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독식사회
로버트 프랭크.필립 쿡 지음, 권영경 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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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의 서평을 쓰기 전에 먼저 두 기사를 읽었다. 예전에 읽었던 기사인데 잊혀지지가 않아서 스크랩 해 놓았던 기사들이다.

  전여옥 한나라당 의원이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가장 바람직한 정치인 상은?’이란 글을 통해 대한민국의 부자들의 95%는 젊은 날 검소와 절제와 노력으로 재산을 모은 것”이라고 주장하며 이명박 정부의 ‘강부자 내각’을 옹호하는 듯한 주장을 펼쳐 파문이 일고 있다.
  그는 11일 홈페이지에 올린 이 글에서 “부정부패로 돈을 벌었던 시절이 언제였습니까? 그 시절은 바로 그 옛날 권위주의적 정치시절이었습니다”라며 “부정부패는 우리 사회에서 지금 엄격한 잣대로 응징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전 의원은 “대한민국 부자들의 95%는 젊은 날 검소와 절제와 노력으로 재산을 모은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멸치볶음과 김치만의 도시락을 집에서 싸갖고 다니며 열심히 일하셨던 분들이 더 많다”고 썼다.
  전 의원은 한 네티즌이 쓴 ‘가장 바람직한 정치인상은?’이란 글에 대해 ‘다 부정부패 수단으로 부자가 되었다’는 인식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이것은 공부 잘 하는 사람은 다 고액 과외를 하고 컨닝을 해서 성적을 좋다는 식의 논리와 다르지 않다”며 “고액과외한 학생이라고 다 좋은 대학에 가거나 좋은 성적을 내지는 않는다”고 주장했다.
                                                                                    - 2008년 5월 14일 자 중앙일보

  전여옥 한나라당 의원이 이명박 정부는 ‘우습게 보이는 실용’이 아니라 ‘무서운 실용’의 자세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전 의원은 20일 홈페이지에 올린 ‘위기 때는 낭비할 시간이 없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자그마한 탈정치적 자세가 실용이 아니다. 철저하게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가치를 바탕으로, 이념을 바탕으로 했을 때 실용노선은 강도 높은 지진에도 끄떡 없이 버틸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중국과 인도가 이제 ‘열정’과 ‘실력’으로 한국이 아니라 ‘미국 따라잡기’를 목적으로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고 있다. 이것은 분명한 위기”라며 “위기를 ‘이명박 정부의 낮은 지지율’이 아니라 ‘국제환경’에서 긴 안목으로 짚어보고 진단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전 의원은 “실용이야말로 철저한 가치, 철학, 이념이란 어머니의 산통으로 이 세상에 나오는 아기와 같은 것”이라며 “즉 실용은 자유주의의 오랜 전통 아래 시장을 보호하고 지키면서 쌓아온 우리 가치가 단단해야만이 우리 사회에서 그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했다.

  존경하는 친구들, 그리고 영등포 구민 여러분안녕하세요? 오늘 점심을 먹고 국회 안을 걸었습니다. 18대를 맞이하기 앞서 17대를 정리하고 싶어섭니다.
  제게 17대는 '정권교체'를 위해 화약을 지고 불 속에 뛰어드는 심정으로 보냈던 시절이었습니다. 정권교체를 했습니다. 그러나 참 유감스럽게도 불과 석 달도 안돼 대통령은 지지율은 떨어지고 국민들은 기대에 못 미치는 '일처리'에 답답해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 어제 늘 좋아하고 아끼는 후배와 점심을 먹으며 고민했습니다. 그 후배 말하기를 - '선배-실용은 무서운 거예요'저는 그 한마디에 정신이 퍼뜩 들었습니다. '그래-실용이라는 것- 간단치 않고 무서운 것이 맞아.' 저는 즉시 맞장구를 쳤습니다. 그러면서 여러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즉 '실용이야말로 철저한 가치, 철학. 이념이란 어머니의 산통으로 이 세상에 나오는 아기와 같은 것이다'라는 생각 말입니다. 즉 실용은 자유주의의 오랜 전통 아래 시장을 보호하고 지키면서 쌓아온 우리 가치가 단단해야만이 우리 사회에서 그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시작의 기회는 공평히 갖되 결과의 불공평은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땀과 노력을 바친 결과에 대해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미소 지으며 박수칠 수 있는 사회여야 합니다. 이명박 정부는 실용정부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용'이라는 가치를 인정받고 한국사회에서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자유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해 신뢰와 인정이 중요합니다. 이명박 정부의 성공을 저는 모든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바랄 것이라고 봅니다. 지금 우리는 토마스 프리드만이 이야기 한 '평평한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중국과 인도가 이제 '열정'과 '실력'으로 한국이 아니라 '미국 따라잡기'를 목적으로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고 있습니다. 이것은 분명 위기입니다. 위기를 '이명박정부의 낮은 지지율'이 아니라 '국제환경'에서 긴 안목으로 짚어보고 진단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우리 한국인들이 유념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위기 때는 낭비할 시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자그마한 탈 정치적 자세가 실용이 아닙니다. 철저하게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가치를 바탕으로 이념을 바탕으로 했을 때실용노선은 강도 높은 지진에도 끄떡없이 버틸 수 있는 것입니다. '우습게 보이는 실용'이 아니라 '무서운 실용'의 자세로 이명박 정부는 나아가야 합니다. 위기 때는 낭비할 시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 2008년 5월 20일 자 중앙일보

