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이 못 된 세자들 표정있는 역사 9
함규진 지음 / 김영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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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 역사책을 참 좋아한다. 과거를 성찰해 보면서 현재에 대해 예리하고 냉철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은 둘째로 치고, 일단 재미있다. 사람들이 살아온 이야기들, 그 안에 담겨 있는 여러가지 요소들을 살펴보는 것은 꽤나 흥미 진진한 작업이다. 마치 재미있는 추리소설을 읽는 기분이랄까? 이런 점들이 나를 역사덕후로 만들어 가는데 가끔 이런 나의 기대를 배신하는 책들이 있다. 역사적인 사실을 깡그리 무시하는 역사소설이라든지, 역사적인 사실들을 너무 간단하게 처리하고 넘어간 책들이라든지. 이런 책들을 접할 때마다 시간이 많이 아깝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데 이 책이 꼭 그렇다.

 

  제목이 왕이 못된 세자들이다. 권력은 너무 거대하기 때문에 부자 지간에도 나눌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또한 너무 거대한 권력을 가졌기 때문에 그 권력의 자리에서 미끄러졌을 때에는 목숨을 부지할 수 없다는 카피는 나의 흥미를 꽤나 자극하기 시작했다.

 

  첫페이지를 열었을 때 왕이 되지 못한 세자들도 공인이기 이전에 개인이기 때문에 개인의 심리적인 부분을 다루는 것이 중요하다는 저자의 말에 꽤나 공감하면서 기대감을 품었다. 게다가 왕이 되지 못한 세자들이 그렇게 많다는 것은 꽤나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기 때문에 이 책이 나에게 줄 감동이 무엇인지 설레는 마음을 품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그렇지만 책을 다 읽고 나 이후의 감상이라는 것은 리뷰의 제목대로이다. 왕이 되지 못한 세자들에 대해서 다룬 이 책이 나에게 전혀 감동이 되지 못했다.

 

  첫번째 이유는 내용의 부실하기 때문이다. 11명의 세자를 다루면서 200페이지가 조금 넘는 부분을 할해한 것은 이정도면 된다는 저자의 자신감인지, 아니면 왕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그만큼 사료를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지 모르겠지만 내용이 부실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가장 단적인 예를 들자면 어렸을 때 죽어서 왕이 되지 못한 세자 5명을 다루면서 50페이지가 안되는 분량을 할애한 것은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기에 충분하다. 역사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면서 입문을 하는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읽기에는 지나치다고 밖에 할 수 없다.

 

  둘째 이유는 내용이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사도세자에 관한 부분을 다루면서 역사학자들의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을 대하는 태도를 지적하였는데, 가장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것이 이덕일씨이다. 이덕일씨는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을 철저하게 정치적인 입장에서 이해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사도 세자가 죽은 그 날을 합리적인 근거를 가지고 재구성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부분에 대해서는 한중록의 내용에 동의하지만 어느 부분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 저자는 왜 어느 부분은 동의하면서 어느 부분은 동의하지 않느냐, 그것은 자기의 입맛에 맞는 부분만을 인정하는 것이 아니겠는가라면서 비판한다. 역사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일면 사료를 대할 때에 충분히 의심하고, 점검해 보는 것이 매우 중요한 과정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러한 기본적인 것마저도 너무 심리적인 측면에 입각해서 부정한다는 것은 역사를 대하는 사람이 가장 조심해야할 태도가 아니겠는가?

 

  저자의 말대로 조선 시대 세자 양육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면 세자 양육 시스템이 어떤 것인지 보다 자세하게 다루고, 이러한 부분들이 과거의 왕조들이 가지고 있는 시스템과 중국이나 일본이 가지고 있는 시스템과 어떻게 다르고 어느 부분에 문제가 있는지 지적하는 것이 훨씬 짜임새 있는 구성이 아니었을까하는 아쉬움을 품어 본다.

