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일전쟁 - 용, 사무라이를 꺾다 1928~1945
권성욱 지음 / 미지북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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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전쟁은 과연 어떤 전쟁이었을까?’ 10대 때부터 2차세계대전에 매우 관심이 많았던 나로선 중일전쟁에 대해 깊이 알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었다. 기껏 해봐야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킨 일본군이 중국국만당의 수도 남경(난징)을 순식간에 점령한 뒤, 난징에서 소름끼치는 대학살을 전개하며 30만이나 되는 중국인들을 학살했던 전쟁.”이 정도였다. 따라서 1937년 남경대학살 이후 1945년까지 약 8년간 전개되었던 중일전쟁의 전개양상이 어떻게 돌아갔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중일전쟁에서 죽었는지 알지 못했었다.

 
이후에도 난 중일전쟁에 대해 그다지 관심을 두지는 않았고 중일전쟁에 대한 나의 인식 또한 일반인 혹은 과거 2차대전 마니아들이 인식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면서 중일전쟁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던 시각이 많이 변했다. 지금까지 알지 못하고 있던 사실을 굉장히 많이 알게 됐고 중일전쟁 또한 제2차세계대전 당시 유럽이나 태평양 일대에서 벌어진 전투들만큼이나 굉장히 치열하게 전개됐던 전투가 적잖게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난 지금 까지 중일전쟁 당시 장개석의 중국 국민당은 항일에 소극적이었고 마오쩌둥이 이끄는 중국 공산당은 항일에 적극적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이런 관점은 진보계열에 있는 유시민 작가나 리영희 선생이 쓴 책뿐만 아니라 보수색이 굉장히 강한 <먼나라 이웃나라>의 저자인 이원복 교수도 공유하고 있는 관점이기에 나 또한 비판 없이 받아들였던 것 같다.


진실은 그 반대였다. 오히려 항일에 적극적이었던 것은 장개석의 국민당이었고 항일에 소극적이었던 것은 마오쩌둥의 공산당이었다. 마오쩌둥과 중국 공산당이 일본군에 맞서 대규모의 전투를 치뤘던 건 1940년8월부터 1941년 1월 말까지 팔로군 40만 명이 동원되었던 백단대전 뿐이었다. 백단대전 외에 중국 공산당이 일본군에 맞서 전개했던 전투는 그리 많지도 않고 있어봤자 소규모 교전 정도였다. 물론 백단대전의 경우 팔로군 22000명이 죽고 일본군 12000명이 사망한 대규모의 전투였던 건 확실하지만 장개석의 국민당군이 치룬 항일전의 대가에 비하면 세발의 피에 불과했다.


1937년 노구교 사건 이후 중일전쟁이 일어난 시점부터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항복했을 때 까지 중국이 치른 대다수의 전투는 장개석의 국민당이 치뤘다. 중국의 베르됭 전투라고 알려진 오송전투, 남경 대학살이 일어나기 전 남경에서 전개되었던 난징 전투, 중일전쟁 이래 최초로 중국군이 승리했던 타이얼좡 전투, 창사 전투, 1939년에 전개 되었던 동계 대공세 그리고 1943년에 일어났던 전투이자 중국판 스탈린그라드 전투라고 불리는 창더전투까지 사실상 중일전쟁 시기 대부분의 전투는 장개석의 국민당군이 치렀다. 8년간 지속되었던 중일전쟁 시기 장개석의 국민당군이 항일전쟁을 치루면서 지불한 대가는 매우 컸다. 8년간의 중일전쟁에서 중국 국민당군은 고위 장성만 206명이 전사했다. 반면 중일전쟁시기 전사한 팔로군 연대장이 5명이다. 이것만 보더라도 중일전쟁 시기 중국 국민당군이 얼마나 항일전을 많이 치렀는지 입증된다.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1937년 중일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중국과의 전쟁이 빨리 끝날줄 알았지만 중국은 거대한 대륙이었기에 전선은 교착상태에 빠졌다. 그런 상황에서 일본은 몽골 국경지대 근처인 노몬한에서 소련군을 상대로 전투를 치렀지만 결과는 참패였다. 중일전쟁 자체를 부정적으로 보고 있던 영국과 미국은 일본을 견제했고 1940년 일본이 무솔리니 히틀러와 동맹관계를 맺자 미국과 영국은 일본을 더더욱 압박했다. 이는 결국 1941년 12월 일본이 진주만 기습공격하여 태평양 전쟁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1941년 진주만 기습공격 이후 2차세계대전에 참전한 미국은 일본에 맞서 싸우고 있던 중국 국민당군을 지원했다. 중국 국민당 또한 영국군의 버마 탈환작전에 수많은 군대를 투입했고 교착된 중국 전선에서 수많은 전투를 치렀다. 태평양 전쟁 시기 미국과 일본간에 섬 쟁탈전이 시작되면서 일본은 중국전선에 투입했던 수많은 군대를 태평양으로 빼돌렸고 이는 결국 패망으로 이어졌다. 1945년 5월 나치독일이 항복하고 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이후에 소련군이 만주에서 진격해오자 1945년 8월 15일 일본은 연합국에게 항복했다.


