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디자인 산책>을 리뷰해주세요.
핀란드 디자인 산책 디자인 산책 시리즈 1
안애경 지음 / 나무수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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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핀란드라? 솔직하게 나는 핀란드에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핀란드하면 막연하게 두개가 떠오르는 정도랄까? 하나는 휘바를 외치면서 춤을 추는 광고로 우리에게 익숙한 모제과회사의 껌 자일리톨이며, 다른 하나는 사우나이다. 이 두가지도 어렴풋이 알고 있을 뿐 정확하게는 잘 모른다. "핀란드에서는 광고대로 자기 전에 자일리톨을 씹나보다. 습식 사우나를 핀란드식 사우나라고 부른다더라." 이정도가 핀란드에 대해서 내가 알고 있는 전부가 아니겠는가? 아! 하나 또 있다. 휴대폰 업계의 선두주자 노키아! 물론 많은 사람들이 노키아를 일본 기업으로 착각하지만 분명히 핀란드 기업이다. 거기에 하나 덧붙이자면 우리나라의 영미식 복지제도의 대안으로 이야기하는 북유럽식 복지국가라는 정도?  

  그런 나에게 이 책은 밑도 끝도 없이 핀란드에 대한 동경을 심워줬다. 마치 그곳에서 오래 산 것처럼 그리움까지 느낄 정도이니 이 책이 주는 영향력은 참으로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핀란드 디자인 산책이라는 제목처럼 이 책은 핀란드의 상품을 소개한다. 그러나 그 상품이 얼마짜리인지 소개하는 맥심 광고하고는 질적으로 다르다. 얼마짜리 상품인지가 아니라 이 상품이 가지고 있는 디자인의 의미가 무엇인가하는 의미의 문제에 천착하기 때문이다. 디자인이란 물건을 더 많이 팔기 위해서 겉모습을 좋게 포장하는 것이라 생각하던 나에게 이 책은 가히 충격적이다. 디자인은 물건을 더 많이 팔기 위한 전략이나 포장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요, 철학이라는 저자의 주장이 참신하다.  

  오랫동안 핀란드에서 살아온 저자는 핀란드의 디자인을 소개하면서 핀란드의 철학과 문화를 소개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 책은 단순한 디자인 책이 아니다. 저자가 소개하는 핀란드의 철학은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것이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놓고 최소의 한도내에서 사람의 손길을 가미한다. 새들과 사람이 계절을 번갈아가면서 쓰는 헬싱키의 선착장은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는 가장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환경을 생각하여 물건을 재활용하는 글로베 호프의 디자인, 공원의 벤치하나 바꾸는 것도 오랜 시간을 들여 설문조사를 하고, 시장조사를 하여 천천히 바꾸어가는 모습들, 과거의 건물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그것들을 후대에 남겨줄 문화 유산으로 생각하는 도시계획과의 디자이너들의 모습은 너무나 부럽기만 하다. 에코 디자인, 공공 디자인, 철학을 담는 디자인을 통하여 핀란드 사람들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가? 여기에 대한 답으로 저자의 글을 한토막 옮겨 적는다. 

