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한 한국 소설의 첫 문장
김규회 지음 / 끌리는책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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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에게서 첫문장이란 어떤 의미일까?

독자들과 첫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기 때문에 첫 문장을 쓸 때 많은 시간을 들인다고 어느 작가의 인터뷰에서 읽은 것 같다. 사실 첫 문장, 그 처음 이라는 것이 소설 속에서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한 첫 인상도 그랬고, 대입 시험에 떨며 마주한 면접관의 첫 질문에 대답을 하기 위해 긴장했던 순간들도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어디 그것뿐인가. 처음은 무엇인가를 시작하기 위한 첫 번째 발 돋음일 것이다.



[우리가 사랑한 한국 소설의 첫문장]은 작가들의 좋은 글귀보다 소설을 마주하게 한 첫 문장들을 엮어 놓은 책이다. 작가들이 쓰고 지우고 다시 고치며 고민했던 문장들을 만날 수 있게 되어 있다. 책속에는 다섯 개의 챕터로 나눠져 있는데, 굳이 다섯 개로 나누지 않아도 될것 같다. 마지막 다섯 번째 장은 고전으로 되어 있어서 한동안 잊고 있었던 고전들을 떠 올리게 해서 좋았다.

우리나라의 유명한 문학상들을 받은 작가 위주의 소설들을 고르고 그들의 첫문장들을 소개했다. 저자의 대표작들이 제일 먼저 나왔지만 사실 그것보다 훨씬 더 감흥에 와 닿았던 책들이 내게는 더 많아서 좀 아쉬운 부분이 있다. 하지만 잊고 있던 작가들의 첫문장을 다시 보는 시간동안 내내 그 책을 읽었을 때의 그 감동에 다시 젖어 들어 책장 어디에 있는지 모를 그 책을 찾느라 한동안 시간을 소비했다.

작년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은 한강의 [채식주의자]의 첫문장을 이 책에서 소개 했는데 나는 그녀의 책을 집중적으로 읽게 된 책이 [소년이 온다]였다. 이동진의 빨간 책방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한강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소년이 온다]의 첫문장이 오버랩 되면서 그녀의 차분한 음성으로 읽히는 그 문장에 매료되고 말았다.


"비가 올 것 같아. 너는 소리 내어 중얼거린다. 정말 비가 쏟아지면 어떡하지. 너는 눈을 가늘게 뜨고 도청 앞 은행나무들을 지켜본다.'' 소년이 온다. 첫 문장은 한강이라는 작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던 부분이었다.



은희경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새의 선물]이었다. 새의 선물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 내가 왜 일찍부터 삶의 이면을 보기 시작했는가. 그것은 내 삶이 시작부터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5학년인 진희라는 주인공의 시점부터 시작된 이 얘기는 첫 문장에 그녀의 삶이 평탄하지 않음을 알리고 했다. 그녀는 부모 없이 외할머니 댁에서 삼촌과 이모와 함께 살게 되었다. 부모 없이 사는 초등학교 5학년이 느끼는 삶이 얼마나 허무하겠는가. 그녀가 나중에 만나게 될 아버지의 존재 또한 그녀가 살아왔던 삶의 다른 이면을 장식하고 있으니 이 첫 문장에 소설의 플롯이 다 들어가 있는 것 같다.


개인마다 느끼는 감동의 스펙트럼이 다르기 때문에 첫문장의 감동 또한 다를 것이다. 내게는 근간 나왔던 소설의 첫문장 베스트 1은 한강의 소설이었고 고전은 이상의 [날개]였다.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 연애까지가 유쾌하오."

