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행복합니다 - 감사와 순종의 사람 구두닦이 전도자 김정하 이야기
김정하.최미희 지음 / 청우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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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행복합니다.

 

  저자는 정말 행복할까? 왜 행복하다는 것일까?

 

  한달전 힐링 캠프를 통하여 알게 된 김정하 목사의 책이다. 연예계의 대표적인 신앙인으로 꼽는 차인표씨가 나와서 "나는 쓰레기입니다."라는 말을 했을 때 왜 저러나 싶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이 내 마음에 큰 감동이 되었다. 자기는 가진 것이 많아서 남을 도울 수 있지만 내가 멘토로 삼고 있는 김정하라는 목사님은 가진 것이 없는 상황에서도 남을 돕는다 했다. 궁금해서 김정하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았다. 예전에 루게릭이라는 희귀병에 걸렸어도 남을 도우면서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고 있던 한 목사님에 대한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는데 바로 그분이었다. 검색 도중 이분의 책이 한 권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급히 이 책을 구매하였다. 예비군 훈련에 들어가서 읽던 중에 많은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분명히 말하지만 책은 꽤 재미가 없다. 일반적인 신앙 서적인지라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에게는 그다지 재미가 없을 수도 있다. 전문적인 저자가 아닌지라 글솜씨도 그다지 좋지 않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형편없다고 하겠다. 일류 설교자들의 설교집이 아닌지라 읽어가는 것이 수원하지도 않고, 김정학 목사님의 부인  최미희 사모님이 거의 대부분 쓴 글인지라 신학적인, 그리고 신앙적인 깊이에서도 많이 부족하다. 그렇지만 이 책이 내 마음에 큰 울림이 된 것은 책의 내용이 아니라 이 책을 쓴 두 사람의 삶의 내용 때문이다.

 

  김정하 목사님은 아주 어렵게 살았다. 결혼하고 어느정도 살림이 펴진다는 생각이 들 즈음에 IMF로 가진 모든 것을 잃었다. 고향으로 낙향해서도 그다지 나아진 것은 없다. 오히려 더 가난해졌다. 교회에서 심방을 오는데 대접할 것이 없어서 길 가에서 호박을 하나 가져다가 죽을 쑤어 대접했다는 글은 가정 형편이 어떠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후 버스 카페를 운영하고 교회의 관리집사가 되어 살림살이가 아주 약간은 나아졌지만 목회의 길을 가기 위해서 이것들을 다 포기했을 때 얼마나 그 마음이 어려웠는지 충분히 이해가 간다. 내가 아버지의 삶을 보면서 그렇게도 힘든 길을 왜 가는지, 차라리 농사를 짓는 것이 낫지 않았겠는가 고민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목회를 하면서 살림 살이가 나아질리 없다. 가족들 모두 생활고에 시달렸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컴패션을 통해서 아이들을 후원하기로 했고, 이를 위해서 구두닦이를 시작했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한국에 이런 목회자도 있구나 싶어서 눈물이 났다. 아들에게 용돈으로 고이 간직해 두었던 헌 옷을 줄 정도로 가난했지만 그래도 베풀 수 있음에 감사했단다. 그런데 왜 꼭 중한 병은 어려운 사람들에게만 쉽게 생기는지.. 이름도 생소한 루게릭이라는 병에 걸렸다. 스티븐 호킹이 걸렸던 바로 그 병이다. 차라리 뇌종양이길 바랐다는 사모님의 말에 진한 아픔이 배어 있다. 이 정도면 대개 삶의 무게에 견디지 못해서 하나님을 원망할 수도 있지만, 아니 원망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만 놀랍게도 두 사람은 행복하단다. 지금 행복하단다.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된다는 말, 병이 일한다는 말을 통해서 지금 행복하다는 말이 가식이 아님을 깨닫게 되자 숙연해진다. 차인표가 자기 멘토라고 당당하게 밝힐 만하다.

 

  교회에서 청년들을 가르치면서 항상 하는 말이 지금 돕지 않는다면 평생 돕지 못한다는 말이다. 크리스천은 남에게 베풀면서 살아야 하는데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이 나중에 돈 많이 벌면, 성공하면, 안정된 직장을 찾으면 돕겠다는 말을 한다. 그렇지만 그 말은 대부분 공수표가 된다. 많이라는 말이 참 애매한 말이기 때문이다. 진정 돕고 싶다면 많이 가지든 적게 가지든 지금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된다. 베풂은 물질의 풍요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풍요에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쫓기듯이 등떠밀려서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말을 하고, 그 말마저도 지키지 않는 사회 지도층의 부도덕함과 뻔뻔함과 비교하여 김정하 목사님의 삶이 얼마나 가치있고 행복한 삶인지 알게 된다.

