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린든 B. 존슨 대통령에게 보내는 답장

이 글은 1967년 2월에 베트남의 국부 호치민 주석이 미제국주의자이자 베트남을 침략한 린든 B. 존슨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를 번역한 것입니다. Exchange of Letters with U.S President Lyndon B. Johnson의 내용으로 원본은 여기서 (https://www.historyisaweapon.com/defcon2/hochiminh/)에서 확인이 가능합니다.

린든 B. 존슨 대통령 각하, 1967년 2월 10일에 받은 귀하의 편지에 대한 제 답변입니다.

베트남은 미국으로부터 수천 마일이나 떨어져 있습니다. 베트남 인민은 미국에게 그 어떠한 해를 끼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1954년 제네바 협정에서 맺어진 조항들과는 달리, 미국 정부는 베트남에 끊임없이 개입해왔으며, 베트남에서의 영구분단과 미국의 남베트남 신식민주의화, 미국군대의 전초기지화를 목적으로 남베트남에서의 침략전쟁을 개시하고 강화해왔습니다. 대략 2년 동안 미국 정부의 군용 항공기와 해군은 독립국이자 주권국가인 베트남 민주 공화국을 대상으로 전쟁을 벌였습니다.

미국 정부는 평화와 인류에 대항하는 전쟁범죄들을 저질렀습니다. 50만에 달하는 미군 병사와 위성국들의 병사들은 우리 동포들을 학살하고, 농작물을 파괴하고 마을을 없애버리기 위해 네이팜 폭탄과 화학 무기 그리고 독가스와 같은 가장 비인간적인 무기와 가장 야만적인 전쟁방식을 수행해왔습니다. 북베트남에서는 수천대의 미군 항공기가 수백 수천 개의 폭탄을 투하하여 도시, 마을, 공장, 도로, 다리, 제방, 댐과 심지어 교회와 탑, 병원 그리고 학교까지 파괴했습니다. 대통령께서는 메시지에서 베트남의 겪는 고통과 파괴를 슬퍼한다고 표현했습니다. 그럼 물어보겠습니다. 누가 이런 소름끼치는 범죄들을 저지르고 있습니까? 바로 미제국주의와 그 위성국들의 병사들입니다. 따라서 미국 정부는 베트남에서의 극단적인 상황에 전적으로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베트남 인민을 대상으로 한 미제국주의자들의 침략전쟁은 사회주의 진영에 대한 도전이자, 민족해방운동에 대한 위협이요, 아시아와 세계 평화에 대한 심각한 위협입니다.

베트남 인민은 독립과 행복 그리고 평화를 전적으로 사랑합니다. 그러나 우리 인민은 미제국주의자들의 침략에 맞서 궁핍과 희생에 대한 공포를 떨쳐 궐기했습니다. 우리 인민은 진정한 독립과 자유 그리고 진정한 평화를 쟁취할 때까지 단호히 투쟁을 전개해 나갈 것입니다. 우리의 대의명분은 전 세계 인민들과 미국 인민 대다수를 통틀어 강력한 지지를 받고 또 인정받고 있습니다.

미국 정부는 베트남에서 침략전쟁을 도발했습니다. 침략행위는 반드시 중단되어야 하며, 그것만이 평화를 재정착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미국 정부는 단호하게 그리고 무조건적으로 베트남 민주 공화국에 대한 전쟁 도발 행위와 폭격을 반드시 중단해야 하며, 모든 미군과 그 위성국들의 군대 전부를 남베트남에서 철수시켜야 하고, 남베트남민족해방전(베트콩)과 베트남 인민 스스로가 그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인정해야 합니다. 이것이 베트남 민주 공화국 정부의 4가지 기본적인 입장 내용이며, 1954년 베트남 제네바 협정의 기본원칙과 준비사항입니다. 이것이 베트남 문제의 올바른 정치적 해결책의 기초입니다. 대통령께서는 베트남 민주 공화국과 미국의 직접적인 협상을 제안했습니다. 만일 미국 정부가 대화를 원한다면, 우선 폭격과 베트남 민주 공화국에 대한 모든 적대행위를 무조건적으로 멈춰야 합니다. 미국의 폭격과 베트남 민주 공화국에 대한 모든 적대행위를 중단한 이후에야 미국과 베트남 민주 공화국 간의 대화와 양당에 영향을 끼치는 의제를 논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베트남 인민은 무력에 결단코 굴복하지 않으며, 폭격이라는 명실상부한 위협이 존재하는 한 대화요청을 수락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대의명분은 전적으로 정당합니다. 미국정부는 도리에 맞게 행동해야 할 것입니다.

