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투퀴디데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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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에 관심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라고 할지라도 고대 그리스, 특히 아테네와 스파르타라는 이름에는 매우 친숙하다.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고대 그리스 철학과 민주주의의 시초가 된 아테네, 그리고 강력한 규율에 의해 다스려지는 군사 국가 스파르타(우리에게는 스파르타식이라는 말과 영화 300을 통하여 더 잘 알려져 있다)! 이 두 도시는 고대 그리스의 양대 산맥이다.  

  먼저 이 책을 읽기 전에 배경 지식으로 함께 읽어 둘 책이 있다. 역시 천병희 선생이 번역한 헤로도토스의 "역사"이다. 여기에 갈라파고스에서 나온 "살라미스 해전"을 같이 본다면 금상첨화라고 하겠다. 펠레폰네소스 전쟁은 마라톤 전쟁과 살라미스 해전(300은 이 해전의 바로 전 육상 전투이다)으로 대변되는 페르시아의 침공을 막기 위하여 똘똘 뭉쳤던 그리스 도시 국가들이 페르시아 전쟁을 마무리 지은 다음 분열되는 과정, 그리고 그 결과 발생한 26년의 오랜 내전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펠레폰네소스 전쟁을 내전이라고 표현한 것은 페르시아 전쟁이 그리스 vs 비그리스의 구도였다면 펠레폰네소스 전쟁은 그리스 vs 그리스(델로스 동맹 vs 펠레폰네소스 동맹)의 양상을 띠고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함이다.  

  페르시아 전쟁 이후로 해군에 올인했던 아테네는 대 페르시아 동맹의 맹주가 된다. 강력한 군사 대국 스파르타조차도 섬으로 이루어진 그리스라는 환경에서는 아테네를 따라가기 어려웠다. 농경과 중무장 보병을 중시하는 스파르타는 한 곳에 정착하여 안주하는 경향이 강한 반면 바다로 뻗어나가 적극적으로 식민지를 건설하고 교역을 중시하는 아테네는 도리아 민족과 이오니아 민족성의 차이뿐 아니라 해안도시와 내륙도시라는 환경의 차이에도 기인한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페르시아 전쟁이 마친 후 그리스의 세련 판도 형성은 계속되는 페르시아의 위협과 매우 밀접하다. 바다건너에서 호시탐탐 그리스를 노리고 있는 페르시아와의 전쟁은 과거의 경험을 통하여서도 알 수 있듯이 절대적 우위에 있는 해군력이 매우 중요하다.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그 해군력의 정점에 있는 것이 아테네이고 아테네는 이러한 자국의 장점을 십분 발휘하여 그리스의 절대 맹주가 된다. 그러나 이러한 아테네의 비상은 조만간 파탄을 맞게 된다. 페르시아의 위협이라는 불리한 조건을 십분 활용하여 맹주가 된 아테네인만큼 페르시아의 위협이 피부로 와 닿지 않는 순간이 오면 질시의 대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상했던 대로 아테네의 경쟁 상대였던 고린트와 소속 동맹 펠레폰네소스의 맹주와 소속 도시들은 아테네의 식민 정책을 의심에 찬 눈초리로 지켜 보게 되었다. 그렇게 의심이 쌓여 가다가 어느 순간 아주 작은 사건(코린트의 식민 도시가 코린트와의 불화로 인하여 펠레폰네소스 동맹을 탈퇴하여 아테네와 동맹을 맺은 사건, 26년간 그리스를 전란에 몰아 넣을 정도로 중요한 사건은 아니었다)을 계기로 26년 동안 그리스 전역과 시켈리아, 마케도니아, 페르시아를 아우르는 대형 전쟁이 시작된다.  

  이 책은 이렇게 발생한 전쟁에 자세한 경과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투퀴디테스도 자국의 몰락이 마냥 안쓰러웠는지 26년의 전쟁 중에서 그리스가 몰락하기 시작한 21년까지의 역사만 다루고 있다. 그래서 일까 책을 한참 읽다가 결말을 보지 못하고 마무리한 듯한 찜찜한 아쉬움이 남는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이름도 많고, 또 연설문도 기록되어 있고, 지중해 전체의 사건을 동시 다발적으로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고대 그리스의 지리와 지명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책을 읽어 나가는 것이 어렵다. 어떤 분은 이긴 것이 아테네인지 스파르타인지도 헷갈릴 정도라고 하니 어느 정도로 복잡한지 충분히 상상이 갈 것이다. 온갖 사람들의 이야기와 국가간의 복잡한 정치적 상황이 얽혀 있기 때문에 전쟁의 발생 원인과 아테네의 패전의 원인, 그리고 그 결과로 나타난 것들을 명확하게 몇 가지로 추려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자 적어본다. 내가 대단한 역사가도 아니요, 그렇다고 사학 전공자도 아니기 때문에 전문적인 분석은 아니다. 다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을 분석해 보는 것일 뿐이다. 

