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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권수연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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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가 어느 정도 들어서 - 그렇다고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많지는 않지만 - 지나온 삶을 생각해보면 어딘가 터닝포인트처럼 느껴지는 때가 몇 군데 있다. 예를 들어서 그 어릴 때, 내가 훨씬 당당하게 대처했다면 지금의 나는 아마 전혀 다른 삶으로 방향이 틀어졌을테고, 좀 더 지나서 만난 첫 번째 여자친구와 좀 더 관계가 지속되었다면, 그래서 그녀와 결혼을 할 수 있었다면 - 물론 그녀는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되었다 - 아마도 또 다른 삶을 살고 있었을 것이며, 이건 가장 최근의 일인데, 몬티 홀 문제 (다들 알겠지만 이 문제는 이런 것이다 : 무대 앞에 진행자가 서 있고, 당신은 그 진행자를 마주하고 있다. 진행자는 앞에 세 개의 문을 보여주며, 세 개의 문 중 하나는 다이아몬드에게, 다른 문들은 닭이라던가 기타 등등 당신을 허무하게 만들 수 있는 그 어떤 것이라도 좋은 물건들에게 다다르게 해주리라는 것을 알린다. 그러고는 당신에게 선택을 하게 만든다. 당신이 하나를 선택한 순간 그는 남은 두 개의 문 중 하나를 열어 다이아몬드가 그 문에는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진행자는 당신에게 묻는다 : 당신은 이제 남은 두 문 앞에서 당신이 고른 문을 믿을 것인지, 아니면 바꿀 것인지를 선택하라고.) 앞에 마주치게 된 나는 결국 문을 바꾸는 선택을 했고, 논리적으로는 문을 바꾸는게 옳은 선택임에도 불구하고 후회와 상처가 깊이 남아 버렸다.

 

뭐, 여담이지만 저 문제를 마주치게 된 사람은 문을 바꾸는게 맞다. 확률적으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률이라는 것은 참 묘해서 당신이 뒤통수를 잡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당신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버린다. 그녀는 - 그래, 저 문제도 연애때문에 마주친 문제였었다 - 상처를 줄만큼 준 뒤에 나에게 기다리라고 말했고, 나는 그녀가 정말로 내가 싫다면 헤어지자고 이야기하라고 말했다. 도저히 나는 내 입으로는 헤어지자는 말을 할 수가 없었으니까. 그날 저녁의 전화를 기억한다. 몇 번의 한숨, 그리고 몇 분의 침묵. 한숨은 하얗게 방을 물들였고 침묵은 까맣게 내 맘을 물들였다. 무슨 말을 들어도 나는 참으리라. 우리가 정말 여기까지라면 웃으며 안녕, 더이상 그녀에게 매달리지 않으리라. 그리고 그녀는 입을 떼었다.

 

"오빠랑, 헤어진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 없어요."

 

난 순간 울컥했고 - 나만큼이나 그녀도 우리 관계가 헤어지지 않을 그 무엇이라는 것을 인지한다는 점에 너무 행복했었고, 못내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그 무엇인가는 입에서 울음으로 터져나왔다. 울음이 계속되는 순간, 그녀는 바로 말을 이었다. 오빠, 울지말아요. 오빠가 울면 나,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할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나도 오빠를.. 음, 좋아하니까, 오빠가 울면 오빠를 달랠 수 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울음을 멈추고 내 이야기를 들어줘요.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상황이 너무나 안좋아서 그저 나보고 기다려달라고 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정말 오래 기다리게 할 수 밖에 없으니, 그 사이에 내가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되어도 뭐라고 하지는 않을 거라고. 나는 반쯤 우는 얼굴과 반쯤 웃는 얼굴로 그녀에게 다른 사람을 만나는 일은 없을거라고, 너를 기다리겠다고 약속했다.

 

이렇게 약속해놓고 기다리지 않았다면 나는 나쁜 놈이 되었겠지만, 나는 끝끝내 그 기간을 채워서 기다렸고, 근근히 그녀를 다시 볼 수 있을거라는 기대만으로 하루하루를 살았다. 정말 그 소망만이 내 마음을 가득 채웠던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거의 막바지에 이르러서 생겼다. 원래 나는 한달에 한 번씩 기약없는 - 답장도 거의 없는 - 연락을 마치 유리병을 멀리 띄우듯 보냈었는데, 그 유리병이 닿은듯 그녀가 갑자기 나에게 연락을 취해오더니 너무 힘들다고, 자기가 생각했던것 보다 더 일이 안풀린다고 이야기해왔다. 나는 그것을 보고 순간적으로 감정이 너무 격해지고 말았다. 그리고 정신을 차린 순간 나는, 무작정 차를 몰고 그녀가 있는 곳으로 밤길을 뚫고 있었다. 그때서야 그녀는 항상 이렇게 무작정 찾아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는 것을 떠올리고, 이런, 지금 가봤자 그녀가 나를 환대하지도 않을텐데, 그냥 모른척 돌아가는게 좋을까, 생각했었다.

