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의 덫
장하준 지음 / 부키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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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달 전 미국소 수입으로 몸살을 알던 때 정부와 한나라당과 조중동 신문을 비롯한 보수 진영에서 이구동성으로 외쳤던 말이 있다.

“분명 촛불집회에는 북의 지령을 받고 이 나라를 전복시키려는 불순한 배후 세력이 있다. 그들을 찾아내야 한다. 그들이 오늘 이 모든 일의 원흉이다.”

  그리고 촛불집회의 원흉을 찾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다했다. 북이다, 진보세력이다, 빨갱이다, 민노당이다 등등 케케묵은 색깔 논쟁이 다시 불거져 나왔다. 한나라당을 지지하는 층들은 노뽕 좌빨을 외쳤고, 이 땅에 다시 공안정국이 시작되었다. 그 때 아고라에서 다음과 같은 글이 올라왔다.

촛불집회의 진짜 배후를 찾았습니다. 가까운 식육점(?)으로 연락해주세요.

◆ 조선일보 (http://chosun.com) 기사
01. "역시 대영제국"… 광우병 파동에 차분히 대처  1996.04.18 (목)
02. 광우병과 CJD 연관성 입증증거 발견..영과학자  1996.04.25 (목)
03. [영국] 광우병소 도살-소각때 토양-지하수 감염우려   1996.06.11 (화)
04. [유럽] 이번엔 가축 `구제역' 파동   1996.07.15 (월)
05. [광우병 파문] EU, 가축성분 포함 화장품 판매금지   1997.01.21 (화)
06. [보건복지부] 광우병 관련 화장품 수입금지   1997.05.27 (화)
07. [영국] 광우병, 신종 뇌질환 유발   1997.09.29 (월)
08. [토픽] 광우병 겁나 도둑질한 화장품 반납   1997.11.10 (월)
09. [복지부] "CJD 오염가능 혈액제제 610명분 수입됐다"   1997.12.16 (화)
10. [인간 광우병] 10-15년 내 유행 가능   1998.02.12 (목)
11. [사설] 광우병, 제대로 알려야   2001.02.07 (수)
12. 광우병 '맥'빠진 맥도널드   2001.03.15 (목) / 신용관기자
13. [시론] ‘No’ 할 수 있는 장관을 ..... 정진홍   2001.03.25 (일)
14. [광우병소 확인] 일본 축산물 전면 수입금지   2001.09.23 (일)
15. [사설2] 광우병 파동 통상마찰 대상 아니다   2003.12.29 (월)
16. "미국에 광우병 소 더 있을 것"   2004.02.13 (금) / 이동혁기자
17. 미국서 태어난 소 광우병 첫 확인   2005.06.26 (일)
18. KBS 스페셜 '인간 광우병' 방송에 시청자들 충격   2006.10.30 (월)
19. 불가사리 콜라겐 화장품 수산과학원서 개발 출시   2006.07.26 (수) / 권경훈기자
20. 초식동물에게 육식 강요한 인간 탐욕의 말로 광우병   2007.03.09 (금) / 이영완기자 21. [심층 분석] 미국 “일본 빼고 가장 까다로워”   2007.09.06 (목) / 김정훈 기자
22. [모닝커피] 한국 곱창시장 재탈환 나선 미국   2007.11.08 (목) / 금원섭 기자
23. 미국 사상최대 쇠고기 리콜   2008.02.19 (화)

◆ 중앙일보 (http://joins.com) 기사
01. 노화방지 크림 광우병 위험  1999.11.03 (수)
02. 영국, 광우병 관련 환자 계속 늘어  1999.12.19 (일)
03. 영국 광우병 발병 매년 20-30%씩 증가  2000.07.19 (수)
04. 광우병 다른 동물 전염 가능성 우려  2000.08.30 (수)
05. 영·불 각료들 광우병 관련 살인혐의로 기소될 듯  2000.12.29 (금)
06. 수입 화장품업계에 광우병 불똥  2001.01.10 (수)
07. 맥도널드 납품 伊도축장서 광우병 의심 소 발견  2001.01.16 (화)
08. 마가린·햄버거도 광우병 감염 우려  2001.01.29 (월)
09. "우리 선조들 광우병 대비했다"  2001.02.07 (수)
10. 노출된 인간광우병 '빙산의 일각'  2001.05.15 (화)
11. EU, "광우병에 성역 없다"  2001.09.11 (화)
12. 맥도널드 저팬, 광우병 파동으로 타격  2002.03.18 (월)
13. 중국, 광우병 우려로 일본제 화장품 수입금지  2002.07.18 (목)
14. "수혈 광우병 감염 환자 사망"  2003.12.18 (목)
15. "美워싱턴주 작년 7개월간 광우병검사 全無"  2004.01.16 (금)
16. 美농무부 '광우병 소' 자료조작 논란 수사  2004.03.04 (목)
17. 英·美 '인간 광우병' 확인  2004.03.17 (수)
18. 英 정부가 감추고 싶은 59가지 진실  2007.03.06 (화)
19. 국민 10명중 7명 "뼈있는 美쇠고기수입 반대"  2007.10.19 (금)