   난 오랫만에 찾은 서울에서 광화문 거리를 지나친다. 그리고 무언가 섬뜩한 변화에 갑자기 혼돈하게 된다. 아! 난 나무 그림자를 잃었다. 그곳에 멋들어지게 있던 나무가 뽑혀 버렸다. 그리고 어색한 시멘트 덩이들이 태양 빛 아래 곤혹스러운 얼굴로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다. 어디선가는 물이 넘쳐 흐른다. 사람들은 물놀이를 즐긴다. 대낮에 도심 한복판이 어색한 놀이터로 변한다. 나무 그림자 사라진 도로 한복판에 놀이터가 생겼다. 물은 차 다니는 도로까지 철철 흘러넘친다. 사람들도 차들도 서로 엉켜 있다. 그곳이 놀이터인가? 놀이터가 어찌 차 다니는 도로 한복판에 있단 말인가? 왜 사람들은 도로 한복판에서 사적인 놀이를 즐기고 있는 것일까? 차도로 흘러넘치는 물을 보니 난 갑자기 목이 마르다. 온 세계가 가까운 미래에 극심한 물 부족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는 지금! 난 순간 묻고 싶어졌다. 그 공간 디자인에 참여한 사람들은 지금 다른 사람들처럼 그곳에서 함께 즐기고 있는 것일까? 진정으로 그곳에서 사람들과 함께 즐길 마음으로 나무 그림자를 지워버린 것일까? 디자이너가 어떤 공간 디자인을 해야 한다면 디자이너 스스로 즐길 수 있는 곳을 먼저 생각하고 마음을 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디자인한 공간에서 진정으로 사람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자랑스러움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도 좋을만큼 겸손해야 한다. 마음은 보이지 않는 시선으로 사람가 사람 사이에서 늘 통하기 때문이다.("나 홀로 벤치" 중에서 인용) 

  한국의 공공 디자인에 대한 일갈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디자인이 무엇인가? 과연 그 안에 마음을 담았는가? CF에서가 아니라 실제로 그 안에 마음을 담았는가? 하나같이 네모 반듯한 한강변의 아파트에 자연이 담겨 있는가? 랜드마크랍시고 고층빌딩만 주구장창 지어대는 모습 가운데 자랑스러움이 있는가? 콘크리트로 포장하고 그 위에 물을 흘려 보내면서 청계천 복원이라 자랑스러워 하는 모습이 정말 자랑스러운가? 시민에게 닫혀 있는 서울 광장이 정말 자랑스럽고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인가? 디자이너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을 디자인하기 위하여 수도없이 그곳을 찾아와 살릴 것은 살리고, 보완할 것은 보완하기 위해서 노력하는가? 창피하지만 아니다. 걸리적 거리면 무조건 무너뜨리고 다시 짓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박정희식 경제발전 이후로 한국의 디자인이 포기하지 않고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창피함이 아닌가? 기껏 공공 디자인이라는 것이 해마다 도로를 갈아 엎고, 표지판 바꾸는 것, 유모차와 하이힐 신은 여자들이 많이 다니는 곳을 돌로 포장하는 미친 짓이 아닌가? 

  다이나믹 코리아, 오고 싶은 코리아, 다시 찾고 싶은 한국을 기치로 걸고 관광산없 육성을 위해 목숨을 건다. 그러나 기것 한국에 와서 뉴욕과 비슷한 모습을 본다면 굳이 올 이유가 어디있겠는가? 한국적인 문화와 철학과 생활을 포함한 디자인을 생각해야 하지 않겠는가? 디자인은 함께 즐길 공간을 만드는 것이고 그 안에 마음이 담겨 잇어야 한다는 저자의 말을 깊이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ps. 이 책 자체도 하나의 멋들어진 디자인 작품이다. 사진과 글자의 배치, 그리고 풍경과 디자인 물품의 배치는 보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고 눈을 즐겁게 해준다. 일상 생활과 번잡한 도시 생활에 지친 이들이라면 한번쯤은 펴보고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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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생각들>을 리뷰해주세요.
인류의 역사를 뒤바꾼 위대한 생각들 - 유가에서 실학, 사회주의까지 지식의 거장들은 세계를 어떻게 설계했을까?
황광우 지음 / 비아북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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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인류의 역사를 바꾼 위대한 생각들! 

