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근히 제목 정하기는 것도 힘들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 요즘이다. 무제, 라고 적기에는 너무 멋없어보이고, 그렇다고 번호만 붙이는 것은 왠지 성에 안차니 말이다. 그러다보면 결국 책들의 이름을 가져다 페이퍼의 제목에 붙이게 되는데, 만약에 제목이 정말 길거나 여러권을 써야 할때면 어떻게 해야 할지 벌써부터 걱정이다. 여튼 이번에는 월트 디즈니와 조선의 백과사전을 읽는다, 정도이니 그럭저럭 제목에 적절한 길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읽은 책은 이 책들말고도 조금 더 있기는 하지만 끄적이고 싶은 마음을 - 긍정적이든 혹은 그 어느쪽으로든, 만든 책들이라고 볼 수 있으리라.

월트 디즈니는 그럭저럭 괜찮은 전이다. 평전이라고 보기에는 약간 '평'의 부분이 약하다. 저자인 닐 개블러가 연구자라기보다는 저널리스트이기에 아마 빚어진 결과가 아닐까, 싶다. 약간만 보완되었다면 정말 멋진 평전이 되었을런지도 모르겠는데, 좀 아쉽다. 대신에 전기라고 본다면 읽을만한, 그리고 재미있는 전기다. 월트 디즈니에 관한 거의 대부분의 일화를 수집해서 책에 녹여놓았다. 늘상 이야기하지만 평전에서 '전'의 부분은 실질적으로 독자에게 그 전기를 계속 읽게 만드는 힘을 부여한다. 우리는, 그러니까 독자는 정말 사소한 것, 예를 들어서 아침으로 무엇을 먹었다던가, 라는 식의 그런 사소한 것에 흥분을 느낀다. (혹은 나만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들마다 다르겠지만, 기본적으로 타인의 삶을 엿본다는 그런 감각은 전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만든다.

 

저런 원동력에 힘입어 사소한 이야기들마저도 시시콜콜하게 수집해서 그려내는 것이, 독자들에게 그 인물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를 줄 수 있다. 사실 이 명제는 얼핏보면 아이러니하다. 사소하게 나무를 수집하는 것 같은데, 결국에는 숲에 이르게 만든다니, 이게 가능한 일인가? 가능한 일이다. 어째서 가능한가? 이를 비유하자면 각종 게임에서 훈수를 두는 것으로 둘 수 있으리라. 늘상 사람들은 자신의 일이 되면 정말 명백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제대로 대처를 못한다. 하지만 남의 일이라면, 그리고 그 일의 결과가 자신에게 파급을 주지 않으리라는 것을 깊이 인지한다면 도리어 더더욱 길을 찾아낸다. 따라서 시시콜콜하게 나무를 수집하더라도, 그 나무는 다른 사람의 인생의 땔감이 된다는 것을 깊이 인지하고 있는 독자라면 그 나무들이 어디서 왔는가, 그리고 얼마나 자라있는가, 곧 숲을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저 월트 디즈니 전에서는 너무 아무런 설명이 없이 이 사람, 저 사람을 끌어들인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월트 디즈니에 대해서 한참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그때동안 조금도 언급이 안되었거나 약간밖에 나오지 않은 인물의 입을 빌려 진행한다. 물론 결론적으로는 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너무 뜬금없이 등장인물이 많아지는 감이 있다. 이런 경우에 대비하여 적어도 인명색인이라던가 주석에 충분한 설명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 것들이 보완된다면 좀 더 나아질텐데 말이다. 그런데 이것은 원작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문제점일수도 있다. 마지막에 번역자가 쓴 글을 보면 역자는 '임의로' 원작의 말미의 주를 통째로 빼버렸다. (월트 디즈니 2, 1217p.) 그 이유는 '지나치게 걸리적거리고 월트 디즈니의 삶을 조망하는데 큰 무리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일부는 본문에 녹였다지만 글쎄, 이 부분은 분명 문제가 있다고 본다. 본인이 말한대로 '평전의 엄밀함' 을 해치는 일이기 때문이기 때문이다. 혹시 개정판이 나온다면 뒤의 주석을 제대로 번역하여 첨부하여준다면 분명 더 좋은 책이 될 수 있으리라.

 

조선의 백과사전을 읽는다, 는 괜찮은 책이다. 일단 표지는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난세에 답하다, 와 비슷하게 생겼다. 한자어로 지봉유설을 써놓았으니 말이다. 저 책은 지봉유설과 성호사설을 묶고, 그 외에 관련된 주제를 적은 다른 책들의 인용으로 이루어져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사실 저자가 머리말에 충분히 밝혀두었으니 어떤 모습인지 쉽게 알 수 있으리라. 다만 지적해야 할 부분이 있다. 미리 말해두자면 지적할 점만 있는 책이 아니고 상당히 재미있고 한 장씩 밤에 넘겨보면 괜찮은 책이다. 각 이야기가 그렇게 짧지도 길지도 않다.

 

가장 먼저 지적할 부분은 이것이다 ; 저자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너무 신뢰하는 것 아닐까? 약간 우스개처럼 보이는 이 문장은, 많이 돌려서 이야기한 것이긴 하다. 왜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다음과 같은 부분을 예로 들 수 있다. 55페이지에 보면 지봉유설에서 별에 대하여 인용하면서 청구성에 대하여 밝히고 있는데, 그에 따르면 땅이름 -> 별이름, 이라고 한다. 원래 청구라는 땅이름이 존재했기에 말이다. 그런데 56페이지를 읽어보자. 두산세계대백과사전을 인용하면서 청구성이라는 별이름을 따서 청구라는 땅이름을 붙였다, 라는 상반된 주장을 가져온다. 두산세계백과사전에 따르면 별이름 -> 땅이름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근거를 조선상식문답, 에서 가져온다. 지봉유설과 두산세계백과사전을 나란히 놓아야 되는지도 일단 의문이지만,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그 다음이다. 만약에 여기서 끝났다면 각자 근거에 맞춰서 상반된 주장을 개진했구나, 라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저자는 시시비비를 가리려고 한다. 브리태니커백과사전을 그 근거로 말이다.

 

이에 대해 브리태니커백과사전에서는 청구라는 말은.. ...라고 설명한다. 이로부터 이수광의 설명에 좀 더 무게가 실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의 백과사전을 읽는다, 57p.

왜 브리태니커백과사전이 상반된 두 의견을 가리는 기준이 될까? 

 

또 지적할 부분은 고추에 관한 부분이다. 거의 마지막 부분인데, 저자는 고추가 임진왜란때 들어온 설을 부정하고 삼국시대에 들어왔다고 주장한다. 지봉유설에 따르면 고추는 임진왜란에 들어온 것이 맞다. 하지만 지봉유설이 틀렸다면? 여기서 저자는 이런 가설을 세운다. '고추는 고초가 변'한 말이므로, 용어는 실물과 함께 들어오기 때문에 '고초라는 한자가 중국의 어느 시대 문헌에 등장하는지 찾아보면 전래된 시기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이 가설 자체가 사실 잘못된 부분이 있다. 용어가 실물과 함께 들어온다는 말은 사실 비약을 품고 있다. 예를 들어 고초가 우리가 흔히 아는 고추가 아닌 매운 맛을 나타내는 식재품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라면? 이것도 고초, 저것도 고초라면 꼭 고추가 전래되지 않아도 고초라는 말 자체는 퍼져나갈 수 있으리라. 백번 양보해서 저 가설을 따라간다고 하자. 저자는 결과적으로 문헌 검색상 삼국시대에 들어왔으리라고 판단한다. 하지만 이 결론 자체도 잘못되었다. 고추의 야생종은 모두 남미산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잘 정리된 어느 블로그 하나를 링크하는 것으로 마무리짓겠다. http://hosunson.egloos.com/2296323 들어가보기 귀찮은 분을 위하여 설명하자면 고추의 기원은 중남미이고 콜럼버스가 발견하기전까지는 사실상 전래되지 못했으리라, 라는 것이 결론이다. 콜럼버스의 시기와 임진왜란의 시기는 얼추 비슷하니 도리어 지봉유설에서 이야기한 것에 힘이 실린다.

 

 

혹시나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꼭 방명록에 남겨주기를 바란다. 여간하면 방명록은 훑어본다. 더이상 알라딘 서재페이지, 그러니까 인기글과 새글이 나란히 보이는 페이지에는 들르지 않지만 말이다. 결국에는 나는 바다에 병 속에 담긴 쪽지를 투척하는 소년이 된 것이다. 그 소년은 그 병에 담긴 쪽지가 누구한테 가서 닿든, 혹은 닿지 않든 던지고 나서는 뒤도 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솔직히 블로그를 관리할 엄두가 안나고.. 은근히 신경이 많이 쓰여서 그냥 댓글을 모두 막아버렸다. 이제부터는 가볍게 책이야기를 끄적거리려고 한다. 다음엔 또 언제 끄적거리려나.

 

 

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 하는가.

개인적으로 요 몇 달 안에 읽은 책들 중에 가장 뛰어난 책이라고 여겨진다. 여러 학자들의 글을 엮어서 만든 책인데, 무협지 풍으로 말하자면 안계를 넓혔습니다, 라고 해야 할까.

 

다만 제목이 좀 오해를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책이 종교에 대하여 전방위적인 포격을 퍼붓는 것은 아니다. 왼쪽의 책 표지에 intelligent thought라는 말이 있지 않는가? 이는 intelligent design에 대비되는 용어로 사용한 말이다. 반복하자면, 이 책은 intelligent design을 비판하는 책이다. 종교 전체가 과학이 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종교를 표상과 그 안에 내재되어있는 어떤 근본적인 관념으로 나누어본다면 종교에 토대를 주는 것은 그 표상을 받아들이는 자아와 그 관념을 확장시키는 자아에 달려있다고 볼 수가 있다. 따라서 자아의 확장과 종교는 밀접한 관련을 가질 수 밖에 없고 결국에는 종교의 토대에 대한 담론은 신앙으로 축소되어 그 자체의 '부질없음'을 드러낼 수 밖에 없다. (경험세계로 편입되지 아니한 자아가 인식의 주체로 활동한다면 객관성을 상실하게 되고 결국에는 관찰이 아닌 믿음이 될 수 밖에 없다.) 물론 이는 헤겔 - 마르크스적인 의미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 의미를 그대로 따라가본다면 경험세계를 그 대상으로 하는 - 우리 자아조차도 관찰가능한 대상으로 보고 객관화하려는 - 과학의 시도는 종교와 절대로 겹칠 수 없을 것이다.