◆ 동아일보 (http://donga.com) 기사 
01. [美 광우병 충격]日, 濠-뉴질랜드産 쇠고기확보 비상  2003.12.25 (목)
02. [美 광우병 충격]뉴욕타임스 ‘쇠고기 안전하게 먹는 법’  2003.12.25 (목)
03. [사설]‘광우병 쇠고기’ 협상대상 아니다  2003.12.30 (화)
04. [자연과학]‘얼굴 없는 공포, 광우병 그리고 숨겨진 치매’  2007.03.10 (토)

  날 미국소 반대론자들이 주장하는 주장들이 그대로 담겨있다. 차이가 있다면 이 기사들이 과학적 근거로 무장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던 시기가 이명박 정부 시절이 아닌 잃어버린 10년이라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이라는 것이다. 또 하나 차이가 있다면 당시 광우병을 우려하던 사람들이 마치 공수교대를 하듯이 이제는 광우병은 허구라고 말한다는 것 정도? 2년 후배가 그러더라.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벼락 맞을 확률보다 낮다고 하는데 뭘 그리 야단이냐고, 분명이 불순한 세력이 끼어든 것이라고. 그 후배의 나이가 50~60대냐 결코 아니다. 29살이다. 그것도 여자다. 그 후배는 주로 인터넷으로 기사를 접하는데 조중동이 거의 대부분이다. 그 녀석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설마라는 말을 하더라. 보여줘도 안 믿는다.

  원래 내가 조중동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들의 이중적인 잣대가 맘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철저하게 한나라당의 편에 서서 사실을 왜곡한다. 가령 이런 것이다. 헨젤을 잡아 가두고 먹을 것을 잘 챙겨주는 마귀할멈이 있다. 그는 헨젤을 잡아먹기 위하여 살을 찌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헨젤에게 먹을 것을 주는 모습만 놓고 본다면 그는 집을 잃어버린 어린 아이를 거두어 먹을 것을 주면서 자선을 베풀고 있는 것이다. 전자나 후자나 동일하게 사실이다. 그러나 진실은 전자이다. 신문의 역할은 진실을 알리는 것이지만 조중동은 언제나 후자의 행동을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동일한 생각을 갖게 되었다. 하나같이 정부의 시책을 반대하는 것들이었다. “신자유주의를 거부하고, 인간답게 살기 위한 방법이 무엇인가, 대타협이 필요하다, 비정규직을 위해서 어떻게 할 것이냐? 민영화만이 능사는 아니다. 공적 자금을 제대로 회수해야지 뭐하는 것이냐? 국가의 책임을 포기 하냐?” 등등 하나같이 정부의 시책들을 꼬집는 이야기들이다. 오늘날 한겨레나, 경향신문에 실릴 법한 기사들이다. 한나라당이 말하는 경기부양책인 민영화, 고환율 정책, 재산세 인하 등등 어느 것 하나 그냥 놔두는 것이 없다. 하나같이 다 “잘못되었다. 그것이 능사가 아니다.”라는 내용의 인터뷰 기사들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기사들이 여지없이 80%이상 조중동과 문화일보에 실렸던 것들이다. 경향신문이나 한겨레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기 어렵다. 60개의 기사가 거의 대부분 조중동, 문화일보, 한국일보에 실렸던 글들이다. 어쩌다 가끔씩 오마이뉴스와 말지 경향신문이 나온다. 그 빈도수도 정말 극수소이다. 그리고 하나같이 일어버린 10년 사이에 발표된 글들이다. 그것도 “나쁜 사마리아인”이라는 국방부 선정 불온도서를 집필한 장하준 씨의 인터뷰 기사들이다. 오늘날 돌아가는 조중동의 입장에서 이야기한다면 그들은 벌서 오래전에 북의 지령을 받고 자유민주주의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불순분자들이라는 말이다. 하나같이 잡아내서 법의 처벌을 받아야 하는 불순분자들이다. 참 아이러니다. 자기들이 자기들을 불순분자라 공격하는 것이다. 개혁의 덫이라는 책을 통해서 발견하게 된 가장 큰 개혁의 덫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무조건 비난하고, 이명박 정부를 무조건 편들다 보니 자기들 스스로도 어찌 할 수 없는 덫에 빠져 버린 것이다. 한참을 웃었다. 유머집보다 더 재미있는 책이다. 꼭 읽어보길 권한다. 어느 신문에 났던 인터뷰 기사인지도 곡 확인하길 권고한다. 물론 날짜도 확인해 보시라.

