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이데올로기 2 Marx Engels 전집 3
카를 마르크스.프리드리히 엥겔스 지음, 이병창 옮김 / 먼빛으로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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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도이치 이데올로기가 완역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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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9-07-03 11: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자체도 놀라울 일이지만 제목 위에 작은 글자로 ‘전집‘이라고 써 있는 게 더 감동적이네요.....ㅠ

NamGiKim 2019-07-03 11:05   좋아요 0 | URL
저거 번역한 분은 친스탈린성향이 강한 분이긴 합니다. 노사과연쪽인 것 같던데. 뭐 사회주의자로서 스탈린에 대해 좋게 볼 수도 있다 봅니다.(저도 친스탈린 성향이 없진 않으니)

syo 2019-07-03 11:10   좋아요 0 | URL
그런 건 또 몰랐네요. 전 그런 것보다 완간이 가능할지 자체가 회의적입니다.....

NamGiKim 2019-07-03 11:11   좋아요 2 | URL
그니까 전집 말씀하시는거죠? 요즘 시대에 이런 명저를 읽는 이들이 정말 없긴 없습니다.ㅜㅡㅜ

morbid3 2024-04-11 19: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르크스 앵앨스 전집은 한국에서 출판될 가능성 제로구요. 문제는 이 독일이데올로기는 비판서라서 포이어바흐, 바우어, 슈트리너의 책을 다 완독해야 이해 가능한데 완독 다 하셨어요? 번역 하나도 안된것으로 알고있는데..
 

백선엽은 친일 친미 제국주의자다. 명장? ㅈㄹ 같은 반공정신병자들이 하는 소리지. 1930,40년대 간도특설대에서 독립군을 자진 토벌하던 새끼가 바로 백선엽임. 아무튼 반공주의에 심취한 극우 반공주의자들이 백선엽을 대한민국 군의 시작점으로 보려는 것은 지들 스스로가 무덤파는 행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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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러시아는 농업 국가이자 후진 자본주의 국가였다. 러시아 제국은 1890년대에 이르러 세계 자본주의의 제국주의화 추세와 연관하여 큰 변화가 일면서 자본주의적 비약적인 성장을 달성했다. 그러면서 농업 국가 러시아에선 새로운 사회계급이 대두되었는데, 그게 바로 자본가와 노동자다. 당시 러시아 제국의 도시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조건과 위험하기 짝이 없는 작업환경 속에서 생계를 이어나갔다. 러시아의 노동자들은 이런 불합리한 상황에서 파업과 투쟁을 이어나갔지만, 차르 정부에 의해 무자비하게 진압당했다.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부터 러시아에서는 차르 체제에 맞선 크고 작은 투쟁들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1905년 1월 9일 대략 20만 명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의 시위대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는 러시아 차르의 겨울 궁전으로 몰려들어 시위를 벌였다. 그러자 차르 정부는 총으로 무장한 근위병들과 코사크 기병대를 투입하여 시위대를 진압했고, 그 과정에서 최소 1000명 이상이 사망했다. 이게 바로 ‘피의 일요일’이다. 1905년 러일전쟁이 러시아 제국의 패배로 끝나자, 노동자 파업 및 투쟁은 더 격해졌다. 그해 10월과 12월까지 대략 50일에 걸쳐 20만 노동자들을 대표하는 노동자 대표 평의회가 러시아 수도를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모스크바에서는 12월 무장봉기로 경찰국가에 타격을 입히기도 했다. 하지만 이 운동은 확실한 돌파구를 찾지 못하며 노동자들이 지침에 따라 세력이 약화되자 차르 정권은 이를 진압하여 수많은 노동자를 살해했다. 따라서 1905년에 일어난 노동자 봉기는 실패로 끝이 났다. 하지만 1905년 혁명은 노동자들이 봉기하여 차르 정권을 전복시키고 사회주의를 건설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해주었다.

그러나 러시아에는 다시 한번 혁명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데, 그것은 바로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부터였다. 1914년 사라예보 사건이 터지자 유럽에서 전쟁이 일어났고,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한 세력과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오스만 투르크를 중심으로 한 세력이 전쟁에 참여했으며, 영국의 동맹국인 일본도 이 전쟁에 참전하게 되었다. 당시 러시아는 영국과 프랑스를 도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됐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은 독일 제국의 허황된 꿈인 ‘슐리펜 작전’이 실패함에 따라 장기전에 돌입했고, 점차 참호를 중심으로 한 장기전이 되었다.