중일전쟁 당시 일본군이 사용했던 무기들을 살펴보면 성능이 그리 좋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국 국민당군의 경우 재정이 좀 부족하긴 했지만 서방세계의 무기(서방으로부터 지원받은 권총, 기관단총, 기관총, 야포, 박격포, 전차등)들을 많이 사용했지만 일본군의 경우 38식 아리사카 소총과 같은 구식 소총을 주로 이용했고 일본산 무기를 고집했다. 심지어 기관단총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한 군부는 “기관단총은 총알은 낭비한다.”라고 하면서 소총의 위력만을 과대평가하기 까지 했다. 무엇보다 일본군은 전차의 위력이 매우 취약했다. 일본군의 경전차는 대구경 기관총에 뚫리는 정도였고 포신또한 짧았으며 사거리도 전차라고 하기에는 아주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2차세계대전 당시 미군의 주력전차M4셔먼과 소련군의 주력전차 T-34가 독일군 티거 탱크의 먹잇감이었다면 일본군 주력 중장갑 전차인 치하 전차는 미국의 M4셔먼전차에게 먹잇감이 되었던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미군 경전차였던 M3스튜어트 탱크에게도 처참하게 패배하기 일쑤였다.

 
중일전쟁과 2차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은 전차나 기본적인 보병들의 무기가 취약했던 모습과는 달리 공군이 별도로 존재하지 않았음에도 항공전력은 생각보다 약하지 않았고 해군력은 영국을 앞섰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마져도 세계최강의 해군을 보유하고 있던 미국을 이기기에는 역부족이었고 대륙에서 전투를 치루는 중일전쟁의 경우 해군은 의미가 없었다. 거기다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자 중일전쟁 초반에 투입되었던 항공전력 대부분이 태평양 전선으로 갔다. 무튼 이 책을 통해서 일본군의 전력과 군사 기술력이 대충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었고 항공 전력과 해군력은 나쁘지는 않았지만 전차를 비롯한 육군 장비들이 얼마나 취약했는지 알 수 있었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집중해서 읽은 파트는 일본과 소련군이 붙었던 교전이었다. 1931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과 소련이 붙었던 전투는 크게 3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한반도와 만주 소련의 연해주 사이에 있는 두만강 근처에서 벌어졌던 하산호 전투(장고봉 사건)고, 또 하나는 만주와 몽골 근처에서 벌어진 노몬한 전투고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1945년 소련이 만주에서 진격하여 전쟁을 끝낸 8월 폭풍 작전이다. 1938년 두만강 근처에서 벌어졌던 하산호 전투에서 일본군은 520명이 사망했고, 노몬한 전투에선 8400명이 전사했으며 1945년 8월 폭풍 작전에선 최소2만에서 최대8만 명에 달하는 일본군이 전사했다. 3번 붙은 중대규모의 전투에서 일본군은 소련군 보다 사상자가 더 많이 나왔고 3번 다 소련군에게 패배했다. 많은 사람들이 러일전쟁에 대해선 관심을 갖지만 정작 일본군이 처참하게 패배했던 이 3개의 전투에 대해선 별로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개인적으로 이 전투를 다룬 파트를 더 집중해서 읽었다.

 
이 책을 통해서 지금까지 내가 잘 알지 못했던 중일전쟁에 대해 많이 알 수 있었다. 900페이지라는 압도적인 분량이긴 했지만 주로 전투위주의 서술이었고, 전쟁사에 관심있는 나로선 책의 내용이 많았음에도 다른 책들에 비해 지루함을 덜 느끼면서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책 자체가 국민당의 항일 업적을 재조명하기 위해 쓰인 저자의 의도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중국 공산당의 투쟁업적을 너무 평가 절하했던 것 같다. 물론 저자가 얘기한 대로 항일투쟁에 있어서 국민당이 중국 공산당 보다 훨씬 더 많은 전투를 치렀다 할지라도 과연 국공내전시기 중국 국민당이 공산당에게 패배한 이유가 단순히 저자의 말대로 중일전쟁 시기 국민당이 전투를 많이 치렀기 때문일까? 글쎄 난 이 부분에 대해선 좀 회의적이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 “중국 국민당의 부정부패 때문에 민심을 못 잡아 패배했다는 주장은 중국 공산당의 선전일 뿐이다.”라고 했지만 그다지 믿기지 않는다. 실제로 국공내전시기 부패한 국민당 관료들이 공산당에게 무기를 팔아넘기는 사례가 적잖았던 것을 생각해 봤을 때 그렇다는 얘기라는 것이다. 이 책은 중일전쟁을 총체적으로 아주 잘 정리한 책이다. 무엇보다 이 책이 나오기 전까지 중일전쟁을 총체적으로 정리한 서적이 출판되지 않았다는 점과 기존의 역사관에서 벗어나 중일전쟁시기 중국 국민당군의 항일투쟁을 잘 조명했다는 점에서 분명 높은 점수를 받을 만하다. 추가적으로 더 얘기하자면 이 책은 한국 사람이 쓴 책이기에 이 책의 사실상 마지막 부분에선 1930,40년대 독립운동사를 중일전쟁사에서 1개의 파트로 나누어 서술하였다. 한국 독립운동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파트만 읽은 뒤 내용을 참고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2차세계대전사와 중일전쟁에 대해 관심이 많고 밀리터리 전쟁사 분야에 관심이 많은 매니아들에게 읽기를 매우 추천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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