  요즘 경기부양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정책들이 이 책에서는 쓰레기 취급을 당하고 있다는 것도 재미있는 요소 중의 하나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참 쉽다. 내용이 깊지 않다. 그래서 얻을 것이 별로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읽어보길 권한다. 이 책을 읽는 순간 당신의 삶에 엔돌핀이 팍팍 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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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 마르지 않는 창조의 샘 - 생각하는 인간에서 놀이하는 인간으로 창조와 상상력의 원천으로서의 놀이 탐구
스티븐 나흐마노비치 지음, 이상원 옮김 / 에코의서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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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장을 넘기기 전에 내 눈을 확 잡아끄는 것은 조금은 민망한 표지이다. 개인적인 민감함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것일지 모르겠지만 누드모델의 뒷모습을 찍은 책표지를 대하면서 가장 처음 느끼는 것은 민망함이다. 하고 많은 것들 중에서 하필이면 왜 이런 민망한 표지일까? 무엇인가 깊은 뜻이 담겨 있는 구성이겠거니 생각하고 넘어가지만 여전히 책을 읽기 위해서 책을 만지작거릴 때마다 민망함이 몰려오는 것은 어찌된 일일까? 아직까지 나는 이 책에 마음을 열지 못했나 보다.

  표지 디자이너가 하고 많은 그림 중에 왜 하필 누드모델 그것도 여성의 뒷모습을 턱하니 첫 페이지에 올려놓은 것일까? 그것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은근히 상상하게 만드는 뒷모습을 말이다. 아마도 표지 디자이너는 책을 접하는 독자들에게 이 사진을 통하여 이 책이 말하는 놀이의 진실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먼저 이 책을 접하고 당혹해 할 나 같은 사람에게 자신이 얼마나 사회적인 시스템에 길들여져 있는지 돌아보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다. 결코 당혹스러울 내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당혹스러워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사회적인 통념에 내가 얼마나 길들여졌는지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책을 읽어가면서 이것이 창조력에 얼마나 치명적인 독이 되는지 알게 된다.

  한 아이가 자라서 자유분방한 시절을 보내다가 학교라는 곳에 들어가고 거기에서 사회화 과정을 밟게 된다. 사회화 과정이라는 것은 그 사람의 창조력을 죽이는 대신 사회가 원하는 관념 체계로 무장된 인간을 대량생산하는 공정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학교라는 곳을 다니고, 친구들을 만나면서 우리는 많은 것들을 습득하게 된다. “친구와 싸우면 안 된다, 교통법규를 어기면 안 된다, 나라를 사랑해야 한다.”는 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렇게 되어 가기 위해서 노력한다. 이 시스템에 잘 적응하면 모범생이라는 딱지를 붙여준다. 마치 숙제를 잘 해온 아이에게 “참 잘 했어요.”라는 도장을 찍어 주듯이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지난 내 학창 시절을 생각해 본다. 나는 그래도 비교적 깨어 있는 선생님들을 많이 만난 편이다. 전교조인 중학교 1학년 때 선생님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전래 동요와 쟁가를 가르쳐 주셨다. 지금이야 사계라든지,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같은 민중가요들이 힙합 버전으로 리메이크 되어 불린다지만 당시에는 접하기 힘든 문화였으며, 왠지 붉은 색으로 매도되는 문화였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14살의 나이에 노찾사를 접하고 노래마을을 접했다는 것은 획기적인 일이었다. 고등학교 역사 선생님은 우리에게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 역사는 돈이라는 강력한 동인에 의하여 움직인다는 간단하면서도 직설적인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다. 대학생이 되고 마르크시즘을 접하고 난 뒤에 그것이 유물론이었음을 알게 되었지만 고등학생 시절, 그것도 대학에 목숨을 걸어야 하는 고3 시절에 유물론을 접했다는 것은 큰 매력이었다. 그분들이 내게 가르쳐 준 것은 의식화도 아니고, 그렇다고 딱딱한 사유체계도 아니었다. 그저 생각하라는 것이었다. 순수하게 배우는 즐거움에 빠져보라는 것이었다. 그런 영향일까, 나는 다른 사람에 비하여 역사를 좋아했고, 국문을 좋아했고, 남들이 잘 안 외우던 서경별곡, 청산 별곡 같은 고전문학을 좋아해 외우고 다녔다. 내가 즐기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유가 없었다. 그저 좋았던 것이다.