 

  지금 행복합니다. 이런 나도 하나님의 일에 사용하여 주시니 행복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남을 도울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래서 행복합니다. 김정하 목사님과 최미희 사모님의 삶이 이 시대의 롤 모델이 되기를, 그리고 그런 분과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것이 정말 행복하다.

 

  지금 돕지 않는다면 평생 도울 수 없다는 두 분이 삶으로 보여준 평범하지만 중요한 교훈을 본받고 싶다. 내가 지금 돕고 있는 아이에게 편지 한통 보내지 못했는데 이 기회에 따뜻한, 그리고 희망을 주는 편지 한통을 보내야겠다.

 

  나도 지금 행보해지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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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로 보는 세계사 - 인류의 역사가 새겨진 새로운 세계지도를 읽는다 지도로 보는 시리즈
미야자키 마사카츠 지음, 노은주 옮김 / 이다미디어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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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역사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 50% 세일을 해서 파는 이 책은 충분히 구미가 당길법한 책이다. 그리하여 지도로 보는 세계사와 지도로 보는 중동사를 동시에 구매했다. 그런데 이 책을 보고 난 다음에 실수를 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프리카에서부터 시작하여 유럽, 중동 아시아, 이슬람, 인도를 거쳐 동아시아에 이르는 역사 서술은 뭐하나 참신할 것도 없고, 조선을 청의 속국으로 대놓고 이야기하는 점에서, 그리고 조선의 역사는 중국의 역사에 살짝 묻어가는 먼지 정도로 서술하고 지나갔다는 점에서 속이 상할 뿐이다. 일본사 역시 거의 다루고 있지 않지만 일본사야 국사로 따로 다룰 수도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논외로 친다면 결국 동아시아의 역사란 중국과 일본의 역사 밖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문득 과거에 들었던 친구의 에피소드가 생각이 났다.

 

  친구와 선배가 이스라엘로 여행을 떠났다. 돈이 있을 턱이 없으니 키부츠에서 일을 하면서 여행하는 방법을 택했단다. 한 도시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다른 도시로 이동하던 중에 히치 하이킹을 했단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한 일이지만 당시에는 아무 생각없이 히치 하이킹을 했던 것이다. 동양인인 두 사람을 보면서 유창한 영어로 물아 봤단다. "Where are you from?" 아는 영어인지라 자신있게 Korea라는 답을 했는데 문제는 거기서부터 발생했던 것이다. 그 사람이 코리아가 어디 붙어 있는지 몰랐던 것이다. 그렇다고 한국에 대해서 유창한 영어로 설명할 수 없었던 두 사람은 "Bottom China!"라는 말을 했단다. 다행이 이 말을 알아들은 그 외국인 왈 "Ah! Japaness!" 허걱한 두 사람은 다시 "Up Japaness!"했고 외국인은 "China?"했단다. 그렇다! 그 사람의 머릿 속에는 중국과 일본 밖에 들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두 사람은 중국인과 일본인 둘 중의 하나로 오해를 받게 되었단다.

 

  왜 이 이야기를 끄집어 내는가? 이 책이 꼭 그렇다. 유럽에 비하면 아프리카와 아시아는 없다. 아프리카는 그저 인류가 시작된 오랜 대륙 정도로, 그리고 훗날 유럽의 침략을 받는 무능력한 대륙 정도로 이해된다. 아메리카도 마찬가지다. 북아메리카는 다행이 유럽인들이 정착하여 캐나다와 미국이라는 강대국을 설립한 축복의 땅이 되며 가장 늦게 발견된 오세아니아도 마찬가지 이유로 축복의 대륙이 된다. 남아메리카는 풍부한 자원을 가지고 있지만 뚜렷한 패자가 없어 혼란의 와중에 있으며, 유럽은 세계를 경영했던 축복의 대륙이 된다. 물론 유럽에서도 영국, 프랑스, 독일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동아시아사는 더 빈약하기 이를데 없다. 동아시아는 오래전부터 문명이 고도로 발달했지만 시대의 흐름에 뒤쳐져서 몰락한 이류 대륙이 되며 중앙 아시아의 역사는 아예 증발해 버렸다.