  제목만 해도 거창하다. 그런데 담고 있는 내용은 더 거창하다. 지금까지 인류가 발명해 온 정치체제가 어던 흐름 가운데에서 나타났고, 발전해왔는지 서양과 동양의 흐름을 살펴본다. 서양은 르네상스 이후에 장원이나, 공동체, 기독교인, 유럽인이라는 집단의 모습을 탈피하여 개인이라는 자아발견을 통하여 전혀 새로운 정치체제가 나타났다고 설명한다.자유주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자유민주주의, 민족주의, 파시즘이라는 5가지의 형태로 정체를 설명하고 있다. 동양은 중국의 유가사상, 도가사상, 법가사상, 한국의 실학사상, 동학사상을 가지고 정체를 설명하고 있다. 총 10가지의 정치체제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지만 결국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은 한가지이다.  

  인내천(人乃天)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동학의 사상이 이 책의 핵심 단어가 아니겠는가? 민심은 천심이라는 케케묵었지만 여전히 진리인 이 말이 모든 정체의 기본이라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몰개성의 역사 가운데에서 개인의 발견, 그리고 개인의 존중은 자유민주주의를 발전시켰고, 자유민주주의를 위해서는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투쟁하고 있다는 것이 저자가 이 시대를 바라보는 모습이 아니겠는가? 물론 21세기 대한민국도 예외일 수는 없다. 

  저자는 책의 맨 마지막에서 우리에게 이데올로기는 무엇인가라는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이데올로기가 우리에게 무엇인가? 과연 냉전이 끝나면서 이데올로기는 종언을 맞이했는가? 좌와 우로 나뉘어서 대립하는 이데올로기 전쟁은 끝을 맺은 것인가? 저자는 아니라고 말한다. 여전히 우리는 이데올로기의 세상에서 살아간다고 말한다. 저자에게 있어서 이데올로기란 정치 사상이며, 사람이 살아가는 한 정치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에 십분 공감하면서 생각해본다. 권력의 주체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면 과연 대한민국의 권력이 주체는 누구인가? 

  대한민국 헌법 1조에 의하면 "1.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2.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 정말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서 부터 나오는가? 지난 촛불집회에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헌법1조노래를 불렀는가? 헌법1조 노래가 많이 불리웠다는 것은 결국 헌법1조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 아니겠는가? 왜 헌법1조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가? 나름대로 생각해 보건대 우리가 헌법 제2조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헌법 제2조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1.대한민국의 국민이 되는 요건은 법률로 정한다. 2.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재외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진다." 헌법1조보다는 2조에 집착하고 있다는 말은 법이 잘못되었다는 말이 아니다. 법률에 의하여 대한민국 국민을 정한다는 헌법 2조는 잘못 악용되면 우리로 하여금 누가 국민인가라는 치열한 편가르기와 패싸움을 할수밖에 없도록 만드는데, 유감스럽게도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역사가 편가르기와 퍄싸움의 역사였다. 물론 지금도 한장 좌와 우로 나뉘어 서로를 용납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권력자들이 너무나 쉽게 국민을 기만하지 않는가? 와하고 들고 일어날 때는 잠시 굽혔다가 가라앉으면 하나식 입건하고 가두고 있지 않은가? 뒷산에 올라가 겸허하게 아침이슬을 들었다는 그 분이 잠시 지나자 유모차 부대를, 진중권 교수를, 그외 수없이 많은 찍힌 이들을 법이라는 이름으로 처벌하고 있지 않은가?  

  왜 권력을 쥔 이들이, 기득권층이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는가? 우리를 개인이 아니라 묶음으로 보기 때문이다. 국민을 묶음으로 봤을 때 나치와 파시스트가 출현했던 과거의 경험을 우리에게 즁요한 반면교사가 된다.  

