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 - 베트남과 전쟁의 기억
비엣 타인 응우옌 지음, 부희령 옮김 / 더봄 / 201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국내에 출판된 베트남 전쟁 관련 서적들은 생각한 것 그 이상으로 그 수가 적다. 미국에게 있어서 베트남 전쟁이란 자신들 역사에서 사상 최대의 흑역사이자 실책이다 보니 그것이 베트남 전쟁 그 자체에 관한 연구이든 전쟁 소설(혹은 문학 작품)이든 개인의 자서전이든 간에 베트남 전쟁을 주제로 한 서적들이 많지만, 정작 미국 다음으로 많은 군대를 파병했던 대한민국의 경우 그 수가 아주 적다. 따라서 올해 5월에 출간된 비엣 타인 응우옌이 쓴 저서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는다: Nothing Ever Dies Vietnam and the Memory of War>가 출간되었을 때, 필자는 신간에 대한 기대가 내심 생겼었다.

 

이 책은 베트남 전쟁을 겪었던 사람들의 기억과 전쟁을 겪었던 국가들이 어떤 식으로 전쟁 그 자체를 기억하는지를 분석한 심리학 서적이다. 이 책의 저자에 대해 얘기하자면, 1975년 베트남의 통일 이후 남베트남을 탈출하여 미국에 정착한 보트피플 출신이다. 물론 저자는 1971년 남베트남의 부온 마 투옷(Buon Ma Thout)에서 태어나 1975년 보트피플이 되어 미국에 정착한 베트남계 미국인이기에, 한때 자신이 살았던 남베트남에 대한 추억 혹은 기억이 부정확하거나, 남는 것이 없다는 점에서 다른 보트피플들하고 차이를 보인다.

 

작년 10월과 11월 대략 한 달 동안 미국여행을 다녔던 필자는 필라델피아에서 베트남 타운에 들려 베트남계 미국인들을 봤었고, 워싱턴에서 머물던 숙소에서도 보트피플 출신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으며, 여행을 최종적으로 마치고 로스엔젤레스에서 한국으로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옆자리에 앉은 보트피플 출신의 대학교수와 적잖은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대략 12시간의 기나긴 비행시간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지만, 그 대화는 여러모로 보트피플들이 가지고 있는 베트남에 대한 관점을 알 수 있던 기회였다. 귀국행 비행기에서 필자와 대화를 나누었던 베트남계 미국인 아저씨는 하버드 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였고, 미국 보스턴에 살면서 미국과 베트남을 자주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은 베트남을 자신의 고향 및 조국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여러 얘기를 나누던 중 필자는 그 사람과 호치민 주석에 관한 얘기도 나눴었고, 필자가 알고 있는 베트남 역사에 대해서 얘기해줬다. 참으로 흥미로웠던 것은 그분 또한 필자가 감명깊게 읽었던 윌리엄J듀이커의 호치민 평전을 2000년대 초에 읽었었다는 사실이다.(국내에는 2003년에 출간되었다) 듀이커의 호치민 평전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그 책은 호치민을 반은 간디 반은 레닌이라고 하며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책이다. 그런데 그런 책을 보트피플 출신 아저씨가 나름 괜찮은 책이라 얘기한 것은 꽤나 흥미로운 답변이었다. 하지만 이런 대답을 들은 다음에 들었던 그 아저씨의 답변은 아 역시 보트피플이구나하는 결론을 내리게 했다. 듀이커의 책에 대해 좋은 책이라 얘기했던 것과는 달리 호치민 자체에 대해선 긍정적인 시각보다 부정적인 시각이 앞섰다. 그가 자유와 독립을 위해 제국주의에 투쟁한 것에 대해서 과연 가치가 있었던 일인지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그 아저씨가 내리는 남베트남의 독재자 응오딘지엠에 대한 평가는 부정보단 긍정의 시각이 앞섰다. 그 아저씨는 필자에게 (응오딘지엠은)는 분명 애국자였습니다. 하지만 잔인하기도 했죠.”라고 답변했는데, 이 점에서 역시 보트피플 다운 결론이라는 생각이 아주 많이 들었고, 여기서 필자는 남베트남계 보트피플들의 한계를 알 수 있었다.

 

개인적인 경험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이제 책에 관해 얘기하겠다. 필자는 이 책을 읽으며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동시에 느꼈다. 우선 필자가 책에서 부정적으로 느꼈던 점을 얘기하겠다. 아까 위에서 얘기한 필자의 경험담에서 느낄 수 있는 시각이 이 책에도 아주 심하게는 아니지만, 약간은 반영된 느낌을 받았다. 물론 위에서 상술한 것처럼 응오딘지엠을 애국자로 옹호한다거나, 남베트남의 부정부패상을 옹호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긴 하나, 베트남 전쟁 자체에 북베트남 측의 책임론을 주장한다.

