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9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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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그 나이에 어떤 일을 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지만, 사강이 이 소설을 쓸 시대를 생각하면 결혼도 하지 않은 서른아홉의 폴이 실내 장식가로 자리를 잡고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보면 당찬 여자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런데 그녀도 그녀의 애인 로제만 곁에 있으면 한없이 나약한 여자가 되고 만다. 자유연애를 꿈꾸는 로제는 폴과의 사랑이 절대적이지 않다.



그는 때론 기분에 맞춰 젊은 여자와의 하룻밤이 특별하지도 않다. 지 기분 내키는 대로 사는 나쁜 남자의 정석이라고 할까. 그런데 폴은 그를 사랑함에 있어서는 동화 속에 나온 공주들과 다를 게 없다. 나른한 연애를 깨워줄 마법의 주문을 가진 왕자가 나타나야 할 것 같았다. 그런 폴에게 나타난 시몽은 그녀가 살고 있는 동화속의 액자 안으로 들어간다. 폴을 사랑하는 시몽은 그녀에게 적극적인 사랑을 표현하지만 나이차이가 나는 시몽과의 사이에서 늘 갈등을 겪는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문득 나이든 사강의 모습이 떠오른다.


공부 안하기로 유명한 사강이 19시에 쓴 소설 “슬픔이여, 안녕”이 그해 비평가 상을 받으면서 엄청난 부를 지니게 되었다. 너무 어린 시절 성공을 거둔 그녀의 중년의 삶은 평탄치 않았다. 그녀의 “슬픔이여 안녕”의 주인공은 17세였고, 그것을 쓸 때 그녀의 나이는 19세였다. 그녀는 자신이 경험한 것을 토대로 작품을 쓴다고 했으니 경험이 많지 않았던 19세의 그녀의 소설은 당연히 그녀의 17세가 녹아 있을 것이다. 그런 부분을 생각해 보면 서른아홉의 폴은 분명 사강의 세월을 녹아 넣었던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책을 읽었는데 사실 이 소설은 그녀의 나이 24살 때 쓴 소설이다. 이 소설을 쓰기 전에 그녀는 고통사고로 차가 전복되어 머리에 중상을 입고 3일간의 의식 불명 상태에 놓여 있었다고 한다. 그 이후 이 소설을 쓰게 되었으니 그녀는 자신의 혼돈의 시대를 시간여행자로 미리 다녀 온 것은 아니었을까.


두 번의 결혼과 이혼을 겪었고, 알코올과 마약, 도박 중독으로 그녀의 노년은 정말 궁핍한 삶이었다고 했다. 마치 모든 사랑을 다 잃어가는 폴처럼 그녀는 쓸쓸 했을 것이다. 하지만 폴은 아직 젊고 젊은 시몽이 있지 않는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가 아니라 “브람스를 좋아하세요...”(특히 여기서 점 세 개가 중요하다고 한다.)는 당시 브람스를 즐겨 듣는 프랑스인들이 없었기 때문에 물음표가 아닌 권유 형으로 받아들여진다.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며 상대방에게 꼭 같은 감정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권하는 느낌. 브람스를 좋아해보세요. 폴은 그녀와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시몽을 보며 연상의 여인을 좋아했던 브람스를 떠 올렸다. 브람스는 열네 살이나 연상이었던 클라라 슈만을 평생 동안 연정의 마음을 품지 않았던가.



폴은 브람스를 떠 올리면 시몽이 자연적으로 그려졌을 것이다. 젊은 시몽을 떠나보내기로 한 그녀가 시들해진 로제와의 사랑을 계속 가기로 선택한 부분은 어쩌면 시몽의 젊음을 계속 가둘 수는 없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 평생 연정의 마음을 품고 살아갔던 브람스처럼 시몽을 두지 않았던 그녀가 시몽의 뒤를 보며 했던 “시몽, 나는 늙었어. 늙은 것 같아......”의 대사에 그녀가 선택한 현실의 타협을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다.