러시아 제국은 동부전선에서 독일 제국에 맞서 전쟁을 치렀는데, 독일과의 전투에서 많은 전사자와 사상자가 속출하였다. 전쟁으로 인한 러시아 측의 경제난은 지속되는 가운데, 러시아 제국의 지주와 자본가들의 횡포와 부패가 극심해지면서, 러시아에선 혁명이 일어나게 되는데, 그게 바로 1917년에 일어난 2월 혁명이다. 1917년 2월 23일 ‘국제 여성의 날’ 시위를 시작으로 수많은 민중이 혁명에 동참했다. 물론 차르 정부가 발포를 명령했기에 그 과정에서 대다수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러나 시민들을 쏜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낀 병사들은 노동자들과 거리로 나와 총과 붉은 깃발을 들고 행진했고, 시위 시작 5일째 되던 날 니콜라이 황제는 자진사퇴 하게 되었다. 이로써 차르 체제가 무너지게 된 것이다.

2월 혁명 이후 러시아에는 케렌스키와 부르주아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한 임시정부가 들어섰다. 새로운 임시정부는 분명 부르주아들이 중심이 되었지만, 농촌 혁명을 부르짖던 사회혁명당 계열의 일부 인사들과 멘셰비키들이 참가했다. 그러나 새로 들어선 임시정부는 민중이 원하는 것을 들어주지 않았다. 무엇보다 러시아 민중이 간절히 원했던 독일과의 전쟁 중단을 실행하지 않았고, 오히려 전선에서 무모한 반격을 가하는 바람에 수많은 러시아 병사들이 전투에서 죽어 나갔다. 그러는 사이 1917년 4월 3일 볼셰비키당을 이끌던 레닌이 페트로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핀란드역에 도착했다. 페트로그라드에 도착한 레닌은 전차 위에서 열 번을 토했고, 다음날인 4월 4일 볼셰비키 집회와 사회민주당 연합집회에서 〈당면 혁명에서의 프롤레타리아트의 임무〉를 발표했다. 그것이 바로 4월 테제다. 레닌의 ‘4월 테제’에서 “즉각적인 전쟁 중단,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 소비에트 공화국 수립, 국제혁명조직 창설” 등을 주장했다. 돌아온 레닌은 러시아에서 혁명을 준비하던 중 레닌의 예상보다 빨리 민중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는데, 그게 바로 7월 봉기다. 그러나 그해 일어난 7월 봉기는 임시정부에 의해 무자비하게 진압당했고, 이 때문에 레닌 또한 러시아를 잠시 떠나야 했다.

당시 핀란드로 도망간 레닌은 <국가와 혁명>을 집필했는데, 그해 8월 러시아에선 반혁명의 시도가 일어났었다. 그게 바로 코르닐로프의 반란이다. 코르닐로프의 반혁명 시도가 일어나자, 레닌과 볼셰비키들은 케렌스키 정부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고, 러시아 병사들이 코르닐로프의 반란 진압에 동참하면서 반혁명은 무마되었다.