이상의 [날개]속 화자는 마치 이상 자신 같다. 너무 빨리 세상을 떠나버린 이상을 생각하면 더 안타까운 문장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사랑한 한국 소설의 첫문장]에 없는 나만의 소설 속 문장들을 떠 올려 보느라 한동안 멀리 던져 놓았던 책들을 꺼내보는 시간이 많았다. 나를 위로 했던 문장들을 떠 올려보기도 했다. 책을 읽는 것을 즐기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새삼 느끼게 된 며칠이었다. 문득 내가 나를 위로 할 수 있는 문장은 어떤 것일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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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5-04 1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빨리 읽게 되니까 소설의 첫 문장을 음미하지 못하고 그냥 넘긴 적이 많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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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 보고서
폴 오스터 지음, 송은주 옮김 / 열린책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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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를 읽는 동안 머릿속에는 나의 일상이 글처럼 흐를 때가 있다. 나도 책을 쓴 저자처럼 이런 유형의 글을 잘 쓸 것만 같은 거만한 생각이 들다가도 이런 책을 만나면 잠시 그런 어쭙잖은 마음을 내려놓기도 한다. 너무도 유명한 폴 오스터의 책을 많이 가지고 있지만 실상은 깊게 읽은 책이 몇권 되지 않는다. 그의 소설이 매력적이었기 때문에 에세이는 또 어떨까 참 궁금했다. 그의 <겨울 일기>를 읽지 못했다. <내면 보고서>는 그 책의 연장선에 있다고 하니 아무래도 같이 읽어줘야 폴 오스터의 삶을 더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을 것 같다.

 

 

 

사람은 자신의 인생을 몇 살부터 기억하고 있을까? 내가 생각나는 나의 유년시절은 일곱 살 정도부터 였던것 같다. 집으로 들어서기 전에 언덕이 하나 있었는데 밤에 넘어져서 굴러 양쪽 무릎이 까져서 오랫동안 빨간약을 바르고 다녔었다. 여자 애가 큰 상처를 입었다고 속상한 엄마의 잔소리는 하루로 끝이 났지만 그날의 상처는 아직도 남아 있어서 간혹 짧은 바지를 입고 나가면 사람들이 어디서 다친 것이냐고 물으면 그때서야 나의 철없던 일곱의 나이가 생각이 나고, 그때 우리 가족이 옹기종이 모여 살았던 작은 양옥집이 떠오르며 그리고 그 집을 돌아 다녔던 어느 여름날의 추억과 함께 그때의 소꿉놀이 했던 친구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이정도가 나의 유년 시절의 처음일 것 같다. 이렇게 사소한 일들만 생각이 나고 더 이상의 아름답거나 우울했던 일이 없었던 아주 평범한 아이의 나날에 비해 폴 오스터의 유년 시절은 특별하다.

 

 

 

왜 자신의 유년시절과 자신의 과거를 2인칭으로 서술 했을까 생각해보니 나름의 객관화를 가지려고 하지 않았을까. 자신의 미화 시키려고 하지 않고 그저 내가 나를 관찰하며 지켜보았고 그것을 더 담담하게 풀어 놓기 위한 그의 선택이었겠지만, 읽는 동안 2인칭 시점이 익숙하게 다가오지 않아서 사실 책을 읽는 동안 답답했다.

 

 

 

그가 기록한 그의 유년기와 청소년기, 그리고 청년기를 맞이하는 이 [내면 보고서]속에서 그는 자신을 또 하나의 화자로 만들어 놓고 자기 자신의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 간혹 자신의 어두웠던 과거를 끄집어내서 기록한다는 것은 참 쓸쓸한 일이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폴 오스터의 이 기록들은 냉철한 부분도 있다. 자신의 아버지에 대한 우울한 부분을 아버지를 더 나쁘게도 그려 낼 수 있을 텐데 그는 그의 아버지를 그저 먼발치에서 관찰해서 말하는 것처럼 쓰고 있다.

 

 

 

그의 유년기와 청소년기가 다소 길게 지루한 부분이 있는 반명, 대학시절의 얘기는 다이나믹하다. 그의 [빵 굽는 타자기]를 재미있게 읽는 독자로서 그가 타자기로 글을 썼다는 부분들이 나오면서 그의 일상이 기록된 부분이 있다. 이런 기록들은 반가웠다. 아, 내가 읽은 그의 책이 이렇게 탄생했구나, 하는 나름의 탄식이 쏟아져 나오면서 마치 그의 미지의 글 세계에 빠져 아무도 찾지 못한 보물을 나 혼자 건져 온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할까.