진심을 담아,

호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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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소전쟁 개전(바로바로사 작전) 80주년인 어제, 주딱 동지와 몇몇 노사과연(노동사회과학연구소) 동지들과 함께 소성리에서 사드 반대 집회를 햇었습니다.


6월 21일 아침 저와 아는 동지 한명랑 고속터미널 역에서 같이 대구행 버스에 올라 대구에 내려간 뒤 몇몇 동지들과 일정을 갖은 뒤에, 밤 10시 40분 쯤 대구에서 소성리로 가는 봉고차에 올랐습니다.


11시 30분이 넘어 소성리에 도착한 우리는 그곳 현장에서 잠시나마 취침을 가진 뒤, 다음날인 새벽 5시쯤 일어나 투쟁을 전개했습니다. 이 사드 집회를 참가 하기 위해선 새벽 가까이 움직여야 하는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미제국주의의 전쟁 기계 사드 관련 부품 및 물품들이 들어가는 시간이 새벽 5~6시쯤이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올해들어 역대급으로 많은 인원이 모인 것이었는데, 대략 100명 정도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대학생진보연합(대진연), 민주노총 건설노조, 전교조 그리고 노사과연 및 기타 동지들이 모였고, 이 투쟁의 규모로 보았을 때 주축은 대진연 동지들이었다 봐도 과언은 아니었습니다. 뭐 어쨌든 진보세력의 정파를 떠나서 한반도의 평화와 미제국주의의 패권주의적 야욕을 막겠다는 정신 하나만큼만은 뭉친 연합체였다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저희가 5시 40분 쯤 나왓을 때, 이미 경찰은 사드 현장에 결집한 100명의 시위대를 막기 위해 못해도 1,000명 이상의 경찰 병력을 투입했습니다. 수십대의 경찰차량 버스가 저희를 진압하기 위해 온 것이지요.


6시쯤 우리는 동네에 계신 사드 반대 투쟁을 지지하는 어르신들과 여러 단체 동지들과 함께 평화로운 집회를 가졌습니다. 그러던 7시쯤이 되자 경찰들이 우리를 포위했고, 시위대 한명 한명을 들어 올려 시위대 그 자체를 와해시켜 버리고자 했습니다. 그 이유는 저희가 제국주의 무기의 진입을 막으려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 또한 경찰에게 끌려 나갔고, 수많은 동지들이 그렇게 끌려 나갔으며, 대략 2명이 경찰에 의해 부상당했습니다. 경찰이 강제적인 방법으로 우리를 해산시키려 하자, 시위 진열이 다소 과격해지며, 몸싸움을 동반한 진입 투쟁에 나섰습니다. 그렇게 대략 1시간 30분 가까이를 경찰과 충돌했고, 9시에서 9시 30분쯤 집회는 끝났습니다. 물론 사드 관련 부품들은 소성리 마을 도로를 통과했지만, 중요한 건 우리가 투쟁했다는 사실이라 생각합니다.


이번에 투쟁을 전개하며, 평화시위 따위만을 갈구하는 행위가 얼마나 어리석고 유치한 말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평화적인 시위를 통해 목표한 바를 쟁취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투쟁을 해야할 때는 어느정도의 희생과 더불어 각오도 있어야 한다 생각합니다. 경찰과의 충돌은 개인적으로 LG 트윈타워에서 진입투쟁을 벌인 이후로 두 번째입니다. 이번에 노사과연에 있는 한 동지의 발언 즉 국가의 독점자본주의와 제국주의 부르주아지들의 이익에 복무하는 이 체제에 대한 분노의 연설이 꽤나 감명깊었습니다. 또한 사상은 다른 대진연 동지들의 적극적인 진입투쟁에서도 감명받았습니다.


저는 좌파라면 이런 사드 반대 집회에 참가해야 한다 생각합니다. 사드 문제 또한 미국의 제국주의와 한국의 재벌독점체제 그리고 자본주의 문제와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집회가 궁금하신 분들이라면 아래의 영상을 감상하시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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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versation between Ho Chi Minh and Ngo Dinh Diem in 1945.

 

1945년 호치민과 응오딘지엠의 담화


(스텐리 카노우가 쓴 <Vietnam: A History>에 있는 호치민과 응오딘지엠 사이의 대화 내용을 한번 번역해보았습니다.)

 

Diem: What do you want of me?