 

  한마디로 이 책에는 뚜렷한 역사관이라는 것이 없다. 지도로 보는 세계사인데 그저 지도만이 있을 뿐이며 지명을 통하여 그 지역에 최초로 정착했던 혹은 큰 영향을 주었던 유럽의 국가가 어디인지를 신변잡기처럼 말하고 있을 뿐이다. 국정 교과서만도 못한 빈약한 세계관으로 무장된 이 책에서 세계사를 읽기란 요원한 일일 뿐이다. 그저 지도를 보는 것으로 만족할 뿐인데 그 지도라는 것도 그렇게 특출난 것은 아니다. 칼라는 하나도 없고, 그렇다고 자세하게 작성된 지도도 아니고 딱 교과서에 들어가기 좋을 정도의 지도이다. 이 정도 책을 반값이지만 돈을 주고 샀다는 사실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지도로 보는 중동사도 돈이 아까워서 보기는 해야하는데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물론 책의 편집도 손이 가지 않게 해 놓았다. 다시한번 역사책에서 중요한 것은 단순한 역사적 사실의 열거가 아니라 뚜렷한 세계관으로 해석해 내는 것임을 깨닫게 해준 아주아주 고마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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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호진맘 2012-05-28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아주 잘 읽었습니다. 뚜렷한 세계관을 가진 역사책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네요. 감사~~

saint236 2012-05-28 00:22   좋아요 0 | URL
뚜렷한 세계관이 없는 역사책은 읽으나 마나한 책이 되겠죠. 지도로 보는 중동의 역사를 샀으니 보기는 해야하는데 고민입니다.

paloma 2012-06-10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민했는데 고맙습니다

saint236 2012-06-11 15:32   좋아요 0 | URL
저도 미리 알았으면 안 구매했을 책입니다.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 - 정치와 죽음의 관계를 밝힌 정신의학자의 충격적 보고서
제임스 길리건 지음, 이희재 옮김 / 교양인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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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 가운데 22번째 자살자가 나왔다. 얼마 전에는 밀양에서 한 할아버지가 분신했다. 조금 더 멀리 보면 한진 중공업의 85호 크레인에서 목을 맨 사람도 있다. 더 멀리 보면 전태일의 분신도 있다. 한진 중공업 노동자들의 자살에 대해 故 노무현 대통령은 "지금은 분신으로 투쟁하는 시대가 아니다."라는 싸늘한 멘트를 날렸던 기억도 있다.

 

  비단 노동만이 아니다. 얼마전 카이스트에서 한 학생이 자살했다. 1년전 같은 학교의 교수와 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대학생만이랴? 중학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불과 몇 달 전 괴롭힘에 견디다 못한 중학생이 목숨을 끊었고, 일진을 무력화 시키겠다고 경찰에서 한창 시끄럽게 학교를 들쑤시고 다녔었다.

 

  생활고에 견디다 못한 일가족이 목숨을 끊는 일도 낯선 일이 아니다. 부모가 목숨을 끊기 전에 자식들을 먼저 죽이는 비전한 현실 앞에서 그저 할말을 잃을 뿐이다. 한편에서는 부모가 너무 비정하다 말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오죽 했으면 그랬겠냐고 말한다. 어찌 되었든 간에 그들의 죽음은 자살로 통계가 잡힌다.

 

  한국의 자살율이 OECD국가 중에 1위라고 한다. 그리고 세계 2위라고 한다. 얼마나 되나 싶어서 자살율 통계를 찾아 봤다. 위키백과 사전에서 데이터를 옮겨 왔다.

 

 

  보통 자살율은 10만명 당 몇명 꼴로 기준을 잡으니 파란 그래프는 자살율을 그 좌측에 있는 숫자는 실제 자살자 숫자를 의미한다. 무측에는 하루 평균 자살자 숫자를 의미한다. 이 데이터를 가지고 계산해 보면 2010년 하루 평균 42.6명 자살은 2시간당 3.55명으로 단순 계산하면 40분에 한명 꼴로 자살한다는 말이다. 내가 서재에 글을 남기는 시간이 평균 40분 정도이니 글을 하나 남길 때마다 한명이 자살한다는 말이다. 이 글을 마무리 짓고 등록하기를 누르는 순간 1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말이니 무섭다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없다.

 

  한국이 자살율이 이렇게 높은 이유가 무엇일까? 연예인들이나 유명인들이 죽어서 이를 모방하는 베르테르 효과? 심신의 연약? 실연? 한국의 자살율이 높은 이유에 대해서 평한 한 블로거의 글을 링크해 본다.(http://huntsun.tistory.com/153) 이 글은 한국의 자살율에 대한 자료를 검색하다가 발견한 글인데 이 책의 내용을 한국적인 상황으로 분석한 글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 흥미가 있는 분들, 혹은 이 책을 읽은 분들이라면 이 글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한국의 자살율이 높은 이유는 흔히 생각하듯이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다. 물론 개인적인 문제로 자살을 택한 사람들도 있지만 정확하진 않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구석까지 몰리다가 어쩔 수 없이 자살을 택했을 것이다. 위에서 열거했던 경우들로서 이들의 죽음은 통계상 자살로 잡히지만 그 내용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자살이 아닌 타살이다. 그것도 살인범이 존재하는 개인적인 살인 사건이 아니라 이 사회가 살인자인 사회적인 타살이다.

