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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벨 훅스 지음, 이경아 옮김, 권김현영 해제 / 문학동네 / 2017년 3월
평점 :
페미니즘. 내가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알게 된 시점이 언제였을까? 아마 2015년이었던 것 같다. 사실 그 전까지만 해도 페미니즘이라는 단어조차 모르면서 인생을 살아왔다. 그러던 중 과거 중학교 시절 친구와의 통화에서 ‘메갈리아’라는 존재를 알게 됐고, 이에 대해 매우 부정적으로 얘기하는 것을 듣게 됐다. 조금 의문이 들어서 친누나에게 물어보니 누나는 메갈리아에 대해 방어하는 입장이었다. 그 당시 메갈리아가 뭔지 딱히 관심도 없었지만, 2016년부터 페미니즘에 대한 이슈가 점점 한국에서 확산되었던 것은 아직도 기억한다. 그리고 정의당 클로저스 티나 성우 교체 논란 관련 논평 논란으로 상당히 인터넷상에서 시끄러웠던 걸로 기억한다.
사실 페미니즘에 대해 워낙 부정적인 인식이 많다보니 나 또한 2015년이나 2016년에는 상당히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이후에도 마르크스주의를 공부하고, 사회주의 국가의 역사와 문화 사회생활에 대해 꾸준히 공부했지만, 대략 2020년까지도 안티 페미니즘적 사고관에도 상당부분 개인적으로 영향을 많이 받았었다. 소방서에서 대체복무를 하던 2016년에서 2018년 사이 대략 90~100권 가까이 되는 사회과학 및 역사 관련 서적들을 완독하면서, 페미니스트인 누나가 추천해준 남성 페미니스트 토니포터가 쓴 <맨박스(Man Box)>를 읽었지만, 상당히 건성으로 읽어서 내용자체는 기억이 거의 나질 않는 수준이다.
그런 상태로 페미니즘에 관한 공부를 전혀 하지 않은 채, 지금까지 세월을 보내왔다. 군복무 과정에서 영화 ‘기생충’에서 보여준 반지하 빈민 및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을 보면서 스스로 좌파가 되었고, 그 이후에도 좌파 운동을 해왔으며 지금도 하고 있지만 페미니즘에 대해 공부를 깊게 한 적은 없었다. 그래서 페미니즘에 대해 잘은 몰라도 공부를 해보고 싶었다. 페미니즘과 안티 페미니즘 문제에 대해 큰 입장을 낸 적이 없는 나로서는 페미니즘 공부를 시작하기가 뭔가 낯설고 생소했었다. 물론 나에겐 페미니스트인 미국인 절친이 있고, 그 친구의 입장도 이해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올해 사귀게 된 여자친구의 존재는 나에게 페미니즘이라는 의제를 다시 생각해보게 가르쳐준 존재였다. 아마 페미니즘이라는 주제를 가장 많이 생각해보게 만든 존재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스스로 좌파 내지는 사회주의자(혹은 공산주의자)를 자처해온 나지만, 정작 페미니스트가 보기엔 상당히 문제가 많아 보일 수 있다는 생각을 올해 들어 하게 됐다. 여자친구 또한 좌파 성향의 페미니스트이다 보니 마르크스주의적 페미니즘적 접근도 점차 궁금증이 생겼다. 여자친구는 나에게 대표적으로 두 권의 페미니즘 서적을 추천해줬다. 하나는 1960년대 흑표당 활동으로 유명한 운동가이자 학자인 안젤라 데이비스의 <여성, 인종, 계급(Women, Race & Class)>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벨 훅스의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feminism for everybody)>이었다.
여자친구가 한국 사람이 아니다 보니 제목을 영어로 들었는데, 찾아보니 두 권 다 한글 번역본이 있었다. 무튼 “페미니즘에 대해 한번 공부해보자”는 마음으로 책을 펼쳤고,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너무나도 재밌고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무엇보다 저자가 1960년대부터 여성운동을 전개해 온 마르크스주의적 성향의 페미니스트라는 점과 진보적인 의식이 책에 녹여 들어가 있었다는 점은 읽는 이로 하여금 즐거운 독서시간을 가지도록 만들었다. 거기다 내용도 너무나도 쉬워서 말 그대로 책이 술술 읽혔다. 페미니즘에 대한 문제의식 속에서 계급문제, 폭력문제, 임금문제, 복지문제, 지배세력의 문제 그리고 자본주의 문제까지 포괄적으로 다뤘다.
저자 벨 훅스는 마르크스주의적 페미니스트이긴 하나 이 책에서 이른바 ‘혁명’을 주장하거나, ‘제국주의 타도’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자신의 생각하는 진보적인 의제와 페미니즘적 문제의식을 설득력 있게 소화한 것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예를 들어, 벨 훅스는 페미니즘의 흐름과 경향들을 얘기하면서 자유주의 성향의 페미니스트들의 여성 및 유색인종 여성 노동계급의 임금 문제를 등한시 하거나, 잘 얘기하지 않으려 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와 같은 벨 훅스의 지적은 여전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라는 사실을 생각해보았을 때, 타당하고 합리적인 지적이다. 즉, 이런 식으로 벨 훅스는 자신의 논리와 주장을 책에서 설득력 있게 소화했다.
