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콘퀘스트가 이용한 파시스트 자료

 

비탄의 수확에서 결정적인 부분인 12장의 제목은 기근이 창궐하다이다. 이 부분에는 인상적인 237개의 목록을 이루는 참고자료를 포함한다. 더 자세히 살펴보면, 이러한 참고자료의 반 이상이 극우 우끄라이나 망명자들에게서 나온 것이다. 우끄라이나 파시스트 도서인 끄레믈린의 음흉한 행위들은 쉰다섯 번이나 인용되었다! 콘퀘스트가 우끄라이나인 나찌 협력자들과 미국 비밀 정보국에서 제공한 역사서를 이용한 것은 이상할 것이 없다.

 

같은 장에서 콘퀘스트는, 스테판 반데라의 파시스트 조직의 청년운동에 의해 1953년 출판된, 올랙사 우로페이(Olexa Woropay)가 쓴 아홉 번째 원(The Ninth Circle)의 내용을 열여덟 번이나 인용한다. 저자는 1930년대 동안의 자신의 구체적인 일대기를 보여주나, 그가 나찌 점령 기간 동안 뭘 했는지는 언급하지 않는다! 그가 나찌에 참여한 과거가 가까스로 덮였다. 1948년에, 그는 많은 우끄라이나인 파시스트가 도피처로 삼은 뮌스터(Muenster)에서 다시 자신의 전기를 썼다. 그가 1932년에서 1933년의 기근대학살에 대해 우크라이나인들과 대담했던 곳이 바로 그곳이다. 어떠한 목격자(그 실체가 역자) 확인되지 않았기에, 과학적인 관점에서 그 책은 가치가 없다. 그가 전쟁 동안 무엇을 했는지 말하지 않은 것에 비추어 보아, ‘스딸린에 대한 진실을 폭로한이들은 아마도 도망간 우끄라이나인 나찌 협력자들이었을 것이다.37)

 

허스트의 1930년대 친나찌 출판물을 위해 글을 썼고, 후에 반아메리카 활동에 대한 냉전 맥카시주의 의회 위원회에 협력했던 빌(Beal)은 다섯 번 인용되었다.

 

반공주의 망명자인 크라브첸코(Kravchenko)는 출처 제공자로 열 번 나왔다. 또 다른 러시아 망명자인 레프 코펠레프(Lev Kopelev)는 다섯 번 나왔다.

 

포함된 과학적참고자료 중에는 바실리 그로스맨(Vasily Grossman)의 소설이 포함되어 있는데, 콘퀘스트는 그것을 열다섯 번이나 참고문헌으로 이용했다!

 

그 다음에, 콘퀘스트는 하버드의 망명자 대담 사업(Refugee Interview Project)에 있는 회견 내용을 인용했는데, 그 사업은 CIA가 재정 지원을 하였다. 그는 이왈드 아멘데가 쓴 1935년의 나찌 서적뿐만 아니라 맥카시 시대의 공산주의 침략에 대한 국회 위원회의 보고서를 인용했다. 콘퀘스트는 또한 유진 라이온과 윌리엄 챔벌린의 주장도 다섯 번 언급했데, 이 두 사람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 CIA의 중앙 유럽 라디오 네트워크 조직인, 자유 라디오 이사회의 임원들이었다.

 

244쪽에서 콘퀘스트는 이렇게 썼다. ‘키예프에서 남쪽으로 20마일 떨어진 마을에서 한 미국인이 뭔가를 발견했다.... 그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너절한 무엇인가를 요리하고 있었다.’ 참고문헌은 1933228일자 New York Evening Journal이 라고 되어 있다. 사실 그것은, 1935년에 발행된 허스트 신문에 발표한, 토마스 워커의 기사였다! 콘퀘스트는 이 기사를 1933년의 기근과 맞물리게 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신문의 날짜를 앞당겼다. 콘퀘스트는 미국인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그는 어떤 누군가가, 토마스 워커가 한번도 우끄라이나에 들어간 적 없는 사기꾼이었다는 점을, 다시 생각해 낼까봐 염려했다. 콘퀘스트는 위조자였다.

 

거짓 풍문을 기록한 망명자들이 쓴 서적의 사용을 정당화하기 위해 콘퀘스트는 그래서 진실은 오직 소문에서 걸러질 수 있다.’ 그리고 비록 절대 옳은 것은 아니지만, 가장 좋은 출처는 기본적으로 풍문이다.’라고 주장하였다.38) 이 진술은 파시스트 비방, 잘못된 정보와 거짓에 학문적인 신뢰성을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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