 

  이 책에 대한 평가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콘텐츠는 충분히 매력적이나 콘텐츠를 부각시키는 방법이 적절하지 못했다고 하겠다. 만약 저자가 왕이 되지 못한 세자에 대해서 다시 다루고 싶다면 조선 왕조의 세자 양육 시스템에 대해서 보다 자세하게 다루는 것이 좋을 것으로 보인다. 표정이 있는 역사 시리즈 중에 가장 감동이 없는 책인 것 같아서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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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ient-guest 2013-10-10 1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다가 보면 아무리 경험이 쌓여도 가끔씩은 제목에 낚이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위의 정리를 보니 저자는 이덕일씨와 같은 '재야'사학자를 비판하는 입장이거나 학파에 속해 있는 것 같네요. 환빠도 문제지만, 무조건적인 비판은 더 큰 문제입니다. 가뜩이나 역사교육이 위축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우기. 세인트님께서 총대를 멘 덕분에 저는 제목에 낚여 이 책을 읽지는 않겠군요.

saint236 2013-10-10 13:13   좋아요 0 | URL
역사학 서적을 편찬하기에는 묘한 구석이 있긴 합니다. 꽤 많은 역사 관련 서적을 저술하였지만 서울교대 윤리교육과 교수입니다. 게다가 성대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는 정치 외교학 박사를 했네요. 역사학 관련해서는 어느 학파에 소속되었다고 하기가 민망할 정도이네요.

transient-guest 2013-10-11 03:08   좋아요 0 | URL
이덕일씨, 혹은 그 이전의 박은식이나 신채호 선생을 비판하는 글이나 책을 보게되면 저자들이 의외로 역사학과는 관련이 없는 사람들인 것을 봅니다. 이 저자분은 academic survivalist인가요? 학사-박사-현직-저술이 각자 다른 분야네요...

무해한모리군 2013-10-10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흥미로운 주제인데 엉성한가보네요.
저도 역사, 특히 실패한 영웅의 이야기가 늘 관심사예요.

saint236 2013-10-10 23:19   좋아요 0 | URL
주제를 뒷받침하는 설명이 너무 간결하다는 것이 흠이죠.

순오기 2013-10-26 0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관심대상이었는데 많이 엉성한가 봅니다.
역사를 파고드는 학자가 그리운 시절~~~~~~ ㅠ

saint236 2013-10-26 12:03   좋아요 0 | URL
역사를 입문하기 위함이라면 모를까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졌던 사람이라면 많이 허전하지요. 표정이 있는 역사 시리즈 가운데에서는 처지는 족에 속한다고 생각이 드네요.
 
지식 e - 시즌 8 가슴으로 읽는 우리 시대의 智識 지식e 8
EBS 지식채널ⓔ 지음 / 북하우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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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식e 시즌 8이 나왔다. 시즌 1부터 꾸준히 읽어 왔으니 벌써 몇년이 되었다. 항상 책의 첫머리에 내 마음에 묵직한 돌을 던져 주는 말 한마디가 있다.

 

  "가슴으로 읽는 우리시대의 智識"

 

  지식이라는 말이 놀랍게도 知識이 아니라 智識이다. 우리가 흔지 지식이라고 사용하는 단어는 知識으로 "어떤 대상에 대하여 배우거나 실천을 통하여 알게 된 명확한 인식이나 이해"라는 뜻이다. 그런데 지식e에서 말하는 지식은 智識으로 "생각하여 아는 작용. 또는 지혜와 견식"이라는 뜻이다. 지식e에서 가슴으로 읽는다는 말을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식e를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다른 책을 읽듯이 냉철한 이성과 학식을 가지고 분석하면서 읽을 것이 아니라 가슴을 열고 각 사람의 사연을 나의 사연을, 문제를 나의 문제로 받아들여 가면서 읽어야 한다는 뜻이다.

 