 

  의사 제임스 길리건은 자살과 폭력에 대해서 꽤 흥미있는 연구를 진행했다. 그 연구의 결과가 이 책이다. 200페이지 분량의 짧지 않은 책, 그것고 의사가 기록한 전혀 정치적이지 않을 것 같은 책이지만 그 내용은 매우 정치적인 책이다. 미국의 자살과 폭력을 단순히 개인의 차원에서 이해할 것이 아니라 정치 사회 문화적인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꽤 흥미롭다.

 

  공화당이 백악관을 차지했을 때 미국의 자살율과 폭력에 의한 살인율이 올라가는 것과 민주당이 백악관을 차지했을 때 자살율과 폭력에 의한 살인율이 내려가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인가? 여기에 대한 질문과 답변이 "왜 어떤 정치인은 다른 정치인보다 해로운가?"라는 책 제목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길리건은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공화당의 정책은 실업과 같은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수치심을 유발하고 이 수치심이 내부로 향할 때는 자살로, 외부로 향할 때는 살인으로 나타난다고 해석한다. 반면 민주당이 정권을 잡아 양극화를 약화 시키고 팽창 경제 정책을 진행할 때 수치심이 약화되거나 혹은 수치심을 느끼더라도 직업이라는 지지대가 있기 때문에 자살율과 살인율이 내려간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투표라는 행위는 단순히 주어진 권리를 행하는 차원을 넘어서 개인이 죽고 사는 문제까지 결정하게 되는 매우 중요한 행위라는 말이다. 자세한 내용은 책을 보면 이해가 될 것이고 책을 다 읽고 난 다음에 한 가지 생각해 보고 싶은 것은 이것이다.

 

  기형적으로 높은 한국의 자살율은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길리건은 미국의 폭력 치사의 기준을 19.4명으로 잡았다. 폭력 치사는 자살율과 살인율을 합산한 수치이다. 길리건이 19.4명을 기준으로 잡은 것은 의사답게 전염병을 기준으로 잡은 것이다. 기준선 이상을 넘어서 25~26명 선에 육박하게 되었을 때 이는 꽤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하는 길리건의 주장을 있는 그대로 옮겨온다면 한국의 2010년은 거의 자살 공화국 수준이다. 폭력 치사도 아닌 자살율만 놓고 볼 때에도 한국은 이미 31명을 넘어선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길리건의 해석을 따르자면 한국의 정치지형은 철저하게 공화당편에 서 있다는 말이 된다. 양극화의 심화, 실업의 증가, 수치심의 강화(특히 한국 사람들은 수치심을 강하게 느끼는 문화 속에서 살고 있다.)가 지속적으로 이어지니 자살율이 내려올리가 없는 것이다. 진보를 자청하면서도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분신으로 투쟁하는 시대는 지났다."는 故 노무현 대통령의 말은 한국의 지형과 사회가 어느 위치에 서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예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결론에 이르게 된다. 실업으로, 막다른 골목에 몰려서 수치심 때문에, 존재 이유의 상실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들의 죽음은 자살이 아닌 타살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이 사회가 모두 공범인 사회적인 타살이라는 말이다. 이런 냉혹한 현실 앞에서 우리는 무슨 말을 할 수 있는가? 나는 어떤 위로를 할 수 있으며,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정치권은? 언론은? 교계는? 그리고 한국 교회는 과연 어떤 위로의 말을 건넬 수 있을 것인가? 자살은 용서받지 못하는 죄라는 말로 그들을 두번 죽일 것인가? 약자라 도태된 것이라면서 자기 갈 길을 바브게 갈 것인가?

 

  총선을 치렀고, 대선을 치를 우리는 이들 앞에서 진지하게 대답해야 할 것이다.(참고로 다른 나라의 자살율도 첨부한다. 이 또한 위키 대백과 사전에서 가져 온 것이다.)

 

 

  한국이 단연 TOP이다. 참고로 2010년 세계 자살율 1위는 리투아니아로 31.5명이다. 한국의 자살율은 OECD 평균의 3배이며 노인과 청소년 자살의 비율이 높다. 청소년 사망 원인 2위는 교통사고이고 1위는 놀랍게도 자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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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큐리 2012-05-07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이 살고 싶지 않은 사회...사람에 대한 가치가 없는 사회니까요..

saint236 2012-05-08 00:24   좋아요 0 | URL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요즘 심각하게 생각해 보고 있습니다.

