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쓴 베트남의 역사 이산의 책 21
유인선 지음 / 이산 / 2002년 3월
평점 :
절판


공익근무 시절 베트남 전쟁과 호치민 주석의 생애에 심취했던 필자는 주로 베트남 전쟁과 호치민 주석을 중심으로 독서를 했었다. 당시 필자가 알고 있던 베트남의 역사는 주로 베트남 전쟁(The Vietnam War)과 호치민(Ho Chi Minh) 주석에 관한 것이었고, 따라서 전반적인 베트남 역사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다. 내년 1월에 베트남에 놀러 가기 전 베트남 역사를 공부해야겠다 생각한 필자는 국내의 베트남 역사학자 유인선 명예교수가 쓴 대중 서적 새로 쓴 베트남의 역사를 읽게 되었다.

 

흔히들 베트남의 역사는 한국의 역사와 많이 유사하다고 한다. 이 말은 분명 틀린 말이 아니다. 외세의 침입에 맞서 중국에 저항했던 것과 19세기와 20세기의 베트남 역사를 보았을 때 우리의 역사와 유사한 점이 분명 있다. 제국주의 시대에 시작된 서구 세력들의 간섭, 열강들의 식민지 지배, 이후 남북으로 분단이 되었던 역사를 보면 그러하다. 또한 베트남도 유교 문화가 자리 잡은 것을 보면 상당히 유사한 점도 많은 듯하다. 그러나 베트남은 우리의 역사와 같은 점도 있지만 다른 점도 많다.

 

우선 베트남 역사의 시작부터 얘기하겠다. 베트남의 역사는 BC 2000년경 우리 역사의 고조선과 유사한 반랑(Văn Lang)이 건국되면서부터 시작한다. 워낙 고대 시대에 존재했던 국가다 보니 우리의 단군신화처럼 건국설화가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의 고조선 역사처럼 확실하게 시대를 입증할 근거 자료가 풍푸하지는 못하다. 그저 기원전 7세기 청동기 문화를 꽃피웠다는 동 썬 문화와 이를 입증할 수 있는 청동기나 토기들이 푸토성이나 타인호아 지방에서 발견된 것 정도가 대부분이다.

 

반랑 왕국 이후 중국 촉나라의 왕자로 전해지는 툭판이 반랑을 멸망시킨 뒤, BC 207년 경 남월(Nam Viet)이라는 나라가 등장했는데, 남월은 베트남판 위만조선으로 초한전쟁시기 중국 군웅 무제 조타가 중국 광둥 성 지역을 거점 삼아 건국하였다. 그러나 남월은 BC 111년부터 한나라의 지배를 받게 되며 대략 1000년 이상 중국의 지배를 받게 되는데, 1000년이라는 기간 동안 베트남인들은 중국에 맞서 끝없이 저항해왔다. 대표적으로 쫑 자매(Trung Sisters)라 불리는 쫑짝(Trung Trac)과 쫑니(Trung Nhi) 자매들의 대한투쟁이 그러했다. 코끼리를 타고 군대를 지휘하는 그림으로 묘사된 그들은 한때 현 북부베트남의 일정지역을 통치하기도 했으나 한나라 군대의 진압으로 목숨을 잃게 되었다. 베트남에서 내려오는 전설에 따르면 쫑 자매는 전투에서 패배한 뒤에 핫 강(Sông Hát)에서 투신해 생을 마감했다는 얘기도 있다.

 

그 이후에도 중국의 통치는 계속되서 베트남은 중국의 문화를 흡수하기도 했지만, 무조건적으로 수용한 것은 아니었다. 또한 베트남에 있어서 유고의 국가적인 수용 및 보급은 대략 1800년대에 있던 19세기 응우옌 왕조(Nguyễn Dynasty)에 와서 이루어졌다. 이 부분에 있어서 베트남이 우리보다 유교 수용이 더 늦었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베트남의 역사를 저항의 역사로만 아는데, 그저 베트남이 외세의 저항만 했던 것은 아니다. 베트남 역사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지만, 베트남의 역사는 경쟁국 참파(Champa)와 경쟁하고 그곳을 정복해 나가는 역사이기도 하다. 이를 정리하자면 베트남 역사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북부와 참파 문명과 크메르 제국(Khmer Empire)이 존재했던 베트남 남부는 문화와 역사 그리고 인종적으로 엄연한 구분 점이 있고, 그런 구분은 현재 베트남에도 적용이 가능할 정도다. 우리의 역사에서 정복의 역사는 대마도 정벌과 나선 정벌로 끝이 난다면 베트남은 최소 17, 18세기까지 남부로 향하는 정복의 역사가 있으며 남북이 문화적, 역사적, 인종적으로 확연히 구분이 된다.