  흔해빠진 그러나 역사를 바꾼 사람들, 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양심을 지키는 언론인들, 독재 정권에 자식을 잃었지만 타협하지 않는 어머니들, 복사할 돈이 없어서 자료를 필사하면서 친일 인명 카드를 만든 부자, 사랑하는 가족의 자살 이후에 남겨진 사람들! 이 책에서는 많은 사람들의 눈물과 아픔을 기록하고 있다. 활자라는 한계 때문에 영상이 주는 감동들이 많이 사라졌지만 대신 활자가 주는 묵직함을 간직하고 말이다. 내용 자체가 주는 묵직함에 활자가 주는 묵직함이 더하여져서 이 책에는 가슴으로 읽지 않으면 도저히 느낄 수 없는 개개인의 생생한 숨결이 담겨있다. 이 숨결은 8권이 되었다고 해서 결코 퇴색하지도 않았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그런데 그 숨결이 생생하게 느껴지지 않으니 내 마음이 닫혀 버린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나 어느새 나도 智識을 知識으로 그리고 止息으로, 결국에는 指示로 나아가는 이 시대의 조류에 순응해 버린 것일까? 이 안에 담긴 사람들의 숨결은 오늘도 현재 진행형인데 고개만 끄덕거리면서 그 흔한 촛불 한번 안켜는 내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진다. 이렇게 초라해지는 내 마음을 달래보고자 키보드 자판 앞에서 있는척 끄적거리면서 무엇인가를 적고, 난 안그래라면서 자위하는 내 자신이 더 초래해 보인다.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의 시대는 지났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어느새 "of the country, by the country, for the country"로 바뀌어 버렸고, "국가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해주기에 앞서서 내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라"가 국민의 절대적인 책무가 되어버린 시대를 살고 있다.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하기 위해서라면 개인의 삶이 부서져도, 빈곤해져도, 사라져버려도 무방하다. 이미 나만 아니면 돼라는 절대가치가 국민들을 파편화시켜 버렸고, 언론들은 권력의 나팔수가 되어서 이런 현상을 가속화시킨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의 이야기이다.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사는 대한민국의 이야기이다.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오늘의 이야기이다.

 

  2013년 대한민국을 사는 나에게 과연 이 시대를 읽을 수 있는 가슴은 있는가? "국가는 국민을 위한 좋은 집이 되어야 한다. 그 집에서는 누구든 특권 의식을 느끼지 않으며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다."는 타게 에르란데르의 말을 말하고 믿고 실현할 수 있는 의지가 있는가? "우리는 권력을 남용하는 사례에 집중한다. 원 취재 대상은 정부와 기업이다. 그들이 가장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기 때문이다."라는 프로퍼블리카의 이념을 신뢰하고 응원하고 있는가? "세상에서 서기 같은 역할을 하고 싶다. 목소리 큰 사람이야 얼마든지 많은데 작은 것을 꼼꼼히 기록하고 변함없이 사랑하는 사람은 드물다."는 한창기의 자애로움이 나에겐 있는가? "사면 제도는 누가, 왜 사면권을 행사하는지에 따라 악법이 될 수도 있고 관용이 될 수도 있다."는 윌리엄 블랙스톤의 말을 기억하고 사면권이 악법이 아닌 관용으로 사용되도록 깨어서 감시하고 있는가?

 

  많은 질문 앞에서 그저 부끄럽다. 어느새 현실에 타협해 버린 내가 한없이 부끄럽다. 이 시대를 읽을 가슴조차 열어두지 못하고 닫아버린 것 같아서 눈물이 나려고 한다. 자화상을 쓰면서 느꼈을 윤동주 시인의 마음이 손에 잡히는 것 같아서 더 아프다. 오늘도 아픈 마음으로 부끄러운 마음으로 거울을 닦다가 문득 이런 사람이 나만은 아니겠지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 시대를 가슴을 읽고 싶지만 그러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면서 부끄러운 마음으로 거울을 닦는 사람이 나만은 아니라는 생각에 위안을 받고 용기를 내 본다. 그리고 부끄러운 마음으로 이 책을 읽던 내게 이 책이 마지막으로 준 말 한마디에 위로를 얻는다.

 

  나는 이 지상에 파라다이스를 만드는 일이 얼마나 간단한지 보여주고 싶었다. 혼자 꾸면 그건 한갓 꿈일 뿐이지만, 모두가 함께 꿈을 꾸면, 그것은 새로운 출발이 된다.-훈데르트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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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3-10-26 0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7권도 사둔채 못 읽어서 8권은 아직 구입을 안했는데...
아래 역사e와 같이 사야겠네요.

saint236 2013-10-26 12:01   좋아요 0 | URL
영상이 문자로 변환되어서 이렇게 감동을 주는 것도 드문 일이죠. 그덕에 지식e를 꾸준하게 읽게 되네요.
 

저는 짧아진 여덟 개의 손가락을 쓰면서

사람에게 손톱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게 되었고

1인 10역을 해내는 엄지 손가락으로 생활하고 글을 쓰면서는

엄지손가락을 온전히 남겨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눈썹이 없어 무엇이든 여과 없이 눈으로 들어가는 것을 경험하며

사람에게 이 작은 눈썹마저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알았고

막대기 같아져 버린 오른팔을 쓰면서

왜 하나님이 관절이 모두 구부러지도록 만드셨는지,

손이 귀까지 닿는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습니다.