코카인 소지로 인해 기소된 그녀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얘기 했다. 그녀가 그녀를 덜 파괴하고 살았다면 훨씬 더 많은 그녀의 다양한 작품을 만났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아쉽지만, 참 멋진 대사를 하며 살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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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생활비를 출금해야해서 오늘 토요일인데도 은행에가서 atm기로 돈을 인출했다.
혹시 몰라 늘 펑일에 갔는데 오늘은 한국서 가져온 유로를 다 써서 인출해야만 했다.

500유로 인출하려니까 360만 가능하다고 뜨기에 알았다고 확인 버튼을 누르니 돈은 안나오고
카드만 나왔다.
이상해서 서 있다가 다음 사람에게 양보하니 그 사람도 안된다며 다른곳으로 갔다.
나는 그냥 기계가 이상 있나봐 하고 집에 와서 혹시나 하고 인터넷 뱅킹 어플을 와이파이 잡아 확인했더니 돈이 출금되었다.


ㅠㅠ 내돈 50만원.
급하게 은행으로 가봤더니 안됐던 그 기계에서 돈을 뽑는 사람들을 봤다.

아 미치겠다.
토요일이라 은행 직원은 없고
영수증도 나오지않아
나의 이 사실을 확인 시켜줄 사람이 없다.
독일인들은 이런것에 얄짤없다던데 미치겠다.
울고 싶다. 500유로가 아니라 360유로인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난 진짜 왜이럴까

유랑 카페를 막 알아보니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을 찾았는데 돈을 다시 받을수 있더라도 한달이 넘게 혹은 석달도 걸린단다.


제발.
착하게 있다가 귀국할테니
내 현금을 돌려주세요. 오늘 이렇게 종교도 없는 나는 계속 기도했다. 내일부터 수업에 들어가야해서 오늘 공부해야 하는데 지금 열받고 속상해서 잠이 안온다.
월요일에 좋은 꿈 꿔서 로또 사라고 한국에 얘기 하고 기다렸더니 꽝이란다.
로또 꽝이었으니 제발 인출된 내 돈은 돌려주세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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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붕툐툐 2017-07-02 0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구~ 꼭 찾을 수 있기를 한국에서도 간절히 바랍니다.

오후즈음 2017-07-04 06:5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ㅠㅠ

oren 2017-07-02 0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 없는 기계가 사람 잡더라고요.
3년 전에 벨기에 갔다가 ‘주차 정산 시스템‘한테 붙잡혀서 몇 시간 동안 진땀 흘린 거 생각하면 아직도 진땀 나요.. 아무리 제대로 절차를 밟아도 정산이 안 되고, 차 뺄려는 사람들은 연신 밀려들고 말이지요...

오후즈음 2017-07-04 06:58   좋아요 0 | URL
정말 식은땀 나는 일이셨겠네요. 저도 이놈의 기계 때문에 정말 사람 잡네요...

cyrus 2017-07-02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난감한 상황이군요. 타지에서 돈이나 지갑을 잃어버리면 얼마나 마음이 아찔한지 정말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몰라요. 돈이 무사히 되돌아오길 바랍니다.

오후즈음 2017-07-04 06:59   좋아요 0 | URL
긍정적인 대답을 받았습니다. ㅠㅠ 계좌로 송금 되기전까지는 아직 안심은 안되네요. 으휴.....못살겠어요.
 
친구가 뭐라고 - 우리의 삶은 함께한 추억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사노 요코 지음, 이민연 옮김 / 늘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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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에는 집에서 친구들과 놀러 좀 그만 다니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었다. 밖에 나가서 놀면 집에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하셨고, 그것 때문에 나의 모든 것들에 제약이 생겼다. 숙제를 빨리하면 친구네 집에 놀러 갈 수 있고, 내 방 청소를 빨리 마치면 밖에 나가 친구들과 놀 수 있는 시간이 더 많이 생겼던 것이다. 그런데 그 친구와 놀러 다니는 것도 어느 정도 나이를 더 많이 먹으니 각자가 더 소중하게 챙겨야 할 것들이 생겨 친구와 함께 공유 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친구가 뭐라고]를 쓴 사노 요코는 처음에 친구가 없어도 될 것처럼 얘기 했지만 결론은 그렇지 않았다. 어떤 일이든 챙기거나 알려 주거나 공유 되는 것들이 모두 다 있어야 친구라고 말 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것처럼, 어느 날 소식을 끊었어도 수술한 배를 움켜쥐고 돈을 빌려 달라고 전화를 걸 수 있고, 나의 부고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달려와 나를 위로 해 줄 수 있는 그런 친구가 필요하다.