이런 가운데 볼셰비키는 소비에트와 민중들 사이에 혁명의 기운이 치솟음을 깨닫고,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라는 슬로건을 다시 내걸며 혁명을 준비했다. 10월 초 레닌은 핀란드 은신처에서 페트로그라드로 돌아와 무장봉기의 준비를 직접 지휘하게 되었다. 준비를 마친 레닌과 볼셰비키들은 10월 25일 페트로그라드의 중심 지역에서 전함 오로라호의 발포와 동시에 반혁명파들을 분쇄했고, 10월 26일 겨울 궁전까지 접수하면서 수도에서의 봉기를 완료했다. 10월 26일 레닌은 즉각 ‘평화에 대한 포고’,를 시작으로 ‘토지에 관한 포고’와 그 외의 포고령을 발포했다. 이후 레닌과 볼셰비키의 사회주의 혁명은 단기간 동안 맞은 것들을 성취해냈다. 초창기 볼셰비키 러시아에선 지주의 모든 토지가 몰수되어 무상으로 농민들에게 토지를 분배했다. 노동자들에게 식량이 우선 공급되었고 8시간 노동제가 확립되었다. 지주 소유의 토지가 사라졌으며, 신분과 호칭이 완전히 폐지되고 모든 러시아 주민이 인민이 되었다. 인종차별과 같은 악법은 폐지되었고 혁명 이후로 인종차별이 웬만큼 사라졌다. 여성은 사회활동에서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행사했다. 사형제가 폐지되었고 심지어 동성결혼이 합법화되었다. 또한, 여성의 보육을 담당해주기 위한 탁아소도 설치되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1918년 3월 독일과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을 맺으면서 제1차 세계대전에서도 빠졌다. 이렇듯 레닌과 볼셰비키의 러시아 혁명은 많은 것들을 성취해냈다. 이와 같은 정책들은 러시아 10월 혁명을 통해서 성취해낸 결과물이었고, 따라서 러시아 혁명은 진보적인 가치를 전적으로 실행시킨 위대한 혁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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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 마르크스의 혁명적 사상 - 새 번역
알렉스 캘리니코스 지음, 이수현 옮김 / 책갈피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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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사상이 짐승같이 살처분 하게 만든 사상이라는 수구 반동 세력들의 궤변은 말 그대로 똘이장군식 뇌피셜일 뿐이다. 그리고 사회주의가 결과적인 평등을 바란다는 것도 마찬가지. 읽어 볼만한 책이다. 그리고 이 책을 비판하는 수꼴들에게 얘기하겠다. 니들은 지하철에 있는 노인 좌석 앉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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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6500만 년 전 공룡은 멸종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룡이 어떻게 해서 멸종했는지는 지금까지도 고생물 학계의 여러 주장이 존재하지만, 분명한 건 공룡은 백악기 말기에 멸종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아프리카 콩고에는 아직도 공룡이 서식한다는 얘기가 있다. 바로 모켈레 므벰베가 그것이다. 필자가 모켈레 므벰베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중국인이 쓴 ‘세계 역사 속의 49가지 미스터리’라는 책을 읽으면서부터였다. 그 책에서는 콩고에서 공룡이 목격되었다고 나왔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게 모켈레 므벰베였다.

 

모켈레 므벰베는 아프리카 밀림에 서식한다는 소문이 있는 용각류(목이 긴 공룡)를 닮은 크립티드로 현지어인 링길라어로는 ‘강의 흐름을 멈추는 것’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할 것은 이 동물을 지칭하는 이름이 여러 개가 있고, 한 부족만이 아닌 여러 부족의 전설 속에 등장하는 존재이며, 부르는 이름은 달라도 모두 같은 동물을 지칭한다는 것이다.

 

모켈레 므벰베의 길이는 대략 5~9m 정도로 추정되며 아프리카 코끼리나 하마만큼 거대하고, 용과 하마를 섞은 것 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알려졌다. 악어처럼 긴 꼬리와 뱀과 비슷할 정도로 가늘고 유연한 긴 목과 작은 머리 그리고 둥글고 두꺼운 몸통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모켈레 므벰베는 쥬라기 시절 서식하던 공룡인 디플로도쿠스나 아파토사우루스를 연상시키는 형체를 가지고 있는 듯하다. 이는 지역 원주민들의 증언을 토대로 추정한 것이다. 필자 또한 네셔널 지오그래픽에서 한 다큐에서 용각류의 사진을 보여주자 현지 원주민들이 모켈레 므벰베라고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무튼 지역 원주민들의 얘기에 따르면 성질이 사나와 카누를 뒤집어 버리고 사람을 습격해 죽이는 경우가 있지만, 초식동물이기에 사람을 잡아먹지는 않는다고 한다. 특이하게도 동굴에 들어가 잠을 자기도 하고 주행성 동물이라 한다. 정말 신기한 것은 모켈레 므벰베가 있는 곳에는 하마가 거의 살지 않는데, 모켈레 므벰베가 그저 하마를 매우 싫어해서 보이는 대로 죽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1970년대 미국인 선교사가 지역 원주민들로부터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콩고의 텔레 호 근처에 사는 윈주민들이 호수에서 흘러나온 강의 상류에서 물고기를 잡다가 주변에 서식하던 모켈레 므벰베가 공격하자 그들끼리 힘을 모아 바리케이드를 만들어 모켈레 므벰베를 죽이는 데 성공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후 마을 사람들이 그 고기를 먹었는데, 그 시체에서 고기를 자른 부위가 다시 살아나 여러 번 잘게 써는 일을 반복하고 나서야 그 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 고기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 고기를 먹은 사람들은 하룻밤 내에 모두 죽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밀림에 사는 아프리카 원주민들은 모켈레 므벰베를 단순한 동물을 넘어 일종의 정령으로 여기며 두려워서 했다고 한다. 재밌는 것은 그 얘기를 들은 선교사 또한 강의 상류에 원주민들이 모켈레 므벰베를 죽이기 위해 만든 바리케이드가 남아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모켈레 므벰베에 대한 문헌상 첫 기록은 1776년 프랑스 선교사 프로이트의 저서에 기록되어 있다. 그의 저서에는 “그건 거대한 괴물임에 틀림이 없는 것 같다. 발자국이 땅에 나 있었는데, 둘레가 90cm나 되는 흔적을 만들었다. 발자국의 형태를 관찰한 후, 보폭을 측정해보니 그 동물의 보폭은 2.1 ~2.4m 정도 되는 것으로 보인다.”라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 대목에서 굉장히 큰 동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후 모켈레 므벰베가 다시 주목받은 것은 1970년대 미국 텍사스에 사는 파충류 학자인 제임스 파월이 근처를 여행하면서 모켈레 므벰베에 대한 전설을 듣고 신비동물학회 회장인 로이 매컬 교수에게 이야기하면서부터였다. 이 얘기를 들은 매컬 교수는 1979년에 모켈레 므벰베를 탐사하기 위한 탐사대를 결성하여 발자국을 발견하는 성과를 얻기도 했으나, 그 이상의 증거물을 확보하지는 못했다.