 

온전치 못한 오른쪽 귓바퀴 덕분에 귓바퀴라는게

귀에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하나님이 정교하게 만들어주신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잠시지만 다리에서 피부를 많이 떼어내 절뚝절뚝 걸으면서는

다리가 불편한 이들에게 걷는다는 일 자체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건강한 피부가 얼마나 많은 기능을 하는지,

껍데기일 뿐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피부가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남겨주신 피부들이 건강하게 움직이는 것에 감사했으며

 

하나님이 우리의 몸을

얼마나 정교하고 세심한 계획아래 만드셨는지 온몸으로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감히 내 작은 고통 중에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을 백만분의 일이나마 공감할 수 있었고,

너무나 비천한 사람으로, 때로는 죄인으로,

얼굴도 이름도 없는 초라한 사람으로 대접받는

그 기분 또한 알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지난 고통마저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그 고통이 아니었다면

지금처럼 남들의 아픔에 진심으로 공감할 가슴이 없었을 테니까요.

 

그 누구도, 그 어떤 삶에도 죽는게 낫다라는 판단은 옳지 않습니다.

힘겹게 살아가는 우리 장애인들의 인생을 뿌리째 흔들어놓는

그런 생각은, 그런 말은, 옳지 않습니다.

분명히 틀렸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추운 겨울날 아무런 희망 없이 길 위에 고꾸라져 잠을 청하는 노숙자도,

평생을 코와 입이 아닌

목에 인공적으로 뚫어놓은 구멍으로 숨을 쉬어야 하는 사람도

아무도 보는 이 없는 곳에 자라나는 이름 모를 들풀도,

하나님이 생명을 허락하신 이상

그의 생명은 충분히 귀중하고 존중받아야 할 삶입니다.

 

"저러고도 살 수 있을까...?"

 

 

네...이러고도 삽니다.

몸은 이렇지만 누구보다 건강한 마음임을 자부하며,

이런 몸이라도 전혀 부끄러운 마음을 품지 않게 해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이런 몸이라도 사랑하고 써주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에 감사드리며...

저는 이렇게 삽니다.

누구보다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지선아 사랑해 중에서

 

  예전에 한참 힘들던 시절이 있었다. 그 때 아는 녀석을 통해서 접하게 된 이지선! 지선아 사랑해라는 책을 읽으면서 펑펑 울었던 기억이 있다. 많은 부분들이 마음에 와닿았지만 특별히 위에 인용해 놓은 부분이 내 마음을 울렸다. "저러고도 살 수 있을까?" "네... 이러고도 삽니다." 그렇게 힘겨웠을 삶이었을텐데, 많이 힘들었을텐데 이러고도 삽니다 누구보다 건강한 마음임을 자부하며 삽니다라는 말에 왈칵 눈물이 났었다.

 

  얼마전 힐링캠프에 이지선씨가 나왔단다. 방송을 보지는 못했고, 인터넷 기사로만 접했는데 과거보다 많이 얼굴이 좋아졌다. 수술을 해서 좋아진 것도 있겠지만 그의 밝은 마음이 얼굴에 그대로 묻어나서 더 좋아보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녀를 구하고 많이 후회했었다는, 그냥 죽게 내버려 둘걸 괜히 살려서 힘들게 해서 미안하다는 그녀의 오빠 말이 또 한번 내 눈시울을 붉히게 만들었다.

 

  이지선씨의 힐링캠프 출연을 보면서 문득 옛날 생각이 나서 책꽂이에 꽂혀 있던 지선아 사랑해를 다시 한번 꺼내서 본다. 여전히 내 마음 속에는 "저러고도 살 수 있을까? 네 이러고도 삽니다."라는 두 문장이 꽉 차있어서 펑펑 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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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3-09-19 1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지선씨 나온 힐링 캠프 봤어요. 예전에 책도 읽었지만 말할 때도 여유있고 평화로워 보이더군요. 하지만 그럴수 있기 까지 얼마나 많은 산을 넘었을지. 그리고 주위의 사랑이 있었을지. 눈에 보이는 이지선씨의 모습 이면의 더 많은 것들을 상상하며 보았답니다.
saint님에게 특히 더 각별한 책이었군요.

saint236 2013-09-21 11:02   좋아요 0 | URL
정말 힐링이 된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순오기 2013-10-26 0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힐링캠프 봤어요.
우리 아이들 중학생도 '지선아, 사랑해!' 추천도서여서 같이 읽으며 펑펑 울었어요.
그리고 불끈 주먹 쥐며 잘 살아야겠다 생각했고~ 무한 감동입니다!

saint236 2013-10-26 12:01   좋아요 0 | URL
어설픈 자게서보다 훨씬 큰 도전을 주죠....
 