  이 책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가장 큰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즐기라는 것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놀이를 즐기는 호모 루덴스라는 말이다. 딱딱한 호이징거의 이론을 생각하고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저 자기의 어린 시절을 떠 올리는 것만으로 충분히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갈 것이다.

  창조력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다. 사교육으로 대변되는 교육 시스템의 횡포 때문에 아이들이 노는 즐거움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요즘 아이들을 보면 참 놀 줄 모른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저 노는 것은 컴퓨터 게임이다. 가수 콘서트를 따라다니며 소리를 지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농구 축구를 열심히 하지도 못한다. 역사와 인문학을 즐기지도 못한다. 오직 그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실용이다. 시험에 출제 되는가 출제되지 않는가, 대입에 유리한가 아닌가, 취직에 도움이 되는가 그렇지 않은가 이것이 모든 일을 바라보고 판단하는 기준이 되었다. 그냥 즐겁고 재미있어서 하는 사람이 많이 줄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창조력이 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평준화가 진리가 된 시기에 예측 불가능한 창조력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는 것이다.

  이 책의 표지가 함축하고 있는 두 번째 의미는 상상하라는 것이다. 표지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드는 민망함이라는 감정의 뒤를 이어 오는 감정은 호기심이다. 뒷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앞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이것은 누가 시켜서 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본능이다. 본능에 충실 하라는 것이다. 호기심은 인간의 본능이다. 제우스신이 에피메테우스에게 판도라를 보내면서 상자를 하나 주었다. 절대 열어보지 말라는 단서와 함께. 그러나 어디 신화에서 절대 금기가 지켜지던가? 판도라는 넘치는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해서 상자를 열었고 그 상자에서부터 많은 것들이 쏟아져 나왔다. 질병을 비롯하여 온갖 악들과 고난이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들이 단순히 악인가? 아니다. 인생을 더 풍요롭게 만드는 요소들이다. 창조를 위한 파괴를 가능하게 만드는 요소들이다. 그것들을 접하고 그것들을 뛰어 넘고 있는 그대로 포용할 때 비로소 인간은 예술이라는 경지를 접하게 되는 것이다. 상상하라. 호기심을 가져라. 그것으로 인해 발생하는 어려움들을 피하려고 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포용하라. 그 단계를 넘으면 당신의 지평은 더 넓어질 것이다.

  마지막으로 책의 표지를 보고 느끼는 것은 가식을 벗어 버리라는 것이다. 옷이라는 가식을 벗어버리고 날 것 그대로 서라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을 날 것 그대로 직면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사회화 과정을 통해서 가면을 쓰는 방법을 배운다. 그러나 가면은 우리의 본성을 죽이는 첩경이다. 모든 가식을 벗어버리고, 페르조나를 벗어버리고 인간 본연의 모습을 직면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놀이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놀이는 가식이 아니다. 직면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창조적인 능력에 대해서, 인간의 본질에 대해서, 인생을 움직여가는 가장 강력한 동인에 대해서 말이다. 인간은 즐기는 존재이다. 유희의 인간이다. 내가 서평 쓰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면 이 시간은 피하고 싶은 시간이 될 것이다. 그러나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것이 거의 유일한 취미가 되어버린 지금, 서평을 작성하는 시간은 나에게 있어서 하나의 놀이가 된다. 즐겨라. 자기의 모습을 날 것 그대로 직면하라. 거기에 진실한 당신의 모습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당신은 결코 마르지 않는 창조의 샘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호모 루덴스! 이 보다 더 인간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말이 어디 있을 것인가?