 

이후 1981년에 2차 조사대가 조직되어 떠나게 되었는데, 멕컬 일행은 간접적 접촉을 하게 되는데, 매컬 일행이 카누를 타고 에페나 마을 근처의 강을 돌고 있을 때, 멀리 떨어져 있던 둑에서 커다란 동물이 갑자기 잠수하면서 파도를 일으켜 매컬의 카누를 치었는데 그걸 본 원주민이 "모켈레- 음베음베!" 라고 소리치는 것을 목격했다. 이에 따라 매컬 교수는 하마가 없고 악어도 그런 파도를 만들 수 없다는 점을 들어 모켈레 므벰베라고 확신 하였지만, 매컬 교수가 직접 목격했던 것이 아니고, 그것을 증명할 어떠한 사진 증거도 남기지 못했기 때문에 2차 조사대도 실패로 끝났다. 그러던 1992년 일본의 다큐멘터리 팀이 모켈레 므벰베로 보이는 생명체를 찍기도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외에 모켈레 므벰베의 실존에 관한 확실한 증거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모켈레 므벰베를 확실하게 입증할 증거가 있지는 않지만, 모켈레 므벰베의 울음을 녹음하기도 했고, 공중에서 사진으로 포착하기도 했으며, 추정되는 발자국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리고 모켈레 므벰베가 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는 또 다른 증거는 그 동물이 발견된 콩고와 같은 아프리카 밀림은 중생대 이후 지금까지 환경 변화가 거의 없었다는 점과 그런 동물들이 살기 좋은 고온다습한 지역이라는 점일 것이다.

 

지난 2012년 미국의 탐험가들이 모켈레 므벰베를 찾기 위해 중앙아프리카의 콩고 밀림으로 들어가기도 했지만, 별다른 얘기가 없는 거로 봐선 모켈레 므벰베를 입증할 확실한 증거를 발견하지는 못한 듯하다. 과연 아프리카 정글에 공룡이 살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건 재미있는 상상이다. 이 얘기를 믿고 안 믿고는 읽는 이의 자유겠지만, 필자의 의견을 덧붙이자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쪽이다. 왜냐하면, 위에서 상술했듯이 아프리카의 밀림지대는 공룡이 살던 중생대 시대의 기후와 환경에서 거의 차이가 없고, 그런 동물들이 살기 적합한 지형이기 때문이다. 무튼 발견된다면 한 번쯤은 보고 싶은 동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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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andante 2020-11-27 19: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항해시대 3이라는 게임에서 중요 발견물중 하나로 나왔었지요.^^

NamGiKim 2020-11-27 19:20   좋아요 0 | URL
아 그런가요? 콩고 공룡이 나오다니 흥미롭군요. 정말 고기가 다시 생성되는지 궁금하네요.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