다른 작가와 인터뷰를 하는 걸로 시작된 이 책 속에 그녀의 진실성이 얼마나 많이 담겨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녀가 쏟아 놓는 친구와의 일화들을 통해 지나간 나의 친구들을 떠 올려 볼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지금은 하지 않지만 매년 다이어리를 정리 할 때마다 더 이상 연락하지 않는 지인들의 연락처를 지워 나갔다. 이후 핸드폰을 바뀌게 되면 자동적으로 연락처를 다시 옮겨 넣으면서 멀어진 이들의 연락처를 지우거나 때로는 다시 연락 할 때도 있었다. 지워지는 이들에 대해 아쉬운 것이 없다가 문득 나도 어떤 이들에게 이렇게 지워 지겠다는 생각에 씁쓸했던 기억이 난다.

그녀는 친구와 멀어졌을 때, 혹은 심하게 다투었을 때 친구와 화해를 하기 위해 애쓰기 보다는 그냥 둔다고 했다. 억지로 다시 만나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나에게도 간혹 이런 것들이 그전의 감정보다 훨씬 더 힘들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부러 싸우지 않기 위해 참다가 결국 그것이 더 큰 눈덩이처럼 커져 싸워 안보는 사이로 남게 된 경우도 있다. 그녀처럼 그냥 시간이 더 지나면 아무것도 아닌 일로 남을 때까지 기다려 봤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관계의 친구가 떠올라서 마음이 쓸쓸했다. 그녀의 말처럼 그렇게 기다리다 보면 우정이 우정을 불러들일 때까지 있었다면 나는 정말로 소중한 그녀를 잃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우정이 우정을 부른다는 그 말은 어떤 말일까? 시간이 지나서 이제 아무것도 아닌 일로 남을 때까지 시간을 두는 것, 그래도 마음에도 더 이상 앙금이 남지 않아 이제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 치부 할 수 있는 그런 일, 그런 시간을 갖기 위해 사실 얼마나 많은 고독의 시간이 필요 할지 생각해 보니 사람과 사람 사이에 생기는 오해는 인생 경험치와 서로 맞닿아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녀는 오랜 시간을 들여 친구를 만나야 하기 때문에 새로운 친구는 필요 없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꼭 오래된 사람만이 진정한 친구로 남는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물론 그 친구의 진가를 알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하고, 어떤 사건도 필요할 것이다. 그런 경험치를 불러와 그 사람의 인성을 알 수 있겠지만, 간혹 내 초등학교 시절의 친구, 중학교 고등학교의 친구들만 오랜 친구, 진정한 친구로 생각하는 주변의 몇몇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사회에서 만난 동료들과 훨씬 많은 교감을 하고 소통을 하며 잘 지내고 있을 때마다 내가 뭔가 잘못된 사람인가 생각이 든다. 내겐 오래된 친구들은 중학교 동창들이었다. 중학교 친구들은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을 돌보느라 아이가 없는 나에게는 더 이상 연락을 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커뮤니케이션을 만들어 놓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나는 더 이상 그녀들에게 연락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때 나는 내 인생에 친구가 뭐라고 생각하며 많은 고민을 했다. 꼭 오래된 친구들만이 진정한 친구로 남는 건 아니잖아? 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훨씬 편해졌고 내 주변에 남은 지인들이 더 빛나보였다. 그들을 더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이 많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서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그 수간이 얼마나 즐거운 일이고 행복한 일인지 잘 알고 있으므로 나는 내 옆에 있는 그들과 더 행복하게 살기위해 배려와 안부를 나누며 살기로 했다. 물론, 그들도 그렇게 해 줄 것이라고 믿어 본다. 그런 이들만 내게 남았다고 나는 생각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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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6-25 06: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죽기 전까지 자주 만날 수 있는 친구 다섯 명만 있어도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
 