ps. 호이징거의 호모 루덴스를 같이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나도 다시 읽고 서평을 쓰련다. 그 시간을 생각하면 참을 수 없이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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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의 절망과 희망 정용섭의 설교비평 3
정용섭 지음 / 대한기독교서회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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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사에게 있어서 설교는 그 사람의 인격의 표현이다. 아니 그 사람 자체이다. 설교를 두려워하는 목사는 이미 목사가 아니다. 설교는 참 아름다운 종합 예술이다. 그리고 성령의 역사이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설교는 무엇인가 묘하게 뒤틀려 있다. 저자의 말대로 설교가 어느 샌가 심리학에 물들어 버렸다. 설교가 성령의 자유로운 역사를 제한하는 제약이 되어 버렸다. 설교 시간은 조는 시간 내지는 심리 가연 시간이 되어 버렸다. 시골 시장의 약장수처럼 목소리를 높이고 강압적인 설교를 한다. 만병통치약을 팔고 있다. 이 교회에 다니면 만사형통할 것이라는 카피 문구가 교회마다 넘쳐난다. 삶의 고민은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그러니 설교가 텅 비게 되고, 텅 빈 설교에 은혜를 받는 성도들을 보면서 필자가 느꼈을 절망이 어느 것인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필자는 당당하게 외치는 것이다. 기라성 같은 목사들의 설교를 거침없이 난도질하면서 말이다. 독사의 자식들아, 회칠한 무덤 같은 사람들아 외치며 독설을 퍼붓고 있다. 분명 저자는 세례 요한같은 사람이다. 이 시대의 설교자들에게, 그리고 설교 예비자들에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 외치고 있다. 본질로 돌아가라 외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교수의 말은 한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낼 성질의 것들이 아니다. 분명 귀담아 들어야만 하는 이야기들이 있다. 꼭 필요한 이야기들이 있다.

  그러나 문제는 본질이 무엇인지 모호하다는 것이다. 판넨베르그의 이야기를 하면서 이 교수의 설교와 같은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고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여 이야기한다. 그러나 알고 있는가? 판넨베르그의 설교에도 분명 문제가 있다는 것을. 그의 context가 우리의 context와 다르다는 것이다. 모든 경우에 들어맞는 절대 기준이 설교에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각 사람이 처한 context가 다르기 때문에 text에 대한 해석을 모두 다를 수밖에 없다. 이것은 설교학을 배운 사람이면 누구나 갖고 있는 기초지식이다. 그러나 정교수는 이것에 대하여 인정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니 분명 들을 것이 있는 그의 비평이 비판을 위한 비판으로, 독선으로 들리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한국 교회 강단의 설교가 한계에 부딪혔다는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몇 사람의 설교를 듣다보면 거기에서 거기라는 생각을 자연스레 하게 된다. 아는 목사님이 그런 이야기를 했다. 한국 축구와, 신용카드와 설교의 공통점은 돌려막기라고. 같은 예화, 같은 포맷, 같은 설교문을 가지고 품앗이 하는 목회자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신학 서적보다는 설교집이 많이 팔린다. 전병욱 목사의 설교집은 그 중에서도 베스트셀러이다. 그러나 나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것이 한국 교회에서 먹힌다는 것이 이해가 안 되고, 그 사실이 나로 하여금 서글프게 만든다.

  목회자는 삶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설교도 중요하지만 설교한대로 살아야 한다. 진보냐 보수냐를 떠나서 그 사람의 설교와 삶이 일치가 되느냐가 내가 목사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와 생각이 많이 다른 김동호 목사를 나는 존경하는 것이다. 최소한 그 분은 자기가 설교한대로 살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말이나 제대로 하라는 정교수의 비판은 한국 교회 설교의 절망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말이다. 왜 말한 대로 못사는가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말이나 제대로 해라, 설교나 제대로 하라는 말은 바닥을 치고 있는 한국 교회의 수준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말일 것이다. 나는 여기에서 한국 교회 설교의 절망을 보았다.

  그렇다면 한국 교회의 희망은 무엇일까? 설교에 대한 비평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스스로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위기의식을 한국 교회에서 갖게 되었다는 것이 한국 교회설교의 희망이다. 그리고 묵묵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오늘도 삶의 자리에서 말씀을 부여잡고 고민하는 젊은 목회자들의 삶이 설교의 희망이다. 그들이 있기에 아직 한국 교회에는 희망이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송기득교수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보수적인 설교비평이 나왔다면 이젠 진보적인 설교 비평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설교비평이 독선으로 흐르지 않게 될 것이고 더 발전적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이런 의미에서 이번 책을 읽으며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부록일 것이다. 특히 거침없이 변론하는 조헌정 목사님의 변론은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벌써부터 4권이 기다려진다. 누가 대상이 될 것인가? 그리고 어떤 변론들이 올라올 것인가? 이것이 설교의 희망이 되길 간절히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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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 버린 사람들
나렌드라 자다브 지음, 강수정 옮김 / 김영사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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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도 버린 사람들!!

