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법 수업 - 흔들리지 않는 삶을 위한 천 년의 학교
한동일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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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틴어 수업을 재미있게 읽었다. 


  라틴어를 통한 여러가지 인문학적인 소양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저자의 글을 보면서 큰 감동을 받았다. 재미없는 라틴어가 이렇게도 읽힐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나 다른 언어를 가지고 비슷하게 인문학적인 내용들을 다루는 책들을 봤지만 이만한 감동을 주지 못했다. 삶과 죽음, 남겨진 인생에 대해서 많은 것들을 깨닫게 했다. 


  그래서 일까? 저자의 새로운 책이 나온다는 사실을 알고 살까말까 고민을 시작했다. 과거라면 아무런 생각없이 샀겠지만 요즘은 아내의 눈치가 보인다. 넓지도 않은 집인데 그 집에서 내 책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졌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곳마다 책을 꽂아 넣기 시작하다보니 금새 집이 책으로 넘치기 시작했다. 거기에다 건담까지 시작했으니 눈치를 안 볼 수가 있으랴? 조만간 이사를 가야하기 때문에 더욱 눈치를 보고 있다. 아내는 하루에도 몇번씩 책을 정리하라고 하지만 "난 정리할 책이 어디있느냐?"면서 버티고 있다. 


  그래서 책을 살 때마다 고르고 또 고른다. 그러니 이 책에 거는 기대가 얼마나 크겠는가? 머릿글을 읽었을 때에는 "오 잘 샀다."라는 생각이 충만했지만 한 페이지씩 넘어갈 때마다 무엇인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전체적인 방향은 잘 잡은 것 같지만 그 내용을 뒷받침하는 내용이 법과 따로 노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다 보니 책을 읽는데 집중이 안되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렇게 집중이 안되는데도 책을 읽는데 며칠 걸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책이 그 만큼 쉽다는 것이기도 하고, 그 만큼 내용이 부실하다는 말이기도 하리라. 물론 중간 중간에 깊이 담아둘만한 말들이 나오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책에 대해서 만족함을 주기에는 부족하다. 혹시 저자의 이름 때문에 사고자 하는 사람들은 도서관에서 빌려 읽기를 권한다. 빌려 읽은 후에도 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이 든다면 그 때 사도 괜찮다. 그 만큼 아쉬움이 크다.


  라틴어 수업을 통하여 얻은 저자의 인기에 편승해서 수익을 얻고자 했다면, 만약 그래서 책을 출판한 것이라면 실패라고 할 수 있다. 감동도, 그리고 지식도 부족한 밍밍한 책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난 주저없이 이 책을 동생에게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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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길거리 문화사

기술을 혀=>기술을 익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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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saint236 > 상식인에 대한 상식인의 비판

조만간 뉴라이트이 정점 수레기 책을 읽어야 겠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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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에서 길을 묻다 - 출애굽기 산책
김기석 지음 / 꽃자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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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지에 연재되던 글을 모은 책이다. 출애굽기에 대한 신선한 생각을 제공해 준다는 장점은 있지만 연재되었던 글을 모았기 때문에 깊이가 부족한 단점도 있다. 그렇지만 김기석 목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기독교 신앙에 대해서 보수적인 시각이 아닌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기를 원하는 기독교인들에게는 추천할만한 책이다. 비기독교인들이 읽기에는 걸치적 거리는 부분들이 있다는 말이다.


  저자가 광야에서 길을 묻는다라는 글을 단 이유가 무엇일까? 광야란 척박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척박한 곳이기 때문에 사람의 능력으로는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살아갈 수 없다. 그 어느 때보다 하나님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천수답이라는 논이 있다. 이곳은 비가 내리지 않으면 농사가 불가능한 곳으로 비가 오지 않을 때면 농부들은 하늘만 바라본다고 한다. 광야가 바로 천수답과 같은 곳이다. 여러가지 위기와 어려움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바라볼 수밖에 없는 곳, 그곳이 광야이다.


  저자는 이러한 광야가 우리의 인생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지만 곳곳에 온갖 어려움과 고난과 장애물이 도사리고 있다. 물론 이러한 장애물들이 우리의 힘으로 극복이 가능한 것들이 있기도 하지만 거의 대부분은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는 불가능하다. 그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인가? 두 손을 모으고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우리는 놀랍게도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된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언제 경험했는가? 광야를 지나는 그 순간만큼 깊이 하나님을 체험했던 적이 있었는가? 그렇기 때문에 광야는 고난의 장소임과 동시에 은혜의 장소이기도 하다. 그 어느 때보다 하나님이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장소이면서 그 어느 때보다 하나님이 가까이 계신 곳이 광야이다. 광야와 같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할 것인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삶을 살아가는 것이 제대로 살아가는 길일까? 김기석 목사는 이에 대한 대답을 출애굽기와 민수기 신명기를 풀어가면서 찾고 있다.


