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없을 긴 명절 전에 다녀온 9월의 제주.

 

 

 

제주라서,

제주여서

제주니까

제주기 때문에

 

 

언제라도 좋았던 며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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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인을 위한 물리지식 - 자연현상과 일상, 가전기기에 숨어 있는 물리의 40가지 핵심 원리!
이남영.정태문 지음 / 반니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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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다르게 보볼 수 있도록 [교양인을 위한 물리 지식]



어느 날 산책을 나가 길을 걷는데 바람이 몹시 부는 날이었다. 같이 산책길에 있었던 6살 난 조카는 나에게 물었다. “이모, 바람은 어떻게 불어?” 고등학교 때 열심히 기록했던 수업 내용을 떠 올리며 알려 줬더니 이후 바람과 관련된 질문을 10여분 동안 받았다. 자세히 설명을 해 주고 싶었지만 사실 과학 지식이 얕은 문과 이모는 조카에게 부족한 설명을 해줬고 조카는 집으로 돌아가면서 얘기 했다. “이모도 잘 모르는구나?” 똑똑 박사 이모로 통했던 조카에게서 어느 날 나의 위치가 강등 당하고 말았던 아쉬운 순간이었다.

주변에서 흔하게 일어나는 자연의 현상, 나를 편리하게 만들어주는 가전제품의 원리들도 모두 과학의 원리, 물리의 기초였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물리 시간에 졸지 않고 공부 했을 것 같은 지식들이 [교양인을 위한 물리 지식]에 많이 수록되어 있다. 그동안 주변에 있는 것들에 편리성을 따지면서 사용하지만 이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그 원리는 사실 내게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여름이면 시원한 얼음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냉장고의 발명, 터키 여행에서 탔던 열기구의 원리도 다시 읽으니 옛 기억이 나면서 재미있었다. 22만 톤의 크루즈가 바다에 뜰 수 있었던 이유도 모두 물리학을 통한 결과물 이였으며 청소기조차 모두 이런 산물에서 얻어진 것이다. 물리가 우리 주변에 멀리 떨어져 있지 않으나 그 원리에는 무지한 것이 문득 미안해 졌다고 할까.


아무래도 나는 여행을 많이 다니니 당연히 비행기와 그와 연결된 것들에 많은 관심이 쏠려 읽었다. 부력과 양력에 의한 산물이 비행기를 만들어 내고, 진공청소기 또한 베르누이 원리를 이용한 기기라니 신기했다. 베르누이라는 원리를 몰랐는데, 책을 통해 자세한 설명에 이런 원리가 주변에 뭐가 더 있을까 찾아보기도 했다.

“분무기 역시 같은 원리를 이용한 장치다. 물통에 얇은 빨대를 꽂고 그 빨대의 끝에 작은 관을 이용해 공기를 불어넣으면, 빨대 끝의 공기 속도가 빨라져 압력이 낮아진다. 수면과 압력 차이로 인해 물통속의 물이 빨대로 올라와서 공기 중으로 흩뿌려진다. 생소하게만 들렸던 베르누이의 원리는 이미 우리 생활에서 이용되고 있다. 현대인에게 편리함을 주는 수많은 것들은 긴 세월 묵묵히 연구한 기초과학자들로부터 출발했다. 이것이 오늘날 많은 사람이 기초과학의 중요함을 이야기하는 이유다.” P77

주변인들에게도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었는데, 가장 아쉬운 부분은 책 제목이었다. 교양인을 위한 물리 지식이라는 제목에서 주는 교양이라는 단어에 사실 거부감기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물리 지식을 모른다고, 교양이 없는 것은 아닐 테니, 좀 더 쉽게 거부감 들지 않는 제목 이였다면 추천도 쉽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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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강아지의 비밀 생활 - 강아지 육아 초보들에게 꼭 필요한 반려 교과서 반려인 클래스 시리즈 1
사라 화이트헤드 지음, 서종민 옮김 / 길(길퍼블리싱컴퍼니)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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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우리 집에는 늘 강아지가 있었다. 그 강아지가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것까지 봐야 했지만 대부분은 그러지 못했다. 그때는 생명을 끝까지 지켜줘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이후 동물을 키운다는 것에 대한 고민과 반성이 깊어지면서 나는 함부로 반려 동물을 키우는 일을 그만두기로 했다. 그것을 만족시키기 위해 책을 통해 동물들을 만나고 있다.