  제목이 너무나 자극적이다. 어떤 형편의 사람들이기에 감히 신도 버렸다는 말을 쓰는 것인가? 힌두교의 나라 인도는 내게 너무나 생소한 나라이기에 제목만으로 언뜻 다가오지 않는다. 인도에 대하여 알고 있는 것이라면 카스트 제도뿐이다. 카스트 제도에 대하여 내가 아는 것도 "브라만,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의 4계급이 존재하고 그 중 제일 밑바닥에서 온갖 궂은 일을 다해온 것은 수드라다." 이정도? 그저 세계사 시간에 한번 지나가는 말로 들었을 뿐이다. 시험에 나온다기에 달달 외웠을 정도? 계급의 이름가지 외우지만 그 계급이 뜻하는 바를 나는 도무지 알지 못했다. 그저 막연히 수드라라는 억압받는 계급이 있다더라. 그들은 중세 시대의 농노와 같은 신분이었다더라는 정도로 알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을 보고 처음으로 가진 생각은 "수드라에 관한 이야기"이구나라는 것이다. 그런데 책을 펴고 저자의 머릿글을 읽는 순간 그 생각은 여지없이 깨졌다.

  천외천이라고 했던가? 바닥 중에서도 바닥이 있을 줄이야. 그것도 같은 바닥에서 정도의 차이가 아니라 근본부터 다른 바닥이 존재했을 줄이야. 카스트 제도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out of Cast! 그들의 삶이 나를 울게 만들었다. 그저 달리트라 불리우는 카스트에도 들지 못하는 계급이라는 이유만으로 다른 이들에게 인간이길 거부 당하는 그들의 슬픔, 영혼의 분노! 이것이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만드는 이유였다. 이들의 마지막이 어떻게 되엇을까, 이들의 삶은 과연 이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운명이라 받아들이고 순응할 것인가, 아니면 그 운명에 대항할 것인가? 어느새 나는 이들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백조로 변하기 위하여 온갖 아픔을 딛고 일어서는 이들의 삶을 보면서 어느새 나도 그들과 하나가 되어 있었다. "다무! 힘내야 해!"라는 말이 계속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달리트라는 그들에게 주어진 굴레를 부정하고 그것을 벗어나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다하는 다무의 인생여정, 그의 자식 대에 이어지는 입신양명, 그의 손자대에 이어지는 카스트에 대한 완전한 자유! 이것이 그렇게도 꿈꾸었던 다무의 열망이었을 것이다. 자신들을 불가촉천민이 아닌, 가축보다 못한 존재가 아닌 인간으로 봐주길 바라는 것, 이것이 그가 평생을 꾸었던 꿈일 것이다.

  이 책을 보면서 계속 홍길동전이 생각이 났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이라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던 길동이의 넋두리가 다무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서얼이라는 이유로 천대받던 이들, 재주가 아닌 출신 성분으로 인하여 온갖 멸시를 받던 천출들. 오죽하면 그들을 賤出이라 불렀을까? 그 신분의 굴레대문에 사장된 천재들이 어디 한둘이던가? 왕가에서는 천출도 상관이 없으나 왜 그리 양반층에서는 천출을 구분해 냈던가? 왕가는 치외법권 지역이란 말인가? 또같이 한 사람의 목숨일텐데 왜 그리 차별을 받아야 하는 것일까? 그들이 평생을 꿈구었던 것은 입신 양명이 아닐 것이다. 벼슬이 아니다. 그들은 오직 사람이길 원했던 것이다. 그저 한 사람으로 대접을 받는 것이 그들이 원했던 것이 아닐까? 양반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저 한명의 백성으로라도 취급받고 싶은 것이 그들의 열망이 아니었을까?

