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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나라 이웃나라 17 : 동남아시아 - 시즌 2 지역.주제편 ㅣ 먼나라 이웃나라 17
이원복 글.그림 / 김영사 / 2018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먼나라 이웃나라 동남아시아편 감상평
어린시절 역사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시킨 책이 있다면, 만화작가 이원복의 먼나라 이웃나라를 뺄 수가 없다. 초등학교ㆍ중학교 시절 먼나라 이웃나라에 대한 의문점 하나가 있었다. 왜 이 책은 주로 서구유럽 위주의 나라만 다뤘던걸까? 나는 이 점이 항상 의문이었다.
그러나 미국편 이후 중국편과 발칸반도 편, 동남아시아, 터키, 오세아니아, 러시아 편이 나왔다는 얘기를 듣고, 늦게서야 작가가 다양한 국가를 다룬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대학원 생활이 바쁘기는 하지만, 오랜만에 이원복의 먼나라 이웃나라가 읽고 싶었다. 그래서 집 근처의 도서관에서 동남아시아편과 러시아편을 대출했다.
초등학교 시절이나 중학교 시절에는 몰랐지만, 이원복씨는 상당히 보수우파적 성향을 가진 인물이다. 대학생 시절 우연히 이원복이 조선일보에 게재한 만화를 인터넷으로 본 적이 있었다. 그때 나의 기분은 ˝이원복 실망이다.˝였다. 그가 우리나라의 친일청산 문제나 과거사 문제를 다루는 태도가 뉴라이트랑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생각은 뒤로하고 이번에 동남아시아편을 읽었다. 작가는 미얀마ㆍ태국ㆍ라오스ㆍ베트남ㆍ캄보디아ㆍ말레이시아ㆍ인도네시아ㆍ필리핀ㆍ싱가폴ㆍ브루나이ㆍ동티모르 순으로 동남아시아의 역사와 문화를 설명한다. 이원복 특성상 서문에서 밝히는 소위 대한민국 국뽕적 감상은 여전히 나이브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지만, 그래도 제법 잘 읽혔다. 내가 잘 모르던 동남아시아의 역사와 문화를 만화를 통해 간략하게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법 재미도 있다.
하지만 만화의 구성과 내용에도 적잖은 문제들이 발생한다. 이원복 작가는 너무 지나치게 서구식 민주주의를 절대선으로서 맹신하는 경향이 있다. 이원복 스스로가 인정하듯이,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빈곤은 엄밀히 따지자면 서구 제국주의자들의 식민지 지배다. 이원복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일제의 식민지배가 조선을 수탈한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각국의 빈곤을 식민지 지배 이후에는 단순히 공산독재나 군부독재 그리고 왕정체제에 돌리기 바쁘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달러 제국주의가 그 나라의 경제와 사회구조를 어떤식으로 잠식해 나가는지에 대한 비판적 의식을 만화에서 찾아볼 수 없다.
그러한 이원복 작가의 맹신적 오류는 특히나 필리핀 역사를 대하는 태도에서 나타난다. 이원복은 미국의 필리핀 지배가 얼마나 악독하고 잔혹했는지 말 그대로 외면한다. 1901년 미국이 아기날도 정부를 짓밟고, 식민지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필리핀인들을 짐승죽이듯이 학살한 역사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미국의 필리핀 식민지화 과정에서 대략 100만 명의 필리핀인이 학살당한 것은 완전히 거세당해 있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필리핀에 다시 미군이 들어오자, 필리핀 민중이 미군을 다시 환영했다는 황당무계한 주장은 실소를 금할수가 없다. 맥아더 정부가 친일한 반역자들을 기반으로 필리핀에 친미정부를 세우고, 후크발라합을 포함한 공산주의 게릴라 세력을 잔혹하게 소탕한 역사는 당연히 거세당해있다.
인도네시아 부분도 비슷하다. 인도네시아 독립 영웅 수카르노에 대해, 독재로 인기를 잃었다고 이원복은 주장한다. 그러나 수카르노가 나쁜놈으로 묘사된건 미국의 CIA가 1955년 반둥회의를 통해 이른바 제3세계 진영의 축으로서, 반미주의 노선을 걸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수카르노가 친미 독재자 수하르토보다 정당의 다양성을 인정했지만, 이런 사실에 대해 이원복은 의도적으로 무시한다.
1965년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수하르토가 독재정치를 펼치고, 반대파를 억압하고 학살한 부분에 대해 이원복은 마지못해 언급하지만, 그 정부가 미국의 대대적인 지원을 받은 정부라는 건 언급조차 안한다. 결국 독재를 해서 물러났지만, 그 독재정부를 미국이 무슨 목적을 가지고 원조 및 지원했는지는 언급을 안한 것이다.
이원복 교수의 정치ㆍ경제 논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간단하게 정리해볼 수 있다.
1. 사회주의 체제는 경제적으로 비효율적이다.
2.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항상 대안이다.
3. 그 자본주의라는 틀 안에서 빈부의 문제 및 정치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4. 서구의 민주주의가 최선이다.
5. 서구식 자유선거를 안하면 다 독재로 규정될 수 있다.
이러한 틀에 맞춰보려고 하니, 당연히 만화에서도 오류가 생긴다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이원복 교수의 장점도 있다. 19세기 서구 제국주의에 대해서 만큼우 비판적으로 보고, 이들의 억압과 착취 그리고 인권유린 그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또한, 미국 주류사회가 흑역사로 인식하는 베트남 전쟁에 대해서도 올바르게 인식하고 있다. 최근들어 인터넷 상에서 미국의 꼭두각시 국가 남베트남을 찬양하는 넷 인플루언서들이 창궐하고 있다. 그에 반해 이원복은 베트남을 다루는 편에서 베트남 전쟁을 올바르게 인식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원복 작가는 베트남 전쟁의 근본적 선상은 프랑스의 식민지 지배에 있음을 얘기하며, 1954년 디엔비엔푸 전투를 통해,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끈 호치민에게 정당성이 있음을 강조한다. 무엇보다 제네바 협정에서 약속한 총선을 파기한 미국의 행동을 옹호하지는 않는다. 또한 남베트남의 친미 독재자 응오딘지엠이 오직 반공주의만을 외치며, 토지개혁을 망친 반면, 호치민이 북베트남에서 토지개혁을 실시하여 대중의 지지를 얻었다는 점도 분명히 한다.
이런 이원복 작가의 시각에 대해, 나무위키는 이상한 논리로 비난하지만, 이원복은 그저 서방의 주류적 시각에서 얘기한 것 밖에 없다. 그 외에도 미얀마나 말레이시아, 싱가폴, 브루나이, 동티모르 등은 내가 많이 모르는 역사를 배우는 느낌이었다. 이원복 작가 특유의 전달력은 정말 강력하다. 이원복만이 가지는 먼나라 이웃나라의 큰 장점이랄까.
오랜만에 이원복 작가의 먼나라 이웃나라를 읽었다. 비록 오류는 많지만, 세계사 지식을 쌓는데 이 책 보다 읽히기 쉬운 책은 없다고 본다. 비록 이원복이 반공주의자여도, 이런 점에선 대단하다고 본다. 조만간 먼나라 이웃나라 러시아편도 읽을 것이다. 다음에는 러시아편에 대한 리뷰를 올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