 



교양.

개인적으로 이 책도 매우 흥미롭게 읽었다. 많은 사람들이 뒷부분이 더 재미있다고 이야기하고 그 진가가 뒷부분에 있다고 이야기들을 많이 하는데 나는 정반대다. 뒷부분은 그냥 1초에 1페이지씩 넘겨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앞부분은 유럽역사에 대하여 매우 큰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도움을 주니까 꼭 읽어보았으면 한다.

 

뒷부분 내용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다른 사람과 어울리기 위해서 교양이라는 께임을 즐기자.

 

 

 

 

 

 

괴벨스.

난 이 책의 제목이 왜 대중 선동의 심리학인지 잘 모르겠다. 귀스타브 르 봉의 군중심리라도 세트로 주면 모르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괴벨스 이야기뿐이다. 물론 '그냥' 괴벨스 이야기 뿐이라는 것이 얼마나 철저한 연구와 사료를 바탕으로 형성되어있는지는 읽어본 사람만 알 것이다. 다만 혹시나 누가 대중 선동을 하려면 어떻게 심리를 분석하여야 되나, 라고 생각하여 이 책을 읽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괴벨스가 어떻게 했는지 방법론을 다루는 책이 아니다.

 

커쇼의 히틀러 평전을 읽은 적이 있다. 그때 이 책을 아쉬워했는데 나중에 읽어본 소감으로는.. 뭐랄까 히틀러 평전만큼의 임팩트는 없었달까, 히틀러와는 다른 부분이 괴벨스는 자기 혼자 도저히 설 수 없어서 거목을 붙잡고 서는 그런 덩굴같은 느낌이었달까.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유방이 장자방을 쓴 게 아니라 장량이 유방을 썼다고. 혹자들은 여기에 빗대어 괴벨스가 히틀러 신화를 만든 것이지 히틀러 혼자였다면 과연 저렇게 되었을 것인가? 라고 이야기할 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평전을 읽으며 느꼈던 것은 괴벨스는 히틀러가 있어야만 했지만 히틀러는 어쩌면 괴벨스가 없었더라도 파시즘의 군주가 되었을 것이다, 라는 느낌. 한가지 더, 자기 충족적 예언을 정말 신봉하는 사람인 것 같다. (이 부분은 인상만으로 내린 문장은 아니다.)

 

 

 

 

 

 

 

이렇게 살고 있다. 오늘은 더 힘이 없다. 글쓰는게 두렵고 힘들고 귀찮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요즘 기황후라는 드라마가 제법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원이 주연을 맞아서 열연하고 있는데, 원래 당초 계획으로는 당시 시대상에 맞게 충혜왕시기를 그리기로 하였다고들 한다. 그러나 충혜왕은 우리나라 역사에서 정말 짝을 찾기 힘들 정도로 폭정을 일삼은 왕이다. 간단히 고려사절요, 를 살펴보겠다.

 

재리(財利)에 밝으며 황음무도(荒淫無度)하여, 여러 소인들이 뜻을 얻고, 충직한 신하들은 배척을 당하였다. 바른말만 하면 반드시 베어 죽이므로 사람들이 처벌을 당할까 두려워하여 과감하게 말하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

<고려사절요, 제 25권, 충혜왕 서序>

 

 

바른 말을 하면 반드시 베어죽인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그러니 굳이 여기서 다루지 않아도 간단한 검색만으로 확인할 수 있을터이고, 여기에 대해서는 N포털에서 자세히 다루었으니 링크로 대체한다.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rid=77&contents_id=39751) 결국 이런 왕을 미화시킬수는 없었던지라 제작진은 고려왕을 왕유, 라는 이름으로 변경시키고, 드라마를 진행시켰다. 하지만 기황후가 여전히 남아있는 이상 역사왜곡이 아닌가, 라는 비판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을 것이다. 기황후라고 해서 충혜왕보다 더 나을 것도 없기 때문이다. 기황후는 자신의 친족의 고려에서의 득세를 조장하였고, 고려 출신의 장군에게 군사를 주어 고려를 쳐들어가게 만들었다. 물론 내용을 외부로 끌고나와서 볼 이유가 있는가, 라는 주장도 의미가 없지는 않다. 인물의 재해석이라는 측면도 분명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렇게 드라마가 방영되지 않았다면 충혜왕에 대해서 알아보려는 시도조차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졸지에 양비론처럼 글을 시작하게 되었지만, 사실 나는 충혜왕이나 기황후와 같은 인물을 드라마화하는데는 좀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짝을 찾기 힘들 정도의 폭군과, 사실상 매국을 일삼은 황후. 둘 다 드라마화하기에는 좋은 인물들은 아니지 않는가. 이런 인물들은 사실 있는 그대로 드라마화하여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을 떠나서 특유의 애정 코드가 잘 먹혔는지 기황후의 시청률은 잘 나오고 있는 편이고, 생각보다 내용이 재미있기도 하다. 차라리 기황후, 라는 이름 자체도 버리고 아예 모티프만 가져왔으면 좋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예를 들어 장황후, 이런 식으로 말이다. 눈가리고 아웅하는걸까?

 

하지만 늘 이런 것은 유념해야 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는 인물을 좋은 사람으로 그려내는 것은 쉽다. 그리고 나쁜 평가를 받는 인물을 나쁜 사람으로 그려내는 것도 바람직하다. 좋은 평가를 받는, 일차 사료의 사관들과 현대 학자들이 옹호하고 있는 인물을 나쁘게 그리는 것까지는 재해석이라는 이름으로 옹호할 수 있을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쁜 평가, 그것도 극렬한 나쁜 평가를 받는 사람을 좋게 그리는 것은 상당한 섬세함이 필요하다. 적어도 옹호할만한 구석이 조금은 있어야 옹호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물론 고려에 대한 사료들이 사실상 고려의 당대에 쓰여진 것이 아닌 만큼 고려를 딛고 일어난 조선의 시각이 분명 포함되어 있으리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학자들이 학자적 양심이 없이 무턱대고 폄훼하려고 했으리라는 것도 보기 어려우니 어느 정도 근거가 있을 것이다. 결국 다루는 방법이 상당히 섬세해야만 할터인데 이번 기황후 드라마, 에서는 그런 섬세함이 좀 부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기황후로 이야기가 시작되었지만 사실 여기서 내가 글을 쓰고자 하는 인물은 노국공주이다. 생각해보면 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렇지 않은가? 같은 민족인 기황후는 도리어 고려를 괴롭혔지만, 다른 민족인 노국공주는 공민왕을 도와 그의 개혁정치에 힘을 보태었다. 노국공주는 도대체 왜 자신의 민족의 나라의 속국이나 다름없었던 고려가 그 굴레를 벗어나는데 도움을 주었을까? 공민왕을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아니면 공민왕에게 협조하는 것이 자신의 살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이 글에서는 노국공주를 중심으로 당시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관계와 주변 정세가 어떠하였는지를 살펴볼 생각이다. 내가 참조한 서적은 고려사, 와 고려사절요, 그리고 논문 일부 뿐이라 사료면에서 부족한 측면이 있을 수 있으니 미리 양해바란다. 먼저 노국공주는 누구인지 살펴보겠다.

 

강릉대군(江陵大君) 왕기가 원 나라에 있으면서 위왕(衛王)의 딸에게 장가들었으니, 이분이 바로 노국공주(魯國公主)이다.

<고려사절요, 제 26권, 기축 원년(1349년) 10월>

 

휘의노국대장공주(徽懿魯國大長公主) 보탑실리[寶塔失里]는 원나라 종실 위왕(魏王)의 딸이다. 공민왕이 원나라에 있을 때에 몸소 북쪽 뜰에서 맞이하니 원나라에서 승의공주(承懿公主)로 봉하였다.

 

<고려사 열전, 공민왕 후비, 휘의노국대장공주>

 

 

노국공주에 대한 기록은 고려사에서는 고려사 열전에 실려있으며, 고려사절요에서는 특별히 노국공주에 대한 기록만 따로 모여져 있지는 않다. 이런 차이점이 생기는 이유는 역사서의 서술 방식 때문이다. 고려사절요의 경우에는 편년체 서술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편년체라는 것은 몇 년, 몇 일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기록하는 방법이다. 반면에 고려사는 사마천의 사기, 의 서술방식처럼 본기, 세가, 열전 등으로 나누어진 기전체 서술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위의 사료를 보면 노국공주의 경우 열전에 그녀에 대한 기록이 실려져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위의 두 기록을 보면 무언가 불만족스러운 기분이 든다. 그래, 노국공주가 위왕의 딸이고 공민왕과 결혼했다는 것을 알겠다. 그런데 그 이전의 기록은 없는가? 사실 고려사, 또는 고려사절요 모두 고려의 기록이기때문에 노국공주의 어린 시절에 대한 기록은 싣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면 당연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 시절을 들여다보는 것은 무리겠지만, 적어도 노국공주가 원나라에서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는 중국쪽 기록을 통하여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그 사료로는 신원사新元史 그리고 원사元史 이 두 사료가 해당되며, 이 부분에 있어서는 공민왕 후비 열전에 달린 각주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670935&cid=3869&categoryId=3869#footNote1 )와 함께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위왕의 딸이라고 하는데, 원에서 위왕은 누구인가? 신원사新元史에서는 위왕은 충숙왕비인 조국대장공주의 아버지인 아목가를 일컫는다고 한다. 이 아목가는 쿠빌라이 칸의 손자로 황손이다. 하지만 이 기록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그 이유는 원사元史에 따르면 1324년에 아목가는 죽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잘 살펴보자. 위의 사료에 따르면 노국공주가 공민왕과 혼인한 년도는 1349년이다. 이때 공민왕은 나이가 20살이었다. (공민왕은 1341년 원나라에 머물때 12살의 나이였었다.) 여기서 상식적으로 일반적인 결혼이라면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나이차가 그렇게 많이 나지는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노국공주의 나이가 20살이라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1328년에 노국공주는 원나라에서 아직 태어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아목가가 노국공주의 아버지라면 아목가는 이미 죽은 상태에서 아이를 낳은 것이 되어버린다. 아목가는 1324년에 죽었다는 기록이 남아있으니 말이다. 노국공주의 나이가 공민왕에 비하여 네살 연상이라도 마찬가지다.