 

응오딘지엠: 나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오?

 

Ho: I want of you what you have always wanted of me. your cooperation in gaining independence. We seek the same thing. We should work together.

 

호치민: 내가 당신에게 원하는 것은 당신이 나에게 항상 원했던 것입니다.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당신의 협력이오. 우린 같은 대의를 추구합니다. 따라서 우린 함께 해야 합니다.

 

Diem: You are a criminal who has burned and destroyed the country, and you have held me prisoner.

 

응오딘지엠: 당신은 조국을 불태우고 파괴한 범죄자입니다. 또한 당신은 나를 포로로 붙잡았고요.

 

Ho: I apologize for that unfortunate incident. When people who have been oppressed revolt, mistakes are inevitable, and tragedies occur. But always, I believe that the welfare of the people outweighs such errors. You have grievances against us, but let’s forget them.

 

호치민: 그런 불상사가 일어난 것에 대해 먼저 사과합니다. 억압받던 민중들이 봉기하면 그런 실수들은 불가피하고 비극이 나타나죠. 하지만 저는 인민들의 복리가 그런 오류보다도 더 중대하다고 봅니다. 불만의 여지가 있지만 이제는 잊어버리도록 합시다.

 

Diem: You want me to forget that your followers killed my brother?

 

응오딘지엠: 당신의 부하들이 내 형을 죽인 것을 잊어버리라는 얘기오?

 

Ho: I knew nothing of it. I had nothing to do with your brother’s death. I deplore such excesses as much as you do. How could I have done such a thing, when I gave the order to have you brought here? Not only that, but I have brought you here to take a position of high importance in our government.

 

호치민: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나는 당신 형제들의 죽음에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았소. 나 또한 이 지나친 일에 대해 당신만큼이나 유감스럽게 생각하오. 내가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단 말이오! 당신을 이곳에 데려오기 위해 제가 명령이라도 한 줄 아십니까? 더군다나, 당신을 이곳에 부른 이유는 우리 정부의 중차대한 직책을 맡기게 하기 위함입니다.

 

Diem: My brother and his son are only two of the hundreds who have died and hundreds more who have been betrayed. How can you dare to invite me to work with you?

 

응오딘지엠: 친형제와 친형의 자식은 수백 명의 사망자 중 2명에 불과합니다. 이외에도 수백 명이 배신당했습니다. 나를 불러 함께하자고 초청할 자격이 있다고 자부할 수 있소?

 

Ho: Your mind is focused on the past. Think of the future education, improved standards of living for the people.

 

호치민: 과거에 지나치게 함몰되어 있군요. 미래세대에 대한 교육과 인민생활의 향상을 바라보도록 합시다.

 

Diem: You speak a language without conscience. I work for the good of the nation, but I cannot be influenced by pressure. I am a free man. I shall always be a free man. Look me in the face. Am I a man who fears oppression or death?

 

응오딘지엠: 몰지각한 말만 하는구려. 협박을 받으면서까지 나는 조국을 위해 일할 이유가 없소. 나는 자유인이오.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고. 똑똑히 보세요. 내가 탄압과 죽음에 겁먹을 사람으로 보이는지.

 

Ho: You are a free man.

 

호치민: 당신은 자유인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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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을 주제로 한 국내의 영화들을 정말 많다. 2004년에 개봉한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의 경우 천만관객이라는 성공적인 성과를 거둔 영화도 있다그 외에도 한국전쟁 관련 드라마 또한 적잖게 있다이러한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항상 설정해 놓는 것이 있다그것은 바로 한국전쟁 당시 북한을 돕기 위해 참전한 중공군에 대한 묘사다한국에서 만든 한국전쟁 관련 영화나 드라마 등을 보면정치성향과는 상관없기 중공군에 대한 묘사는 일치한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에 나온 중공군 물량 공세)

 

예를 들어 드라마를 보자면, 2010년 MBC에서 방영했던 반공 드라마 로드 넘버원에서 나온 중공군들은 숫자에 의존한 공격을 퍼붑는 것으로 나온다드라마 상에서 나온 중공군의 평양 탈환작전이나주인공 부대와 한미 연합군이 치르는 전투에서 중공군은 압도적인 물량으로 이들을 압박하지만미공군의 항공지원으로 간신히 무찌르는 것으로 묘사된다. 2006년 KBS에서 방영했던 해방전후사를 다소 진보적인 시각에서 다룬 대하드라마 서울 1945’에서도 중공군의 공세를 66화에서 아주 짧게나마 다루는데여기서도 중공군은 숫자로 한국군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인다영화도 마찬가지다앞에서 언급한 태극기 휘날리며나 고지전등에서도 중공군은 물량공세를 펼치는 것으로 나온다.