  조금 길지만 서평을 쓰면서 이 두 기사를 인용한 것은 일단 서평을 기록함으로 인해서 이 기사를 잊지 않기 위해서이고, 두번째로는 이 기사의 내용이, 즉 젼여옥 의원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 이 책에서 공격하고 있는 이 시대의 잘못된 룰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용은 무서운 것이다, 평평한 세계이다, 부자는 검소함으로 부를 이루었다 등등 전여옥 여사가 던지는 말들은 일반 대중들의 공격을 받기에 충분하다. 그의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차치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만 경쟁을 멈추자는 사회적인 합의에 도달해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쟁을 더 가속화하는 것이 시장의 논리요, 우리가 나아갈 길이요, 행복한 미래를 보장해 주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말도안되는 논리를 지껄이고 있기 때문이다. 말이 좀 과격해졌지만 전여옥 의원의 말이 정말로 입에서 나오는대로의 지껄임 그 이상으로도 그 이하로도 들리지 않는 것은 전의원의(아니 전의원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 특히 한나라당 정치인들이 대다수 가지고있는 생각일 것이다.) 발언이 우리나라를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무한경쟁의 도박으로 몰아넣는 것을 당연시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전 기사를 읽다가 중고등학생들의 급훈에 대하여 기록한 기사를 읽었다. "조금 공부 더 하면 남편의 얼굴이 달라진다.", "엄마가 보고 있다.", "지하철 2호선에 미래가 있다." 등등 하나같이 무한경쟁의 논리를 내포하고 있는 것들이다. 특히 지하철 2호선에 미래가 있다는 이야기가 내 가슴을 답답하게 짓누르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중고등학생들의 미래가 고작 2호선에 있다는 이야기는 학력 경쟁이라는 지위군비경재을 가감없이 적나라하게 드러내주기 때문이다. 이것이 과연옳은 일인가? 엄청난 사교육비를 쏟아가면서 일류대를 꿈꾸는 것이 과연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현상인가? 결코 아니다. 엄청난 사교육비를 감당하기 위해서 가족들이 단란히 둘러 앉을 수 있는 시간과 행복을 포기해가는 모습들은 학력경쟁이 이 시대에 선물해준 최악의 수일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일류대를 꿈꾸며 지위군비경쟁을 한다면 평균 성적이 약간 올라간 상태로 지금의 서열이 고착화될 가능성이 다분하다. 그리고 자본의 소유에 따라서 학력의 획득이 달라질 것이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이렇게 소모적인 경쟁을 할 것이라면 차라리 합의를 이끌어 내어 학력이라는 지위군축협정을 맺는 것이 더 좋은 일일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오는 기회비용들을 다른 곳에 사용하는 것이 개인을 위해서도, 사회를 위해서도 최선을 것이리라. 이것이 정부의 역할이요 교육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의 일이다. 그러나 정치의 논리에 의해서(전의원의 발언을 보면 알 것이다.) 교육이 흔들리고, 비지니스 프렌들리의 자세로 교육을 대하니 일류대를 위한 학력 경쟁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고 점점 더 심화되고 있다. 