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선거이야기 - 1948 제헌선거에서 2007 대선까지
서중석 지음 / 역사비평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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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총선을 바라보는 마음이 영 시원치 않았다. 그냥 답답한 마음이 느껴지던 선거였다. 정책도 없고, 인물도 없고, 정말 아무것도 없는 선거였다.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는 친박연대라는 이상야릇한 당을 바라보면서 요즘은 개나소나 다 국회의원이야라는 생각을 해봤다. 여전히 내 머릿속에 친박연대라는 이름은 당명이 아니라 이기적인 이합집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느껴지고 있다. 조금은 과격한 말이겠지만 솔직한 심정은 "쓰레기"이다. 정책이 없는 당이 과연 당이던가? 정책과 공약이 없는 정치인이 과연 정치인이던가? 박근혜씨와의 친밀함을 그렇게 강조하는 친박연대의 모습은 영 마뜩치 않아 보인다. 그런데 더 웃긴 것은 그들이 그렇게 기대는 박근혜씨의 이름값이 어디에서 오는가 하는 것이다. 두말할 필요없이 박정희 전대통령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던가? 이책에서 표현된대로 전 세계적으로도 버림받은 독재자, 경제에 실패하여 무너진 그 정권에 기대고 있는 정치인들의 행태가 그저 우습기만 할 뿐이다. 죽은 뒤에 의도적으로 영웅화가 되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망령이 아직도 우리 사회 가운데 뿌리 내리고 있다는 사실이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또한 얼굴이 바뀌지 않는 민노당의 행태를 보면서 진보가 아닌 수구로 전락했구나 생각하면서 심기가 불편해 있었다. 권영길씨가 갑자기 JP의 모습과 오버랩 되면서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하였다. NL계 그 중에서도 골수 주사파들이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민노당을 바라보면서 저러니, 저렇게 북한 분제에 대해서는 금기시 하니 좌빨이라는 소리를 듣지 생각하면서 안타까워하던 중 진보신당이 갈라져 나왔다는 말을 듣고 나름 기대를 갖기도 했던 선거였다. 그러나 혹시나는 역시나였다. 정책이 없으면 여당이 유리하다는 사실이 확연히 드러났다. 역대 최저의 투표율, 거기에 대하여 정치적인 무관심, 경제만 살리면 된다는 말도 안되는 성장주의, 시간을 마치 30년전으로 돌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

  착잡한 마음으로 선거 기사를 읽던 중 어느인터넷 뉴스에서 위의 사진을 발견했다. 역사가 후퇴했다고 생각했던 나에게 "결코 아니다."라는 마음을 심어준 사진이었다. 아직 희망은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 사진이다. 어느 선거구인지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세명의 후보가 경선을 하는 곳인데 내가 보기에도 정말 찍을 사람이 없다. 이번 선거의 특징이 아니던가? 찍을 사람이 없는 것. 그 가운데에서 어쩔수 없이 표를 던지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이 아니던가? 그런데 이 분은 아니었나보다. 선거는 국민의 의무이기에 꼭 해야하지만 맘에 안드는 사람에게 어쩔수 없이 표를 던지는 야합과 현실 포기는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선거는 하지만 찍을 사람이 없으면 기권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모습일 것 같다. 투표율이 적으면 정치인들은 국민을 우습게 본다. 그렇다고 어쩔수없이 표를 던지면 지들이 잘한 줄 안다. 이것에 제동을 거는 방법은 투표는 하지만 맘에 안들면 가차없이 기권표를 던지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몇번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옥석이 구분되지 않을까?

  이 책이 나름 재미가 있었던 이유는 한국 근현대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봤기 때문이다. 선거라는 새로운 렌즈이다. 지금까지 우리의 생각 속에 선거는 부정과 부패가 가득한 진흙탕이라 생각을 해왔는데 저자는 이러한 생각에 대하여 반대를 한다. 지금까지 우리 역사 가운데 선거는 사회를 변혁시키는 역동적인 활동이었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얻은 자유는 그냥 얻은 것이 아니라 몇번의 선거를 통하여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선거의 역동성에 대해서, 선거의 의미에 대해서, 그리고 광복 이후의 사건에 대한 새로운 시각들을 얻게 된 것은 책을 읽는 최고의 기쁨이었다.