 

이처럼 국내에서 만든 한국전쟁 관련 대중매체는 중공군을 단순히 인해전술에만 의존한 군대로 묘사한다그렇다면이러한 묘사는 사실적인 묘사일까내가 내리는 답은 물론 아니다. 1950년 6월 25일에 시작된 한국전쟁은 자본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의 싸움이자내전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으며베트남 전쟁과 마찬가지로 사회주의 진영의 민족해방전쟁적인 모순점도 아주 명확하게 드러나 있던 전쟁이었다이 전쟁에 중국이 참전하게 된 것은 1950년 10월 25일의 일이었다.

 

한미 연합군이 인천에 상륙작전을 성공시키고수도 서울을 수복한 시점까지만 해도 중국은 참전할 의사를 보이지 않았었다그러한 이유는 중국이 내전을 끝낸 지 1년도 채 안된 시점이었기 때문이었다그러나 한국군을 포함한 유엔군이 이승만의 염원에 따라 북진을 하게 되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1950년 10월 1일 한국군은 단독으로 38선을 돌파했는데그 다음날인 10월 2일 마오쩌둥은 스탈린에게 참전 관련 편지를 보냈고, 10월 13일에 참전을 결정했다. 10월 19일 한미 연합군은 평양에 입성했는데이 시점에 마오쩌둥이 보낸 중공군은 압록강과 두만강 지역에 대기하고 있었다.

(소련제 기관단총으로 무장한 팔로군들)

 

이렇게 되면서 10월 25일 중공군은 한국전쟁에 참전했고참전한 중공군은 여기서 유엔군과 첫 교전을 벌였다이후 중공군은 팽덕회(펑더화이)의 지원 아래 초기에 최소 30만 명이 참전했다참전 규모는 이후 100만에서 150만까지 증가한다이들은 곳곳에서 한국군과 유엔군을 격퇴했고크리스마스가 되기 전 전쟁이 끝날 것이라는 유엔군 사령관 더글라스 맥아더의 말을 몽상으로 바꾸어 놓았다중공군은 북한의 조선인민군과 연합하여 12월에 다시 평양을 탈환하고 1951년에는 다시 서울을 점령했다그 이후엔 수원과 용인 그리고 충청북도 주변까지 진격했다이후엔 유엔군의 반격으로 다시 38선 부근까지 후퇴했고그곳에서 2년간 고지전을 치르다가 휴전을 맞이했다.

 

전쟁 초기 중공군이 쓴 전술로는 흔히 인해전술이 많이 알려져 있다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물론 중공군이 인해전술을 쓴 경우가 있었는데대표적으로 유엔군이 철수하게 된 장진호 전투에서였다장진호 전투에서 중공군 12만 명과 유엔군 2만 명이 교전을 벌였고중공군은 4만 명 그리고 유엔군은 2,500명이 전사했다당시 중공군은 미군을 밀어붙이기 위해 물량에 의존했었고당시 참전했던 미군들이 이후 인해전술로 불릴만한 증언들을 했기 때문이다이것이 바로 우리가 중공군에 대해 가지게 되는 인식의 시작점이었다.

(북한에서 만든 중국인민지원군과 조선인민군을 그린 그림)

 

실제로 중공군의 주된 전술은 인해전술이 아니었다이들의 주된 전술은 게릴라전이었다중공군은 과거 제1차 국공내전과 중일전쟁 그리고 제2차 국공내전에서 그랬듯이게릴라전에 익숙한 군대였다마오쩌둥이 키운 중국의 홍군은 게릴라전을 기반으로 성장한 군대였고, 1935년 대장정 뿐만 아니라 중일전쟁 시기에도 일본군이 모든 것을 불태우고약탈하고죽인다.”는 삼광작전을 펼친 것도 팔로군의 게릴라전술에 대한 대응이었다2차 세계대전 이후 장제스에 맞선 전쟁에서도 마오쩌둥의 중국 공산당은 주로 화력보단 게릴라전술에 의존했다내전 초기 국민당군이 430만 대군이었던 반면 공산당은 120만 명의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으므로 전력에서도 국민당이 3.5배나 많았다화력에서도 국민당이 미국의 탱크와 항공기를 지원받았기에 압도적이었다따라서 중공군은 이 시점에서만 보더라도 인해전술식 군대가 아니었다.

