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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가는 향기 ㅣ 정채봉 전집, 생각하는 동화 2
정채봉 지음 / 샘터사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남자는 안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라는 문구를...
내가 남녀 차별을 하는 것은 아니다. 남자는 안다는 말은 이 문구가 씌여있는 곳이 남자 화장실이기 때문에 그렇다. 물론 여자 화장실에도 씌여있을지 모르지만 내가 여자 화장실에 들어간 본 일이 없으니 알 방법은 없다. 그 글을 볼 때마다 생각을 해본다. 나는 아름다운 사람인가? 내가 머문 자리는 어던 모습일까?
종이에 무엇을 쌌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그 종이의 냄새를 맡아보면 안다는 불경의 구절은 너무 유명하기 때문에 불경을 읽어 보지 않은 사람이라고 해도 안다. "너는 그리스도의 향기"라는 말 또한 너무 유명하기에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해도 안다. 그런데 알기만 한다. 그 구절 앞에서 자신의 삶을 점검해 보지는 않는다.
어느날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해본다. 나는 어떤 향기를 풍기고 있는가? 내가 머물다 떠난 자리에는 어떤 냄새가 날까? 나의 말과 행동 속에서는 악취가 날까 아니면 향기가 날까? 멀리가는 것은 향기만이 아니다. 악취도 멀리간다. 그런데 멀리가는 향기라는 말을 쓴 것은 마땅히 그 사람의 말과 행동 속에서 향기가 나야한다는 매우 계몽적인 교훈이리라.
사람이 머물다 떠난 자리에는 흔적이 남는다고 하는데 나는 아내에게, 가족에게, 우리 아이들에게, 직장 동료들에게, 그리고 알라디너들에게 어떤 향기를 풍기고 있을까? 문득 지난 알리딘의 생활들을 돌아본다. 많은 사람들이 왔었고, 많은 사람들이 갔다. 초창기부터 알고 지냈던 분들 가운데에는 여러가지 안좋은 이유로 알라딘 생활을 접으신 분들도 있고, 오랫만에 다시 돌아오신 분들도 있고, 꾸준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계시는 분들도 있다. 그분들의 글을 오랫만에 읽어보다 보면, 그리고 요즘은 북플에서 나의 지난 독서 기록을 보여주는데 그 글들을 다시 읽으면서 때로는 부끄럽고, 때로는 자랑스럽고, 때로는 무시하고 싶을 때도 있다. 여기에 끄적거리고 있는 나는 10년 후에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 나는 과연 이 세상을 살다가 떠날 때 무슨 흔적을 남길 수 있을까? 다시 한번 내 삶에 대해서 겸허해지게 만드는 책을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