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9714일 무장한 시민 군중이 프랑스 파리에 있던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했다.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고 며칠이지나 왕은 파리를 방문했고, 혁명 측의 요구를 수용했다. 왕 스스로가 왕권의 실추를 행동으로 보여줬다. 파리의 소식은 프랑스 전역으로 퍼졌고, 지방 도시에서는 주로 부르주아로 구성된 시정 상설 위원회와 국민 방위대가 조직되어 행정과 치안을 맡았으며, 그해 8월에는 이른바 인권선언문을 채택되어 봉건제도를 폐기했다. 이것이 바로 프랑스 혁명(French Revolution)이다.

 

1791년에 이르러 왕권의 권력은 완전히 붕괴했고, 이는 유럽 전역에 공포를 안겨줬다. 영국의 에드먼드 버크는 프랑스 혁명은 미친 짓이다.”라고 했을 정도로 경멸을 드러냈고, 이는 다른 유럽 국가들도 마찬가지였다. 1792년 혁명의 불길이 확산되는 것을 두려워한 프로이센은 프랑스와 전쟁을 치르게 됐고, 영국이나 러시아 제국 그리고 포르투갈 왕국과 네덜란드가 프로이센을 지원했다. 이것이 바로 프랑스 혁명전쟁이다. 유럽이 프랑스를 두려워 한 것은 왕권의 힘이 약해지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며, 특히나 루이 16세의 단두대 처형은 그들에게 충격 그 자체였다.


프랑스는 혁명을 수호하기 위한 전쟁을 치렀다. 전쟁 초기 프로이센군의 전진은 거셌지만, 프랑스군은 발미 전투에서 정신적 그리고 정치적 승리를 거두었다. 전투에서 프로이센군 200명이 전사하고 프랑스군이 300명 전사했는데, 프로이센군의 진격을 1차적으로 막아냈다. 이를 통해 프랑스군은 혁명 열기를 이끌어 낼 수 있었고, 프랑스 시민과 군대는 보다 더 단결했다. 더 나아가 국내에서는 로베스피에르를 포함한 강경파들이 정치적으로 권력을 잡게 됐는데, 이들은 혁명 프랑스를 수호하기 위해 1793823일 징집령을 선포했다. 이에 따라 혁명군의 규모는 1794년에 대략 100만 명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이 전쟁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됐고, 프랑스는 대략 10년 동안 이 혁명전쟁을 치러야 했다. 플랑드르 전역과 스페인 전역 그리고 네덜란드 점령 및 제1차 이탈리아 원정으로 이어졌으며, 그 이후 이집트와 시리아 원정에 나섰다. 또한 제2차 이탈리아 전쟁을 치렀으며, 이 전쟁은 1801년까지 전개됐다. 17983월 프랑스는 영국을 굴복시키기 위해 350척의 함선과 54,000명의 병사를 싣고 이집트 원정에 나섰다. 여기서 큰 활약을 떨쳤던 인물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그 유명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이집트 원정에서 터키 제국과 러시아에게도 큰 자극을 주었고, 영국과 더불어 이들을 상대했다. 당시 프랑스 혁명 전쟁은 네덜란드 방면과 독일의 라인강 방면 그리고 이탈리아의 나폴리 방면이었는데, 동맹국의 총공격 앞에 크게 후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프랑스군은 네덜란드에 상륙하려는 영국군 3만 명을 격퇴시켰으며, 179910월 러시아의 반불 동맹 탈퇴 후에 연합세력의 공격을 국경에서 막아냈다. 이집트 원정에서 본국 귀환을 선택한 나폴레옹은 이른바 쿠데타를 일으켰고, 이것이 바로 브뤼메르 18일이다.

 

브뤼메르 18일을 통해 권력을 잡은 나폴레옹은 1800년에 제2차 이탈리아 전쟁을 지휘하기 위해 출정했고, 알프스를 넘어 밀라노에 입성했다. 마렝고 전투에서 오스트리아군을 무찌르고, 12월에는 독일 라인 방면에서 오스트리아군을 무찔렀다. 마렝고 전투에서 오스트리아측은 9,000명의 사상자를 낸 반면, 나폴레옹은 7,000명의 사상자를 냈다. 1801년 결국 오스트리아는 뤼네빌 조약에 응했고, 이에 따라서 프랑스와의 전쟁을 지속하는 국가는 영국만 남게 됐다. 영국은 오스만 제국과 협력하여 이집트에 있던 프랑스 원정군을 항복시켰지만, 결과적으로 프랑스에게 고립 당했다. 이후 나폴레옹은 1802년 종신 통령을 선포했고, 1804년에는 황제가 되었다. 이것은 결국 나폴레옹의 정복전쟁으로 이어졌다.


사실 프랑스의 정복 전쟁은 어떤 면에선 1796년 제1차 이탈리아 원정을 통해 시작되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이 시기의 전쟁은 엄밀히 따져서 프랑스 혁명 전쟁의 일부였고, 나폴레옹 개인의 정복욕 때문은 아니었다. 그리고 나폴레옹이 종신 통령을 선포하며 황제의 길을 걸었던 것은 1802년으로 그 전까지는 엄밀히 따지고 보면 혁명을 방어하기 위한 성향이 강했다. 나폴레옹이 정복욕을 드러내기 시작했던 것은 자신이 황제로 등극한 이후였다. 특히 그가 황제를 자칭하면서, 영토 팽창을 가속화했는데 이런 점에서 프랑스의 전쟁은 혁명전쟁에서 나폴레옹 개인이 추구한 정복전쟁로 성질이 바뀌었다. 따라서 나는 프랑스의 혁명전쟁은 나폴레옹이 종신 통령 선포와 황제 등극 이전까지를 혁명전쟁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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