  첫째 아테네의 몰락은 제국주의적 태도의 한계에 기인한다. 민주주의의 대명사 아테네의 정체는 말은 대명사이지만 실제는 제국주의요, 소수의 이익을 위한 교묘한 과두제라고 할 수 있다. 과두제에 대한 알러지 반응을 일으키는 아테네의 정체가 과두제라?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지만 아테네의 정체는 과두제가 맞다고 생각한다. 근대 유럽의 식민지 정책처럼 식민지는 모국 아테네를 위해서만 존재한다. 아테네에서 정책을 결정하는 시민들 또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일부 유력자들의 거수기 역할 정도밖에 하지 못한다. 다만 이 사실이 교묘하게 가려져 있어서 민중은 모르고 있지만 말이다. 그 순간에도 유력자들은 분명히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유력자들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 잡기 위하여 끊임없이 외부에서 부를 끌어와야 했고, 가장 쉬운 방법으로 제국주의 노선을 택한 것이다. 이러한 제국주의는 초기에는 무리가 없지만 중반을 넘어 후반으로 갈 수록 식민지 획득에 있어서 치열한 경쟁이 발생하게 되고, 이 것은 식민지 획득에 들어가는 비용이 더 커짐을 의미한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되면서 식민지에서 모국으로 유입되던 부는 역전되어 모국에서 식민지로 돌아가게 된다. 다만 그 부의 형태가 군사력과 전쟁이라는 형태로 돌아가 더 큰 비극과 황폐화를 불러올 뿐이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게 되면 제국주의는 막대한 유지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몰락하게 된다. 아테네의 몰락은 이러한 과정을 정확하게 보여준다.  

  둘째 무리한 욕심으로 인하여 몰락했다. 아테네 몰락의 가장 결정적인 전투는 전쟁 후반기 시켈리아 전투라고 하겠다. 반대에도 불구하고 욕심을 이기지 못한 아테네는 시켈리아 원정을 무리하게 감행했고, 여기에서 철저한 실패를 맛본다. 패전은 예기치 못한 불운이 아니라 예견되었던 실패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테네인들은, 그리고 일부 유력자들은 무리한 욕심을 부리고 시켈리아를 먹어치우려다가 배탈이 나고 말았다. 만약 이 원정이 없었더라면 아테네가 스파르타에게 그렇게 쉽게 패배하지는 않았을 것이며, 아마도 전쟁의 주도권을 놓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셋째 공동체 의식의 쇠퇴이다. 지금까지 공동체를 유지하고 있던 미덕들이 기피의 대상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병역을 피하기 위하여 노예를 사서 대신 태운다든지 하는 방법으로 병역을 기피하는 자들이 속출하였고, 오랜 전쟁으로 인하여 중산층이 몰락하여 빈민층으로 전락해 버렸다. 고대 로마도 결국 중산층이 몰락하여 넘어지지 않았던가? 

  고대 그리스 몰락의 모습들이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 속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미국을 본받아 자원을 획득하기 위해 침략 전쟁을 국익이라는 말로 잘 포장하여 해외로 군인을 파병하고 있다. 무리한 욕심으로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진행시키고 있다. 4대강이라는 거대한 먹이는 아마도 대한민국을 국가적 배탈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이끌 것이다. 중산층은 이미 몰락하고 있고, 삼각형의 사회구조가 아니라 8자형의 구조로 이행하고 있으며, 조만간 남미형이 이원화 구조로 재편될 것이라는 비극적인 예견들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전조들을 이곳저곳에서 보게 된다.  

  중국 속담에 "끝나지 않는 잔치란 없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좋은 것들도, 아무리 좋은 시절도 언젠가는 끝이 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끝은 우리의 예상보다 더 빨리 찾아오기 마련이다. 아네테인들이 간과했던 역사적 진리가 바로 이것이다. 언제까지나 영원할 것 같았던 그들의 제국은 몰락했다. 그리고 그들을 몰락시킨 스파르타도 머지않아 몰락했다. 그 뒤를 이러 등장한 수없이 많은 제국들도 결국은 몰락했다. 고전을 통하여, 특히 이 책을 통하여 우리가 명심해야 할 부분이 이것이다.  