잉크냄새 2012-05-07 1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사회는 자살을 개인의 영역으로 치환시켜 버리고 마네요.

saint236 2012-05-08 00:25   좋아요 0 | URL
그래서 자살자는 의지박약으로 낙인찍어 버리죠. 책임회피요 유체이탈 화법입니다.

transient-guest 2012-06-01 0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을 멘붕상태로 몰아가는 것에 대한 책임이 더 클텐데 말이죠. 자살하는 그 당시의 심리상태는 이미 정상상태가 아닌거죠, 의지의 문제를 따질 수 없는...

saint236 2012-06-05 11:14   좋아요 0 | URL
개인의 의지만으로는 불가능한 영역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 부분을 인정할 때 국가가 감당해야할 영역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인데 말입니다.

12ㅂㅈ 2012-06-03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사람이 살고 싶지 않은 사회... 공감가는 대목이네요..

saint236 2012-06-05 11:14   좋아요 0 | URL
대한민국이 사람이 살고 싶은 사회가 되기를 원하는데 자꾸 반대로 가는 것 같아서 속이 상합니다.
 
진보의 재탄생 - 노회찬과의 대화
노회찬 외 지음 / 꾸리에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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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泥田鬪狗!

 

  쉽게 말해 개싸움이라는 말이다. 원칙도 없고 서로를 물고 뜯기에 급급한 개싸움!

 

  통합진보당의 현 모습이 딱 이렇다. 원칙도 없다. 진보라는 말에 걸맞게 원칙이나 도덕도 없고 오로지 자기 계파의 실익을 위해 물고 뜯는 통합 진보당의 개싸움은 많은 이에게 실망을 안겨 주기에 충분하다.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예비군 훈련을 마치고 돌아왔기 때문에 무슨 상황이 있었는지 잘 몰랐다. 동생 페이스북에 들어가니 왜 이러냐, 실망이다는 멘트를 봤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서 댓글을 검색하다보니 동생의 지인인듯한 사람이 PD들 하는 짓 변하지 않았다는 독설이 적혀 있었다. 순산 발끈해서 "NL도 마찬가지! 문제는 NL이냐 PD냐가 아니라 어설프게 봉합되었기 때문에 언젠가는 터질 일이었따"는 요지의 짧은 댓글을 달아 놓고 나왔다. 집에 돌아와서 시간이 나자 뉴스를 검색하기 위해 DAUM에 접속했다. 찾기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보수 언론에서 이때다 싶어서 통합 진보당을 깎아 내리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내가 이번 사태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 이유는, 그래서 이렇게 늦은 시간 할 일을 뒤로 미루고 끄적거리고 있는 이유는 예비군 훈련에 들어가서 진보의 재탄생이라는 이 책을 봤기 때문이다. 그동안 사놓고 보지 못한책 읽겠다고 자뜩 싸들고 들어가서 3권 일고 왔는데 그 중에 하나가 이 책이다. 대담집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그래서 장하준을 타이틀로 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를 사지 않았다) 대담의 주인공이 노회찬이었기 때문에 구입했고, 약간은 지루하지만 끝까지 읽었다. 책은 노회잔과 김어준, 변영주, 진중권, 김정진, 홍기빈, 한윤형, 홍세화의 대담에 노회찬을 응원하는 노회찬의 팬 우석훈의 글이 적혀 있었다. 노회찬의 일상을 물고 늘어지면서 노회찬의 드라마가 노회찬이라는 정치인 나아가 진보의 이미지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김어준의 가볍지만 허투루 들을 수 없는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이 땅의 진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묻는 홍세화와의 철학적인 대담까지 약간 지루하긴 하지만 어느 하나 지나칠 수 없는 꼭지들로 가득차 있었다. 일식집 요리사에게 특별 대접까지 받는 정치인은 노회찬 밖에는 없을 것이라는 우석훈의 이야기에 이르러서는 괜시리 눈물이 났다. 이 땅에 참 괜찮은 정치인이 하나 있구나라는 자기 위안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 나는 노빠다. 노무현의 노빠가 아니라 노회찬의 팬 노빠다. 그렇지만 난 노회찬의 모든 것을 추종하는 노빠는 아니다. 그의 잘못은 충분히 잘못했다고 비판하는 비판적인 노빠다. 개인적인 생각인지 모르지만 노회찬에겐 이런 노빠가 더 잘 어울인다. 대부분의 노회찬을 지지하는 노빠들은 이런 사람들이리라.