  어느 순간인가 부터 민중이라는 말이 사라졌다. 대신 대중과 다중이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다. 대중문화, 대중 스타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고, 대중이라는 말에 반발하는 이들은 대중이라는 말 대신 다중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왠지 민중이라는 말을 사용하면 빨갱이요, 불순분자처럼 느껴지기 때문일까? 큰 무리, 많은 무리라는 말은 말 그대로 묶음이다. 정치적인 용어라기 보다는 경제적인 용어가 아닐까? 정치적인 용어를 경제적인 용어로 교체해버린 순간, 우리는 소비의 대상, 공략의 대상이 되어버리지, 마케팅의 대상이 되어버리지 각성한 주체가 아니게 된다. 이것이 국민의 힘이 약해진 이유가 아니겠는가? 민심은 천심, 인내천이라는 말이 그냥 케케묵은 말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것의 힘을 오늘에 다시 되살릴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인가? 대중이나 다중이 아니라 민중으로 당당하게 서는 것이 아닐까? 경제, 영어, 순위 경쟁에 몰두할 시간을 조금만이라도 줄여서 이데올로기를 정립할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정치적인 주체로서 자기의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해야 하지 않을까?  

  저자가 생각하는 위대한 생각이란 결국 각성하는 민중이 아니겠는가? 수없이 많은 정체중에 동학사상을 최고의 가치고 생각한 것도 바로 각성하여 역사의 주체로 당당하게 선 농민들 때문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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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 - 하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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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에 "로마 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하"라는 제목 대신에 다른 제목을 붙여본다면 무엇이 될까? 아마도 "지중해 세계의 종말" 내지는 "지중해사의 종말"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은 지중해 세계의 종말을 세밀한 필치로 기록하고 있다.

  하권은 상권보다 더 흥미진진하다. 상권이 해적의 출몰 배경과 그 피해를 기록하고 있다면 하권은 해적계의 스타플레이어와 이에 맞대항하는 서유럽의 걸출한 해군 제독, 그들을 조종하여 서유럽의 배후를 교란하는 오스만 제국, 그리고 강력한 중앙 집권 국가로 등장한 스페인과 프랑스의 파워 게임, 도시국가가 난립한 이탈리아 반도의 혼란과 해적 대책에 관하여 흥미진진하게 기록하고 있다. 코에이사에서 만들어낸 유명한 롤플레임 게임 대항해 시대2를 통하여 한국의 게임머들에게 잘 알려진 안드레아 도리아, 하이레딘, 울구 아리 같은 선장들이 바로 해적계와 이에 맞대응하는 서유럽의 해군 제독계의 정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해군들에 의하여 목욕장으로 끌려가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노예 생활을 감당해야 하는 일반 서민들, 그들을 구출하기 위한 구출 수도회와 구출 기사단, 이슬람과의 전투에서 최선봉에 선 몰타 기사단, 신성로마 제국, 이슬람 세력의 팽창을 막으려고 하는 서유럽과 서유럽으로 이슬람의 집을 확장하려는 투르크 제국, 예니체리군단 등 어느 것 하나 흥미진진하지 않은 것이 없다. 지중해를 배경으로 이름을 날리면서 그 존재감을 역사에 당당하게 남긴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 하나의 재미있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에 책을 쉽게 놓을 수가 없다. 하권을 보면서 이야기꾼 나나미가 이 많은 사람들을 적당하게 잘 비벼서 아주 맛있는 비빔밥을 만들어 내놓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책을 넘기면서 한 가지 생각해본다. 왜 이렇게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고, 아주 오랜 역사를 지니는 지중해의 이야기가 중세시대를 거치면서 저물어 가는가? 왜 르네상스를 전후하여 그 존재감마저 사라져 버릴 정도로 희미해져 가는가? 두말할 것없이 신대륙과의 경쟁에서 밀렸기 때문이 아닐까? 항해 기술의 발달은 신대륙으로부터의 물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고, 오스만제국과의 힘겨루기는 물산의 흐름을 막아 버린 것이 아니겠는가? 게다가 물품이 점점 향신료를 포함한 고가의 상품으로 구성되면서 신흥 강국들은 독자적인 항해노선을 개척하기 위하여 얼마나 큰 노력을 기울였는가? 신대륙과 동방으로 가기에는 아무래도 지중해보다는 대서양이 더 유리하지 않았겠는가? 게다가 영토 중심의 민족국가가 형성 되면서 질은 높지만 양이 부족했던 도시국가들이 몰락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로마제국의 전성기와 그 시대의 지중해를 떠올려본다면 지중해의 멸망은 로마의 멸망과 함께 이미 시작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몰락한 지중해의 뒤를 이어 대서양이 해운의 중심이 되었고, 시간이 더 흐른 근대에 와서는 다시 태평양으로 그 중심이 옮겨졌다. 