역사 ⓔ - 세상을 깨우는 시대의 기록 역사 ⓔ 1
EBS 역사채널ⓔ.국사편찬위원회 기획 / 북하우스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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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록과 기억!

  비슷해 보이는 두 단어의 차이는 무엇일까? 철학적으로 딱딱하고 복잡하게 규정하지 말고 단순하게 생각하자. 기록은 어떤 사건을 문서나 그림과 같은 형태로 작성하는 행동이다. 기록의 행위를 더 넓게 해석한다고 해도 그것을 보관하는 것까지가 기록의 역할이다. 이에 비하여 기억은 기록된 것을 토대로하여 재구성하는 단계까지를 포함한다. 이렇게 적고 보니 더 어려운 것 같다. 좀 더 쉽게 이해하기 위하여 영화의 한토막을 빌려서 설명을 해본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을 아는가? 멀게는 다크 나이트 시리즈와 인셉션을 감독했고, 가깝게는 잭 스나이더 감독의 맨 오브 스틸을 제작한 사람이다. 항상 블록 버스터 영화를 만들지만 밝게, 화끈하게만 만들지 않는다. 영화 속에 철학적인 질문들, 정의에 관한 내용들을 담고 있는데 이 사람을 주목하게 만들었던 영화가 메멘토다. 영화의 내용은 간단하다. 주인공은 단기기억 상실증이라는 희귀한 질병을 앓고 있다. 그의 기억력은 딱 10분간만 유효하다. 10분이 지나고 난 다음에는 모든 기억을 잃어버린다. 주인공은 기억을 잃지 않기 위하여 자기 몸에 문신을 새긴다. 주인공은 이 문신을 전적으로 신뢰할 수밖에 없지만 그 문신이라는 것도 완전하지는 않다. 어떤 것은 볼펜으로 새겨서 사라져 버리기까지 하고, 어떤 것들은 재구성하는 과정 속에서 왜곡되기도 한다. 게다가 자기가 옳다고 믿었던 기억 조차도 실은 타자에 의해서 왜곡되기도 한다. 주인공의 행위 가운데 사건의 단서를 남기기 위하여 문신을 새기는 행위를 기록, 그것을 토대로 사고를 재구성하는 일련의 과정(심지어는 왜곡된 것일지라도)을 기억이라고 할 수 있다. 잠간 이야기가 샛길로 빠지지만 메멘토라는 제목에서 나는 기록이라는 행위에 집착하지만 그것을 재구성하는 기억의 단계에서는 심각하게 왜곡되어 다른 사람들에게 휘둘리고 이용당하는 주인공의 안타까움을 느끼게 된다.

 

  기록과 기억은 역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철저한 기록은 기억의 근거들을 제시해 주고, 이렇게 생성된 기억은 우리에게 현실에 대한 평가의 기준을 제공해 준다. 그만큼 중요한 기록과 기억이라는 것이 중요하지만 문제는 오늘날 기록과 기억이 불완전하다는 것이다.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기록과 기억이 불완전한 것이 아니라 줄 사이의 관계가 불완전한 것이다. 사회가 어찌 되었든, 우편향이든 좌편향이든 일단 데이터는 남는다. 작심하고 숨기려고 해도 인터넷이라는 도깨비 방망이는 모든 기억들을 차곡차곡 그 안에 채워 넣는다. 그것을 어디에 쓸 것인지는 관심밖의 일이다. 이렇게 기록에 충실했기 때문에 정치인들의 말바꾸기가 과거에 비하여 잘 드러나는 것이리라. 그런데 이렇게 충실한 기록(비록 그안에서 진위 여부를 가리는 작업이 필요하지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이 오늘날 우리들의 삶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마치 10분이 지나면 기억들을 잃는 메멘토의 주인공처럼 그 시간이 지나버리고 나면 까맣게 잊어버리기 일쑤다. 피흘리고, 투쟁하고, 이러면 안된다는 자성도 그때뿐이다. 시간이 지나면 또 반복될 뿐이다. 기록은 있느나 기억이 결여되어 있다는 말이다. 혹은 기억을 한다고 할지라도 심하게 왜곡되어 있다는 말이다.