 

  내가 노빠라고 분명히 말하지만 그의 말 가운데 두 가지만은 분명히 짚고 넘어가고 싶다. 여기에 내가 기꺼이 그를 지지하면서도 비판하는 노빠가 되려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첫번째는 87년에는 정치 민주화를 이야기하는 6월과 요즘의 화두가 되는 경제 민주화를 말하는 7월과 8월이 분리가 되어 있으며 7월과 8월은 87년애서 철저하게 지워졌다는 말이다. 여기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만약 당시 독재 정권을 물리친 기쁨에 일찍 샴페인을 터뜨리지 않았더라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자각이 있었더라면 민자의 탄생도(요즘 이슈가 되는 민자는 아니다) 없었을 것이다. 설혹 있었더라도 그렇게 속보이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철저하게 고립된 7월과 8월은 과연 어디로 갔으며 그 일을 위해서 소위 진보라는 사람들은 무엇을 했는가? 7월과 8월을 등에 업고 그저 자파의 실속을 차리기 위하여 욕해대던 그들과 동일한 궤적을 걸어오지 않았던가? 그나마 7월과 8월을 의식하고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온 사람을 꼽자면 정치권에선 노회찬 심상정 정도가 아니겠는가? 그들이 오늘까지 서민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가 아니겠는가? 87년 7월과 8월에 빚진 마음을 가지고 그 완성을 위해서 아직도 투쟁하고 있는한 나는 노회찬의 노빠요 심장정의 심빠가 될 것이다.

 

  7월과 8월을 등에 업고 출발한 민주노동당에 대해 내가 삐딱한 시선을 보내는 첫번째 계기는 권영길이었다. 그가 3번째로 민노당의 대권 후보로 나왔던 순간 엄청나게 실망했다. 마치 자기만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식의 교만함이 느껴져서 일까? 만약에 노회찬이, 심상정이 이런 길을 밟아 간다면 나는 기꺼이 그들에 대한 지지를 철회할 것이다. 오늘날 그들의 위치는 그들이 잘나서가 아니라 그를 지지하는 이들이 7월과 8월의 지속을 바라보면서 나아가 완성을 바라보면서 만들어준 자리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민노당의 분당과 통합 진보당으로의 합당, 그리고 개싸움이다. 첫번째가 지지의 이유라면 두번째는 비판의 이유이다. 노회찬, 심상정, 조승수의 민노당 탈당과 진보신당의 창당은 솔직하게 이변은 아니었다. 그저 올 것이 왔다는 정도? 진보가 할 일이 NL계열의 일만 있겠느냐, 왜 PD계열의 이야기들은 전혀 들리지 않느냐라면서 민노당에 실망해 갈 때 일심회 사건이 일어났고 그 일을 처리하는 민노당을 보면서 실망을 넘어 환멸을 느끼기도 했다.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인정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철저하게 자기 편을 살리겠다는 패거리주의를 보면서 민노당이 한나라당과 다른 점이 무엇이냐 반문했다. 선거를 앞둔 시점에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분당했고, 노회찬 심상정 모두 18대에서 떨어졌다.(김어준의 말대로 역전의 노회찬이 젠틀한 이미지의 엘리트 홍정욱에게 진 것이다) 그렇지만 노회찬 심상정은 김어준의 말대로 떨거지가 되었지만 신념을 지키는 모습이 좋았다.

 

  그런데 약한 진보 세력을 더 약화시키는 몹쓸 사람들로 욕까지 먹어가면서 정치적인 신념을 가지고 진보신당을 만들었는데 뚜렷한 이유도 없이 통합 진보당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모였다. 진보신당과 민노당의 조합만큼 노회찬과 유시민의 조합도 뭔가 이상했다. 정권 창출을 위해서는 야권 연대를 해야한다는 필요성에 의해서 어설프게 봉합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노회찬에 대해서 처음으로 실망했다. 결국 평당원으로 남길 원했던 홍세화가 대표를 맡으면서 외로운 싸움을 시작한 진보신당은 3%의 지지율을 얻지 못하고 해체될 위기에 처해 있다. 위헌 소송을 냈지만 지금까지의 선례에 비추어 본다면 진보신당의 해체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눈을 부릅뜨고 이 책을 뒤져봐도 노회찬이 통합에 반대하는 진보신당의 당원들을 버려두고 통합 진보당에 합류한 정당한 이유를 찾지 못했다. 반MB라는 요청에 어설프게 봉합되었다는 느낌만 더 강해질 뿐이다. 아니나 다를까! 드디어 사태가 커졌다. 언론이 사안을 더 키워가고는 있지만 이 사태의 근본 원인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자파 사람은 반드시 살린다는 패거리 주의가 더 기승을 부릴 뿐이다. 가카의 꼼꼼함을 비난하려면 꼼꼼하면 안된다. 새누리당의 패거리 주의를 비난하려면 최소한도로 본인은 패거리 주의를 청산해야 한다. 그런데 청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게 과연 진보인가? 진보의 재탄생을 말하는 노회찬의 모습일까?