 

특히 국공내전 시기 동북해방전선에서 활약한 이 중공군은 한국전쟁에서도 국민당군을 굴복시킨 전술을 참전 초기에 사용했다이들은 보급로가 길어지면서 고립된 유엔군과 한국군 부대를 포위 공격했고야간을 이용하여 산을 타고 내려온 부대들을 통해 이들의 후방을 차단했다따라서 당시 적잖은 한국군과 유엔군이 공산진영의 포로로 붙잡혔다결국 이러한 전략전술을 통해 중공군이 다시 38선을 넘어 서울을 점령할 수 있었던 것이고수원과 용인을 넘어 충청북도 인근까지 진격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러나 중공군에게도 한계가 있었다그것은 바로 막강한 유엔군의 화력이었다우선 유엔군은 막강한 제공권을 장악하고 있었고거기다 한국전쟁 초기 낙동강 전선에서 보충한 강력한 기갑부대도 있었다특히나 항공화력은 북한 전역을 초토화 시킬 정도로 무서운 수준이었다이러한 화력지원을 토대로 맥아더 해임 이후 유엔군 총사령관이된 리지웨이는 중공군의 춘계 대공세를 효율적으로 막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이에 따라 양측 모두 더 싸우기 보단 휴전협정을 앞당기는 쪽을 택했다본문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중공군의 전략적 뿌리는 게릴라전에 있었다따라서 한국전쟁 시기 중공군이 인해전술에 의존했다는 인식은 사실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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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베르 호자의 사진, 상당히 다정해 보이는 얼굴이다.)

 

그리스와 코소보마케도니아 그리고 몬테네그로와 맞닿아 있는 국가 알바니아(Albania)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이탈리아에게 점령당했었다산악지대를 주로 이루고 있는 이 조그마한 산악 국가는 당시 봉건적 잔재가 많이 남아있던 농업국가였고역사적으로 이탈리아의 영향권에 놓여 있었던 나라였다이는 20세기에도 마찬가지였다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히틀러의 동맹세력인 이탈리아의 베니토 무솔리니(Benito Mussolini)는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5개월 전 알바니아를 침공했었다.

 

이탈리아 군대가 알바니아를 침공하자 조그(Zog) 왕과 그의 정부는 도망쳤고체터스(Chetas)라고 불리는 일부 게릴라 부대들이 이탈리아군에 맞서 산발적인 게릴라전을 벌였다당시 이탈리아는 알바니아에 대략 5개 사단을 배치했다이로부터 대략 2년 동안 알바니아에 대한 정보는 서방에 알려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의 전세가 1943년 스탈린그라드 전투 이후 역전되고북아프리카 전역에서 영미 연합군이 승리한 이후 이탈리아 본토 상륙을 계획하기 시작하자알바니아인들은 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1939년 알바니아에 입성한 이탈리아군, 이탈리아군의 L3/35 탱크도 보인다.)

 

이 시점에서 알바니아의 주요 조직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첫 번째로는 공공연하게 군주주의적 성향을 가진 군장교 아바스 쿠피(Abas Kupi)의 지도하에 알바니아 북부 지방 일대에 있던 조그주의자(Zogist) 운동 그룹이다당연히 이들은 왕당파를 상징하는 세력이었다둘째는 알바니아 해안지대와 중부지방의 작은 언덕지대에서 활동하던 극우성향적 공화주의파인 발리 콤베타(Balli Kombetar) 즉 민족연합 운동 그룹이었다그리고 마지막은 이 글의 주인공인 엔베르 호자(Enver Hoxha)의 공산주의 그룹과 그들이 이끄는 LNC(빨치산부대였다.

 

알바니아의 지도자로 알려진 엔베르 호자(Enver Hoxha)는 1908년 오스만 제국령 알바니아에서 태어났다부르주아 출신 집안에서 자란 호자는 벨기에에서 교육을 받은 역사학 교수였고이탈리아가 알바니아를 침공하여 점령했을 시점부터 반파시스트 운동에 뛰어들었던 인물이었다유학생활을 바탕으로 영어와 독일어 그리고 러시아어도 할 줄 알았었다고 한다이탈리아군에 맞선 파르티잔 투쟁을 벌였던 호자는 1942년 말 왕당파 그룹이었던 게헤그(Gheg)의 게릴라 부대를 설득하여 민족해방운동을 전개하도록 만드는 데 성공했다또한 그리스 공산당(KKE)와 유고슬라비아의 티토(Tito)하고도 협력하는 관계였었다.