 

 

 

사실 작가들이 에세이를 모두 다 잘 쓰는 것은 아닐 것이다. 소설이 훨씬 더 매력적인 사람이 있고 에세이를 통해 몰랐던 작가의 매력을 찾아내는 사람도 있는데 내게는 에세이보다 소설이 훨씬 매력적인 폴 오스터로 더 기억이 될 것 같은 책이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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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 격하게 솔직한 사노 요코의 근심 소멸 에세이
사노 요코 지음, 서혜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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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있었던 직장으로 다시 복직을 하면서 나는 그때처럼 일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을 했었다. 어영부영 인생을 살아왔다는 생각에 이번만큼은 정말로 열심히 일해서 그만 뒀을 때 나 자신을 터득시킬 그런 성과를 얻고야 말겠다는 야망을 가지고 갔지만 그런 야망 따위는 첫 출근을 하고 팀장과 한판 싸우고 나서는 사라져 버렸다. 이렇게 지내다가 또 어영부영 세월이 흘러 갈 것이라는 생각에 읽은 이 책은 울고 싶은 내 촉수를 건드렸고 어디쯤 부분에서는 혼자 눈물을 흘렸다. 그렇다고 이 책이 슬프다는 것이 아니다. 그냥, 참 사노 요코 할머니의 수다가 좋았던 것뿐이다. 그녀가 열심히 하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사실 그녀의 삶은 누구에게나 있는 소소한 일상이 모여 그녀의 나이를 만들어 냈고, 그녀의 삶이 즐거워 보였던 것뿐이다. 이렇게 아기자기한 그녀의 일상이 내게는 있었나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요즘 한창 빠져 있는 드라마 [또! 오해영]을 보면서 감정이입에 빠져 드라마 주인공 에릭에 홀릭 되었다. 대체로 텔레비전에 몰입하지 않고 조용히 보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참을 수 없이 감정이입이 되는 것이다. 이유는 단 하나다. 나도 그녀처럼 너무 평범했고 그녀처럼 비교되었던 친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이유로 평범한 여자 주인공(하지만 그녀는 너무 예쁘고)과 나를 일치 시키는 억지도 만들면서 남자 주인공의 행동에 설렘을 갖게 되었다. 간혹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얘기를 하면 주책없는 사람으로 여기거나 때로는 같은 공감대를 갖은 사람들끼리 만났을 때의 그 반짝거리는 순간을 사노 요코의 글에서 찾았다.

 

이런 나의 요즘 생활은 사노 요코의 일화를 읽으면서 나 같은 사람이 또 있다는 생각에 반가웠다. 사노 요코가 삼촌과 함께 [노트르담의 꼽추]를 보러가서 삼촌이 주교를 욕할 때 그녀는 자신의 평범함을 함께 생각하며 주교의 사랑을 이해했다고 한다. 나를 주인공으로 두지 않고 그저 주변 인물로 생각했던 부분들이 훨씬 많았던 그녀의 얘기들에 나는 그것에 감정이입을 하고 말았다.

 

 

 

“나에겐 드라마란 것이 일어날 수 없다. 드라마는 뛰어나게 아름다운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것이며, 연애는 미남 미녀만이 하는 것이다. 그때 나는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P133

 

 

자신이 미녀가 아니기 때문에 드라마속의 연애 같은 사랑은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드라마속의 또 평범한 인물에게는 자신의 감정을 오버랩 시켜 안쓰러워하는 그녀의 그 마음이 또 얼마나 귀여운지. 자신의 고양이에게 생선을 주면서 행복은 현실 생활 속에 어쩌다 등장해야 하는 거라며 고양이의 행동에 뿌듯해 하는 그녀의 표정이 눈에 보이는 것 같다. 이런 부분은 또 익살스럽다.

