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대전은 인류역사상 최초로 가장 많은 사망자와 부상자가 속출한 대규모 전쟁이었다. 4년간 치러진 이 전쟁으로 1,000만 명이 죽고, 2,000만 명이 부상당했다. 총 3,000만 명의 사상자가 이 전쟁에서 나왔다. 흥미롭게도 러시아는 이 전쟁에서 빠지게 됐는데, 이는 1917년에 발생한 러시아 혁명의 여파 때문이었다. 19세기부터 낙후된 농업 국가였던 러시아는 독일과의 전쟁에서 많은 희생을 치렀다. 전쟁 초기 독일은 슐리펜계획에 따라 대부분 병력을 서부전선에 투입했으나, 예상외로 잘 버틴 프랑스와 영국에 의해 전선은 교착상태에 빠짐으로써, 전쟁은 4년간이나 지속됐다.
러시아군은 수적으로는 우세했으나, 독일군과의 전투에서 적잖은 패전을 거듭했다. 1915년 탄넨베르크 전투에서 독일군은 수적으로 불리했음에도 동부전선에서 유리한 전세를 잡았으며, 1914년에서 1917년까지 러시아군은 총 200만 명이 전사하고 또 다른 200~300만 명이 부상당했다. 총 500만 명의 사상자가 속출한 것이다. 그러나 1917년에 시작된 2월 혁명은 로마노프 왕조를 무너뜨렸고, 러시아는 점차 전쟁을 수행하지 않는 쪽으로 가게 됐다. 특히나 1917년 레닌과 볼셰비키가 주도한 10월 혁명은 인류 최초로 사회주의 국가를 등장시켰고, 소비에트 러시아를 건설한 레닌은 “즉각적인 전쟁 중단!”을 외쳤다.
(아르헨겔스크에 상륙했던 미군 사진, 성조기를 들고서 이렇게 기념 사진도 찍었었다.)
1918년 3월 더 이상 전쟁을 하지 않으려 했던 소비에트 정권은 단독으로 브레스트리토프스크에서 독일과 강화조약을 체결했다.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의 체결은 러시아가 더 이상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렇게 해서 제1차 세계대전을 진행중이던 영국·프랑스·미국·일본 등 제국주의 열강들이 소비에트 러시아를 침공하며 백군을 지원했는데, 이렇게 해서 발발한 것이 바로 적백내전(Russian Civil War)이었다. 적백내전은 사회주의 혁명을 수호하려는 소비에트 러시아와 이에 맞서는 차리즘 복권 세력 간의 전쟁이었다. 볼셰비키 입장에서 보았을 때, 근본적으로 사회주의 혁명을 수호하기 위한 전쟁이었고, 제국주의 열강들의 불법 침공이었다.
1918년에 시작된 내전에서 소비에트 러시아는 백군 세력·체코 군단·영국·미국·프랑스·일본·폴란드·그리스·에스토니아·이탈리아로 구성된 반란군 및 침략군대를 무찔렀고, 1920년에서 1921년 사이에 승기를 잡았으며, 궁극적으로 내전에서 승리를 쟁취했다.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미국은 적백내전에 병력을 보냈다. 그 이유는 바로 미국이 적색공포에 빠졌기 때문이다. 러시아 혁명 이후 우드로 윌슨 대통령은 미국 내에서 이른바 좌파 색출작업을 단행했는데, 그 결과 적잖은 좌파 운동가들이 감옥에 갔으며, 미국 내에서의 반공주의 정서가 극심해졌다. 우드로 윌슨 정부는 1918년 러시아에 미군을 보냈다. 말 그대로 혁명 정부를 전복하기 위해 침략군을 보낸 것이다.
(블라디보스토크에 파견된 간섭군들, 열병식을 하는 이들 중에는 미군들도 있었다.)
윌슨 정부는 총 13,000명 정도의 미군을 러시아에 보냈다. 1918년 9월 러시아 북부에 있는 아르헨겔스크와 극동에 있는 블라디보스토크에 미군 병력이 상륙했으며, 이들의 임무는 러시아 백군을 지원하는 것이었다. 13,000명의 미군 병력 중 5,000명은 아르헨겔스크에 주둔했고, 나머지 8,000명은 극동지역인 블라디보스토크에 주둔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러시아로 파견된 미군들 또한 전투를 치렀다. 1918년 10월 붉은 군대는 미군을 공격하여 적잖은 사상자를 안겨주기도 했는데, 미군들은 아르헨겔스크에서 전투에 투입됐던 병력의 10% 정도를 잃었다. 총 110명의 미군이 전사했고, 30명이 실종되었으며, 또 다른 70명은 당시 유행하던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했다. 2021년 프랑스에서 나온 르몽드 기사에 따르면, 부상당한 미군은 눈보라치는 숲속에서 구조를 기다리다 얼어 죽었고, “그해 가을과 겨울 미군은 이미 끝난 전쟁에서 미국 정부에 의해 잘못된 길로 들어섰고 장교들에게 속고 동맹국에 혹사당했으며, 적과 싸우기에는 태부족이었다.”