 

바로 이 부분이 터닝 포인트인데, 만약에 이때 내가 돌아갔다면, 나는 어쩌면 결국에는 그녀와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때의 나는 마치 하데스의 영역을 탈출하는 오르페우스같았고, 기어코 그녀를 향해 뒤를 돌아보고야 말았다. 오르페우스이야기에서는 오르페우스의 아내가 명계로 다시 끌려갔으나, 이번에는 내가 깊은 심연으로 굴러 떨어지고야 말았다. 그녀를 만나고, 그녀와 다투고 결국 다시는 만날 일 없을 거라고, 서로 감정이 상한채 끝나고야 말았다. 헤어지게 된 뒤 나는 문을 바꾸기를 잘했노라고, 더 빨리했다면 시간도 날리지 않고 감정도 서로 상하지 않았을텐데, 라고 몇 번이고 입 밖에 내어 혼잣말을 중얼거렸지만 - 그녀는 나를 정말로 싫어하는 것 처럼 흘겨보고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편으로는 차라리 내가 더 져줄걸, 더 기다릴 걸,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녀는 나에게 정말 깊은 상처를 남겼고, 그녀의 말대로 그녀를 기다리는 동안 상처는 전혀 아물지 않고 더 넓어지기만 했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녀만이 내 상처를 치료해줄 존재였고, 아직도 상처는 뼈에 붙은 살점처럼 덜렁거리며 핏방울을 주변에 뿌리고 있기에 이렇게 그녀를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말이다, 여기서부터가 재미있는 부분인데, 만약에 백번 양보해서 그녀와 다시 사귀게 되었다고 하자. 그럼 그녀는 과연 내 상처를 치료할 수 있었을까? 아마 이 부분때문에 수많은 커플들이 다시 사귀고 다시 이별하게 되리라. 그래서 파트릭 모디아노의 소설, 지평, 에서는 끝끝내 주인공이 여주인공에게 회귀하는 부분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기대가 반, 걱정이 반이다.

 

지평, 의 주인공 보스망스는 나중에야 소설가로서 이름을 알리게 되지만, 스무살에는 뭐하나 확실한 것 없는 삶을 사는 사람이었다. 그가 소설가가 될지도 모른다, 라는 그런 맹아는 물론 그의 삶속에 있었지만, 누구나 그렇듯 맹아만 보고는 그 식물이 자라서 무엇이 될지는 모른다. 어쩌면 그도 수많은 갈림길 중에서 한 군데만 길을 다르게 들었다면, 그가 원했던 삶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여주인공인 마르가레트라고 해서 다를 바 없었는데, 그녀는 부아야발, 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를 무작정 피하며 달아나고만 있었고, 결국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흘러흘러 파리로 떠밀려 오게 되었다. 

 

그들이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도시에서 서로에게 갑자기 끌렸다고 해서, 그 만남을 운명이라는 이름을 써서 포장하고 싶지는 않지만 - 누구나 외로울때는 옆에 사람을 찾게 되니까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만남은 마치 도망자처럼 흘러들어온 두 사람에게는 빛과 같았을 것이다. 그들이 서로를 만나지 않았다고 해서 도시에서 버텨서 살지 못했으리라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또다른 인간관계를 찾았을 것이고 - 만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 결국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도시의 이면에 숨어서 살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만남이 그들에게 가져다 준 것은 지평이다. 삶에 대한 지평. 남자는 여자를 만나서 이 도시의 삶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여자의 두려움을 해소시킨다. 그러니까, 서로의 만남이 그들에게는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하지만 그 만남은 오래 가지 못했다. 나의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이런 지점을 만나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들이 택한 선택은 결국 나와 다를 바 없게 끝났고, 이야기는 원점으로 돌아간다. 마르게르트가 보모로 들어간 집에서 소동이 벌어졌고, 그 소동에 휘말리게 된 두 사람은 결국 헤어지는 편을 선택한다. 여기서 그녀는 마치 보스망스가 자신을 뒤돌아보았던 것 처럼 그의 눈 앞에서 사라지고 만다. 그녀는 다시 심연속으로 사라져버린 것이다.

 

소설가가 된 그는 떠밀려 만나는 게 아닌, 자신의 의지로 그녀를 만나기로 결심한다. 그 옛날 마르가레트를 두고 오르페우스가 된 심정으로 뒤돌아섰던 그는 다시 오르페우스가 되어 마르가레트를 만나러 심연 속으로 뛰어든다. 도시를 깊고 깊은 어둠으로 본다면, 성공한 소설가가 되어 도시에 적응한 보스망스는 그 어둠을 휘감게 된 인물이리라. 그가 심연 속으로 뛰어드는 것은 이제 그에게 자연스럽다. 그래서 이제 내 머릿속의 주인공과 여주인공은 다시 만나서 결혼하게 되고, 남은 인생이나마 둘이서 함께 살아가게 된다. 어쩌면 그랬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오르페우스의 이야기는 이렇게 끝난다. 결국 죽음을 맞이한 오르페우스는 낙원으로 향하게 되는데, 이 낙원에서 자신의 아내인 에우리디케를 다시 만나게 된다. 이때의 일을 오비디우스는 이렇게 적고 있다. 어설프지만 잠깐 번역해보겠다.

 

그들은 낙원에서 함께 걷는다, 이제 에우리디케가 앞서서 걸어가고 그가 따라걷는다. 이번엔 오르페우스가 앞서서 걸어가면서 그녀를 향하여 몇 번이고 뒤돌아본다. 이제는 뒤돌아보더라도 사라지지 않고 그의 곁에 있으니까.

 

Ovid, The metamorphoses XI, The death of Orphe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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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5-02-02 16:39   좋아요 0 | URL
지평, 을 다시 읽고 싶어지네요, 가연님.
지평 만큼 좋은 리뷰에요. 몰입해서 읽었어요.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려가면서 읽었습니다.

희선 2015-02-03 01:58   좋아요 0 | URL
누군가를 만나는 일은 다른 세계를 만나는 것과 같기도 할 테죠 그건 이성이 아닐지라도 그렇겠죠 헤어졌다 해도 그 만남이 안 좋았던 것은 아닐 거예요 이런 교과서 같은 말을... 자신이 그런 일을 겪는다면 그렇게 생각할 수 없겠지만, 소설을 보고는 그렇게 생각하기도 하죠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