 

이에 따라 우리는 노국공주가 공민왕에 비하여 적어도 다섯 살 이상 연상이거나, 혹은 아목가가 그녀의 부친이 아니라, 또다른 위왕이 있어, 그 사람의 딸이 노국공주다, 라는 가정을 세울 수 있다. 둘 중에 어떤 가정이 옳을까? 조혼도 종종 일어났었던 (흔히 공녀를 바치게 되어 조혼이 일어났다고들 하지만 실제로는 그 이전부터 여성의 혼인에 대하여 특별한 제한이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고려 시대의 결혼 풍습을 고려해 볼 때, 다섯 살 연상의 여인과 (비록 원나라에 있더라도 고려의 남자였던) 공민왕이 결혼했으리라고는 생각하기가 어렵다. 원나라에서도 혼기가 늦은 나이까지 가득 차도록 두는 경우는 드문 경우로 여겨지기에 - 오늘날이라면 25살에 결혼하는 것은 매우 젊은 나이의 결혼이겠지만, 그당시에는 다르다 - 아마 노국공주가 25세였으리라고는 짐작하기가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위왕이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위왕 아목가에게는 자식이 있어 그의 위왕 자리를 물려받았고, 그렇게 위왕의 자리를 계승한 아들의 이름은 위왕 패라첩목아이다. 우리는 여기서 이 위왕 패라첩목아가 노국공주의 아버지이리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그런데 사실 이들이 황친이기는 하지만 자리가 매우 안정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원사에 따르면 1317년 아목가는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어 유배를 당한 적이 있다고 한다. 비록 목숨을 잃지는 않았지만 유배를 당했다는 이야기는 생각보다 그 권력이 그리 강하지는 않았다는 이야기로 볼 수 있다. 물론 정말 심각한 정치적 사건에 연루되어 목숨이라도 겨우 건질 수 있어 다행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당시의 원나라 정세를 따져보면 그렇게 심각한 정치적 사건이 있었다고 판단내리기는 어렵다. 1317년은 인종의 치세였었고, 기록에 따르면 인종은 특별한 일이 없이 제위를 유지하였다고 한다. 이로 미루어 짐작하건데 1317년에 아목가가 쫓겨난 것은 아마 단순히 밉보일 정도의 사건이 아니었을까. (게다가 아들이 그대로 위왕의 작위를 계승할 수 있었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그리고 밉보일 정도로 쫓겨날 정도라면 언제든 우수수 떨어질 종친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리라.

 

이렇게 그리 좋은 조건이 아닌 집안의 소녀는 마찬가지로 좋은 조건이 아닌 부마국의 소년을 만났다. 이들의 만남에는 일부는 우연의 힘이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일부는 만남을 만들려는 공민왕의 노력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이유는 황손인 소녀보다는 부마국의 소년의 조건이 더 나빴기 때문이다. 소년의 입장에서는 반드시 원나라 황실과 연을 맺어야만 했다. 왜? '부마국', 즉 부마가 다스린다는 나라의 왕족이었기 때문이었다. 만약에 그가 왕이 되고자 한다면 먼저 부마가 되어야만 한다. 소녀는 공주였고, 이 소녀와 결혼할 수 있었던 것은 소년에게는 일종의 기회였으리라. 하지만 나로서는 이렇게 해석하고 싶지는 않다. 진짜 문제는 이들이 사랑에 빠졌다는 것에 있다.

 

왕의 일행이 통제원(通濟院)에 이르자 경성에서 오는 자가 아뢰기를, “적이 이미 가까이 왔습니다." 하니, 임진강을 건넜다. 공주는 연을 버리고 말을 탔으며, 차비(次妃) 이씨가 탄 말은 병들고 약하여 보는 자가 모두 울었다. 왕이 신하를 돌아다보며 원송수(元松壽)ㆍ이색에게 이르기를, “풍경이 이와 같으니, 경 등은 마땅히 연구(聯句)를 지을 만하다." 하였다.

 

                                                   <고려사절요, 제 27권, 신축 10년(1361년) 11월>

 

 

결혼하고 왕으로 즉위한 뒤 (1352년) 10년이 채 지나지 않아서 홍건적이 쳐들어왔다. (1361년) 위의 고려서절요를 살펴보면 당시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말은 병들고 약하여... 모두 울었다.' 이 말 보다 더 저들의 처지를 잘 설명해주는 말은 없으리라. 공민왕과 노국공주는 안동까지 대피하게 된다. 대피시 이들은 많은 전설을 남기게 되는데, 충청도에는 이런 전설 - 부처님의 가피로 물리쳤다는 - 이 있다.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765433&cid=4405&categoryId=4405) 특히 안동에서도 많은 전설과 유적이 남겨져 있는데, 안동시 용상동의 성황당인 여랑당에 얽힌 전설도 그 중 하나다.

 

전설에 따르면 공민왕이 홍건적에 쫓겨 남하할 때 한 여자시동, 여랑을 데리고 다녔었다고 한다. 왕은 여랑을 귀여워하여 항상 가까이 있었는데, 왕이 전투를 할 때 여랑도 함께 따라다니곤 하였다. 그런데 홍건적이 기습을 하여 왕을 향해 화살을 쏘았는데, 이를 여랑이 대신 맞아서 쓰러지고야 말았다. 여랑을 간호하는데 갖은 노력을 기울었지만 소용은 없었고, 이윽고 여랑은 죽으며 신이 되어서 홍건적을 물리치고 성을 지키겠다고 유언을 남겼다. 공민왕은 슬퍼하였고 비록 이후에 홍건적들을 물리치게 되었지만 애타는 마음을 감출 수 없어 당집을 지어 그녀를 모시고 매년 정월 14일에 안동 부사의 주관으로 제를 올렸다. 이 당집을 여랑신사 혹은 여랑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전설의 구조자체는 마치 발해의 홍라녀 전설을 떠올리게 만든다. 발해의 홍라녀 또한 전장에 나서 적과 싸우다가 이윽고 활을 맞고 죽는다. 이윽고 공양받는다는 모티프까지 흡사한 분위기이다. 이는 어쩌면 수동적 모습을 보이는 남성에 대한 비판이 담긴 안티테제적인 서사로 볼 수 있고, (보통 남성은 강인하고 능동적 모습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 능동적 모습의 한계에 다다르게 되었을 때 - 위의 홍건적이라던가, 홍라녀 전설에서의 적의 침입 - 에는 그 능력의 너머에서 뻗는 도움의 손길을 기다릴 수 밖에 없다. 그런 도움을 여성으로 그려낸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능동적인 여성상을 그려낸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지만, 그 이전에 중요한 점이 있다. 두 전설 모두 남성을 여성이 좋아한다는 것이다. 좋아하지 않는다면 누가 그 남자를 위해서 전쟁에 나서겠는가? 그러니 이런 여랑을 두고 우리는 공민왕과 항상 함께 있었던 노국공주를 떠올리게 된다.

 

현실은 전설보다 더 극적인 법이다. 실제로 노국공주는 공민왕을 위하여 목숨을 건 적이 있다. 1363년 흥왕사의 변이 터진 것이다. 갓 홍건적의 난을 겨우 물리쳤지만 우환은 끊이지 않고, 김용이라는 자가 변란을 일으킨 것이다. 고려사절요에 따르면 김수, 조련이라는 자가 50여명을 이끌고 흥왕사 행궁에 침입하여 마주치는 자들을 모두 죽이고, 왕을 죽이러 뛰어들었다고 한다. 이들을 배후조종하던 자가 바로 김용이었다. (사실 이 부분은 기록으로 보건데 의문점을 가질 만한 부분이 많다.) 이 때 왕은 죽음의 위기를 넘기기 위하여 밀실로 숨고, 안도적이라는 환관이 대신 목숨을 잃는다. 이때 노국공주가 절체절명의 상황에 빠진 왕을 지킨다.

 

윤달 신미일 밤 5경에 적 김수(金守)ㆍ조련(曹連) 등 50여 명이 행궁인 흥왕사(興王寺)로 침입하여 문지키던 자를 죽이고 바로 안으로 들어가 말하기를, “나는 황제의 명령을 받들고 왔다" 하고, 지름길로 왕의 침전(寢殿)에 이르러 지게문 밖에서 환자 강원길(姜元吉)을 죽이니 숙위하던 군사들이 모두 도망해 숨었다. 이 때 환자 이강달(李剛達)이 왕을 업고 창문으로 나가 대비의 밀실로 달려가 담요를 뒤집어 씌워 숨겨 놓고, 공주가 지게문 앞에 막고 앉아 있었다. 적들이 침전으로 들어갔다. 환자 안도적(安都赤)은 용모가 왕과 비슷하므로 자기 몸으로 왕을 대신하고자, 왕의 잠자리에 누웠는데, 적은 왕인 줄 알고 죽이고서 좋아 날뛰면서 만세를 불렀다.

 

<고려사절요, 제 27권, 계묘 12년(1363년) 3월>

 

이듬해 흥왕사(興王寺)의 변란이 일어났을 때 왕이 태후(太后)의 밀실에 들어가 담요를 뒤집어쓰고 숨자 공주가 방문을 막고 앉았으며, 변란이 평정되자 그제야 왕이 나올 수 있었다.