아이슬란드가 아니었다면 - 실패를 찬양하는 나라에서 71일 히치하이킹
강은경 지음 / 어떤책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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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를 찾기 위해 블로그를 뒤지다가 한번은 이 사람은 직업이 뭘까? 궁금했던 적이 있었다. 매월 어딘가를 떠나서 올리는 사진을 보면서 부러움에 그녀의 삶이 나의 삶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런 일상이 매일 즐거울까? 생각해 보니 여행은 하는 동안도 즐거웠지만 준비하는 그 과정의 두근거림 때문에 좋았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 과정 없이 매일 이어지는 여행이 좋기만 할까.







그녀가 선택한 아이슬란드에 대한 정보라곤 오로지 몇 년 전 여행프로에서 본 오로라에 대한 환상밖에 없다. 언젠가 나도 저런 오로라를 꼭 보리라. 그것이 나의 원대한 꿈이라고 지인들에게 떠들고 다녔는데 그녀는 나보다 훨씬 먼저 오로라가 아닌 그녀의 텅 빈 삶의 공간을 채우기 위해 떠났다.

살인적인 물가로 유명한 아이슬란드에서 단돈 370만원을 가지고 70여일을 히치하이킹과 야영만으로 버텼다는 그녀의 여행기는 그동안 민박과 호스텔 생활 없이 오로지 호텔과 Airb&b만으로만 여행을 한 나에게는 큰 자극이었다. 남과 함께 화장실을 쓰지 못하고 잠자리도 함께 하지 못하는 나름 중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라서 그녀의 장기 여행에 많은 자극이 되었다. 유난스러운 것도 있겠지만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참지 못 하는 것이라는 것을 얼마 전 여행을 통해 알게 되었다. 나는 내가 까다로운 사람인줄 알았는데, 불편함을 못 견디는 개인주의자 였던 것이다. 물론 그녀처럼 꼭 이런 여행만은 옳은 여행이라고 할 수 없다. 여행은 나름의 선택이고 그것을 즐기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여행기를 읽고 그간의 나의 지나온 시간들을 반추해 보았다.

그녀의 여행이 특별해 보였던 것은 단지 남들은 일주일에 다 쓸 수 있다는 부족한 여행경비와 야영, 히치하이킹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비가 와서 마르지 않은 축축하게 젖은 양말을 신고 다니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나서는 그 고단한 시간을 참으며 견디는 것이 대단해 보였다. 내가 그녀였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우선 젖은 양말을 다시 신고 비바람을 맞으며 하이킹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 봤다. 그러면 그녀처럼 그 고단한 밤은 또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내일도 나일질것 없는 그런 악천후 날씨를 견디며 계획했던 코스를 여행 할 수 있을까? 매일 식빵 두 쪽으로 끼니를 해결할 수 없으며 젖은 신발을 매번 아무렇지 않게 신고 갈 자신도 없다. 그리고 그녀만큼 자신 없는 영어로 친구도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남들이 불가능 할 것 같다는 것을 해냈다. 살인적인 물가 따위 저리 가버리라며 370만원으로 71일의 히치하이킹을 완성 하였다. 심지어 그녀는 여행이 끝나기 전에 200여만 원이나 남았다고 하지 않았나? 나라면 분명 남은 돈을 생각하며 식빵이 아닌 훨씬 맛있는 고 단백으로 식사를 했을 것이고 야영이 아닌 따뜻한 호텔로 한번쯤은 숙박을 해결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호사를 모두 하지 않았다. 평생 작가로 살지 못할 것 같다는 그녀는 서른세 번째로 그녀에게 작가로 허락을 해준 책을 출판했으며 아이슬란드의 여행을 마쳤고, 그녀에게 들은 그녀의 아이들의 얘기를 통해 그녀 스스로 자신의 응어리진 부분을 풀어 내지 않았을까.