 

  왜 그런가? 어떻게 하면 이런 안타까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이 책의 세 장의 제목이 이에 대한 답변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라티어로 보면 의미가 더 정확해진다. "Quaestio! Cogito! Memento" "질문하다. 생각한다. 그리고 기억한다." 우리의 기억이 왜곡되어서 누군가에게 이용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어떻게 살 것인지, 이렇게 사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이 상황이 과연 정의로운 것인지 등등 우리가 몸담고 있는 시대를 바라보면서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는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 과연 이 상황 속에서 우리는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가, 우리가 존재하는 양식이 과연 옳은 것인가 자신을 바라보면서 질문을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이런 과정 속에서 일어난 일들을, 그리고 행동들과 생각들을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한다. 물론 기억하는 과정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질문하고 생각하는 과정이 동반되어야 할 것이다. 이 세단계 중에 어느 것 하나라도 결여되어 버린다면 영화 메멘토의 비극이 영화만의 이야기가 아니게 될 것이다.

 

  역사e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Quaestio, Cogito, Memento" 과거를 끄집어 내지만 이것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의 이야기이다. 과거 그들이 했던 고민은 오늘날 우리의 고민이며, 과거에 있었던 일들은 오늘에도 동일하게 일어난다. 이것들을 오늘 기억하지 못하면 이 일은 머지 않은 미래에도 또 일어날 것이며, 일어나는 것이 당연하다.

 

  표지에 기록되어 있는 "내가 두려워 하는 것은 역사뿐이다"라는 연산군의 말과,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과거는 반복된다."는 조지 산타야나의 말은 우리의 가음에 이 책과 함께 묵직한 무엇인가를 던져주고 간다. 그건 아마도 이 시대를 기억해야할 우리의 책임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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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식과 일연은 왜 - 삼국사기.삼국유사 엮어 읽기
정출헌 지음 / 한겨레출판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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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 1학년 때로 생각된다. 국사를 가르치시던 선생님께서 책의 첫페이지를 펴시면서 처음으로 하셨던 이야기가 '역사란 무엇인가?'였다. E.H.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언급하시면서 역사에 대한 2가지 접근 방법을 말씀하셨다. 벌써 20년도 넘은 그 시절의 이야기를 끄집어 내는 이유는 그 접근 방법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며, 역사에 대한 내 태도를 결정지은 날이기 때문이다.

 

  당시 선생님께서 하셨던 이야기는 돌아보면 역사란 무엇인가의 첫머리에 기록되어 있는 이야기였다. 역사에 대한 접근은 객관적인 접근과 주관적인 접근이 있다. 근대까지 역사에 대한 기본적인 접근 방법은 객관적인 것으로 역사를 있는 사실 그대로를 기록하는 것이 기본이며, 가장 중요하다는 태도를 취해왔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빼먹지 않기 위하여 노력했고,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는 그러한 노력의 결실이라고 하겠다. 당시 있었던 일을 빠짐없이 기록한 조선왕조실록과 이보다 더 자세하게 기록한 승정원일기 앞에서 역사는 과거 사실의 객관적인 기록이라는 말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조금만 깊이 생각하면 역사의 객관적 기록이라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지 절대적인 가치는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역사를 기록하는 이는 사람이다. 역사를 기록함에 있어서 어떤 사실을 얼마만큼 다룰 것인가, 어느 사건의 앞에 배치할 것인가를 결정함에 따라서 역사는 전혀 다르게 해석이 된다. 새누리당에게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10년이 잃어버린 10년이라면 민주당에게는 영광의 10년이다. 이 시각의 차이에 따라서 대북정책이 북한을 품는 햇볕정책이냐, 아니면 퍼주기 정책이냐로 해석이 엇갈린다. 그리고 이렇게 엇갈린 해석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리라.