 

베트남의 경우 우리와 달리 대략 54개의 소수민족이 존재한다. 물론 여기서 가장 세력이 강한건 베트남 인구의 87%를 담당하고 있는 킨족(비엣족, Kinh)이다. 다수의 종족인 킨족 이외에 소수민족으로는 캄보디아 쪽인 크메르족(Khmer)과 참파왕국의 참족(Chams) 그리고 중국인 화교가 평지에 살고 있고, 북부베트남 지역에도 눙족(Nung)을 비롯하여 여러 중국계 소수민족들이 존재한다. 그 외에도 라오스 쪽에 가까운 라오족(Lao)과 몽족(Hmong) 그리고 베트남 중부산악지대에 거주하는 에데족(Ede)과 자라이족(Jarai) 바나족(Bahnar)으로 대표되는 산지민(Montagnard)들이 존재한다. 즉 베트남은 다민족 국가로서 우리와 달리 소수민족들이 동화가 되면서 자신들만의 종족성을 유지하며 살아온 사회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베트남의 역사에서 우리와 결정적인 차이를 보이는 것은 바로 외세를 자력으로 무찔렀다는 점과 무찌르지 못했다는 점 그리고 국가를 자주적으로 통일했다는 점과 통일을 하지 못했다는 점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면 프랑스 식민지배에 맞선 베트남인들의 독립운동의 역사가 나온다. 그 독립운동 역사에는 우리 역사에서 백범 김구 포지션을 가지고 있는 베트남의 민족주의 계열 독립운동가 판 보이 쩌우(Phan Bôi Chau)같은 인물부터 개혁가 판쭈찐(Phan Chu Trinh),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의 전설 호치민(Ho Chi Minh)등이 있었고, 이후 독립운동은 민족주의 계열 보다 사회주의 계열이 중심이 되어 전개해 나갔다는 점에서 우리와 유사점을 보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자국의 독립을 주체적으로 이룩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베트남 독립운동사에 있어서 흥미로운 사실은 베트남내에서 조직적으로 활동하던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일제시기 국내 혹은 국외 독립운동 세력들 중에 러시아의 혁명가이자 이론가 레온 트로츠키(Leon Trotsky)의 사상을 기반으로 한 독립운동 세력에 대해 필자는 들어보지 못했지만, 베트남의 경우 트로츠키주의자(Trotskyist)들이 현재 베트남 남부인 코친차이나 일대에서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다는 사실에서도 독립운동사에서 차이점이 있는 것 같다. 아무튼 베트남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베트민을 이끌던 호치민을 중심으로 베트남 전역에서 봉기를 일으켰고, 전한 미주리호에서 있을 일본의 항복식 날짜에 맞춰 하노이 바딘광장에서 독립을 선언하기도 했다. 이후 프랑스가 들어와 식민지화의 야욕을 드러냄에 따라 1946년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일어났지만, 8년간의 항쟁 끝에 1954년 디엔 비엔 푸 전투(The Battle of Dien Bien Phu)에서 승리함에 따라 100년 간의 프랑스 제국주의자들의 통치를 종결시켰다. 1차 인도차이나 전쟁 이후 미국이 들어와 남베트남 괴뢰정권을 지원했지만, 대략 15~20년이라는 기나긴 독립 투쟁 끝에 세계 최강대국 미국을 몰아내고, 자주적인 통일을 이룩했다. 이점에 있어서 일제 패망 이후 외세가 들어와 분단된 이후 한국전쟁이라는 분단의 비극을 겪고, 지금까지도 통일되지 못한 우리와 엄연한 차이가 있다.

 

위에서 상술했듯이 베트남의 역사는 대략 1000년간 중국에 맞서 투쟁을 해온 저항의 역사다. 물론 참파와의 경쟁에서 남진(Nam tiến)이라 하여 남부 지역을 평정하기도 했지만, 당시 베트남은 외세의 침입이 있을 때 이를 전력을 다해 방어했고 물리쳤다. BC 111년부터 중국의 지배를 받아왔던 베트남은 938년 응오꾸옌(Ngô Quyền)이 바익당 강 전투(Battle of Bạch Đằng)에서 승리하면서 중국으로부터 독립하게 됐다. 응오꾸옌을 중심으로 응오 왕조가 설립되었다. 즉 베트남은 서기 938년에 바익당 강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자주적인 독립국가가 된 것이다. 응오 왕조 이후 968년에 대월국이 만들어 지면서 대략 900년간 지속되었다. 900년 기간 동안 딘 왕조, 쩐 왕조, 레왕조 등이 있었지만, 대월국은 응우옌 왕조가 나타나 국호를 베트남이라고 하기 전까지 명맥을 유지했다.

