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급생
프레드 울만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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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을 위해 달려가는

 

 

"그는 1932년 2월에 내 삶으로 들어와서 다시는 떠나지 않았다. 그로부터 사반세기가 넘는, 9천 일이 넘는 세월이 지났다. 별다른 희망도 없이 그저 애쓰거나 일한다는 느낌으로 공허한 날이 가고 달이 가고 해가 갔다. 그중 많은 나날들이 죽은 나무에 매달린 마른 잎들처럼 종작없고 따분했다." P21

 

그들은 열여섯 살이었다. 1930년대의 암울했던 그 시절, 유대인의 아들인 한스 슈바르츠는 슈투트가르트로 전학을 온 동급생 콘라딘 폰 호엔펠스에게 시선을 빼앗긴다. 그는 독일의 귀족 소년이었다. 소년들의 우정은 다른 아이들처럼 똑같았다. 싸우고 화해하고 마음을 얻는 방법은 변함없이 똑같은 소년들이었다. 포도밭에서 뒹굴고 들판을 뛰어 다니고, 때로는 사색에 잠긴 사춘기의 소년들이었다. 다만 그들이 살아가고 있는 1930년대의 시대가 다를 뿐이었다. 그때는 히틀러가 권력을 잡기 초였고 아직 유대인 학살이 시작되지 않았을 때였다. 서서히 히틀러의 움직임이 시작될 무렵 그들의 우정과 삶도 서로 다르게 바뀌었다.

 

 

독일인 귀족인 콘라딘의 부모들은 유대인의 아들인 한스를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고 콘라딘 또한 한스를 보호하기 위해 부모에게는 친한 친구인 것을 알리지 않았다. 하지만 한스는 콘라딘의 깊은 심중을 알 리 없었다. 그저 독일인 귀족인 콘라딘가 야속하기만 했을뿐이다. 단지 자신이 부끄러워 그의 부모에게 자신을 소개 시켜주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은 그들의 사이를 크게 갈라놓았다. 한스에게는 콘라딘에게 언제나 자랑스러운 친구로 서 있고 싶었다.

 

 

아직 세계 2차 대전이 일어나지 않았던 그때, 그들의 푸르고 건강했던 그 시절은 나치가 독일을 장악하면서 두 사람의 운명도 갈라졌다. 한스는 독일을 떠나야 했고 콘라딘은 독일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한스는 유대인 학살을 벌린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떠날 때 콘라딘의 기억도 모두 남겨 놓고 사라졌다.

 

 

작년 슈투트가르트에 갔을 땐 그곳이 그렇게 참혹한 전쟁의 상처를 가졌는지 알지 못했다. 언제나 광장이 있는 독일은 사람들에게 자유로운 시간을 주었고 그곳에서 생각의 선을 그으며 나는 많은 고민을 했었다. 그리고 너무도 조용한 그 슈투트가르트의 그 도시에서 벌어진 이 두 소년의 이야기를 미리 읽었다면 훨씬 더 좋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그 도시의 작은 골목길마저도 매 순간 다르게 걸었을 것인데.

 

 

이토록 얇은 책 속에 나란히 서 있는 두 소년이 마지막을 어떻게 달려 나갈지 걱정됐다. 제발 누군가가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지막을 펼쳤을 때의 반전은 이 소설의 가장 큰 의미라고 생각한다. 그 마지막을 위해 얇을 책을 아주천천히 달려야 할 것이다. 그래야 그 의미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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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학급에서 막 시험을 치른 후였다.

50점 이상은 교실에, 50점 이하는 복도로 나가라고 선생님이 말하자

한 학생이 물었다.

 

"딱 50범인 사람은 어떻게 해요?"

" 문틈에 끼여 있어. "

 

이는 우스갯소리지만 삶 자체가 어쩌면 문틈에 끼여 사는 일이 아닐까.

기쁨과 슬픔의 문틈에 끼여 사는 일.

 

시간 창고로 가는 길 ( 박물관 기행 산문) 中 _ 신현림

 

   

 

 

 

 

 

 

 

 

 

 

 

 

한때 나는 아픈 날과 멀쩡한 날 사이에 끼어 살았었다. 일 년에 위경련으로 응급실을 5번 이상 찾은 해도 있었다. 멀쩡한 날에는 음식을 조심해서 먹어야 한다는 그 경고를 잊고 설치면서 살아서 또 병원을 찾았다. 어느 날 응급실에 갔더니 레지던트가 엑스레이도 찍지 않았는데 아무래도 담낭쪽 문제 같다고 얘기했다. CT를 찍고 검사를 하자 담낭에 아주 많은 돌이 담겨 있는 것이 보였고 결국 수술을 했다. 그 후 위경련으로 응급실을 찾는 일은 없어졌다. 건강 할 줄 알았던 그 몇 해가 지나고 있어야 할 것이 없어선지 소화력을 잃은 몸은 다시 헐떡이고 있다.