나의 영원한 로망 중에 하나인 고양이와 함께 하는 삶을 떠올리며 이용한 작가의 고양이 시리즈를 거의 다 읽었다. 그렇게 마음속 만족을 채워 보려 했지만 때로는 외로움을 함께 등지지 않고 같이 나갈 누군가를 떠 올리며 동물을 생각해 보곤 했다. 하지만 이 역시도 나의 외로움을 동물로 채우기 위해 함부로 키우는 일은 하지 말자며 매번 끝까지 책임을 질 수 있을 것인가 생각해 보며 동물 카페에 가입하며 들락거리는 일도 그만 두기로 했다. 내가 선택한 그 동물들은 선택권 없이 나에게 왔기 때문에 끝까지 지켜줘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지 않는다면 반려 동물들을 키우려 생각하는 일은 하지 않아야 한다고 하지만, 매년 유기 동물이 늘어나고 있는 현실이라고 한다.

하지만 끝까지 책임지는 마음을 가졌다면 처음 반려 동물을 키우는 방법을 알기 위해 책을 한권 선택해서 읽어 보는 것도 좋겠다. <아기 강아지의 비밀 생활>은 처음 강아지가 태어나고 자라면서 유년기를 거쳐 청년기까지 강아지의 성향들을 잘 알려주고 있다.

아기 강아지부터 말썽을 많이 부리는 시기와 훈련을 꼭 시켜야 하는 시기, 그리고 청소년기에 맞아 그 훈련 방법과 문제점들을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마당이 있는 집이 아닌 아파트에서 반려견을 키우는 것에 가장 신경 써야 하는 것이 개의 짖음이 있다. 그 소음으로 간혹 민원이 생기기 때문에 그 훈육 법을 알아 훈련을 시킨다면 좋을 것 같다. 반려견을 키우려 막 시작한 사람들을 위한 훌륭한 지침서다. 문득 반려견을 키우기 위해 책 한권 읽지 않고 무작정 마음만 줬던 때를 생각해보면 참 무지한 주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이 책을 통해 나는 그간 나와 인연이 닿아 만났다 헤어졌던 반려견들을 떠 올렸다. 워낙 사회성이 떨어져서 밖에 나가면 무서워 벌벌 떨며 다녔던 우리 집 막내 찌비와 너무 충실한 마음을 가져 낯선 이들을 보면 짖기 바빴던 찡찡이를 키우기 전에 이 책을 보았다면 훨씬 더 그 반려견들을 이해하며 보듬어 줬을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많이 들었다. 말 잘 들으라고 엉덩이를 때렸던 그 지난날들이 어찌나 기억이 나던지.

책을 소개한 저자는 반려견을 두 마리 이상 키우는 것을 권하는 부분에 한참을 고민하며 읽었다. 내가 외로워 키웠던 개는 내가 집을 비우면 혼자였고, 그 혼자였던 시간을 고스란히 감당해야 했던 순간들을 왜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까. 그런 부분을 떠 올려보니 한 마리의 반려 동물보다는 두 마리의 반려 동물이 함께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앞에서도 말한 책임이 따르는 동물 키우기는 중요한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지켜지지 못하는 많은 유기 동물들을 보며 안타깝다.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것들이 참 많아 속상하다. 나도 언젠간 무거운 책임을 다시 떠안겠다는 결심이 선다면 꼭 반려동물과 함께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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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10-25 15: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집에서 같이 살던 반려견이 말을 안 들으면 엉덩이를 살짝 때린 적이 많았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잘못한 행동이에요. 개도 인간처럼 사소한 상황에 트라우마를 가지게 되거든요. 그래서 저는 제 자신이 반려견과 같이 살기에 부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

오후즈음 2017-10-26 20:26   좋아요 0 | URL
저 또한 그런 생각으로 동물을 키우지 않고 있습니다.
언젠가 무거운 책임감이 다 갖춰지면 함께 하고는 싶어요.
음...그런데 cyrus님은 뭔가 반려견에게 참 다정했을것 같은 느낌인데요...
 
어른의 이별
박동숙 지음 / 심플라이프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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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별은 어땠나요? [어른의 이별]


김광석의 [서른즈음에]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매일 오늘과 이별을 하고, 만남과 이별을 하고 시간과 이별을 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더 소중한 시간과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겠지만 쉽게 이별하는 것들을 때로는 눈치 채지 못하고 살아가는 날이 훨씬 더 많은 것 같다.

<어른의 이별>CBS음악FM <허윤희의 꿈과 음악 사이에>에서 인기 코너인 <러브 어페어>의 이야기중 가장 사랑받는 이야기 136편을 모아 놓은 책이다. 이 책을 읽기전 나는 “어른”이라는 단어에 집중했다. 뭔가 어른이라면 이성적으로 헤어져야 하고 떠나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해서였는지 그간 습도 높은 여름날 같은 질척이는 연애의 끝을 보여줬던 나의 연애의 이별과는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받은 상처에 더 이상 상처주지 않으면서 떠나보낼 때도 뭔가 쿨내 진동하면서 멋져 보여야 할 것 같은 그런 느낌의 제목이었다. 하지만 이별은 이별인 것이다. 헤어지는 마당에 쿨내 진동하면서 멋진 폼을 간직하며 잘 가라는 말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어른의 연애와 이별은 어떤 것일까?

