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의 학살을 요약한 것입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이 저지른 학살은 그 규모나 범위 면에서 상상을 초월했다. 워싱턴DC에 가면, 베트남 전쟁에서 전사한 58,000명의 미군 전사자 이름이 적힌 비석을 볼 수가 있지만, 당시 베트남 민중이 치러야 했던 희생에 비하면 새 발의 피 수준이었다. 1995년 베트남측의 추정에 따르면 이 전쟁에서 총 500만이 죽었는데, 100만 명이 군인이고 400만 명이 민간인이었다. 확실하게 조사된 것은 없지만, 이 전쟁을 계획했던 로버트 맥나마라(Robert McNamara)는 380만 명의 베트남인이 죽었다고 주장했으며, 베트남 전쟁의 미국의 명백한 실수 및 과오였음을 인정했다. 대다수의 추정으로는 대략 남북베트남 민간인이 200만 명이 죽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움직이는 것은 모든 쏴죽여라, 닉 터스가 쓴 저서다.)
이 전쟁에서 최소 200만에서 500만에 달하는 베트남인이 희생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러한 학살극의 중심에는 바로 미국이 있었다. 특히나 B-52를 포함한 최신식 무기를 동원한 무차별 폭격과 고엽제 살포 그리고 수색과 섬멸 작전에서의 민간인 사살 등으로 상당히 많은 민간인이 희생되었다. 특히나 베트콩만 하더라도 농민군에 가까운 존재였기에 미국은 사실상 민간인과 군인이 구분되지 않는 상황에서 전쟁을 치렀다. 미국의 민간인 학살의 대표적인 예시로는 1970년 닉슨의 캄보디아 침공이 있는데, 이 캄보디아에서만 50만에서 80만의 민간인이 미국의 융단폭격과 고엽제 투하로 학살당했다.
(베트남 미국의 홀로코스트, 영화 지옥의 묵시록에서 주연으로 출연한 마틴 쉰이 제작한 다큐멘터리다.)
미국은 수년간 북베트남과 호치민루트, 베트남 중부고원지대를 포함한 남베트남 전역을 무차별 폭격했는데, 통계의 출처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중부고원지대에서의 폭격으로 산악부족들을 포함하여 최소 20만 명 이상의 민간인이 죽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확한 통계라고 하기는 힘들지만 켄 번즈(Ken Burns)가 제작한 PBS 베트남 전쟁 시리즈 5화를 보면, 흑인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이 연설을 하는 장면에선 반전 시위대의 피켓에 “베트남 어린이 100만 명 부상 25만 명 사망”이라고 나와있다. 북베트남과 남베트남에서의 대량 폭격에 의한 학살로 죽은 민간인은 최소 200만이 넘는다 할 수 있으며, 바로 베트남 전쟁의 잔학성을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미군의 융단폭격, 미국의 폭격은 무수히 많은 민간인 사상자를 만들었다.)
미군 폭격에 의한 학살로 최소 100만에서 200만 그리고 300만에 달하는 민간인이 죽었다고 할 수 있는데, 고엽제에 의한 학살도 만만치 않았다. 미국은 케네디 행정부때부터 디엠정부의 베트콩 소탕작전을 지원하면서 네이팜탄과 고엽제 살포를 실행했다. 1961년부터 1971년까지 대략 10년간 남베트남과 호치민 루트, 라오스, 캄보디아에 대량의 고엽제가 투하되었다. 총 7300만 리터의 맹독성 고엽제가 투하됐다. 주로 에이전트 오렌지(Agent Orange)라는 고엽제였는데, 베트남 인민 1인당 2.7kg 달하는 다이옥신을 퍼부은 셈이다. 고엽제 투하로 최소 50만 명이 사망했으며, 400만 명이 넘는 베트남 민간인이 극심한 피해를 봤다.
(베트남 밀림에 살포되고 있는 고엽제, 미국은 남베트남 전역을 고엽제로 색칠하여 무수히 많은 민간인에게 피해를 줬다.)