 

  난 지금이라도 노회찬 심상정이 진보신당으로 돌아가기를 원한다. 진보신당을 지지하지만 어쩔 수 없이 통합 진보당을 찍은 내가 차마 면목이 없어서 할 말은 아니지만 말이다. 대담했던 사람들 중에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본인은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을 가장 싫어한다고. 생각이 다른데 진보라는 바운더리 때문에 억지로 연합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맞는 말이다. 진보는 분열해야 한다. 니체의 말대로 "괴물과 싸우다가 괴물을 닮아가는 것은 슬픈 일이다." 진보가 분열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새누리당과 싸우다가 새누리당을 닮아가는 진보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그래서 계속 초심으로 돌아가게 만들기 위해서는 진보 안에도 기존의 진보에 대한 견제의 기능을 하는 또 다른 진보가 있어야 한다. 이게 진정한 진보의 재탄생이 아닐까?

 

  개싸움에 이래저래 입맛이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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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12-05-07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잘 읽었습니다. 본문의 내용과는 별개로 이번 이정희 의원과 통진당 사건 관련하여 그 진실된 진위에 대하여 읽어볼만한 내용이나 사설이 있을까요? 제가 기본적인 앎이 부족하다 보니 지금 이런 저런 매체를 통하여 접하게 되는 내용의 진위조차 구별이 힘드네요. 괜찮으시다면 부탁드립니다.

saint236 2012-05-08 00:29   좋아요 0 | URL
아마 이번 호 시사인에서 다루지 않았을까요? 일간지보다는 주간지가 좀 더 깊이 다루고 있으니 주간지를 추천합니다. 기사 검색도 일심회 사건(민노당과 진보신당의 분당의 직접적인 원인)과 당권파에 대한 기사도 두루 검색해 보세요. 내일 나올 시사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역사에게 길을 묻다
이덕일 지음 / 이학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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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때부터 역사를 꽤 좋아했었다. 이유는? 단순하다. 학교 곳곳마다 비치되어 있던 책들이 대부분 역사책이었기 때문이다. 위인전기를 비롯하여, 어린이 삼국사기, 어린이 삼국유사 등등 학급문고로 비치된 책들은 대부분 역사책이 아니면 세계 문학 전집이었다. 시골에서 읽을 거리가 많지 않았던 덕택에 이런 류의 책들을 거의 섭렵하게 되었고 그 덕일까? 중학교 고등학교 시간에 배우는 역사가 단순히 시험을 치르기 위한 암기 과목으로 생각되지 않았다. 친구들은 외울 것이 많아서 공부하기 싫다고 했는데 나는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하나하나 배워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중학교 시절에는 전혀 몰랐던 역사적인 사실을 배워간다는 재미가 쏠쏠했고, 고등학교 시절에는 역사를 해석하는 법을 배워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게다가 고등학교 역사 선생님은 꽤나 독특하신 분이셨다. 지금까지도 역사 교사 모임에서 활동하고 계시고, 지역의 문화 유산이나 역사적인 유산들을 널리 알리는데 힘을 쓰고 계시는 분이다.

 

  역사가 얼마나 재미있었던지 수학 공식 하나, 영어 단어 하나를 외우기에도 빠듯한 고등학교 시절에 단재 신채호 선생의 책들이나 한단고기와 같은 책들을 구해서 읽게 되었다. 궁금한 것들은 수업시간에 묻기 위해서 역사 시간을 그렇게나 기다렸다. 역사 선생님도 보통은 왜 그런것 보냐 영어 단어 하나라도 더 외워라 하지 않으시고 정사와 야사, 식민사관과 민족사관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해 주셨다. 사람들의 이름이나 학파의 흐름이 어땠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공부하던 국정 교과서가 식민사관에 의해 만들어진 것임을 알게 되었다. 한사군의 위치에 대해서도 국사 교과서에서 이야기하는 한반도 설과는 다른 설이 존재함도 알게 되었다.