‘행복지수’ 3위권에 드는 아이슬란드에도 슬픔에 잠겨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제일 비참하게 있다고 생각되는 그 순간 내가 아닌 상대방을 위로해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그녀가 위로 하려 했던 그의 마른 등을 토닥였을 그 순간을 생각하니 나는 문득 내게 등을 졌던 다른 이들의 모습도 생각이 났다. 그들의 등을 나는 토닥여 줬을까.

“먹구름과 파란 하늘이 번갈아 나타났다 사라졌다 했다. 오후 6시, 마침내 오늘 나의 목적지인 아프나르스타피에 도착했다. 해안가의 작은 마을이 있었다. 헤어질 때 얄티가 악수를 청해 왔다. 나는 살짝 그를 안고 등을 토닥였다. ‘페타 레다스트(잘될 거예요)!’ 속으로 중얼거리며.” P261

그간 여행을 통해 남는 것들이 많지 않았다는 것을 책을 통해 느꼈다. 나는 이렇게 뭔가를 기억하며 그곳을 떠나 왔던 적이 있었던가. 꼭 어떤 기록물을 만들어 놓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새삼 그저 남의 나라 갔다는 것으로 즐겁게 여행을 하고 왔다는 생각에 그간의 여행에게 좀 미안해지는 기분이 든다.

“다시 산다면 아니, 앞으로 남은 인생이라도 ‘꿈은 이루어진다’는 희망고문 따위 붙들지 말아야지. 아이슬란드 사람들처럼 ‘내일’, ‘다음’ 따위의 단어도 버려야지. 수시로 땅속에서 불이 솟구쳐 오르고 땅이 뒤흔들리고 뒤집히는 걸 보며 사는 아이슬란드 사람들에겐 ‘지금’이 가장 중요한 ‘내일’이 중요한 게 아니었나.” P444

독일에 온지 이제 일주일에 접어든 나는 매일 뭔가를 꼭 이뤄 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하루가 피곤했다. 시차 적응을 하지 못해서 쌍커플이 생길 정도로 피곤에 절어있다. 비싼 돈을 들여 비행기를 타고 왔으니 그 시간만큼 뭔가 보상을 받아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안 읽히는 책도 꾸역꾸역 읽어 내려갔던 어떤 날 마주한 이 책을 통해 내일 뭘 할까보다 오늘을 가장 충실하게 채워야 할 아침을 맞이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녀처럼 나도 생뚱맞은 곳에 와 있다. 물론 그녀보다 나는 훨씬 편한 곳에 있고, 매일 아침을 식빵 두 쪽으로 해결해야 하는 열악한 상황도 아니고, 언제든 좋은 식당에서 밥을 먹을 수 있는 돈도 있다. 아침마다 눈 뜨며 오늘 뭘 하지?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다를 뿐이다. 그녀는 보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고, 나는 아직 아무것도 정하지 못한 상황이다. 그녀처럼 무거운 등을 지고 가야 할 배낭이 없지만, 한국에서 떠나 올 때 짊어지고 온 가슴의 상흔들이 매일 밤마다 찾아와 괴롭히고 있다. 그녀가 귀국하며 시원하게 벗어 버릴 수 있던 짐처럼 내게도 더 가벼워진 마음으로 귀국길에 오르길 기도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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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6-15 1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일 여행, 다 잘 될 겁니다! ^^

오후즈음 2017-06-24 20:5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시차 적응이 이제 끝이 나서 덧글을 답니다.^^

오거서 2017-06-15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일여행이 새로운 전기가 되지 않을까요. 낯선 장소, 낯선 사람, 낯선 말… 등이 새로운 자극이 되겠네요.

오후즈음 2017-06-24 20:57   좋아요 0 | URL
꼭 그렇게 이번 독일 장기 여행이 남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그리스 메테오라로 넘어온지 4일째다.

저 높은곳에 수도원을 지은 인간의 무한한 능력.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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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7-05-14 08: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앙~~오후즈음님 지금 여행중이신가봐요^~^

오후즈음 2017-05-16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즐겁게 지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