 삼국지는 밑에 쓰셨군요 저는 읽었습니다 다른 것도 하나 읽은 것 같기도 한데, 작가 이름은 잘 모르겠네요 그리고 사람들이 많이 읽은 이문열 삼국지도 봤습니다 이렇게 쓰니 네번이네요 그런데 정말 네번을 읽은 것인지... 다 도서관에서 빌려봤습니다

일본에서는 삼국지로 정말 많은 만화를 만들었죠 원작하고는 아주 다른 것도 많고, 건담이 나오는 삼국지도 있었습니다 만화를 본 건 아니지만...


희선

가연 2013-04-30 22:25   좋아요 0 | URL
오우.. 그렇다면 희선님과는 이제 대화를... 풋, 저는 항상 저런 말들 보면서 궁금했던게, 그럼 삼국지 세번 읽은 사람들끼리 모이면 서로 대화를 안해야되나? 아니면 서로 가까이해야되는지.. 이런 쓸데없는걸로 고민을 했었답니다, 쿡. 비록 넷상이지만 서로 대화를 많이 하도록 합시다, 풋.

맞아요, 완전 새로 쓴 책이더군요. 황석영 삼국지는 좋은 말을 많이 들어서 한 번 읽어보고는 싶은데, 시간이 별로 없네요. 근데 건담이 나오는 만화가 있어요?? 한 번 찾아봐야겠다.

희선 2013-05-01 23:27   좋아요 0 | URL
삼국지를 여러번 읽었다 해도 거의 잊어버렸기 때문에 꾀를 부릴 수 없습니다^^
'SD 건담 삼국전' 입니다 사실은 애니메이션으로 봤어요
책도 있지 않을까 해서 찾아보니 있더군요 여기에 나오는 건담은 작아요
건담을 많이 본 것은 아닌데, 좋아하는 것은 <기동전사 건담 SEED> 예요^^

에반게리온은 잘 모릅니다 예전에 극장판 하나 보기는 했는데...
이번에 나온 에반게리온 Q 재미있게 보세요


희선

가연 2013-05-10 21:04   좋아요 0 | URL
많이 늦게 덧글을 이렇게 씁니다. 에바 큐는 봤어요, 풋.
건담을 좋아하시는군요ㅋ 저는 건담은 하나도 안봤는데..
여성분들도 건담을 좋아하는 분은 좋아하시더라구요.

맥거핀 2013-04-30 14:08   좋아요 0 | URL
글로 봐서는 가연님은 삼국지를 10번 이상은 읽었을 것 같은 느낌이니 아무래도 멀리해야겠군요. 저는 예전부터 집에 있던 박종화판의 오래된 삼국지로 보았습니다. 5권짜리 세로로 쓰여있는 것 말이죠. 코에이사의 삼국지는 12까지 나왔더군요. 몇날며칠 밤을 새우고 찾아오는 천하통일의 허무함이란...천하통일이란 다 부질없구나..이 생각을..ㅋ 요새 가끔 밤에 잠이 안와서 TV를 틀어보면 삼국지 드라마가 하더군요. 내용은 뻔한데 볼 때마다 채널을 못돌리게 하는 이상한 마력이 있어요. 저도 여러 본 것들이 생각나서 즐거운 마음으로 읽고 갑니다.

가연 2013-04-30 22:09   좋아요 0 | URL
하하하, 맥거핀님의 댓글엔 유머가 있네요. 첫 문장을 읽다가 계속 미소지었답니다. 어쩐지 다른 사람들이 자꾸 저를....... 푸하하. 물론 농담이구.. 박종화판은 잘 모르겠네요. 세로로 쓰여있었다니 정말 오래된 판본같네요. 삼국지 게임을 천하통일시키고 나면 정말 허무하지요, 풋. 저는 개인적으로 신장수를 마구 만드는 것을 좋아했었던 것 같아요.

모든 중국 역사, 무협드라마들은 이상한 마력이 있는 것 같아요. 황제의 딸부터 시작해서 몇 번이고 본 무협드라마들 (천룡팔부나 사조영웅전 등) 이라도 멍하니 보고 있더라구요. 즐겁게 읽으셨다니 기쁘네요, 풋.

saint236 2013-04-30 22:19   좋아요 0 | URL
나중에 하다하다 할 일이 없으면 공융이나 한복같은 사람으로 천하 통일을...

가연 2013-04-30 22:36   좋아요 0 | URL
하하하, 맞아요, 공융이나 한복.. 정말 슬픈 장수들이죠. 하지만 좀 더 안습인 장수 있지 않나요? 엄백호였나, 풋.

마립간 2013-04-30 14:20   좋아요 0 | URL
삼국지 경영학을 쓰신 최우석씨의 말을 빌자면, 단편적인 삼국지의 내용이 널리 알려져 삼국지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만 막상 삼국지를 통독한 사람은 많지 않다고 합니다. 제가 강연 들을 때도 삼국지를 책으로 읽으신 분 손들어 보라고 했는데, 몇 분 안 들었습니다.

가연 2013-04-30 22:02   좋아요 0 | URL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겠네요ㅎ 다만.. 저로서는 내용을 알고 있는 것과 책을 읽은 것과 큰 차이가 있을런지는 잘 모르겠네요. 물론 이렇게 말하는 저도 책으로 몇 번 읽었긴 하지만 말입니다, 풋.

saint236 2013-04-30 22:19   좋아요 0 | URL
삼국지 영화중에 유덕화 주연의 용의 부활도 있지요...이것은 조자룡을 주인공으로 그린 것인데 이 또한 꽤나 재미있게 봤습니다. 한중일에게 삼국지는 화수분과 같은 존재죠. 파고 또 파도 끝이 없으니 말입니다. 창천항로는 이학인씨가 죽는 바람에 끝을 제대로 맺지 못한 기분이...

가연 2013-04-30 22:56   좋아요 0 | URL
하하, 그러게요, 화수분, 적절한 비유입니다. 삼국지 용의 부활, 은 기억은 하고 있었는데 볼 시기는 놓쳐버렸지요. 그런가요, 저는 거의 끝까지 오오 간지다, 이러면서 봤던 것 같아요, 푸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