몇 달 전 회사 사람들과 이별을 했다. 도무지 밖을 떠돌고 싶은 마음을 잡을 수가 없어서 나는 결국 회사를 퇴사했다. 그들도 알고 있었다. 내가 정착하지 못하고 힘들어 한다는 것을. 그래서 나의 퇴사 소식에 다들 놀라지도 않고 나가선 뭘 할 것인지도 묻지 않고 결정 잘했다는 얘기만 해줬다. 넌 역시 이곳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동료도 있었지만, 나는 어디서든 잘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했고, 그렇게 되고 싶어서 힘들어했다. 생각해보니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되는걸 애쓰느라 고생했고, 함께 한 동료들에게 피해를 준 것 같았다. 첫 직장의 퇴사를 생각해보면 참 쿨 한 엔딩이었다. 나의 인생은 나의 것이니 네가 알아서 잘 살아보렴, 이렇게 떠나 보내줬던 지금과 달리 첫 직장에서의 퇴사는 걱정 투성이였다. 나가서 뭘 할 것이냐부터 어딜 가든 다 똑같다는 지론까지 펼치며 나를 말렸고 어린 치기를 나무랐던 사람들도 있었다. 지금은 조금 다르다.


136편의 어떤 이들의 이별을 읽고 있자니 그간 나의 이별들이 떠 올라서 한참을 책장 넘기는 것이 더뎌졌었다. 내가 힘들었던 그날은 이런 마음이 깊었기 때문에 힘들었구나...깨닫게 된 부분도 참 많았다. 다만, 내용이 조금 빈약한 부분도 있지만 읽는 동안 지나간 사랑들에게 안녕을 고했던 순간도 있었다. 최선을 다 해 사랑했지만 헤어지게 된것도 사랑하게 된것도 나의 선택이었다는 것을 나도 존중하며 하나의 사랑이 끝났음을 아쉬워 하지말자고 하지만 마음의 구멍이 쉽게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이별을 실패하고 단정하지 마,

이 별은 그저 사랑이 끝난 상태일 뿐이야.

한 방에 있던 두 마음이

그 방을 나오며 불을 껐다고 생각해.“ P90

이제는 사랑이 끝이 났을때 나의 사랑이 실패했다는 말이 아는 이 사랑은 이렇게 끝이 났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사랑이 성공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닐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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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9-27 2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이 끝난 상황에서 비롯된 슬픈 감정을 잊기 위해 새로운 만남을 추구합니다. 하지만 오후즈음님의 말씀대로 마음의 구멍은 쉽게 채워지지 않습니다. 한 사람과의 관계를 오래 유지하는 일이 힘들어요. 그새 못 참고, 여러 사람 만나다보면 마음이 피로해지고, 마음의 구멍은 더 커질 거예요.

오후즈음 2017-09-27 21:11   좋아요 0 | URL
결국 사랑의 끝이 이별인것 같아요. 같이 살다가 한명이 죽더라도 이별이잖아요. 그 이별을 두려워 말고 사랑해야겠는데, 그것도 참 쉽지 않네요.
 
채식주의자
한강 지음 / 창비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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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불꽃’ 이렇게 3장으로 이뤄진 이 책속에서는 주인공 영혜의 말은 들을 수 없었다. 모두 그녀를 보는 제 3자의 시선뿐이다. ‘채식주의자’에서는 영혜의 남편의 시선으로, ‘몽고반점’은 영혜의 언니 인혜의 남편의 시선, 그리고 ‘나무불꽃’은 영혜의 언니 인혜의 시선이었다. 단지 꿈 때문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가학적으로 변해가는 영혜의 채식주의에 대한 강박증, 그리고 ‘몽고반점’에서는 좀처럼 그녀의 행동을 이해 할 수가 없었다. 물론 그것은 채식주의자에 있었던 부분도 마찬가지 이었다. 더 이상 육식을 하지 않겠다는 그녀를 달래기 위해 모인 가족들중 어느 한명도 그녀의 이상한 고집이라고 생각하고 그녀의 얘기를 제대로 들어 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 그녀도 가족에게 심각하게 얘기하지 않는다. 속옷을 입지 않고 블라우스를 입고 부부동반 모임에 나가 육식을 거부하고 채식만 먹으며 앉아 있는 그녀는 고집이 강하거나 강박관념이 심한 사람으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그녀를 이해 할 수 있는 통로는 어떤 것일까.





