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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로폰네소스 전쟁사 ㅣ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투퀴디데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1년 6월
평점 :
역사에 관심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라고 할지라도 고대 그리스, 특히 아테네와 스파르타라는 이름에는 매우 친숙하다.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고대 그리스 철학과 민주주의의 시초가 된 아테네, 그리고 강력한 규율에 의해 다스려지는 군사 국가 스파르타(우리에게는 스파르타식이라는 말과 영화 300을 통하여 더 잘 알려져 있다)! 이 두 도시는 고대 그리스의 양대 산맥이다.
먼저 이 책을 읽기 전에 배경 지식으로 함께 읽어 둘 책이 있다. 역시 천병희 선생이 번역한 헤로도토스의 "역사"이다. 여기에 갈라파고스에서 나온 "살라미스 해전"을 같이 본다면 금상첨화라고 하겠다. 펠레폰네소스 전쟁은 마라톤 전쟁과 살라미스 해전(300은 이 해전의 바로 전 육상 전투이다)으로 대변되는 페르시아의 침공을 막기 위하여 똘똘 뭉쳤던 그리스 도시 국가들이 페르시아 전쟁을 마무리 지은 다음 분열되는 과정, 그리고 그 결과 발생한 26년의 오랜 내전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펠레폰네소스 전쟁을 내전이라고 표현한 것은 페르시아 전쟁이 그리스 vs 비그리스의 구도였다면 펠레폰네소스 전쟁은 그리스 vs 그리스(델로스 동맹 vs 펠레폰네소스 동맹)의 양상을 띠고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함이다.
페르시아 전쟁 이후로 해군에 올인했던 아테네는 대 페르시아 동맹의 맹주가 된다. 강력한 군사 대국 스파르타조차도 섬으로 이루어진 그리스라는 환경에서는 아테네를 따라가기 어려웠다. 농경과 중무장 보병을 중시하는 스파르타는 한 곳에 정착하여 안주하는 경향이 강한 반면 바다로 뻗어나가 적극적으로 식민지를 건설하고 교역을 중시하는 아테네는 도리아 민족과 이오니아 민족성의 차이뿐 아니라 해안도시와 내륙도시라는 환경의 차이에도 기인한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페르시아 전쟁이 마친 후 그리스의 세련 판도 형성은 계속되는 페르시아의 위협과 매우 밀접하다. 바다건너에서 호시탐탐 그리스를 노리고 있는 페르시아와의 전쟁은 과거의 경험을 통하여서도 알 수 있듯이 절대적 우위에 있는 해군력이 매우 중요하다.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그 해군력의 정점에 있는 것이 아테네이고 아테네는 이러한 자국의 장점을 십분 발휘하여 그리스의 절대 맹주가 된다. 그러나 이러한 아테네의 비상은 조만간 파탄을 맞게 된다. 페르시아의 위협이라는 불리한 조건을 십분 활용하여 맹주가 된 아테네인만큼 페르시아의 위협이 피부로 와 닿지 않는 순간이 오면 질시의 대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예상했던 대로 아테네의 경쟁 상대였던 고린트와 소속 동맹 펠레폰네소스의 맹주와 소속 도시들은 아테네의 식민 정책을 의심에 찬 눈초리로 지켜 보게 되었다. 그렇게 의심이 쌓여 가다가 어느 순간 아주 작은 사건(코린트의 식민 도시가 코린트와의 불화로 인하여 펠레폰네소스 동맹을 탈퇴하여 아테네와 동맹을 맺은 사건, 26년간 그리스를 전란에 몰아 넣을 정도로 중요한 사건은 아니었다)을 계기로 26년 동안 그리스 전역과 시켈리아, 마케도니아, 페르시아를 아우르는 대형 전쟁이 시작된다.
이 책은 이렇게 발생한 전쟁에 자세한 경과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투퀴디테스도 자국의 몰락이 마냥 안쓰러웠는지 26년의 전쟁 중에서 그리스가 몰락하기 시작한 21년까지의 역사만 다루고 있다. 그래서 일까 책을 한참 읽다가 결말을 보지 못하고 마무리한 듯한 찜찜한 아쉬움이 남는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이름도 많고, 또 연설문도 기록되어 있고, 지중해 전체의 사건을 동시 다발적으로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고대 그리스의 지리와 지명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책을 읽어 나가는 것이 어렵다. 어떤 분은 이긴 것이 아테네인지 스파르타인지도 헷갈릴 정도라고 하니 어느 정도로 복잡한지 충분히 상상이 갈 것이다. 온갖 사람들의 이야기와 국가간의 복잡한 정치적 상황이 얽혀 있기 때문에 전쟁의 발생 원인과 아테네의 패전의 원인, 그리고 그 결과로 나타난 것들을 명확하게 몇 가지로 추려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자 적어본다. 내가 대단한 역사가도 아니요, 그렇다고 사학 전공자도 아니기 때문에 전문적인 분석은 아니다. 다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을 분석해 보는 것일 뿐이다.