 

  역사를 무엇을, 어떻게 서술할 것인가, 그리고 어떤 인과 관계 속에서 서술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이상 그 역사 서술은 아무리 객관적이라고 할지라도 그 안에 일정부분 주관을 담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역사란 절대로 객관적일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혹 CCTV처럼 24시간의 내용을 전부 담아서 하나도 잃지 않도록 기록할 수 있다면 몰라도, 현실을 책에 기록한다는 것은 일정부분 생략과 강조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며(이 경우 생략되지 않고 살아남은 것들은 강조되고 있다고 해석해도 무방하다.) 이는 결국 주관적이라는 말과 같은 의미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절대적으로 객관적인 역사는 없다. 모든 역사는 주관적이다. 다만 대놓고 주관적이냐 은밀하게 주관적이냐의 차이만 있을 따름이다."라는 입장에서 역사를 바라본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도 마찬가지다. 똑같이 삼국 시대의 역사를 다루고 있지만 그 책들이 담고 있는 내용들은 서로 다르다. 같은 내용을 다르게 기록한 것이냐 비교해서 읽을 수 있지만, 전혀 다른 내용을 담고 있는 경우는 의구심을 가지고 읽어야 한다. 생략과 강조를 통하여 저자들이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또한 이 내용들이 어떤 역사적인 맥락에서 기록되었는가를 함께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다.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시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보통 조선왕조실록은 실록 제작의 자료가 되는 사초들을 모아 두었다가 해당 왕이 죽고나면 아들 대에 제작에 들어간다. 선왕의 공과에 대해서 가감없이 기록하기 위한 제도적인 장치이다. 그러나 이것도 초반 태조 실록을 기록할 때에는 선왕의 공과를 가감없이 기록하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를 받았다. 태종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아들대가 아닌 손자대에 실록을 편찬하는 것이 관례로 굳어졌을지도 모른다. 왜 이야기를 하는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 시기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하기 때문이다. 삼국사기는 1145년에, 삼국유사는 1281년에 기록되었다. 이게 무엇이 문제가 되느냐 하면 신라멸망이 935년, 고려의 후삼국 통일이 936년이기 때문이다. 즉 삼국사기는 후삼국 통일이 완료된지 210년 후에, 삼국유사는 340년 후에 기록되었다는 뜻이다. 아직도 감이 안온다면 한번 지금부터 30년전인 1983년을 떠올려보자. 기억이 나는가? 그 당시 신문 기사를 오늘 날에 읽어보고 그 기자의 시각에 동의하는가? 아니다. 왜? 그 사건을 당시의 시각으로 바라보는가, 오늘날의 시각으로 바라보는가에 따라서 해석이 전혀 달라지기 때문이다. 마치 광해군에 대한 해석이 과거와 오늘이 다른 것처럼 말이다.

 

  최소 200년에서 최대 30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난 다음에 기록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삼국시대의 역사적인 사건들을 온전하게 기록하기 보다는 오늘의 시각으로 과거를 바라보고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왜 이런 일을 하는가? 역사라는 과거의 사건을 가지고 오늘의 정책과 사상을 정당화하기 위해서이다. 현재 자신의 포지션에 대한 정당성을 직설적으로 주장하지 않고 넘지시 과거의 비슷한 일을 통하여 주장하는 것은 상당히 교묘한 작업이기 때문에 아차 싶으면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기 쉽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그냥 읽어도 재미있지만 이러한 맥락에서 의심하고, 저자의 주장을 조심스럽게 발굴해 가면서 읽는 것은 더 재미있는 일이다. 거기에 더하여 현실을 더 입체적으로 파악하게 만들어주는 시각을 얻는 부수적인 이익도 있으니 도전해 볼만한 일이 아닌가?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저자가 사학자가 아닌 한문학자이기 때문에 역사를 비교하고 해석함에 있어서 더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 점 때문에 이 책이 역사 전공자가 아닌 나와 같은 역사에 관심있는 일반인들에게 읽혀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저 아쉽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출퇴근 시간에, 혹은 쉬는 시간에 짬짬이 읽어보기에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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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3-09-12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사란 승자으 시각에서 쓰여진 것이게 객관적일수 없단 생각이 듭니다.또 기술하는 사람이 아무리 공정하게 쓰려고 해도 그 자신의 시각이 들어가기에 객관적일수 없죠.
게다가 말씀하신것처럼 역사책을 읽어도 읽는 사람의 처한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르게 해석될수 있으니 객관적인 접근은 무리가 아닐까 싶네요.

saint236 2013-09-13 10:56   좋아요 0 | URL
그럼에도 역사는 객관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무엇인가 다른 꿍꿍이가 있기 때문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