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 e - 시즌 8 가슴으로 읽는 우리 시대의 智識 지식e 8
EBS 지식채널ⓔ 지음 / 북하우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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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식e 시즌 8이 나왔다. 시즌 1부터 꾸준히 읽어 왔으니 벌써 몇년이 되었다. 항상 책의 첫머리에 내 마음에 묵직한 돌을 던져 주는 말 한마디가 있다.

 

  "가슴으로 읽는 우리시대의 智識"

 

  지식이라는 말이 놀랍게도 知識이 아니라 智識이다. 우리가 흔지 지식이라고 사용하는 단어는 知識으로 "어떤 대상에 대하여 배우거나 실천을 통하여 알게 된 명확한 인식이나 이해"라는 뜻이다. 그런데 지식e에서 말하는 지식은 智識으로 "생각하여 아는 작용. 또는 지혜와 견식"이라는 뜻이다. 지식e에서 가슴으로 읽는다는 말을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식e를 제대로 읽기 위해서는 다른 책을 읽듯이 냉철한 이성과 학식을 가지고 분석하면서 읽을 것이 아니라 가슴을 열고 각 사람의 사연을 나의 사연을, 문제를 나의 문제로 받아들여 가면서 읽어야 한다는 뜻이다.

 

  흔해빠진 그러나 역사를 바꾼 사람들, 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양심을 지키는 언론인들, 독재 정권에 자식을 잃었지만 타협하지 않는 어머니들, 복사할 돈이 없어서 자료를 필사하면서 친일 인명 카드를 만든 부자, 사랑하는 가족의 자살 이후에 남겨진 사람들! 이 책에서는 많은 사람들의 눈물과 아픔을 기록하고 있다. 활자라는 한계 때문에 영상이 주는 감동들이 많이 사라졌지만 대신 활자가 주는 묵직함을 간직하고 말이다. 내용 자체가 주는 묵직함에 활자가 주는 묵직함이 더하여져서 이 책에는 가슴으로 읽지 않으면 도저히 느낄 수 없는 개개인의 생생한 숨결이 담겨있다. 이 숨결은 8권이 되었다고 해서 결코 퇴색하지도 않았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그런데 그 숨결이 생생하게 느껴지지 않으니 내 마음이 닫혀 버린 것일까? 결코 그렇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나 어느새 나도 智識을 知識으로 그리고 止息으로, 결국에는 指示로 나아가는 이 시대의 조류에 순응해 버린 것일까? 이 안에 담긴 사람들의 숨결은 오늘도 현재 진행형인데 고개만 끄덕거리면서 그 흔한 촛불 한번 안켜는 내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진다. 이렇게 초라해지는 내 마음을 달래보고자 키보드 자판 앞에서 있는척 끄적거리면서 무엇인가를 적고, 난 안그래라면서 자위하는 내 자신이 더 초래해 보인다.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의 시대는 지났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어느새 "of the country, by the country, for the country"로 바뀌어 버렸고, "국가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해주기에 앞서서 내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라"가 국민의 절대적인 책무가 되어버린 시대를 살고 있다.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하기 위해서라면 개인의 삶이 부서져도, 빈곤해져도, 사라져버려도 무방하다. 이미 나만 아니면 돼라는 절대가치가 국민들을 파편화시켜 버렸고, 언론들은 권력의 나팔수가 되어서 이런 현상을 가속화시킨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의 이야기이다.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사는 대한민국의 이야기이다.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오늘의 이야기이다.

 

  2013년 대한민국을 사는 나에게 과연 이 시대를 읽을 수 있는 가슴은 있는가? "국가는 국민을 위한 좋은 집이 되어야 한다. 그 집에서는 누구든 특권 의식을 느끼지 않으며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다."는 타게 에르란데르의 말을 말하고 믿고 실현할 수 있는 의지가 있는가? "우리는 권력을 남용하는 사례에 집중한다. 원 취재 대상은 정부와 기업이다. 그들이 가장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기 때문이다."라는 프로퍼블리카의 이념을 신뢰하고 응원하고 있는가? "세상에서 서기 같은 역할을 하고 싶다. 목소리 큰 사람이야 얼마든지 많은데 작은 것을 꼼꼼히 기록하고 변함없이 사랑하는 사람은 드물다."는 한창기의 자애로움이 나에겐 있는가? "사면 제도는 누가, 왜 사면권을 행사하는지에 따라 악법이 될 수도 있고 관용이 될 수도 있다."는 윌리엄 블랙스톤의 말을 기억하고 사면권이 악법이 아닌 관용으로 사용되도록 깨어서 감시하고 있는가?

 

  많은 질문 앞에서 그저 부끄럽다. 어느새 현실에 타협해 버린 내가 한없이 부끄럽다. 이 시대를 읽을 가슴조차 열어두지 못하고 닫아버린 것 같아서 눈물이 나려고 한다. 자화상을 쓰면서 느꼈을 윤동주 시인의 마음이 손에 잡히는 것 같아서 더 아프다. 오늘도 아픈 마음으로 부끄러운 마음으로 거울을 닦다가 문득 이런 사람이 나만은 아니겠지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 시대를 가슴을 읽고 싶지만 그러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면서 부끄러운 마음으로 거울을 닦는 사람이 나만은 아니라는 생각에 위안을 받고 용기를 내 본다. 그리고 부끄러운 마음으로 이 책을 읽던 내게 이 책이 마지막으로 준 말 한마디에 위로를 얻는다.

 

  나는 이 지상에 파라다이스를 만드는 일이 얼마나 간단한지 보여주고 싶었다. 혼자 꾸면 그건 한갓 꿈일 뿐이지만, 모두가 함께 꿈을 꾸면, 그것은 새로운 출발이 된다.-훈데르트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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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3-10-26 06: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7권도 사둔채 못 읽어서 8권은 아직 구입을 안했는데...
아래 역사e와 같이 사야겠네요.

saint236 2013-10-26 12:01   좋아요 0 | URL
영상이 문자로 변환되어서 이렇게 감동을 주는 것도 드문 일이죠. 그덕에 지식e를 꾸준하게 읽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