 

 

 

 

 

 

내가 이래서 그런가, 고양이 루키도 조금 아프다. 전 주인이 알레르기로 못 키우겠다며 거의 버리겠다는 무책임한 말에 지인이 열 받아 인계 받았고 결국 나에게 왔다. 고양이를 키우겠다는 생각은 갖고 있었지만 그 시기를 정하지 못해서 온 루키는 나에게 숙제 같은 존재였다. 매일 매일 고양이 관련 서적을 읽고 공부했지만 녀석에게 생기는 바이러스성 감기를 고치는 일이 쉽지 않았다. 집에 온지 딱 한달이 지날때 재채기를 시작했고 약을 먹으면 늘 그때만 좋아졌다. 그리고 재채기와 함께 기침도 했다. 그렇게 약을 먹으면 좋아지고 안 먹으면 또 시작되는 날을 3개월 맞아 드디어 루키의 중성화 수술 날짜가 되었다.

 

피검사를 한 루키는 수술 불가 판장을 받았다. 그동안 스테로이드 계열 약을 많이 먹어서 루키는 간수치가 높아 마취에 위험할 수 있어 간수치를 내리를 약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요즘 밤마다 열리지 않는 베렌다 문을 향해 우렁차게 울리는 고양이 소리는 분명 발정난 소리가 확실했다. 문을 열어 달라고 우는 소리에 깜짝 놀라 어르고 달래 한참을 놀아주면 다시 잠잠해지는 날들을 간수치 떨어지는 이주일 동안 해줘야 한다.

 

 

 

요즘 나의 삶은 고양이가 발정한 시간이 그렇지 않은 시간으로 나눠져 있다. 루키가 발정을 멈추고 잠을 자면 나도 일을 하고, 발정이 나서 몸부림치면 팔 떨어지는 무한 낚싯대를 흔들어줘야 한다.

 

 

 

 

 

 

 

봄이건만, 고양이 루키는 봄에 많이 일어난다는 발정으로 힘들어 하고, 주인은 잊고 있던 응급실행이 시작될 위경련으로 봄의 문틈에 끼어 있다. 이렇게 봄이 가버리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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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싫은 사람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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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도 있는 그런 사람들 [아무래도 싫은 사람-마스다 미리]

 

 

직장인들의 사직이유는 여러 가지가 많겠지만 그중 많은 비중엔 인간관계가 많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일이 힘들어도 같이 일을 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좋으면 어느 정도 버티면서 일을 하지만 반대의 경우가 되면 못 참고 사표를 내는 사람들을 옆에서 종종 봤다. 퇴사 후 그들을 만나게 되면 어떤 이유 때문에 그만둔 이 이유가 옮긴 회사에도 똑같이 일어난다는 아이러니를 안고 있지만 사람과의 관계는 행복한 직장 생활을 유지하는 큰 조건에 들어간다.

 

 

 

[아무래도 싫은 사람]의 수짱은 한 카페의 점장으로 일을 하고 있다. 매일 퇴근을 하면서 수짱은 기분이 좋지 않다. 일이 힘들거나 무력함이 아니라 오로지 한 직장의 동료 무카이 때문이다. 그녀는 가끔 수짱에게 하는 말들이 조롱이나 야유 섞인 말을 하고 수짱은 아무렇지 않게 넘어 가려고 하지만 퇴근하면서 그녀의 말을 곱씹으며 불쾌해 했다. 수짱이 그녀에게 좋은 감정이 생기지 않는 것은 그녀의 말투의 문제가 아니다. 점장으로 일하면서 아르바이트생으로 들어온 사람들을 잘 관리하며 융통성 있게 문제를 해결 하고 싶지만 동료인 그녀는 카페의 사장이 자신의 큰아버지라는 이유로 권력을 사용한다. 입사한지 두 달된 아르바이트생이 마음에 든다는 이유로 당장 정직원 채용을 약속하거나 모두 원하는 토요 휴무를 생각 없이 친하다는 이유로 허용한다. 점장인 수짱은 그 모든 것들을 원칙대로 풀어내고 싶어 했다.