(독일군에 맞설 당시 호자의 전투 지휘를 표현한 상상화)

 

당시 영국의 SOE는 이탈리아에 맞서 게릴라전을 전개했던 호자와 협력관계를 형성한 게헤그의 부대와 호자의 파르티잔에 관심을 기울였다이들은 그들에게 무기와 장비를 공급해주고자 했고, 2개의 타격연대를 훈련시키기도 했었다그러나 1943년부터 이탈리아가 항복할 기미를 보이게 되면서 새 정부 수립 부분에서 갈등이 나타났다이탈리아에서 무솔리니가 축출되고 연합군에게 항복하자이번엔 히틀러가 이끄는 나치 독일의 군대가 알바니아에 들어왔다독일군이 입성하면서 파르티잔 투쟁은 고난을 겪었다독일군은 대략 3개 사단을 동원하여 수많은 게릴라 부대들은 몰아냈는데작전 개시 2주도 안되어 수세에 몰렸다독일군은 알바니아 점령에 총 4개 사단이 동원되었다.

(파르티잔 투쟁 당시를 표현한 엔베르 호자의 상상화)

 

그러나 당시 독일군은 연합군에 맞서 전쟁을 치르고 있었기에 알바니아에 대해 크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거기다 유고슬라비아의 경우 30만이 넘는 추축군의 병사가 티토의 파르티잔 부대를 상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따라서 독일은 전쟁이 끝나면 알바니아 철수 후 그곳에 괴뢰정권을 수립하는 것으로 만족하려 했다독일군은 알바니아의 도시와 주요 도로들을 장악한 것에 만족하고그 밖의 지역의 점령에는 소홀했다이에 따라 호자는 알바니아의 나머지 부분을 장악하려는 시도를 할 수 있게 됐다. 1943년 가을 호자는 그의 병력을 동원해 정적인 발리 부대를 공격했는데발리 부대는 여기서 독일군과 손을 잡았다그리고 이 시점에서 이탈리아 점령 초기부터 게릴라전을 전개하던 체터스는 독일군과 거의 싸우려 하지 않았다이런 상황이 전개되자 알바니아에 침투했던 SOE의 여단장 트로츠키 데이비스(Trotsky Davies)는 좌절감에 빠지기도 했었다.

(알바니아에서 활동했던 독일의 Waffen-SS, 이들은 결국 1944년에 알바니아에서 물러나게 된다.)


(알바니아 사회주의 인민 공화국의 깃발)

 

1944년 봄 영국의 SOE는 조그주의자(왕당파세력인 쿠피 그룹을 중심으로 하는 레지스탕스 봉기를 일으키고자 했지만당시 이 그룹은 친나치파 문제와 더불어 조직 내의 분열에 휩싸여 있었다이와 대조적으로 호자와 그가 이끄는 빨치산들은 세력을 확장했고, 1944년 1월에 5천 명이었던 조직이 5월에는 2만 명을 넘어섰다이에 따라 연합국은 이들에게 군수품을 포함한 물자를 공중으로 지원했다호자의 빨치산 부대는 이런 지원을 바탕으로 지역을 확장하고독일군 호송대와 나아가 수비대를 상대로 공격을 감행하기에 이르렀다.

(1944년 11월 알바니아를 해방시킨 호자의 빨치산 군인들)

 

그해 6월 독일군은 제1산악사단을 창설하여 북부의 연합군 교두보를 폐쇄시키는 데 성공하여 빨치산들은 산속으로 쫓아내 버렸지만1산악사단이 유고슬라비아에 배치되자 다시 독일군에게 게릴라전을 감행했다이후 독일군은 불리해지는 전황에 따라 알바니아에서도 후퇴하게 되었다노르망디 상륙작전 5개월 뒤인 1944년 11월에 호자가 이끄는 빨치산들은 궁극적으로 알바니아에서 독일군을 몰아내기에 이른다이로써 알바니아가 해방된 것이다빨치산의 주장에 따르면 대략 5천 명에서 6천 명 이상의 독일군이 그들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한다.

(알바니아에서의 전쟁을 다룬 관련 서적)

 

그로부터 1년 뒤인 1945년 알바니아는 티토의 유고슬라비아와 스탈린의 소련의 지원을 받아 전국적인 총선거를 실시했다이에 따라 1946년 엔베르 호자를 지도자로 한 알바니아 인민 공화국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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