  이런 시각에서 이 책을 읽노라면 항거할 수 없는 역사의 흐름에 관하여 생각해보게 된다. 그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지중해가 더 이상 해운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 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지중해 최고의 해운국 베네치아가, 상인의 집단인 베네치아가 그저 곤돌라의 도시, 낭만의 도시로 취급되어 관광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도시가 될 것이라고 그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역사의 흐름이란 이렇게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아무리 미래를 준비한다고 할지라도 항상 그렇게 잘 맞아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조금이라도 오래 살아남기 위해서는 계속 자신을 변화시키고 환경에 적응시켜야 한다. 그것이 역사의 한복판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책임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가 아니겠는가? 

  그럼 다시 하나만 더 생각해보자. 우리는 과연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가? 장차 다가올 통일을 위해, 그리고 새롭게 시작될 민족 국가를 위해, 더 나아가 동아시아 경제 블록을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통일 국가, 동아시아 경제블록은 꿈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그 누구도 상상 못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현실적으로 논의가 되어 가고 있고, 그 필요성을 인정받고 있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들을 위해 무엇을 준비하는가? 그냥 될대로 대라는 식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아니, 오히려 시대에 역행하면서 담을 쌓고 살고 있지 않는가? 자신을 변화시키기 보다는 상황을 거부하고 있지 않은가? 아무리 철저한 준비를 했던 베네치아도 무너졌다. 화려했던 에스파냐의 무적함대도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들의 일이다. 준비하지 못하고, 담을 쌓고 살아 이미 한번 식민지로 전락했던 경험이 있지 않은가? 그런데 왜 그 경험에서 배우지 못하는가? 

  나에게 많은 질문을 던져주는 책이다. 역사의 흐름 앞에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지금 우리가 깊이 고민해야할 가장 시급한 질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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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애(厚愛) 2009-09-11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리뷰 잘 읽었습니다.

제 서재에 축하 댓글까지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saint236 2009-09-11 14:1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여기까지 오셔서 댓글 달아 주시고
 
<사기 교양강의>를 리뷰해주세요.
사기 교양강의 - 사마천의 탁월한 통찰을 오늘의 시각으로 읽는다 돌베개 동양고전강의 1
한자오치 지음, 이인호 옮김 / 돌베개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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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사람에게 역사의 시작을 묻는다면 단연코 고조선 단군 할아버지부터 시작할 것이다. 곰과 호랑이가 어느날 환웅을 찾아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소원을 말했더니 쑥과 마늘을 주면서 동굴에 콕 박혀서 햇빛을 보지 않고 이것만 먹으면서 100일을 버티면 소원을 이룰 것이라 말했다. 그래서 괌과 호랑이가 함께 동굴에 들어갔으나 호랑이는 버티지 못하고 뛰쳐나오고, 곰은 사람이 되어 단군왕검을 낳았다는 이야기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단군설화이며 이것을 우리나라의 시작을 설명하는 설화로 초등학생이던 시절에 배웠다. 그리고 요즘도 배우고 있다. 그러나 배우고 있지만 고조선 역사가 우리나라 사람들의 의식을 만들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삼국시대일까? 아니며 고려시대일까? 그것도 아니면 조선시대일까? 삼국시대와 남북조시대, 고려시대가 두루 영향을 끼쳤겠지만 우리 민족의 정서와 생각과 감정을 형성하는데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것은 조선시대가 아닐까? 역사를 전공한 사람이 아니라서 확실한 증거를 댈 수는 없지만 오늘날 벌어지는 유교식 사고와 권위주의, 집단 이기주의와 민족주의는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를 지나면서 형성된 것이 아닐까? 