  끝나지 않는 잔치란 없다는 역사적인 진리 앞에서 최대한 겸허해지고, 맞을 준비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될 때에만이 역설적이게도 잔치의 끝을 유예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가르침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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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1-09-23 14: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는 오래 전에 '박광순 역'으로 감명깊게 읽었던 책입니다. 천병희 선생님께서 번역하신 이 책도 사두긴 했는데 아직 읽어보진 못했습니다.

saint236 2011-09-23 14:39   좋아요 0 | URL
저는 박광순 역은 읽지 않았는데 모두 읽어 본 사람들은 천병희 선생의 번역이 훨씬 매끄럽다고 하네요.

transient-guest 2011-10-27 0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천병희 선생님의 버젼을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사실 최근에야 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거든요. 기회되는대로 이분께서 번역하신 것을 모두 읽어볼 생각입니다.

saint236 2011-10-27 10:36   좋아요 0 | URL
천병희 선생님의 번역이 깔끔합니다. 읽기도 편하고요. 역사는 아직 못 읽어 봤고요 페르시아 원정기는 오늘 도착합니다.
 
열린다 성경 : 절기 이야기 - 성경의 비밀을 푸는 절기이야기 열린다 성경
류모세 지음, 권혁승 감수 / 두란노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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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에 관한 배경 지식 불필요한 성경 구절이 들어가 양이 늘어났다 후회막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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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1-09-21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굳이 서평을 적을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나중에 4권 전부 묶어서 한번에 서평 작성하련다.
 
열린다 비유 : 포도원 품꾼 이야기 예수님의 비유 시리즈 3
류모세 지음 / 두란노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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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유 시리즈 세번째 포도원 품꾼에 관한 비유에 대한 책이다. 지금까지 교회 안에서 알레고리적으로 해석도어 왔던, 그래서 뭔가 껄쩍지근하게 넘어갔던 비유를 원래 의도대로 해석하기 위한 좋은 길잡이이다.  

  저자는  포도원 품꾼의 비유를 이해하기 위하여서는 당시의 후견인-의뢰인 제도와 선한 눈- 악한 눈의 상용구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만약 이 두 가지에 대한 이해를 간과하고 넘어간다면 우리는 비유의 의도와는 다르게 하나님을 고약한 포도원 주인으로 만들어 버릴 수 있으며, 해방신학자들처럼 성경을 곡해할 위험에 빠지게 된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가 무엇인가? 

  첫재 후견인-의뢰인 제도는 번역상 매끄럽지 못한 번역이다. 그래서 단어의 의미를 제대로 담기가 어렵다. 차라리 시오노처럼 그냥 파트로네스-클리엔테스로 사용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파트로네스는 클리엔테스에게 생필품과 법적인 보호 같은 보호 장치를 제공하는 은혜를 베풀고, 클리엔테스는 파트로네스를 위하여 표와 인적 자원과 같은 사회적인 명예와 권력을 제공해 눈다. 파트로네스-클리엔테스는 로마에서 시작되어 근동에 전래된 개념으로 모든 사회가 이 시스템 안에서 돌아간다. 로마와 속주도, 로마 황제와 헤롯 왕가도 이런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개인적인 관계 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관계도 아우르는 파트로네스와 클리엔테스 시스템은 우리에게는 낯선 것이지만 예수님의 시대와 성서가 씌여지던 시기에는 선거의 4대 원칙만큼이나 명확한 개념이었다. 포도원 주인과 포도원 품꾼도 파트로네스와 클리엔테스 관계에서 이해해야 비유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둘째 선한 눈-악한 눈 상용구의 이해이다. 눈은 심장 곧 그 사람의 심성과 직결되어 있다는 것이 당신의 일반적인 사고이다. 선한 눈은 선한 심성으로 악한 눈은 악한 심성으로 연결이 되는데 악한 심성이라는 것이 왜 문제가 되는가? 성서 시대는 풍족한 시대가 아니기 때문에 일반 대중에 의한 재화의 획득이 어려웠으며, 특별한 사치품이나 소비재의 획득은 거의 불가능하던 시대이다. 이 시대에 특정 물건에 대한 욕심은 단순히 소유의 욕구 차원을 넘어서 그것을 소유한 자에 대한 시기와 질투, 그리고 저주로까지 이어진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하루 온 종일 일해 한 데나리온을 받은 일꾼들이 주인을 악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주인이 타인에게, 즉 자기보다 못한 이에게 은혜를 베푼 것에 대한 불평이요, 원망이요, 저주이다. 그렇기 때문에 포도원 주인이 "너희들 것이나 가지고 꺼져라."고 화를 냈던 것이다. 

  이러한 개념을 이해하고 비유를 다시 한번 읽어보자. 그러면 이 비유는 상당히 정치적으로 익히게 된다. 포도원 주인은 후견인으로서 일하지 못하고, 그래서 빈곤의 상태에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하여 은혜를 베푼다. 복지가 실종되어 버린 사회 속에서 주인은 가진 자로서의 책무를 다한 것이다.(당시 사회 속에서 가진 자가 후하게 나누어 주는 것은 당연한 의무이다.) 주인은 경제 정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각 사람의 필요(모든 사람들이 하루를 빠듯하게 살기 위해 필요한 분량인 한 데나리온, 요즘 말로 치면 최저 생계비라고 할 수 있다.)에 따라서 최저 임금을 보장했다. 물론 여기에서 발생하는 금전적인 피해는 본인이 감수했다. 그런데 원래 한 데나리온의 품삯으로 계약을 한 이들이 이러한 최저 생계비에 반감을 표하면서 웃돈을 요구한다. 이들이 열심인 것은 생존을 위한 최저 생계비 보장보다는 자기의 이익에 더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이다.  