 

저자는 1960년대 북베트남이 남베트남을 지원하면서 주변국인 라오스와 캄보디아를 끌여들였다고 주장하며, 따라서 북베트남 또한 이에 대한 막중한 책임이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이런 관점은 필자의 관점으로 보자면 절대 동의할 수 없는 결론이다. 베트남의 주변국이던 라오스를 보면 1960년대 활동을 하던 민족해방조직인 파테트 라오(Pathet Lao)에 대한 라오스 인민의 대중적 지지는 압도적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남녀평등과 계급해방 그리고, 지주의 재산 및 식량을 몰수하여 가난한 인민들에게 나누어줬기 때문이다. 따라서 라오스 인민들이 북베트남과 베트콩을 도와 미제국주의에 맞서 싸운 것은 이런 이유였다. 1975년 이후 광적인 킬링필드를 주도했던 폴포트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시각이 앞서고, 그를 매우 싫어하는 필자가 이에 관해 얘기하자면 당시 캄보디아 인민들이 친미제국주의자 론 놀(Lon Nol)이나 부패한 왕조인 노로돔 시아누크(Norodom Sihanouk)를 지지하지 않고, 크메르루주를 지지하며 미제국에 맞서 싸웠던 것 또한 그런 맥락에서 봐야 한다. 당시 크메르 루주는 마오이즘적 사상을 기반으로 반제국주의 투쟁을 했기에 이 또한 캄보디아의 민족해방투쟁이었다. 따라서 단순히 호치민루트를 라오스와 캄보디아까지 연결했다는 이유를 들어 전쟁의 책임을 북베트남에게도 있다고 하는 저자의 시각은 필자 입장에선 절대 동의할 수 없는 주장이다.

 

필자가 저자에 대해 부정적으로 보았던 또 다른 얘기는 북베트남은 재교육과 보트피플 난민들이 도망친 것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라는 주장인데, 이 또한 동의할 수 없는 관점이다. 물론 필자 또한 재교육으로 고통을 받았을 일부가 있었을 것이라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러한 청산 작업은 북베트남에게 있어서 당연히 필요했던 작업이었다. 베트남 전쟁에 대해 공부해본 사람이라면 다 알고 있는 사실이겠지만, 남베트남 정권은 부패한 가톨릭 세력과 식민지 시절 프랑스에 협력하여 나라를 팔아먹던 민족반역자들의 집합체였다. 따라서 북베트남이 그들을 재교육 시키고 청산하는 작업은 필수적인 것이며,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한 작업이었다. 반대로 대한민국은 1949년 이승만 정권이 노덕술 같은 악질 친일파들을 한 사람도 남김없이 살려주는 바람에 지금까지도 친일파 세력들이 대한민국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됐던 역사적 사실을 생각해 보면, 그런 재교육 및 청산작업은 당연히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보트피플에 관해 얘기하자면, 보트피플은 제1차와 제2차를 나눌 수 있는데, 1975년 베트남을 떠난 베트남인들이 제1차에 속한다. 이들의 경우 주류는 친프랑스 계열 민족반역자들 사이공 정부의 관료나 공무원, 자본가 그리고 가톨릭 목사들이었다. 즉 북베트남 정부에게 있어서 큰 과오 및 안좋을 짓을 한 인물들이었고, 자신들이 한 부끄러운 행위들이 있으니 탈출한 것이다. 통일 후 베트남에서 재교육 및 처벌과정이 대규모의 보복성 학살 없이 끝났다는 사실과 1975~1986년까지 대략 100만 명 이상의 보트피플이 탈출했다는 것을 생각해 봤을 때, 베트남을 떠나고 안 떠나고는 순수히 그들 선택이었다. 당시 그들의 지도자나 다름없었던 응우옌 반 티에우(Nguyen Van Thieu)가 남베트남이 몰락할 위기에 놓이자, 비행기 6대에 금괴 2톤을 싣고, 미국으로 도주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지 않은가? 그 자체를 북베트남에게 뭍는 것은 필자가 보기에 너무 과한 결론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 외에도 일반적인 베트남인들이나 필자의 관점에서 보면 다소 불편할 내용이 적잖게 보였다.

 

물론 위에서 상술한 부분은 당연히 고려하더라도, 이걸 제쳐놓고 책을 긍정적으로 볼만한 부분이 꽤 있다. 이 책은 단순히 베트남과 미국의 기억만을 얘기하지 않는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편에서 싸웠던 소수민족과 미국 다음으로 가장 많은 병력을 파병했던 한국에 관한 내용을 포괄하여 베트남 전쟁에 대한 기억을 얘기한다. 이 책에서 언급되는 소수민족이 있는데,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 편에 서서 싸웠던 몽족(Hmong)이 그러하다. 저자는 몽족들의 경험 및 역사를 토대로 베트남 전쟁과 그들의 기억을 얘기한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편에 서서 싸운 몽족들은 결국 베트남 전쟁이 끝나면서 아주 철저하게 버려졌다. 물론 그들 중 일부가 미국으로 건너와 최소 17만 명 이상이 미국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들은 아주 철저히 잊혀졌다. 대표적으로 미국에 살던 몽족 베테랑인 방파오(Vang Pao) 장군의 이야기를 얘로 들 수 있다. 방파오 장군은 자신이 죽으면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알링턴 묘지(Arlington National Cemetery)에 묻히기를 바랐고, 다른 몽족 군인들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들은 미국에 있는 알링턴 묘지에 묻히지 못했다. 미국 정부가 그들을 외면했고, 그들의 존재를 부각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현재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남베트남군 베테랑 또한 마찬가지다.