  그럼 삼황오제라는 전설은 뒤로 제껴두고 중국인의 의식과 역사를 형성하는데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것은 어느 왕조일까? 전설상의 성군이라 일컫는 요순우탕일까? 아니면 주지육림의 걸주일까? 그것도 아니면 전국시대? 단언컨대 한나라가 아닐까? 전국시대에 백가가 쟁명하면서 중국의 거의 모든 사상이 출현했다면 그것들이 모이고, 짝을 이루고 변형되면서 정착된 것은 단연코 한나라일 것이다. 진나라를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국가이긴 하지만 사상을 정착시키고 발전시키기에는 너무나 단명한 왕조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첫 통일 왕조라는 의미는 지대할 것이다. 그래서 사마천이 삼황오제부터 시작하지만 사기에 통달했다고 하는 한자오치는 전설상의 앞부분을 과감히 생략해 버리고 진시황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참고로 한족이라는 말이 한나라에서 유래했다는 그럴듯하고, 유력한 설이 있는데 이는 중국 사람들이 대대로 한나라를 얼마나 자신들의 뿌리로 여겼는지 알려 준다.  

  이 책은 진시황으로부터 시작된다. 전설상의 삼황오제는 물론이요, 요순우탕, 주 문공, 춘추전국시대의 사공자 등 고사성어로 알려진 수많은 이야기들은 과감하게 생략한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생략했다기보다는 이 책에 기록된 내용만 발췌햇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130편이나 되는 방대한 불량 가운데 고작 10편 남짓을 뽑아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문제를 제기할지 모르지만, 일단 이 책을 읽어보면 저자가 왜 사기의 전문가라 불리우는지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그 많은 내용가운데 사기의 기본을, 그리고 기록 목적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엮으면서 자신의 정치 철학을 풀어내고 있다. 정치란 무엇인가? 패도인가, 덕치인가, 법치인가? 그도 아니면 무위자연의 도치인가? 전국 시대 많은 정치철학이 등장했고 그 중 두각을 나타낸 것은 노장의 무위의 치와 공맹의 덕치, 한비자의 법치, 그리고 난세의 패도가 아닐까? 물론 패도와 법치는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다니지만.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고 정치가 시작된 이래 올바른 정치체제에 대한 탐구는 끊이지 않고 있으며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저자는 이런 시각으로 사기에 접근한다. 사마천의 시각을 빌려 정체에 대하여 논하지만 결국 저자의 생각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저자의 생각은 지극히 중국적이다. 시작은 패도와 법치로, 정착은 덕지로 해야 국가가 오래 유지되며, 창업자를 도운 공신들의 최고의 처세술은 황로사상이며 수성자를 돕는 대신들의 처세술은 변형된 유교라는 것이 중국인의 사고에 딱맞는 정치이념이 아니겠는가? 물론 이것이 단지 중국만의 문제는 아니라, 한국과 일본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쳤지만 말이다. 사마천의 궁형 자처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한다면 충분히 이해가 가는 대목이 아니겠는가? 의와 충이라는 정치 이념 가운데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이란 뻔하지 않는가?  

  사기가 오늘날까지 영향을 기치고 있고 애독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좀더 확실히 말하면 사기를 왜 읽어야 하는가? 다른 어느 책보다 우리에게 역사를 판단하는 힘을 길러 주기 때문이 아닐까? 이런 저런 이야기들을 충실히 모아 여기저기 배치한 사마천의 노력은 우리로 하여금 어느 것이 진실이고, 어느 것이  허구인지 판단하게 해주며, 각 인물의 장단점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보게 한다. 게다가 그들로부터 얻을 수 있는 삶의 지혜와 체세의 방법들은 복잡하고 불안한 시대, 합리주의와 냉정한 계산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시대에 이익에 구애받지 않고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해 주기 때문이 아닐까?  