 

<고려사 열전, 공민왕 후비, 휘의노국대장공주>

 

노국공주는 문 앞에서 자리를 깔고 앉아 공민왕을 지켰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원의 공주인 그녀에게는 반란군이 함부로 손을 댈 수 없었다. 하지만 사실 이 말은 결과론적인 이야기이다. 어쩌면 노국공주도 여기서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었다. 이미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 죽인 상태이고, 저기서 노국공주를 죽이고 공민왕까지 죽인 다음, 공민왕의 질투로 노국공주를 죽였다, 라는 식으로 죄를 뒤집어 씌울 수도 있었다. 물론 오래 가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어느 정도 틈은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고 죄는 만들기 나름이다. 원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공민왕의 개혁 정치가 사실 원의 입장에서는 거슬렸을 것이다.

 

결국 흥왕사의 변은 최영을 위시한 장군들이 진압한다. 저렇게 노국공주가 막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고려의 왕은 다시 바뀌었을런지도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죽음의 위기 앞에서 노국공주는 의연하게 대처하였고 결국 왕을 구해내었다. 아마 노국공주는 여장부같은 기질이 있었던 모양이다. 앞서 신축 10년의 기록을 보면 '연을 버리고' 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만약에 억지로 말을 타야했다면 연을 버린다, 라는 말보다는 '연에서 내려'라는 구절을 쓰지 않았을까? 여기서 고려사의 기록을 조금 참조하자.

 

또 왕이 공주와 함께 야간에 뒷뜰에서 승마를 연습했는데, 왕이 본래 말타기를 좋아하지 않아 종묘제례나 조회가 아니면 한 번도 내전 밖으로 나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말에 오르기만 해도 겁에 질렸던 것이다.

<고려사 세가, 공민왕 9년 경자년, 계묘일>

 

 

공민왕은 사실 말을 잘 못탔다. 그에게 승마를 가르쳐준 사람은 다름 아닌 공주였었다. 그것도 원에 있을때 배운 것이 아니라, 급하게 도망쳐야할 시기에 배웠다. 이때 공주에게 말타기를 배운 왕은 이후에 안동으로 피난을 가서도 말을 타는 법을 연습하였다고 전한다. 언급된 부분은 없지만 내 생각으로는 이 때 아마 노국공주도 함께 말을 달리지 않았을까? 말타기를 가르쳐준다는 명목으로 말이다. (물론 이 부분은 전적으로 내 상상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한가지만은 확실히 알 수 있다. 공민왕이 그녀에게는 자존심을 내세우지는 않았다, 라는 것을. 만약에 그녀가 아니었다면 공민왕이 과연 누구한테 승마를 배웠겠는가? 그리고 누구한테 '겁에 질린' 모습을 보였겠는가. 바로 이런 점에서, 위의 연을 버리다, 라는 구절을 이해할 수 있다. 공주는 당장에라도 말을 탈 준비가 되어있었던 것이다.

 

공주가 왕을 사랑한다, 라는 측면에서 시료를 살펴볼 때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도 그것을 뒷받침될 수도 있다. 물론 별 의미없이 흘려보낼 수도 있는 구절도 있지만 말이다.

 

재상이 공주에게 “왕이 즉위한지 9년이 되었는데도 태자를 두지 못하였으니 양가의 여자를 간택하여 후궁으로 삼기를 바랍니다.”고 건의하자 공주가 허락하였다. 이에 이제현(李齊賢)의 딸을 들여 혜비(惠妃)로 삼았으나 이는 왕의 뜻이 아니었고 공주도 후회하며 음식을 먹지 않았다. 더구나 엄수(閹竪)와 궁녀들이 온갖 비방과 참언을 올리자 공주도 드디어 시샘하는 마음이 생겼다.

<고려사 열전, 공민왕 후비, 휘의노국대장공주>

 

허락해놓고 다른 여자를 후궁으로 들이니 질투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여러 신하들을 불러 잔치를 베풀고, 이방실에게 옥띠와 옥갓끈을 하사하니, 공주가 아뢰기를, “전하께서는 어찌 이토록 지극한 보배를 아끼지 않으시고 남에게 주시나이까." 하니, 왕이 이르기를, “우리 종사가 폐허가 되지 않고 백성들이 어육이 되지 않은 것은 모두 방실의 공로인데, 내 살을 베어서 주더라도 오히려 제대로 보답하는 것이 아닌데, 하물며 이 물건 정도야 어떻겠는가." 하였다.

<고려사절요, 제 27권, 경자 9년(1360년) 4월>

 

저 말로는 사실 와닿지 않지만 현대어로 옮기면 이런 모습이다.

 

보석을 가지고 있는 왕기는 그걸 다른 사람에게 주었다. 그러자 아내인 보탑실리가 말한다.

 

"아니 그걸 왜 남에게 줘요? 아깝게시리. 당신이 하는게 낫지 않아요?"

 

"그래도 저 사람한테 내가 신세 많이 졌으니깐 이정도 선물은 아깝지 않아요."

 

너무 전형적인 부부간의 대화다. 자, 여기서 왜 이런 전형적 대화가 고려사절요에 실려야만 했을까? 왕의 애신, 애민 정신을 보여주기 위해서? 아마 이 이유가 가장 클 것이다. 자연스럽게 공민왕의 말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물음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왜 묻는 사람이 노국공주여야만 할까? 예를 들어 이방실이 공민왕에게 옥을 받는 자리에서 사양하면서 '아닙니다. 저는 이것을 받을 자격이 아직 모자랍니다' 라고 서두를 꺼낼 수도 있었다. 실제로도 군신간에 선물을 내리는데 사양을 한 번쯤 안할 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이방실의 입을 빌리지 않았을까?

 

그건 아마 노국공주의 공민왕에 대한 특별한 위상을 강조하기 위함이 아닐까? 저런 평범한 대화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노국공주와의 사이는 가깝다, 라는 것을 드러내가 위해서 말이다. 그녀 앞에서 왕은 그저 필부가 된다. 아니, 사랑 앞에서는 누구나 평범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렇게 서로를 지지하고 있던 한 쌍은 결국 깨어지고 만다. 공주는 난산으로 힘들어하다가 결국 목숨을 잃는다. 왕은 난산으로 힘들어하는 그녀를 보며 대사면을 베풀기도 하지만 모두 소용이 없는 일들이었다. 이 정경을 고려사는 이렇게 전한다.

 

임신 중인 공주가 만삭이 되었으므로 참수형과 교수형 이외의 죄수들을 사면했다.

<고려사 세가, 공민왕 14년 을사년, 정유일>

 

공주의 병이 위독해지자 참수형에 해당하는 죄수마저 사면했다. 이날 공주가 죽으니 왕이 태후(太后)를 모시고 덕녕공주(德寧公主)궁으로 거처를 옮겼으며 사흘 간 조회를 중지하고 백관들은 검은 관(冠)에 흰 옷을 착용했다.

 

<고려사 세가, 공민왕 14년 을사년, 갑진일>

 

점점 다급해지는 심리를 얼핏 엿볼 수 있다. 같은 상황을 고려사절요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2월에 공주가 만삭이 되었으므로 죄수를 사면하였다. 공주가 난산으로 병이 심해지니 또 대사하였다. 공주가 얼마 후에 훙(薨)하니, 왕이 매우 슬퍼하여 사도감(四都監)과 13색(色)을 설치하여 상사(喪事)에 이바지하게 하고, 각 관사에 명하여 전(奠)을 차리게 하여 풍성하고 정결하게 차리는 자에게는 상을 주었다. 참경회(懺經會)를 빈전(殯殿)에 설치하였다. 왕이 본래 불법을 믿었는데 이때에 와서 맹신하여 불사(佛事)를 크게 일으켰다.

<고려사절요, 제 28권, 을사 14년(1365년) 2월>

 

 

공주를 잃은 공민왕은 이제 몰락의 길에 접어들게 된다. 남겨진 문헌서 보이는 모습은 이랬다 : 밤낮으로 공주의 초상을 바라보고 마치 살아있는 사람을 대하듯 행동하였고, 불교에 빠져 고기반찬을 먹지 않았다. 불교의 교리 - 윤회설에 아마 빠진 게 아닐까. 물론 불교의 교리 중 윤회설은 무아윤회다. 복잡한 논증을 거쳐서 '이 나'와 '미래의 나'는 같지 않지만 지금 행한 것은 그대로 업이 되어 전한다. 이러니저러니해도 결국 윤회를 하더라도 왕은 공주를 다시 만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런 말을 했다가는 목숨이 위험했을 터이고, 동시에 설령 그런 말을 하더라도 이해를 하지 않으려 들었으리라. 결국 왕은 완전히 손을 놓게 되고 그저 공주만 그리게 되었다.

 

노국공주는 그에게 있어서 단 하나뿐인 사랑이었다. 그가 만약에 그저 필부에 지나지 않았다면 이 사랑은 길이 기억될 보석같은 사랑이었으리라. 하지만 그가 필부가 아니라 왕이라는데 모든 비극이 있다. 왕은 정무를 보아야 할 의무가 있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야만 할 족쇄에 묶여져있다. 특히나 오랜 부마국 생활로서 피폐해진 고려에 희망을 주었던 왕으로서는 너무 아쉬운 결말이었다. 사랑은 아무리 뛰어난 영웅이라도 그저 보통 사람에 지나지 않게 만든다. 하지만 그 사랑의 결말에 이르러 그 결말을 극복하느냐, 극복하지 못하느냐는 다시 영웅으로 돌아가는가, 돌아가지 못하는가, 와 마찬가지다. 공민왕은 그것을 극복하지 못했고 다시는 영웅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1365년 2월, 공주는 죽었고 사실상 고려도 죽고 말았다.

 

 

 

 

 

덧붙이는 자료.

 

태후가 또 묻기를, “어찌하여 비빈(妃嬪)들을 가까이하지 않소." 하니,

왕이 말하기를, “공주만한 사람이 없습니다." 하고,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태후가 웃으며 말하기를, “한 번 죽는 것은 당연한 이치오. 왕도 마침내 죽음을 면하지 못할 텐데, 어찌 그다지도 심히 슬퍼하시오. 남의 웃음거리가 될까 두려우니, 아예 다시는 그렇게 하지 마시오." 하였다.