  비단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시대에는 달리트들이 너무나 많다. 특히 한국에서는 불가촉천민들이 너무나 많다. 불가촉천민이라는 것이 눈에 띄는 사회 현상이 아니지만 우리의 의식 을 지배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 사람들에게 동남아시아 노동자들은 불가촉천민이다. 그들과 옷깃을 스치는 것만으로 병이 옮는 것처럼 유난을 떠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정규직에게 달리트는 비정규직이다. 기업가에게 달리트는 노동자이며, 상위 2%에게 나머지 98%는 달리트이다. 이들과 친분을 섞는 것도, 혼맥을 맺는 것도 절대로 피해야할 일들이다. 정부와 정치인들에게 서민들은 꼭 달리트 같은 존재이다. 허울 좋은 서민이라는 이름을 주고 그들의 말을 절대로 듣지 않는다. 듣는 것조차 금지해야 할 일들이다. 사회 시스템 자체가 정도의 차이만 있지 달리트들을 양산해 내고 있다. 그러나 이 달리트는 가끔 운좋게 그 굴레를 벗어날 수 있다. 학연을 통한 탈굴레는 이 시대 달리트들이 꿈꿀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다. 물론 그 대안도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약간 나은 정도의 현실적인 대안이지만. 물론 조만간 그 길도 유명무실해지겠지만. 그래서인지 대한민국에는 광풍이 몰아친다. 사교육이라는 망령이 이 시대를 지배하고 있다. 그들은 이 시대의 달리트들에게 이 길만이 오지 그릇을 벗을 수 있는 길이라 속삭인다. 이 속삭임에 많은 이들이 넘어가고 있다. 그러나 아무도 주시하지 않는 진실이 있다. 탈달리트라는 것은 인간화를 말하는 것이지, 신분의 상승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탈달리트는 인간이 되고 싶다는 간절한 바램이지 브라만이나 크샤트리아가 되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이 시대 탈달리트를 꿈꾸는 이들은 브라만이 되는 것을 탈달리트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2008년 대한민국이 처한 슬픈 현실이다. 탈달리트를 꿈꾸는 이들에 의하여 카스트 제도가 강화되는 아이러니가 대한민국의 현주소이다.

  이 시점 다무의 인생을 통하여 한가지 사실을 다시 한번 새겨본다. 조선시대 천출들의 바램을 되짚어 본다. 그들이 꿈꾸었던 것은 계급없는 사회이다. 백조가 된다는 것은 오리를 짓밟는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저 한 사람의 인간으로 대우받는 것이다. 인간이 되고자 하는 다무의 소원 그것이 너무나 어려운 대한민국 현실이 내 마음을 무겁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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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 줘 - 이랜드 노동자 이야기 우리시대의 논리 6
권성현 외 엮음 / 후마니타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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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정직한 자의 형통을 믿노라."

  이랜드 박성수 회장의 간증집 제목이다. 그는 사랑의 교회 장로요 성공한 크리스천 CEO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기업가이다. 이 사람의 간증을 예전에 테잎으로 접해본 기억이 있다. 워낙 간증이라는 것을 듣지 않는 나인데 후배의 차를 얻어타고 가던 길에 우연히 듣게 되었다. 정직하게 살지 못하는 크리스천 기업가들이 많고, 하나님이 아닌 이익에 휩쓸리는 크리스천들이 많다. 그러나 자기가 기업을 해보니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는 것이더라는 요지의 간증을 들으면서 속으로 한마디 했다. "웃기네." 그리고 후배에게 말 했다. 왜 이런 불온 테잎을 듣는지 모르겠다고 이런 거 들을바엔 텔레비전에 벗고 나오는 여자 연예인들 노래나 하나 더들으라고. 그게 몇년전 일이다. 홈에버 상암점의 비정규직 투쟁이 일어나기 1년전의 일이가. 그때도 여전히 나는 박성수 회장의 정직한 자의 형통을 믿는다는 이야기를 믿지 않았었다. 예수님을 팔아서 장사하는 모습이 너무 눈에 드러났기 때문이고, 여기에 속아서 한때 이랜드 옷만 사입었던 어리석은 내 10대의 모습이 기억나서였다. "나는 정직한 자의 형통을 믿노라."라는 말은 엄밀히 말하자면 "나는 철저히 정직한 자인척하는 이의 형통을 믿노라."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이랜드 사태를 보면서 참 우리 예수님 안됐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그분이 무슨 잘못이 있어서 욕을 덤탱이로 먹고 있으며 나는 또 무슨 잘못이 있어서 나와 상관없는 이 때문에 내 신앙에 상처를 받아야 하는가?

  작년 이랜드 파업 사태가 한참 진행되던 7월 초교파적으로 기독교인들이 모여서 상암 월드컵 운동장에서 평양 회개운동 기념 성회를 가졌었다. 옥한흠 목사님의 설교 "주여 살려 주시옵소서."를 기점으로 하여 많은 기독교인들이 자기의 죄를 회개하기 시작하였다. 그날 분위기는 너무나 진지하고 뜨거웠다. 자신들의 회를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모습들은 거기에 참석한 많은 이들의 가슴에 깊은 감동을 남겼다.