벨 훅스가 다룬 주제 중 아동 폭력 혹은 가정 폭력에 대한 문제의식이 상당히 신선했다. 저자는 이와 같은 문제가 단순히 남성의 폭력 문제로만 비화시킬 수 없음을 지적한다. 그 근거로 저자는 가정 내에서 일어나는 아동 폭력의 경우 가해자가 여성인 경우가 제법 많음을 얘기한다. 즉, 폭력의 악순환적 재생산이다. 가장인 남편이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아내가 자식에게 폭력을 휘두르며, 그 결과 그 폭력을 경험한 아이가 나중에 성인이 돼서 여성에게 폭력을 가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벨 훅스의 분석이 상당히 흥미롭고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이런 맥락에서 벨 훅스는 이와 같은 폭력의 구조를 사회적으로 근절하고 타파하기 위해선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페미니즘이라는 이데올로기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페미니즘이 남녀평등을 지향하는 것을 기본적인 원칙으로 하고 있다고 정의한다. 이 주장은 틀린 말이 아니다. 물론 페미니즘 또한 워낙 사상과 분파가 다양하기에 남녀평등 보다는 남녀갈등을 조장하는 일부 분파가 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힘들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글쓴이가 말하자면, 페미니즘과 마찬가지로 사회주의도 여러 분파가 존재한다. 한국같이 냉전의 최전선에 있고 반공주의적 정서가 지금도 현실성을 가지는 사회에선 사회주의 하면 단순화된 사고로 ‘다 빨갱이야’하는 식의 인식을 보이지만, 이 또한 매우 복잡한 입장과 차이 그리고 갈등을 보인다.(레닌주의, 스탈린주의, 호자주의, 티토주의, 마오주의, 트로츠키주의, 불교사회주의, 수정주의, 교조주의, 주체사상, 아나코 사회주의 등 엄청많다.) 이런 점에서 보았을 때 페미니즘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따라서 페미니스트들 중 일부가 남성혐오적이고 친자본주의적 모습을 보인다고 해서, 페미니즘 전부를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건 문제가 있다. 또한 그들 중 일부가 잘못된 모습을 보인다 해서 건설적인 비판을 할 수는 있지만, 이들이 왜 이런 생각을 하는지도 맥락적으로 파악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동성연애자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저자가 설명하는 것과 같이 여성들의 경우 남성이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성행위와 관계로 자신의 진심으로 원하는 성관계를 가지지 않는 경우가 제법 많았다. 그러나 이런 문제가 단순히 이성과의 성관계에서만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동성간의 성관계에서도 이러한 문제가 생겼음을 저자는 설명한다. 즉 한 쪽의 지배적인 성관계가 옳지 않다는 것을 저자는 설명하고자 했으며, 이를 위해서라도 페미니즘적 사고관이 필요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즉, 여기서의 페미니즘은 서로가 동등한 조건에서 누리는 평등을 의미한다.
워낙 어렵지 않고 술술 읽히는 책이라 정말 재밌게 읽었다. 그리고 페미니즘에 대한 공부도 제법 된 것 같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책이 한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말 그대로 모두를 위해 집필된 책이기 때문에 저자가 마르크스주의 페미니스트로써 가지는 또 다른 문제의식을 자세하게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물론 저자의 경우도 제국주의와 군국주의를 비판한다. 그러나 그것이 현재도 존재하고 있는 미국과 서구 제국주의의 폭력을 크게 분석하지는 않는다. 나는 벨 훅스가 당연히 비판하는 이른바 리버럴 페미니스트들이 과거 미국의 침략전쟁에서 미국의 논조에 일방적으로 흡수되었던 것을 잘 알고 있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당시 미국은 이라크 후세인 정권의 여성들을 해방하기 위해 이라크를 침공했다고 주장했다. 물론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미국의 목적은 이라크의 풍부한 석유였지, 여성인권이 아니었다. 거기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이후 이라크의 여성인권은 훨씬 더 악화됐다. 심지어 이라크의 여성들 중에는 미군에게 강간당하고 학살당한 이들도 많았다. 그러나 그 시기 미국의 리버럴 페미니스트들은 이와 같은 문제점 보다는 미국의 논리에 흡수됐다. 마찬가지로 2011년 리비아 내전 때도 서구의 리버럴 페미니스트들은 카다피를 악마화하는 미국의 전략에 그대로 동조했으며, 2023년 팔레스타인의 해방전쟁에서도 학살자 이스라엘 편을 드는 이상한 페미니스트들도 제법 있었다.
물론 제국주의 옹호현상은 단순히 페미니스트들의 문제만은 절대 아니지만, 당연히 비판해야할 부분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글쓴이는 이와 같은 내용을 저자가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에서 다루기를 내심 기대했다. 아마 저자의 다른 저서들에는 분명히 있을 내용이라 믿고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책을 폄하할 생각은 전혀 없다. 아니 오히려 좋은 책을 집필했다고 칭찬하고 싶다. 페미니즘에 대한 신선한 접근을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상당히 기쁘다. 이 책을 읽도록 추천해준 내 친누나와 여자친구에게 깊은 감사를 표한다. 나중에 시간이 되면 안젤라 데이비스의 저서 <여성, 인종, 계급>도 읽고 싶다.
마지막으로 짧게 얘기하자면, 페미니즘에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많은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다. 이를 통해 건설적인 논쟁이 이어져 남녀갈등이 최소화되고 궁극적으로 철폐되는 사회까지 나아가기를 바라며 서평을 마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