첫째 아테네의 몰락은 제국주의적 태도의 한계에 기인한다. 민주주의의 대명사 아테네의 정체는 말은 대명사이지만 실제는 제국주의요, 소수의 이익을 위한 교묘한 과두제라고 할 수 있다. 과두제에 대한 알러지 반응을 일으키는 아테네의 정체가 과두제라?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지만 아테네의 정체는 과두제가 맞다고 생각한다. 근대 유럽의 식민지 정책처럼 식민지는 모국 아테네를 위해서만 존재한다. 아테네에서 정책을 결정하는 시민들 또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일부 유력자들의 거수기 역할 정도밖에 하지 못한다. 다만 이 사실이 교묘하게 가려져 있어서 민중은 모르고 있지만 말이다. 그 순간에도 유력자들은 분명히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유력자들은 이들의 마음을 사로 잡기 위하여 끊임없이 외부에서 부를 끌어와야 했고, 가장 쉬운 방법으로 제국주의 노선을 택한 것이다. 이러한 제국주의는 초기에는 무리가 없지만 중반을 넘어 후반으로 갈 수록 식민지 획득에 있어서 치열한 경쟁이 발생하게 되고, 이 것은 식민지 획득에 들어가는 비용이 더 커짐을 의미한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되면서 식민지에서 모국으로 유입되던 부는 역전되어 모국에서 식민지로 돌아가게 된다. 다만 그 부의 형태가 군사력과 전쟁이라는 형태로 돌아가 더 큰 비극과 황폐화를 불러올 뿐이다. 이러한 과정을 반복하게 되면 제국주의는 막대한 유지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몰락하게 된다. 아테네의 몰락은 이러한 과정을 정확하게 보여준다.
둘째 무리한 욕심으로 인하여 몰락했다. 아테네 몰락의 가장 결정적인 전투는 전쟁 후반기 시켈리아 전투라고 하겠다. 반대에도 불구하고 욕심을 이기지 못한 아테네는 시켈리아 원정을 무리하게 감행했고, 여기에서 철저한 실패를 맛본다. 패전은 예기치 못한 불운이 아니라 예견되었던 실패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테네인들은, 그리고 일부 유력자들은 무리한 욕심을 부리고 시켈리아를 먹어치우려다가 배탈이 나고 말았다. 만약 이 원정이 없었더라면 아테네가 스파르타에게 그렇게 쉽게 패배하지는 않았을 것이며, 아마도 전쟁의 주도권을 놓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셋째 공동체 의식의 쇠퇴이다. 지금까지 공동체를 유지하고 있던 미덕들이 기피의 대상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병역을 피하기 위하여 노예를 사서 대신 태운다든지 하는 방법으로 병역을 기피하는 자들이 속출하였고, 오랜 전쟁으로 인하여 중산층이 몰락하여 빈민층으로 전락해 버렸다. 고대 로마도 결국 중산층이 몰락하여 넘어지지 않았던가?
고대 그리스 몰락의 모습들이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 속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미국을 본받아 자원을 획득하기 위해 침략 전쟁을 국익이라는 말로 잘 포장하여 해외로 군인을 파병하고 있다. 무리한 욕심으로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진행시키고 있다. 4대강이라는 거대한 먹이는 아마도 대한민국을 국가적 배탈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이끌 것이다. 중산층은 이미 몰락하고 있고, 삼각형의 사회구조가 아니라 8자형의 구조로 이행하고 있으며, 조만간 남미형이 이원화 구조로 재편될 것이라는 비극적인 예견들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전조들을 이곳저곳에서 보게 된다.
중국 속담에 "끝나지 않는 잔치란 없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좋은 것들도, 아무리 좋은 시절도 언젠가는 끝이 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끝은 우리의 예상보다 더 빨리 찾아오기 마련이다. 아네테인들이 간과했던 역사적 진리가 바로 이것이다. 언제까지나 영원할 것 같았던 그들의 제국은 몰락했다. 그리고 그들을 몰락시킨 스파르타도 머지않아 몰락했다. 그 뒤를 이러 등장한 수없이 많은 제국들도 결국은 몰락했다. 고전을 통하여, 특히 이 책을 통하여 우리가 명심해야 할 부분이 이것이다.
끝나지 않는 잔치란 없다는 역사적인 진리 앞에서 최대한 겸허해지고, 맞을 준비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게 될 때에만이 역설적이게도 잔치의 끝을 유예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가르침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