                                                    

                                                     <고려사절요, 제 29권, 계축 22년(1373년) 3월>


 

 

 

 

이 글의 고려사절요와 고려사 관련 번역문은 각각 한국고전종합DB(http://db.itkc.or.kr/itkcdb/mainIndexIframe.jsp)와 네이버 지식백과 고려사(http://terms.naver.com/list.nhn?cid=3866&categoryId=3866)를 참조했음을 밝힌다.

 

 

 


댓글(22)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다락방 2014-01-27 09:05   좋아요 0 | URL
우와, 가연님 완전 대단하네요. 이런 글을 쓰다니..완전 푹 빠져서 읽었어요. 저는 기황후 라는 드라마를 한 번도 보지 않았고, 실제 그 인물에 대해 지식이 전무한 상황이라 잘은 모르지만, 지금 가연님의 이 글을 보노라니 왜 '기황후'를 주연으로 드라마를 만들었을까 싶어지네요. 공민왕과 노국공주 스토리만으로도 아름다운 사극을 만들 수 있을텐데요. 왜곡없이 이 포스팅대로, 고려사절요대로만 만들어도 말이지요. 누군가는 기황후의 변명을 해주고 싶었던걸까요?

공민왕과 노국공주라면, 흐음, 사극으로 만들어진다면 누굴 캐스팅 하면 좋을지, 그걸 한 번 생각해봐야 겠어요.

근데 가연님의 관심이 미치지 않는 범위가 없네요? 과학분야도 그렇고 역사까지! 멋져요! @.@

가연 2014-01-30 00:00   좋아요 0 | URL
ㅋㅋㅋ거의 두달동안 묵혀둔 글이라.. 이번에 마무리 안하면 영영 안쓸거같아서 급마무리를ㅋㅋㅋ

음.. 사실 요즘 회의감이 다시 엄습하네요. 이런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일까, 싶기도 하고ㅋㅋㅋ

무해한모리군 2014-01-27 09:26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가연님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저는 작년에 신의라는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았는데요,
거기서 공민왕을 류덕환이라는 배우가 했는데 노국공주와의 사랑을 인상적으로 연기해서 기억에 남았는데, 실재로도 보기드물게 다정한 커플이었군요.. 오호...

요즘 드라마 보면 그렇게까지 사료와 관계없이 나갈건데 왜 굳이 꼭 그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지 궁금합니다.... 그냥 판타지로 하면될것을...

가연 2014-01-30 00:01   좋아요 0 | URL
아, 답이 많이 늦었습니다. 실제로도 저 둘은 다정한 커플이었지요.. 커플...

노이에자이트 2014-01-27 16:35   좋아요 0 | URL
꼼꼼하고 수준 높은 글입니다.원나라 사료까지 언급하셨으니...사실 기씨 일족은 고려에서도 요즘 같으면 친일파 취급을 받았습니다.그래서 기황후도 역사왜곡 논란이 있었죠.

소설과 드라마 소재가 되는 시대는 정해져 있지요.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사랑받는 소재는 장희빈과 노국공주입니다.헌책방에 가보면 왕비열전이 몇 종류 있는데 노국공주는 빠지지 않더군요.일제시대에도 윤백남<대도전>, 박종화<다정불심>이 인기를 끌었습니다.다정불심은 지금 봐도 세련된 역사로맨스물의 걸작이죠.

가연 2014-01-30 00:0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말씀을...ㅠㅠㅠ 요즘은 인터넷이 워낙 좋아서 한국사에 관해서는 여간하면 다 자료를 구할 수 있더군요. 다만 교차검증을 못한게... 아목가가 1324에 죽었다는 이야기인데... 이건 제대로 확인을 못했습니다.

다정불심은 진짜 읽어보고 싶지만ㅠㅠ

꼬마요정 2014-01-27 17:52   좋아요 0 | URL
우와~ 정말 재미나게 읽었습니다. 공민왕과 노국공주 이야기는 희대의 로맨스죠. 가연님 말씀처럼 왕이 아니었다면 보석 같은 사랑 이야기였겠지만, 아쉽죠. 하지만 왕 중에도 이런 왕이 있었다는 게 또 신기합니다.

주진모, 조인성, 송지효가 나온 영화 <쌍화점>을 보면.. 공민왕이 남색이라 왕비인 노국공주를 홀대하고, 오히려 노국공주와 홍림이 사랑에 빠지죠. 또 <신의>에서는 공민왕과 노국공주가 사랑하고.. <신돈>에서도 그렇고.. 그러면서 같이 나온 기황후나 기철 같은 인물들이 매국노로 그려져서 이미 대중들에겐 인식이 안 좋은데 굳이 기황후를 드라마 주인공으로 내세운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거의 식민국가 같던 작은 나라에서 중국의 황후가 되었다니 구미가 당겼는지도 모르죠.

가연 2014-01-30 00:04   좋아요 0 | URL
희대의 로맨스죠..ㅠㅠ 쓰면서 셀프염장당하는 기분이라 조금은 짜증이...ㅋㅋㅋ

아이리시스 2014-01-28 01:39   좋아요 0 | URL
이거 전에 '충혜왕' 대신 저한테 헌정하시기로 약속한 그 페이퍼! (와락)-가연님 아니고 페이퍼 끌어안은 거임.

송지나 작가의 <신의>는 판타지이긴 했지만 가연님이 쓰신 이 글에 의하면 노국공주와 공민왕의 성격을 판박이로 그려낸 것 같아요. 제가 이 드라마 되게 좋아해서 가끔 돌려보거든요. 여장부기질이 맞는것 같아요. 고백도 먼저하고, 우유부단한 왕을 위해 늘 한발 빠르게 결단내리고 움직여요. 때론 목숨도 걸어요. 노국공주 입장에서는 왕에 대한 사랑이고 관심이고 보호인데 처음에 공민왕은 힘없는 고려의 왕인 내가 답답해서 공주도 자기를 무시한다고 여겨요. 서로의 마음을 깨닫게 되고부터는 변하지만. 처음부터 서로에게 호감이 있었지만 원의 공주를 아내로 맞은 공민왕은 노국공주가 편치 않았겠죠. 염탐당하는것 같았을테고.

그나저나 강간킹 충혜왕이 좀 궁금했는데, 아, <기황후>는 요즘 더 산으로 가고 있는 것 같던데 여전히 타환(지창욱)은 귀엽고 사랑스럽던데요. 안보다가 지난주에 수중키스씬 보고 다시 반해서^^

요즘은 정도전의 세상이니까, 다음번에는 정도전으로..^__________^ (막 시키고 이래..)

고마워요!

가연 2014-01-30 00:06   좋아요 0 | URL
어허허.. 그게 벌써 2달 가까이 된 것 같네요. 사실 그때는 쓰고 몇 일 안되서 빠른 속도로 써서 올리려고 했는데.. 이런 저런 일들을 겪다보니깐 지금에서야 올립니다. 그렇죠, 아이리시스님을 위한 페이퍼입니다.

요즘은 뭘 해도 재미가 없어서.. ㅋㅋㅋ

희선 2014-01-29 01:17   좋아요 0 | URL
기황후가 고려 사람이었다는 거 저는 얼마전에야 알았습니다 기황후 책을 보고 쓴 글을 보고... 고려를 괴롭게 했다 해도 다른 나라에서 황후가 되었다는 점은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원나라나 고려에서 그런 것을 좋게 여기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제대로 써두지 않은 것은 아닐지... 그때 사람에 대해 우리는 다 알 수가 없군요

사랑을 이뤄서 무엇이든 할 수 있기도 하지만 사랑을 잃은 슬픔에 빠져서 아무것도 못하기도 하지요 누군가를 만나서 지내온 추억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지만 그러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 거죠 왕이 아니고 그냥 보통 사람이었다면 좀더 슬퍼하다가 나아졌을지도 모르는데, 그런 말도 있군요^^ 아이만이라도 살았다면... 노국공주가 아이를 낳다가 죽었다는 말을 보니 <진>처럼 지금 시대 사람이 그 시대에 갔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하지만 그때는 살았다 해도 어떻게라도 노국공주는 죽었을 거예요 역사는 바뀌지 않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진>에서는 사카모토 료마를 구하려고 했지만 결국 죽었네요 거기에서 큰 역사는 바뀌지 않았지만 어떤 것은 조금 바뀌기도 했습니다 그 정도는 괜찮은 거군요(잘 모르지만 우리나라 드라마로 책으로도 나온 <신의>에 고려시대로 지금 시대 의사가 가는군요^^)

모든 권력을 가진 왕이어서 좋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을 거예요 밑에 좋은 사람이 있어서 왕을 좋은 쪽으로 이끌어준다면 좋겠지만 그러지 않는 사람도 많았으니까요 그것은 지금도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곧 설날이네요 다시 한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한해 동안 건강하게 그리고 즐겁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희선

가연 2014-01-30 00:07   좋아요 0 | URL
ㅎㅎ 사실 드라마들을 거의 안봐서 잘 모르겠네요. 설 잘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2014-01-30 2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2-17 00: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2-11 0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2-17 0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2-13 14: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2-17 0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3-17 02: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5-24 2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5-01 0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5-24 2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지구의 정복자]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지구의 정복자 -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사이언스 클래식 23
에드워드 오스본 윌슨 지음, 이한음 옮김, 최재천 감수 / 사이언스북스 / 2013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구의 정복자.