계속 이런 상태가 유지되고 심화된다면 지하철 2호선에 미래를 건 우리 10대들은 지하철 2호선에서 투신자살을 할지도 모른다. 승자는 2호선을 타고 다니고 패자는 2호선에 뛰어들 것이다. 학생들이 요즘 청계천에, 시청 앞에 촛불들고 나오는 이유가 무엇인지 살펴보라. 숨막히다는 것이다. 승자독식의 논리를 그만 멈추어 달라는 요청이다. 그런데 정부는 단순하게 좌빨이라는 이념으로 제단하고 있지 않은가? 참으로 웃긴 일이다.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이 이미 우리 사회에도 심화되어 가고 있다. "유전무죄 무전 유죄", "돈이 돈을 번다.", "이대로(IMF시절 부자들이 높은 금리가 유지되기 바라며 외쳤던 건배구호)" 등 승자독식의 논리를 표현하는 이야기들이 너무나 많다. 경쟁을 긍정적인 것으로 바라보고 경쟁해서 무엇인가를 성취하고 싶어하는 소박한 우리들의 꿈은 정말 말 그대로 소박한 것이다. 정당한 경쟁과 정당한 소득이라는 이야기는 이미 유토피아적인 환상이 되어 버린지 오래다. "현실은 달라요." 어느 개그맨이 이야기했던가? 맞다. 현실은 다르다. 적당한 경쟁은 사라져 버린지 모래다. 무한경쟁의 시대, 전부 아니면 전부의 시대가 도래했다. 아주 조금의 차이로 승자와 패자가 갈리고 자본의 획득과 상실이 결정될 것이다. 여기에 패한 사람은 아무리 많은 재능과 지식과 조건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사회에서 도태될 것이다. 그들은 아주 근소한 차이로 패배했기 때문이다. 패자부활은 과거에나 있었던 이야기이다. 놀며 데모하며 낭만을 꿈꾸던 대학생활은 없어졌다. 6년 공부하면 대학생이 되어서 편히 놀수 있다는 선생님들의 사탕발림은 사탕발림으로 끝났다. 우리는 무한 경쟁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젠 멈춰야 한다. 적당한 경쟁은 사회를 발전시키는 활력소가 되지만 무한경쟁은 적자생존의 정글을 우리 시대에 도래시킬 뿐이다. 여기에서 오는 엄청난 지위군비증강의 모습들은 엄청난 사회비용을 요구할 것이다. 이 비용들은 발전적인 모습이 아니라 서로를 상쇄하는 소모적인 경쟁에 사용될 것이다. 멈추는 것이 중요하다. 멈춘다면 대안이 생길 것이지만 멈추지 않는다면 파멸이 있을 뿐이다. 간단한 예로 지금 사교육에 쏟아붇는 돈들을 대학기부금으로 돌린다면 저가의 등록금으로 대학을 다닐 수 있을 것이다. 민간 보험에 쏟아붓는 돈을 건보에 돌린다면 우리는 건보하나만으로 거의 모든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시장의 논리를 만능으로 생각하는 정치인들이 국회를 장악했다. 자유 시장을 옹호하는 사람들, 시장경제를 주창했던 사람들조차 인정했던 단점을 바라보지 못하고 시장의 논리에 따르면 모든 것이 잘될 것이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국회를, 청와대를 장악했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나를 좌빨이라 부르겠지? 그러나 내가 좌파라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고등학교를 정상적으로 졸업하고, 정치경제를 배운 사람이라면 누구나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이 상식이 통하지 않고 있다. 그러니 사회는 점점 경쟁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All or Nothing"의 법칙이 절대 법칙이 되어 가고 있다. 도박은 금지하면서 승자독식은 장려하는 모순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니 가슴이 답답할 수밖에.