 

 

사노 요코는 개를 키우고 있는데 그 개의 품종도 범상치 않다. 그 개는 시바견인줄 알고 키웠더니 얼굴만 시바견이고 몸은 닥스훈트처럼 길고 다리가 짧아 얼굴과 모습만 보기만 해도 우스꽝스러워서 매번 비웃듯이 식구들이 대했다. 누가 저런 개와 짝이 되겠냐며 점차 불러오는 배를 의심했다. 사실 배가 불러도 다리가 짧아 늘 땅과 배의 공간이 없어 그냥 좀 뭘좀 많이 먹었나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개가 글쎄, 새끼를 낳은 것이다. 그 우스꽝스러운 개가 새끼를 낳고 누워 있는 모습에 그녀는 자신이 예외로 여겼던 인생의 다른 단면을 느꼈다고 했다. 새끼를 낳고 누워 있는 모습에도 인생이 있다.

 

 

 

“ 부산스럽고 어수선해서 몇 년이 지나도 이 어린 것아 했던 개가, 졸지에 인생의 슬픔과 체념을 받아들인 무섭게 고요한 눈을 하고 있었다. 운명은 개척하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인가. 이 눈을 보고 누가 웃을 수 있을까. 게다가 훌륭하기까지 하다. 남자 없이 홀로 아이를 키우면서도 아무 불평하지 않으니” P199

 

 

2급주를 마시며 자신과 형제들에게 훈시를 했던 아버지의 그 말들이 아버지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고 생각했지만 그 훈시가 아버지 술안주로 함께 얻어먹었던 그 톳조림과 함께 자신의 살 속에 녹아 있었다는 얘기가 이 에세이 중에 가장 오래 기억이 남는 부분이다. 아버지의 저녁시간에 옹기종이 앉아 아버지의 반찬을 탐하였던 네 명의 남매들에게 들려줬던 얘기들은 이 에세이 속에 가득 담겨 있다. “인쇄된 글로 된 것을 의심해라” 라는 아버지의 얘기에 그녀는 남의 얘기를 듣고 섣불리 믿지 않게 되었고, 정보의 바다에서 쏟아지는 얘기에 휩쓸리지 않고 나름의 소신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1938년에 중국 베이징에서 태어나 전쟁이 끝난 후 보모의 고향인 일본으로 건너왔다. 그때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은 가난했고 힘들었다. 이렇게 보면 그녀의 삶은 처음부터 평탄한 일반적인 모습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가 그냥 일본에서만 살았던 것이 아니라 독일 조형대학에서 공부하고 스페인과 다른 나라들을 다니며 살았던 생활들을 보면 또 작가로 살아가기 위한 토대를 걸어 다녔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그림을 그렸던 그녀가 작가로 살아가기까지의 삶은 사실 아직 잘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그녀의 이 소소한 글이 때로는 밋밋하다가도 갑자기 눈물이 차오를 순간을 만들어줬다는 것이다. 때로는 옆집 아줌마처럼, 때로는 전화로 서너 시간을 떠들고 나서도 만나서 다시 얘기하자고 하는 친구 같은 기분이다. 이런 그녀의 재미있는 얘기를 더 많이 들을 수 없다는 것이 아쉽기도 하다.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오래 살았다면 70세의 할머니가 들려주는 주책없는 얘기라도 좋을 텐데 말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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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읽다 - 꽃의 인문학 ; 역사와 생태, 그 아름다움과 쓸모에 관하여
스티븐 부크먼 지음, 박인용 옮김 / 반니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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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봄이 되면 꽃이 피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어느 마을에서 열리는 꽃과 관련된 행사를 찾아가 볼까 뒤져보기도 한다. 하지만 바쁜 일상 때문에 인터넷으로 오르는 기사 한 줄과 함께 본 사진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여의도 벚꽃구경을 한번 가보곤 다시는 한 낮에 가는 일을 삼가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꽃구경이 아니라 사람 구경이었다. 대부분의 사람이 벚꽃 길의 끝자락을 붙들며 꽃길의 낭만을 즐기기 위해 나왔던 것이다. 많은 인파에 치이면서 걸었던 그 길이 아름답다는 탄식을 쏟아내기엔 복잡하고 번잡한 느낌에 처음 가졌던 기대는 사라졌다. 나만 어떤 기대와 설렘을 가지고 나온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대부분 뭔가 대단한 봄을 알리는 서막을 여는 꽃의 향연을 그리워 했던것 같다.