 

여기서 더 나아가 필자는 몽족을 주제로한 영화를 언급함과 동시에, 그안에 들어가 있는 미국식 제국주의 혹은 애국주의를 비판한다. 아이언맨으로 유명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Robert Downey Jr)와 멜 깁슨(Mel Gibson)이 출연한 영화 에어 아메리카(Air America) 그리고 클린트 이스트우드(Clint Eastwood)가 감독과 배우로 이중작업한 영화 그랜 토리노(Gran Torino)가 그런 애국주의 혹은 미국식 국수주의를 전파하는 영화였다. 전자의 경우는 노골적인 미국식 국수주의 전파 영화라면 후자는 교묘한 미국식 국수주의 전파 영화였다. 그리고 그 영화엔 서양권이 가지고 있는 동양권에 대한 오리엔탈리즘도 들어가 있다. 1968년에 존 웨인이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그린베레(The Green Beret 1968)가 그랬듯이 말이다. 필자는 에어 아메리카와 그랜 토리노를 보진 않았지만, 저자의 통찰력이 감격스러웠다.

 

이런 저자의 통찰력은 한국의 베트남 전쟁 기억 속에서도 드러나는데, 참으로 뛰어난 분석력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1994년 정지영 감독이 제작한 영화 <하얀전쟁>2004년에 나온 <알포인트> 2008년에 나온 <님은 먼곳에> 그리고 20141천만 영화인 <국제시장>을 비유하며, 베트남 전쟁을 주제로한 한국 영화가 어떻게 변해갔고, 베트남인들의 고통을 어떻게 외면하는지를 아주 철저하게 분석했다. 이 점에 있어서 필자는 이렇게 명확히 분석한 저자의 글에 감탄했다. 더 나아가 이 책의 분석을 통해서 2014년에 나온 영화 국제시장이 베트남 전쟁을 어떤 식으로 교묘하게 왜곡했는지도 생각해보았다. 더 나아가 이 책에선 대한민국의 극우 세력들이 보면 매우 불편해할 내용들이 나온다. 그것은 바로 한국군 민간인 학살과 부패에 대한 내용이다. 이 책에선 베트남인들이 한국군을 긍정보단 부정적으로 인식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심지어 같은 편인 남베트남도 한국군을 부정적으로 인식했고, 남베트남의 공군 총사령관인 응우옌 까오 끼(Nguyen Cao Ky)가 한국군을 부패와 암거래로 고발했다는 내용도 나온다. 또한 저자는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인 하미 마을 학살(Hà My massacre)을 언급하며, 과거 베트남전 참전용사들이 이 증오비의 기록을 지우기 위해서 피해자 및 마을 측을 돈으로 매수하려 했던 추악한 사실을 언급한다. 따라서 이 책이 입증하듯이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을 긍정적으로만 보는 시각은 당연히 잘못됐고, 후세대는 베트남 전쟁 당시의 한국군 참전을 깊이 반성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더 얘기하자면 필자는 이 책의 저자가 무수히 많은 영화들을 토대로 베트남 전쟁의 기억을 분석하고자 했던 점에서 나름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이 책에서 자주 언급되는 영화가 있는데, 지옥의 묵시록(Apocalypse Now)가 바로 그것이다. 책의 저자는 영화 지옥의 묵시록에서 많은 것을 느꼈던 것 같다. 그 외에도 전쟁의 사상자들(War of Casualties), 풀 메탈 자켓(Full Metal Jacket) 등 많은 헐리우드 영화들이 언급된다. 뿐만 아니라 필자는 베트남 전쟁을 주제로한 컴퓨터 게임을 언급하기도 하는데, 110억 달러를 벌어들인 콜오브듀티 블랙옵스(Call of Duty Black Ops)가 바로 그것이다. 저자는 블랙옵스를 언급하며 미국식 영웅주의와 반공주의를 비판한다. 이러한 저자의 평가 및 언급은 당연히 이 게임을 해보았다는 증거일 것이고, 고등학생 시절 이 게임을 여러 번 해본(그리고 지금도 가끔 하는) 필자로선 이 게임이 언급된 것이 나름 반가웠다. 전쟁의 기억을 보는 작업에서 단순히 참전용사들이나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여러 매체와 문화에 나타나는 것들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한 저자의 노력은 참으로 높게 평가해줄 만하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보트피플식 한계도 있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런 한계점도 다른 극우반공주의에 매몰되어 있는 보트피플들에 비하면 상당히 나은 편일 것이다. 아무튼 보트피플이 쓴 책이라 감회가 새로웠고, 보트피플 치고는 의외였던 점도 있었던 것 같다. 재밌게 읽었으니 그것으로 만족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