PS. 이 책이 경제 경영으로 분류되어 있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승자독식의 사회는 경제 경영이 아니라 사회과학으로 분류함이 옳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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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교회 - 권력에 중독된 한국 기독교 내부 탐사
김지방 지음 / 교양인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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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렐루야! 미국이 철수하지 못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

  “대한민국이 공산주의 마수에 적화되려는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의 손길은 미국을 통해 나타났습니다. 존경하는 부시 미합중국 대통령 각하께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김한식 목사)

  미국 사람들이 했을 법한 이야기들을 한국 사람들이, 그것도 대형 교회의 명망있는 목사들이 했다고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이들이 한국 사람인지, 미국사람인지 잘 모르겠다. 태극기와 성조기를 나란히 들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미국의 오만함을 정당화 해주는 모습이 미국이 아닌 대한민국에서, 그것도 서울 시청 앞 광장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서글픈 이야기이다. 자국의 대통령은 빨갱이라 몰아 붙이면서 미국의 자선을 구걸하는 말도 안되는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대한민국에 너무나 많이 살고 있다. 참 가슴 아픈 현실이다.

  한기총을 필두로 하여 이름만 댔다하면 알 수 있는 사람들이 시청 앞 광장에 모여서 코메리카를 주장한다.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갚는다는 미명하에 청나라를 대적하였던 조선 말의 그 고루한 사고들이 여전히 우리 가운데 충만하다. 6.25전쟁의 은혜를 갚는다는 미명하에 영원한 미국의 우방, 아니 미국의 한 주이고 싶은 코메리칸들이 이 땅에 넘쳐난다. 성조기를 흔들면서 기도하는 목회자들의 모습은 많은 젊은이들로 하여금 신앙을 버리게 만든다. 소자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느니 차라리 연자 맷돌을 목에 걸고 바다에 빠지라던 예수님의 말씀을 그렇게 잘 알고 있으면서도 많은 젊은이들을 실족시킨다. 신앙을 버리게 만들고, 기독교를 개독교로 만들어 버리는 모습들이 도무지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일하기보다 개인들의 정치적인 야망과 권력 획득을 위해 교회가 발벗고 나섰다. 평소 교회가 정치에 뛰어 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나이지만 도무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이다. 정교분리를 외치는 것은 사실 비겁한 타협이라고 주장하는 나이지만 이건 아니다. 교회가 권력 획득을 위해 정치에 뛰어드는 것은 진정 잘못된 모습이다. 교회가 세상을 떠나고, 정치에 무관심하다면 그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다. 아무도 대변해 주지 않는 사회적인 약자들을 돌아보고 그들을 위하여 가진 모든 것들을 투자하는 것이 교회가 가져야 하는 모습이다. 내가 아는 한도내에서 예수님은 그렇게 행하셨다. 사회적인 약자, 전통의 피해자들, 문화와 관습에 매여 신음하는 민초들을 위해서 자신의 목숨까지 버리신 분이 예수님이다. 예수님의 제자를 자처하는 교회라면,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이렇게 살아야 한다. 사회적인 약자들을 위해 가진 것들을 다 쏟아붓고 그것이 해결된다면 모든 것을 버리고 뒤편으로 물러나는 것, 이것이 세상을 향한 교회의 진정한 모습이다.

  그러나 요즘은 그렇지 않다. 영광의 자리에만 자신을 드러낸다. 사회적인 약자가 아니라 극소수의 기득권자들을 위해서 존재한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들을 정당화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이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후보자였을 때 기존 대형 교회에서 했던 일들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면죄부를 주는 것이 아닌가? 장로 대통령 만들겠다는 일념하에, 거기에서 떨어질 떡고물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이름과 축복을 남발한 것이 기존 교회의 모습이 아니던가? 그리고 이 때문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오기를 거부하였던가?

  더군다나 방향이 잘못되었으면 스킬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그나마도 없다. 아마츄어리즘의 극치가 한기총의 정치력이 아니던가? 협상도 모르고 타협도 모르고 무식하게 자신들의 정치적인 견해를 하나님의 뜻으로 포장하는 모습이 아마츄어리즘이 아니던가? 기독당은 물론이요, 한기총을 필두로 정치에 뛰어든 많은 기독교인들의 모습이 아마츄어리즘이 아니던가? 그렇기에 정치인들에게 이용당하고 팽당하는 것이 교회의 현실이 아니던가? 그렇게 많은 물적 자원, 인적 자원을 쏟아붓고도 개독교라고, 자신들만 안다고 비난 맏는 것이 아마추어리즘이 만들어낸 현상이 아니던가?

  정치를 외치겠다면, 사회 가운데 교회가 뛰어들겠다면, 겸손한 모습으로 프로 정신을 가지고 뛰어들라. 자세는 한없이 겸손하게, 약자를 살펴보고, 맡겨진 역할이 끝났다면 역사의 뒤편으로 조용히 사라지라. 그리고 시대적인 일이 있을 때, 하나님의 뜻이 있을 때 다시 나오라. 결코 자신의 욕심에 하나님을, 예수님을, 십자가를 소품으로 사용하지 말라. 그리고 실력을 배양하라. 협상의 기술, 전문적인 정치력, 기술을 갖춰라. 이것이 진정한 POLI-CHURCH의 나아갈 길이다. 마지막으로 아모스 선지자의 글을 인용함으로 우리 교회가 사회 가운데에서 제대로된 역할을 감당하길 소망한다.