  어디서 많이 보던 모습이 아닌가? 현대의 노조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 있다. 자기들의 월급과 보너스, 이익을 위해서는 똘똘 뭉쳐 연대하면서도 자신들보다 더 못한 처지의 비정규직들, 파견 근로자들, 혹은 아르바이터들을 위하여서는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는다. 회사와 타협할 순간이 오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비정규직들의 생존과 이익을 무시하거나 자신들의 이익과 맞바꾼다. 오늘 노조가 손가락질 당하고, 빨갱이라는 언론의 플레이에 맥을 못추고 당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은가? 포도원 품꾼의 비유는 이러한 행위에 대하여 악한 눈, 악한 자들이라고 규정한다.  

  비단 노조의 문제만은 아니다. 포도원 품꾼들의 행동 양식이 우리의 행동 양식이기도 하다. 나의 이익을 위해서는 목숨을 걸지만 다른 이의 이익, 나보다 더 못한 이들의 생존을 위해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이기적인 우리의 모습 속에서, 그러한 기독교인의 모습 속에서 악한 자들이라는 하나님의 분노한 음성을 듣는 것 같아서 두렵다. 비유의 모순을 통하여 우리를 향해 던지는 하나님의 정의의 화두와 날선 주님의 음성에 가슴 한 켠이 뜨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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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룡 2013-07-30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편협한 사고이군요..보수언론이 만든 귀족노조의 프레임워크(framework)에 사로잡힌 신자유주의적 사고..설령 정규직 노조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파업한다고 해도 전경련, 경총 등이 정치권에 로비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는 것에 절반도 못 획득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관점이 어떤 것인지를 다시 한번 확인하시길...

saint236 2013-07-30 23:11   좋아요 0 | URL
보수 언론이 만든 귀족노조 프레임이라고 하시지만 분명한 사실이 아닌가요? 정규직 노조들이 비정규직들을 배려하지 않았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요. 자본가들이 하는 것보다 덜 악하니 괜찮다는 뜻인지요. 마지막으로 와룡님이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관점이 어떤 것인지 모르겠네요. 제가 잘못봤다고 한다면 님이 보는 예수님의 관점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설득하는 것이 예의가 아닐까요? 느닷없이 이건 아니네요. 다시 생각해보세요라는 무례한 말은...

복음 2013-08-18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지나가다 보고 글을 적습니다. 이 예수님의 비유는 두분의 설명이나 그 글에서 적은 내용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19장 30절의 내용과 20장16절의 내용을 보아 하나의 연결고리가 있습니다. 이 땅의 가치는 서열이 있지요, 그러나 구원에는 우열이 없습니다. 처음 믿은자나 나중에 믿은자나 구원은 동일한 가치라는 것을 예수님은 말씀하고자 하십니다. 구원은 질투의 눈으로 볼 문제가 아니지요. 구원은 선물이요, 상속받는 것입니다.(마19:29)

saint236 2013-08-19 22:10   좋아요 0 | URL
비유를 다른 시선으로 살펴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성경을 해석하는데 이것은 이것이다 여기서 절대 벗어나서는 안된다는 공식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이단으로 흐르지만 않는다면, 일정한 틀만 넘어가지 않는다면 어느 정도 해석의 자유는 있는 것이 아닐까요?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 - 88만원세대 새판짜기
우석훈 지음 / 레디앙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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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무 세대! 돈이 없고, 집이 없고, 결혼을 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이태백! 이십대의 태반은 백수라는 말이다. 취업 5종 세트라는 말도 있다. 취업을 위해 필요한 필수 자격들이란다. 과거에는 토익, 학점, 학벌 3종 세트였는데 요즘은 더 치열해져서 인턴, 아르바이트, 공모전, 봉사활동, 자격증 5종 세트로 늘었다고 한다. 여기에다가 얼마전 우석훈의 88만원 세대라는 명칭까지 더하여지면 20대의 생활이라는 것은 온통 암울하기만 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말!  

  "힘들지? 대학가면 괜찮아. 놀고 싶지? 대학가서 놀아! 열심히 해서 SKY가면 과외해서 학비도 벌고 너희 용돈도 벌 수 있어!" 