  이 책을 보면서 크게 눈에 띄는 것이 두 가지이다. 하나는 그의 어휘 구사 능력이다. 김기석 목사가 구사하는 어휘는 우리가 잘 모르는 우리 말인 경우가 종종 있다. 그 의미를 대략이나마 알아서 자세한 뜻을 알기 위해서 종종 사전을 찾아봐야 하는 귀찮음은 있지만 때로는 존경스러울 때가 있다. 어떻게 이러한 단어들을 알고 사용하는 것일까, 도대체 이 분의 독서량은 얼마나 대단한 것일까 싶어서이다. 다음으로는 한쪽 구석에 다소곳이 자리잡고 있는 로고이다. 세월호를 기억하겠다는 의미로 노란 배에 304라는 숫자가 거칠게 자리잡고 있다. 이 로고를 보면서 그저 마음 한켠이 아릿하다. 또한 세월호 유족들이 광야를 걷고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씁쓸하다. 그러면서 기도한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길을 보여 주시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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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자의 귀향 - 집으로 돌아가는 멀고도 가까운 길 헨리 나우웬 영성 모던 클래식 1
헨리 나우웬 지음, 최종훈 옮김 / 포이에마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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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 나우웬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게 만든다.


  누구나 알고 있는 탕자의 비유를 이렇게나 풀어낼 수 있다는 것은 그가 가지고 있는 내공이 상당하다는 말일 것이다. 교회를 다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비유이다. 이 비유를 읽으면서 우리는 탕자에 우리의 모습을 투사한다. 아버지의 품을 떠나 자기 마음대로 행하던 탕자가 자기의 잘못을 뉘우치고 돌아오는 모습을 통하여 우리의 삶을 정리하고 하나님에게로 돌아온 우리를 발견하게 된다.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겠다는 생각을 품고 살아가지만 문제는 그러한 우리의 결심이 너무나 쉽게 무너진다는 것이다. 돌아오고 떠나기를 반복하는 우리들의 모습 속에서 절망과 좌절을 느끼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리라. 그런데 나우엔은 이것이 탕자의 비유가 우리에게 진정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나누엔은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세 사람, 탕자, 큰 아들, 그리고 아버지의 모습을 각자의 위치에서 말하면서 이것을 신앙의 성숙으로 연결시킨다.


  죄와 회심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우리의 모습이 탕자임은 분명하지만 여기에서 멈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죄 가운데 살아가던 탕자에서 돌아와서 이제는 아버지의 집에 거하지만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큰 아들과 같은 모습으로 변질되어 간다. 과거의 나의 모습을 기억하지 못하고, 마치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행동하면서 큰 아들처럼 행동한다. 평가하고, 깔아 뭉개고, 비난한다. 그렇지만 나우엔은 큰 아들도 몸은 집에 있지만 사실은 집을 나갔던 탕자와 같은 모습이라고 말한다. 다른 의미에서 본다면 큰 아들 도한 돌아와야 할 탕자이다. 아니 더 심각하다. 탕자는 자신이 집을 나갔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큰 아들은 그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교회에 다닌지 오래 될 수록 큰 아들의 모습으로 변해간다. 나는 거룩하다, 나는 예배에 나온다, 나는 성경을 잘 안다, 나는 기도를 오래한다 등등의 자기 합리화를 통하여 은혜가 사라져 버린 나의 모습을 당연한 것으로, 그리고 올바른 것으로 해석한다. 감히 나를 평가하느냐, 세상 법정이 감히 교회를 판결할 수 있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일 것이다.


  내 삶을 곰곰히 돌아본다. 과연 나는 큰 아들과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어린 시절부터 교회에 다녀서 이제는 기독교 신앙이 숨쉬는것처럼 자연스러워진 이 상태 속에서 혹시 내가 큰 아들과 같은 포지션을 취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스스로 모태 신앙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진지하게 이러한 질문을 던지고 자기 성찰을 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우리는 비로소 아버지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하나님의 사랑을 그저 감격하는 차원에 머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조금이나마 흉내 내봐야 하지 않겠는가? 집 나간 아들도, 그리고 집에 머물러 있지만 가족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있는 큰 아들도 모두다 보듬어 줄 수 있는 아버지의 사랑이 나의 모습 가운데 조금이나마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2019년 고난주간을 지나면서 십자가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진지하게 성찰하게 만들어 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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