  내가 너희 절기들을 미워하여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할 것이요 너희의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네 노랫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아모스 5:21~24)

PS. 부끄럽다. 평신도인 저자도 이런 글을 쓰는데, 목회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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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라딘 - 십자군에 맞선 이슬람의 위대한 술탄
스탠리 레인 풀 지음, 이순호 옮김, 정규영 감수 / 갈라파고스 / 200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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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나는 군대에 있었다. 시간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보러갔던 이유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십자군 원정에 대해 다룬 영화이기 때문이다. 온갖 문학의 모티브를 제공했던 십자군 전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리만큼 현대에는 영화화되지 않은 소재이다. 기대를 가지고 보았던 영화였지만 화면외에는 볼만한 것이 없었던 영화였다. 발리안이라는 대장장이와 시빌라 공주의 로맨스가 주축이 된 영화로 십자군 전쟁은 그저 빌려온 배경일 뿐이다. 그저 마지막에 살라딘이라는 이슬람 군주가 나와서 이들을 유럽으로 돌아가게 허락하고 예루살렘을 접수한다는 내용으로 끝을 맺는 영화라는 것만 기억할 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킹덤 오브 해븐"이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그래서 영화를 검색해 보다가 그 때 그 왕이 누구였구나 하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병에 걸려서 죽은 볼드윈 4세, 살라딘, 이벨린의 발리앙을 그렇게 재해석해서 한편의 소설을 만들 수 있다는 서양 사람들의 재치에 놀랐고, 십자군 전쟁이라는 역사에 대해서 그만큼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 부럽기도 했다. 우리는 십자군 전쟁에 대하여 피상적으로 알고 있을 뿐이다. 이슬람에게 빼앗긴 성지를 탈환하기 위해 교황이 유럽의 제후들을 충동질했고 종교적인 열심으로 일어났던 많은 제후들이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려가면서 성지 탈환을 위해 싸웠다는 것, 그리고 결국 그 노력은 실패로 끝났다는 것이 전부이다. 이 모든 것은 서양의 시각에서 기록된 것들이다. 성지 탈환이라는 말 자체도 서양의 시각이다. 역사를 보고, 배우는 과정에서 제일 조심해야 할 것이 바로 이것인데 이 책은 여기에 대한 반동으로 살라딘이라는 걸출한 이슬람의 술탄을 전면에 내세운 책이다.

  십자군 전쟁이 초기에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예루살렘 왕국을 설립할 수 있었던 것들을 이슬람 왕국이 무너져 군웅할거의 시기를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군웅할거의 시기를 마무리짓고 본격적으로 예루살렘 왕국과 십자군과 대적하였던 사람이 바로 살라딘이다. 살라딘이라는 이름은 귀에 참 많이 익은 사람이다. 게임은 물론이고, 영화 문학 작품에도 이슬람을 이야기할 때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사람이다. 이 살라딘에 관해 전기 형식으로 기록한 책인데 보면서 이런저런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된 것이 좋았다. 리처드 왕과 살라딘이 호적수였다는 사실도, 킹덤 오브 해븐에서 처럼 한 컷으로 등장할 정도로 비중이 작은 인물이 아님을 이 책을 통하여 알았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살라딘 재해석에는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구 역사에 대한 반동으로 이슬람의 입장에서 살라딘을 해석하고자 한 의도는 칭찬받을만 하지만 너무 감정적인 면에 치우친 경향이 있다. 역사를 해석 함에 있어서 한 인물을 너무 깎아 내리는 것도 문제이지만 너무 추켜 올리는 것 또한 문제인데 이 책은 살라딘이라는 역사적인 인물을 영웅 만들기에 급급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현실적인, 인간적인 살라딘의 모습이 느껴지지 않는다.

  살라딘의 군사적인 능력 또한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리처드 왕과 싸우고, 십자군들과 싸우면서, 이슬람의 또 다른 와지르들과 싸우면서 그렇게 많이 퇴각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살라딘의 군사적인 능력이 많이 부족했음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오로지 살라딘이 관대해서, 다툼을 좋아하지 않아서라고 기록하고 있다.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전쟁터에서 목숨걸고, 땅을 걸고 싸우는 사람이 적에게 관대하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자기 군사를 죽이는 리처드가 보병으로 싸우다 죽는 것이 안타까운 나머지 말을 보내주었고 자기 병사들을 무찌르도록 도와주었다는 일화조차도 웃음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왜 그렇게 이슬람 군사들이 살라딘의 말을 안들었을까? 이유는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군대는 덕장보다도 지장을 따르기 마련이다. 지장을 따르는 것이 덕장을 따르는 것보다 더 살아날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둘다 겸비하면 좋다지만 목숨걸고 싸우는 군대라면 둘 중의 어느 한 곳을 선택해야 할 때라면 단연코 지장일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살라딘을 기록하면서 덕장임을 계속 강조하고 있는데 군사적인 재능이 없는 살라딘의 단점을 그렇게 감추어 버리는 얄팍한 속임수이다. 십자군 전쟁을 바라보는 서구의 얄팍한 속임수에 발끈하여 감정적인 대응을 하다보니 똑같은 실수를 저질러 버리는 것이 이 책의 저자가 행하고 있는 실수이다.