  난 20대는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에 있는 말들과는 병아리 눈꼽만큼이지만 거리가 있다. 그러나 IMF가 막 터지고 어렵던 시기에 대학을 입학한 97학번이다. 20대의 청춘이 암울한 암춘(暗春)으로, 온통 새까만 흑춘(黑春)으로 바뀌어 가기 시작한 것이 내가 대학에 입학하던 시기 즈음부터 일 것이다. 눈부시게 푸를 것만 같고, 자유로울 것만 같았던 대학시절, 난 참 많은 방황을 했었다. 학비, 군입대, 아르바이트 경제 문제는 결코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부분들이 아니었다. 더군다나 3남매인 우리는 모두 2년 터울이었다. 내가 대학원에 입학하던 해에 막내가 대학에 입학했으니 지금 생각해도 어떻게 그렇게 무식했었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머리가 조금씩 커지기 시작할 무렵인지라 사회를 바라보는 눈도 삐딱했다. 비록 한 학기이지만 한총련, 학생운동에 열심을 내기도 했었고, 밤을 하얗게 세울 정도로 가슴 시린 사랑도 해보고, 수박 겉핥기나마 막스를 공부하기도 하고. 그 혼란스럽고 힘들던 시절 나를 지탱해 준 것은 세 가지였다. 친구, 신앙, 고궁! 가족에게 못할 고민들도 친구들에게 털어 놓았고(그 친구들이 지금도 연락하는 친구들이다.) 어릴 적부터 믿었던 기독교의 신앙, 그리고 경복궁, 덕수궁 같은 고궁들이 내 피난처요, 휴식처였다. 물론 그덕에 학점은 4.0만점에 3점대를 간신히 방어했지만 지금와서도 후회하지 않는다. 그 시절이, 그 고민이, 그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에 내가 있는 것이고, 내 20대가 단순히 암춘, 흑춘이 아니라 청춘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 교회에서 20대를 볼 때마다 참 힘들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도 교회에 나오는 20대들은 비교적 마음에 여유가 있는 편인데도 불구하고, 참 재미없게 산다. 학원, 학점, 편입, 스펙, 취업 등등등... 언젠가 누가 기도하면서 이런 기도를 했는데 20대들의 삶이 그대로 담겨 있어서 마음이 짠햇었다. "돈은 필요한데 쓸 돈은 없고, 학교는 가야하는데 학점이 안나오고, 취업은 해야 하는데 직장은 없고, 결혼은 해야 하는데 사람이 없습니다." 어쩌다가 푸르디 푸른 청춘이 이렇게 암울하게 되어 버린 것일까? 어쩌다가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 한마디에 주저앉아 펑펑 울고, 위안을 얻는 것일까? 

  IMF가 우리에게서 빼앗아간 가장 커다란 것은 부도, 경제적인 자신감도, 일자리도 아니다. 물론 우리가 잃어버린 그런 것들도 무시할 수 없는 것이지만 가장 가슴아픈 것은 신뢰와 연대가 깨어졌다는 것이다. IMF 이후 10년, 신자유주의 10년은 우리에게 승자독식과 무한 경쟁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우석훈은 이것은 신자유주의의 육화라는 아주 멋들어지고, 새련된 말로 표현을 했다.  

  연대를 외치는 노조도 비정규직 문제에 대하여 무관심하고, 옆 집에서 누가 죽어도 무관심하며, 지하철에서 누가 맞아도 말리는 이 하나 없는 것이 관계가 깨어진 후 우리 사회에 보편화된 비극이 아닌가? 결국 미래에 대한 희망은 관계의 복원, 연대에서부터 나온다는 의미다.(혹 이 연대를 SKY의 연대라고 읽을까 두렵다.) 그런 의미에서 우석훈의 진단은 옳다고 할 수 있다. 

  지금 20대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리더와 진, 권력이나 교섭력이 아니라 방살이에 갇힌 친구들과 같이 밥을 먹을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이고, 그러한 사회적 관계의 복원이다. "혼자라야 마음 편하다."는 친구들을 불러낼 수 있는 우정과 그 친구들을 환대할 수 있는 밥상 공동체가 아닐까 싶다. 그런 다음에야 3무 세대란 말을 없앨 수 있고, '88만원 세대'를 한때의 일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p171) 