  그러나 상암운동장 밖, 즉 "주여, 살려 주시옵소서."라는 옥한흠 목사님의 설교가 울려퍼진 그 바로 옆자리에서 또 다른 이들은 다른 의미에서 "주여, 살려 주시옵소서."라며 신음하고 있었다. 그렇게 살려달라고, 자기의 죄를 철저하게 회개하신 옥한흠 목사님께서 키워 놓으신 박성수 장로에 의하여 죽음으로 내 몰린 많은 비정규직자들이 "우리도 일하고 싶다, 살려달라."는 애원의 목소리를 거친 팔뚝질과, 농성으로 이어가고 있었다. 어느 기자가 그러더라. 과연 하나님은 누구의 기도를 들으셨겠느냐고?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이 울었다. 그냥 울었다는 표현이 아니라 정말 많이 울었다. 화장실에서 책을 보면서 울기도 하고, 혼자 방안에서 책을 읽다가 울기도 하고, 사람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기 위하여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기도 했다. 책을 읽는 내내 눈물이 난다. 이랜드 비정규직자들의 삶이 안되서 울고, 그 가족들의 고통이 어떤 것인지 조금이나마 알겠기에 울고, 국가 공원력에 의해서 보호되는 재벌들을 겪으면서 그들이 맛볼 좌절감이 어떤 것인지 충분히 예상 가능하기에 울었다. "나는 정직한 자의 형통을 믿노라."는 박성수 회장의 말장난에 놀아나는 한국 교회가 안되서 울고, 박성수 회장을 강사로 모시고 특별 새벽기도회를 인도하는 사랑의 교회 신자들의 순박함과 오정현 목사님의 의도적인 침묵에 답답해서 울었다. 또한 내가 그렇게 붙잡고 믿고 의지해온, 내가 그렇게 사랑하는 교회가 싸잡아 욕먹는 것이 안타까워서 울고, 십자가를 지신 그분이 다시 십자가를 지셔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되서 울었다. 이래저래 이 책은 울게 만드는 책이다.

  만일 2008년 지금 이 땅에 예수님이 오신다면 어떤 모습으로 오시겠는가? 항상 예수님은 사회 가장 밑바닥에 오셨다. 소위말하는 막장 인생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는데, 2008년 대한민국에 오신다면 어떤 모습으로 오실까? 비정규직자의 모습으로 이 당에 오시지 않을까? 매일매일 똑같은 업무, 그것도 살인적인 강도의 업무와 정말로 쥐꼬리보다 못한 월급. 여기에 신음하는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시지 않으셨을까? 아마 그분도 팔뚝질을 하셨을 것이고, "무임금 무노동 노동자 탄압 총파업으로 맞서리라."고 쟁가를 부르셨을 것이다. 충분히 그러시고도 남을 분이다. 아니 이것을 위해 오셨을 분이다. 십자가에 비정규직 차별, 고강도 노동 저임금, 1%만을 위한 정책, 성차별, 가정경제 파탄 등 수없이 많은 짐을 지고서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셨을 것이다. 비록 그를 따르겠다고 말하는 기독교인들이 이 땅에 천만을 헤아린다고 자랑할지라도 구레네 시몬은 아마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소박한 꿈을 응원해줘" 정말 소박한 이들의 꿈이 절망으로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묻고싶다. 과연 노무현 정권이 개혁정권이였냐고 묻고 싶다. 진정 크리스천 기업가들이 예수의 정신으로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지 묻고싶다. 목회자들이 진자로 예수의 논리를 가르치고 있는지 묻고 싶다. 법 앞에 만인이 평등까지는 묻지 않겠다. 그저 예수님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그들을 똑같은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물어도 대답없는 질문에 마음이 속상하지만 나 혼자라도 응원하련다. 정말 해줄 것이 없지만 그저 책 한권 사고, 기회가 되면 누군가에게 이 책을 사주고 권하고 싶다. 그리고 나만이라도 자본의 논리에 따라 사람을 판단하지 않기 위해 조심하련다. 내가 해줄 수 있는게 이것밖에 없다. 나는 박성수 회장이 아니기에, 나는 정직한 자가 아니기에.

PS. 마지막 4부가 책의 감동을 많이 흐려놓았다. 먹물은 먹물로, 삶은 삶으로 놔야지 먹물이 들어나기 삶이 빛을 잃는다. 가장 아쉬운 점이다. 노동 운동이 어떻고 저떻고는 다른 책을 통해서 이야기했다면 좋았을 것을. 특히 김원씨의 글은 너무 어렵고 학적이고 딱딱해서 여기에 싣는 것이 에러라고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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