  마지막으로 책이 참 안넘어간다. 역사책을 두번 연속 읽으면서 이렇게 안넘어가는 역사책은 오랫만에 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번역이 정말 조잡하게 되어 있다. 여기저기 가지치기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원문에 충실하려한 탓인지 독서를 방해할 정도이다. 학생들에게 숙제 내주고 그것을 그대로 모아 살짝 다듬어 책을 낸 듯한 생각을 잠시 해봤다. 또 이 책의 원저자 또한 그리 대단한 작가는 아닌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거지? 왜 이리 쓸데없이 논점을 빗나가지? 문맥은 왜 이리 꼬아놓은 것이야? 왜 횡설수설해?"라는 생각을 너무 자주 하게 되었다. 심심풀이로 한번쯤은 읽어볼만한 책이지만 몇번을 읽을 책은 아니다. 역사에 감정이 개입하면 안된다는 또 하나의 반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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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본 한국사 - 김기협의 역사 에세이
김기협 지음 / 돌베개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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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열심히 봤다. 역사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기 때문에 오랫만에 역사책을 본다는 설레임으로 봤다. 제목도 "밖에서 본 한국사"이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무지 힘들었다. "도대체 내가 왜 이책을 읽고 있는가?"라는 의문이 들면서 책장이 잘 넘어가지 않더라. 350페이지가 안되는 책을 읽는데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도무지 책장이 넘어가지 않아서 딴짓하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 마음이 없다는 것이겠지? 이 책을 읽으면서 "김기협이 도대체 누구냐? 결론이 뭐냐?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지?"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런저런 서평을 찾와 봤다. 마음에 꼭 드는 책이라고 하는데 난 왜 이리 마음이 불편하지? 내가 고정관념에 박혀 있는 것일까?

  국사의 해체를 바란다고 하면서 한국사는 동아시아사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말을 하더만 맞는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동아시아사에서만 한국사를 바라보다 보니 이도저도 아니게 되었다는 것이다. 밖에서 바라보다 보니 내용을 잃어버렸다고 할까? 이 책을 보면서 저자의 논점이 무엇일까 생각을 해봤다. 한국이 살아남은 것은 군사력이 아니라 문화 때문이고, 그 문화에서도 고구려의 것들은 거의 없다는 것이고, 강대국들과의 관계 가운데에서 모질게 살아남은 것이 한국사라는 의미인가? 만일 내가 파악한 것이 옳은 것이라면 무엇인가 문제가 있다. 한 순간에 한국사가 축구공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이리 채이고, 저리 채이는 신세가 되어 버린 것이다. 고구려사가 내 것이 아닌데도 마치 그것이 내것인양 붙잡는 파렴치범이 되는 것이요, 주체 의식 없이 이리저리 채이는 축구공 신세가 되는 것이요, 문화로 오늘까지 살아남은 별종 중의 별종인 것이다. 과연 이것이 한국사인가? 국사라는 국수적인, 애국적인 모습을 버리고 동아시아사에서 바라보는 바람직한 한국사의 모습인가? 웃기는 일이다.

  뉴라이트에서 나오는 한국사 교과서가 문제가 극우적이라 문제가 된다고 한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 교과서나 이 책이나 그렇게 차이가 없다. 그것에 대한 대안으로 국사의 국수주의적 모습을 벗어버린다고 하나 책의 중간중간에 던지는 이야기들이 요즘 보수층들이 말하는 논리와 교묘하게 겹치고 있다. 친일파에 관한 문제들이 그것이다. 항일운동한 사람들을 무작정 영웅으로 볼 것도 아니고 친일파들을 무작정 매도할 것도 아니라는 이야기는 얼마전 친일 인명 사전이 발표된 뒤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던 이명박 대통령의 이야기와 놀랍도록 똑같은 논리를 가지고 있다. 그외 4.19 민주화 운동, 군사 정권에 대한 평가들을 보면서 어이없어서 픽픽 웃기도 했다.