미국의 학살은 군사작전 과정에서도 벌어졌다. 일각에서는 1968년에 윌리엄 캘리 중위(William Calley)가 저지른 미라이 학살(My Lai Massacre)이 미군 개인의 일탈이나 유일한 학살이라 주장하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미라이 학살은 엄밀히 4시간 동안 꽝응아이성에 있는 손미마을과 미케 마을에서 30명의 미군에 의해 벌어진 학살이었고, 군에 의애 철저히 베트콩 사살로 은폐 당했던 사건이다. 미라이 학살로 총 504명의 민간인이 학살당했는데, 이중 1/10은 영유아였고, 대다수는 노인, 여자, 아이들이었다. 또한 적잖은 여성들이 학살 전에 미군에게 강간당했다. 이런 학살은 사실 브루스 커밍스가 한국전쟁 책 관련 인터뷰에서 주장했듯이, 베트남 전역에서 발생한 일이었다. 심지어 당시 주월미군 총사령관이던 윌리엄 웨스트모어랜드(William Westmoreland) 또한 “민간인도 베트콩으로 간주하는 전략”을 추구했었다.
(1968년 미라이 학살 관련 사진, 미군은 미라이에서 총 504명의 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했다. 이런 학살은 베트남 전쟁 당시 전반적으로 일어난 일이었다.)
미국의 언론인이자 역사학자인 닉 터스(Nick Turse)는 2013년에 출간한 자신의 책 『Kill Anything That Moves: The Real American War in Vietnam』이라는 책에서 미라이 학살 사건 외에도 최소 100건 혹은 그 이상의 학살 사건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친미성향의 역사학자이자 한때 미국의 베트남 전쟁 참전을 지지했던 권터 루이(Guenter Lewy)는 자신의 책 『America in Vietnam』에서 미군의 바디 카운트(Body Count)로 최소 22만 명의 민간인이 학살당한 것으로 추측했다. 또한 미군의 수색 작전 중 하나인 초고속 작전(Operation Speedy Express)에서는 15,000명의 베트콩을 사살한 것으로 간주되었는데, 이 중 7,000명에서 10,000명 가까이가 민간인이었다. 쉽게 말해 이런 민간인 살상은 미군이 동원한 헬기 사격과 폭격, 자유사격지대에서의 기관총 및 소총사격에 의해 발생했다.
지금까지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의 민간인 학살에 대해 언급했다. 많은 사람들이 다소 외면하는 사실인데, 엄밀히 따졌을 때 미국이 전쟁에서 적으로 규정한 베트콩은 1960년 대다수의 민간인들이 응오딘지엠 정권을 타도하기 위해 결성한 단체였다. 로빈 윌리엄스(Robin Williams)가 주연을 맡은 영화 <굿모닝 베트남(Good Morning Vietnam)>에서는 루이스 암스트롱(Louis Armstrong)의 ‘What a Wonderful World’가 나오며, 미국이 수렁에 빠진 모습을 보여준다. 이 장면 중 하나에는 미군 혹은 남베트남군으로 추정되는 군인이 베트콩으로 추정되는 민간인을 체포하여 재판도 없이 총살하는 것으로 나온다. 실제로 남베트남 내부에서 이러한 일은 자주 일어났었다. 그 외에도 고문 및 강제구금과 같은 여러 범죄행위들이 일어났다. 이것은 미국과 그의 하수인인 남베트남 정부에 의해 일어났다. 따라서 베트남 전쟁은 미국의 일방적인 학살극이라 봐야 할 것이다.
참고자료
『미국대외정책론』, 촘스키, 임채정, 일월서각, 1985
『America in Vietnam』, Guenter Lewy, Oxford University Press, 1978
『Kill Anything That Moves: The Real American War in Vietnam』, Nick Turse, Picador, 2013
『Vietnam: American Holocaust(2008, Documentary)』, Martin Sheen, Linux Beach Productions, 2008
『The Vietnam War』, Ken Burns, PBS,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