하지만 이런 봄을 그리워하는 것은 점점 짧아지고 있는 계절 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봄에만 볼 수 있었던 꽃들이 어느새 볼 수 없을 것 같은 아쉬움은 환경에 대한 고민과 반성도 하게 된다.

내게는 혹은 많은 사람들에게는 꽃은 그냥, 길가에 피고 지거나 조경을 위해 만들어 놓은 화단에 피어 있는 꽃을 보는 것이 대부분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꽃으로도 때로는 계절의 움직임을 느끼며 시간의 흐름과 함께 나이를 느끼는 것은 꽃이 주는 위로와 안식일지 모르겠다.



이런 꽃들에게도 역사라는 것이 있고, 환경이 변화하면서 그들도 모습이 달라져왔다. 때로는 꽃은 부유한 생활의 과시욕이 되기도 했다. 몇 년 전 방문한 오스트리아 쉰브론 궁전의 뒷문으로 나와 마주한 정원은 아름다웠다. 궁전에 머물렀던 왕비는 아름답게 가꿔진 정원의 꽃들을 보면서 휴식을 얻었을 테고, 수많은 종의 꽃들을 가꾸고 키우기 위해 애를 썼을 테고 더 화려하고 유일무이한 꽃을 찾아 자신의 정원에 심고 싶어 했을 것이다.



유럽에선 꽃이 귀족들의 전시품이 됐던 부분도 있지만 꽃은 대부분 사람들에게 마음의 안식을 주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 헤세도 정원에서 꽃과 나무를 가꾸며 마음의 위안을 찾았고 그것을 통해 그의 글쓰기도 계속 될 수 있었다. 간혹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수목원만 찾아다니는 지인도 있는데, 그녀의 마음도 헤세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동물도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하나의 존재인 것처럼 꽃 또한 그렇다. 인간의 무모한 행동으로 인해 자연 속에 녹아 들어가야 할 것들이 얼마나 많이 사라져 갔는지.

“꽃이 우리를 치유한다면 우리 또한 꽃을 치유하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사막화, 삼림 벌채, 기후변화에 수반되는 생활터전의 여러 가지 변화 등 수많은 환경적인 도전에 맞설 수 있을까? 사람이 자연을 치유하게 될까? 황야나 공원, 도시가 모두 비관적인 것은 아니다. 나는 우리 세대와 미래의 여러 세대가 자연과 공존할 수 있다는 것, 멸종은 점차 늦추어지다가 이윽고 안정적일 될 것이라고 낙관한다. 모든 것을 상실한 것은 아니며 희망도 많다. 꽃과 사람은 함께 생존하기 위해 서로에게 필요하며 또 서로에게 의지하고 있다. ” P 407