  간만에 재미있는 책을 읽어서 기분은 좋지만 오탈자가 많다. 내가 발견한 오탈자는 대충 이렇다. 

136p 밑에서 두번째 줄, 유방의 공세=>항우의 공세
139p 맨 마지막 줄, 항우의 아버지=>유방의 아버지
140p 10번째 줄, 누가한테=>누구한테
196p 맨 밑 줄, 소화는 첫 눈에=>소하는 첫 눈에
207p 밑에서 두번째 줄, 연나라로=>연나라를
228p 12번째 줄에는 수비대장이 "상인의 아들"인데 121p 16번째 줄에는 "백정의 아들"로 나오는데 원전이 잘못된 것인지 궁금한다. 225p 지도 5번 설명에는 고등=>고릉이다. 

  연도에 관한 것들은 살펴보지 않았는데도 이 정도이니 다음 판본에는 수정을 했으면 하고, 책을 만들 때 한번은 더 수정을 해줬으면 좋겠다. 오탈자가 많은 관계로 별점을 하나 삭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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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버스 2
존 고든 지음, 최정임 옮김 / 쌤앤파커스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에너지버스 1권을 읽은지 어느덧 1년이 지났다. 그 사이에 에너지버스 2권이 나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왠지 손이 가지 않았다. 굳이 이유를 꼽자면 전작만한 후작이 없다는 생각일까? 그렇겠지 생각하고 지내다가 여동생 집에 가서 이 책을 발견했다. 돈주고 사서 보긴 아깝지만 동생이 가지고 있으니 한번 읽어볼까하는 생각에 빌려왔고 오늘 책을 폈다. 2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책을 읽으면서 왜 진작 이 책을 보지 않았을까 후회를 했다. 그리고 알라딘에서 5권의 책을 주문했다. 나와 함께 일해야 하는 청년들에게 주기 위해서이다. 조금은 강압적이지만 숙제로 내주고 검사할 생각이다. 앞으로 함께 일하는데에 꼭 필요한 내용이 여기에 들어 있으니 말이다. 

  솔직히 요즘들어 많이 힘들었다. 온통 불평만 나오고, 친구들과 만나서도 답답함이 해소가 되지 않았다. 한 친구가 내게 "너무 네 생각을 심어주려고 하지마. 기대감을 낮출 때도 필요한 거야."라고 할 때, 무조건 내가 옳다고 항변했던 내 모습이 떠올라 창피했다.  

  교회를 옮기고 청년부를 담당한지 2년이 되어 가는데 그 동안 내 마음에서 감사와 기쁨의 마음이 많이 사라졌다. 여유가 사라지고 조급했다. 대신 불평과 불만, 짜증이 그 안을 채우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일해왔던 많은 청년들과의 관꼐가 틀어지고 수습해보려 하지만 처음 만들어진 이미지를 회복하지 못하고 떠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의 불만을 터뜨리면서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자신의 생각을 밀어붙이면서 서로 상처주기에 급급하지 않았나싶다. 

  그렇게 하나둘씩 떠나고, 새로운 사람들을 훈련시켜서 함께 일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니 오히려 마음이 편안하다. 1권에서 나왔던 불평과 불만을 토로하며 힘을 뺐던 사람들이 버스에서 내리고 난 다음의 모습이랄까? 이젠 이들을 어떻게 해야하지? 무엇을 해야하지? 고민하던 내게 이 책은 참으로 적절한 내려주는 단비와도 같은 고마운 존재다. 

  불평과 불만으로 해결되는 것은 없다.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습관적으로 불평한다. 그것이 내 힘을 얼마나 빼앗고 에너지를 고갈시키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이젠 불평을 멈추어야 할 때이다. 여기서 부터 시작이다.  

PS. 청년들에게 꼭 선물해 주고 싶은 목록에 추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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