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부식과 일연은 왜 - 삼국사기.삼국유사 엮어 읽기
정출헌 지음 / 한겨레출판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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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학교 1학년 때로 생각된다. 국사를 가르치시던 선생님께서 책의 첫페이지를 펴시면서 처음으로 하셨던 이야기가 '역사란 무엇인가?'였다. E.H.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언급하시면서 역사에 대한 2가지 접근 방법을 말씀하셨다. 벌써 20년도 넘은 그 시절의 이야기를 끄집어 내는 이유는 그 접근 방법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며, 역사에 대한 내 태도를 결정지은 날이기 때문이다.

 

  당시 선생님께서 하셨던 이야기는 돌아보면 역사란 무엇인가의 첫머리에 기록되어 있는 이야기였다. 역사에 대한 접근은 객관적인 접근과 주관적인 접근이 있다. 근대까지 역사에 대한 기본적인 접근 방법은 객관적인 것으로 역사를 있는 사실 그대로를 기록하는 것이 기본이며, 가장 중요하다는 태도를 취해왔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빼먹지 않기 위하여 노력했고,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는 그러한 노력의 결실이라고 하겠다. 당시 있었던 일을 빠짐없이 기록한 조선왕조실록과 이보다 더 자세하게 기록한 승정원일기 앞에서 역사는 과거 사실의 객관적인 기록이라는 말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조금만 깊이 생각하면 역사의 객관적 기록이라는 것은 상대적인 것이지 절대적인 가치는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역사를 기록하는 이는 사람이다. 역사를 기록함에 있어서 어떤 사실을 얼마만큼 다룰 것인가, 어느 사건의 앞에 배치할 것인가를 결정함에 따라서 역사는 전혀 다르게 해석이 된다. 새누리당에게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10년이 잃어버린 10년이라면 민주당에게는 영광의 10년이다. 이 시각의 차이에 따라서 대북정책이 북한을 품는 햇볕정책이냐, 아니면 퍼주기 정책이냐로 해석이 엇갈린다. 그리고 이렇게 엇갈린 해석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리라.

 

  역사를 무엇을, 어떻게 서술할 것인가, 그리고 어떤 인과 관계 속에서 서술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이상 그 역사 서술은 아무리 객관적이라고 할지라도 그 안에 일정부분 주관을 담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역사란 절대로 객관적일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혹 CCTV처럼 24시간의 내용을 전부 담아서 하나도 잃지 않도록 기록할 수 있다면 몰라도, 현실을 책에 기록한다는 것은 일정부분 생략과 강조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며(이 경우 생략되지 않고 살아남은 것들은 강조되고 있다고 해석해도 무방하다.) 이는 결국 주관적이라는 말과 같은 의미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절대적으로 객관적인 역사는 없다. 모든 역사는 주관적이다. 다만 대놓고 주관적이냐 은밀하게 주관적이냐의 차이만 있을 따름이다."라는 입장에서 역사를 바라본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도 마찬가지다. 똑같이 삼국 시대의 역사를 다루고 있지만 그 책들이 담고 있는 내용들은 서로 다르다. 같은 내용을 다르게 기록한 것이냐 비교해서 읽을 수 있지만, 전혀 다른 내용을 담고 있는 경우는 의구심을 가지고 읽어야 한다. 생략과 강조를 통하여 저자들이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또한 이 내용들이 어떤 역사적인 맥락에서 기록되었는가를 함께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다. 역사를 기록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고 있는 시대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보통 조선왕조실록은 실록 제작의 자료가 되는 사초들을 모아 두었다가 해당 왕이 죽고나면 아들 대에 제작에 들어간다. 선왕의 공과에 대해서 가감없이 기록하기 위한 제도적인 장치이다. 그러나 이것도 초반 태조 실록을 기록할 때에는 선왕의 공과를 가감없이 기록하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반대를 받았다. 태종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아들대가 아닌 손자대에 실록을 편찬하는 것이 관례로 굳어졌을지도 모른다. 왜 이야기를 하는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 시기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하기 때문이다. 삼국사기는 1145년에, 삼국유사는 1281년에 기록되었다. 이게 무엇이 문제가 되느냐 하면 신라멸망이 935년, 고려의 후삼국 통일이 936년이기 때문이다. 즉 삼국사기는 후삼국 통일이 완료된지 210년 후에, 삼국유사는 340년 후에 기록되었다는 뜻이다. 아직도 감이 안온다면 한번 지금부터 30년전인 1983년을 떠올려보자. 기억이 나는가? 그 당시 신문 기사를 오늘 날에 읽어보고 그 기자의 시각에 동의하는가? 아니다. 왜? 그 사건을 당시의 시각으로 바라보는가, 오늘날의 시각으로 바라보는가에 따라서 해석이 전혀 달라지기 때문이다. 마치 광해군에 대한 해석이 과거와 오늘이 다른 것처럼 말이다.

 

  최소 200년에서 최대 30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난 다음에 기록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는 삼국시대의 역사적인 사건들을 온전하게 기록하기 보다는 오늘의 시각으로 과거를 바라보고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왜 이런 일을 하는가? 역사라는 과거의 사건을 가지고 오늘의 정책과 사상을 정당화하기 위해서이다. 현재 자신의 포지션에 대한 정당성을 직설적으로 주장하지 않고 넘지시 과거의 비슷한 일을 통하여 주장하는 것은 상당히 교묘한 작업이기 때문에 아차 싶으면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기 쉽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그냥 읽어도 재미있지만 이러한 맥락에서 의심하고, 저자의 주장을 조심스럽게 발굴해 가면서 읽는 것은 더 재미있는 일이다. 거기에 더하여 현실을 더 입체적으로 파악하게 만들어주는 시각을 얻는 부수적인 이익도 있으니 도전해 볼만한 일이 아닌가?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저자가 사학자가 아닌 한문학자이기 때문에 역사를 비교하고 해석함에 있어서 더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 점 때문에 이 책이 역사 전공자가 아닌 나와 같은 역사에 관심있는 일반인들에게 읽혀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저 아쉽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출퇴근 시간에, 혹은 쉬는 시간에 짬짬이 읽어보기에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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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3-09-12 2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사란 승자으 시각에서 쓰여진 것이게 객관적일수 없단 생각이 듭니다.또 기술하는 사람이 아무리 공정하게 쓰려고 해도 그 자신의 시각이 들어가기에 객관적일수 없죠.
게다가 말씀하신것처럼 역사책을 읽어도 읽는 사람의 처한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르게 해석될수 있으니 객관적인 접근은 무리가 아닐까 싶네요.

saint236 2013-09-13 10:56   좋아요 0 | URL
그럼에도 역사는 객관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무엇인가 다른 꿍꿍이가 있기 때문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