  동아시아에서의 한국사의 위치, 세계화에서 화이부동이라는 말이 이 책의 논점이라 말하는데 왠지 합종연횡으로 들리는 것이 무엇일까? 합종연횡의 마지막이 어떠했는가? 교묘한 말로 국가들의 연합을 꾀했고, 초기에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지만 그 마지막은 어땠는가? 그렇게 경계했던 진에 의한 통일로 합종연횡이 얼마나 실패한 정책이었는지 드러나지 않았는가? 밖에서 본 한국사를 외치다가 그나마 안에 있는 것도 잃어버릴까 두렵다. 더구나 요즘은 국사마저 선택으로 배우는 시대 아닌가? 르네상스도 모르는 학생들이 바글바글한 시대가 아닌가? 그런데 무슨 동아시아사요, 국사요, 세계사인가? 동북공정, 독도 문제 이걸 도대체 어떻게 풀 것인가? 책을 덮는 마음이 씁쓸할 따름이다.

ps.역사 에세이가 도대체 뭔지? 논란거리를 피하기 위해 살짝살짝 말만 던지는 비겁함으로 느껴진다. 차라리 욕먹어도 당당하게 적는 것이 나을 것이다. 이 책을 덮으며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더 한다. "이뭐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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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선거이야기 - 1948 제헌선거에서 2007 대선까지
서중석 지음 / 역사비평사 / 2008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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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총선을 바라보는 마음이 영 시원치 않았다. 그냥 답답한 마음이 느껴지던 선거였다. 정책도 없고, 인물도 없고, 정말 아무것도 없는 선거였다.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는 친박연대라는 이상야릇한 당을 바라보면서 요즘은 개나소나 다 국회의원이야라는 생각을 해봤다. 여전히 내 머릿속에 친박연대라는 이름은 당명이 아니라 이기적인 이합집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느껴지고 있다. 조금은 과격한 말이겠지만 솔직한 심정은 "쓰레기"이다. 정책이 없는 당이 과연 당이던가? 정책과 공약이 없는 정치인이 과연 정치인이던가? 박근혜씨와의 친밀함을 그렇게 강조하는 친박연대의 모습은 영 마뜩치 않아 보인다. 그런데 더 웃긴 것은 그들이 그렇게 기대는 박근혜씨의 이름값이 어디에서 오는가 하는 것이다. 두말할 필요없이 박정희 전대통령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던가? 이책에서 표현된대로 전 세계적으로도 버림받은 독재자, 경제에 실패하여 무너진 그 정권에 기대고 있는 정치인들의 행태가 그저 우습기만 할 뿐이다. 죽은 뒤에 의도적으로 영웅화가 되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망령이 아직도 우리 사회 가운데 뿌리 내리고 있다는 사실이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또한 얼굴이 바뀌지 않는 민노당의 행태를 보면서 진보가 아닌 수구로 전락했구나 생각하면서 심기가 불편해 있었다. 권영길씨가 갑자기 JP의 모습과 오버랩 되면서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하였다. NL계 그 중에서도 골수 주사파들이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민노당을 바라보면서 저러니, 저렇게 북한 분제에 대해서는 금기시 하니 좌빨이라는 소리를 듣지 생각하면서 안타까워하던 중 진보신당이 갈라져 나왔다는 말을 듣고 나름 기대를 갖기도 했던 선거였다. 그러나 혹시나는 역시나였다. 정책이 없으면 여당이 유리하다는 사실이 확연히 드러났다. 역대 최저의 투표율, 거기에 대하여 정치적인 무관심, 경제만 살리면 된다는 말도 안되는 성장주의, 시간을 마치 30년전으로 돌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

  착잡한 마음으로 선거 기사를 읽던 중 어느인터넷 뉴스에서 위의 사진을 발견했다. 역사가 후퇴했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결코 아니다."라는 마음을 심어준 사진이었다. 아직 희망은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 사진이다. 어느 선거구인지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세명의 후보가 경선을 하는 곳인데 내가 보기에도 정말 찍을 사람이 없다. 이번 선거의 특징이 아니던가? 찍을 사람이 없는 것. 그 가운데에서 어쩔수 없이 표를 던지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이 아니던가? 그런데 이 분은 아니었나보다. 선거는 국민의 의무이기에 꼭 해야하지만 맘에 안드는 사람에게 어쩔수 없이 표를 던지는 야합과 현실 포기는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선거는 하지만 찍을 사람이 없으면 기권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모습일 것 같다. 투표율이 적으면 정치인들은 국민을 우습게 본다. 그렇다고 어쩔수없이 표를 던지면 지들이 잘한 줄 안다. 이것에 제동을 거는 방법은 투표는 하지만 맘에 안들면 가차없이 기권표를 던지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몇번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옥석이 구분되지 않을까?