 

그녀를 억지로 고기를 먹이겠다는 가족들의 그 성화도 결국 그녀를 꺾지 못했다. 그녀의 몸은 오로지 순수한 것들, 피 비린내가 나지 않는 순한 것들만 들어 올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가슴을 좋아 했다. 가슴은 그 어떤 것도 해치지 않는다고 했다. 살육을 해야만 먹을 수 있는 육식을 거부 하는 그녀에겐 그 어떤 것도 죽이지 않는 가슴이 소중했다. 억지로 고기를 먹이지 않았다면 그녀는 고기를 거부하기 위해 과도로 손목을 긋지 않았을 테고, 이런 그녀를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워 이혼하지도 않았을까. 그렇다면 그녀가 그토록 원하는 채식만으로 그 어떤 것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으며 살아 갈 수 있었을까.

 

운명이 나에게 찾아오는 것 같지만, 어찌 보면 운명이라는 것이 내가 만들어 놓은 덫에 걸리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봤다. 그녀의 채식으로 인한 운명은 이미 꼬일 대로 꼬여 남편과의 관계를 틀어지게 했고, 혼자 있는 처제를 걱정하다 그녀의 엉덩이에 아직도 남아 있다는 몽고반점이 궁금했겠지만 그것을 비디오로 담을 생각은 형부로서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남편이 있는 그녀에게 그렇게 쉽게 갈 수 있었을까? 물론, 자신의 아트를 위해선 위약을 벗어던지고 살 수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이 많아 그가 그런 가능성을 떨쳐 버리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면 영혜의 언니 인혜 또한 힘들게 아들을 홀로 키워 내며 정신병원에 있는 동생도 돌보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모두 영혜가 만들어 놓은 운명의 덫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그런 운명을 그녀가 원했을까?

 

나무불꽃에서 영혜는 나무 형상처럼 말라갔다. 물기 하나 없이 바짝 마른 늙은 나무처럼 그녀는 점점 말라갔고, 나무처럼 되고 싶어 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주변 사람들에게 이제 나를 포기하라는 의사표시 같다. 나는 이제 나무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으며, 그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는 자연으로 남길 원하는 그녀는 이제는 채식이 아니라 모든 음식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정신병원에서도 그녀를 더 이상 손쓰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그녀의 거식증이 계속 되고 있으며 무생물처럼 살아가길 원했는지 자신에게 생명을 불어 넣는 것들을 모두 거부했다.



 

이것이 인혜의 말처럼 모두 꿈이었으면 영혜는 좋을까? 모든 것을 부정하듯 숨이 넘어갈 듯 피를 토하는 동생을 보는 그녀는 모든 것을 부정하고 싶었을 것이다. 꿈이라면 그녀가 새벽녘 숲길을 걸어 동생이 머문 정신병원에 가지 않아도 됐을 것이고 간신히 숨이 남아 있는 동생을 보며 그동안 자신에게 일어났던 악몽 같은 시간을 떠올리지 않아도 됐을 일이다. 매번 지옥 같은 감정이 치밀어 오를 때면 대부분 사람들은 이것이 꿈이었길 바란다. 그녀에게도 그런 순간이 온 것이다.

 

 

 

<소년이 온다.>를 통해 나는 한강을 좋아하기 시작했다. 5.18 민주항쟁을 가지고 소설을 쓴 작품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임철우의 <봄날>을 읽으면서도 얼마나 눈물을 흘렸던가. 계속 시간이 지나도 그 얘기를 해줘야 하는 사람이 필요하고, 시대가 그것을 그대로 옮기기에는 작가 자신에게 큰 위험이 아직도 있다는 것이 참 불행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소년과 5.18을 엮어 놓았다. 계속해서 이런 작업을 해 주는 작가들이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고마웠다. 그런 부분에서 나는 한강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동안 밀어 놓았던 그녀의 작품을 만나기 시작했다. 사실 주인공의 마음을 공감해 주기가 너무 어려웠다. 영혜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공감은 해주고 싶었는데, 그 공감도 사실 너무 괴리감이 들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이 너무 고지식한 것일까. 주인공 영혜보다 그녀로 인해 가정이 파괴됐지만 혈육이라는 이유로 그녀를 돌보고 있는 인혜에게 훨씬 많은 측은지심이 발동하고, 그녀를 위로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더 든다.

 

구급차 안에서 영혜의 삶이 끝이 났는지 모르겠지만, 인혜의 삶은 현재진행중이다. 아직도 살아가야 할 시간이 많은 인혜를 더 위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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