  역사상 치러진 선거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못살겠다 갈아보자"라는 구호에서부터 "우리가 남이가"라는 구호까지로 정의하고자 한다. 이승만 정권의 독재에 신물난 국민들이 "못살겠다 갈아보자"를 외치며 자유당 정권을 무너뜨린 4.19가 있었고, 박정희 독재에 신물난 사람들이 갖고 있던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물론 김영삼 전 대통령이 한 말이지만 국민들이 공감했던 구호일 것이다.)는 구호는 박정희 정권을 무너뜨렸다. 신군부는 "요즘은 박사 위에 육사 있다더라"는 구호로 무너졌다. 모두 민주화를 염우너하던 국민들이 선거 시에 외치던 구호들이었다.

  그러나 4자 필승론이 나오는 혼란기에서 오늘까지(나는 이때 민주주의가 오히려 쇠퇴했다고 생각한다.)를 사로잡고 있는 구호는 "우리가 남이가"이다. 충청도에서 김종필, 전라도에서 김대중, 경상도에서 김영삼이라는 지역주의로 대변되는 3김시대가 끝났지만 여전히 우리 안에는 "우리가 남이가"라는 구호가 가득하다. 농담으로 그런 말을 한다. "혈연, 지연, 학연 이 세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학연이아." 무슨 말인가? 한국 사회만큼 "우리가 남이가"라는 구호에 목매달고 있는 사회는 없다는 말이다. 서로 돕고 산다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닐 것이다. 약자를 돕는다는 측면에서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이 사용된다면 긍정적이겠지만 이것이 정치로 들어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나라를 망치는 지름길이 된다. 이번 선거에서 여실히 드러나지 않았는가? 그리고 정치인들이 이것들을 여전히 이용하고 있지 않은가? 통합신당의 전라도 표 공략, 한나라당의 경상도 표 공략은 아직까지도 우리가 청산하지 못한 문제이다.

  여기에 더하여 "경제만 살리면 되지"라는 말도 안되는 구호는 박정희의 망령을 오늘에 되살아나게 만들었다. 근혜이즘, MB노믹스라는 말이 쉽게 나오는 시대, 한반도 대운하라는 건설경기 부양을 위한 비상식적인 정책들, FTA, 금산법 완화 및 궁극적으로는 폐지, 삼성 특검 등 중요한 사안들을 바라보면서 마치 우리나라가 박정희 정권 시절로 돌아간 느낌을 받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친일파였다는 사실에 발끈하시는 어르신들, 경제만 살리면 모든 것이 용납된다는 경제 우선 논리, 기업인이면 선처해야 한다는 말도 안되는 사법부, 과연 이것들을 바꿀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선거밖에 없다. 국민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합법적인 도구이기 때문이다. 만일 이것을 막는다면 그 어떤 정권도 붕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제는 선거는 함부로 만질 수 없는 제도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국민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는 것이다.

  비록 이번은 실패한 선거이지만, 그래도 참고 기다리련다. 다음 선거를 기다린다. 마음에 안든다면, 실정을 한다면 다음 심판에서 철저하게 심판하면 된다. 그저 안타까운 것은 너무나 지친나머지, 실망한 나머지 투표를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투표율이 90%가 넘는 시대가 오길 기대해 본다. 그리고 정치인이 정말 머슴이 되는 날이 오기를, 국민 알기를 무섭게 아는 그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ps. 강의안을 가다듬은 책이기 때문에 강의를 녹취한 듯한 느낌이 든다. 조금은 생소한 필체이긴 하지만 그덕에 읽기가 쉽다는 장점이 있다. 어설픈 역사 교과서를 가르치느니 차라리 이 책을 읽게 하는 것이 한국 현대사의 맥락을 잡는데 더 유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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