  이 책이 나름 재미가 있었던 이유는 한국 근현대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봤기 때문이다. 선거라는 새로운 렌즈이다. 지금까지 우리의 생각 속에 선거는 부정과 부패가 가득한 진흙탕이라 생각을 해왔는데 저자는 이러한 생각에 대하여 반대를 한다. 지금까지 우리 역사 가운데 선거는 사회를 변혁시키는 역동적인 활동이었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얻은 자유는 그냥 얻은 것이 아니라 몇번의 선거를 통하여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선거의 역동성에 대해서, 선거의 의미에 대해서, 그리고 광복 이후의 사건에 대한 새로운 시각들을 얻게 된 것은 책을 읽는 최고의 기쁨이었다.

  역사상 치러진 선거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못살겠다 갈아보자"라는 구호에서부터 "우리가 남이가"라는 구호까지로 정의하고자 한다. 이승만 정권의 독재에 신물난 국민들이 "못살겠다 갈아보자"를 외치며 자유당 정권을 무너뜨린 4.19가 있었고, 박정희 독재에 신물난 사람들이 갖고 있던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물론 김영삼 전 대통령이 한 말이지만 국민들이 공감했던 구호일 것이다.)는 구호는 박정희 정권을 무너뜨렸다. 신군부는 "요즘은 박사 위에 육사 있다더라"는 구호로 무너졌다. 모두 민주화를 염우너하던 국민들이 선거 시에 외치던 구호들이었다.

  그러나 4자 필승론이 나오는 혼란기에서 오늘까지(나는 이때 민주주의가 오히려 쇠퇴했다고 생각한다.)를 사로잡고 있는 구호는 "우리가 남이가"이다. 충청도에서 김종필, 전라도에서 김대중, 경상도에서 김영삼이라는 지역주의로 대변되는 3김시대가 끝났지만 여전히 우리 안에는 "우리가 남이가"라는 구호가 가득하다. 농담으로 그런 말을 한다. "혈연, 지연, 학연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학연이아." 무슨 말인가? 한국 사회만큼 "우리가 남이가"라는 구호에 목매달고 있는 사회는 없다는 말이다. 서로 돕고 산다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닐 것이다. 약자를 돕는다는 측면에서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이 사용된다면 긍정적이겠지만 이것이 정치로 들어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나라를 망치는 지름길이 된다. 이번 선거에서 여실히 드러나지 않았는가? 그리고 정치인들이 이것들을 여전히 이용하고 있지 않은가? 통합신당의 전라도 표 공략, 한나라당의 경상도 표 공략은 아직까지도 우리가 청산하지 못한 문제이다.

  여기에 더하여 "경제만 살리면 되지"라는 말도 안되는 구호는 박정희의 망령을 오늘에 되살아나게 만들었다. 근혜이즘, MB노믹스라는 말이 쉽게 나오는 시대, 한반도 대운하라는 건설경기 부양을 위한 비상식적인 정책들, FTA, 금산법 완화 및 궁극적으로는 폐지, 삼성 특검 등 중요한 사안들을 바라보면서 마치 우리나라가 박정희 정권 시절로 돌아간 느낌을 받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친일파였다는 사실에 발끈하시는 어르신들, 경제만 살리면 모든 것이 용납된다는 경제 우선 논리, 기업인이면 선처해야 한다는 말도 안되는 사법부, 과연 이것들을 바꿀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선거밖에 없다. 국민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합법적인 도구이기 때문이다. 만일 이것을 막는다면 그 어떤 정권도 붕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제는 선거는 함부로 만질 수 없는 제도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는 것이다.

  비록 이번은 실패한 선거이지만, 그래도 참고 기다리련다. 다음 선거를 기다린다. 마음에 안든다면, 실정을 한다면 다음 심판에서 철저하게 심판하면 된다. 그저 안타까운 것은 너무나 지친나머지, 실망한 나머지 투표를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투표율이 90%가 넘는 시대가 오길 기대해 본다. 그리고 정치인이 정말 머슴이 되는 날이 오기를, 국민 알기를 무섭게 아는 그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ps. 강의안을 가다듬은 책이기 때문에 강의를 녹취한 듯한 느낌이 든다. 조금은 생소한 필체이긴 하지만 그덕에 읽기가 쉽다는 장점이 있다. 어설픈 역사 교과서를 가르치느니 차라리 이 책을 읽게 하는 것이 한국 현대사의 맥락을 잡는데 더 유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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