  

  

 

   라 만차의 ‘슬픈 얼굴의 기사’ 돈 키호테는 거인과 싸우고, 두 군대 사이에 끼어들어 놀라운 무훈을 발휘하여 상대편의 왕을 사로잡고, 다른 기사와 부딪혀 그를 쓰러뜨린다. 그 뿐만이 아니다. 쇠사슬에 묶여 있는 사람들에게는 어김없이 손을 내밀어 그 쇠사슬을 부수고, 주인으로부터 학대받는 사람을 보면 그의 창칼로 그 핍박을 풀어주려고 노력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선배 기사들의 고행을 본받아 그 또한 산 속에 들어가 깊은 고뇌에 잠긴 묵상을 몸에 익히기도 하며, 정말 필요할 때에는 성스러운 약물을 제조하여 몸을 치료한다. 성주가 어려움에 빠졌더라도 기사의 품격에 어긋나는 일이면 섣불리 뛰어들지 않는 자제심도 가졌으며, 자신의 종자인 산초에게 편력이 끝나면 백작 작위를 보장해주는 섬세함마저 가졌다. 무엇보다도 그의 가장 큰 힘은 그의 공주 둘시네아를 향한 타오르는 열정이다. 그러나 그의 공주 때문에 도움이 필요한 다른 공주를 외면하지는 않는다.

 

물론 거인이 풍차로 둔갑한다거나, 혹은 포도주 자루로 변해버린다거나 하는 일도 있고, 군대인줄 알았던 것들이 뛰어들고 보니 양떼들에 불과했다는 것은 사실 사소한 일이다. 그러다가 양치기에게 집단으로 린치를 당하여 치아가 다 빠지고 갈비뼈가 심하게 부러져버리는 것 또한 기사에게는 사소한 일이다. 그런 상황에 처하여 성스러운 약물을 복용하였으나 다만 그 약물이 몸에 맞지 않아서 사소한 구토를 할 때도 있다. 성이 갑자기 마법에 걸려 평범한 주막으로 변할 때도 있고 공주인줄 알았던 존재가 평범한 여자로 변했다거나 하는 일도 있지만, 그러다가 다시 성으로도 바뀌고 공주로 바뀌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자신의 종자에게 약속한 영지와 작위는 언제 획득할 수 있을지조차 가물거리지만 그런 것들은 모두 편력 중에 겪는 일이다. 사실 무엇보다도 그의 공주인 둘시네아는 남정네들을 두들겨 눕힐 수 있을 정도의 용맹을 보유한다는 이야기도 들려오지만 그런 것들은 모두 자신을 신실한 편력행에서 탈선시키려는 악마의 소행일 것이다.

 

실상은 이렇다. 라 만차의 돈 키호테는 사실 편력기사소설을 너무 많이 읽어서 정신이 돌아버린 것이다. 그가 살던 시기에는 더 이상의 기사도, 그리고 공주도 없었고, 다만 남은 것은 소설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전설의 시대를 살고 싶었던 그는 그런 현실을 견디지 못했고, 결국은 망상으로 빠져나가고 만다. 웃긴 것은 기사도와 관련된 일이 아니면 매우 뛰어난 지혜와 이성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사와 그의 전설에 관련된 일이라면 그저 한 눈을 가리고 앞 뒤 가리지 않고 뛰어들게 된다. 오늘날 돈 키호테는 많이 알려져 있듯 망상에 빠진 사람을 지칭하거나, 더 나아가 이상주의자로 해석을 하게 된다.

 

사실 에드워드 오스본 윌슨의 책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새로운 돈 키호테를 만난 듯했다. 나는 통섭, 으로 윌슨의 책을 처음 접했는데, 지금이야 흔한 단어이지만 내가 읽을 당시에는 단어 자체가 상당히 생소했었다. 물론 학제간의 간격을 극복하고 공통분모를 찾아 가로지르는 일, 이라는 개념 자체는 누구나 떠올릴 수 있지만, 어떤 개념이든지 그 이름이 붙을 때 제대로 연구 대상으로 잡을 수 있다. 이 통섭이라는 개념도 마찬가지인데, 통섭을 윌슨의 의도로 다시 정리하자면 ‘분야를 가로지르는 사실들과 그 사실들에 기반한 이론을 통합’ 하는 것이다. 보통은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화해, 정도로 쉽게 이해되는 경향이 있고, 윌슨 본인도 거기에 대해서 크게 불만을 표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은 조금 다르다. 저 정리를 뜯어보면 통섭, 이라는 것의 개념만 정의한 것이 아니라 그 방법론까지 정의해놓았다. 가장 먼저 분야를 가로지르는 사실을 찾는다. 그리고 그 사실들에 기반한 다양한 이론들을 수집한다. 그러면 이론들 사이에는 사실이라는 공통집합이 생긴다. 이런 이론들의 통합을 통하여 우리는 사실이라는 것에 대하여 완전한 이해를 얻을 수 있다.

 

이런 통섭과 윌슨과 돈 키호테가 무슨 관계인가 하니, 이렇게 방법론까지 정의해두었기에 그렇게까지 허황되어보이지는 않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힘든 이야기이다. 우리는 이론적으로는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과 악수를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애로사항이 많다. 통섭도 마찬가지이다. 쉽게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통합한다, 정도로 오해하는 사람들도 진정한 통섭의 걸림돌이 될 수 있을 것이고 - 이런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그냥 사회학자가 물리학 책이나 생물학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면 (혹은 그 반대가) 통섭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 그렇지는 않더라도 특히나 윌슨의 경우에는 진화론 만능주의가 아니냐, 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진화론을 중심으로 통섭을 시행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사실을 택할 것인가’도 문제가 된다. 거칠게 말해서 원자가 양성자, 중성자, 전자로 이루어져있다, 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에 해당할만한 인문학적인 이론이 있는가? 결국 인문학적인 이론과 함께 나아가려면 인간과 그 문화에 관련된 사실을 채택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통섭 자체는 필연적으로 인간중심적이라는 한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어떤 이론을 택할 것인가’ 또한 문제가 된다. 한 사실을 설명하는 두 이론이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그 두 이론의 발전 단계가 너무나 다르면, 쉽게 말해서 그 사실을 한 이론이 다른 이론에 비하여 너무나 잘 설명한다면 우리가 굳이 두 이론을 통합할 필요가 있겠는가? 이런 연유로 나는 통섭에 대하여 부정적 예측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부정적 예측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게 통섭 자체에 대하여 부정적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도덕, 자유 의지, 선과 악, 등의 문제에 있어서 그런 윤리학적으로 어려운 문제의 생물학적 기반을 찾는 것은 분명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런 통합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눈을 뜨게 되고, 우리 자신과 타인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에 획기적 변화가 올 것이다. 물론 그런 일은 아직은 쉽게 도달하기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이런 꿈을 꾼다고 해서 누가 비난할 것인가? 모두가 현실적인 삶을 살아가더라도 누군가는 별을 바라보고 그 별을 손아귀에 쥘 꿈을 꿀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의미에서 나는 윌슨에게서 돈 키호테를 떠올린 것이다.

 

그리고 앞서 인간 중심적이라는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는 이야기는 결국 ‘통섭’ 자체의 성격을 규정한다. 결국 통섭이라는 것은 윌슨에게 있어서 인간 존재의 특성에 대한 이해를 의미한다. 윌슨이 그동안 천착해온 연구 분야와 저술한 책들 (바이오필리아, 인간 본성에 관하여 등) 을 살펴보면, 결국 그의 관심사 자체가 인간을 향해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관심사를 넘어 윌슨 본인은 인간 존재에 대하여 애정을 가지고 완전한 이해에 이를 수 있다는 돈 키호테적인 낙관주의를 가지고 있다. 정말 인간 존재에 대한 완전한 이해에 우리가 도달할 수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이번에 그가 쓴 지구의 정복자, 또한 이런 맥락에서 이해하여야만 할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는 그의 책 이기적 유전자, 에서 개체 선택론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결과적으로 말해서 우리 인류는 일종의 운반자로, 자기 복제자인 유전자가 어떻게든 자신을 퍼뜨리기 위하여 잠깐 머무는 로봇과 같은 존재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인간이 유전자만으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존재는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거친 말로 도킨스가 표현했듯이, 우리가 피임만 하더라도 우리는 유전자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것이나 다름없기에 ‘이기적 유전자’ 라고 해서 꼭 그 유전자대로 모든 것이 결정된다는 이야기는 버리라고 이야기한다. (사실 이렇게 유전자 결정론으로 여기는 것은 도킨스의 저서에 대한 가장 큰 오해다.) 하지만 이렇게 도킨스가 인간의 특이한 위치를 인정하고, 유일하게 학습을 통하여 본능에서 벗어날 수 있는 존재라고 용기를 북돋아주더라도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서는 꺼림칙한 기분이 든다.

 

왜냐하면 이런 개체선택론에서는 개체와 다른 개체 사이의 상호작용을 유전자 입장에서 해석하기에, 정작 ‘개체’ 본인의 생각으로는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결론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특히나 그런 결론을 가져오는 것은 이타주의에 관한 것이다. 주변에 보이는 수많은 모습들이 유전자가 자신을 퍼뜨리려고 표현형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거라고? 그리고 그런 모습들 중 이타적인 모습이 가끔 보이는 것은 그렇게 하는 것이 확산에 ‘도움’ 이 되기 때문에 보이는 거라고? 그리고 호혜적인 관계가 아니라면 이타주의가 발달하기란 쉽지 않을 거라고?

 

이타주의가 드러나는 모습에는 크게 가지가 있다고 개체선택을 지지하는 입장에서는 이야기한다. 그 중 첫 번째는 혈연선택이다. 말 그대로 자신의 친족이 어려움에 빠졌을 때 도움을 준다는 이야기이다. 직관적으로 이해가 가는 말이다. 친족이라면 자신의 유전자를 일부라도 공유할 것이다. 이를 두고 보통 포괄적응도라는 이야기를 한다. 이 지구의 정복자, 에서는 혈연 선택과 포괄적응도를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실제로는 약간 미묘한 차이가 있다.) 두 번째 전략은 서로 같은 목표를 추구하고 있을 때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원시인이 되어 사냥감을 추적한다고 하자. 공동의 목표가 있을 때에는 서로 협력하여야만 유전자 입장에서도 좋다. 괜히 따로 떨어졌다가 사냥감에게 도리어 각개격파 당할 수 있을 터이니 말이다. 세 번째가 바로 호혜적 이타주이다. 트리버스가 정립한 이론인데, 쉽게 말해서 서로 오래 볼 사람이면 일단 도움을 주는 게 좋다는 이야기이다. 도와준 사람이 나를 다시 도와줄 수 있을 터이니 말이다. 이를 조금 수학적으로 풀어나가면 팃포탯 전략이 나오게 된다.