 

1200년대 몽골에서 칭기즈칸이 몽골을 통일하고 그 몽골족들이 전 세계를 정복하기 위한 정복 전쟁에 나설 때, 베트남도 몽골군의 침략을 받았다. 쩐흥다오(Trần Hưng Đạo)와 같은 베트남의 명장들과 민중들이 몽골군의 침입을 막아냈다. 몽골군의 침입은 대략 3차에 걸쳐 진행되었는데, 1287년에는 대략 30만 대군을 동원하여 베트남을 침공했었다. 물론 그들은 게릴라 전을 비롯한 탁월한 전략전술로 몽골군의 침입을 막아냈다. 그로부터 200년 뒤인 1400년대 중국의 명나라(Ming Dynasty)가 베트남을 침공했지만, 레 러이(Lê Lợi)와 같은 인물들이 의병을 조직하여 독립전쟁을 전개하였고, 궁극적으로 명나라를 베트남에서 몰아냈다. 이처럼 베트남의 역사를 보았을 때, 베트남 전쟁 시기 미국은 베트남의 역사와 싸우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1975년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에 맞서 승리한 베트남은 이후 미국으로부터 경제적인 고립을 받았다. 그리고 그들은 1930년대 이오시프 스탈린(Joseph Stalin)이 했던 사회주의적 강제 집산화 정책을 남베트남에서 실행했는데, 오히려 생산성은 높아지지 않았고, 남부 농민들의 저항과 불만에 직면했었다. 그런 집산화 정책을 실행한지 10년이 되던 1986년 베트남 공산당 간부들은 도이머이(Đổi Mới) 정책을 실행하여 시장경제를 수용했고, 1990년대 베트남 전쟁 당시 적이었던 대한민국과 미국하고 수교를 맺는다. 또한 베트남은 1978년 베트남 캄보디아 전쟁을 겪으며 캄보디아의 폴포트(Pol Pot) 정권을 전복시켰고, 1979년 중국하고도 전쟁을 벌여 대략 1980년대가 되어서 진정한 평화를 얻었다. 이런점을 생각해보았을 때 베트남이 평화롭게 살게 된 것은 불과 40년도 안 되었다. 현재 베트남은 계속 성장중이다. 앞으로 베트남은 계속 성장할 것이다. 베트남을 좋아하는 필자로선 베트남이 평화로운 시기를 거치며 더 살기 좋은 나라로 번창하고, 균형 있게 발전했으면 한다.

 

그것과는 별개로 최근 박항서 열풍이 불면서 한국인들도 베트남에 대해 많은 관심을 두게 되었다. 베트남의 휴양도시 다낭을 비롯하여 하노이와 하롱베이. 호치민 그리고 달랏등과 같은 관광지를 방문하게 되는 한국사람들이 2000년대 보다 훨씬 많아졌다. 즉 한국 사람들이 그만큼 베트남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얘기다. 또한 적잖은 베트남인들이 한국에 와서 일하고 공부하며 또 결혼을 목적으로 오기도 한다. 이와 같은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한국과 베트남은 많은 부분에서 교류가 있다. 요즘은 좀 덜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의 경우 대체로 동남아시아인들을 일종에 백인우월주의적 시각에서 편견으로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이것의 근본적인 원인에는 그 나라 역사에 대한 지식의 부재도 있다고 본다. 따라서 그 나라의 역사를 공부하고 알면 그렇게 판단할 수가 없다. 필자는 이번에 베트남의 전반적인 역사를 공부하면서 그들의 대단한 역사에 많이 감탄했다. 유인선 교수가 집필한 이 책은 베트남도 굉장히 대단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나라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그런점에서 이 책의 가치는 매우 높다. 아무튼 베트남의 역사를 잘 알수 있는 기회였다. 내년에 베트남 갈 때 이 책도 같이 들고 갈 생각이다. 베트남을 알고 싶어하거나 베트남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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