  또한 20대 운동이 당사자 운동의 성격을 띠어야 한다는 의견에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아쉬운 것은 현실에 대한 바른 진단과 20대 운동의 바른 방향 제시에도 불구하고 뜬 구름 잡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이다. "자, 모여라. 20대 삶이 어떠냐? 팍팍하지 않으냐? 이대로 있으면 안된다. 너희들 움직여야 한다. 옆에 있는 친구들을 의심하지 말고 믿어라." 그런데 구체적인 방법이 없다. 바라봐야 할 구체적인 깃발이 없다. 20대에게 깃발을 제시하는 것이 주제넘은 짓이라고 생각이 든다면, 그것들은 당사자들이 찾아야할 숙제라고 생각한다면 최소한 40대가 20대를 위해서 어떤 마인드를 가져야 하는가, 어떻게 정책적으로 연대할 것인가에 대해서 제시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88만원 세대를 통하여 문제 제기가 되었고, 이 책을 통하여 문제를 풀어 나가기 위한 "새판짜기"라는 타이틀까지 걸었는데 여전히 정확한 문제제기와 미적지근한 새판짜기에 멈추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88만원 세대를 통하여 만났던 우석훈의 번뜩이는 재치를 이 책에서도 기대했기에 더 실망하고 아쉬워 하는 지도 모르겠다. 선전 혹은 잘 싸웠다는 칭찬보다는 간신히 막아냈다는 말이 다 잘 어울리는 책이다. 저자의 말대로 저자는 수성보다는 공성에 더 어울리는 사람이어서인지도 모르겠다.  

  편집 상 아쉬운 것은 중간 중간 사용되는 어려운 용어를 각주가 아니라 본문에 파란색 배경의 칸에 설명한 것이다. 글을 한참 읽고 있는데 흐름이 끊기는 것이 책의 내용에 몰입하기 어렵게 만든다. 간혹 모르는 단어라고 할지라도 책의 문맥을 통하여 대략적인 개념 이해가 가능하고, 미진한 구석이 있다면 한 단락이 끝나고 난 후에 확인해 보아도 될 텐데 중간 중간에 파란색으로 끼어든 불청객들이 내 눈을 잡아 끄는 통에 전체적인 맥락 이해에 어려움을 주었다. 가능하다면 다음 판을 낼 때 이 부분을 편집하여 각주로 돌리는 것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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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좌파 - 민주화 이후의 엘리트주의 강남 좌파 1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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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결론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이거다. 

  "문제는 빠다." 

  상당히 불편하게 들리는 말이지만 두루뭉술 넘어가지 않으려고, 최대한 내 생각이 솔직하게 담기도록 직설적인 표현을 사용해봤다. 아마 이 제목 때문에 불편한 댓글들이 몇개 달릴지도 모르겠다. 

 책을 펼치기 전에 책 표지를 한번 훑어보라. 오세훈, 박근혜, 손학규, 문재인, 유시민, 노무현, 조국 이렇게 7명의 사진이 책 전면에 포진해 있다. 오세훈과 박근혜는 한나라당의 스타 플레이어요, 손학규는 민주당의, 문재인과 유시민은 친노 세력의, 조국은 진보진영의 떠오르는 스타 플레이어다. 물론 이 사람들보다 단연 돋보이는 군계일학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아직까지도 5공 청문회 시 명패를 투척한 그의 서슬퍼럼이 잊혀지지 않는다. 노무현을 뺀 나머지 6명은 다음 대선 후보로 이름이 심심치 않게 거론되는 사람들이다. 여기에 노무현을 더하여 7명의 특징이 무엇인줄 아는가? "엘리트"이다. 괜히 엘리트 그러니까 모호한 느낌이 든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그들은 팬층을 거느린 정치계의 스타 플레이어들이라는 말이다.  

  오세훈은 그의 무책임한 도박에도 불구하고 믿고 찍어주는 25%의 절대 지지층이 있다. 박근혜에겐 박사모가 있으며 정체도 모호한 친박연대가 있다. 손학규 욕도 많이 먹지만 요즘 그의 주가는 상승세이다. 조만간 손사모가 결성될지 누가 아는가? 문재인, 유시민은 독자적인 팬층은 없지만 노무현의 유산 노사모가 여전히 건재하다. 노무현은 말할 것도 없고, 가장 약한 것이 조국인데 강준만의 말대로 오연호가 나서서 조국 띄우기에 열심이다. 전혀 이름도 들어보지 못했는데, 오마이뉴스와 진보집권플랜이라는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게다가 그의 외모는 엄청난 플러스 요인이 될 것이요, 많은 팬층을 양산해 내는 중요한 자원이 될 것이다. 마치 빌 클린턴이 여성 유권자들의 표를 그의 출중한 외모와 색소폰 연주로 얻은 것과 같이 말이다. 