 

앞서 말한 문단에서 나온 용어를 조금 설명하겠다. 포괄적응도는 혈연 선택과 비슷하지만 조금 다르다고 이야기했다. 어떤 의미에서 다른가? 보통 진화론에서 적응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면 자손을 많이 남긴다, 라는 이야기로 받아들여도 좋다. 그렇다면 포괄적응도는 포괄해서 자손을 많이 남긴다는 이야기이다. 내가 굳이 자손을 낳지 않더라도 누군가가 내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자손을 낳아준다면, 그 자손을 통하여 나는 유전자를 전한 것이다. 이런 배경 하에 좀 더 엄밀하게 살펴보면, 다음을 생각하여야만 한다.

 

먼저 포괄적응도는 개체 간의 상호작용을 고려한다. 포괄적응도에 관한 등식은 다음과 같다. 개체 A의 포괄적응도 = 상호 작용이 없을 때 A 개체의 적응도 + (유전자 형질 a가 A에게 영향을 미치는 정도와 형질 a가 A와 근연관계에 놓인 개체 B에 영향을 주는 정도의 합) 여기서 볼 때 실질적으로 혈연 선택이 작용하는 곳은 괄호 안이기 때문에 혈연선택은 엄밀히 말하자면 포괄적응도에 포함되는 그리하여 그 적응도를 구성하는 요소라고 볼 수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포괄적응도와 혈연선택을 동일하게 두는 것은 미묘한 문제다. 윌슨은 이를 무시하고 (사실 이타적이나 이기적 행동을 고려하기 위해서는 상호작용이 없을 때의 A개체의 적응도를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에 ‘무시’ 라는 말이 적절하지 않을런지도 모른다.) 둘을 동일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무시한 경우 우리는 부등식을 하나만 고려하면 된다. 바로 rb-c>0 라는 것이다. r은 근친도, 얼마나 두 개체가 가까운가 (보통 유전적으로 가까운가, 라는 말을 사용한다.)를 의미하는 수치이며, b는 어떤 행위를 했을 때의 이득, c는 그 행위를 했을 때의 불이익이다. 그야말로 명료한 수식이다.

 

팃포탯 전략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이는 쉽게 이야기하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라는 의미이다. 우리는 죄수의 딜레마, 라는 이야기를 안다. 이를 돌파하는 전략이 바로 팃포탯 전략이다. 처음에는 협력한다. 만약에 상대방이 나를 배신한다면 그 다음에 똑같이 배신한다. 이런 단순한 전략이 죄수의 딜레마를 헤쳐나가는 전략이 된다. 어떻게 그렇게 되는 걸까? 수학적인 증명은 여기서 하기가 곤란할테지만 경험적인 사실은 알려줄 수 있다. 액설로드라는 학자가 이 죄수의 딜레마를 돌파할 전략을 찾기 위하여 대회를 열었다. 그런데 이 그 대회에서 우승한 전략이 바로 팃포탯이다. 결국 계속 관계가 유지된다면 협력하는 것이 서로에 이득이 된다는 이야기이다. 그런 의미에서 상호 호혜적 이타주의가 성립할 수 있다.

 

하지만 애초에 개체적인 입장이 아니라 집단적인 입장이라면? 집단 선택을 지지하는 사람이라면 사실 저렇게 세 가지로 개체의 행동을 분석할 필요가 없다. 그냥 이타적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집단이 이기적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집단을 막아낼 수 있다, 라고 해석하면 이타주의에 대한 해석이 완료가 되는 것이다. 바로 이 입장에 지구의 정복자, 가 있다.

 

사실 지구의 정복자, 의 저자인 윌슨은 개체선택설을 지지하던 사람이었다. 물론 받아들이는 데에는 심리적으로 저항이 컸었다고는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왜 갑자기 지금와서 이렇게 개종을 한 것일까? 그것은 다음과 같은 근거를 가진다. 잘 살펴보면 포괄적합도, 라는 말에는 상당한 문제가 있다, rb-c>0이어야 남을 도울 수 있다면, r은 어떻게 결정하는가? 윌슨은 바로 이 점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실질적인 생물 종들의 관찰에서는 이 근연도 개념이 얼마나 허구인지 드러난다고 윌슨은 역설한다. 또한 적용이 되는 경우더라도 근연도 r이 r의 의미를 가지지 못할 정도로 크게 확장되어야만 하는 경우가 많으니 도대체 r을 설정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결국 r이라는 것의 모호한 정의에 윌슨은 통렬한 비판을 날리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윌슨의 말이 일리가 있는 것 같다. 그리하여 윌슨은 개체 선택을 버리고 집단 선택 쪽으로 넘어가서 새로운 수학적 모델을 만든다. 그것이 바로 다수준 선택이다. 개체 선택과 집단 선택이 각각 다른 수준에서 일어난다는 이야기이다. 결국 두 이론을 종합한 이론인데, 저자의 논리를 따라가 보면 탄탄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먼저 인류가 어떻게 진사회성 (분업을 하고 세대를 거쳐 번식을 하는)을 획득하게 되었는지를 윌슨은 추적한다. 그리고 그 추적의 결과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정리된다 : 개체 선택을 통하여 여러 선적응들을 거쳐서 인류가 진사회성의 문턱에 도달하게 되었고, 그 선적응들을 통하여 발생한 집단에서 다시 자연 선택이 일어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윌슨의 주장에서도 문제가 있다. 책 말미의 해설에서 최재천 교수가 해설하듯이 윌슨 본인은 개미를 연구하던 사람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개체선택을 개미와 같은 초유기체적인 의미에서 이해를 하던 사람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위에서도 이야기했듯 포괄적응도와 혈연선택을 거의 비슷한 의미로 계속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사실 오해라면 오해라고도 볼 수 있는 부분이다. 포괄적응도를 어디까지 해석할 것인가? 사실 윌슨이 제기한 문제는 근친도 r을 단순히 혈연을 넘어 관계를 맺는 전부로 본다면 사라질 수 있는 문제다. 물론 이렇게 해석할 경우 윌슨의 말대로 r의 정의가 그때그때 달라지는 결과를 낳을 수 있고 모호함이라는 측면은 해소되지가 않지만 이론의 통일성이라는 측면은 유지가 된다.

 

또한 사회 자체의 근원적인 억압성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윌슨의 이론은 해석에 논쟁의 불씨를 남겼다. 윌슨의 이론을 다시 살펴보자. 여러 선적응들을 거쳐서 진사회성의 문턱에 이르러 집단을 이루고 사회성을 발달시켰다. 이 과정을 조금 자세히 이야기하자면, 인간의 조상은 육지에 살고, 손이 있으며, 어느 순간 고기를 먹고 불을 사용하게 되었다. 처음에 인간은 불에 타죽은 고기를 먹었을지도 모른다. 혹은 죽은 생고기를 먹었을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고기의 맛을 알게 된 인간의 조상은, 우습게 들릴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고기를 먹기 위하여 사냥을 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한 명보다는 두 명이 낫다는 것을 깨달았으리라. 초기의 집단은 혈연으로 매개되었을 것이다. 그 이유는 혈연이 집단을 만들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아이를 놓기만 하면 집단이 될 수 있다.) 여기에는 자손이 집을 떠나지 않는다는 행동에 관한 개체 수준의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작용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혈연 수준의 집단은 다른 혈연 수준의 집단과 함께 더 큰 집단을 만들 수도 있었을 것이다. 모닥불을 피워서 둥글게 둘러앉아있는 큰 집단을 생각해보라.

 

여기에 도달할 때 이 큰 집단은 굳이 혈연만으로 형성된 집단은 아닐 것이다. 이 커다란 집단이 계속 살아남으려면 결국에는 이타주의적인 심성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윌슨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이타주의적 유전자가 이기주의적 유전자 풀을 막아설 수 있게 진화가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부분을 자세히 살펴보라. 이렇게 큰 사회는 결국 이타주의적인 심성을 가진 사람들로 유지가 될 수 밖에 없다. 좀 더 명료하게 이야기하자면 희생을 먹고 자란다는 이야기이다. 큰 집단을 유지하려면 개인의 희생이 어쩔 수 없이 필요한 상태가 된다. 결국 집단 자체가 개인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집단이 그대로 지금까지 전해졌다면, 이런 집단을 계승한 우리 사회는 어쩔 수 없이 억압적인 모습을 가질 수 밖에 없다. 개인을 사회를 위하여 희생으로 내모는 그런 모습 말이다. 이런 해석을 내릴 수 있다면 개체 자신이 이기적 유전자의 운반자에 불과하다는 관점보다 더 끔찍하다면 더 끔찍했지 덜 끔찍하게 여겨지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이런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윌슨은 앞서 통섭에 대하여 말해왔듯이 인간 전체에 대한 애정과 완전한 이해를 추구한다. 도킨스든 윌슨이든 인간은 특별한 존재다, 라는 이야기를 몇 번이고 강조하지만, 윌슨의 경우에는 도킨스보다 좀 더 인간에 대하여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그런 특별한 존재를 해석하기 위하여 집단선택론을 다시 가져오게 된 것은 아닐까? 쉽게 말해서 진정한 이타주의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간 존재가 생각보다 특별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무의식적인 소망을 위해서 집단선택론을 짜맞춘 것은 아닌가? 당장 오컴의 면도날을 통과시켜보라. (물론 오컴의 면도날이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왕이면 더 단순한 설명을 선호하는 경향을 무시할 수는 없다.) 두 번의 선택을 거치는 것과 한 번의 선택을 거치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간단하게 설명이 가능할 것인가. 아마 후자인 개체 선택이 아닐까? 하지만 개체 선택을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그 문제점들이 있기에 다수준 선택을 버릴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윌슨의 다수준 선택과 개체 선택을 두고 어떤 관점에서 이타적 행동의 진화를 바라보아야 할 것일까? 사실 여기서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약간 다른 관점이며 나 스스로의 가설 수준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바라볼 수가 있다. 윌슨은 근연도 r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버린 것이라고 말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인간의 유전자는 같은 종인 이상 일부를 공유할 수 밖에 없다. 인간이 인간으로 있으려면 적어도 일부의 변이는 있되 큰 수준에서는 비슷한 표현형을 보이는 유전자들이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런 부분을 편의상 r<0.5로 두고, r>0.5가 될 때 혈연관계를 드러낸다고 보면, 결국 r값은 0.5이상과 이하로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사실 0.5란 수치는 임의로 잡은 것이다.) r<0.5인 부분인 비혈연부분을 집단선택으로 바꾸게 되면 전체 r값에서는 다수준 선택이 된다.