 

 

수짱이 무카이가 싫었던 이유는 늘 남을 험담하고 불평만 늘어놓고 있다는 것이다. 테이블에 커피는 안 시키고 케이크를 먹는 사람에겐 청승맞다고 조롱하고 집에 일이 있어 토요 근무를 빼달라고 하면 아르바이트생이 염치없이 주말 근무를 뺀다고 험담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더 많이 그녀에게 불평을 늘어놓고 부정적인 얘기만 해서 수짱의 기운을 빼 놓는다. 그녀를 마주한다는 것이 수짱에게는 큰 숙제와 같다. 하지만 수짱의 가장 큰 웃음을 줬던 부분은 자신이 싫어하는 사람을 같이 흉봐 줬던 직원과의 대화에서 위로 받았다는 부분이다.

 

 

아카네는 이제 서른이 된 회사원이다. 그녀는 애인이 있고 그가 빨리 프로포즈를 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더 이상 회사를 다니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녀의 회사에도 수짱이 싫어하는 유형의 직원이 있다. 남자 상사나 동료들에게는 친절하고 애교 섞인 웃음으로 웃으며 접대를 하지만 뭐든 자기 위주의 스케줄을 만들어 놓는다. 사소하게 처리해야 하는 업무도 모두 자신의 일이 아니다. 아카네의 스트레스는 업무의 과중도 아닌 오로지 그녀가 처리하는 사사로운 일이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행동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녀가 지겨운 회사를 빠져 나갈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를 결혼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수짱이나 아카네가 싫어하는 직장 동료들은 사실 어디에든 한명씩 존재하는것 같다. 예전 직장을 옮기기 전의 내 동료 한명은 수짱의 직장동료 무카이 같은 사람이 있었다. 또한 아카네의 그 얄미운 직장 동료도 있었다. 그런데 나는 어떤 유형의 직장 동료 였을까. 비록 나 스스로 남에게 일을 미루지 않고 나 스스로 다 하고, 간혹 다른 사람들이 꺼려하는 출장도 내가 갈 때가 있고 야근도 수용했지만, 이런 나를 보면 미련한 워커홀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의 전 직장 동료는 자신의 업무처리가 깔끔하다고 늘 술자리에서 말하곤 했다. 그녀의 가장 큰 장점은 성실성이었기 때문에 그녀의 깔끔한 업무처리가 좋았다. 하지만 그녀는 늘 자신의 업무 스타일과 타인을 비교 했고, 자신처럼 일하지 못하는 사람을 비난했고 힐책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겐 그녀의 깔끔한 업무처리보다 그녀가 남을 비교하며 탓하는 후자의 성격에 그녀에 대한 평가를 훨씬 더 많이 했다. 일에선 좋은 동료지만 같이 술을 마시며 공감을 누리고 싶어 하지 않았다. 회사에게 그녀는 최고로 인정받고 싶어 했지만, 업무에서는 그랬을지 몰라도 인간관계에선 정반대였다.

 

수짱과 아카네가 직장 생활 속 싫은 사람들과의 업무를 지속해 나가야 하는 일에 다른 결론을 내렸다. 수짱은 매번 불편한 관계로 있는 무카이를 피하며 월차로 회사 출근을 미뤘고 결국 다른 직장을 구했다. 아카네는 그렇게 원하는 애인의 프러포즈를 받았지만 그의 인간 됨됨이가 마음에 걸려 지방으로 전근을 가는 그를 따라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사실 아카네가 아랫사람을 하대하는 행동에 많은 갈등을 겪을때 두 사람의 결혼이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아 보였는데 그녀를 지켜보는 입장에선 절대적으로 잘한 결정이다.

하지만 수짱의 결론에는 조금 의외의 면이 있다. 분명 우리에게는 어느 회사든 다 그런 사람들이 있으니 그냥 버티면서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을까 했는데, 새로운 곳으로 시작을 알렸다. 그러니까 꼭 모든 것을 긍적적으로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일까. 하지만 싫은 직장 동료 무카이를 피하고 만 행동에 이성적으로 공감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은 선택이다.