  왜 책의 내용은 말하지 않고 책 표지만 가지고 꽤 많은 지면을 할애하느냐? 표지가 이 책의 내용을 전부 담고 있기 때문이다. 강남 좌파라는 책의 제목이 너무 강렬해서일까? 자칫 잘못하면 이 책은 강남 좌파냐 강남 우파냐, 강북 좌파냐 강북 우파냐, 분당 좌파냐 분당 우파냐의 좌우 이념 대결을 다룬 책이라 오도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강남이냐 강북이냐, 좌냐 우냐가 아니다. 강준만이 문제 삼고 있는 것은 강북이냐 강남이냐 좌냐 우냐로 구분하고 있는 "파"이다. 나는 이 것을 "파"라고 쓰고 "빠"라고 읽기 때문에 앞으로 리뷰를 작성하면서 "빠"라 쓰려고 한다. 그것이 더 솔직하게 내 생각을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16대 대선에서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든 것은 노사모들의 활약이었다. 당시 돼지 저금통을 보냈던 사람들도 내 주위엔 많았었고, 정몽준의 반칙 기사가 알려지지 못하도록 자발적으로 신문을 치웠던 사람들도 있었다. 노사모라는 단단한 조직은 그 이전에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었던 정치 조직이었다. 전두환에게 사람이 많았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정치조직이라기 보다는 군이라는 특수성이 만들어낸 관계일 뿐이다. 정치판에 새로 나타난 노사모와 비슷한 조직을 찾자면 당시 연예인들을 따라다니던 팬클럽 정도일 것이다. 노사모는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생소한 조직이었지만 그 생소한 조직이 가지는 힘은 막강했던 것이다. 이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비난 심지어는 비판까지도 나서서 막아냈던 사람들도 이 사람들이요, 마지막까지도 노무현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았던 사람들도, 그리고 서거 2주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그를 그리워하며 추모하는 이들도 모두 노사모들이다.(오해하지 마시라. 노무현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전부 노사모는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혀둔다.) 이렇게 노무현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노무현을 대통령의 자리로 올리고 방패가 되어 주었던 사람들을 반대편 진영에서는 비웃음을 잔뜩 담아서 노빠라고 불렀다. 이후 빠순이 빠돌이라는 말은 정치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단어가 되어 버렸다. 

  박근혜는 어떠한가? 마찬가지로 박사모가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한나라당에서 털려나갔던 영남 출신의 정치인들끼리 모여서 친박연대라는 괴상한 정당을 만들었다. 그들이 외쳤던 것은 아주 간단하다. 정책도, 공략도 없다. 그냥 "난 박근혜를 안다. 절대로 배신하지 않겠다.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자. 우리는 반드시 살아 돌아가겠습니다." 이것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 중 많은 이들이 가슴에 금뱃지를 달았다. 지금은 미래 희망 연대라는 이름으로 당명을 바꾸었으나 내겐 여전히 친박연대일 뿐이다. 

  대통령이 되면 으레 하는 일이 하나 있다. 새로운 당을 창당하는 것이다. 대통령을 정점으로 급조된 정당들이 꽤 여럿 된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 분야에서는 정말 탁월한 사람이다. 자기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민주당을 깨고 노무현을 위한, 노무현에 의한 정당 열린우리당을 만들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이 열린우리당도 오래가지 못했다. 새천년민주당도 그렇고민정당,  민자당, 신학국당도 이런 맥락에서 창당되었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이냐면 우리가 수업 시간에 배우듯이 정당은 같은 정치적인 건해를 가지고 뭉치는 당이 아니라 스타플레이어를 중심으로 뭉치는 퍈클럽과도 같다는 말이다. 이런 현상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심화되지 약화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물론 이런 팬들을 중심으로 논공행상이 이루어지고, 나라가 분열되는 것은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 "대인관계에서는 정치 이야기는 금기다"라는 말을 했는데 맞는 말이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아니 친하면 더욱 더 정치 이야기는 하면 안된다. 상대방이 나와 다른 인물을 지지하면 곧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진보냐 보수냐가 아니다. 어느 나라를 가도 진보와 보수가 있다. 물론 수구 꼴통과 무개념 진보도 있다. 그렇지만 정당의 역사가 오래된 곳에서는 정당이 비교적 자기 역할을 잘 감당하는 편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정당이 정당으로서의 기능을 전혀 감당하지 못한다. 한국에서의 정당이란 최장집 교수가 말한 "머신Maschine" 정도의 위상일 뿐이다.(이것을 지적한 최장집 교수가 손학규를 지지하면서 스스로 머신이 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명사의, 명사에 의한, 명사를 위한 정당이 한국 정치가 가지고 있는 최대의 문제이다. 그게 왜 문제가 되냐고? 두 가지의 문제가 있다.