 

  대학을 들어가서도 역사에 대한 관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더군다나 지연의 끈으로 얼떨결에 끌려 들어갔던 동아리가 맑시즘을 비롯한 인문사회 과학 서적을 읽던 동아리였기에 모든 것을 비판적인 눈으로 읽을 것을 주문받았다. 그러다 보니 역사서적을 보는 눈이 약간씩 삐딱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삐딱한 시선으로 사회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때론 역사 속에서 오늘을 보기도 하고, 이대로 가면 어떤 내일이 올지에 대해서도, 그리고 어떤 의도로 뜬금없이 역사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제 역사는 단순히 역사가 아니라 오늘을 비춰보는 거울이 된 것이다. 쉽게 말해 역사는 파워 게임의 연장선상에 있었던 것이다.

 

  중국의 동북공정이 단순히 고구려의 역사를 연구하는 학술적인 목적이 아니라 고도로 정치적인 목적에 의하여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그 때쯤이다.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고구려를 주제로한 역사 드라마가 쏟아져 나온 것도, 담덕을 주인공으로 하는 만화책이나 소설책이 쏟아져 나온 것도 비슷한 때이다. 역사에 대한 고증이라는 그럴듯한 포장지를 한꺼풀 벗겨내니 그 안에는 치열한 영토 전쟁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서북공정도 독도문제도, 신장 자치구와 몽골의 문제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비단 타국과의 문제만이 아니다. 한국 내에서도 자신들의 정치적인 입장을 역사를 통하여 우회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과거사 청산의 문제는 단순히 친일 부역의 청산이 아니라 이로 인한 현 기득권의 재배치 문제가 민감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권을 잡는 이들은 자신들의 입장에서 만들어진 역사를 역사 교육이라는 명분하게 교묘하게 주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그렇게 주입하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언제부터인가 이러한 정치적인 쇼맨쉽도 사라지기 시작했다. 국사를 선택 과목에 집어 넣으면서 국민을 우민화하기 시작했다. 과거 일제 시대에 교회 안에서 출애굽기를 읽거나 설교하지 못하게 했던 것과 같은 모습이다.

 

  이제 역사는 현실을 읽는 눈과 생각을 기르는 도구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 콘텐츠로 전락해 버렸다. 그러다 보니 드라마에서 역사적인 고증은 안드로메다로 날라가 버렸다. 미국의 마초 드라마 스파르타쿠스만 해도 역사적인 고증에 꽤나 공을 들여서 로마 군사들의 갑옷이나 무기의 디테일한 부분까지 신경을 썼지만 한국의 사극들은 이러한 역사적인 고증은 개나 줘버린지 오래다. 하나같이 음모, 로맨스, 애국심이라는 볼거리들을 제공하면서 시청율 올리기에 급급하다. 한예로 내가 즐겨보던 선덕여왕이라는 드라마를 살펴보면 거기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실재 자체가 의문시 되는 이들이다. 역사적인 근거가 빈약해서 논란이 되는 화랑세기를 기본으로 삼은데다가 그마저도 이리저리 비비 꼬아 놨기 때문이다. 다만 미실과 덕만을 통하여 당시 정치권을 풍자했기 때문에 즐겨 봤던 것이지 나는 아직까지도 선덕여왕을 사극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풍자극 혹은 마당극 정도로 받아들인다. 최소한 중요한 부분들은 건드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그리고 사극도 역사관은 있어야 한다는 이덕일 씨의 주장은 그런 의미에서 꽤나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역사에게 길을 묻는다. 책의 제목처럼 역사에서 오늘의 현실을 발견한다. 친인척 비리와 부정부패, 수사에 관해 다루고 있는 부분을 보고 있노라면 소름이 끼친다. 이덕일씨가 머릿글에 썼듯이 이글을 쓴지 벌써 10년이 지났다고 하는데(대략적인  배경은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초기이다.) 오늘날에도 거의 비슷한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과거나 현재나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골치를 썩고 있다면 그에 대한 해답을 찾는 과정에서도 과거의 사안들을 하나하나 살펴 보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역사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하면 바보라는 말을 왜 모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애써 무시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꼼수다를 비롯하여 정치 평론 서적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한극 사회가 어디로 가는가 걱정하며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다. 더 나은 미래를 모색하는 중이리라. 그렇다면 역사책을 같이 읽어 나가는 것은 어떨까? 처세술로 읽어도 좋고, 용인술로 읽어도 좋지만 역사의 진실한 가치는 현재 산적한 문제들을 바라보고 그에 대한 인과관계를 해석하고 더 나은 대안을 모색하는데 있지 않겠는가? 과거 지식인들이 역사 공부에 매진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역사가 재미있는 이유, 우리에게 유의미한 이유 또한 여기에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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