 

무심하게 그려진 네 컷 만화에 참 많은 생각을 넣어 놨다. 어쩌면 이런 부분 때문에 아직도 마스마 미리의 책이 무더기로 한국에 쏟아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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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중독 - 공부만이 답이라고 믿는 이들에게
엄기호.하지현 지음 / 위고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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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가 현실도피가 되질 않기를 [공부중독 - 엄기호,하지현]

 

 

 

독일을 삼 개월 있다가 한국에 돌아와 끓어오르는 공부에 대한 열망은 내 인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물론 그 열망은 겨울을 맞아 눈처럼 사라져버렸고 현실의 삶에 안주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때 내게 공부에 대한 열망은 내가 부족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고, 그 부족은 오로지 공부를 통해 메워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살았기에 이토록 부족한 사람일까 우울한 마음을 가지고 한국에 돌아와 병이 나서 힘들었다. 그 부족함을 오로지 공부로만 채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어리석은 시간을 빨리 보내 버려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공부중독에 빠진 한국 사회를 엄기호, 하지현 두 남자의 대담으로 [공부중독]이라는 책을 냈다. 두 사람의 대담이 크게 매력적인 부분은 없으나 주변을 돌아 볼 수는 있었다.

 

 

하지현은 공부에 열중한 아이들이 매번 만점을 받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문제가 틀리는 것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이 생긴다고 했다. 십여 년 동안 공부 생활 방식에 틀리는 문제없이 백점을 맞아야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는 입시 환경에서 오는 부작용을 말한다. 이런 부작용을 알고 기존의 학업 스타일과 다르게 가르치고 싶지만 그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나만 다르게 공부 시킨다는 것은 나만 도태되면 안 된다는 딜레마에 빠지고 되고 만다.

 

 

486세대는 공부를 잘하면 잘 살 수 있는 세대였고 그 세대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부모가 습득한 공부 환경을 그대로 물려주기 마련이다. 세대는 계속해서 똑같은 것을 만들어내고 있지만 그것이 옳은 것인지 고민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

 

무엇인가가 되려고 공부를 하는 것은 좋지만 무한 루프처럼 계속 공부를 하게 되는 환경에 대한 문제점도 얘기한다.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것은 아직 시험을 안 친 상태라는 의미입니다. 시험을 친다는 건 내가 어느 정도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인데 이 친구들은 시험은 안 봐요, 오직 공부만 해요. 타석에 서질 않는 거죠. 시험을 봐야 된다면 시험을 안 볼 백 가지 이유를 댑니다. '아직 준비가 안 됐다.', '컨디션이 너무 좋지 않다' '경쟁이 너무 심하다' 등등. " P23

 

 

공부중독은 공부가 그냥 공부로 남아 버리는 딜레마에 빠지고 만다. 간혹 오랫동안 공부하는 것이 그냥 놀고 있다는 것보다 공부를 하고 있는 것으로 위안을 삼고, 공부의 끝을 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즘 뭐해? 라는 질문에 놀아, 보다는 공부하고 있다는 것이 훨씬 나를 포장하기 좋은 단어가 되어 버렸고 그것은 결국 공부하는 삶을 지속하고 어떤 결과도 얻지 않게 된다는 말에 공감하면서도 슬픈 현실을 느낀다.

 

"엄기호 : 우리는 왜 공부를 하는 걸까요? 공부는 성장하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개인의 능력이 신장되는 것이건, 인격이 성숙하는 것이건 또는 시민으로서 성장하는 것인걸 공부는 성장을 하시 위해 하는 것이죠. 그라나 지금은 한국에서의 공부는 성장과는 점점 더 거리가 멀어지고 있어요. 성장과는 아무 상관없이 없는 공부를 공부라고 하고 있고 그걸 청소년들에게 강요하고 있습니다." P 188

 

 

사회 구조나 극적인 교육 시스템의 변화가 없이는 공부 중독에서 벗어 날 수 없지만 변화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애써야 한다는 원론적인 얘기는 일부 공감한다. 아직도 이 부분을 해결할 정답이 나타나지 않았으며 그 해결을 찾기는 먼 미래의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다만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들이 공부를 통해 얻어지지 않는 것도 있기 때문에 간혹 그 우물에서 더 빨리 나오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는 늘 자신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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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4-05 20: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렸을 때부터 하나의 정답만 찾는 공부를 계속하니까 어른이 되서도 어떤 문제를 해결할 때 하나의 정답만 찾으려고 해요. 이러니 어른들은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지 못해요.

오후즈음 2018-04-07 09:41   좋아요 0 | URL
그건 대부분 많은 이들이 비슷한 경우일것 같아요. 저도 그랬구요. 정답만 찾으려고 했는데, 살아보니까 그런것보다 훨씬 더 배워야 할것들이 많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선비와 함께 춤을 -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선비 정신을 찾아서
백승종 지음 / 사우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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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선비 정신을 찾아보자 [선비와 함께 춤을 -백승종]

 

 

 

‘선비’라는 단어를 들으면 단정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뭔가 정갈하게 앉아 조용히 책을 읽고 있어야 하는 이미지를 가졌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에게 선비 같다는 말을 하면 조용하고 단정한 분위기가 떠올랐다.