인간에게 주어진 자연보호는 어디까지 이뤄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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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장을 향해 쏴라
마이클 길모어 지음, 이빈 옮김 / 박하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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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본 드라마 중에 하나는 살인자의 아들로 자신의 아버지의 무죄를 밝히는 내용이었다. 결국 아버지의 무죄를 밝혔지만 무죄를 밝히는 과정까지 주인공이 주변 사람들로부터 받은 냉대를 지켜보는 것은 또 다른 슬픔의 한 드라마였다. 죄를 지은 사람은 벌을 받아야 하겠지만 그의 가족들은 어떤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미국의 유명한 살인자 중에 하나인 게리 길모어. 그는 사형 제도를 다시 부활시킨 인물이었다. 어떤 복수나 증오로 시작된 살인이 아니었다. 게리 길모어는 그와 관련 없는 두 명의 시민을 죽였고, 자신을 처형해 달라고 했다. 당시 유타주에서는 10년 동안 사형집행이 이뤄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10년의 기록을 깬 사람이 게리 길모어였다. 그는 자신을 죽여 달라고 했고, 두 사람을 죽인 것에 대한 반성은 없었다. 그저, 자신의 심장을 향해 총구를 겨눠 주기만을 바랐다. 이런 그의 일화는 영화와 책으로도 만들어 졌으며 많은 사람들이 그의 도도한 살인에 분노했었다.

 

 

 

저자는 너무도 유명한 사형수인 게리 길모어의 동생이다. 그는 <롤링스톤>의 수석편집장이었으며 작가이며 유명한 음악평론가이다. 그가 살인자이며 유타주의 사형수였던 게리 길모어의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비뚤어지지 않고 자신의 길을 가는 동안 겪어야 했던 슬픔과 외로움은 자신의 형이 만들어 낸 영화와 또 다른 역사를 쓰고 있었을 것이다.

 

 

 

책이 상당히 두껍다. 약 700페이지에 달하는 내용이다. 그는 어떤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이토록 방대한 양의 내용을 쏟아 내면서 그의 형을 변론하고 싶었던 것일까? 이런 의문을 가지고 읽기 시작한 처음은 그의 부모의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그의 아버지는 정착이 어려운 사람이었다. 이미 여섯 번이나 결혼과 이혼을 하고 저자의 어머니인 베시와 결혼을 했다. 광고사기 수익금으로 살아갔던 그의 삶은 이미 사기와 절도가 아무렇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런 이유로 그는 이곳저곳을 떠돌며 생활을 이어 갔고, 정착하지 못한 그들의 삶은 위태로웠다. 그런 아버지는 자상함이라곤 하나도 없었고 언제나 폭언과 폭력이 뒤따랐다. 아내를 구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자신이 만들어 놓은 규칙을 지키지 않는 아들들에게도 예외는 없었다. 매번 밤 10시의 귀가 시간을 만들어 놓고 지키지 않는 둘째 아들을 문을 열어주며 폭행을 하는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제외한 모든 가족들에게 행해지는 자신만의 규칙과 규율 이었으며 권위와 권력이었다. 그가 했던 학대들은 모두 요즘 뉴스에 탑 기사로 실릴만한 것들이었다.

 

 

 

떠돌며 살았던 아버지는 아이들에게도 정착하지 못했다. 아이들을 품어 주지 못했고 늘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달랐다. 아들을 이해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이미 남편의 폭행에 병들어 있었고 지쳐 있었다. 모르몬교를 믿었던 그들의 신앙이 어쩌면 게리 길모어가 살인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어떤 운명을 얘기해 주는 부분도 있었지만 사실 그것이 그렇게 큰 영양을 미쳤을까?

 

 

 

열세 살 때부터 범죄를 저질렀던 게리 길모어에게 누군가 다정하게 그를 인도 했다면 무고한 시민 두 명을 살해하는 일은 없었을까? 네 명의 아들 중에 아버지의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은 막내아들, 즉 저자였다. 그는 간혹 자신이 살인자가 되지 않고 아버지처럼 알코올 중독자로 살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아버지의 학대의 그늘에서 떨어져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그는 아니라고 했지만 그가 유명한 잡지 편집장으로 또는 음악 평론가로 살아 갈 수 있었던 것은 어쩜 그런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그늘 밖에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이렇게 긴 고백을 하는 동안 그가 괴로워했던 날들이 조금은 상쇄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삶을 온전하게 이해하는 것은 내가 똑같은 과정을 겪지 않는다면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그의 슬픔을 조금 알아가는 것뿐이다.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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