(아르헨겔스크에 배치된 미군 사진)
아르헨겔스크에 배치된 미군 대다수는 흥미롭게도 겨울 날씨에 잘 버티는 미시간 출신의 병사들이 많았다고 한다. 실제로 미군 지휘관들은 이들이 아르헨겔스크의 추운 겨울을 잘 버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들은 배치되기 전 영국에서 훈련을 받았는데, 당시 이들이 받았던 훈련 중에는 영하 기온에서 버티는 방법도 있었으며, 이걸 교육한 사람은 남극을 탐험한 경험이 있는 베테랑 탐험가 에르네스트 섀클턴(Ernest Shackleton)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 또한, 아르헨겔스크에서의 군생활은 매우 힘든 일이었다. 이들 중 하나였던 헨켈맨과 3명의 병사는 연대장에게 최후통첩을 썼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1919년 3월 15일까지 전선에서 철수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러시아 적군들과 싸우지 않겠다는 것을 분명히 밝혀둔다.”
(미국에서 만든 시베리아 파병 미군 병사 관련 프로파간다, 이 프로파간다는 시베리아에 있는 미군들 지원하기 위해 전쟁우표를 살 것을 요청하고 있다.)
소비에트의 붉은 군대는 1919년 1월에 아르헨겔스크에 있는 미군을 몰아내기 위한 공세를 게시했다. 7일간의 공세 기간 동안 미군 병력은 8 대 1이라는 수적 열세에 처해 있었고, 이 미군들은 바가 강을 포함하여 지키고 있던 여러 곳에서 북쪽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볼셰비키의 점진적인 공세는 5월에도 지속됐고, 미군은 1919년 6월 15일 아르헨겔스크에서 철수를 마쳤다. 아르헨겔스크에서 9개월간 주둔했던 미군은 총 235명이 전사했다. 그러나 윌슨은 시베리아 지역에서 미군을 주둔하며 백군을 지원하고자 했다.
2019년 스미소니언 매거진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당시 시베리아에 주둔 중이던 콜차크 제독의 백군들은 점령한 지역에서 백색테러를 했다고 한다. 대량 처형이나 고문 등이 대표적이었으며, 기사에 따르면 “코사크 장군 출신인 그리고리 세메뇨프(Grigori Semenov)나 이반 칼미노프(Ivan Kalmikov)가 지휘하는 백군 병사들은 일본군의 비호하에 점령한 지역과 마을을 배회하며 사람들을 죽이고 약탈했다.” 일각에서는 당시 미군들이 백군 세력을 도와 볼셰비키를 지지하는 주민들을 학살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1920년 1월 우드로 윌슨 정부가 시베리아에서의 철군을 결정하면서, 미군은 4월 1일에 철수를 완료했다. 시베리아에 있던 미군 병력은 전사자 189명을 남긴 채 철수했다.
(현재 러시아 아르헨겔스크에 있는 간섭군대 관련 묘비)
적백내전기 미군 전사자 숫자는 344명에서 424명 정도로 추정되며, 부상자도 최소 300명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적백내전기 미군의 파병은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적백내전은 볼셰비키 세력의 승리로 끝났기 때문이다. 1921년 내전에서 승리한 볼셰비키는 1922년에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USSR) 즉, 소련(Soviet Union)이라는 나라를 탄생시켰다. 적백내전 또한 제1차 세계대전 만큼이나 참혹했다. 대략 1,000~1,200만 명이나 되는 인명이 사망했는데, 1921년에서 1922년에 강타한 기근으로 최소 500만 명이 아사하는 일이 벌어졌다. 군인 전사자도 100만 명을 넘었다. 이러한 숫자를 보더라도 제1차 세계대전 못지 않게 참혹한 전쟁이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놀랍게도 이 내전의 존재를 아는 유럽인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은 것 같다. 어쩌면 서양 현대사마저도 루소포비아적 시각에서 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참고문헌
단행본
쉴라피츠패트릭, 고광열 옮김, 『러시아 혁명 1917-1938』, 사계절, 2017.
R.B 에스프레이, 편집부 옮김, 『세계게릴라전사 1』, 일월서각, 1993.
기사
마이클 M.필립, “볼셰비키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미군들”, 르몽드, 2021.07.30.,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14830>.
Blake Stilwell, “The United States' Invasion of Russia Was a Yearlong Freezing Hell for the Troops”, Military.com, 2022.06.28.,
<https://www.military.com/history/united-states-invasion-of-russia-was-yearlong-freezing-hell-troops.html>.
Erick Trickey, “The Forgotten Story of the American Troops Who Got Caught Up in the Russian Civil War - Even after the armistice was signed ending World War I, the doughboys clashed with Russian forces 100 years ago”, Smithsonian Magazine, 2019.02.12., <https://www.smithsonianmag.com/history/forgotten-doughboys-who-died-fighting-russian-civil-war-180971470/>.
인터넷 사이트
https://en.wikipedia.org/wiki/Allied_intervention_in_the_Russian_Civil_War
http://contents.history.go.kr/mobile/kc/view.do?levelId=kc_i401650&code=kc_age_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