 

 

 

<선비와 함께 춤을>속에 등장하는 선비들은 그런 이미지의 선비들이 아니다. 다산 정약용부터 추사 김정희까지는 그런 느낌이 들지만 그와 정 반대의 이미지를 가진 선비들도 등장한다. 조선 시대의 선비들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도산 안창호와 안중근, 시인 백석, 리영희, 김홍섭 판사와 최대교 검사도 등장한다.

 

 

“진실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이가 아닐까. 허위를 물리치고, 허상을 깨기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성실한 사람일 것이다. 결코 성리학의 나라 조선시대로 돌아가자는 말이 아니다. 선비의 마음으로 공정하고 따듯한 미래를 열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저자에게 있어 선비란 이런 존재라고 했다. 그가 가진 의미로 바라본 조선 전후기에 있었던 선비들의 여러 면모들을 책속에서 찾아 볼 수 있었다. 그중 가장 가슴에 찡하게 읽었던 부분은 안중근 의사의 얘기였다. 그중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사형이 얼마 남지 않은 아들에게 명주 수의를 마련해 보내면서 남긴 편지 한 장이었다.

 

 

 

  “네가 항소를 한다면 그건 일제에 목숨을 구걸하는 것이다. 나라를 위해 딴맘 먹지 말고 죽으라. 대의를 위해 죽는 것이 어미의 대한 효도다.

   아마도 이 편지가 어미가 쓰는 마지막 편지일 것이다. 네 수의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잘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재회하길 기대하지 않으니 다음 세상에는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되어 이 세상에 나오너라.” P 68

 

 

 

새파랗게 젊은 아들의 죽음을 바다 건너 지켜보면서 어머니는 이런 편지를 보냈다. 어머니의 편지를 읽으며 그는 32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이런 강직함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그들의 고결한 행동에 그저 고개가 숙여진다.

그와 마찬가지로 안창호는 어떤가. 모진 고문을 당해 피가 부족해지면서 병석에 누워 죽을 날이 가까워 오고 있었다. 일본인 미와는 안창호와 인연이 있었고 그를 도와주고 싶은 심저에 부인과 함께 찾아가 헌혈까지 하려고 했지만 안창호는 조국의 원수였던 일본인의 피를 받는 것을 거부 했다. 물론 그것 때문은 아니었지만 그는 미와가 찾아온 이후 이틀 뒤 세상을 떠났다. 죽음 앞에서 조금 더 살아보고자 했던 처절한 몸부림도 거절했던 일본의 손길이었다. 그들의 강직함에 지금의 우리들은 어떤 모습인가 생각하게 된다.

 

 

많은 역사가들이 정조를 찬양했다. 그를 ‘문예부흥’을 일으킨 ‘개혁 군주’라고 말하지만 그에게도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강이천은 화가이자 시인으로 이름을 떨친 강세황의 손자였다. 그는 일찍이 명과 청의 신문학 작품을 즐겨 읽으며 보수적인 성리학자들이 고집하는 사회질서의 타당성을 의심하며 새로운 세상에 눈을 떴다. 정조가 보수 세력이라면 강이천은 진보 세력인 셈이다. 정조는 강이천의 사상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를 결국 유배 보냈으며 그와 연관된 사람들도 모두 비슷한 일을 겪게 하였다. 강이천은 종조의 ‘블랙리스트’였다. 자신의 생각과 타인의 생각이 틀림이 아닌 다름을 인정해 주지 않았던 조선 시대의 정조에게도 이런 내면의 모습이 숨겨 있다니 놀라웠다.

 

 

 

“한국의 기득권층은 허다한 사건들, 가령 세월호 사건이든 사드 배치, 위안부 합의를 둘러싼 논의에서도 도구화 전력을 구사한다. 그들은 주류 언론과 국회 및 사법부를 움직여 자신들의 입장을 강변하고, 자신들의 대척점에 있는 진보진영까지도 은근하고 교묘한 방법으로 굴복시킨다.” P 244

 

 

한 지인이 그런 얘기를 했다. 정권이 바뀌었으니 이제 좋은 세상 올 줄 알았는데 달라진 것이 없다고. 아직 보수 진영에서 진보 진영으로 바뀌었을 뿐, 더 많은 것들이 올바르게 변화해야 하고 청산이 이뤄져야 한다. 그러니 왜 아직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냐고 하지 말고 휘어진 역사를 바로 쓰도록 노력해 봐야 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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