 

이런 식으로 해석할 때 어떤 장점이 있는가? 일단 호혜적 이타주의에 기대지 않더라도 한 사람이 전혀 혈연 관계도 없으며 집단에 속해있지도 않는 다른 사람을 구하러 뛰어드는 이타주의적 행동들을 설명할 수 있다. 또한 더 나아가 한 종이 아예 다른 종을 구하는 행위를 설명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왜 사람이 원숭이를 위해서 물에 뛰어들고 고양이를 위해서 도로에 뛰어들 수 있을까? 어느 정도는 비슷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물론 단점도 있다. 단적인 예로 침팬지가 사람과 98퍼센트 정도 비슷하다는 말은 매우 허술한 말이다. 보통 두 종이 유전적으로 비슷하다, 라는 이야기는 생물학적인 연구방법 중 BLAST법을 사용하여 정렬하고는 확인해낸다. 그런데 이 확인한다는 이야기는 어느 정도 유연관계가 높을 것이다, 라는 것만 보장할 뿐이다. 그렇게 기반 자체가 허술한데 어떻게 종 내부의 이타주의를 설명할 수 있겠는가? 종 내부의 이타주의를 설명할 수 없는데 하물며 종 간의 이타주의는 오죽하겠는가.

 

이런 가설들이나 논쟁은 접어두고 이렇게 글 말미에 고백하자면 나 또한 불가능해보이는 꿈을 꾼다. 나 또한 돈키호테와 다를 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윌슨의 이론에 호의를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하지만 앞서 길게 말한 것처럼 다수준 선택과 통섭 이론에 대하여 조금 부정적인 전망을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저런 다수준 선택을 통하여 인류의 문화가 유전자들과 공진화해왔다는 것이 제대로 밝혀진다면 통섭에 큰 획을 그을 수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런 통섭을 바라고 있고, 인문학적인 견지에서의 빅히스토리big history를 기다리고 있다. 어느 방법이든지 하나의 묶음으로 이루어지는 그런 꿈을 꾸고 있다. 물론 이런 불가능해보이는 꿈을 꾸는 사람들 앞에는 풍차가 거인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주변 모두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바라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단적으로 이번 책에 대하여 도킨스가 내린 평가를 보라. ‘읽을 필요가 없는 책이다’ 라고 말하지 않는가? 하지만 윌슨은 계속 자신의 작업에 대하여 거대한 그림을 그려왔고 일관성을 가지고 계속 학문을 연구해나가고 있다. 그 집대성이 바로 이 책이며, 그가 내린 결론과 연구의 결과는 인간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위해서 쓰일 것이다. 다수준 선택이 옳든 그렇지 않든 적어도 이 자세 - 현실에 굴하지 않고 돈 키호테처럼 이상을 쫓는 자세는 학문하는 사람으로서 꼭 배워야 하지 않을까.

 

   

 

 

 

p. s. 아주 흥미로운 가설이 떠올라 논문을 써볼까 생각중이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희선 2014-01-23 02:02   좋아요 0 | URL
다 알고서 봤다고 말하기는 어렵고, 이 책을 쓴 사람이 하려고 하는 게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구나 하는 것은 알았습니다 다른 사람이 어렵다고 해도 그런 것은 마음 쓰지 않고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하는 것도 좋다고 봅니다 그런 사람이 있었기에 여러가지가 나왔을 테죠 돈키호테가 없었다면, 지금은 이런 사람을 뭐라고 했을까요^^

사람이 자신과는 다른 종을 구할 수 있는 것은 목숨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윌슨은 근연도 r을 두 부분으로 나누었다, 고 생각하는 거 맞을 것 같아요

논문 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희선

가연 2014-01-26 22:04   좋아요 0 | URL
ㅎㅎㅎ 사실 아직 잘 모르겠어요. 일단 좀 더 지켜봐야될 것 같아요. 뭐랄까 저자의 태도는 본받을 만 하지만 집단선택론은 좀 받아들이기 어려운 기분이랄까.

yamoo 2014-01-23 12:58   좋아요 0 | URL
오, 흥미진진하게 읽었습니다. 이 책 한 번 훑어보고 구입해야 겠습니다.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가연 2014-01-26 22:09   좋아요 0 | URL
ㅎㅎㅎ저자의 모든 책들을 모두 총집결한 느낌을 주는 책이라.. 제가 볼때는 읽어야 할 책 같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사실 저자의 주장 자체를 받아들이기는... 리뷰에서는 직접적으로 이런 저런 부분을 지적하지는 않았지만요. ㅎㅎㅎ 평가가 갈릴 수 있으니 한 번 직접 훑어보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지구의 정복자는 에드워드 윌슨의 역작이다. 그동안 써온 책들에서 싹을 틔운 생각들을 집대성한 책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특히나 이 책이 의의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이기적 유전자' 로 널리 대변되는 유전자 기반의 사회성 발달에 대하여 반박하는 생각을 오롯히 드러낸 책이라는 점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의 맛을 제대로 음미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그리하여 이 책과 함께 읽을 때 더욱 빛을 발하는 책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지구의 정복자는 크게 세 파트로 구성된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각각의 질문은 윌슨의 손에서 세 질문으로 재구성된다. 책 소개도 그에 따르겠다.

 

가장 먼저,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이 책, 지구의 정복자는 기존의 이기적 유전자, 에서 알려진 포괄적합도와 혈연선택을 반박하는 책이다. 물론 어쩌면 윌슨 본인이 혈연선택Kin selection에 대하여 오해를 하고 있는 부분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기적 유전자는 이 책을 읽기 위해서는 꼭 한 번은 읽어보아야 할 책이다. 협력의 진화, 라는 책 또한 함께 읽음직하다. 어떻게 호혜적 이타주의가 생겨날 수 있는지를 우리는 이 책을 통하여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위의 책들이 부담스럽다면 이 두 권을 읽는 게 좋다. 다윈의 식탁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왼쪽의 다윈과 페일리를 비교하면서 다룬 책은 잘 눈에 띄지 않는 것 같다. 왼쪽의 책도 상당히 좋은 책이다. 간략하게나마 진화론에 대하여 개념을 잡고 현대의 경향이 어떤지를 파악하고 싶다면 이 책들을 읽어보는 것이 좋다.

 

두 번째로 우리는 무엇인가? 이 질문을 지구의 정복자 읽기, 에 적용시킨다면, 현재 윌슨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 어떤 생각인지를 파악하는 것에 중점을 두며 읽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윌슨과 함께 다수준 선택, 을 체계화한 마틴 노왁의 책이다. 이 책은 비록 경제 경영 쪽으로 분류가 되어있지만 진화론적인 의미에서도 읽어봄직하다.

 

 

 

 

 

 

 

 

 

 

 

 

 

 

 

로버트 트리버스의 책과 데이비드 버스의 책을 좌우에 두었다. 양 쪽 책들은 어떤 의미에서든 한 번 읽어보아야 할 책이다. 데이비드 버스의 책이 너무 두껍다고 생각된다면, 가운데 진화심리학, 을 읽는 것도 좋다. 특히 첫 장을 주의깊게 읽어보기를 바란다.

 

 

 

 

 

 

 

 

 

 

 

 

 

 

 

의외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총, 균, 쇠는 은근히 유용하다. 지구의 정복자, 의 앞 장은 문명의 진화사에 할애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아이작 아시모프의 대작, 파운데이션은 주로 1권부터 3권까지를 파운데이션 삼부작으로 치고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도 1권부터 3권은 한 사회가 어떻게 발달하고, 어떻게 어려움을 헤쳐나가는가, 에 있어서 독보적인 예측을 자랑한다. 그러나 윌슨의 지구의 정복자, 를 읽기 위해서는 4권과 5권을 읽는 것을 추천한다. 그것은 '가이아' 라는 초유기체 때문인데, 파운데이션 시리즈 전체로 미루어 짐작할때에는 사실 가이아, 라는 것이 뜬금없이 등장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초유기체적인 관점, 개미와 말벌 연구를 통하여 진화에 대한 의견을 개진해왔던 윌슨에게 있어 이보다 더 친숙한 관념은 없을 것이다. 가이아로 인하여 그려지는 사회가 인류가 진화의 끝에 다다르게 되는 결과물처럼 보일 수 있을 것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희선 2014-01-21 01:06   좋아요 0 | URL
이 책 한 권을 제대로 보려면 다른 책을 먼저 봐야 하는군요 만약 반대로 한다면 어떨까요 개미 말벌 하니까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생각나기도 합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책을 많이 본 것은 아니고 '제3인류'에 그런 게 잠깐 나왔습니다 이 소설 자체가 진화에 대한 것이군요 진화는 자연스럽게 되어야 할 것 같은데 사람이 그것을 만들어낸다는 게 좀... 이런 생각을 하게 하려는 것인지도 모르겠군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베르나르 베르베르도 이런 책을 보면서 소설을 쓴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아시모프 아이작 소설도 도움이 되는군요


희선

가연 2014-01-26 22:09   좋아요 0 | URL
ㅎㅎ 같이 읽으면 좋은 책들이지요ㅎ 이런 책들을 다 읽어야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구 그저 생각나는 책들을 묶어놓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