  첫째, 자기가 따르는 스타에 대해 비판적으로 보지 못한다.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고 해도 분명 잘하고 못하는 것이 있다. 잘못한 점에 대해서는 비판을 해야 한다.(분명 비난이 아니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는 이러한 비판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 책의 리뷰를 읽다가 이 사실을 발견했다. 어떤 분은 이 책이 쓰레기라고 한다. 그 이유는 노무현을 비판했다는 것이다. 노무현보다 더 잘못한 다른 이들은 그냥 내버려두고 노무현만 비판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비판은 애정의 또 다른 모습이다. 나는 강준만이 노무현에 대해, 진보 진영에 대해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하며 비판한 것은 진보진영에 대한 애정의 강준만식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러한 애정표현조차 인정하지 않는 독선이 과연 민주주의이기는 한가? 이것은 좌나 우나 마찬가지다. 빠가 넘쳐나는 한국 정치에 민주주의라는 말은 넘쳐나지만 점점 민주주의로부터 멀어지는 것은, 그리고 갈등과 분열이, 골이 깊어지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이유이다. 

  둘째, 정치적인 감각을 무너뜨린다. 정치는 현실 감각이고, 삶의 방식이다. 서로 다른 점들을 인정하고, 토론하고, 이 과정에서 타협을 이끌어 내야 한다. 그런데 한국 정치가 어디 그런가? 일단 단상을 점거하고 본다. 강달프의 공중 부양 신공, 도끼로 문 부수기, 소화기 무단 살포. 국회가 국회가 아니요, 국회의원이 국회의원이 아니다. 국회의원은 국K-1이다. 쌍둥이도 세대차이를 느낀다는데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정치라는 작업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또한 모든 부분에서 마음이 일치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어떤 부분에서는 찬성하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반대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가령 무상 급식에 대해서는 찬성하지만, 반값 등록금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식으로 말이다. 난 홍준표를 싫어하지만 가끔 그가 던지는 말에서 소위 은혜를 받을 때가 있다. 빠들이 넘치는 대한 민국에서 정책별로, 사안별로 토론하고, 타협을 이끌어내는 세련된 정치작업이 가능하겠는가? 절대로 불가능한다. 감히 주군에게 어떻게 불경하게 안된다는 말을 할 수 있는가라는 식의 사고가 팽배한 곳이 대한민국 정치판이 아니던가? 

  강남이냐 강북이냐, 좌냐 우냐를 구분해 보고, 그것들의 의미를 명확하게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그렇지만 이 과정은 필연적으로 이념의 전장으로 우리를 이끌기 때문에 조금은 더 유연한 태도를 갖지 않는다면 안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만들어 낼 것이다. 강준만이 하는 말의 의미는 정확하게 이것이다. 강남이냐 강북이냐, 좌냐 우냐가 문제가 아니라 "빠"가 문제다. 빠가 넘쳐나는 현실은 학연과 지연과 혈연 중심의 패거리 문화를 더 강화할 뿐이다. 이젠 정치를 조금은 "쿨"하게 냉정하게 보자. 

  ps. 문득 예전에 친구와 함께 주고 받았던 농담이 떠올랐다. "그런즉 혈연 지연 학연 이 세가지는 세상 끝까지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학연이라." 성경의 한 부분을 패러디한 것이지만, 너무 정확한 말에 그저 씁쓸할 뿐이다. 또한 마태우스님 말대로 역시 강준만은 밥값은 하는 양반이다. 책값이 아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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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1-09-03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저는 이 책 꽤 잼나고 그렇구나 하는 부분을 가지고 읽었습니다.
세인트 님의 리뷰를 보니, 더욱 일목요연해지는군요. 제목에서
차라리 강남좌파라는 요즘 이슈화되는 표현을 쓰지 말았으면 더 좋았을걸 싶었습니다.
거기에 얽매여, 진짜 말하고 싶어하는 부분을 자꾸 놓치게 되더라구요.

정치파(빠)만 문제겠습니까. 저희 공부하면서 대학원 가는 이유는,
인맥을 만들기 위해서랍니다............ 아하하, 서글픈 현실인거죠.

saint236 2011-09-03 15:08   좋아요 0 | URL
그렇죠 인간이란 관계를 떠나서 살 수 없는데 관계 지향이 아니라 관계가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어 버리는 것이 서글픈 현실이죠. 정치판은 더하고요. 강준만 선생은 이런 사람들을 기회주의적 좌파라고 하시더군요.

루쉰P 2011-10-18 15: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달의 당선작에 글이 올라와 있으셔서 이렇게 찾아와서 읽어보고 갑니다. ^^ 강준만 교수의 사상을 개인적으로 지지하는 사람인지라 세인트님의 글이 마음에 와 닿네요. 무조건적인 칭송만이 있고, 잘못을 지적하지 못하는 것도 꽤나 머리 아픈 일이죠. 앞으로 자주 와서 좋은 글 보겠습니다.
마지막 문장은 너무 웃겼어요. ㅋㅋㅋ 그 중의 제일은 학연이니라..

saint236 2011-10-18 15:41   좋아요 0 | URL
ㅎㅎ 저도 이달의 당선작에 올라간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주진우 기자는 믿음 소망 사랑 그 중에 제일은 소망(교회)이라고 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